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청춘을 향해서 과거의 청춘과 <나타난 현상>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런 현상이 나오게 되는 조건과 함께 평가해야 한다. 오늘날 청춘들은 나타한 현상만을 가지고 판단받고 있다. 


1. 386세대는 오늘날의 청춘을 향해서 비겁하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들이 용감하고 순수하게 학생운동을 할 수 있었던 조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당시 대학생들이 사회적인 엘리트라고 인정받았다는 조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오늘날 대학생을 사회적으로 엘리트라고 대학생 스스로도 인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학생이 되면서 엘리트라는 사회적 문화적 자본을 소유했다. 그 정신을 가지고 사회 운동에 전면에 나설 수 있었다.


2. 과거는 어두운 시절이긴 했어도 과거보다는 미래가 나을 것이란 기대가 있는 희망적인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늘보다 더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시대를 살고 있다. 실업과 가족해체 등이 일상 다반사가 되었다. 삶은 예측되지 않은 불안으로 가득하다. 이런 시대 속에서 대학생의 지위는 한없이 추락했다. 


3. 기성 세대의 눈으로 보면 성장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청춘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의 질문으로 그들을 볼 것이 아니라, 이들이 하고 있는 질문으로 이들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봐야하며 이들의 언어로 성장을 이해해야 한다. 


  - 24-26쪽 요약.(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엄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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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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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20대들을, 대학생들을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만 있으면 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부모와 선생이 이런 착각에 빠져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보'만 있으면 된다느느 생각은 지배와 통제에 대한 욕심이지 이해에 대한 갈망이 아니다. 이해란 통제와는 달리 내가 그들과 무엇을,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지 돌아보는 작업이다. 때문에 이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정보를 넘어 그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지식이며, 그들의 감수성과 나의 감수성 사이의 거리와 차이에 대한 성찰이다.(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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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정보는 객관화하는 작업이다. 나와 너가 분리되어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20대들은 분리된 객체일 수 없는데도 말이다. 제대로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들을 이해할 때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이해란 대상에 대한 따듯한 느낌을 가지고 그의 배경과 역사를 보는 것이다. 보이는 정보 뿐 아니라 역사적 맥락과 주변 상황을 읽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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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우리는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엄기호 /



"세상이 너희를 한심하다고 이야기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우리를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대신 되돌려서 물어 보자. 누가 너희더러 한심하다고 이야기하는지. 그리고 어떤 이유와 논리로 너희를 한심하다고 하는지. 어떤 언어로 너희를 한심하다고 말하는지를 되물어 보자."(12쪽)


 - 대학생들이면 성인인데, 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어른들은 문제제기를 한다.


우파들은 경제적인 이유를 든다. 이들은 청년들이 높은 보수만 바라고 험한 일은 싫어한다고 타박한다. 도전 정신은 없고 공무원과 같은 철 밥그릇만 찾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니 실업 대책이라는 것이 젊은이들을 보고 눈 높이를 낮추라고 하는 것이다. 


좌파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지금의 청년들을 비난한다. 이들은 청년들이 소비주의에 물들어 자기만 생각하고 물질적인 욕망과 풍요에만 신경을 쓰지 도통 사회적 존재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조국과 민중, 민주주의와 인권과 같은 대의에 대해서 무관심하다고 한탄한다. 


  그래서 지금의 대학생들을 성장하지 못한 존재, 즉 어리광이나 부리는 '애쌔끼'라고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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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지금까지 내가 청년들에게 문제의식을 느꼈던 부분을 잘 정돈해 준듯 하다. 나도 엄기호 씨가 말하고 있는 우파든 좌파든 어른들이 생각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엄기호 씨는 어른들의 이런 문제의식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어른 입장에서 설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청년들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취했다. 그리고 오히려 <성장>이라는 문제에 대해 어른들이 생각하는 성장과 참된 성장의 개념을 구별함으로서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찬찬히 읽고 정리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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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삶 묵상 원고 샘플]


7. 5:1-9 고통을 보는 이중적 측면

 

찬송가: 289

 

여는 이야기

지금은 이스라엘이 적군에 의해 몰매를 맞지만, 훗날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타나게 될 것을 예언한다. 그 다스릴 자가 오게 되면 여호와의 능력과 놀라운 이름으로 그 백성들을 평안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예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앗시리아의 공격이 있을 것이고, 그 때에도 지도자를 세워 구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절별 해설

5:1 <<그러므로 굳센 성아, 너희 군인들을 모아라.>> 군인들을 모아 성을 굳세게 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적군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 만큼 적의 숫자가 많고 공격이 치열하기 때문에 군인들을 더 불러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적군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직접적으로 가해할 만큼 이스라엘을 위협할 것이다.

 

5:2 <<네게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지도자가 나를 위해 나올 것이다.>> 유다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장차 이스라엘을 다스릴 지도자가 나오게 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에게서 메시야 예언의 말씀으로 인식되었다.(2:6) 그리고 이 예언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다.

 

5:3 <<진통중인 예루살렘>> 미가는 당시의 이스라엘의 상황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지도자>를 출생시키기 위해서 진통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한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은 상당한 고통 가운데 있다. 그러나 이 고통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다. 출산을 위한 진통과 같은 것이어서, 생명과 구원을 출산하기 위한 고통임을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5:4 <<그러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서서 ... 그 백성을 돌볼 것이다>> 진통의 때가 끝나고 이스라엘을 통해 출생한 그 지도자는 여호와의 능력으로 그의 백성들을 돌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백성들은 평안하게 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고, 예수님은 여호와의 능력을 이 땅에서 행하면서 그의 백성들을 돌보셨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의 백성들을 평안케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은혜를 베푸셨다.

 

5:5 <<앗시리아 군대>> 본 절에 언급하고 있는 <앗시리아 군대>를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앗시리아로 보지 않고, 이스라엘을 대적하며 위협하는 모든 이방 국가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앗시리아 >에 대항해서 효과적으로 그들을 물리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구절의 의미는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공격하는 모든 국가들>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일곱 명의 지도자와 여덟 명의 군왕>> 이들을 구체적인 어떤 왕으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것은 히브리 문학적 기법으로(30:15,18,21, 11:2) 여러 명의 지도자가 일어나서 앗시리아를 물리칠 것을 의미한다는 정도로 보아야 한다.

 

5:6 <<니므롯 땅을 정복할 것이다.>> 앗시리아로 대변되는 이방의 공격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 명의 왕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 그들로 니므롯 땅을 정복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니므롯이란 당시의 바빌론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앗시리아 일 수도 있는데,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세상의 모든 제국들을 상징한다고 보면 된다.

 

기도

주님, 유다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세상의 구원자를 보내셨듯이 우리의 작고 연약함 속에서 주의 구원이 움트게 하소서. 우리의 작고 연약함이 누군가의 위로와 격려가 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의해서 침략을 당하고 결국은 멸망을 당하는 역사적인 상황을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하고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우상숭배와 불순종하는 범죄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심판이라는 측면이다. 그래서 바빌론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도구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측면은 이스라엘이 당하는 고난이 장차 얻게 될 구원을 위한 진통과정이라는 것이다. 진통이 없이 생명의 탄생이 없듯이, 이스라엘이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이 없이는 새로운 생명과 구원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의 고난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은 우리의 잘못에 대한 징계일수도 있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위한 과정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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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다. 


2. 하늘을 펴시고,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1) 하나님께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하리라. 

  2) 그 날에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의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라. 그것을 드는 자는 크게 상할 것이다. 


  3) 천하만국이 예루살렘을 치려고 모이지만, 여호와가 그 날에 모든 말을 쳐서 놀라게 하고, 탄 자를 미치게 할 것이라.

  4) 유다의 우두머리들은 마음 속에 이르기를 예루살렘 주민이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는다 할 것임.

  5) 그 날에 유다 지도자들을 나무 가운데 화로 같게하고, 곡식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할 것이니, 좌우에 에워싼 모든 민족들을 불사를 것이다 

  6) 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할 것이다. 이는 다윗의 집의 영광과 예루살렘 주민의 영광이 유다보다 더하지 못하게하려 함이다. 

  7)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


  * 그 날에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유다의 편에 서고 주변 나라들은 취하게 하여 그들을 상하게 할 것임을 말씀하신다. 스가랴의 말씀이 요한계시록의 메시지와 많이 중첩된다고 여겨지는데, 그래서 요한계시록에는 스가랴의 이미지들이 많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3.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라. 

  1)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와 장자를 위해 통곡하듯 하리로다. 

  2)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라. 

  3)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한다.

   - 그 고통과 아픔이 개별적으로 모두에게 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그래서 각 지파와 사람들이 애통해 한다고 말하는 것인듯)



[묵상 한 모금]


1. 하나님으로부터 유다와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회복된 예루살렘으로 인해 주변 나라들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예언)은 요한계시록의 메시지와 일맥 상통한다. 스가랴 서는 회복(성전)이 지지부진하던 중에 이들을 독려하면서 주어진 말씀, 더 나아가 단순히 성전의 회복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온전히 회복될 것을 재차 확인시켜주는 내용의 말씀이었다. 반면 요한계시록은 고난과 환난 속에 있는 성도들에게 스가랴서를 포함한 묵시의 말씀들을 통해서 종말론적인 회복과 승리의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2. 그 날에는 그 중에 약한 자가 그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사자 같을 것이라.(8절) 완전히 새로워지고 강해지는 예루살렘 백성들의 변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로의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을 말한다.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부활체의 약속(고전 15장)이 생각나는 말씀이다. 


3.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을 애통(11절)은 매우 크고 절절한 애통인 것은 분명하다.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한다.(10절) 자신이 찌를 자를 보고 애통하게 된다는 말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이 죽인 사건이 연상된다. 유대인들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심으로(성령을 부어주심) 그들이 자신들이 행한 악에 대해서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신약적 맥락에서는 큰 문제가 없지만, 스가랴와 신약 사이에 이런 신학적 가교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장담하기는 어렵다. 다만, 스가랴서의 표현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신약의 내용(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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