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4 새벽기도회

본문: 다니엘 6:16-28

제목: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구원하시리라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413 내 평생에 가는 길
  3. 본문읽기: 다니엘 6:16-28

4. 본문의 내용 

 

다니엘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벨사살 심지어 메대 왕 다리오 시대까지 왕의 인정을 받으면서 권력을 누리자 다니엘을 시기하는 무리가 생겼고 이들이 다니엘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찾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약점을 찾을 수 없었던 이들은 다니엘이 지킬 수 없는 규례를 제정해서 그로 인해 문제를 삼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왕은 그 사실을 모른채 그들의 요구대로 승인해 줍니다. 다니엘은 왕을 통해 규례(왕 외에 다른 이에게 기도하지 못하도록 한 규례)가 제정되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을 향해서 하루에 세 번 기도를 드립니다. 이를 근거로 대적자들은 다니엘을 왕에게 고소했고 다리오 왕도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은 사자굴에 넣게 됩니다. 

 

16-18절. 다리오는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지만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길 기대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금식하며 밤을 지샙니다. 

19-24절. 다음날 새벽 다리오 왕은 다니엘이 있는 사자굴을 찾아가고 다니엘의 무사함을 확인합니다. 이를 통해 다니엘의 무죄함도 밝혀집니다. 다리오는 사자굴에서 다니엘을 건져내고 대신 다니엘을 모함한 자들과 그의 가족들을 넣어 심판하게 됩니다. 

25-27절. 이 사건을 계기로 다리오 왕은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함을 확인하고 인정하고 세상에 공포하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28절. 다니엘이 다리오 왕 시대 뿐 아니라 고레스 왕의 시대까지 형통케 되었다는 것을 말함(단 1:21의 내용과 일치함)

 

  1. 하나님의 백성을 무고하게 죽이려고 하는 자는 오히려 심판을 받게 됨을 보여준다. 

  1) 다니엘은 죄가 없습니다. 대적자들이 없는 죄를 만들어 내려고 세운 계획이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보기에는 억울한 상황입니다. 다니엘이 외통수에 걸린 것 같고 결국 사자의 밥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리오 왕도 어쩔 수 없게 되었다. 

 

  2) 그러나 결과적으로 어떻게 됩니까? 다니엘은 무사했고 그로 인해 무죄함일 드러나게 됩니다. 반면 무고한 하나님의 백성을 해하고자 했던 자들은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 이런 일들은 많다. 에스더서도 마찬가지: 하만이 죄없는 유대인을 죽이려 함 

요셉도 마찬가지: 억울하게 옥에 갇혀 망하는 것 같은데 하나님이 높이 들어 쓰신다. 

창 12:3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하리니... ”

 

  3) 따라서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을 믿고(항상 섬기는 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리라) 담대한 믿음으로 세상 가운데 타협하지 않고 무릎꿇지 않고 신앙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항상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2. 하나님은 세상의 왕을 통해서도 찬양과 영광을 받으신다. 

  26-27절 읽기: 다리오 왕의 조서

 

  1)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여전하며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경배는 더욱 커지게 된다. 

  2) 오히려 제국의 왕의 입을 통해서 모든 이방 민족들에게 하나님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라고 선포하게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게 하신다. 

 

  예) 기독교가 위축되고 교회가 축소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위축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대 속에서도 성도로서의 삶에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잊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그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믿고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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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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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1 새벽기도회

본문: 다니엘 5:1-16

제목: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274 나 행한 것 죄 뿐이니
  3. 본문읽기: 다니엘 5:1-16

4. 본문의 내용 

 

다니엘서 5장에는 벨사살 왕이 중심이 되어 등장하고 있습니다. 벨사살 왕은 느부갓네살 왕에 뒤를 이어 왕이 된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왕에게도 역사의 주관자는 여호와 하나님이란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시고 알려주셨습니다.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수 없고 하나님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들 벨사살은 여전히 오만하게 행동했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왕의 교만을 꺾으시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벨사살 왕이 귀족 천명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술을 마실 때 과거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었는지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의 성전에서 빼앗아 온 금,은 그릇에다 술을 가져오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성물을 함부로 다루고서 그들은 술에 취해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으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 것을 벨사살이 보게 된 것입니다. 비로소 벨사살은 두려워 얼굴빛이 변하고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너무 놀라고 두려웠던 벨사살은 갈대아의 술사와 점쟁이들을 불러 쓰여진 글자를 해석하는 자들에게 큰 상을 주고 나라의 세 번째 통치자가 되게 해 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그 글자를 능히 해석하지 못합니다. 그로인해 벨사살은 더욱 두려웠고 번민하게 됩니다. 

 

이 때 왕비가 등장하고 벨드사살이라 하는 다니엘을 부르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왕비는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 때에 갈대아의 다른 지혜자들보다 뛰어난 자였고 그래서 선왕도 그를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으로 삼았었다는 정보를 줍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풀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에 벨사살 왕은 다니엘을 부릅니다. (아마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 때까지는 인정을 받고 전면에 있다가 느부갓네살이 죽고 그의 아들 벨사살이 왕이 되면서 정치적으로 밀려났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랬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 왕 앞에 설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벨사살은 다니엘 안에 신들의 영이 있어 비상한 지혜가 있다고 믿었고 그에게 그 글자를 해석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그 글자를 해석할 때 큰 상과 함께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겠다고 약속합니다. (다니엘이 글자를 해석해 주긴 하겠습니다만 그 글자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로 인해 벨사살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지게 될지는 다음 내용을 봐야 할 듯 합니다) 

 

  1.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치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뿐 아니라 전 세계를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유대인들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하나님이심을 다니엘서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바벨론이 제국으로 전세계를 지배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그 권력의 정점에는 느부갓네살이 있었던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의 말 한마디에 세상은 움직이고 그의 손가락 하나로도 작은 나라들은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 느부갓네살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원하시면 왕을 세워 큰 제국을 건설하시기도 하시지만 세우기도 하시지만 하나님께서 그 손을 거두시면 그 왕위를 빼앗을 수 있음을 느부갓네살을 통해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3) 그러나 그의 아들 벨사살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감히 여호와의 거룩한 성전 안에 있던 성물을 임의로 가져다가 사사로운 잔치의 술잔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가르치셔야겠다고 판단하셨고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 글을 쓰게 한 것입니다. 그것을 본 벨사살은 두려움과 번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든지 이방의 왕이든지 상관없습니다. 세상의 권세자인 제국의 왕이라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자를 가만히 두지 않으십니다. 결국은 떨게 만들고 두렵게 만들어 번민하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치시고 꺾으시고 낮추십니다. 종종 이 거대한 자본주의와 국가권력 앞에서 우리의 노력과 수고가 무슨 힘이 있나 하는 무력감이 있지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을 기도하고 기다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2. 역사에서 밀렸던 다니엘이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하나님은 다시 들어 쓰신다. 

  1)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인정받았기에 유대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지나 느부갓네살 왕이 죽고 그의 아들 벨사살이 왕이 됩니다. 벨사살은 새로운 사람들을 등용했고 자연스럽게 다니엘도 잊혀져갔던 것 같습니다. 벨사살은 다니엘의 존재 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권력으로부터 멀어졌던 다니엘이 이제 이 일로 다시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2)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소개해 준 사람은 왕비였습니다. 다니엘이 스스로 자신에게 맡겨보라고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벨사살이 왕비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것도 갈대아의 술사와 점쟁이들은 그 글자를 해석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벨사살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결국 다니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다시 다니엘은 바벨론 안에서 높이 세워지도록 하시는데 이 모든 일이 잔치 자리에서 나온 손가락으로 쓴 글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3) 하나님은 교만하고 무례한 바벨론의 왕 벨사살은 두렵고 난처하게 만들어서 매우 겸손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에 접어진 다니엘은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실력있는 자라도 감추게 하시고 오히려 숨겨진 자를 들어내시기도 합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겸손하게 자기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때를 기다리시는 성도님들이 되길 바랍니다. 

 

[벧전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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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9 새벽기도회

본문: 삼하 18:19-23

제목: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484 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3. 본문읽기: 삼하 18:19-23

4. 본문의 내용 

 

압살롬은 다윗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요압 장군에 의해서 죽게 됩니다. 다윗은 전투에 나가는 장수들에게 자기를 봐서라도 압살롬에게 너그럽게 대해 달라고 명령(?)했지만 요압은 다윗의 말을 듣지 않고 그 자리에서 처형해 버립니다. 

 

오늘 본문은 그 압살롬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다윗에게 전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23절.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요압에게 가서 자신이 압살롬의 죽음을 다윗 왕에게 알리겠다고 자원해서 나옵니다. 그러나 요압은 그 소식을 전하는 것이 아히마아스에게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해서 구스 사람에게 시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히마아스가 자기도 가서 전하겠다고 조르는 바람에 요압이 이를 허락해 주는 내용입니다. 

 

24-27절. 다윗이 전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파수꾼이 두 명의 전령이 따로 달려오는 것을 보고합니다. 특히 앞서 달려오는 자가 아히마아스 라는 사실을 알고 다윗에게 알려줍니다. 다윗은 아히마아스가 늘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기에 이번에도 좋은 소식을 전해주리라 기대합니다.  

 

28-30절. 압살롬의 죽음 소식을 먼저 전하려 했던 아히마아스는 다윗 왕 앞에서 입을 다물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윗 왕이 기대에 찬 모습으로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는가>라고 물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 비로소 압살롬의 죽음 소식을 기뻐하지 않겠다고 판단한 아히마아스가 대답을 얼버무리게 됩니다. 

 

31-33절. 다윗은 그 뒤에 들어온 전령을 통해 압살롬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큰 슬픔에 휩싸입니다. 마음이 아파 울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오히려 자신이 대신해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말하면서 낙심하고 슬퍼합니다. 

-> 이 장면을 목격한 신하들은 전쟁을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지 못하오 오히려 다윗의 눈치를 보게 되었을 듯합니다.  

 

  1. 22절. 다윗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요압 장군의 모습을 보게 된다. 

  1) 요압은 다윗의 충성스러운 신하이면서 동시에 다윗의 성향을 너무 잘 파악하고 있는 장수다. - 다윗이 우리아를 비밀리에 죽이도록 지시할 만큼

  2) 그러나 요압은 다윗의 통제를 벗어나는 일을 서슴지 않는 장수다. 

   (1) 화해하러 온 아브넬을 살해 함으로 전쟁의 위기를 만드릭도 했고, 압살롬에게 너그럽게 대해 달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반역자를 과감하게 처단하기도 했다. 

   (2) 다윗이 우유부단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고 과감한 결단을 대신 내려 위험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미리 제거해 주는 존재였다.(충성스러웠지만 통제가 되지 않아 어떤 방향으로 갈지 알 수 없는 존재)

  3) 다윗이 요압을 처단하지 못했던 이유는 요압의 힘이 강한 것도 있었을 것이고 요압이 나쁜 역할을 대신 해결해 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다윗은 요압을 정죄하지도 못하고 통제하지도 못한 채 내버려뒀고 훗날 아도니야와 반역의 도모하기도 한다. -> 문제와 갈등의 요소를 외면하지 말고 직면하고 때로는 해결해야 한다. 

 

2. 33절.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1) 다윗은 아들의 죽음 앞에 고통스러워했다. (밧세바의 첫 아들 죽음, 압살롬의 죽음)

  2) 자식의 죽음 앞에 고통스러워하는 다윗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 죄의 열매인 아들, 자신의 아들이면서도 반역한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서 다윗은 안타까워하며 자신이 대신 죽을 것을... 이라고 한탄하는 모습을 보면서 범죄한 우리의 죽음을 오히려 안타까워 하시고 우리를 살리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본다. 

- 그리고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나님을 본다. 다윗은 자신의 자식을 사랑하면서도 살리지 못했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 사랑하심 때문에 우리를 반드시 살려 내셨다. 그것이 복음이요 은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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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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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9 새벽기도회

본문: 레 26:27-39

제목: 내게 대항할진대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3. 본문읽기: 레 26:27-39

4. 본문의 내용 

 

레위기 26:1-13까지는 이 백성이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을 준행하게 되었을 때에 이루어지게 될 이 땅에서의 풍요와 안전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만약 이 백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게 되었을 경우(26:15)에 대해서 어떤 재앙이 있을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 내용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먼저 27-33절에는 이 백성이 멸망을 당하고 약속의 땅에서 추방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직접 이 백성을 적으로 삼아 대항하시고 이들의 죄로 말미암아 그 잘못의 7배에 해당하는 징벌을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28절) 예를 들어, 아들과 딸의 살을 먹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절대적 빈곤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산당과 분향단을 헐고 시체들을 우상들 위에 던진다고 했는데 이는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읍이 황폐하게 되고 성소들이 황량해 질 것이고 제사는 받아들여지지 않게 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깨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수들이 볼 때도 놀랄 만큼 크게 멸망하게 될 것이고 여러 민족에게 흩어지게 될 것이며 땅과 성읍이 황무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언제 발생하게 되는가 하면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함’(26:27)으로 발생하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고 그 땅이 황무하게 되는 것이 그 땅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복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땅이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다>(34절) 이 백성들이 그 땅에 거주하여 하나님께 순종하였을 때는 땅이 쉬지 못하고 그 산물을 내느라 바빴는데, 이제 그 백성들이 모두 흩어짐으로 오히려 땅은 안식을 얻게 되었다고 말합니다.(34-35절) 역설적인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36-39절까지는 쫓겨난 자들의 비극을 다룹니다. 쫓겨났다는 것으로 심판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쫓겨난 땅에서도 그들은 무력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원수가 해하려고 해도 맞설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백성은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와 회복할 수 있는 희망조차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인 것입니다. 거기서도 자신들의 죄로 쇠잔하여 지기 때문입니다. 조상들도 자신의 죄로 쇠잔했듯이 이들도 그 자신의 죄를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제가 오늘 본문에서 함께 묵상하고 나누기 원하는 구절은 27절, 37절 말씀입니다. 

 

  1) 27절. 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이 구절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앞에서 이미 뭔가를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대항한다면... 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니까 하나님은 이미 앞에서 1차 경고를 주셨는데 그 경고를 받고도 멈추지 않고 죄를 반복한다면 심판의 강도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칠 배나 더 징벌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중처벌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표현이 앞에서부터 수차례 반복(18절, 21절, 23절)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살펴보고 또 성경을 묵상하다가 보면 정말 우리가 죄를 지어서 심판을 받는 것인가하는 질문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물론 죄를 지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은 맞지만 그 죄라는 것이 단회적이거나 실수로 잘못한 죄에 대해서까지 하나님께서 꼬투리를 잡아 심판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오늘 본문도 하나님의 진노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경고를 하셨고 그로 인한 작은 책망의 사인을 보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게 계속 그 죄를 반복하고 더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무례하고 완악한 태도에 분노하고 결국 심판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작은 죄 하나도 불편해 하시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것은 죄를 알고도 반복하고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지불식간에 지은 죄보다 알고도 반복하는 죄가 더 무섭습니다. 이 말씀을 경고삼아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죄와 그 완악함에서 나오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2) 37절 너희가 원수들을 맞설 힘이 없을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될 때 이 백성은 열방에 흩어지게 될 것이고 그 땅에서 자신을 지킬 수 없을 정도로 무력하게 될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실제로 훗날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에스더가 살던 시대에서는 그 나라에 살던 유대인 전체가 몰살을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 나라의 2인자였던 하만에 의해서 눈에 가시처럼 여겨졌던 모르드개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대인 전체를 몰살시키려고 했는데 그것을 막을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만은 아각사람으로 유다 백성들에게는 원수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대적할 힘이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대적한 백성이 받게 되는 징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고치시기 위해 찢기도 하시지만 다시 낫게 해 주시기도 하십니다. 치기도 하시지만 싸매어 주시기도 하십니다.(호 6:1) 하나님께서는 에스더를 왕후로 준비시키시고 그의 믿음의 결단을 통하여 왕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무력하게 죽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이 백성을 살리십니다. 오히려 이 백성을 죽이고자 했던 하만을 높은 나무에 달게 하여 복수케 하심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진노 가운데에서라도 주를 바라봐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연약한 중에서도 심지어 죄악 중에서도 주를 의지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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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7 새벽기도회

본문: 레 26:1-13

제목: 내 언약을 이행하리라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3. 본문읽기: 레 26:1-13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고 있고 그 기대가 온전히 이루어질 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만들어 주고자 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행위를 싫어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세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켜 하나님의 성소를 경외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안식일 성수와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과 안식일 준수는 십계명 중 2계명과 4계명에 해당되는 것.

 

둘째는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땅에서 풍족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철을 따라 비를 내려 주셔서 농사가 잘 되게 해 주신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땅이 그 산물을 내고 나무는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3-4월 시작된 타작이 포도를 따는 6-7월까지 이어지고, 포도 수확이 파종을 하는 시기인 10-11월까지 이어지게 될 만큼 그 땅에 음식이 풍요하여 안전하게 거주하게 될 것을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가 매우 원만하고 풍성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평화를 약속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을 준수할 때 주어지는 것으로 부족한 없는 양식에 대한 약속과 더불어 외부의 위험한 요소로부터 보호해 주시겠다는 안전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제거해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원수들을 쫓아낼 것이라고 말씀하십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당 백의 군사력을 가진 자처럼 대적을 물리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하나님께서 돌봐 줄 것이고 이 백성은 번성하고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과 맺은 자신의 언약을 이행하시는 분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묵은 곡식을 먹던 상황에서 새 곡식으로 말미암아 묵은 곡식을 치우게 되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될 것임을 약속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바람은 이 백성 중에 하나님의 성막을 세우고 이 백성 중에서 행하심으로 하나님과 백성간의 긴밀한 관계로 나아가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서 종의 신분을 면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제가 오늘 본문에서 함께 묵상하고 나누기 원하는 구절은 3-4절, 9절 말씀입니다. 

  1) 3-4절.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체질이 바뀔 때까지 순종하라)

 

하나님과 그의 백성 간에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이 구절 안에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을 성실하게 준수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와  경외의 태도를 하나님께 올려 보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신호 삼아 우리에게 철을 따라 비를 내려 주시고 땅의 풍성한 열매와 결실로 우리에게 갚아 주시는 장면입니다. 하늘과 땅이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며 하나님께서 기대하셨던 창조주와 피조세계의 완전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이루는 일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태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한 번 순종했으니 우리가 기대하는 결과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는 거래가 아니라 온전한 관계와 상호 질서가운데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한약 한 첩이나 몸에 좋은 영양제를 한 번 먹고 몸이 획기적으로 좋아지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체질이 바뀔 때까지 의식이 바뀔 때까지 습관이 바뀔 때까지 지속하고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조금씩 개선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 요구가 유익하다는 것을 믿고 꾸준히 순종하고 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체질이 바뀔 때까지. 그러면 어느 순간 이 모든 아름다운 선순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2) 9절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를 번성하게 하고 너희를 창대하게 할 것이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한 내 언약을 이행하리라.(하나님도 언약에 매여있으시다)

 

저는 이 구절을 보면서 하나님도 하나님의 백성들과 맺은 언약에 매여있으시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하나님은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서 이 땅에서의 풍요를 약속할 뿐만 아니라 그 땅에서의 안전에 대한 책임도 져 주시겠다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도 그 백성과 맺은 언약에 매여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어디에도 매일 수 없고 매일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매이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백성과 맺은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맺은 언약에 스스로 매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스스로 폐기하실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약속한 것을 성취하셨을 뿐 아니라 그것이 또 하나의 약속의 증표가 되어 주를 믿는 모든 자에게 온전한 구원을 보장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는 것이고 그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도 언약에 매여 있으시고, 더불어 하나님은 그 언약을 이행하기 위해 힘쓰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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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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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2 새벽기도회

본문: 레 23:26-44

제목: 형식도 내용만큼 중요하다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3. 본문읽기: 레 23:26-44

4. 본문의 내용 

레위기 23장은 이스라엘의 절기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23장 앞 부분에서 유월절과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과 나팔절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오늘은 가을에 이루어지는 절기로서 1년 중에 가장 중요한 절기인 속죄일과 가장 큰 절기인 초막절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속죄일에 대한 규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일곱째 달 10일은 속죄일입니다. 속죄일에는 ‘성회’를 열고 모여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괴롭게 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금식하며 회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립니다. 또한 어떤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 규례를 엄격히 지키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괴롭게 하지 않거나 이 날에 누구든지 어떤 일이라도 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 버리고 멸절시키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속죄일에 대한 구체적인 적용 기간은 9일 저녁부터 10일 저녁까지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음은 초막절에 대한 규례를 말합니다. 초막절은 일곱째 달 15일입니다. 초막절의 절기는 이레동안 지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초막절 첫날에도 성회로 모이고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난 이후 여덟째 날에도 성회로 모이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첫날부터 여덟째 날까지 매일 화제를 드리도록 하고 있고 그 외에 어떤 노동도 하지 말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때 드려지는 번제와 소제와 희생제물과 전제는 늘 일상적으로 드리던 제물 외에 추가적으로 더하여 드리는 것입니다.(38절)

 

초막절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친 이후인 일곱째 달 15일부터 이레 동안 진행되는데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42절) 이는 출애굽 당시 광야에서 초막에 거주했던 것을 대대로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때 종려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 등을 취하여 초막을 짓고 이레 동안 그 날을 몸으로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제가 오늘 본문에서 함께 묵상하고 나누기 원하는 구절은 31절, 43절 말씀입니다. 

 

  1) 31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속죄일에는 일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고 어디에 있든지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는 말씀입니다. 어제 정요한 강도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구약의 절기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구약 시대에는 유효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신약 시대에는 더 이상 율법적으로 지켜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그 정신은 여전히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라 봅니다. 

 

속죄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오직 속죄일 본연의 의미에 집중하라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1년에 한 번 있는 이 속죄일에 자신을 괴롭게 한다는 것은  자신이 지은 죄를 괴로워하여 금식하며 회개하는 일에 집중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속죄일과 같은 의미를 담은 절기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고난 주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부활절을 앞두고 고난 주간을 정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을 묵상하기 위한 노력은 적절하지 않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그 때에라도 스스로를 괴롭게 하여 주님의 대속의 의미를 묵상하는 것은 신앙을 위한 유익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매주 드리는 주일 예배가 있습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하신 일을 찬양하고, 하실 일을 소망합니다’ 이 시간만이라도 다른 일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앞에 집중하여 나아오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주 이와 같은 헌신과 수고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2) 43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절 기간 동안 초막에 거주하도록 명령하시고 왜 그런 규례를 만드셨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고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들에게 물과 양식을 공급하여 주시고 이들을 지켜주셨다 라는 것을 상기하도록 하기 위함이고 대대로 그 사실을 온 이스라엘이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내용만큼 중요한 것이 형식입니다. 배우자를 늘 아끼고 사랑하며 그것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그것을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결혼기념일이 필요하기도 한 것입니다. 광복절이 있음으로 해서 다른 나라의 통치를 받았던 아픔을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나라와 민족의 힘을 키워야겠다는 의식을 지속적으로 고취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형식은 내용만큼이나 중요한데 특히 시간 앞에서는 더더욱 그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대인들과 같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의 구원의 길이 율법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매주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이며 그 신앙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주 교회를 가는 것, 우리가 식사할 때 기도하는 것, 우리가 술이나 담배를 즐기지 않는 것.. 이 모든 형식들이 때로는 열 마디 말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의 몸으로 산 제사를 올려 드리시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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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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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8 새벽기도회

본문: 레 21:16-22:9

제목: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3. 본문읽기: 레 21:16-22:9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에 대한 요약은 매일성경에 있는 내용을 거의 옮겨와서 말씀드리는 것으로 대신 하겠습니다. 본문 요약이 매우 잘 되어 있어서 그대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16-24절은 제사를 드려야 하는 제사장에게 신체적인 장애는 ‘흠’으로 규정됩니다. 흠은 ‘부족함’을 의미할 뿐이지 ‘부정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만 거룩과 성결을 몸과 삶의 온전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교육하는 맥락에서 , 예배의 모든 과정을 백성들 눈앞에서 집전하는 제사장에게 온전함을 요구한 것입니다. 장애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흠 없는 예배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제사 제도가 없는 지금은 지도자에게 이런 신체적인 조건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더욱 온전한 영적, 인격적 자질과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가 되길 원하는 이들은 ‘자격’을 갖출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지도자들은 자신의 삶에 흠이 생겼다면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합니다. 

 

22:1-7은 흠이 있는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제물로 드려진 거룩한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한 제사장이 성물을 먹는 것은 금지됩니다. 이를 어기는 자는 제사장직을 박탈당하고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입니다. 백성들이 거룩함(구별됨)을 유지하며 예배로 나아와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친 제물은, 제사장들에게 음식으로 주어진 때라도 여전히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자기 삶과 바치는 제물에 부정함이 조금도 뒤섞이지 않도록 힘썼는데, 도리어 부정에 물든 제사장이 그 제물을 취한다면 거룩함을 훼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정한 제사장이 거룩한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정결을 회복할 수 있는 기간을 지낸 후 정결 의식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고(고전 3:16)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입니다.(벧전 2:5) 그리스도인으로 거룩(구별)을 추구하며 살지 않으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무의미해질 것입니다.(미 6:8)

 

22:8-9은 백성들은 시체나 찢겨 죽은 짐승을 먹을 수 있지만(17:15,16) 제사장은 아예 그런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제사장은 백성이 거룩하게 바친 제물의 고기를 거룩한 가운데 먹어야 합니다. 사체와 접촉하고 피를 먹게 될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고기를 탐해서는 안 됩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제가 오늘 본문에서 함께 묵상하고 나누기 원하는 구절은 21:21, 22:9 말씀입니다. 

 

  1) 21:21 제사장 아론의 자손 중에 흠이 있는 자는 나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그는 흠이 있은즉 나와서 그의 하나님께 음식을 드리지 못하느니라.  

아론의 자손 중에도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집례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신체적으로 ‘흠’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신체적인 흠은 후천적인 것도 있겠지만 선천적인 것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 두 가지 경우를 구분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원인이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드려져야 하는 제물이 온전해야 하듯이 그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의 경우도 당시 기준으로 ‘온전한 몸’이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강조하기 위한 규정입니다. 

 

신약 시대는 제사 제도가 필요없게 되어 제물도 제사장의 규례도 더 이상 우리에게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온전함에는 변함이 없으며 당연히 그를 예배하는 백성들이 온전해야 함에 대한 기준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벧전 2:5의 고백처럼 우리 모든 사람들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함으로 준비되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온전함은 이제 육체적인 온전함이 아니라 오히려 거룩한 삶의 행실과 성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 드린 것처럼 만약 지도자의 삶에 흠이 생겼다면 그 지도자는 그 흠의 문제가 해결되고 해소될 때까지 잠시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기억해야 하며 일반 성도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늘 깨어서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보아 정결함을 놓치지 않은 성도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2) 22:9절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제사장들을 거룩하는 분이라는 것을 말하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장들을 거룩하게 하는 방법 중 첫 번째는 자격이 되는지 되지 않는지를 분명하게 구분해 주는 것입니다. 16-24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제사장으로 제사를 드릴 자격이 되지 못하는 기준을 선명하게 정해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부정하게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제사장으로서 자격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부정한 것과 접촉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자신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부정하게 되고 그로 인해 제사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 그 제사를 집례했던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했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자격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두 번째 영역입니다. 그래서 일상 속에서 부정한 것과 멀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일이 오늘도 우리의 삶을 통해서 거룩한 삶으로 열매 맺어 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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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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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5 새벽기도회

본문: 레 20:1-16

제목: 위험한 곳에서 놀지 않기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3. 본문읽기: 레 20:1-16

4. 본문의 내용 

오늘 살펴본 말씀은 이미 앞에서 하나님께서 금지하셨던 것들을 다시 언급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징벌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 징벌의 내용은 ‘죽음’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명령들이 단순히 ‘하지 않으면 좋겠다’정도의 권면이 아니라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7절까지는 몰렉에게 그의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 거류하고 있는 이방인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땅에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몰렉에게 자식을 바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돌로 쳐서 공개적으로 죽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몰렉은 소머리 형상과 사람의 몸의 형상이 합쳐진 청동 우상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크게 확산된 우상입니다.) 하나님께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어버리시겠다고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몰렉에게 자식을 바치는 자를 보고도 못 본체하여 죽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과 그 사람의 권속들도 하나님께서 백성 중에서 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사회 전체가 이 일에 경각심을 가지고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것에 대해 서도 경계하고 금하도록 규제하는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땅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엄중한 죄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도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심으로 백성 중에서 끊으실 것이라고 경고하심으로서 우상을 섬기거나 귀신을 쫓는 일이 없도록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8-16절까지는 주로 성적 음란함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던 내용들이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그와 같은 죄를 범한 자는 반드시 ‘죽이도록 한 것’입니다. 심판의 엄중함입니다. 7가지의 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1)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도록 합니다. 2) 남의 아내 즉 이웃의 아내와 간음한 자는 두  달 죽이도록 합니다 3)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도 둘 다 죽이도록 합니다. 4) 며느리와 동침하는 자도 둘 다 죽이도록 합니다. 5) 남성이 남성과 동침하면 둘 다 죽이도록 합니다. 6) 아내와 장모를 함께 데리고 사는 자도 모두 불살라 죽게 하도록 합니다. 7) 남자나 여자가 짐승과 교합하였다면 그 사람과 그 짐승도 모두 죽이도록 합니다. 이와 같은 규례를 주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규례(애굽의 풍습이나 가나안의 규례)를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자신만 거룩한 분이 아니라 자기 백성도 거룩하기를 기대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8절) 죄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물으심으로 죄를 멀리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제가 오늘 본문에서 함께 묵상하고 나누기 원하는 구절은 7절, 9절 말씀입니다. 

  1) 7절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의 풍속을 쫓지 않고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에 익숙한 애굽의 풍속도 쫓지 말라고 하셨던 것이고 가나안의 규례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추구하고 지향해야 할 삶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거룩’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니 우리도 거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거룩은 하나님이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세탁기에 돌려 깨끗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온실 속에 두고 외부의 모든 더러운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거룩을 만들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거룩함에 대한 추구를 가지고 그 거룩함을 위해 자신을 잘 관리함으로 스스로 깨끗하여 지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통해 거룩함이 기준이 무엇인지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고용 팻말을 달아 놓으심으로 부정해 질 수 있는 곳에는 주의하도록 요청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오늘 본문에서처럼 ‘빨간 경고’ 표시를 해 두고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언급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창 2:17) 아담하게 경고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율법은 바로 우리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함으로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아니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범죄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바로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제사 제도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완전하고 온전한 제사를 통해 우리는 죄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레위기의 말씀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복음 안에서 우리가운데 주신 메시지임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2) 9절 반드시 죽일지니라(10,11,12,13,14,15,16절)

무서운 말이지만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즉 앞에서 언급한 7가지의 항목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경우는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력하게 경고하고 엄중히 말씀하실 때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와 같은 행위들이 사람에게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붙어 있는 빨간 경고판’을 우습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지만 아담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한 곳에서 멈추지 않는 것이 문제 시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그 지점에서 기웃거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살라고 요구하시는 거룩한 지점을 향해 힘있게 나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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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새벽기도회

본문: 레 18:1-18

제목: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3. 본문읽기: 레 18:1-18

4. 본문의 내용

 

오늘은 8월 첫날입니다. 오늘부터 레위기 말씀을 다시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5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다운 가치관대로 살아야 함을 요구합니다. 절대로 이전에 거주하던 애굽 땅의 풍속대로 살아서도 안되고 앞으로 거주하게 될 가나안 땅의 풍속대로 살아서도 안된다고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규레와 법도를 따라야 하며 그래야 살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1-5절까지의 내용입니다. 

 

6-18절까지는 가까운 친족과는 성적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매우 다양한 케이스와 구체적인 대상을 언급하며 이와 같은 가까운 친족간의 관계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금지명령이 있었다는 것을 통해서 두 가지를 알 수 있는데 하나는 이와 같이 가까운 친족과의 관계가 애굽 땅에서나 가나안 땅에서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말도 안 되는 큰 범죄 행위같은 것들이 당시로서는 사회적으로 별 문제 없이 일어나기도 했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당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적인 측면에서 도덕적인 우위를 추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회가 허용했던 이와 같은 행위들을 ‘악행’(17절)이라고 규정했고 이와 같은 악행을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세상의 규례와 법도 그 이상의 도덕적 기준을 요구했고 그 기준에 타협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따르는 길이 우리가 살 길이라는 것을 선언해 주고 있습니다.(5절)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제가 오늘 본문에서 함께 묵상하고 나누기 원하는 구절은 3절 말씀입니다. 

 

  1) 3절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수 백년 동안 살아왔던 애굽 땅의 풍속도 따르지 말라고 말합니다. 너무나 익숙했던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동시에 인도하여 들어갈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따르지 말 것으로 요구하십니다. 모르는 땅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땅의 문화와 관습을 무조건 배우고 따라야 할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것도 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애굽의 풍습이나 가나안의 문화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적절한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롬 12:2) 이 말씀은 세상의 문화와 형식을 모두 부정하고 산 속으로 들어가 따로 살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이 세상 속에 있는 풍속과 규례 중에 하나님의 통치와 맞지 않는 것을 본받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것처럼 성적인 문란함과 방탕함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조심해야 함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시대도 성적인 도덕 기준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상황임을 우리가 모르지 않습니다. 성적인 개방이 더 진보적이고 더 낫고 멋진 삶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시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아버지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살면서 늘 긴장하고 신경써야 합니다. 무엇이 옳고 바른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과거에 익숙했던 관성을 따라 살게 되거나 아니면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문화에 휩쓸려 살아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공부하고 매주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믿습니다.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는 것을 넘어서 성경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기준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되고 세상 사람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새로운 질서 새로운 가치관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우리에게 기도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도 하고 하나님을 체험하기도 하지만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용기와 힘을 얻기도 합니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과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누구나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려고 할 때는 두려움이 있고 주저함이 있게 됩니다. 어느 정도의 피해를 받기도 하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으로부터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 것을 결단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인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께서 궁극적인 세상의 통치자 이시다라는 믿음이 우리 안에 가득찰 때 우리는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방식으로 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 가운데 실현되고 있고 그렇게 살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5절) 날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살아가시고 믿음으로 살게 되는 은혜를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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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9 새벽기도회

본문: 시 89:1-18

제목: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68장 오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시니
  3. 본문읽기: 시 89:1-18

4. 본문의 내용

 

시편 89편 1-18절은 다윗과 맺은 언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함에 대한 내용(1-4절)과 피조 세계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통치에 드러난 인자와 성실을 찬양하고 있습니다.(5-18절)

 

먼저 시인은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널리 알리고 대대에 알리고 싶어 합니다. 1절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사건으로 하나님이 다윗과 언약을 맺고 맹세하길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3,4절) 하셨는데 실로 하나님은 다윗과 맺은 언약을 성실하게 이루어내셨다는 것입니다. 시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그 언약의 신실함은 어디에까지 이르게 됩니까? 바로 그리스도 예수에게 이르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마 1:1)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이 견고히 세워졌던 역사입니다. 

 

세상 가운데 여호와와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습니다. 오히려 비교하는 모든 대상들이 여호와를 두려워할 정도입니다. 여호와와 같은 능력을 가진자가 누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여호와는 주의 성실함으로 주를 둘렀다고 표현할 만큼 그 언약에 성실하신 분이십니다.(8절) 혼돈의 대명사인 바다의 파도도 하나님 앞에 다스림을 받고 잔잔해 집니다. 괴물과 원수들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하늘과 땅, 남과 북 모든 세계가 다 하나님의 것이고 그가 창조하셨으며 그의 손과 팔로 다스리신 것입니다.(9-13절)

 

통치의 기초가 되는 의와 공의도 다 주의 보좌의 기초이며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음을 시인은 선포합니다. 따라서 주의 백성들은 종일 주의 이름 때문에 기뻐하고 주의 공의로 말미암아 높아집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방패는 여호와께 속했고 자신들의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왕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은 그 언약에 대해 인자와 성실하시기에 견고하고 든든함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제가 오늘 본문에서 함께 묵상하고 나누기 원하는 구절은 두 개입니다. 

 

  1) 1절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에 놀라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노래하고 싶어합니다. 또한 직접 자신의 입으로 대대에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단순히 지식적으로나 교리적으로 배워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서 경험하고 깨닫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 

 

어쩌면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평생에 깨닫고 발견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적인 관계에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늘 그 언약을 파기하는데 발 빠르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보여준 것이 그것이었고, 이스라엘 역대 왕들의 역사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배반, 언약의 파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럴 때마다 당신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용납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언약을 맺으심으로 당신의 신실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실하심으로 옷을 입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변함없는 믿음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변질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인자하심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언약을 깨뜨리지만 당신은 우리에게 성실하심으로 대해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며 구원을 확신하시고 그 구원의 기쁨을 대대에 찬양하고 선포하시는 은혜가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2) 9절. 주께서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잔잔하게 하시나이다. 

바다의 파도라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통제되지 않은 혼동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바다의 파도를 컨트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바람의 파도를 통과해서 원하는 지점으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우리는 인생 속에서 이와 같은 바람의 파도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컨트롤 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혼동이 끝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아 두려운데 하나님께서는 어느 순간 그 파도를 잔잔하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갈릴리 바다를 건너갈 때 제자들은 파도로 말미암아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 때 주님은 말씀으로 그 바다를 잠잠케 하셨듯이 하나님의 당신의 권세와 능력으로 바다의 파도를 잠잠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형편이 바다의 파도를 만난 것 같은 상황이라면, 파도를 다스리시고 파도를 잔잔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무작정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상기하면서 하나님께 요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 아니시냐고? 하나님은 성실하신 분이 아니시냐고? 당신의 백성이 지금 혼란 중에 빠져있는데 구원해 주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언제까지 이렇게 두시겠다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나아갑시다.(우리 자녀들의 형편을 생각하면서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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