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교회 한가족 예배/ 2014.1.19


본문: 마태복음 13:24-43

제목: 천국을 오해하게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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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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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이이 임의로 복사하여 무단으로 사용하시면 안됩니다.]


3. 2:1-9 제사장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

 

찬송가:

 

여는 이야기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의 잘못에 대해서 질책하시고 그로 인해 그들을 부끄럽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은 바른 길에서 벗어났고, 많은 사람들로 죄를 짓게 함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루시는 이유는 이들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어가게 하기 위함임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절별 해설

1:2 <<너희가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아니함으로>> 말라기서에서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섬기는 제사장임에도 이런 태도를 취한다는 것을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하나님께 가지는 마음이 어떠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3 <<너희가 절기때 바친 제물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르겠다>> 절기 때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가져온 제물에게서 나오는 똥을 제사장들의 얼굴에 바르겠다는 것은 제사장으로 하여금 큰 수치를 드러내도록 하시겠다는 표현이다. 더불어 제물의 똥을 버리듯 제사장들을 버리시겠다는 심판의 말씀이다.

 

1:4 <<그것은 내가 레위와 맺은 언약을 이어가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 제사장들을 부끄럽게 하고 심판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레위와 맺은 언약을 이어가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지금 제사장들을 심판하심으로 언약을 파기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이어가기 위해 제사장들을 돌이키시게 하기 위한 징계라는 것을 알리시는 것이다.

 

1:8 <<너희는 레위 지파와 맺은 언약을 어겼다>> 하나님이 레위와 언약을 맺은 것은 그들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었다.(5) 바른 가르침을 베풀고 많은 사람을 죄에서 떠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6) 그러나 제사장들은 이 언약을 어기고 바른 길을 떠났으며 그릇되게 가르쳐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게 하였다. 레위 지파와 맺은 언약을 어긴 것이다.

 

1:9 <<재판을 할 때에 공평하지 않게 한쪽 편만 들었다>> 제사장은 백성들을 재판하는 일도 맡아서 해야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공평하게 해야 할 재판에 오히려 한 쪽 편만 들어주어 재판의 공정성을 왜곡했던 것이다. 이런 모든 현상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제사장들의 불경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이들은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기도

하나님, 누구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편에 서야 할 제사장이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할 수 있는 자임을 발견합니다. 늘 깨어 자신을 돌아보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본문을 통해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첫째는 가장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섬기고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제사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마치 직업처럼 자신의 일을 행하려 할 때 도리어 얼마나 큰 죄를 짓게 되는지를 본문은 지적하고 있다. 자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죄 짓는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목회자 혹은 그에 준하는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들은 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둘째는 이렇게 불경건한 삶으로 하나님의 징계에 이를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그렇게 하신 것은 언약을 파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어가게 하시기 위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4) 하나님의 매는 부모가 자녀를 교정하기 위한 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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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8-14 최소가 아니라 최선을 드리는 삶


찬송가:


여는 이야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물들이 흠이 있는 것들로 받으실 수 없음을 지적하신다. 이와 같은 제사를 지속적으로 드리려 한다면 아예 성전 문을 닫아 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드리는 것에서부터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이들을 저주하신다.


절별 해설

1:8 <<그런 것을 너희 총독에게 바쳐 보아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신다. 총독에게도 동물을 바칠 때도, 좋은 것을 선별하여 드리고 그렇지 않은 것을 총독에게 주었다가 오히려 큰 봉변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의도적으로 눈멀고 다리를 저는 제물을 드리는 백성들에게 따지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1:10 <<너희 가운데 누가 성전 문을 닫아서>> 이 표현을 통해서 말라기서의 배경을 성전이 있던 시대, 즉 스룹바벨의 성전이 완성된 시대로 본다. 이스라엘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드리지만, 이스라엘이 드리는 제사는 불경한 제사로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행위에 불과했다. 하나님은 이런 제사라면 성전 문을 닫아서라도 받기 원하지 않음을 말씀하고 있다.


1:11 <<곳곳마다 사람들이 향과 깨끗한 제물을 내게 바칠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는 존중히 여김과 경외함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대우를 받으실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하나님은 모든 민족들 가운데 영광을 받으시고, 이방인들이 오히려 하나님에게 깨끗한 제물을 바침으로서 하나님이 모든 민족 위에 얼마나 크신 분임이 드러나게 된다.


1:13 <<이 일은 귀찮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본적인 마음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말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요구를 귀찮게 여겼다. 괜한 트집으로 불편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받으실 수 없음은 너무 당연하다.


1:14 <<흠 있는 것을 바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지 않고 우습게 여기어 부정한 제물을 드리는 백성들을 향해서 더 이상 묵과하시지 않으신다. 이들에게 저주를 선포하신다. 하나님을 경홀한 마음으로 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위엄을 드러내시고자 하신다.



기도

하나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인해 이방인 가운데 모독을 당하심을 봅니다. 우리의 불경건함을 용서하시고,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백성이 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한 제사 제도를 통해 죄를 극복하고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방편을 모르고 이와 같은 제도를 불편해 했고 번거롭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마음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제사도 드리고 요구하시는 종교적 의식을 행하지만,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드리지 않고, <최소한의 것>을 드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인간 통치자에게는 좋지 않은 것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오히려 하나님께는 아무것이나 드리는 불경건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께 최선의 것을 드리는가? 아니면 최소한의 것을 드리는가? 늘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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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 1:1-7 형식은 내용 만큼이나 중요하다.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질문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 질문과 답변은 감정적으로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했다고 말하나, 이들은 어떻게 사랑했냐고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너희들은 왜 나를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이스라엘은 우리가 언제 주를 멸시했습니까? 답하기 때문이다. 감정적 균열이 있는 대화가 오고가는 내용이다. 

 

절별 해설

1:1 <<이스라엘에게 하신 경고의 말씀입니다>> 말라기서가 말하고자는 성격을 분명하게 해주는 표현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지난 잘못에 대한 경고요, 앞으로 고치지 않을 경우에 임할 재앙을 <경고>하시기 위한 말씀이다. 

 

1:2 <<여호와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가지고 있는 감정이 묻어있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시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했다는 것을 현실 속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과는 멀어진 자신의 형편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감정적으로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1:3 <<에서는 미워했다>>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셨다는 것을 강조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는 것의 한 증거로 사용하시려 한다. 에서의 산악지방을 폐허로 만들것이고, 그들이 다시 일으키려고 해도 헐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에돔에 대해서 진노하신다는 말씀을 주셨음에도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마음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1:6 <<우리가 언제 주를 업신여겼습니까?>> 이 말은 하나님께서 너희의 아버지임에도, 주인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로 존경받지 못했다는 하나님의 한탄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례한 답변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은 하나님 앞에 해야 할 도리를 다했고, 드려야 할 것을 어기지 않고 드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 한탄에 오히려 억울해 한다.

 

1:7 <<너희는 내 제단에 부정한 제물을 가져옴으로 나를 업신여겼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존경하지 않았다는 물증은 그들이 하나님께 정결하지 않은 제물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정결한 제물을 원하심을 알고고 정결한 제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스라엘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대접했던 것이다. 

 

기도

주님,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힘쓰기보다 편안하고 쉬운 신앙 생활을 바라고 소망함니다. 우리 신앙의 중심이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늘 인도하여 주소서!


맺는 이야기

내용이 없는 형식주의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다. 예수님도 내용이 없는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를 질타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형식없이 내용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산이다. 물이 그릇에만 담길 수 있듯이, 내용은 반드시 그 내용을 담는 틀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내용과 형식을 균형있게 간직해야 한다. 

최근 내용만을 중심하고 형식을 너무 소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큰 문제가 된다.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은 만족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정결한 제물을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하게 흠없는 제물이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물을 드리는 자의 태도를 중요하게 보시는 것이다. 최대한 좋은 것으로 흠없는 것으로 드리고자 하는 마음 말이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자리까지 가게 된다.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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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한 모금]


1. 말라기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날이란, 교만하고 악한 자들에게 대한 불 심판의 날이다. 완전히 소멸될 것을 말씀하신다. 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기쁨과 영광의 날이 된다. 주님의 재림의 때가 성경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날임에는 분명하다. 그 날이 되면 양과 염소가 나누어지며, 알곡과 가라지가 분명하게 갈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날의 징후는 주님의 재림 때에만 나타났던 것은 아니다. 주님의 초림때에도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헤롯의 무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기 위해서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과 목동들로 나누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 속에서는 이 둘은 분명하게 갈리기 보다는 서로 섞여있기도 하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다게 배신했다가 다시 쫓게되는 과정이 있듯이 말이다. 


2. 말라기 서의 마지막에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향해서 모세의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고 했고,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엘리야가 올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엘리야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들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돌이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만난 구약의 인물은 모세와 엘리야다. 이것은 말라기서 4장의 말씀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모세의 역할, 하나님의 법을 온전하게 하셨다는것과 또한 엘리야의 역할,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기 위한 역할 모두를 감당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와 같은 성취를 이루신 분이라는 것을 변화산 사건을 통해서 마태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3.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를 마쳤다. 구약 전체를 마친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만족감이 있다. 감사하다. 





[성경 한 장]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1)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라.

   (1)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2)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 용광로 불 같은 심판의 날이다.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지푸라기처럼 불타 없어질 것을 말한다. 교만한 자와 악행하는 자에 대해서 심판을 경고하신다.


   (3)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 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4)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5)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 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대해서는 영광과 승리를 보장하며, 악인을 밟아 재와 같이 여기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교만한 자와 경건한 자를 대조하며, 교만한 자는 멸망하며 경건한 자는 영광스럽게 드러나게 하신다. 



2. 너희는 하나님이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해서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라. 

  2)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3)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 다시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서 지키게 하려고 하셨던 법을 기억할 것을 요구하신다. 그 역할을 위해서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시겠다고 하셨다.(마 17장에서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봤던 구약 인물은 모세와 엘리야다.) 모세는 법을 대표하는 인물로, 엘리야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 백성의 상한 마음을 다시 회복시켜주는 역할로 언급된다. 법이 회복되고 마음이 회복되는 역할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이와 같은 하나님의 행하심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게 될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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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한 모금]


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따짓듯이 하고 있는 말들이 있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1:2), 십일조와 봉헌물을 제대로 드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습니까?"(3:8), 하나님을 완악한 말로 대적하고도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대적했습니까?"(3:13),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겠는가?"(3:14) 

자기 백성들에게 낳으시고 공들여 먹이고 입히시고 돌보신 하나님을 향해서 기껏 한다는 말이, 앞에 언급한 힐난조의 질문들이다. 이 백성을 향한 정이 '뚝' 떨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2. 종종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억울할 때가 있다. 아이를 위해 충분히 다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지만, 자신의 기분이 상한다고 '엄마가 우리에게 해준게 뭔데?'라고 하면 너무 큰 절망과 분노가 함께 올라온다. 자녀를 위해 나름대로 해온 모든 노력이 부질 없었던 것처럼 무력해 진다. 한 순간 남으로 보이고, 남이 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온다. '그래? 그럼 너 혼자 살아봐!' 자녀와의 싸움에서 보통은 자녀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방문을 잠그는 것이지만, 이 때 만큼은 부모가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다. '엄나가 나에게 해준게 뭔데?' 이 한마다는 그 만큼 강력하다. 그 수많은 인내의 시간과 노력과 수고가 모두 뻘짓(?)이었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하나님도 마음이 상하신다.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던 하나님은 말문이 막히고, 먹먹하여 안방으로 들어가 버리실 것 같다. 말라기 이후 400여년간의 침묵은 이렇게 시작되나 보다. 


 - 끝 -



[성경 한 장]


1. 만문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1)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2)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너희가 사모하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다. 


  *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자가 하나님의 앞 길을 준비하며, 백성들이 기다리던 그가 갑자기 성전에 임할 것이다. 


  3) 그가 임하는 날, 누가 그를 당하며 누가 능히 서리요.

  4) 그는 금을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5)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할 것이다. 

  6) 그들이 결국 공의로운 재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 그는 오셔서 금과 은을 연단하듯이, 표백하는 자가 옷을 깨끗하게 하듯이 레위 자손들을 정결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바른 재물을 여호와께 바치게 될 것이다. 


  7)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히 되려니와 (회복)


  8) 하나님이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다.

   (1)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2) 품꾼의 삯에 대해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3)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4)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 레위인들을 정결하게 하시고, 그러는 과정에서 악을 행한 자들을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변하시지 않으신다. 야곱의 자손들에게 대해서는 그들을 보존하신다. 



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1) 너희 조상 때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했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러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2)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고 반문함

  3)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들은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습니까? 하고 반문하는데, 너희들이 도둑질 한 것은 바로 십일조와 봉헌물이다. 

  4) 너희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노라. 


  *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의 십일조 문제를 지적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드리지 않았다. 그로 인해 온 나라에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원인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한 것임을 알지 못했다. 


  5)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나를 시험하여 보라.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않는가 보라. 

   (1) 내가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할 것이며

   (2)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라. 

   (3)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 하나님은 구체적인 하나의 문제(십일조와 봉헌물)를 들어 이들이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지적하신다. 이들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식도 없으며, 그것을 도둑질 한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들은 마땅히 해야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향해 경건한 태도를 잃어버린 유다의 모습이다. 


3. 여호와가 이르노라. 


  1) 이 백성이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습니까? 반문한다. 

  2) 이들은 말해왔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는가?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오히려 교만한 자가 복되고,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지 않는가!


  *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 여호와를 섬기며 그의 말씀을 듣는 것을 우습게 말하고 오히려 악을 행하는 자가 더욱 잘 되지 않는가!라고 말한다. 이들이 얼마나 불경건한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3)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자들이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놀라며 말한 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다.


  4)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다.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 하나님은 그 중에서도 자신을 경건하게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중히 여기는 자들을 기념책에 기록하여 그들을 분별하심을 약속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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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순서가 늘 장 요약하고 묵상으로 이어졌는데, 글의 순서를 바꿉니다. 어차피 장요약 한 것은 묵상을 하기 위한 기초작업인데 혹 읽는 분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묵상 작업을 앞에 놓습니다. 묵상을 보시고 혹 궁금함이 더하시면 본문 정리한 것을 보시라고. ㅎㅎ


[묵상 한 모금]


1. 하나님은 두 부류의 대상에게 실망하시고 분노하신다. 첫째는 제사장들이다. 이들에게는 두가지 책임을 따진다. 하나는 제사며 다른 하나는 율법으로 자기 백성을 지도하는 것이다. 제사의 문제는 말 1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2장에서는 율법과 관련된 제사장들의 그릇된 태도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율법을 지키고 따르는 삶을 인도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하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은 제사장들과 맺었던 언약(레위의 언약)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희생의 제물의 똥처럼 제하여 버릴 것이라 말씀하신다. 


2. 또 하나의 부류는 유다 백성이다. 이들에게 대해서 하나님은 분노하시는데, 특히 이들이 아내에게 대해서 행하는 악행에 대해서 분노하신다. 어려서 맞은 아내와 경건한 자녀를 낳도록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쉽게 아내를 버리고, 아내에게 폭행을 행하는 것으로 인해 이 결혼관계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은 분노하신다. 하나님은 이들의 봉헌물을 받지 않으시고 이들을 야곱의 장막에서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신다. 


3. 말라기 시대에 유다의 영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제사장들은 허술한 제사를 드리며, 율법으로 자기 백성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 레위와 맺은 언약이 있음에도 자신의 본분을 잊고 산다. 그러하고도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서운하게 생각한다. 유다 백성들도 마찬가지다. 가정을 온전히 지키지 않았다. 젊어서 맞이한 아내를 버려 쉬 이혼하고 이방의 딸을 맞아들인다. 아내에게 폭력을 가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전혀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다. 


4. 구약 시대 동안 이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들이신 공로와 수고가 그렇게도 많은데 이 백성의 종교와 삶과 가정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수천년간 행하신 하나님의 모든 사역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들은 방자하고 하나님은 이제 이 백성에게 지치셨다. 가장 근원적인 것,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이 백성은 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나님의 낙심(?)도 이만저만이 아니셨으리라... 구약의 끝은 참, 무력하게 끊나고 만다.



[성경 한 장]


1. 하나님을 공경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은 제사장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


  1) 만일 너희가 듣지 않고, 마음에 두지 않고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2)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3) 이미 저주하였다. 너희가 마음에 두지 아니함으로


  4) 너희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5)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6) 하나님이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7)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다. 

   (1)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2)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3)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다.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라.

   (4) 그러나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5)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6)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다. 그래서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다. 


  * 하나님께서 레위(제사장)들에게 언약을 맺은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사장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함과 경외함이 없으므로 하나님은 이들을 절기의 희생의 똥과 같이 여기고 이들을 버리고 제하였음을 말한다. 이들은 옳은 길을 떠나 많은 사람들을 율법에 거스르게 했으며, 사람들을 치우치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이들과 세운 언약,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파기하셨다. 그래서 결국 제사장들은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되었다.


2. 거짓을 행하는 유다


  1) 우리는 한 아버지, 한 하나님을 통해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2) 그럼으로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이 일을 행하는 자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버리시리라.

  3) 너희가 이런 일을 행하나니,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신다.

  4) 그런데 너희들은 이것이 어찜 됨이냐? 하고 놀란다. 


  5) 그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는데, 너와 서약한 아내에게 네가 거짓을 행한다. 하나님께서 너의 짝으로 하나만 만든 것은 네게서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 아니냐? 너는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라. 

  6) 나, 여호와 하나님은 두 가지를 싫어한다. 

   (1) 나는 이혼하는 것을 싫어한다. 

   (2)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한다.(가정 폭력을 말하는 것인가?)

  7)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라. 


  * 유다의 죄로 말미암아 유다의 장막에서 끊어질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구체적인 유다의 죄에 대해서 결혼한 아내에 대한 사례를 말씀하신다. 어려서 맞이 한 아내와 경건한 자녀를 낳으려 하지 않고, 가정을 소홀히 하고 아내에게 폭력을 가하는 그릇된 방식으로 아내를 버리려하는 유다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신다. 그런데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런 태도에 당황해하고 놀란다. 그 정도로 하나님과 유다의 관계는 유지되기가 어려워졌다. 



3.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여도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1) 이들은 말한다.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고 그에게 기쁨이 된다.

  2)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라고 말한다. 


  * 이들은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판단과 정죄하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께서 좋게 보실 것이라, 기쁨이 될 것이라 말한다. 하나님을 오해하고 왜곡하는 행태다. 더불어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계시냐?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경시하며 자신의 불의에 대해 아무런 죄 의식도 갖지 않음을 말한다. 이들은 뻔뻔하게도 우리가 하나님께 잘못한게 무엇이 있냐고 고개를 치켜들도 따지고 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참으로 당황스러워 하시면 더 이상 손 쓸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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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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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호와께서 말씀하심: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이스라엘의 답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여호와: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다.(이스라엘을 택하심)

         에서는 내가 미워하였다.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다. 

에돔이 무너뜨림을 당해도 황폐된 곳을 다시 쌓겠다고 하나, 나는 헐 것이다.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다. 


  너희는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할 것이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특별히 사랑하셨음에도 이스라엘은 그 특별한 사랑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다. 에돔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판단하시고 심판하셔서 그들이 회복하려고 해도 그들을 헐어 버리시지만,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치시고 징계하셨지만, 다시 세우고 회복하게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밖에서는 크다 인정을 받고 경배를 받으신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사랑하여 공들인 자기 백성에게는 인정받지 못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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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1)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는데 

  2) 내가 너희의 아버지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없고, 네가 너희의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없다. 멸시하였다. 

  3) 너희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는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한다.

  4) 너희가 눈 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5) 너희가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도 이와 같이 행하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는가?

  6) 오히려 내 제단이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누가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7)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온 땅에,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 하나님은 제사장들을 향해서 말씀하신다. 이들이 드리는 제사를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거룩하지 못한 떡과 온전하지 못한 제물을 가져오면서도 문제 의식이 전혀 없다. 하나님은 이방 세계에서는 인정을 받고, 오히려 이방 민족들은 하나님께 경배를 하기 위해서 오지만,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소홀이 여긴다. 이것이 하나님을 더욱 마음 아프게 한다. 아버지이고 주인이데 공경함도 두려워함도 없는 자기 백성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한탄하시며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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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나 너희들은 말한다. 


  1)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힌다. 

  2)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가 하며 코웃음치고는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다. 

  3)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서 받겠는가?

  4) 짐승 중에 흠 있는 것으로 내게 속여서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5)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제단이 더러워졌다고 말하고, 제물을 드리는 기준이 너무 번거롭다고 불평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봉헌물을 가지고 왔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이런 대우에 낙심하신다. 그렇게 많은 기다림과 용서와 사랑을 베푸셨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방자히 행동하는 이들에게 실망하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큰 임금, 이방인들이 두려워하는 분이 되었으나 그의 자녀인 이스라엘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묵상 한 모금]


1. 구약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과 모든 열방의 하나님이심이 분명하게 드러나셨다. 바벨론 포로 이후 고레스 칙령으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한할 수 있게 되고, 성전과 성벽을 제건하면서 모든 제국의 왕을 다스리시는 만군의 하나님으로 위상이 입증되게 된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낳으시고 사랑과 인내와 헌신으로 키우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하나님의 사랑도 모른다. 동물도 주인을 알아보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이름으로만 부르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방자히 행한다. 이들의 이런 태도에 하나님은 말라기서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문제를 들춰내신다.


2. 말 1장은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결별할 수 밖에 없으셨는지에 대해 쓴 것 같다. 말라기 이후 400년간의 침묵이 있기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설명을 보여주고 있는 것같다. 어떻게 이스라엘이 이럴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고발하신다고 할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서 이런 수모와 대우를 받고도 계속해서 이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 같다.


3.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은 인내하심이 크고 인자와 자비가 넘치시는 분이시지, 마냥 착해빠진 분은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인자한 분이라고 해서 쉬운 분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쉬운 상대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오래참으심과 용납하심이 그들에게 그렇게 보였나 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내하심이 그렇게 평가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은 분노하시고 성전 문을 닫으시려 한다. 외부에 의해서 파괴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영업을 정지하시려고 하는 것이다. 


4.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왜곡하는 경향을 가진다. 은혜가 풍성한 것을 쉬운 분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오해는 은혜를 왜곡하는 것으로 금새 나타난다. 은혜를 베푼 사람을 우습게 알거나, 왜 또 그런 은혜를 주지 않느냐고 따진다. 은혜를 강요하고 은혜를 주지 않으면 화를 낸다. 마치 은혜를 당연한 것처럼 요구한다. 이 정도되면 이제 하나님은 알라딘의 램프 요정이 되고만다. 이런 왜곡이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은혜를 거두고, 관계를 접는다... 은혜가 이렇게 되지 않도록 늘 우리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늘 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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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된다? 되는 것만 해라!]


1. 미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낙관적인가 아니면 비관적인가? 나을 것이라고 보는가?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보는가? 


2.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 때, 실제로 낙관적일 때 '하면 된다'는 정신이 중요하고, 그런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다수가 나아졌다. 그러나 미래가 낙관이 아니라, 나빠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조심스러울 때... '하면 된다', '더 하면 된다'와 같은 구호는 '성공하지 못한 것은 네가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자기 자책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다. 정말 자신이 '개미'처럼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사회가 낙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3. 그럼에도 낙관적인 시대 속에서 '하면 된다'는 말과 함께 성공했던 사람들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패기와 열정 그리고 꿈이 없어서 그렇다고 비난한다. 과거의 시대와 달라졌다. 해도 안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기대한 대로 되지 않은 혼돈의 시대, 예상하지 못한 변수로 가득한 시대, 기대를 저버리는 배신의 시대다.) 


4.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면 된다'는 의식만을 강조하는 것은 그 구호에 맞춰 열심히 열심히 일해온 사람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게 된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요, 사회에 대한 분노요 주변 환경에 대한 분노다.


5. 그래도 분노는 통제가 가능한 감정이고 잘만 다스려지면 오히려 선한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격노'다. 격노는 감정의 통제를 받지 않으며, 공격적이어서 원인 제공자가 아닌 자기 자신과 가장 가까운(가족이든 격노가 일어나는 당시 지나가던 행인이든...) 그 감정을 표출하여 주변을 불행하게 만들어 버린다. 


6. 이 시대는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를 강조하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 보지도 말라고 가르쳐야 하는 시대다.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해 하라가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라 라고 말해 주어야 하는 시대다. 


 - 우리가 잘못 산게 아니었어.(엄기호/웅진 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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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우리는 아직도 비전과 꿈에 대한 메시지를 요셉과 다니엘을 근거로 여호수아를 근거로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가? 꿈이 없는 비전이 없는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청소년들을, 청년들로 하여금 자신이 비정상적인 상태임을 각인시켜 주면서 말이다. 교회 뿐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 이것으로 학생들을 얼마나 닥달하는가! 왜 이 시기를 개미처럼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열심히 해서 목적한 바를 성취하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며 무엇을 도전해야 할 것인가? 오늘의 가치와 오늘의 중요함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큰 그림보다 작은 내 삶의 현장을, 먼 미래보다 지금 내가 있는 공간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것의 중요함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유보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 충실함으로 미래를 맡겨드리는 신앙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교회이든 학교이든 교육의 초점이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은 학생들을 주눅들게 하고, 패배를 자기 자신에게만 돌이게 만들어 버려 결국 낙오자가 되게 하거나 아니면 냉소주의자를 만들 뿐이다. 성공한 일부의 사람은 영웅주의에 빠질 것이 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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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의 사랑에 대하여]


1. 사람들은 대학생들의 사랑 방식에 경고를 보낸다. 사랑이 너무 계산적이고, 헤어짐이 너무 쿨하다고. 그것이 어떻게 사랑일 수 있는냐고 말이다. (부등가교환을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규정한다. 전통적인 인식)


2. 그것은 대학생들이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대학생들이 사랑하는 환경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사랑이라는 관계를 맺으면서 실제적으로는 경제적인 부담, 돈에 대한 부담(자신이 비용을 대든, 상대가 비용을 대든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을 상당히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생들은 사랑에도 등가교환이 이루어질 때, 편안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 사실 전통적인 개념으로서의 사랑은 중,고등학교 시절에 끝났다. 


3. 사랑을 시작할 수는 있지만,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경제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 현실이다. 


4. 따라서 연애를 한다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 되었는데 그 중심에는 돈이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5. 이들에게 있어서 사랑은 서로에게 대한 배려다. 부등가교환이 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 그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부등가교환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 뒷받침이 따라 주어야 한다. 


6. 그러므로 이들이 사랑하도록 하려면, 사랑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대학생들은 공부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공부도 하는 존재로 알고 이들이 사랑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에게는 그런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7. 삶이 불안하고 임시적인데, 어떻게 사랑이 불안하지 않고 임시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학생들의 이와 같은 사랑을 우리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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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 중 일부 발췌]



147. 그러나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무너짐이란곳 찌질합니다. 사람은 자존심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자의 무너짐이 아니라, 무너질지도 모르는 자존심을 어떻게 해서든 추스려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쿨함은 이 시대 젊은이들의 도덕이자 미학이다. 쿨하지 못하다면 최소한 쿨한척이라도 해야한다. 이들은 오늘을 즐기고 실연과 같은 내일에 불상사에 대해 쿨해지려고한다. 시련은 너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운명이다.


152. 스스로 기획하는 서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불확실성을 통제해야 말한다. 이런 점에서 준석의 사랑한 투쟁이다. 세상은 삶은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하고 기획할 수 없도록 몰아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회에서 그들의 사랑이 미래에도 지속되도록 하려면 투쟁하는 수밖에 없다.


153. 준석은 되묻고는한다. 삶이 통제되지 않는데 왜 이런 수고를 해야하는가. 내가 삶을 통제한다고해서 내 기획대로 되지도 않는데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가. 삶은 미래 일을 위해 유예 되어서는 안된다. 유예 한다고해서 보장 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오지 않을지도 모를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거나 감소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재산은 서사의 목을 매는 일들을 비웃는다. 그래서 사랑을 즐기라고 조언한다.


157. 연예가 피곤한 사업이 되어버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돈이다. 방학내내 아르바이트로 번돈을 여자친구와 이벤트 한번 하는데 다 털어 넣는 친구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성훈이나 자기가 데이트비용을 대는 소영이가 잘나가는 회사원의 만나서 자기가 지갑을 사랑하는 것인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고백하는 은이나 부등가교환과 전통적인 규범 사이에서 벌어지는 연예의 피곤힘에는 돈 문제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이들이 대학에 와서 깨닫게 되는 중요한 사실 중에 하나가 사랑을 지키고 유지하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들며 그것이 보통 대학생의 경제력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159. 그래서 이들은 사랑해 등가교환을 선호한다. 사랑에도 주판알을 튕길만큼 계산적인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반대다.그것이 서로를 배려하는 새로운 방식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랑이 손해를 감수하고 일방적으로 퍼줌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 하였다면 지금은 등가교환을 통하여 서로의 곤궁함을 해결한다. 등가교환이야 말로 동등성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새로운 형식이다. 이것이 문제인가?


160. 이들이 사랑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거와는 달리 그 순수하고 숭고한 사랑이라는 것을 중 고등학교때 이미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의 글에서도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자신을 과감하게 내던지는 순애보 같은 사랑 이야기는 대부분 그 시절의 사랑이다.    청소년때야말로 이들은 사랑의 열병에 몸살을 앓고 사랑때문에 삶을 내던지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대학에 온다. 그래서 이들이 대학에 올라와 고민하는 것은 사랑의 가치가 아니라 사랑을 지키고 유지하는 방법이다.


162. 대학생들이 공부도 하는 존재가 아니라 공부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랑은 그들의 권리 목록에서 누락되어 있다. 사랑하는  것, 사랑하기 위한 것,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이자 부담이 되었을 때 준석과 여자친구가 준 공동 통장 하나만으로는 이 망망대해를 헤쳐갈 수가 없다.


163. 삶이 일시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되었는데 어떻게 사랑이 임시적인 시안을 수 있는가그리고이 임시적인 사랑 그것이 왜 또 사랑이 아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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