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한 장]


1.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1)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네 가운데에서 나누이리라.

  2) 하나님이 이방 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라.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탁되며 부녀가 욕을 당하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 예루살렘이 이방 나라들로 인해 노략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지만, 남아 있는 백성들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을 듣는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백성들이고 남아 있던 백성들이다. 이들은 큰 환난 중에서도 살아남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나가서 이방나라들을 치시리라. 


  1) 그 날에 하나님의 발이 예루살렘 앞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이고, 그 산은 동서로 갈라져서 큰 골짜기가 될 것이다 

  2) 너희가 그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3)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 

  4) 그 날은 빛이 없겠고, 광명한 것들이 떠날 것이라.


  * 큰 지진과 같은 재앙이 벌어지겠지만, 그래서 사람들은 피하여 숨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큰 재앙이지만, 누군가에는 환난 중에도 끊어지지 않을 것임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

3.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1)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2) 여름에도 그러하고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4.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1) 사람들이 사는 곳에 다시는 저주가 없을 것이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

 

  * 그 때가 되면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을 것이다. 어둠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음을 말한다. 반전이 있다. 인생에도 반전이 있고, 역사에도 반전이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어두움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빛이 올 것이고 그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두워져가는 역사의 빛으로 오셨다. 그로 인해 생수가 전역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빛이심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수가 흘러가게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5. 예루살렘을 친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은 이러하니 


  1) 곧 섰을 때에 그들의 살이 썩으며, 그들의 눈동자가 눈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들의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다. 

  2) 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싸울 것인데, 이방 나라들의 보화 곧 금 은과 의복이 심히 많이 모여질 것이다. 

  3) 말과 노새와 낙타와 나귀와 그 진에 있는 모든 가축에게 미칠 재앙도 그 재앙과 같으리라. 


  * 그 날에 예루살렘을 쳤던 이방 민족들은 심판을 받게 된다. 그들은 재앙을 당하지만, 그로 인해 유다와 예루살렘은 풍요를 얻게 될 것이다. 

-------


6. 예루살렘을 치려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7.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할 것이즉, 애굽이 올라오지 않으면 애굽에게도 비를 내리지 않고, 초막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을 치시는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실 것이다 


8.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다. 

  -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에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 에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 여호와의 날, 그 날에 이루어질 완전한 모습을 말씀하고 있다. 예루살렘을 중심과 초막절 중심으로 설명되고 있으며 예루살렘을 대적하는 민족, 초막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민족은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을 받게 될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그 날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것, 심지어 말 방울까지 여호와께 완전하게 성결로 구별된 거룩한 도시가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묵상 한 모금]


1. 어두워 갈 때의 빛(7절)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니다. 어두워 갈 때의 빛이다. 어두워 갈 때란 무엇인가? 낮에서 밤으로 가는 과정이다. 어둠을 향해서 가는 시기를 말한다. 유다의 역사가 그러하다. 빛으로 시작해서 어둠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둠으로 영원히 끝나고 마는 것인가? 이스라엘이 망하고 유다가 멸망했을 때 이들은 그렇게 절망하고 그렇게 밤을 맞았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의 회복을 경험하고, 성전 재건의 역사를 시작하면서 이들은 어둠가운데 빛을 보기 시작했다. 여호와의 날(악인의 심판, 의인의 성공)을 다시 기대하게 되었다. 그 법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하나님의 언약이 완전히 파기되지 않았음을 이들은 보게 된 것이다. 성전 재건의 시대 스가랴가 이 백성들 가운데 주고 있는 메시지는 이와 같은 희망의 메시지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자신을 '빛'이라고 말씀하셨다. 빛이 왔다고 선언하신다. (요 1장) 그리고 예수님은 이 땅에 생수를 주시는 분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있다.(요 4장) 스가랴에서도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동해와 서해로 흐르게 될 것을 설명한다. 그 날에는 말이다. 그 날은 언제인가? 예수 그리스도 이 땅에 빛으로 생수를 주시는 이로 오셔서 사역하신 날이라 볼 수 있다. 


이 말씀은 주님의 초림을 넘어 재림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예수는 빛으로 시작하셔서 완전한 낮, 밤이 없는 시대(계시록의 새하늘과 새땅에서의 성전)를 완성하시기 위해 다시 오신다. 다시 에덴에서의 생명나무가 계절마다 풍성하게 열리게 됨을 약속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는 초림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게 된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내용을 정리하면]

1. 우리는 대학생들이 엄마의 품을 떠나지 못하는 캥거루족이라고 말하며 그들의 어림을 비판한다.

2. 그러나 캥거루족이나, 헬리콥터 맘과 같은 생활을 할수있는 것은 다수의 대학생이 아니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자들의 이야기일 뿐 다수의 상황까지 대변하지 못한다.

3. 다수의 대학생들은 오히려 부모에게 큰 부담을 지우는 존재로 자신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많은 학비를 부모로 받아야 하면서도, 쉽게 취업으로 갚아드릴 수 없기 때문에 가정안에서조차 자신을 잉여로 생각한다.

4. 또한 가정 안에서는 가족간에 대화가 많이 오고가야 건강한 가족이고,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건강하지 못한, 개선해야만 하는 가정이라는 인식을 주입한다. 가족간에 더 많은 대화, 소통이 요구된다. 그러나 다수의 가정은 그렇지 않다. 그런 가정이 있더라도 그럴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경제적 형편이 뒷받침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대다수의 가정에 문제가 있음을 진단하고, 소통과 대화라는 약을 처방한다.

5. 저자는 문제제기와 처방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건강한 가족은 대화와 소통이 아니라, 감정노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한국 가정은 주로 어머니의 감정노동으로 유지되어왔음을 말한다. 가족 모두가 가족의 유지를 위한 감정노동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 감정노동이란 참아주는거, 수고해주는거, 기다려주는거, 희생하는거 등을 말한다. 가족을 위해서.

6. 과도한 소통의 강조가 가족이 붕행하다는 의식을 더 심어준다. 소통을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폭력일 수 있음을 말한다.

7. 매끈한 소통보다 울퉁불퉁한 감정노동이 가족을 떠받히는 힘이다.

-------

[본문에서 옮겨온 글]_음성으로 읽어 저장한 것이라 중간중간 틀린 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ㅎ


127. 이에 대해 여성학자 이 계정은 단호하게 이야기한다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면 주부라는 사람을 먹고단지 육아와 교육 금융전문가 누구의 매니저가 된 중산층의 주부와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하여 일하는 주부그 둘 많이 존재한다고말이다관리하는 엄마와 그 관리를 행복하게 받아들이면서 말끝마다 우리 엄마가늘 부칠 수 있는 사이가 될수 있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는 특권층인 셈이다캥거루 속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


128.십년만에 가족은 벗어나야 하는 탈출구가 독립의 대상에서 자괴감과 죄책감을 자아내는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134. 감정노동이란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 우리 화와 억지를 참아내고 머리를 써야 넘어지고 혼자 있을땐 상대방을 생각하는 이 모든것을 보관한다그래서 감정노동은 인간이 수행하는 노동 중에서 가장 에너지 소비가 많은 피곤한 노동이다가족을 만들고 지탱하는 것은 노동이라고 말할 줄 아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번에 집에 내려가면 친척들과 엄마에게 과일도 잘라드려야겠다고 말한다 그것이 가족과의 관계를 유지시켜준다는것을 지우면 정확하게 반팔이다아들과 함께 술을 마시러 못도 엄마에게 과일을 잘라주는 것도 명절의 친척들을 방문하는 것도 술취한아빠의 뽀뽀를 참아내는 것도 이런 감정노동이다 가족은 감정노동공동체이다. 

135. 지금까지는 일방적으로 어머니가 감정노동을 수행하면서 가족을 더 맞췄다면접에서 감정노동은 가장 정치적이다이렇게 때문에 엄마의 감정노동에는 이전하는 가족이면 어머니를 착지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어머니 한탄과 같은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137.소통은 감정노동이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의 경제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을 가진가족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엄마가 가족들에게 전문 매니져로 인정받고 그런 매니지먼트를 할수 있는 다른 경제적 자원들이 지금 아침이 될 때나 가능한 일이란 뜻이다.


141. 우려의 가족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142. 학생들의 리포트를 읽고 그들과 토론을 하면서 나는 소통이라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우리는 소통을 최선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다.우리는소통을 최선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다.대통령부터 진보적인 현재까지의 정치 문제부터 가족 문제까지 모두가 불통이 문제라 말한다. 그리고 소통이 잘 되면 만사가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한다. 소통이 폭력에 맞선 대안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가 폭력이 되고, 불행의 해결책이 아니라 소통하라는 강요가 오히려 불행의 시작점이 되어 버린 것이다. 


142. 매끄러운 소통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감정도 분이 가족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서로 말을 섞고 부딪치면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문제와 갈등은 회피할수 없다는 것을 대해 우리는 입을 다먹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중동교회 한가족예배 (2014. 1.12)


마 13:1-23

씨 뿌리는 자 비유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 장]


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2.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날에 하실 심판


  1)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다 .

  2)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다

  3) 아직도 예언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낳은 부모가 그가 예언할 때에 칼로 찌르리라.

  4) 그 날에 선지자들은 자신을 부끄러워하여,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다. 나는 농부다. 나는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되었다 할 것이다. 

  5) 사람들이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가 무엇인가 물으면,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할 것이다. 


  * 우상과 우상숭배자들과 또한 예언하는 자들에게 임할 진노와 심판이 그 날에 있을 것임을 말씀하신다. 선지자들은 자신이 선지자였다는 것을 감추고 숨긴다. 그 만큼 그들이 그 동안 했던 과거의 사역들이 부끄러운 일이었음이 드러나게 됨을 말한다. 


3.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1)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2)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손을 드리울 것이다.

  3) 이 온 땅에서 2/3는 멸망하고, 1/3은 거기 남을 것이다.

  4) 그 남은 1/3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 목자를 치고, 양들은 흩어지게 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리라. 땅의 2/3가 멸망하고 1/3이 남겠지만, 그 남은 1/3도 불 가운데 던져 연단하고 시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나오는 자들에게는 내 백성이라 인정받게 될 것이고, 그들은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라 고백하게 될 것이다. 


[묵상 한 모금]


1. 그 날은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린다. 그러면서 우상의 제거, 우상 숭배자들의 제거, 거짓 예언자들의 제거, 거짓 선지자들의 제거(그들 스스로가 부끄러워하여 숨음)가 일어난다. 땅의 2/3는 멸망하고 남은 1/3도 불로 연단된다. 이 모든 과정이 죄와 더러움을 씻는 과정이다. 정결하게 되기 위해서는 죄가 벗겨져야 하며, 고난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온갖 불순물들이 제거되어야 한다. 


2. 고통스러운 불시험 속에서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불러내신다. 그리고 원래 의도했던 관계, 나는 네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되리라 하는 관계를 형성해 내신다.


3. 우리는 죄와 더러움이 씻겨지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대신했다고 믿는다. 이것은 신학적 결과로서는 사실이나, 그 과정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통해 정결하게 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잘 인식하지 못하는듯 하다. 우리 안에 있던 우상과 우상 숭배의 마음, 거짓 예언을 바라고 또 거짓 선지자로서 살아왔던 삶에 대한 부끄러움과 수치가 있음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엄청난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정제되어 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간과한다. 이런 부분에서의 깊이있는 메시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이 주제를 정리해 보면]

1. 동물은 어느 공간에 구분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그 존재를 다루는 방식이나 태도가 달라진다. 동물원에 있는 돼지와 자연보호구역에 있는 돼지, 식용으로 키우는 우리에 있는 돼지... 같은 돼지지만 다루거나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2. 사람도 어떻게 규정된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서 방식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즉, 학교를 어떤 공간으로 보느냐에 따라 교육에 대한 입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3. 폭력적인 교실, 폭력적인 교육을 바꾸겠다고 폭력에 대해서 엄격하게 대응하고 수업 방식으로 열리 교육으로(더 나아가 대안학교 교육)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공간에 대한 규정이 정립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 지금의 대학생들은 열린교육 세대라고 하지만, 이들은 열린교육은 한번도 열린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전의 교육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면, 열린 교육은 침묵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고 말한다. 

  - 전에는 물리적인 강자가 약자를 괴롭혔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로부터 동정을 일으키기도 했고, 약자를 향한 의협심이 유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물리적 강자가 아닌 사회적/경제적/문화적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기 때문에, 괴롭힘을 당한 자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약한 자가 아니라.. 찌질한 자로 규정되고 이들은 주변 친구들의 동정을 일으키지 못한다. 친구들도 이 찌질한 자로 규정된 약자를 도외시하기 때문에 더 폭력적이 되었다. 

4. 이전까지 교육은 열린 교육과 같이 교육 방식을 바꾸고, 교사들의 폭력적 태도로 부터 학생들을 보호하면 비폭력적 교육이 진행되리라고 생각하지만, 학생들은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폭력적 요소가 있음을 지적한다. 즉, 교육 혹은 훈육 이라는 것 자체가 폭력을 배제을 배제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폭력이란 물리적 폭력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답을 향해 가도록 하는 것조차 폭력적이라고 보기에)

5. 따라서 저자는 공교육은 열린교육 등과 같은 방식을 취한 것으로 교육은 폭력적이지 않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가피하고 감수할수 있는 폭력과 그렇지 않은 폭력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열린 교육 혹은 대안 교육은 폭력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학생들은 냉소하고 지겨워하기 때문이다. 


----- 책 읽으면서 인정적인 문구들.

이들은 이른바 열린교육이라는 것을 받고 자란 세대다. 그런데 학생들은 열린교육이 한번도 제대로 열린 적이 없다고 한다.한쪽에서는 폭압적인 교육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열린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혼돈이 가득한 교육이 아이들의 삶을 괴롭혔다.

폭압적인 교육이 학생들에게 입닫고 가만히 있을 의무를 강요했다면 열린 교육은 무조건 말해야 하는 의무를 강요하는 셈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의식 변화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약자가 아니라 덜떨어진 존재로 인식된다. 맞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는 식으로 퍽력은 정당화 된다. 무엇보다 학교 안 권력자의 삼위일체가 말하는 것은 학교폭력이 우정에 대한 도덕적 폭력이 아니라 경제/문화/육체 자본의 삼단 합체 속에서 벌어지는 계급적 폭력이라는 사실이다. 다만 이것이 '덜떨어진 존재'에 대한 폭력이라는 문화적 양상만이 전면에 부각될 뿐이다.

문화란 일종의 분류 체계이며 분류표이다. 같은 동물이라 하더라도 어느 공간에위치하는가에 따라 그에 대한 대접은 완전히 달라진다. 동물원에 있는 돼지와 농장에 있는 돼지, 자연보호구역에 있는 돼지는 같은 돼지이지만 완전히 다른 존재이다. 내가 어느 공간에 배치되었는가에 따라 나는 식용동물일 수도 있고, 애완동물일 수도 있다.
- 학생들이 모인 교실이 어떤 공간이느냐에 따라 다루는 방식도 가치와 목적도 달라진다.

우리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다루는 방식은 두려움이 아니라 잔인함이다.
-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생명을 너무 잔인하게 다룬다. 호랑이를 보여주기 위해 유리안에 가두어 두는 방식을 취하는 것처럼.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혁명에 냉소한다] - 엄기호, 우리는 왜 청춘이 아니라 말인가.


정치에 대한 청년들의 입장에 대한 오해


<청년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고, 민주주의에 관심이 없서서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다.>


청년들은 정치를 모르고 관심이 없어서 참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수적 인사든 진보적 인사든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본질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시시콜콜한 차이에 대해서는 알아볼 필요를 못느낀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냉소주의다. (청년들에겐 냉소주의만이 현실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본 장비다.)


청년들의 이런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들의 냉소주의를 도덕적인 비난으로 대한다면 이들의 마음에 도저히 다가설 수 없다. 오히려 이들의 냉소의 힘에 의지해서 냉소적이기 '때문에', 냉소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은 정치가 사기라는 것을 알기에, 정치적으로 움직일 때는 정치가 오락이 되거나(투표후 인증샷 같은) 혹은 정치가 오락을 방해할 때(정치인이 개그적 소재를 업악하려 할 때)다. 따라서 냉소에 맞서는 것은 진정성이 아니라 재미, 오락이다. 



민주주의라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독재?


우리는 민주주의가 절대가치가 된 사회에 살고 있다. 민주주의는 절차과 과정을 중요시하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목적이 되고 도덕과 윤리가 되었다. 민주주의를 지나치게 도덕적인 것으로 포장하여, 민주주의를 정치의 문제가 아닌 생존에 대한 도덕의 문제로 전환시켜버렸다.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폭력조차도 정당화할만큼 민주주의는 목적화되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희망하는 대중은 강력한 영웅을 기대한다. 영웅은 강하지만, 대중은 무력하다. 민주주의를 기대하면 독재를 양산하는 꼴이 되고 만다. 


대학생들의 탈정치화가 아니라, 우리가 일조한 정치의 도덕화가 문제다. 




[핵심만 정리하면]


1. 저자는 대학생들의 문제가 <정치적 무관심>이 아니라 <정치적 냉소주의>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진단한다. 


2.이들의 정치적 냉소주의는 정치의 본질을 파악한 자들의 기본 방어장치다. 


3. 이들의 정치적 냉소주의를 비판할 것이 아니라, 냉소적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으로 이들을 이끌어야 한다. 


4. 이들은 민주주의에 도덕적 기준을 대는 것에 반발한다. 도덕적 진지성을 가지고 판단받는 것으로 정치적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것이 <놀이>가 되거나 <놀이를 막는 진지함>이 될 때 정치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잉여가 된 '지성인'... 내용 정리해 보면..

이전(386세대)의 대학생은 그 자체로 엘리트며, 특권을 가진 존재였다.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이 기대되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 당시 대학생들에게 있어서 그 소속이 주는 권리를 포기하는 행위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들에게 있어서의 자유는 인정받는 자유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생들은 대학 서열의 질서 속에서 열패감으로 가득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래서 이들은 사회에 인정받는 한 존재, 셈으로 받아들여지는 존재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며 온갖 아이템으로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드러내야만 하는 존재다. 이전 세대는 잉여의 특권으로부터 자유가 미덕이었으나, 지금의 대학생들은 소속을 얻기 위해 몸부림 치는 세대다. 따라서 이들에게 자유란 잉여다. 소속이 없는 자유란 불필요니까...

가시적인 소속이 없으면서 한가하게 산다는 것만큼 비참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다. 잉여는 불필요니까...

----
내가 상대하고 사역해야 할 주 대상이 느끼는 삶이다. 잉여가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 아이템으로 자신을 강화하여 어딘가에서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 그러나 그런 소속감을 얻는 것 조차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기때문에 존재감 자체를 위한 경쟁에 찌든 사회. 그리고 실패감. 잉여의 느낌. 그 동안 나를 위해 아낌없는 후원을 해준 부모님에게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는 절망. 잉여의 느낌일 것이다.

이런 느낌과 긴장, 조급함으로 살아가는 청년 대학생들에게 복음이 무엇을 줄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아니, 무엇이라도 주어야만 하는것이 우리의 사명이 아닌가!!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지금의 청춘을 향해서 과거의 청춘과 <나타난 현상>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런 현상이 나오게 되는 조건과 함께 평가해야 한다. 오늘날 청춘들은 나타한 현상만을 가지고 판단받고 있다. 


1. 386세대는 오늘날의 청춘을 향해서 비겁하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들이 용감하고 순수하게 학생운동을 할 수 있었던 조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당시 대학생들이 사회적인 엘리트라고 인정받았다는 조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오늘날 대학생을 사회적으로 엘리트라고 대학생 스스로도 인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학생이 되면서 엘리트라는 사회적 문화적 자본을 소유했다. 그 정신을 가지고 사회 운동에 전면에 나설 수 있었다.


2. 과거는 어두운 시절이긴 했어도 과거보다는 미래가 나을 것이란 기대가 있는 희망적인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늘보다 더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시대를 살고 있다. 실업과 가족해체 등이 일상 다반사가 되었다. 삶은 예측되지 않은 불안으로 가득하다. 이런 시대 속에서 대학생의 지위는 한없이 추락했다. 


3. 기성 세대의 눈으로 보면 성장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청춘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의 질문으로 그들을 볼 것이 아니라, 이들이 하고 있는 질문으로 이들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봐야하며 이들의 언어로 성장을 이해해야 한다. 


  - 24-26쪽 요약.(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엄기호)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우리는 우리가 20대들을, 대학생들을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만 있으면 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부모와 선생이 이런 착각에 빠져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보'만 있으면 된다느느 생각은 지배와 통제에 대한 욕심이지 이해에 대한 갈망이 아니다. 이해란 통제와는 달리 내가 그들과 무엇을,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지 돌아보는 작업이다. 때문에 이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정보를 넘어 그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지식이며, 그들의 감수성과 나의 감수성 사이의 거리와 차이에 대한 성찰이다.(19쪽)


---

[생각정리] 정보는 객관화하는 작업이다. 나와 너가 분리되어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20대들은 분리된 객체일 수 없는데도 말이다. 제대로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들을 이해할 때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이해란 대상에 대한 따듯한 느낌을 가지고 그의 배경과 역사를 보는 것이다. 보이는 정보 뿐 아니라 역사적 맥락과 주변 상황을 읽어 내는 것이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책] 우리는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엄기호 /



"세상이 너희를 한심하다고 이야기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우리를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대신 되돌려서 물어 보자. 누가 너희더러 한심하다고 이야기하는지. 그리고 어떤 이유와 논리로 너희를 한심하다고 하는지. 어떤 언어로 너희를 한심하다고 말하는지를 되물어 보자."(12쪽)


 - 대학생들이면 성인인데, 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어른들은 문제제기를 한다.


우파들은 경제적인 이유를 든다. 이들은 청년들이 높은 보수만 바라고 험한 일은 싫어한다고 타박한다. 도전 정신은 없고 공무원과 같은 철 밥그릇만 찾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니 실업 대책이라는 것이 젊은이들을 보고 눈 높이를 낮추라고 하는 것이다. 


좌파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지금의 청년들을 비난한다. 이들은 청년들이 소비주의에 물들어 자기만 생각하고 물질적인 욕망과 풍요에만 신경을 쓰지 도통 사회적 존재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조국과 민중, 민주주의와 인권과 같은 대의에 대해서 무관심하다고 한탄한다. 


  그래서 지금의 대학생들을 성장하지 못한 존재, 즉 어리광이나 부리는 '애쌔끼'라고 인식한다.


----

[내 생각] 지금까지 내가 청년들에게 문제의식을 느꼈던 부분을 잘 정돈해 준듯 하다. 나도 엄기호 씨가 말하고 있는 우파든 좌파든 어른들이 생각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엄기호 씨는 어른들의 이런 문제의식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어른 입장에서 설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청년들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취했다. 그리고 오히려 <성장>이라는 문제에 대해 어른들이 생각하는 성장과 참된 성장의 개념을 구별함으로서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찬찬히 읽고 정리해 보고자 한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