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시편 41편] 하나님의 의인의 편이라는 것을 성경은 강조합니다. 그래서 의인의 자리에 삶을 살아온 백성은 고난과 재앙의 순간에 하나님을 찾습니다.(3절) 그런데 막상 도움을 요청하려고 하면, 그 분에게 그 동안 지은 죄가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멈칫하게 됩니다.(4절) 어떻게 보면 내가 가해했던(범죄했던) 그 분에게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무슨 염치가 있어 도움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죽고 말지... 그런데 그 분이 내 처지를 보고 먼저 손을 내밉니다. 용서를 베푼 것이지요.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다음입니다. 그 용서를 통해서 자신을 돌이킨(회개)자는 정말로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한 자입니다. 그러나 그 용서를 우습게 알고, 여전히 전과 같은 태도로 살아가는 자는 참되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용서를 받고 나서의 반응을 통해 그 사람이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가 확인되는 것입니다. 



[정리]


1. 가난한 자를 돌아본 자가 받을 복: 구원, 지키심, 고치심


1절.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2절.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3절.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 이 땅에서 가난한 자를 돌아보며 살아온 자를 하나님은 재앙의 날에 건지시고 지키신다. 그를 그 원수들에게 맡기지 않으신다. 그가 병중에 있을 때 붙드시고 누워있을 때 병을 고쳐주신다. 이는 포괄적으로 의인을 악인으로부터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에 대한 시편 기자의 확신이며 기도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인생


4절.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생은 죄가 걸린다. 도움을 요청해야 할 그 하나님 앞에 나가려고하면 절로 내가 그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범죄한 사실이 있는가가 떠오른다. 그래서 멈칫하게 된다. 그래서 은혜를 구하고 자비를 구하게 된다. 


3. 원수는 내가 다시 일어나기를 원하지 않음/ 패배하기를 원함


5절.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그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며...


8절. 이르기를 악한 병이 그에게 들었으니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오며


9절.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 9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에서 자신을 배신할 자가 있다고 말씀하실 때를 연상케 된다. 함께 떡을 먹던 자가 나를 배신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당시 제자들은 그 말씀이 가까운 사람이 예수님을 배반하게 될 것이라는 것으로 이해했지, 정확하게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말씀은 아니었을 것이다 .


4. 그러나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함: 주께서 나를 기뻐하심. 승리케 하심. 


11절. 내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오니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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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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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40편] 복음에는 두 가지 요소를 반드시 함께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는 수 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이지요.(12절)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진노(롬 1:19)가 자신 위에 임한다는 인식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구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움을 요청할 유일한 분에게 우리가 너무 많은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12절)이것이 바로 다른 한가지입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에게 우리는 그 동안 너무 많은 죄를 지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절망하게 됩니다. 그에게 손을 뻣어야 하지만, 손을 뻣을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다만, 그를 응시하여 죄송하다고 잘못했다고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바라볼 뿐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복음에는 당당함이나 자기 공로나 자기 의가 털끝만큼도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정리/발췌]


2절.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 수렁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사람을 끌어올려서 안전한 발판 위에 놓아준 모습이 연상된다. 하나님은 허우적 거리며 절망한 사람을 끌어올리신다. 그리고 반석과 같은 안전한 곳에 두사 우리로 평온케 하신다. 이와 같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험한 이 세상을 살면서(많은 원수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가 되겠는가!


5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이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 주께서 나를 위해서 행하신 일이 너무 많아 무엇부터 그 이야기를 해야할지 모를 지경이다. 나를 생각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지극정성은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크다. 그 일을 다 말하고 싶지만, 셀 수 없는 이야기에 오히려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이런 은혜와 도우심으로 누군가 나를 살펴주신다면,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그 행복을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누리라!


12절.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나는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 수많은 재앙이 덮쳐서 하나님을 불러야 할 상황이지만, 하나님을 찾기에는 나의 죄가 너무 많아 면목이 없다. 오직 도움을 주실 분은 한 분, 하나님 밖에는 없는데 그 분에게 행한 나의 죄가 크기에 감히 그 앞에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다.(도움은 커녕 심한 책망 밖에는 받을게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 그 분에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격이 되지 않고, 송구함이 크지만 그 분의 신실하신 의를 의존해서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의지했던 사람들은 실패함이 없이(부끄러움이 없이) 응답을 받게 된다. 이것이 복음이다. 당당하다는 말도 아니고, 뻔뻔 하다는 말도 아니다. 송구하지만, 다른 구할 곳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러 나온다는 것이고, 그것을 하나님은 의로 여겨주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교만과 방종이 존재할 수 있는 틈이 없다.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13절)


17절.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이시니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자기 편임을 기정 사실화 하고, 빨리 개입해서 해결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당당함이 아니라, 관계적인 경험 속에서와 신학적인 확신 속에서 나오는 당당함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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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39편] 때론 누군가에게 성경의 해석학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은 사치처럼 들립니다. 가난하고 억울하며 병들어 절망한 인생들에게, 높이시는 하나님, 공의로우신 하나님, 고쳐주시는 하나님은 학문적인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배움이 없는 사람들에게 바른 해석을 요구해 성경 읽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면, 기독교는 우리에게서 멀어졌을 것입니다. 순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까워지게 그리고 바르게. 바르게 하겠다고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리]


1. 시편 기자가 느끼는 인생의 한계성(끝이 있으며, 길지 못하다)


4절.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절.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라.(셀라)


 : 그래서 인생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순간에도 모두가 허사에 불과할 뿐이다. 그만큼 우리 인생은 장담할 수 없이 짧고 약한 것이다. 하루살이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6절.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2. 그래서 시편 기자는 자신의 소망을 하나님께 둔다. 


7절.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9절.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 

    (1~3절. 자신이 조심하여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려고 잠잠한다고 고백, 그래서 답답하다고 고백)


   : 이 짧고 약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으려고 잠잠하며 삼가하는 시편 기자의 모습을 본다.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도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 하지만(1절) 혹 선한 말도 조심함은 그 와중에 작은 잘못이라도 하나님께 할까하는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너무 작고 미력한 인생이라... 작은 죄도 조심스럽다. 


11절.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셀라)


3. 시편 기자의 구체적인 상황


13절.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 시편 기자는 병 중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무력함 또한 인생의 한계를 느끼며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 병은 중병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이 얼마나 제한된 존재인가를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조심하게 된다. 특히,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심지어 악인을 앞에 두고서라도... 선한 말일지라도... 작은 실수와 범죄로도 쉽게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겸비하고 있다. 


그래도 그의 간절한 바램이 있다.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묵상]


나의 간절한 바램도 마찬가지다. <나의 아내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나의 아내가 난소암 3기라는 것을 알게 되고,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마친 것이 만 2년 전이었다. 이제 내일이면 항암치료 후 중요하다는 2년의 시간이 지난다.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재발없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왔다. 내일 병원에서  PET CT 를 찍고 그 결과를 들으면 지난 2년간의 시간에 대한 중간 평가(한 텀의 기말평가와 같은)를 받게 된다. 시편 기자와 동일한 기도를 드리고 싶다. 


주여, 나의 아내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지난 2년간을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강건하게 지켜주소서! 연약한 육체의 한계를 목도하고 나와 아내를 겸비하게 하신 주여,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해석이 필요없이, 이 구절은 그 쓰여진 그대로 나의 기도가 되고, 소망이 되며 응답이 되리라 믿는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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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38편] 나의 죄는 나의 머리에 넘쳐서 감당할 수 없는 짐같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책망하심은 너무 강력하여 내 살과 뼈가 성한 곳이 없고, 내 친구들은 모두 나에게 질려 떠나고 내 원수들은 나를 넘어뜨리고자 음모를 꾀하니...누구를 의지할 수 있으랴! 

나의 죄를 생각한다면 면목이 없지만, 그래도 지금 이 상황에서 찾을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구원하소서!" 저는 죄인이지만,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가 아니십니까? 불쌍히 여겨주소서~ [아멘]



[정리]


1. 주의 노하심 너무 심하니 감당할 수 없습니다. 


1절.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


2절.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3절)



2. 나의 죄가 너무 크고 심합니다. 


4절.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내가 우매한 까닭이로소이다. (5절)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픔 중에 다니나이다.(6절)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7절)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8절)


3. 내 주변의 사람들도 나를 떠났습니다. 나의 대적자는 음모를 꾸밉니다. 


11절.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12절.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미오나

13절.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못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4.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21절.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나의 구원이시여.(22절)



[정리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너무 커서 힘들다고 호소하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괜한 것은 아니다. 내가 지은 죄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죄가 내 머리에 차고 넘친다고 했으니 내 죄에 대한 징계로서 하나님의 진노가 정당할 수 있다. 내 가까운 자가 모두 나를 떠났고, 나를 해하려고 하는 대적자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음모를 꾸미니, 나는 아무런 대책을 세울 능력도 없고 그들을 반박할 힘도 없다. 


내 죄악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죄 지은 중에 일어난 일인지 모르겠으나, 하나님의 진노는 너무 큰 것같고 나의 적은 더욱 강력한 것 같은데 나를 도와줄 친구들마져 모두 떠나 버리니 나는 도움을 요청할데가 없다.


이런 처지에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주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구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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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37:27-29] 하나님은 성도를 버리지 않고 영원히 보호하시지만(28절), 그 의미는 하나님은 <정의>를 사랑하신다는 그분의 성품(28절) 안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앞에 이야기 한 것만을 붙잡는 것을 <복음>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 위에 복음을 세우며, 구약의 토대 위에 신약을 세우는 것이 마땅한듯 합니다. 



[본문] 


27절.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28절.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29절.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정리]


1. 하나님의 요청과 그 결과


   악에서 떠나라

   선을 행하라

    ->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라.


2. 하나님의 성품과 그 결과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신다. 


  그의 성도는 영원히 보호를 받는다.(그의 성도와 정의를 분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진다. 


[묵상]


하나님의 그의 백성들에게 악을 떠나고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은 <정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않으신다. 영원히 보호를 하신다. 그것은 사랑하신다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정의>를 사랑하듯 그의 성도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의와 그의 성도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본문의 문맥상 옳지 않고 오히려 그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정의에 합함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성도를 <은혜를 입은 자>라고만 생각하지, <거룩을 추구해야 하는 자>로서의 개념에는 미흡하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존재, 그래서 끊임없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에만 치중하지 왜 그렇게 하셨는가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성경은 그 다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쏟아 놓는데 비해 우리는 그 길에 들어서는 것에만 치중되어 있는 것이다. 


구약을 읽고 신약을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해본다. 물론 혼자 읽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율법이 있고 그 토대위에 복음이 복음될 수 있으며, 구약의 토대 위에 신약의 참된 메시지가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에도 한 번 쓴 것 같지만, 하나님은 우리 편이 아니라, 정의의 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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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37:17-11] 팔복에 있는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라는 말씀에서 <온유하다는 것>과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된다>는 것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편 말씀입니다. 한 성경 구절이 연관된 다른 구절로 설명되면서 좀 더 구체화된 의미를 발견해 간다는 것에 기쁜 아침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온유한 성도들로 풍성해지기를 소원합니다. 무력한 자 같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믿기에 흔들리지 않는 자가 바로 성도입니다. 


[정리]


7절.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노를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8절)


: 악인의 악행에 대해서도 무조건 참으라고, 참아야지만 성도로 합당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어제 본문을 통해서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정당한 조치를 다하고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죄에 대한 공의롭고 적실한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음. 모순과 구조적인 악 때문에)에 대해서 분노하여 격하게 행동하고 하는 것은 자칫하면 또 다른 악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종종 목적인 정당하면 과정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묻지 않는 경향이 있다.(최근 우리나라는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악을 만들뿐이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려야 할 때이다. 이 기다림은 기도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속히 오도록 하는 간절한 마음을 드리며 하는 기다림이니 기도인 것이다.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9절)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10절)


: 마침내 악을 행하는 자는 끊어진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며, 세상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질서다. 성경은 복음을 말하며, 복음은 은혜가 중심이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이 질서_악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끊어지리라_를 기반으로 한다. 이 공의의 기반 위에 은혜가 있고, 복음이 있는 것이다. 공의가 무너진 곳에 복음과 은혜를 한낱 방종자의 자기 변명에 불과하다. 잠시 후면 이 땅에 득세하던 악인들은 그 자취를 찾아 볼 수 없도록 사라지고 끊어진다. 그들은 완전히 사라진다.(심판되어 진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11절)


 : 그러나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고 그 땅위에 가득하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산상수훈의 세번째 복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에 대한 구약적 병행구절이다. 예수님은 시편 37편 11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유>라는 말은 단순한 부드러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악한 세상에서 악행한 자들은 반드시 심판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믿고, 분노를 표출하고 불평하는 것을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참고 기다리는(하나님의 공의를) 자의 모습이다. 


또한 그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 다는 것은 그와 같은 자가 이 땅에 가득하게 될 것이라는(악행자가 땅에서 자취를 찾아 볼 수 없게 되는 것과 대조적으로)말씀임을 알게 된다. 결국 이 땅은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들이 다스리게 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온유함으로 세상의 바꿀 수 없는 악에 대해서 쉽게 불평하고 노를 표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대로 될 것에 대한 간절함으로 참고 기다리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 아니겠는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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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37:1-3] 오늘은 37편 중 1-3절만 다룹니다. 아니 3절을 통채로 외웁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불의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와 세상에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 대해서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묵상해 보았습니다. 오늘 이 말씀과 함께 하는 하루 되시길.


[옮기기/ 외우기]


1절.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소극적 권면)


2절.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하나님의 질서/심판)


3절.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적극적 권면)


[정리]

악을 행하는 자 때문에 불평하거나, 시기하지 말자.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속히 베임을 당하고 쇠잔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성실을 우리의 먹거리로 삼고 그를 의뢰하면서 선을 행해야 한다. 


[묵상] 

그리스도인 만큼 죄에 대해서 묵인해 주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는 곳도 없을 것이다. 작은 흠 하나까지 다 털어내려 한다면 문제가 크겠지만, 누구나 눈에 보이고 누가 해도 악행이라고 여겨지는 것까지 지적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참 이상한다. 성경을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식의 교육도 받았고, 성경은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만 문장을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악행을 하는 자들에 대한 불평과 시기를 금하라는 것이 그들의 죄를 보고도 가만히 있으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고발하고 신고했는데, 바로 심판을 받지 못하는 사회 구조와 모순을 보면서 세상을 향해서 불평만 하거나 혹은 하나님을 향해서 뭐하고 계시냐고 불평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심판이 구부러지고, 더딘것 같지만 속히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불평해서 사회에 부정적인 행동을 하지 말고, 혹은 그들의 악행에 심판이 없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삶을 따라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악행을 보면 그것을 막기 위해서, 더 큰 악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판단하고(물론, 공정하게) 그것을 지적하거나 심각할 경우 국가권력의 힘을 의존하여 제지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우선이다. 물론 내게 그와 같은 죄의 요소가 없다는 입장에서의 정죄가 아니다. 나도 그와 같은 죄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표출된 자의 형벌을 내가 실제적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내 안에서는 표출되지 않도록 경고를 얻기 때문이다. 내가 죄인이고 내 안에 그와 같은 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그것에 대해서 민감해야 한다. 더불어 단순한 고발이 아닌, 그 죄를 개선해 줄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아 대응해 주는 것이 필요하리라 본다. 


판단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라는 말을 너무 과도하게 적용하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3절 말씀일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 머무는 동안 그 분의 성실하심을 먹을 거리로 삼아, 늘 그분을 (공의로운 심판을) 의뢰하고 선을 행하기에 힘써라. 혹 세상이 불공정하고 모순되었다고 하더라도.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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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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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36편] 하나님의 인자와 진실은 하늘과 공중에 가득하다. 또한 주의 의와 심판도 산과 바다에 가득하다.(5,6절) 따라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 가운데 인자/진실 그리고 의/심판이 충만하다. 잊지 말자. 그래서 피하는 자는 구원을 얻으며(충만한 인자로 인해), 자기 마음대로 사는 자는(악인의 길에 서는 자는) 충만한 하나님의 의로 심판에 이르게 된다. 이것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라(9절)> 고백하게 된다. 요즘 이 시대는 국가의 중앙으로부터 이 빛이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많이 흐려졌다. 



[정리]


1. 악인들의 악함에 대해서: 교만과 두려워함이 없음.


1절.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 악인의 특징_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음(불경건)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2절)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악과 속임이라.

그는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3절)

  : 입과 행동으로 죄악과 속임을 행하면서도 자신의 죄는 드러나지 아니하리라. 미워함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교만함_아무도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함)


그는 그의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악한 길에 서고 

악을 거절하지 아니하는도다.

  : 그는 악을 묵상하며 악인의 길에 서며 악을 수용한다.


2.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공의로우심을 나타내소서. 그래서 악인이 교만하지 못하게 하소서.


5절.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6절)

  : 하나님의 인자와 진실은 하늘과 공중에 가득하다. 또한 주의 의와 심판도 산과 바다에 가득하다. 따라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 가운데 인자/진실 그리고 의/심판이 충만하다. 잊지 말자. 그래서 피하는 자는 구원을 얻으며(충만한 인자로 인해), 자기 마음대로 사는 자는(악인의 길에 서는 자는) 충만한 하나님의 의로 심판에 이르게 된다. 이것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라(9절)> 고백하게 된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7절)


....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9절)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10절)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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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35편]우리가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잘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은 나는 선으로 행했는데, 그 사람은 나에게 악으로 대할 때다. 선의로 보증을 서 주었는데, 오히려 그 사람은 나몰라라 하는 식으로 되 돌아올 때 우리는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더 큰 분노는 왜 이런 악한 자를 심판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사회 법으로건 혹은 하나님의 법으로건) 결국 이 분노는 공의를 실행하지 않는 사회와 하나님에게 대한 분노로 옮겨가게 된다. 오늘 우리 사회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커진 이유도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기인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억울함이 많은 사람들_힘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배운게 없어서... 공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생긴 문제일 것이다. 어찌할꼬... 이 땅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하나님은 당장 일하시는 것 같지 않으니.... 정말 필요한 것은 공의의 하나님을 믿고 의의 자리에 서려는 인내로다. 


[정리]


1. 급히 자신의 편에서 싸워 달라고 요청하는 시편 기자


1절.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2. 시편 기자의 적: 악을 선을 갚는 자들에 대한 자들


12절.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13절.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함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몸을 굽히고 슬퍼하기를 어머니를 곡함 같이 하였도다.


15절. 그러나 내가 넘어지매 그들이 기뻐하여 서로 모임이여

불량배가 내가 알지 못하는 중에 모여서 나를 치며 찢기를 마지아니하도다.

그들은 연회에서 망령되이 조롱하는 자 같이 나를 향하여 그들의 이를 갈도다. 


: 우리가 제일 참기 어려우며,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케이스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선을 베풀었는데 그것을 망각하고는 악으로 되갚는 것이다. 이것은 공의가 아니며, 이런 악한 자가 심판받지 않거나 혹 잘 된다는 것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혹은 그 역할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행한 선의의 결과가 하나님이 없다는 것으로 되돌아 오는 것 같아 참, 마음이 아프다. 


3. 여호와여 언제까지 놔두고 계시렵니까? 얼마나 더 참아야 합니까? 저들이 마침내 나를 짓밟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셔야 하겠습니까?


17절. 주여 어느 때까지 관망하시려 하나이까

내 영혼을 저 멸망자에게서 구원하시며

내 유일한 것을 사자들에게서 건지소서.


: 시편 기자의 원망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수가 있느냐?로 시작했지만, 왜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내버려 두시는가? 하는 신정론의 문제로 귀결된다. 


28절.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 결국 시편기자의 결론은 자신의 혀로 주님의 의를 말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반드시 의를 이루시고 의인의 편에 서신다는 것을 확신하고는 주를 찬송한다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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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34편] 자기 백성의 간구에 응답하여 구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은 <의인>을 향하시고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신다는 것으로 모든 인류를 향한 구원자로서 묘사하고 있다. 기독교는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스라엘을 넘어 모든 인류를 위한 종교다. 특히, 의롭게 살고자 하는 자들과 이 땅에서 마음의 상함을 입은 자들에게 만물의 창조자가 그들과 가까이 있다는 복된 소식을 전해주는 종교다. 더불어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목하여 보고 계시며, 반드시 그들의 자취를 끊어버리시겠다고 경고하시는 종교다. 의롭게 살고자 하는 자여, 심령이 상함을 입은 자여, 이 하나님으로 인해 위로를 얻으시길. 오늘도 악을 일상으로 행하면서도 알지 못하는 자들은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시길(눈가리고 아웅하지 마시고)



[정리]


여느 시편과 그 메시지가 비슷하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를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1. 자기 백성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4절.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6절.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절.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8절.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절. 젊은 사자는 궁핌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의인과 마음이 상한자를 돌보시는 하나님


15절.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16절)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17절)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18절)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19절)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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