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본 글은 저작을 염두하고 쓴 글이므로 임의로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2. 1:8-14 최소가 아니라 최선을 드리는 삶


찬송가:


여는 이야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물들이 흠이 있는 것들로 받으실 수 없음을 지적하신다. 이와 같은 제사를 지속적으로 드리려 한다면 아예 성전 문을 닫아 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드리는 것에서부터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이들을 저주하신다.


절별 해설

1:8 <<그런 것을 너희 총독에게 바쳐 보아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신다. 총독에게도 동물을 바칠 때도, 좋은 것을 선별하여 드리고 그렇지 않은 것을 총독에게 주었다가 오히려 큰 봉변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의도적으로 눈멀고 다리를 저는 제물을 드리는 백성들에게 따지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1:10 <<너희 가운데 누가 성전 문을 닫아서>> 이 표현을 통해서 말라기서의 배경을 성전이 있던 시대, 즉 스룹바벨의 성전이 완성된 시대로 본다. 이스라엘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드리지만, 이스라엘이 드리는 제사는 불경한 제사로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행위에 불과했다. 하나님은 이런 제사라면 성전 문을 닫아서라도 받기 원하지 않음을 말씀하고 있다.


1:11 <<곳곳마다 사람들이 향과 깨끗한 제물을 내게 바칠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는 존중히 여김과 경외함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대우를 받으실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하나님은 모든 민족들 가운데 영광을 받으시고, 이방인들이 오히려 하나님에게 깨끗한 제물을 바침으로서 하나님이 모든 민족 위에 얼마나 크신 분임이 드러나게 된다.


1:13 <<이 일은 귀찮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본적인 마음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말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요구를 귀찮게 여겼다. 괜한 트집으로 불편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받으실 수 없음은 너무 당연하다.


1:14 <<흠 있는 것을 바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지 않고 우습게 여기어 부정한 제물을 드리는 백성들을 향해서 더 이상 묵과하시지 않으신다. 이들에게 저주를 선포하신다. 하나님을 경홀한 마음으로 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위엄을 드러내시고자 하신다.



기도

하나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인해 이방인 가운데 모독을 당하심을 봅니다. 우리의 불경건함을 용서하시고,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백성이 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한 제사 제도를 통해 죄를 극복하고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방편을 모르고 이와 같은 제도를 불편해 했고 번거롭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마음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제사도 드리고 요구하시는 종교적 의식을 행하지만,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드리지 않고, <최소한의 것>을 드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인간 통치자에게는 좋지 않은 것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오히려 하나님께는 아무것이나 드리는 불경건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께 최선의 것을 드리는가? 아니면 최소한의 것을 드리는가? 늘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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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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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 1:1-7 형식은 내용 만큼이나 중요하다.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질문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 질문과 답변은 감정적으로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했다고 말하나, 이들은 어떻게 사랑했냐고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너희들은 왜 나를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이스라엘은 우리가 언제 주를 멸시했습니까? 답하기 때문이다. 감정적 균열이 있는 대화가 오고가는 내용이다. 

 

절별 해설

1:1 <<이스라엘에게 하신 경고의 말씀입니다>> 말라기서가 말하고자는 성격을 분명하게 해주는 표현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지난 잘못에 대한 경고요, 앞으로 고치지 않을 경우에 임할 재앙을 <경고>하시기 위한 말씀이다. 

 

1:2 <<여호와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가지고 있는 감정이 묻어있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시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했다는 것을 현실 속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과는 멀어진 자신의 형편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감정적으로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1:3 <<에서는 미워했다>>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셨다는 것을 강조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는 것의 한 증거로 사용하시려 한다. 에서의 산악지방을 폐허로 만들것이고, 그들이 다시 일으키려고 해도 헐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에돔에 대해서 진노하신다는 말씀을 주셨음에도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마음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1:6 <<우리가 언제 주를 업신여겼습니까?>> 이 말은 하나님께서 너희의 아버지임에도, 주인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로 존경받지 못했다는 하나님의 한탄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례한 답변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은 하나님 앞에 해야 할 도리를 다했고, 드려야 할 것을 어기지 않고 드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 한탄에 오히려 억울해 한다.

 

1:7 <<너희는 내 제단에 부정한 제물을 가져옴으로 나를 업신여겼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존경하지 않았다는 물증은 그들이 하나님께 정결하지 않은 제물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정결한 제물을 원하심을 알고고 정결한 제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스라엘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대접했던 것이다. 

 

기도

주님,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힘쓰기보다 편안하고 쉬운 신앙 생활을 바라고 소망함니다. 우리 신앙의 중심이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늘 인도하여 주소서!


맺는 이야기

내용이 없는 형식주의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다. 예수님도 내용이 없는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를 질타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형식없이 내용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산이다. 물이 그릇에만 담길 수 있듯이, 내용은 반드시 그 내용을 담는 틀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내용과 형식을 균형있게 간직해야 한다. 

최근 내용만을 중심하고 형식을 너무 소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큰 문제가 된다.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은 만족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정결한 제물을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하게 흠없는 제물이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물을 드리는 자의 태도를 중요하게 보시는 것이다. 최대한 좋은 것으로 흠없는 것으로 드리고자 하는 마음 말이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자리까지 가게 된다.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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