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박국 1:1-9 소통되는 하나님의 권위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하박국은 하박국 선지자가 받은 경고의 계시를 말한다. 계시의 형식은 하박국의 질문과 하나님의 답변 형식으로 진행된다. 하박국은 그렇게 도와달라고 기도했는데 왜 들어주시지 않는지, 왜 악과 불의가 일어나고 있는데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는지 묻는다. 하나님의 답변이 이어지지만 하박국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은 아니다. 


절별 해설

1:2 <<언제까지 들어 주지 않으시렵니까?>> 하박국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첫 번째 내용이다. 그토록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음에도 오랫동안 묵묵부답이신 하나님에게 따지듯이 항변하고 있는 것이며, 선지자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답답함으로 가득하다.               


1:3,4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내버려 두십니까?>> 악한 자가 활개를 치고 불의와 폭력이 난무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이와 같은 악에 대해새 아무런 심판을 행하지 않는가에 대한 항변이다. 이런 이유로 하박국은 욥과 함께 성경에서 <신정론> 문제를 제기한 본문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1:5 <<내가 놀라운 일을 하겠다>> 하나님게서 하박국에게 말하는 놀라운 일이란, 유다를 구원하기 위한 놀라운 일을 말함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악인들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되는 놀라운 일을 말함이다.


1:6 <<내가 바벨로니아 사람을 시켜>> 당시 바벨로니아는 앗시리아의 니느웨를 멸망시키고, 갈그미스에서 애굽이 주도하는 연합군을 대파함으로 신바벨로니아 제국을 건설하는 강대국이다. 하나님은 장차 바벨로니아 제국을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1:9 <<그들은 모두 싸우러 온다>> 바벨로니아가 전쟁을 할 때, 전력을 다하여 싸운다는 것을 말한다. 바벨로니아는 잔인하며(7절) 날쌔고 사납다.(8절) 그 군대는 빠르게 행군하여서 적을 무찌르며 많은 포로를 잡아가는 전쟁에 강한 민족이다. 


기도

하나님, 하박국이 하나님을 향해 외쳤던 항변이 저의 항변이기도 합니다. 불의하며 악한 세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답답함이기도 합니다. 하박국 묵상을 통해 마음의 답을 얻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하박국은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께 무례한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러실 수 있는지에 대해서 따진다. 특히, 악과 불의 폭력이 횡행하는데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시는가 힐난하는 듯 하기도 하다. 선지자가 하나님을 향해서 이런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경건한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낯설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의 답답함에서 나오는 울분과 억울함의 항변을 막으시거나 책망하지 않으셨다. 선지자의 입을 막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읽도록 하셨다. 그런 측면에서 성경의 하나님은 권위있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들의 목소리를 소중히 여기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권위는 우리의 억울함에 대한 호소를 품어 안으시는 권위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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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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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훔 3:11-19 하나님을 대적한 나라의 최후

 

찬송가:

 

여는 이야기

니느웨의 멸망이 얼마나 무르 익었는 말한다. 잘 익은 무화과나무 열매 같아서 흔들면 열매가 우수수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군인들은 힘이 없고, 성문들은 활짝 열린 것처럼 성은 순식간에 점령당할 것이다. 그 많던 상인들도 사라지고, 수비대와 관리도 도망간다. 왕과 통치자들은 잠에 빠졌다. 백성들은 모두 흩어졌다. 니느웨의 멸망은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절별 해설

3:12 <<네 모든 요새는 잘 익은 무화과나무 열매같아서>> 잘 익은 나무의 열매는 작은 흔들림에도 열매가 쉬 떨어진다.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니느웨의 모든 성이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져 내려 적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됨을 말한다.

 

3:14 <<요새를 굳건히 해 두어라>> 적의 침략이 있기 전 요새를 굳건히 해서 전쟁을 대비하고 이겨내라고 주시는 말씀이 아니다. 그렇게 해도 소용이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물을 길어 두고, 벽돌을 만들어 성벽을 수리해도 이 전쟁은 막을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3:15 <<메뚜기들이 작물을 먹어치우듯이>> 메뚜기가 다양한 의미로 언급된다. 본구절에서는 메뚜기들이 작물을 덮쳐 모든 양식을 먹어치우듯이, 불이 니느웨 성을 걷잡을 수 없게 일어나 성을 파괴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16, 17절에서는 많은 메뚜기가 한 순간에 사라지듯 물질적 풍요도 사라지고, 수비대와 관리들도 두려움으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말한다.

 

3:16 <<네가 상인들을 하늘의 별보다 많게 하였으나>> 니느웨가 얼마나 큰 성이었는가와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거래가 일어났으며 그로 인해 금전적 풍요가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물질적 풍요는 이제 니느웨 성의 함락과 함께 모두 사라지고 만다.

 

3:19 <<아무도 네 상처를 고치지 못한다>> 니느웨가 아직 죽음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상태이고 그 상처는 급속도로 니느웨를 멸망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니느웨의 운명을 표현한 말이다.

 

기도

주여, 악인은 잘 익은 무화과나무 열매와 같이 지금은 부요함으로 풍요롭지만, 하나님이 이 땅을 흔드시면 모두 땅에 떨어져 소멸될 운명임을 잊지 않고, 악인을 부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니느웨는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한 때 돌이킨 경험이 있긴 했으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니느웨는 여전히 잔혹했고 불의했다. 그로 인해 결국 니느웨는 피할 수 없는 진노와 심판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시편 1편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의인의 길은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게 할 것임을 말이다. 한 때 악인이 성공하고 승리를 장악하여 영구히 지속할 것 같지만, 시편 기자는 그들의 운명을 <바람에 나는 겨>에 비유했다. 한 순간 홀연히 사라지는 인생에 불과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세상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법칙이다. 따라서 우리는 악인의 자리, 악인의 길에는 서지 말아야 한다. 그곳에 많은 이익과 편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의인의 자리가 많은 불이익과 불편이 있더라도 우리는 악인의 자리에는 서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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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훔 3:1-10 심판받아 마땅한 니느웨

 

찬송가:

 

여는 이야기

계속해서 니느웨에게 임할 재앙과 멸망에 대해서 말씀한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는 니느웨 내부적으로 거짓과 살육 그리고 강포가 끊이지 않았던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심을 강조한다. 니느웨 성은 음란과 마술로 민족들을 유혹했다. 이와 같은 죄로 하나님은 니느웨를 수치스럽게 만들고, 아무도 니느웨를 위해서 위로해 줄 자가 없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절별 해설

3:1 <<화로다! 피의 도성이여!>> 니느웨 성을 피의 도성이라 말하고 있다. 이는 니느웨가 무고한 자의 피를 흐르게 하며, 거짓과 강포로 가득한 불의가 팽배한 곳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니느웨는 하나님을 대적한 죄도 있지만, 불의를 행한 죄도 적지 않았다.

 

3:3 <<사람들이 시체에 걸려 넘어진다>> 하나님이 니느웨의 죄로 인해 진노하시어 대적자를 통해 징벌하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 사람들의 시체에 결려 넘어질 정도라고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크고, 그 심판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준다.

 

3:6 <<너를 조롱거리로 만들겠다>> 니느웨는 강력했고 그래서 교만하고 주변 나라들에게 잔혹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진노로, 니느웨는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보인 사람처럼 부끄러운 형편이 된 것이다. 이를 지켜본 주변 나라는 니느웨의 멸망을 기뻐할 것이고 비웃을 것이다.

 

3:8 <<니느웨야, 너는 테베보다 나은 것이 없다>> 테베는 오늘날의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650km 가량 떨어진 나일 강 상류 쪽에 있었고, 이집트 문명의 중심지였다. 테베는 문명화된 도시이면서도,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강이 그 도시의 성벽이 되어줄 만큼 천혜의 도시인 것이다. 니느웨 성이 훌륭하다고 하지만 이집트의 테베만큼은 아니라는 것이다.

 

3:10 <<그러나 테베도 정복되었다>> 당시 최고의 문명과 힘, 천혜의 환경으로 보호를 받던 테베조차도 대적자에 의해 멸망당했다. 어린아이들은 내동댕이쳐졌고, 귀족들은 종이 되어 종으로 끌려갔다. 이것은 니느웨도 안전할 수 없고, 테베보다 더 크게 멸망당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기도

주여, 이 땅에서 가장 안전한 곳도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는 견딜 수 없습니다. 안전할 수 없는 이 땅에 의존된 삶이 아니라, 날마다 완전히 안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의존해 살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하나님이 하나님의 대적하는 자를 작정하고 심판하실 때, 단순하게 멸하고 없앤다고만 언급하지 않고 많은 경우 수치를 당하게 하도록 하신다.(나훔 3:5-7)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이 대적 자들에게 고통을 입은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거나 혹은 약자여서 보복할 수 없는 억울한 시간을 견디어 왔기 때문이고, 그들의 호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서 주어지는 심판이기에 그렇다. 따라서 대적자가 심판을 받을 때, 반드시 이것이 이들의 신원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서의 심판이라는 사실이 그들에게까지 확인시켜 주시는 것이다. 재판정에서 악인이 자신의 죄에 대한 재판관의 준엄한 판단을 받을 때 그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의 억울함이 해소되듯 하나님의 심판은 이와 같은 양면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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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훔 2:8-13 홀연히 임한 심판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본문은 계속해서 니느웨의 멸망에 대한 내용을 이어간다. 니느웨의 풍요로움이 모두 사라져 메마르고 금과 은은 모두 약탈당한다. 모든 세상을 사자처럼 호령하던 니느웨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다. 그들은 오히려 두려움에 떨게 되며, 종국은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일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계획하시고 실행하신 일이다.  


절별 해설

2:8 <<니느웨는 옛적부터 연못과 같았으나 이제는 물이 빠져 나가고 있다>> 니느웨가 물이 풍요로운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물이 빠져 나가 메마른 곳이 됨을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물만의 문제는 아니고 니느웨가 가지고 있는 많은 풍요함들이 한 순간 물이 빠져나가듯이 없어서 메마르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2:9 <<보물이 끝도 없이 많다>> 니느웨가 가지고 있던 물질적인 풍요가 얼마나 컸는지를 말하는 구절이다. 이와 같은 표현이 오히려 그 많던 것을 다 빼앗기고 약탈당한 니느웨의 운명을 더욱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2:10 <<마음이 녹아 내리고, 무릎이 후들거린다>> 파괴자들의 침략으로 인해 두려움에 휩쌓인 니느웨 백성들의 공포심을 표현한 말이다. 니느웨는 그 많던 은금을 빼앗기고, 폐허가 되고 만다. 너무 짧은 시간의 멸망으로 인해 백성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창백해 진다.  


2:11 <<사자들의 굴이 어디에 있느냐?>> 모든 동물들을 제압하고 호령하는 사자와 같던 니느웨의 거처가 어디로 사라졌는가 반문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자기의 새끼들을 위해서 많은 먹이를 잡아다 굴을 가득 채웠던 그 사자의 거처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12절) 조롱하는 것이다. 


2:13 <<니느웨야, 내가 너를 치겠다>> 역사적으로 니느웨를 멸망시킨 나라는 바벨론과 메데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의지가 담겨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바벨론과 메데를 통하여 니느웨를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렇게 진행되었다. 


기도

주여, 우리는 모든 만물과 만사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소서. 의인의 구원도 악인의 심판도 하나님의 손에 있는 줄 알고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니느웨의 멸망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던 무리들의 심판과도 유사하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역사의 마지막 날, 세상의 성 바벨론이 홀연히 멸망하게 되듯이 모든 나라를 호령하던 앗수르는 바벨론과 메데에 의해 멸망당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은 생각지 못한 순간에 온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상적인 일들을 하면서 아무 준비 없이 주님의 심판을 맞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향해서 깨어있으라고 요청하셨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주님이 더디 오리라 생각하여 자신이 마땅히 해야할 바를 잊고 살아가다 큰 봉변을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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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훔 2:1-7 높아진 자는 낮아지게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본문은 니느웨가 바벨론과 메데에 의해서 멸망당하는 모습을 그 자리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바벨론과 메데의 전차들이 니느웨 성 광장을 마음껏 달리는 모습이나 니느웨 백성들이 사로잡혀가면서 슬퍼하는 모습을 과거 일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이는 확실한 미래에 대한 서술 방식으로 봐야 할 것이다. 


절별 해설

2:1 <<힘을 다해 지켜라>> 하나님께서 나훔을 통해 니느웨가 당할 공격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파괴자가 오는 것을 알고 최선의 준비를 할지라도 니느웨가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조롱하는 조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만큼 침략자들이 강하며, 이것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심판임으로 견딜 수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2:2 <<여호와께서 야곱 백성을 이스라엘 백성처럼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본 구절은 야곱 백성의 회복을 약속해 주시는 말씀인데, 오히려 나훔 1:15과 연관지어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2:3 <<방패, 갑옷, 공격용 전차, 소나무 창>> 니느웨를 공격하는 바벨론과 메데의 군대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소재들이다. 또한 이들을 묘사함에 있어서 붉은색, 주홍색, 번쩍임, 흔들림의 시각적인 표현들을 사용하여 그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2:4 <<달리는 모습이 번개 같다>> 바벨론과 메데 군대들이 잘 훈련된 군인으로서 신속하게 움직이며 일사분란하게 니느웨를 공격해 들어오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파괴자들의 강인함을 말한다. 


2:5 <<그들은 쓰러질 듯 급히 성벽으로 달려가>> 니느웨의 왕이 장교들을 불러 성벽을 방어하도록 지시해 보지만, 이들의 방어는 바벨론과 메데의 공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력함을 말한다.  


2:7 <<여종들은 비둘기처럼 신음하고>> 백성들이 잡혀가고, 왕과 왕후, 왕자들과 신하들이 포로로 잡혀 감으로 그를 섬기는 여종들이 나라의 멸망 앞에 애통해 하고, 자신의 처지로 말미암아 가슴을 친다. 니느웨의 완전한 패배를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기도

주여, 하나님께서 만물과 만사를 다스리시고 운행하시는 줄 믿습니다. 악인을 잠시 징계의 막대기로 사용하시기도 하시지만, 반드시 심판하시고 멸하시는 분이신 줄을 믿습니다. 아멘.


맺는 이야기

니느웨는 난공불락의 성으로 알려져있었다. 그래서 니느웨의 침략을 받은 나라들은 그 나라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지 못했고, 니느웨의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들은 곧 그들에 의해서 멸망 당할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 니느웨 백성들은 교만했음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니느웨가 바벨론과 메데에 의해서 무너지고 말게 될 것을 나훔은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실제로 그와 같은 결과를 이루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은 결국 낮아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리다. 그리고 낮아졌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시 높아지게 될 것이다. 나훔은 높아진 자에게는 경고를 낮아진 자에게는 위로를 선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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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훔 1:9-15 대적자의 용도와 최후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본문은 니느웨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악한 계획을 세운 것을 지적하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니느웨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유다에 대한 회복을 이어서 말씀하심으로서 니느웨의 심판과 유다의 회복이 상호 연관관계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제압하시니, 유다는 절기를 지키고 하니님께 맹세한 것들을 지킬 것을 요구하신다. 


절별 해설

1:9 <<너희가 여호와를 대적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니느웨가 여호와를 직접적으로 대적하려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여호와의 백성인 유다 백성들을 위협함으로서 여호와를 대적하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니느웨를 오히려 하나님이 먼저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을 말씀하신다.


1:10 <<그들은 ... 포도주에 취한 사람 같다>> 술에 만취한 사람을 물리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듯이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들을 대적 하여 멸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듯 쉬운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말라 버린 지푸라기처럼 이내 타 버릴 존재에 불과하다.


1:12 <<유다야, 내가 너를 심판했지만 다시는 너를 심판하지 않겠다>> 유다도 하나님 앞에서 잘못이 없지 않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잘못에 대해서 니느웨 라는 막대기를 사용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니느웨라는 심판의 막대를 꺾으시기로 작정하셨다. 니느웨를 다시 유다를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하지는 않기로 한 것이다. 


1:14 <<네가 악하므로 네 무덤을 파겠다>> 하나님은 니느웨가 악함으로 그들의 자손을 끊고, 신전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겠다고 하신다. 이들은 민족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끊어 버리시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멸절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바벨론에 의해서 니느웨는 멸망한다. 


1:15 <<유다 백성아, 너희 절기를 지키고>> 나훔서가 니느웨 백성들의 멸망을 예언하는 말씀이지만, 동시에 이 예언의 말씀은 유다 백성들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심판하실테니, 이제 너희들은 절기를 지키고 하나님께 맹세한 것을 지키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현재 유다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적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수 있다. 


기도

주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주를 위해 당하는 고난 앞에서 이것은 나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임을 믿음으로 보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를 대적하는 악에 대해 두가지 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을 공격할 때, 사단은 우리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우리를 대적하는 자에 대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간주하시고, 그와 싸울 준비를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이라면 그 싸움이 하나님의 승리가 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악인이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일시적으로 그들이 성도들에게 악을 행하도록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악이 얼마나 큰가를 확인하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성도들을 정결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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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훔 1:1-8 단회적 회개가 온전한 구원은 아니다.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하나님이 니느웨에 대한 계시의 말씀을 엘고스 사람 나훔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특히 주를 거스린 자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은 견딜자도 막을 자도 없을 만큼 두려우신 분이다. 그런데 그 무서우신 하나님이 니느웨을 멸하시려 하신다. 


절별 해설

1:1 <<엘고스 사람 나훔이>> 엘고스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모른다. 다만 많은 학자들은 엘고스가 예루살렘과 가사 사이에 있는 유다 남부의 한 마을로 나중에 <엘케시>라고 불린 곳이라 생각하여 나훔을 남유다의 선지자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도 여러견해 중 하나다. 


1:2 <<보복하시며 몹시 노하시는 하나님이다>> 나훔서에서 주로 등장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심판하시는 여호와다. 특히 악한 사람들에게 보복하시며, 몹시 노하시는 하나님으로 강조된다. 이는 이전에 알고 있던 용서하시고 자비로운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모습니다. 


1:3 <<여호와는 쉽게 노하지 않으시며>> 이 말씀은 여호와는 쉽게 노하시지 않으시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호와께서 몹시 노하신 것은 니느웨의 죄가 얼마가 크고 깊은 지를 지적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분노가 참고 있는 것에서의 폭발한 것임을 드러내 주는 표현이다. 

<<구름은 주의 발에 밟혀 일어난 흙먼지다>> 이 표현은 문학적인 비유인데, 마치 사람이 메마른 땅을 걸을 때 흙먼지가 일어나듯 하늘에 떠있는 구름들이 거대하신 하나님이 심판하시기 위해 움직이실 때 일어나는 흙먼지 같음을 표현한 것이다. 


1:4 <<바산과 갈멜 지역이 메마르고 레바논의 꽃들이 시든다.>> 바산과 갈멜 그리고 레바논과 같은 비옥한 곳도 하나님이 말씀으로 물을 말리시면 메마른 곳이 되고 만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광대한 지역에 재앙을 일으킬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크심을 그 재앙의 영향력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1:8 <<그러나 홍수로 니느웨를 완전히 멸망시키시고>> 이 표현은 7절에서 하나님께 자기에게 피하는 자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것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은 니느웨에 대해서는 완전한 멸망을 선포하심을 강조한 것이다. 이제 니느웨는 물로 심판을 받아 완전한 멸망에 이르게 된다.  


기도

주여, 우리로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훔의 말씀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도 알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 속에 경외함을 더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선지나 나훔은 니느웨 백성을 회개로 이끈 이전 선지자 요나와 비슷한 메시지를 전한다. 니느웨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다. 이전 요나의 메시지를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를 들었던 니느웨의 백성들은 급속한 회개를 통해 그 진노와 심판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나 나훔 때에는 달랐다. 나훔이 전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는 그래도 이루어졌고, 바벨론에 의해서 니느웨는 멸망당했다. 그 중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고 돌이켰지만, 자신의 죄악에서 돌이킨 니느웨는 하나님의 용서 이후 다시 옛 자리로 돌아왔다. 영적 각성을 잊어버렸고, 폭력과 우상 숭배와 교만의 습관으로 되돌아갔다. 그 결과 니느웨는 돌이킬 수 없는 완전한 멸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단회적 위기의 극복이 온전한 구원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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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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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에 들어온 사람들


글: 김수억 간사


마태복음에는 '비유'가 많이 나온다. 그 많은 비유의 많은 비중을 '천국'이라는 주제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마태복음을 찬찬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쉽게 '천국은 ... 와 같으니'라는 문구를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천국'은 문자적인 의미로만 따진다면 '하늘 나라'를 말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이 유대인들을 주 대상으로 쓴 글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유대인들인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매우 조심하고 삼가고 있다는 것은 익히 들은 상식일 것이다. 그래서 마태복음이 아닌 마가 복음서에서는 '천국'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이 언급된다는 것을 다른 복음서와 조금만 비교해 봐도 알 수 있다.(비교, 마 4:17 / 막 1:15) 간단하게 말하자면, 마태복음에서 '천국'이란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와 같은 의미로 봐도 된다고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천국'이나 '하나님의 나라'나 글자의 차이 말고 무슨 차이가 있는가 생각하시겠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약간의 차이는 큰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천국'이라고 할 때, 성도들의 궁극적으로 기대하고 소망하는 나라가 '이 곳'이 아닌 '저기 어딘가'로 규정되기 쉽다. 문자대로만 본다면 '천국'의 반대말은 '이 땅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로 이해하면 그 의미는 약간 달라진다.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통치권의 개념으로 옮겨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문자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의 영역은 하늘일 수도 있고, 땅일 수도 있다. 이곳일수도 있고, 저곳일 수도 있다. 우리 안 일수도 있고, 우리 밖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공간적인 개념이 아닌, 누구의 다스리심을 받는가의 문제로 전환된다. 


따라서 우리가 마태복음에서 '천국'에 대한 비유를 읽을 때,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공간이냐?라는 정적인 개념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어떤 원리와 다스림으로 운영되는 곳인가로 읽어야 한다. 서두가 길었지만, 이런 이해가 어떤 분들에게는 필요했으리라 생각한다. 



천국은 품꾼을 얻어 자기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다(마 20:1)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집 주인(포도원 주인)의 행동을 관찰해야 하고 특별히 그 중에서 이상한 행동(왜냐하면 이 땅의 원리와는 다른 원리를 제시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 땅의 원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좀 이상한 것이고, 그것이 천국 비유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는 열쇠가 된다.)에 주목해야 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상한 행동은 오후 5시(십일시)까지 아무 일도 얻지 못해 놀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이 사람이 포도원 주인의 부름을 받아 1시간이라도 일했다는 것에 주목해서는 안된다. 이 사람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고, 할 수도 없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 포도원 주인의 호출이 없이는 하루를 공친 존재인 것이다. 누구도 하루 해가 지는 그 순간에 사람을 불러다 일을 시키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포두원 주인은 그 사람을 불러 들였다. 


왜 이 사람은 오후 5시까지 놀고만 있었는가?(마 20:6) 이 사람들은 품꾼으로 써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20:7)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노동 시장에 늦게 나온 사람일 수 있다. 그렇다면 게으르거나 책임감이 약한 사람일 수 있다. 어떤 이유든 사회는 이런 사람들의 변명에 귀기울이지는 않다. 인력은 언제나 넘치니까. 어쩌면 이른 아침부터 나와있었지만 고용주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한 사람일 수 있다. 체격이 외소해서 노동 효율이 적은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신체적인 장애가 있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고용주의 입장에서 인상이 별로 였을 수도 있다. 암튼, 오후 5시가 되도록 이들은 부름을 받지 못함으로 소외 되었다. 이는 이 사람이 이 사회에 무능하며 무가치한 존재 즉 잉여에 불과하다는 무언의 싸인이였다.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 말처럼 이들의 마음을 후벼파는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 말을 부인할 수 없었고 정말 그들은 아무도 자신을 써주지 않아 놀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집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가장이 어찌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 나라의 반전은 여기에 있다. 포도원 주인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이 사람을 포도원 주인인 천국은 불러들인다.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20:7) 


예수님께서 왜 세리와 죄인들을 가까이 하셨는지 왜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버려진 병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는지 오히려 그들만을 위해 오신것처럼 행동하셨는지 이제는 더욱 분명해 진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이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예수가 복음(자기와 같이 버려진 존재를 담아주셨기에)인 것처럼, 오후 5시에도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 나라'는 복음이 된다. 왜? 다른 포도원 주인들은 오후 5시까지 놀고 있는 잉여들에게 자기의 포도원에는 들어 올 수 없다는 신호를 주었지만, '하나님의 나라'인 포도원 주인은 그들의 처지를 알자 자기의 포도원으로 들어오라고 초청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들어간 포도원에서 그들은 무엇인가를 했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만큼 일했다. 아니 아무것도 한 것이 없고, 자신을 부른 포도원 주인에게 어떤 유익을 끼쳤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런데 주인은 다른 일꾼보다 먼저, 그 사람에게 하루치의 품삯을 주었다. 일을 한 사람에게는 그 삯이 은혜가 아니라 보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은 자에게 주어진 삯은 은혜다.(롬 4:4,5) 오후 5시에 들어간 사람이 경험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 비유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적어도 하나 더 있다고 본다. 이른 아침에 온 사람의 모순되지만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공감되는 항변을 통해서 주시고자 하는 교훈도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다루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떤 일꾼으로 생각하는가? 이른 아침에 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고도 하나님에게 불합리의 죄를 뒤집어 씌우며 불평하는 성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오후 5시에 들어온, 이 세상에서는 '잉여'로 판명된 그 순간에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로 인정하셨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신앙 생활하는 우리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성도의 또 다른 이름은 '오후 5시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 간이역 2.0 / 2014. 2월호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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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미가 7:14-20 과거는 미래의 소망이다.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본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양 떼를 돌보듯 지켜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이전 조상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진실하고 자비로우시다는 고백으로 마무리 된다. 하나님께서 다시 이집트에서 인도하실 때처럼 기적을 베푸시며, 자기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실 것을 미가는 고백한다.


절별 해설

7:14 <<주여, 주의 지팡이로 인도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양 떼를 인도하여 맑은 물 푸른 초원으로 인도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자기 백성의 목자가 되어주시길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여주십시오>> 바산과 길르앗은 목축하기 좋은 비옥한 땅으로(민 32:1 대상 5:9, 시 22:12) 풍요와 비옥 그리고 안정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이스라엘이 과거에 누렸던 풍요의 시대로 다시 회복하게 해달라는 바램이다. 


7:16 <<놀라서 손으로 입을 가릴 것이며 귀는 막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때, 이집트의 바로에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주변의 많은 나라들은 놀라고 두려워했다. 그 소식을 듣고 이방인들의 놀라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얼마나 충격적이고 큰 일인지를 반영한다.


7:17 <<그들이 뱀처럼 잿더미 속을 기어가고>> 그들이라 함은, 이스라엘 주변이 강대국을 포함한 이방 나라들을 말한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모습을 보며 이스라엘을 비웃고 조롱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을 위해 놀라운 일을 하자, 역으로 부끄러워하며 보잘 것 없이 된 것을 뱀처럼 잿더미 속을 기어간다고 표현한 것이다. 


7:18 <<주와 같은 분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노하지 않으심과 자비하심이 다른 어떤 신보다 크시기 때문에 하는 고백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죄 지은 자기 백성을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 큰 죄 가운데에서도 다시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백성이 드리는 찬양이다.


7:20 <<오래 전에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대로>> 죄 지은 백성이 하나님을 향해서 다시 회복을 기대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래 전에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에 있어서 언제나 신실하시고 그의 백성에게 자비하시다. 


기도

주여, 이 땅에 주와 같은 분이 없습니다. 한 번 하신 언약에 있어서 언제나 신실하시고, 우리의 연약함과 죄에 대해 인내하시고 우리의 목자되심을 포기하지 않으시니 감사합니다.


맺는 이야기

이스라엘의 전 역사 속에서 언제나 하나님과 맺었던 언약,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구원하셨던 역사는 늘 반복적으로 기억되고 미래의 소망으로 작동된다. 백성들의 죄와 이방 나라들의 침략으로 위태로운 시대를 살면서도 이들은 언제나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언약에 대해서 신실하게 행하실 것을 믿었다. 또한 이들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있던 자신들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해낸 사건을 잊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어떤 강력한 나라에 종속되어 있다고 해도, 그 때의 그 하나님께서 과거와 같은 일을 반복하시면 충분히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을 잊지 않았다. 우리가 성경의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어떤 언약을 맺고 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어떤 기적을 행하셨는지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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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미가 7:7-13 진노 중에 베풀어진 자비

 

찬송가:

 

여는 이야기

본문은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기도를 듣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법정에서 변호를 해주시고, 의로운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며 자신들을 비웃었던 이방인들로 오히려 부끄럽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 날이 되면 여러 나라로 흩어졌던 백성들이 돌아오며 회복될 것을 약속하신다.

 

절별 해설

7:7 <<나는 여호와의 도우심을 바라며>> 자신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있던 백성들은 이제 자신의 죄를 돌이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하게 된다.

 

7:8 <<지금은 재앙의 그늘 속에 앉아 있으나>> 이 백성이 당한 진노도 미래의 일이지만, 그 진노의 재앙 속에 있던 백성들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님을 말한다. 그들은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완전히 잊으신 것은 아니라는 것을 믿는다. 여호와께서 이들의 등불이 되어 주실 것을 기대한다.

 

7:9 <<나를 위해 의로운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이 백성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진노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의 의로운 판결을 기대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판결은 이 언약 백성들을 의롭게 하시어 이들의 편을 들어주실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이다.

 

7:11 <<성벽을 다시 세워야 할 그 날이 오면>> 성벽을 다시 세워야 할 날이 온다는 것은 기존의 성벽이 허물어진다는 것을 전제한다. 미가가 활동하던 시대가 아직 유다의 멸망이 있기 훨씬 전이기에 이것은 다가올 유다의 멸망을 예언한 것이면서, 동시에 그 성벽을 다시 회복하게 되는 시대를 예언한 것으로 보인다.

 

7:12 <<여러 나라로부터 너희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11절과 마찬가지로 이 말씀은 이 백성이 여러 나라로 흩어지게 될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북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으로 흩어진 백성들은 약속된 때가 되면 다시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와 회복될 것이다.

 

기도

주여,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언약을 잊지 않는 백성이 되게 하여 주소서. 주의 백성을 잊지 마소서!

 

맺는 이야기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 측면을 배우게 된다. 하나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진노와 재앙을 내리시지만, 동시에 그 가운데에라도 언제나 긍휼과 자비를 베푸실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을 간구할 때, 하나님은 그 자비의 손을 내밀어 그들을 구원하신다. 그래서 성도들은 진노 중에라도 하나님의 긍휼을 잊지 않고 의지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하시는 과정 속에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기 위해 사용하셨던 이방의 나라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높아진 교만을 꺾으신다. 더불어 그들의 죄악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신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의 때가 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불러 모아 회복되지만, 오히려 대적자들은 심판을 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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