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plash-logoHernan Sanchez

Photo by Hernan Sanchez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

[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32]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33]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의 제자파송(막 6:7-13)이후 다시 모인 제자들의 보고회가 있었던것 같다. 고생하고 온 제자들을 위해서 한 적한 곳에서 쉴수 있도록 배려했다. 왜냐하면 여전히 예수님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식사할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가려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도보로 예수님을 따라올 정도록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다. 그 모습을 본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다시 가르치시게 되었다. 

2. 날이 저물고 사람들이 모인 곳은 마을과 떨어져있어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각자 마을과 촌에 가서 식사를 해결하도록 할까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이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요구셨다. 그들에게 줄 떡을 사려면 이백 데나리온의 떡도 부족할 판이었다. 

3. 예수님은 너희에게 떡이 몇 개가 있는 지 물었고 알아보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모여 앉게 했고 그들은 100명씩, 50명씩 앉았다.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눠주게 하셨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다. 떡을 먹은 남자는 5000명이었다. 


[질문하기]

1. 예수님은 왜 한적한 곳으로 가려하셨는가? 

  제자들이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셨기 때문이다. 이제 막 전도여행을 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안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반면 사람들은 계속 예수를 찾아왔기 때문에 식사할 겨를도 없을 정도로 상황은 분주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가려하셨다. 

2. 그러나 왜 한적한 곳에서 쉬지 못하셨는가? 

  무리를 피해 배로 멀리 떠나감에도 사람들은 도보로라도 예수를 따라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보자 예수님은 '목자없는 양 같음을 느끼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다시 가르치시기 시작했다.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쉴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3. 오병이어라는 기적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1)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주님은 무리가 촌과 마을로 가서 먹도록 하지도 않으셨다.(현실적인 책임회피, 내겐 능력이 없다) 제자들에게는 충분한 능력이 없음에도 이들의 필요를 회피해서는 안되고 어떻게 해서든 네가 책임져야 한다. 오병이어 밖에 없어도, 무리는 남자만 5천명이어도 회피하지 말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 제자의 사명을 일깨우는 말씀이다. 

  2) 말도 안되는 상황이지만 무리의 필요에 대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작은 능력이지만 책임지려고 하는 태도가 주님 안에서 시도될때 하나님은 기적을 배푸시는 분이시다. 


[묵상하기]

예수님은 제자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신다. 피곤함을 아시고 쉼이 필요함을 아셨다. 그리고 실제로 배를 타고 무리를 피해 리트릿을 떠나고자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무리들의 간절한 필요가 더 크게 보였다. 결국 리트릿은 무산되고 제자들은 수천명의 무리를 돌봐야 했다. 

그들은 육체적인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오병이어 밖에 없는 물질적인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역은 진행해야했다. 그렇게 기적은 일어났다. 한계를 넘어서 말이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unsplash-logoLeon Liu

Photo by Leon Liu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

21절.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22절.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23절.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24절.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25절.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26절.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27절.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28절.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29절.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성경내용 정리]

1.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다. 그 기회라는 것은 헤로디아에게 좋은 날임을 알 수 있다. 헤롯이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 귀신들을 불러 잔치를 열었다.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서 춤을 추었고 그것은 헤롯과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었다. 기분이 좋아진 헤롯은 헤로디아의 딸에게 원하는 것을 구하라고 이야기했고, 맹세하기를 구하는 것을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했다. 

2. 헤로디아의 딸은 어머니를 찾아가 무엇을 구할까를 묻고, 어머니는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도록 지시한다. 헤로디아의 딸은 왕에게 급히가서 세례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한다. 왕은 당황하고 근심했으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함께 있는 사람들로 인해 거절하지 못하고 요한의 목을 베어 그 소녀에게 주고 만다. 그 소녀는 헤로디아에게 요한의 목을 가져다 준다. 

3. 요한의 제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지냈다. 


[질문하기]

1. 헤롯은 왜 요한을 죽일 수 밖에 없었는가? 

  1) 헤로디아의 딸에게, 공개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약속했다. 

  2) 헤로디아의 딸이 요한의 목숨을 달라고 할줄은 생각도 못했다. 

  3) 그럼에도 왕으로서 공개적인 맹세를 한 것을 취소할 수 없었다.(취소한다면 권위가 서지도 않을 뿐더러, 헤롯이 요한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4) 헤로디아는 호시탐탐 요한을 죽이고자 했고, 결국 헤로디아의 계략에 헤롯이 넘어가고 만 것이다. 

2.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1) 세례 요한의 죽음이 생각지 못한 순간에, 허무하게 벌어지고 말았다.(한 소녀를 계기로)

  2) 예수님의 죽으심 사건과 유사하다. (헤롯-빌라도, 무죄한 죽음 등)

  3) 아합과 이세벨로 인해 많은 선지자가 죽었던 시대처럼, 세례 요한도 헤롯과 헤로디아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되고 결국 예수에게까지 이 억울한 죽음이 이어질 것에 대한 예고편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묵상하기]

헤롯과 헤로디아를 보고 있으면 아합과 이세벨의 조합이 떠오른다. 아합과 이세벨 시대에 많은 선지자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것처럼, 요한도 헤롯과 헤로디아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생각지 못한 순간에 어처구니 없이 죽고만다. 주님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의 죽음이 그렇게 아무 저항없이 신속하게 일어나리라고 누가 생각을 했겠는가?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제자들은 허탈한 마음에 엠마오로 가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의인의 억울한 허무한 죽음처럼 보인 사건을 통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다. (마가복음에서는 이 사건 이후 주님께서 제자를 둘씩 파송하신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unsplash-logoMohammad Metri

Photo by Mohammad Metri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

14절.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15절.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하되

16절. 헤룻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17절.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18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19절.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20절.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에 대한 소문이 크게 일어나게 되자 뜻밖의 사람이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바로 헤롯 왕이었다. 

2. 헤롯 왕은 예수가 자신이 죽인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생각했다. 예수에게서 세례 요한과 같은 선지자의 능력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예수를 향해서 엘리야라고도 했고, 옛 선지자 중 하나와 같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자 헤롯 왕은 ‘자신이 목 벤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생각했다. 

3. 과거에 헤롯과 세례 요한 사이에 이런 일이있었다. 헤롯이 자기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드렸다. 그리고 헤로디아를 위해서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이 헤롯이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을 옳지 않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4. 헤로디아는 요한을 원수로 생각해 죽이고 싶었지만, 헤롯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했기에 요한을 옥에 가두기는 했지만 죽이려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헤롯은 요한의 말을 들을 때 번민하긴 하면서도 그의 말을 옳게 여겼다. 


[질문하기]

1. 왜 헤롯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세례 요한에게 한 잘못을 생각하게 되었는가? 

  1) 예수가 엘리야나 선지자와 같은 사람이라는 소문이 있었고 세례 요한도 선지자였기에. 헤롯은 세례 요한도 평범하지 않은 선지자라고 생각했고, 그는 의로운 중에 죽임을 당했기에 억울함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 헤롯은 세례 요한은 죽을 사람이 아닌데 자신의 손으로 세례 요한을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지속되었고, 예수의 이야기를 듣자 세례 요한이 부활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2. 헤롯은 왜 세례 요한을 죽일 수 밖에 없었는가? 

  1) 헤롯은 세례 요한이 늘 옳고 바른 지적을 하기 때문에 마음에 불편함이 있었지만, 요한의 지적을 무시하지 않고 달갑게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요한은 헤롯이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아들인 것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했다. 왜냐하면 헤로디아는 이미 헤롯의 동생인 빌립의 아내였기 때문이었다. 부도덕적 행동임을 지적한 것이다. 

  2) 헤롯 자신은 요한의 지적을 아프지만 달게 받고 넘어가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로 맞은 헤로디아는 그렇지 못했다. 요한의 지적을 불편해했고 불쾌해했다. 그래서 헤롯은 헤로디아를 위해서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 그렇게 해서 헤로디아의 마음을 다독이려 했을 것이다. 

  3)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헤로디아의 모략을 통해서 헤롯이 결국 요한을 죽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묵상하기]

1. 헤롯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정당하거나 옳은 사람은 아니었다. 동생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일만큼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 폭군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에게 불편한 말을 하는 세례 요한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세례 요한은 거룩한 사람이고 의로운 사람인 것을 헤롯은 알았다. 그의 말을 무시하거나, 그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 정도는 직감적으로 알았던 사람이다. 그 선을 넘지 않았던 헤롯이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거 놓은 선을 넘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자신이 한 말 때문이고, 자신이 선택한 여인 헤로디아의 계략에 의해서였다. 그는 세례 요한을 죽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를 지키기를 원했다. 나는 헤로디아의 꾀에 빠진 것이다라고 핑계를 댈지 모르겠다. 그러나 헤로디아를 자신의 곁으로 부른 자도 헤롯이고, 헤로디아의 딸에게 무엇이든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 것도 그 자신이다. 

힘과 권력이 있으면서도 분별력이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그릇된 선택이 자신의 분별력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맞게 된다. 

2. 헤로디아는 어떤 사람인가? 

헤로디아는 권력을 지향하는 여인으로 보인다. 헤롯의 아내로 옮겨가면서 어떤 불편함도 없어 보이고, 오히려 그것이 그릇된 행동이었다는 것을 말한 세례 요한을 향해사 불편한 마음을 가졌다. 그 불편함의 끊임없는 요구로 헤롯도 어쩔 수 없이 요한을 잡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헤로디아는 결국 장애물로 여겨지는 요한을 죽이는 자리로까지 간다. 헤로디아가 얼마자 권력지향적인지,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지를 잘 보여준다. 

왕은 헤롯이지만 헤롯으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만드는 자가 있으니 그는 헤로디아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헤로디아는 더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unsplash-logorawpixel

Photo by rawpixel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

7절.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8절.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9절.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10절.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11절.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12절.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절.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둘씩 파송하셨다.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다. 그리고 여행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1) 여행을 위해서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2) 여행을 위한 신만 신고 심지어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3)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4) 혹 너희를 영접하는 곳이 없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면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내가 와서 전하고자 했으나 너희가 환대하지 않았고 거절했다. 그래서 나는 여길 떠난다)

2. 제자들은 예수님이 주신 지침을 따랐으며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했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쳐주었다. 


[질문하기]

1.본문의 이야기를 통해서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1) 예수님을 통해서 권세를 위임받은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시던 사역을 하였고 제자들을 통해서도 그 일이 일어났다.

   (1) 이제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제자들에게도 위임되었고, 제자들의 입을 통해서도 제자들의 위임받은 권세를 통해서 세상 가운데 확장될 수 있다. 

   (2) 실제로 제자들은 그 권세를 위임받아 갔고, 주님과 동일한 역사가 일어났다.(귀신이 쫓겨가고, 병자들이 나았다) 


  2)많은 귀신이 쫓겨가고 병든자가 낫게 되는 구체적인 묘사보다는, 제자들이 어떤 마인드로 전도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원칙을 가르쳐주는 것이라 하겠다. 

   (1) 전도의 일을 위해서 이곳 저곳을 다닐 때 필수적이고 필요한 도구(지팡이, 신발 등)만 있으면 나아가고

   (2) 전도의 일을 하면서 환대해 주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이 제공해주는 것을 먹고 머물며 전도하라. 만약 아무도 환대하지않고 듣지 않는다면 그 지역에서 발 아래 먼지를 털고 나오라. 


[묵상하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가져오시고, 이 땅에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이제 제자들의 입을 통해서도 전파되며, 제자들의 위임받은 권세를 통해서도 이 땅에서 실현된다. 예수라는 독특한 분의 능력만이 아니다. 이제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의 첫 백성이 된 사람들을 통해서 동일한 성취가 일어난다. 예수님이 직접 가지 않았지만 그 곳까지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났고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였다. 예수님께 위임받은 열 두 제자는 예수님께 위임받은 이 땅의 교회로 봐도 될 것이다. 이제 예수님이 직접 가시는 대신 교회가 이 땅의 구석 구석 찾아가고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요청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명확하게 한 것이다. 

이 사명을 위임받은 자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생계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다. 최소한의 것만으로 전도여행을 다니며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로 공급받았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곳에서는 환대를, 어떤 곳에서는 배척을 받겠지만 전도자는 환대받는 곳에 안주해서도 안되고 배척받았다고 낙심해서도 안된다. 물흐르듯 흘러가되, 거친 돌이 있다면 돌아가면 될 일이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unsplash-logoTran Mau Tri Tam

Photo by Tran Mau Tri Tam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

1절.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절.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절.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절.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절.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성경본문 정리]

1. 예수님이 이제 고향으로 돌아오셨고, 고향에서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2.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랐다. 예수님의 지혜의 말씀이나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권능에 사람들은 놀랐다. 

3. 그러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미 어릴적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불리한 조건이 되었다.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 목수였고, 지금도 한 마을에서 살고 있는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와 형제가 되는 사람이다. 지금 예수의 누이가 우리와 함께 이 현장에 함께 있지 않은가? 그로해서 예수님을 모습 그대로 받지 못하고 오히려 배척하게 되었다. 

4. 예수님도 당시의 선지자들이 겪는 한계를 경험하셨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에서는 오히려 존경받지 못하듯 예수님도 그런 평가를 받으셨다. 

5. 그래서 고향에서 예수님은 아무 권능도 행하지 못하시고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셨다. 오히려 그들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시면서.


[질문하기]

1. 예수님이 고향에서의 사역이 오히려 효과가 별로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1) 지금까지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과 권능에 있어서 성과가 없었다는 내용은 없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은 모든 사역에 있어서 성과가 있었고 열매도 있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능과 역사에 놀라는 것으로 기록된다. 

  2) 그러나 오늘 고향에서의 사역은 전혀 반대다. 예수님께서 고향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지도 못했고 오히려 배척을 받았다.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5절)

  3) 왜 고향에서만 예수님은 권능을 발휘하실 수 없으셨는가?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막 6:6) 왜 믿지 않았는가? 예수님의 인간적인 요소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예수가 누구의 아들이며, 무슨 일을 했었는지 눈의 보고 직접 들었다. 그 형제와 누이들이 지금도 함께 있다. 예수가 인간이면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오히려 전혀 몰랐던 사람들에 비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묵상하기]

예수님을 알고 경험한 사람으로 따진다면 당시 예수님의 형제와 누이들보다 많은 사람들은 없다. 또한 그 동네에서 지난 30년간 마리아의 아들 목수로서의 예수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사람들보다 예수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예수의 형제와 동네에서 오랫동안 봐왔던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를 모를 수 있고, 심지어 모든 사람들에 예수를 찾아오는 상황 속에서 오히려 예수를 배척한다는 아이러니를 본다. 모든 사람 모든 장소에서 기적을 배풀었던 예수님께서 오히려 당신의 고향에서는 전혀 맥을 못추시더라는 것이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특이점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를 누구로 아느냐를 질문하는듯 하다. 예수를 알되 인간 예수로만 알고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서 예수님은 배척을 받을 것이다.(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시니까)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서 예수님은 그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마가는 역으로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하나님으로 알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그 분의 권능과 역사에 우리 안에서 일어나게 된다.  예수를 인간으로만 알고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예수가 친근하게 다가올 수는 있지만,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unsplash-logoBen White

Photo by Ben White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

30절.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절.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절.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35절.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절.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절.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절.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절.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절.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절.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절.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절.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도중 자신의 능력이 나간 것을 아셨다. 그리고 무리 가운데 돌이켜 누가 내 옷에 손을 댓는지 물으신다. 이유를 모르는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 미는 상황에서 누가 손을 댓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한다. 

2. 예수님은 무리를 둘러보셨고, 예수님의 옷 자락에 손을 대서 몸이 나았다는 것을 알았던 혈루병 걸렸던 여인은 자신이 에수님의 허락도 없이 몰래 그렇게 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꼈고, 그 모든 사실을 예수님 앞에 실토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은 그 여인을 향해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셨다. 이 여인이 병에서 놓여  건강할 것임을 주님의 입을 통해서 확인받게 되었다. 

3. 그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회당장의 딸이 죽었음을 알린다. 딸이 죽은 상황에서 예수님을 더 이상 번거롭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은 오히려 절망한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으라’고 독려하신다. 예수님은 긴급한 상황임을 인식하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회당장의 집으로 가신다. 

4. 회당장의 집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딸의 죽음으로 인해 통곡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오히려 비웃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아이의 부모와 세 명의 제자만 데리고 딸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셔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시자 소녀가 곧 일어나 걸었다. 소녀의 나이는 12살이었다. 

5. 아이가 살아나자 사람들은 크게 놀라고 놀랐다. 예수님은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심으로 이야기가 마친다. 


[질문하기]

1. 예수님은 왜 급한 상황 속에서 굳이 멈추어 혈루증 걸린 여인의 공개적으로 사람들에게 알게 하셨을까? 

  1) 단순히 혈류병 걸린 여인이 예수님의 옷 자락에 손을 대어 치유되었다는 것만을 알리고자 한 것은 아니다. 

  2) 그 이후 예수님의 행동,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혈루병 걸린 여인이 회복되었고 단순히 혈루병을 고쳤을 뿐 아니라 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신 것과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병에서 놓여 건강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무리들에게 알리고자 한 것이다. 

  -> 예수님의 옷 자락에 손만 대어도 낫겠다는 믿음(세상의 모든 의사들은 날 고치지 못했지만)을 가지고 예수님을 의지할 때 예수님은 기꺼이 그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옷 자락만 손을 댄다는 측면에서 작은 믿음이라고 할 수 도 있고, 세상 의술은 실패했기 때문에 유일한 소망이라는 측면에서 절박함으로 예수님을 의지했다는 측면에서는 큰 미음이라고 볼 수 있다.)


2.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쳐주시기 위한 이야기가 다른 병 치유 사건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1) 회당장 야이로의 딸 사건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것을 넘어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예수 안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이전의 치유 사건과 다른다. 

  2) 사람들은 회당장의 딸이 죽자 더 이상 예수님을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예수님께서 그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비웃었다. 사람들에게 기적의 한계는 사망 전까지다. 사망 이후에는 누가 오더라도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생명이 위독한 순간에는 예수님을 의지했지만, 사망한 이후에는 더 이상 의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수님도 죽음의 영역만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그래서 예수님은 더욱 긴급하고 신속하게 그 소녀를 살려내셨다. 예수님은 죽음까지도 극복해 내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 구체적인 첫 사건이다. 


[묵상하기]

1. 예수님께서 적극적으로 찾아가 물어보시고 낫게 해 주시는 분이면서 동시에 무심히 지나가시는 상황(적극적으로 미리 찾아와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는 상황)에서 ‘믿음’을 가진자가 에수님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 분의 옷 자락에 손을 대면 낫겠다는 생각으로 예수님을 찾아와도 그 고민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시다. 문제를 가진 인생이 먼저 적극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예수를 찾아 오는 것을 통해서 구원이 임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나무라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고 그 믿음대로 병이 낫게 하셨고 구원을 말씀하셨다. 

2. 사망은 인류가 가지는 한계일 뿐, 하나님의 한계는 아니다. 하나님의 한계가 있을 수 없듯이 예수님 또한 마찬가지다.  인생이 먼저 한계를 긋고 시도하지 않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서는 죽음 조차도 자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길 바란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unsplash-logoMarkus Spiske

Photo by Markus Spiske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

21절.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절.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절.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절.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25절. 열두 해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절.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절.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절.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은 배를 타고 다시 자리를 옮기셨다. 여전히 큰 무리가 예수님에게 모여들었다. 

2. 그 무리 중에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렸다. 그리고 간절히 구했다. 자신의 어린 딸이 죽게 되었으니 와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살게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3. 예수님은 그 회당장의 요청에 응해 함께 가셨고 큰 무리도 함께 따라갔다.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는 중에 또 하나의 사건이 이어진다. 

4.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온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예수의 옷에 손을 댄 것이다. 이 여인은 예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병으로부터 낫게됨)을 받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여인은 예수의 옷에만 손을 댄 순간 헐루 근원이 곧 마르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질문내용]

1. 본문도 크게는 병을 치유하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다른 사건과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 

  1)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직접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병 때문만은 아니다. 이 정도의 가정이라면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의 가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능력으로는 고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를 찾아온 것이 분명하다. 열두 해 혈루병을 앓고 있던 여인도 마찬가지다. 많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고, 가지고 있는 재물을 다 허비할 정도로 의술로 고침을 받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의술로는 아무 효험도 보지 못했다. 

  2) 회당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 직접 예수님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도 이전과 다른 장면이라 볼 수 있겠다. 


2. 마가는 왜 두 사건을 섞어서 기술하고 있는가? 한 가지 사건씩 따로 기술하지 않고? 

  1) 실제로 일어난 상황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회당장의 요청으로 가던 중 큰 무리가 쫓았고 그 무리 중에 혈루병 여인이 고침을 받게 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 순서대로 기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이 두 사건이 상호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굳이 함께 기술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일단 사건의 전말을 다 살핀 다음에야 판단할 수 있는 것이지만 혹 두 사건이 서로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살펴보는 것은 성경을 좀더 자세히, 면밀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묵상내용]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주로 사회적으로 낮은 층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병이 들어도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쉽게 낫는 병이 아니면 고통당했을 것이고 장기화 되었을 것이고 병은 더 심각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병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을 의지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의사를 찾았을 것이고 어느 정도 그 혜택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의 도움으로도 혜결할 수 없는 병이 있고 응급상황이 있는 것이다. 

회당장은그런 상황 속에서 예수께 달려왔고, 12년이나 혈루병에 걸린 여인은 인간적인 의술의 한계에 부딪혀서 예수께 나왔다. 부유하고 넉넉하다고 해서 예수님이 멀리하지 않으셨다. 오랫동안 의사를 의존했다고 해서 혈루병 걸린 여인의 간절함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모든 자에게 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있으며 그들의 절박함에 함께 절박해 하심을 보게 된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unsplash-logoWilliam Daigneault

Photo by William Daigneault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

14절.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절.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절.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17절.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절.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절.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0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성경내용 정리]

1.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서 돼지 떼들이 바다에 몰사하게 되자 돼지를 치던 자들이 읍내와 여러 마을에 다니면서 자기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을 알렸고, 많은 사람들은 그 일을 보려고 왔다. 

2. 그들이 와서 본 것은 그 귀신 들렸던 자(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이 사람은 그 마을에서 귀신들려 통제할 수 없는 사람으로 유명한 사람이었기에 그들은 이 귀신들린 자가 얌전하게 앉아있었다는 것에 놀랐을 것이다. 

3. 그 현장에서 귀신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 떼에게 벌어졌던 일을 본 사람들이 찾아온 무리에게 그 사실을 알리자 그들의 반응은 '그 지방에서 떠나달라는 것'이었다. 

4.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다시 배에 올라 떠나고자 하자, 귀신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허락하지 아니하셨다. 오히려 네게 어떤 큰 일이 일어났었는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을 네 가족들에게 알리라고 하셨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신에게 있었던 큰 일을 데가볼리에 전파하였고, 듣는 모든 사람들은 이 일을 놀랍게 여겼다. 


[질문하기]

1. 예수께서 귀신들린 자의 군대 귀신을 내쫓아 준 것을 보고 왜 마을 사람들은 예수를 귀신을 제압하는 권세자로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했을까?(17절)

  1) 너무나 엄청난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이들은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 생겼을 수 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신'적 능력이 있음을 깨닫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2) 돼지에게 벌어진 일을 들었다. 수 천 마리의 돼지 떼가 예수님으로 인해 일순간 몰살되었다. 그 피해의 크기에 그들은 두려웠던 것일 수도 있겠다. 어떤 큰 힘을 가진 분이 내게 유익을 줄지, 아니면 해로운 대상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없었던 상태'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떠나 달라'고 요청했을지 모르겠다. 


2. 왜 예수님은 함께 있겠다는 그 사람에게 따라오라고 하지 않고, 이 일을 네 가족들에게 알리라고 하셨을까?(이전에 보면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경고하시기도 하셨는데 그것과는 상반된 조처를 하심)

  1) 집으로 돌아가라 하셨다. 귀신들려 고통 받았던 사람은 그 자신과 그의 가족들이었을 것이다.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그 귀신들린 자를 집에 둘수 없었고, 마을에 머물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족이었기 때문에 마음 아팠을 것이다. 주님은 제일 먼저 그 귀신들린자와 귀신들린 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먼저 이 기쁜 소식(귀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을 알리도록 하셨다. 

  2) 그러나 귀신으로부터 자유해진 사람이 가족들에게만 그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인근 사람들에게 그 소식은 전해졌고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이 일을 놀랍게 여기게 되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적극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 예수의 제자가 되어 예수를 따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기적을 경험한 사람이 그 놀라운 일을 가족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간증이라고 볼 수 있는) 또한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묵상하기]

예수님께서 행한 놀라운 일을 보면서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는 것을 본다. 

우선 그들은 예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두려어했다. 예수님이 가지신 그 권능과 힘은 나에게 도움이 될지 나에게 해가 될지 알 수 없었다. 내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힘이라면 그것은 적극적으로 내곁에 두어야 하지만, 내가 예측할 수 없는 힘이 내 주변에 있을때 그것은 오히려 두려움과 불안의 요소가 되고 만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힘은 없는 것이 났다고 볼수 있다. 그들은 또 많은 돼지 떼를 잃어버릴수도 있는 것이다. '이 지방에서 떠나소서' 그러나 그 힘이 나를 귀신에게서 해방시켜준 힘이고, 내 가족을 고통 속에서 자유하게 해준 힘이라는 것이 분명하다면(귀신들린 자와 그 가족들이 경험했듯이) 예수님께 함께 있기를 원하게 된다. 

귀신으로 인해 고통당했던 그 사람과 그 사람의 가족의 입장에서 예수님은 절대적으로 구원자다. 그러나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있던 자에게는 예수님은 자신의 도움이 될지 해로움이 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능력을 가진자에 불과하다.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unsplash-logoChristopher Carson

Photo by Christopher Carson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10)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에게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말씀하시자 그 귀신들린자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큰 소리로 말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바라건데 나를 괴롭게 하지 마소서’

2. 예수님은 그 귀신을 향해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고 그 귀신들린 자는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다’고 말했고 더불어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길 간구’했다. 

3. 마침 거기에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 있는 것을 보고 ‘간구하되’ 자신들을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허락하셨고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갔다. 그 이후 이천마리 되는 돼지 떼가 바다를 향해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게 되었다. 


[질문하기]

1. 귀신을 쫓아내시는 다른 이야기와 좀 다른데, 어떤 점이 두드러지는가? 

  1) 이전에 귀신을 쫓아내는 사건의 경우, 예수님께서 귀신의 세력을 제압하시고, 귀신으로 인해 고통 당했던 사람에게 자유를 허럭하셨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이 사건도 큰 맥락에서는 귀신을 제압하신 사건이란 측면에서는 유사하다.

  2)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에게 이름을 물으셨고, 그 귀신은 자신의 이름(군대=우리가 많다)과 규모를 알렸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향해서는 ‘간구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7절. 원하건대 / 10절. 간구하더니 / 12절. 간구하여 이르되) 심지어 예수님은 귀신의 간구에 대해서도 일부 들어주시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돼지에게 들여보내 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해서 허락하셨다.)

2. 이런 독특한 점을 통해서 강조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1)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의 인격성이 귀신들에게도 드러나고 있다. 단순히 힘으로 제압하는 모습으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귀신들의 이름을 묻고 그들의 간구와 원함에 대해서 일부 반영해주는 인격성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강한 힘과 더불어 여유있는 인격성을 보여주신다. 

  2) 예수님의 이런 인격성이 귀신을 옹호하시거나 심판을 거두시는 것으로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결국은 귀신들은 돼지 떼에 들어가 바다로 빠져 몰사한다. 돼지들의 죽음이 있었지만, 그 귀신들렸던 사람이 귀신으로부터 해방되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셨다는 것은 분명하다. 


[묵상하기]

예수님은 힘과 권세로만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처음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하나님 되심의 권세를 명확하게 보여주셨지만, 그 이후 하나님의 인격성을 드러내시는 모습을 본다. 심지어 귀신들을 쫓아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으셨다. 그의 이름을 물으셨고, 그들의 원하는 요구에 대해서 일부 허락하시기까지 하셨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여유라고나 할까? 하나님의 인격성으로 불러야 할까? 왜 돼지 떼에 들어갔는가는 그리 중요한 이슈는 아닌거 같다. 월등한 힘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여유있는 관심과 인격적 관용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unsplash-logoMadison Grooms

Photo by Madison Grooms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

1절.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절.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절.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절.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가셨다. 배에서 나오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만났다. 

2. 그 귀신들린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여러차례 쇠사슬로도 매고 고랑으로 매였음에도 불구하고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려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었다. 

3. 그 귀신들린 사람은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 늘 소리 지르고 돌로 자기 몸을 해치고 있었다. 그러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질문하기]

1. 예수님은 이전에도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셨다. (막 1:21-28, 막3:11-12) 이 사건도 같은 귀신들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전 이야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차이가 보여주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1) 이전 이야기는 귀신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봤다는 것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다. 

  2)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만난 귀신들린 자는 그 귀신들린 자의 형편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1) 무덤 사이에 거처한다.

(2)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다.(고랑과 쇠사슬로도 제어할 수 없었다)

(3)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해하고 있었다.


3)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만나 귀신들린 자는 귀신들린 것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의 형편이 얼마나 어렵게 되었나를 잘 보여준다.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무덤 사이에 거쳐가 있었다.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강제적인 수단(고랑과 쇠사슬)을 동원했지만 그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그는 밤낮 쉬지 못하고 소리 지리고 자신의 몸을 돌로 해하는 상태였다. 


[묵상하기]

1. 오늘 본문은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만난 귀신들린 자의 이야기 중 일부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귀신들린 자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상태였다. 주변 사람들의 통제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지낼 수 없는 상태였다.(그래서 무덤 사이에 거쳐를 두고 짐승처럼 지내고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몸도 돌로 해하고 있었다. 밤낮 소리지르며 제대로된 안식을 취할 수 없는 상태였다. 

2. 그는 사람이었으나 사람으로 살 수 없는 상태였다. 타인의 삶을 해할 뿐 아니라, 자신의 몸도 해하는 상황이었다. 밤낮 소리지르면서 고통스러워했으며 안식을 누릴 수 없었다. 자기 스스로도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음에도(귀신들린 것이기에) 누구도 이 고통에서 자신을 구해줄 수 없었고, 구하기를 포기한 상태였다. 그는 무덤 사이에 거하면서 죽음만이 친구요 죽음만이 안식일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3. 그랬던 그 사람의 인생 속에서 예수님이 등장했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런 설레임으로 이 이야기의 본론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