[주삶 묵상 원고 샘플]


7. 5:1-9 고통을 보는 이중적 측면

 

찬송가: 289

 

여는 이야기

지금은 이스라엘이 적군에 의해 몰매를 맞지만, 훗날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타나게 될 것을 예언한다. 그 다스릴 자가 오게 되면 여호와의 능력과 놀라운 이름으로 그 백성들을 평안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예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앗시리아의 공격이 있을 것이고, 그 때에도 지도자를 세워 구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절별 해설

5:1 <<그러므로 굳센 성아, 너희 군인들을 모아라.>> 군인들을 모아 성을 굳세게 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적군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 만큼 적의 숫자가 많고 공격이 치열하기 때문에 군인들을 더 불러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적군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직접적으로 가해할 만큼 이스라엘을 위협할 것이다.

 

5:2 <<네게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지도자가 나를 위해 나올 것이다.>> 유다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장차 이스라엘을 다스릴 지도자가 나오게 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에게서 메시야 예언의 말씀으로 인식되었다.(2:6) 그리고 이 예언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다.

 

5:3 <<진통중인 예루살렘>> 미가는 당시의 이스라엘의 상황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지도자>를 출생시키기 위해서 진통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한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은 상당한 고통 가운데 있다. 그러나 이 고통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다. 출산을 위한 진통과 같은 것이어서, 생명과 구원을 출산하기 위한 고통임을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5:4 <<그러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서서 ... 그 백성을 돌볼 것이다>> 진통의 때가 끝나고 이스라엘을 통해 출생한 그 지도자는 여호와의 능력으로 그의 백성들을 돌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백성들은 평안하게 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고, 예수님은 여호와의 능력을 이 땅에서 행하면서 그의 백성들을 돌보셨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의 백성들을 평안케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은혜를 베푸셨다.

 

5:5 <<앗시리아 군대>> 본 절에 언급하고 있는 <앗시리아 군대>를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앗시리아로 보지 않고, 이스라엘을 대적하며 위협하는 모든 이방 국가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앗시리아 >에 대항해서 효과적으로 그들을 물리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구절의 의미는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공격하는 모든 국가들>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일곱 명의 지도자와 여덟 명의 군왕>> 이들을 구체적인 어떤 왕으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것은 히브리 문학적 기법으로(30:15,18,21, 11:2) 여러 명의 지도자가 일어나서 앗시리아를 물리칠 것을 의미한다는 정도로 보아야 한다.

 

5:6 <<니므롯 땅을 정복할 것이다.>> 앗시리아로 대변되는 이방의 공격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 명의 왕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 그들로 니므롯 땅을 정복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니므롯이란 당시의 바빌론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앗시리아 일 수도 있는데,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세상의 모든 제국들을 상징한다고 보면 된다.

 

기도

주님, 유다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세상의 구원자를 보내셨듯이 우리의 작고 연약함 속에서 주의 구원이 움트게 하소서. 우리의 작고 연약함이 누군가의 위로와 격려가 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의해서 침략을 당하고 결국은 멸망을 당하는 역사적인 상황을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하고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우상숭배와 불순종하는 범죄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심판이라는 측면이다. 그래서 바빌론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도구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측면은 이스라엘이 당하는 고난이 장차 얻게 될 구원을 위한 진통과정이라는 것이다. 진통이 없이 생명의 탄생이 없듯이, 이스라엘이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이 없이는 새로운 생명과 구원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의 고난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은 우리의 잘못에 대한 징계일수도 있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위한 과정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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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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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다. 


2. 하늘을 펴시고,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1) 하나님께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하리라. 

  2) 그 날에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의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라. 그것을 드는 자는 크게 상할 것이다. 


  3) 천하만국이 예루살렘을 치려고 모이지만, 여호와가 그 날에 모든 말을 쳐서 놀라게 하고, 탄 자를 미치게 할 것이라.

  4) 유다의 우두머리들은 마음 속에 이르기를 예루살렘 주민이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는다 할 것임.

  5) 그 날에 유다 지도자들을 나무 가운데 화로 같게하고, 곡식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할 것이니, 좌우에 에워싼 모든 민족들을 불사를 것이다 

  6) 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할 것이다. 이는 다윗의 집의 영광과 예루살렘 주민의 영광이 유다보다 더하지 못하게하려 함이다. 

  7)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


  * 그 날에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유다의 편에 서고 주변 나라들은 취하게 하여 그들을 상하게 할 것임을 말씀하신다. 스가랴의 말씀이 요한계시록의 메시지와 많이 중첩된다고 여겨지는데, 그래서 요한계시록에는 스가랴의 이미지들이 많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3.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라. 

  1)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와 장자를 위해 통곡하듯 하리로다. 

  2)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라. 

  3)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한다.

   - 그 고통과 아픔이 개별적으로 모두에게 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그래서 각 지파와 사람들이 애통해 한다고 말하는 것인듯)



[묵상 한 모금]


1. 하나님으로부터 유다와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회복된 예루살렘으로 인해 주변 나라들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예언)은 요한계시록의 메시지와 일맥 상통한다. 스가랴 서는 회복(성전)이 지지부진하던 중에 이들을 독려하면서 주어진 말씀, 더 나아가 단순히 성전의 회복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온전히 회복될 것을 재차 확인시켜주는 내용의 말씀이었다. 반면 요한계시록은 고난과 환난 속에 있는 성도들에게 스가랴서를 포함한 묵시의 말씀들을 통해서 종말론적인 회복과 승리의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2. 그 날에는 그 중에 약한 자가 그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사자 같을 것이라.(8절) 완전히 새로워지고 강해지는 예루살렘 백성들의 변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로의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을 말한다.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부활체의 약속(고전 15장)이 생각나는 말씀이다. 


3.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을 애통(11절)은 매우 크고 절절한 애통인 것은 분명하다.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한다.(10절) 자신이 찌를 자를 보고 애통하게 된다는 말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이 죽인 사건이 연상된다. 유대인들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심으로(성령을 부어주심) 그들이 자신들이 행한 악에 대해서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신약적 맥락에서는 큰 문제가 없지만, 스가랴와 신약 사이에 이런 신학적 가교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장담하기는 어렵다. 다만, 스가랴서의 표현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신약의 내용(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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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dotty.org/2699099


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중에 일부분인데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대략 우리가 좀 비루하게 인식하기도 하는 조선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가 하는 부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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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역사의 특수성

○ 미국이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다면 우리는 우리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은 그것 입니다.

-역사를 보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한데요.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아마 이 가운데서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신 분들은 이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 미국, 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

금년이 2010년이니까 한일합방 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시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습니다. 에스파냐왕국입니다.

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

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과학입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 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700년, 1,000년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

또 잘 대드는 성격이 있다면, 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 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기록의 정신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동학란이나 이런 것은 전국적인 규모이고, 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왜? 편지를 하려면 한문 꽤나 써야 되잖아요. ‘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격쟁(?錚)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錚)자입니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입니다.

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입니다.

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 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아까 말씀 드린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조금 김새시겠지만 기록의 문화입니다. 여러분이 이집트에 가 보시면, 저는 못 가봤지만 스핑크스가 있습니다. 그걸 딱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 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 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 구나’

여기에 석굴암을 딱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습니다. 우리는 뭐냐. 이런 생각을 하셨지요?

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여러분, 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

그 왕이 ‘국민 여러분, 조선백성 여러분, 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조선백성 여러분, 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습니까? ‘마마, 마마가 나가시옵소서.’ 이렇게 되지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고 앉아있습니까? 안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겠습니까.

‘당신이 나가시오, 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 바로 곁에 사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여러분께서 아침에 출근을 딱 하시면, 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을 다 적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 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습니다. 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습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을 것 아닙니까?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습니다. 이걸 사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습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쓰는 게 경제적이지요.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6,400만자 하면 좀 적어 보이지요?

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생각 안 드세요? ‘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가끔 드시겠지요?

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 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들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습니다.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봅니까? 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봅니까? 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 사또가 봅니까?

이런 사람이 못 보는데 국민이 봅니까? 여러분,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썼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놨습니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비서실입니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 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습니다. 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느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써놓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

이게 몇 자냐 하면 2억 5,000만자입니다. 요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납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을 남겨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조입니다.

○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날 日자, 반성할 省자입니다. 왕들의 일기입니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씀 드렸지요.

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습니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여러분,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 가서 찾아보십시오.

저는 우리가 서양에 가면 흔히들 주눅이 드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전부 한글로 번역합니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개략적이나마 번역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이것을 번역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영어로 하고 핀란드어로 하고 노르웨이어로 하고 덴마크어로 하고 스와힐리어로 하고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탑재한 다음날 전 세계 유수한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인 여러분, 아시아의 코리아에 150년간의 제왕의 일기가 있습니다.

288년간의 최고 권력기구인 비서실의 일기가 있습니다. 실록이 있습니다.

혹시 보시고 싶으십니까? 아래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당신의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서 이것을 본 세계인이 1,000만이 되고, 10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이 사람들은 코리안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야,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어떻게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가, 우리나라는 뭔가.’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냐면 국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그만큼 세계에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것을 남겨주었는데 우리가 지금 못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이러한 기록 중에 지진에 대해 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진이 8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3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249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29회 나옵니다. 다 합치면 2,368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 때 이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계를 내면 어느 지역에서는 155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은 200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을 다 피해서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방폐장, 핵발전소 만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면 세계인들이 틀림없이 산업시찰을 올 것입니다.

그러면 수력발전소도 그런 데 만들어야지요. 정문에 구리동판을 세워놓고 영어로 이렇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2,000년 동안의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은 2,000년 동안 단 한번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에 방폐장, 핵발전소, 수력발전소를 만든다. 대한민국 국민 일동.’

이렇게 하면 전 세계인들이 이것을 보고 ‘정말 너희들은 2,000년 동안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고, 제가 말씀드린 책을 카피해서 기록관에 하나 갖다 놓으면 됩니다.

이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느냐 하면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이것이 제일 약진입니다.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습니다.

대략 강진만 뽑아보니까 통일신라 이전까지 11회 강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11회 강진이, 조선시대에는 26회의 강진이 있었습니다. 합치면 우리는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이 땅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신기하게도 선조들은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 정치, 경제적 문제

○ 그 다음에 조세에 관한 사항을 보시겠습니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 세종이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는가?’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종12년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 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그래서 물어보는 방법을 찾는 데 5개월이 걸렸습니다.

세종12년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 9만 8,657표, 반대 7만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 찬성이 훨씬 많지요.

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 ‘마마, 찬성이 9만 8,000, 반대가 7만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7만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 ‘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

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

‘마마, 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

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

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또 부결이 됐습니다.

이유는 ‘마마, 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년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조선시대에 정치를 이렇게 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1945년 건립되고 나서 어떤 안을 13년 동안 이렇게 연구해서 공포·실시했습니까.

저는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법률 문제

○ 법에 관한 문제를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조선시대에 3심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 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갑니다.

옛날에 지방관 관찰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습니다.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어요.

조선의 기록정신이 그렇습니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 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

오늘날 번역이 되어 큰 도서관에 가시면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왕이 사형수를 직접 신문한 내용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왕들은 뭐를 신문했냐 하면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 아닌가 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합니다.

이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 이것을 계속 따집니다.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과학적 사실

○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이미 다 아시겠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도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습니다.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어떠냐 하면 지구는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다, 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 주희.

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황진이의 애인, 고려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야 한다, 바닷가에 가서 해양을 봐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

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1400년대입니다. 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동지상사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 동짓달이 되면 바리바리 좋은 물품을 짊어지고 중국 연변에 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뭘 얻어 옵니다.

다음 해의 달력을 얻으러 간 것입니다. 달력을 매년 중국에서 얻어 와서는 자주독립국이 못될뿐더러, 또 하나는 중국의 달력을 갖다 써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리/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됐습니다.

수학자와 천문학자가 총 집결을 했습니다. 이순지가 이것을 만드는데 세종한테 그랬어요.

‘못 만듭니다.’

‘왜?’

‘달력을 서운관(書雲觀)이라는 오늘날의 국립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안 오는가?’

‘여기는 진급이 느립니다.’ 그랬어요.

오늘날 이사관쯤 되어 가지고 국립천문대에 발령받으면 물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행정안전부나 청와대비서실 이런 데 가야 빛 봤다고 하지요? 옛날에도 똑같았어요. 그러니까 세종이 즉시 명령합니다.

‘서운관의 진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안 옵니다.’

‘왜?’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봉록을 올려라.’ 그랬어요.

‘그래도 인재들이 안 옵니다.’

‘왜?’

‘서운관 관장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면 서운관 관장을 어떻게 할까?’

‘강한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 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어요. ‘누구를 보내줄까?’

누구를 보내달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 그랬어요. 정인지가 누구입니까? 고려사를 쓰고 한글을 만들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고 영의정입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

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분, 20분,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한 100년,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 여기서부턴 수학에 관한 내용인데, 관심있는분만 읽어보셔요 -------------

-홍대용이라는 사람은 수학을 해서 ‘담헌서(湛軒書)’라는 책을 썼습니다.

‘담헌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큰 도서관에는 다 있습니다.

이 ‘담헌서’ 가운데 제5권이 수학책입니다. 홍대용이 조선시대에 발간한 수학책의 문제가 어떤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구체의 체적이 6만 2,208척이다. 이 구체의 지름을 구하라.’ cos, sin, tan가 들어가야 할 문제들이 쫙 깔렸습니다.

조선시대의 수학책인 ‘주해수용(籌解需用)’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sinA를 한자로 正弦, cosA를 餘弦, tanA를 正切, cotA를 餘切, secA를 正割, cosecA를 如割, 1-cosA를 正矢, 1-sinA를 餘矢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있으려면 삼각함수표가 있어야 되잖아요. 이 ‘주해수용’의 맨 뒤에 보면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옮겨봤습니다.

예를 들면 正弦 25도 42분 51초, 다시 말씀 드리면 sin25.4251도의 값은 0.4338883739118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왜 다 썼느냐 하면 소수점 아래 몇 자리까지 있나 보려고 제가 타자로 다 쳐봤습니다. 소수점 아래 열세 자리까지 있습니다. 이만하면 조선시대 수학책 괜찮지 않습니까?

다른 문제 또 하나 보실까요?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眞線에 있다.

조선시대 수학책 문제입니다. 이때는 子午線이라고 안 하고 子午眞線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미 이 시대가 되면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線上에 있다. 甲地는 北極出地, 北極出地는 緯度라는 뜻입니다. 甲地는 緯度 37도에 있고 乙地는 緯度 36도 30분에 있다. 甲地에서 乙地로 직선으로 가는데 고뢰(鼓?)가 12번 울리고 종료(鍾鬧)가 125번 울렸다. 이때 지구 1도의 里數와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하라. 이러한 문제입니다.

이 고뢰(鼓? ) , 종료(鍾鬧)는 뭐냐 하면 여러분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초등학교 때 사회책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도와 상당히 유사하지 않습니까?

옛날 조선시대의 지도가 이렇게 오늘날 지도와 비슷했을까? 이유는 축척이 정확해서 그렇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십리 축척입니다.

십리가 한 눈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왜 정확하냐면 기리고거(記里鼓車)라고 하는 수레를 끌고 다녔습니다.

기리고거가 뭐냐 하면 기록할 記자, 리는 백리 2백리 하는 里자, 里數를 기록하는, 고는 북 鼓자, 북을 매단 수레 車, 수레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만들었냐 하면 수레가 하나 있는데 중국의 동진시대에 나온 수레입니다.

바퀴를 정확하게 원둘레가 17척이 되도록 했습니다. 17척이 요새의 계산으로 하면 대략 5미터입니다.

이것이 100바퀴를 굴러가면 그 위에 북을 매달아놨는데 북을 ‘뚱’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북을 열 번 치면 그 위에 종을 매달아놨는데 종을 ‘땡’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여기 고뢰, 종료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5km가 되어서 딱 10리가 되면 종이 ‘땡’하고 칩니다. 김정호가 이것을 끌고 다녔습니다.

우리 세종이 대단한 왕입니다. 몸에 피부병이 많아서 온양온천을 자주 다녔어요.

그런데 온천에 다닐 때도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리고거를 끌고 갔어요.

그래서 한양과 온양 간이라도 길이를 정확히 계산해 보자 이런 것을 했었어요.

이것을 가지면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원주를 파이로 나누면 지름이다 하는 것이 이미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 수학적 사실

○ 그러면 우리 수학의 씨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것인데요,

여러분 불국사 가보시면 건물 멋있잖아요. 석굴암도 멋있잖아요. 불국사를 지으려면 건축학은 없어도 건축술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최소한 건축술이 있으려면 물리학은 없어도 물리술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물리술이 있으려면 수학은 없어도 산수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졌던 의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었을까.

그런데 저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선생님을 너무 너무 존경합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에스파냐, 스페인에 있습니다.

1490년대에 국립대학이 세워졌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1600년대에 세워진 대학입니다.

우리는 언제 국립대학이 세워졌느냐, ‘삼국사기’를 보면 682년, 신문왕 때 국학이라는 것을 세웁니다.

그것을 세워놓고 하나는 철학과를 만듭니다. 관리를 길러야 되니까 논어, 맹자를 가르쳐야지요.

그런데 학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 김부식 선생님은 어떻게 써놓았냐면 ‘산학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명산과입니다. 밝을 明자, 계산할 算자, 科. 계산을 밝히는 과, 요새 말로 하면 수학과입니다.

수학과를 세웠습니다. ‘15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 공무원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서 9년 동안 수학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졸업하게 되면 산관(算官)이 됩니다. 수학을 잘 하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서 찾아보십시오. 수학만 잘 하면 공무원이 되는 나라 찾아보십시오.

이것을 산관이라고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되었습니다.

이 산관이 수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산관들은 무엇을 했느냐,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전부 산관들이 가서 했습니다.

세금을 매긴 것이 산관들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수학 상황을 알려면 무슨 교과서로 가르쳤느냐가 제일 중요하겠지요?

정말 제가 존경하는 김부식 선생님은 여기다가 그 당시 책 이름을 쫙 써놨어요. 삼개(三開), 철경(綴經), 구장산술(九章算術), 육장산술(六章算術)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구장산술이라는 수학책이 유일합니다.

구장산술은 언제인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최소한도 진나라 때 나왔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좋은 책이면 무조건 다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 8장의 이름이 방정입니다. 방정이 영어로는 equation입니다.

방정이라는 말을 보고 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저는 사실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방정식을 푸는데, 방정이라는 말이 뭘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어떤 선생님도 그것을 소개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니까 우리 선조들이 삼국시대에 이미 방정이라는 말을 쓴 것을 저는 외국수학인 줄 알고 배운 것입니다.

○ 9 장을 보면 9장의 이름은 구고(勾股)입니다. 갈고리 勾자, 허벅다리 股자입니다.

맨 마지막 chapter입니다. 방정식에서 2차 방정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미지수는 다섯 개까지 나옵니다. 그러니까 5원 방정식이 나와 있습니다.

중국 학생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말을 모릅니다. 여기에 구고(勾股)정리라고 그래도 나옵니다. 자기네 선조들이 구고(勾股)정리라고 했으니까.

여러분 이러한 삼각함수 문제가 여기에 24문제가 나옵니다.

24문제는 제가 고등학교 때 상당히 힘들게 풀었던 문제들이 여기에 그대로 나옵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삼국시대에 이미 교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전부 서양수학인 줄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밀률(密率)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비밀할 때 密, 비율 할 때 率. 밀률의 값은 3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수학교과서를 보면 밀률의 값은 3.14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까 이순지의 칠정산외편, 달력을 계산해 낸 그 책에 보면 ‘밀률의 값은 3.14159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다 그거 삼국시대에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는 오늘날 플러스, 마이너스, 정사각형 넓이, 원의 넓이, 방정식, 삼각함수 등을 외국수학으로 이렇게 가르치고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이런 소망을 강력히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초등학교나 중·고등 학교 책에 플러스, 마이너스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우리 선조들은 늦어도 682년 삼국시대에는 플러스를 바를 正자 정이라 했고 마이너스를 부채, 부담하는 부(負)라고 불렀다.

그러나 편의상 正負라고 하는 한자 대신 세계수학의 공통부호인 +-를 써서 표기하자, 또 π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682년 그 당시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우리는 π를 밀률이라고 불렀다,

밀률은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뜻이다, 오늘 컴퓨터를 π를 계산해 보면 소수점 아래 1조자리까지 계산해도 무한소수입니다.

그러니까 무한소수라고 하는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이 말은 철저하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밀률이라는 한자 대신 π라고 하는 세계수학의 공통 부호를 써서 풀기로 하자 하면 수학시간에도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2차 출처: http://baseballpark.co.kr/bbs/board.php?bo_table=bullpen3&wr_id=290837

2차 저자: 네로울프

원출처: 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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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레바논의 자랑이 겸손하게 됨


  1)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2) 너 잣나무여 곡할 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쓰러졌다. 

  3) 바산의 상수리 나무들아 곡할지어다. 무성한 숲이 엎드러졌도다.

  4) 목자들이 곡하는 소리가 남이라. 그들의 영화로운 것들이 쓰러졌기 때문이다.


 * 레바논의 큰 자랑이라 함은 백향목과 잣나무, 상수리 나무로 이루어진 숲인듯 하다. 그 많은 재목과 숲이 불로 인해 소멸되었기에 레바논의 자랑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즉 레바논이 겸손하게 됨을 의미한다. 



2. 잘못된 목자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게 내릴 화


  1) 여호와의 말씀,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2) 양 떼를 사들인 자들은 내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3) 양 떼를 판 사람들은 내가 그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되었다고 여호와께 찬양한다.(자신의 유익만 생각함)

  4) 원래 양 떼들의 목자들은 양 떼를 불쌍히 여기지도 아니한다.(양 떼를 먹인 자로 직업의식만 있을 뿐)


  *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그 백성들을 대하는 태도가 이와 같음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5) 이와 같은 하나님은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할 것이다. 그들을 이웃과 임금의 손에 넘길 것이며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도 않을 것이다. 


  *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이 땅 백성들을 그리 생각하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고약하게 여기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지 아니하였다.


  6) 내가(스가랴) 지금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하다. 그래서 내가 두 막대기, 은총, 연합을 가지고 양 떼를 먹인다.


   * 은총과 연합을 가지고 이들을 돌봤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돌이키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은총의 막대기도, 연합의 막대기도 꺾어버리신듯 하다.


   (1) 한 달 동안 세 목자를 제거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싫어하는 바 되었고, 그들도 나를 싫어한다.

* 양을 산 자, 양을 판자, 양을 기른 자. 이 세부류를 일컬어 하는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2)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라. 그래서 죽이는 자는 죽이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두리라.


  (3) 은총 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다. 모든 백성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다. 

  (4) 당일에 폐하고, 내 말을 지키던 가련한 양들에게는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 두라(언약 파기로 끝내자) 하였더니 그들이 은 30개를 달아 내 품삯으로 삼았다. 

   * 하나님의 말씀을 듣던 양들과는 언약을 폐기하지 않고, 그들이 은 30개를 달아줌으로 언약을 유지하게 되었음을 말한다. 모든 백성과 언약이 파기 되는 듯 했으나, 그 중에 일부는 그 언약을 유지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함으로 그 언약이 유지 되었다.    


  (5) 여호와께서 스가랴에게 그 은 30개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여 그리했다.


  * 은 30은,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대가로 받은 것과 같은데 스가랴에서는 그것은 언약을 유지하는 비용으로 지불한 것이다. 유다는 예수를 판 대가로 은 30을 받은 것이고(스가랴에서는 하나님이 그 은 30을 받은 것이고) 유다는 다시 양심의 가책을 받아 돌려줬고, 그 돈은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갔는데, 대제사장들은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다.(마 27장) 스가랴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돈을 스가랴에게 토기장이에게 던지라고 했다. 

이 두 사건에는 분명한 유사성(상징성)이 있는데, 이 은 30의 거래가 하나의 언약 체결(유지)을 의미한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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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스가랴가 '연합'이라는 두 번째 막대기를 꺾어 버렸다. 이것은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하는 것이었다. 

  (7) 여호와께서 스가랴에게 어리석은 목자의 기구들을 빼앗으라.

  (8) 하나님이 한 목자를 세울 것인데, 그는 없어진 자, 상한 자, 강건한 자를 돌보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 여기서 세워지는 목자는 돌보고 섬기는 목자가 아니라, 심판하는 목자라는 것을 묘사를 통해 알 수 있다. 


 7)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려 상할 것이다.



[묵상 한 모금]


1. 양 떼를 사고 팔고 기른 목자들의 완악함을 고발한다. 하나님은 이 백성을 <은총>과 <연합>이라는 막대기를 가지고 잘 돌보려고 했으나 이들은 더욱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은 은총의 막대를 꺾고, 연합의 막대기를 꺾은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 가운데 한 목자를 세워 이들을 엄격하게 심판하고 벌하실 것을 말씀한다. 


2. 그런데 그 중에서도 은  30을 통해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있다는 것을 본문을 잊지 않고 언급한다. 이 이야기는 예수와 유다 이야기로 이어진다. 은 30으로 예수가 거래되었듯이, 예수는 언약을 파기하시려는(은총과 연합의 막대기를 꺾으심으로) 하나님께 대한 그의 백성들이 치른 대가(은 30)를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3. 정리하면, 하나님은 유다의 불순종과 완악함으로 이들과의 언약을 파기하려고 하셨다. 그런데 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던 백성들이 하나님께 은 30의 대가를 지불함으로 하나님의 품삯(목양 품삯)을 드린다. 예수님은 은 30에 팔려가신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팔림과 배반이라기 보다는 스가랴 11장에 나오는 은 30을 의미하는 사건으로서 예수님은 그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드리고, 다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유지하는 사건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예수님은 그의 백성들(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순종해왔던)의 언약 체결 대가로서 은 30에 팔린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간의 언약 체결은 여전히 유효하다.(반면 그 밖에 있던 자들에게 대해서는 언약이 파기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슥 11:10-11은 은총의 막대기를 꺾으심으로 언약을 파기했다고 말한다.)


4. 스가랴가 요한계시록과 복음서와의 연계성을 가진 중요한 본문이라는 것이 점점 드러난다.


[추가] 예수님이 유다에 의해서 은 30에 팔린 것이 스가랴 11장에 언급되는 은 30에 대한 성취로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스가랴 11장에 언급된 은 30에 대한 상황은 약간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은총이라는 막대기로 돌봤으나, 그 백성이 죄 가운데에서 돌이키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은 은총이라는 막대기를 꺾고, 그 백성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려 합니다.(10절) 그 때 그 백성 중 일부가 은 30을 품삯으로 주고 그 관계(아마 목자와 왕의 관계)를 지속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니까 은 30은 파기 될뻔한 언약 관계를 지속하는데(새롭게 언약관계를 맺음) 필요한 대가였습니다. 

예수님이 은 30에 팔렸다는 것은 스가랴의 상황과 좀 다르지만, 은 30이 가지는 상징성은 명확합니다. 언약 관계를 맺는(유지하는) 대가가 은 30인 것이지요. 예수님이 은 30에 팔렸다는 것은 그의 백성과 언약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스가랴 때의 은 30 을 신학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체포와 죽음이 결국 대속 사건인 십자가 일관성있게 연관된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만...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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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봄 비가 올 때,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그리하면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 채소를 얻게 하리라.


2. 그런데 너희들이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드라빔과 복술자를 헛되게 의지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백성들이 양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였다.


  * 비가 필요할 때, 하나님께 구하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헛된 우상을 의지하여 자신들의 필요를 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백성과 목자들에게 분노하고 벌하셨던 것임을 지적하신다. 


3.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께서 유다 족속을 돌보아 그들을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라.


  1) 모퉁잇돌이 그에게서, 말뚝이 그에게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서, 권세 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서 나올 것이다. 

  2)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한즉 대적하여 말탄 자들이 부끄럽게 될 것이다. 

  3)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고,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이 돌아오게 하리라.

  4) 내가 그들을 내버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될 것이다. 

  5)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시며 즐거워할 것이다. 그들의 자손을 보고 기뻐하리라. 


  * 그러나 이제는 달리 하신다. 마치 전에 이 백성을 내버린 적이 없던 것처럼, 완전하게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시 유다 민족에게서 구원자(메시야)를 세울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유다와 요셉이 견고하게 설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긍휼이 여기셔서 돌아오게 할 것임을 말씀하신다. 

----------------


4. 하나님께서 그들을 휘파람을 불어 불러 모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구속하셨기 때문이다. 


  1) 이전의 번성하던 것처럼 번성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그들을 여러 백성들 가운데 흩을 것이지만, 그들이 먼 곳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살아서 자녀들과 함께 돌아올지라.

  3) 하나님께서 이들을 애굽에서 돌아오게 하고, 앗수르에서 모아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 것인데, 그들이 거할 곳이 부족할 것이다. 

  4) 하나님이 그들을 고난의 바다를 지나갈 때에, 바다 물결이 침으로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를 것이다.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규가 없어지리라. 


  * 새롭게 돌아오는 백성들은 애굽에서 돌아오고, 앗수르에게서 잡혀갔던 곳에서 돌아오는 것이다. 그 수가 적지 않아 길르앗과 레바논이 부족할 것이라고 말한다. 흩어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풍성해진 백성을 말하는 것이다. 애굽의 거주함으로 더욱 풍성해졌던 이스라엘처럼. 앗수르와 바벨론으로 인해 포로로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 풍성하게 되어 돌아오게 될 것을 스가랴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앗수르의 교만과 애굽의 권위를 낮추셨음을 말한다. 


  5) 하나님이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라. 



[묵상 한 모금]


1. 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분노하시고 벌하셨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


2. 6절에 '그들은 내가 내버린 일이 없었음 같이 되리라'는 구절은 이전과 같은 회복을 약속하시는 말씀이다. 마치 다친 곳이 다치기 전처럼 완전하게 회복될 것을 말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내버려짐으로 인해 고통이 컸지만, 그것을 상쇄하고 남을 만큼의 큰 회복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관계는 끊어질 수 없는 관계를 끊었다가(거의) 다시 회복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부모가 되어 관계를 회복할 것이며, 다시 결혼 관계를 회복하여 가정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3. 이 말은 9절의 표현으로 하면, 여러 백성들 가운데 흩었다가 다시 불러 모을 것이라는 것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전에 번성하던 것처럼 번성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들을 데리고 오려면 이들을 붙잡고 있는 강한 자들에게서 빼앗아 와야 한다. 그들은 이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애굽의 바로에게서는 큰 재앙을 통해서, 홍해를 가르는 기적과 심판으로 빼앗아 오셨고, 앗수르와 바벨론으로 흩어진 백성들에게 대해서는 고레스를 통해 보내도록 하셨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모든 제국의 권력을 제압하여 낮아지게 하시기도 하고,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기도 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더욱 부각된다. 


4. 내 주었다가 다시 데리고 와서 전과 같이 되는 것이 본전에 불과하고 시간만 낭비했다고 볼수는 없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행하였는지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 얼마나 큰 하나님이신지도 밝혀지게 되기 때문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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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정리]


1. 두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1) 두로는 자기를 위해 요새를 건축함. 은과 금이 풍족함. 

  2) 그러나 주께서 두로를 정복하여 그 권세를 바다에 쳐 넣으심. 그가 불에 삼켜질 것이다. 


2. 아스글론, 가사, 에그론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1) 가사는 임금이 끊어질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주민이 없을 것이며,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주하라라.

  2) 하나님이 블레셋의 교만을 끊고, 그 입에서 피를 잇사이에서 가증한 것을 제거하리라

  3) 그들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지도자 같이 될 것이다. 

  4) 에그론은 여부스(예루살렘) 사람 같이 되리라.


  * 블레셋에 대해서 징벌하시지만, 그 중에서도 하나님께로 돌아올 사람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3. 하나님께서 자기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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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온의 딸아, 예루살렘의 딸아 크게 즐거워하고 즐거이 부를지어다.


  1) 네 왕이 네게 임할 것이다. 

  2)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3) 하나님이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을 것이다. 

  4) 그가 이방 사람들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다. 

  5)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 장차 오게될 겸손한 왕은 이방인과의 전쟁을 치르는 왕이 아니라 화평을 전하는 왕이다. 그는 온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5.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1) 유다를 당긴 활로 삼고, 에브라임을 끼운 화살로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신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희 용사의 칼과 같게 하라. 

  2) 여호와께서 나타나사 그들의 화살을 번개 같이 쏘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게 하시며 회오리바람을 타고 가실 것이다. 

  3) 이 날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라. 


  * 포로가 되어 갇혀있었던 백성이지만, 이들은 물이 없는 웅덩이에 빠진 것이다. 완전히 죽지 않은 것이고 이들은 생명의 소망이 있다. 결국 하나님은 이들을 활과 화살을 삼으셔서 이들을 통해서 강한 민족들을 이기시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풍성하게 하실 것이다. 


  * 마른 웅덩이 표현 속에서 요셉이 생각난다. 요셉은 마른 웅덩이에 빠졌기 때문에 죽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살아서 애굽의 종으로 팔려간다. 그러나 역사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요셉은 세계 대국인 애굽에서 우뚝 높임을 받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다가 웅덩이에 빠진듯 하지만, 죽이시려는 것은 아니었다. 죽지 않았다. 오히려 유다를 회복시키시어 모든 열방 위에 높이 들리는 민족으로 세울 것을 약속하신다.


[묵상 한 모금]


1. 포로로 잡혀 간 유다 백성들을 <물없는 구덩이에 빠진 자>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참 재밌다.(11절) 물없는 구덩이는 요셉을 연상시키며 요셉은 훗날 그 웅덩이에서 살아남아 오히려 애굽의 총리가 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유다는 웅덩이에 빠진 자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유다는 죽을 지경까지는 아니었다. 이것은 이 웅덩이가 갇힌 것이지만, 아주 죽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며, 이것은 요셉과 같은 과정으로 이끄시려는 하나님의 한 과정이라는 역사적 조망을 가능하게 한다. 


2. 스가랴는 돌아온 유다 백성들에게서 요셉의 소망을 보게하고, 궁극적인 소망을 보도록 한다. 무력하여 낙심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 스가랴는 역사적 조망을 통해 창조적인 미래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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