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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30절.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절.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절.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35절.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절.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절.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절.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절.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절.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절.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절.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절.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도중 자신의 능력이 나간 것을 아셨다. 그리고 무리 가운데 돌이켜 누가 내 옷에 손을 댓는지 물으신다. 이유를 모르는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 미는 상황에서 누가 손을 댓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한다. 

2. 예수님은 무리를 둘러보셨고, 예수님의 옷 자락에 손을 대서 몸이 나았다는 것을 알았던 혈루병 걸렸던 여인은 자신이 에수님의 허락도 없이 몰래 그렇게 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꼈고, 그 모든 사실을 예수님 앞에 실토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은 그 여인을 향해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셨다. 이 여인이 병에서 놓여  건강할 것임을 주님의 입을 통해서 확인받게 되었다. 

3. 그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회당장의 딸이 죽었음을 알린다. 딸이 죽은 상황에서 예수님을 더 이상 번거롭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은 오히려 절망한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으라’고 독려하신다. 예수님은 긴급한 상황임을 인식하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회당장의 집으로 가신다. 

4. 회당장의 집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딸의 죽음으로 인해 통곡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오히려 비웃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아이의 부모와 세 명의 제자만 데리고 딸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셔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시자 소녀가 곧 일어나 걸었다. 소녀의 나이는 12살이었다. 

5. 아이가 살아나자 사람들은 크게 놀라고 놀랐다. 예수님은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심으로 이야기가 마친다. 


[질문하기]

1. 예수님은 왜 급한 상황 속에서 굳이 멈추어 혈루증 걸린 여인의 공개적으로 사람들에게 알게 하셨을까? 

  1) 단순히 혈류병 걸린 여인이 예수님의 옷 자락에 손을 대어 치유되었다는 것만을 알리고자 한 것은 아니다. 

  2) 그 이후 예수님의 행동,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혈루병 걸린 여인이 회복되었고 단순히 혈루병을 고쳤을 뿐 아니라 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신 것과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병에서 놓여 건강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무리들에게 알리고자 한 것이다. 

  -> 예수님의 옷 자락에 손만 대어도 낫겠다는 믿음(세상의 모든 의사들은 날 고치지 못했지만)을 가지고 예수님을 의지할 때 예수님은 기꺼이 그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옷 자락만 손을 댄다는 측면에서 작은 믿음이라고 할 수 도 있고, 세상 의술은 실패했기 때문에 유일한 소망이라는 측면에서 절박함으로 예수님을 의지했다는 측면에서는 큰 미음이라고 볼 수 있다.)


2.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쳐주시기 위한 이야기가 다른 병 치유 사건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1) 회당장 야이로의 딸 사건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것을 넘어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예수 안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이전의 치유 사건과 다른다. 

  2) 사람들은 회당장의 딸이 죽자 더 이상 예수님을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예수님께서 그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비웃었다. 사람들에게 기적의 한계는 사망 전까지다. 사망 이후에는 누가 오더라도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생명이 위독한 순간에는 예수님을 의지했지만, 사망한 이후에는 더 이상 의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수님도 죽음의 영역만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그래서 예수님은 더욱 긴급하고 신속하게 그 소녀를 살려내셨다. 예수님은 죽음까지도 극복해 내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 구체적인 첫 사건이다. 


[묵상하기]

1. 예수님께서 적극적으로 찾아가 물어보시고 낫게 해 주시는 분이면서 동시에 무심히 지나가시는 상황(적극적으로 미리 찾아와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는 상황)에서 ‘믿음’을 가진자가 에수님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 분의 옷 자락에 손을 대면 낫겠다는 생각으로 예수님을 찾아와도 그 고민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시다. 문제를 가진 인생이 먼저 적극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예수를 찾아 오는 것을 통해서 구원이 임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나무라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고 그 믿음대로 병이 낫게 하셨고 구원을 말씀하셨다. 

2. 사망은 인류가 가지는 한계일 뿐, 하나님의 한계는 아니다. 하나님의 한계가 있을 수 없듯이 예수님 또한 마찬가지다.  인생이 먼저 한계를 긋고 시도하지 않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서는 죽음 조차도 자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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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1절.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절.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절.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절.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절.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절.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거기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고(고침받기를 원해서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예수님이 그 손 마른 사람을 고치는가 주시하고 있었다. 

2. 예수님은 오히려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하신듯 하다. 그 손 마른 사람을 한 가운데 일어서라고 하고 모인 사람들을 향해서 질문하시고 그들 스스로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를 답하도록 하셨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무엇이 옳은 일인가?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 무엇이 옳은 것이냐?” 무리는 잠잠했지만 그것은 모르거나 알 수 없다는 반응이 아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옳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었다. 

3. 문제의 핵심은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에 있는 것이었다. 안식일 규정도 문제가 없고,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안식일의 본질은 잊고 껍데기를 율법주의적으로 붙잡고 강요하고 있는 이들의 ‘완악함’이 문제인 것이다. 주님은 그들에게 탄식하시고 노하셨다. 

4. 예수님은 한쪽 손 마른 자에게 ‘네 손을 내밀라’하시고 그가 내밀매 손이 회복되게 하셨다. 

5. 이런 현장을 직접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에 헤롯당과 함께 예수를 죽이는 것에 대한 논의를 한다. 이런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완악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질문하기]

1. 예수님은 이 사건을 계기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왜 굳이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심으로 스스로를 생명의 위협에 빠지도록 자처하셨는가? 

  - 예수님은 치유하시는 능력이 있으시고 손 마른 사람은 긴급한 환자는 아니기 때문에 다음날 오라고 해서 고치셔도 문제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괜한 갈등을 일으키지도 않고, 실속도 있는 행동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안식일에 그 병자를 공개적으로 고치심을 통해 ‘안식일이 무엇을 위한 날’인지, ‘하나님이 왜 안식일 규정을 주셨는지’ 명확하게 알리기 원하셨다. 그렇게 하려면 안식일, 회당에서 공개적으로 손 마른 자를 고치시는 것 만큼 좋은 효과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바리새인들은 그 손 마른 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지켜보고 있었으니 더욱 효과적)

2. 과연 안식일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 날인가? 

  - 안식일은 구별된 날로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는) 일하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날이다.(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처럼)

  - 그러나 안식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되는 날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서나 선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날이다. 예수님이 손 마른 자를 안식일에 고쳐주시고 회복시켜 주셨던 것처럼.

3. 예수님께서 탄식하시며 분노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 완악함이다. 가르쳐주어도 듣지 않고, 깨닫게 해주어도  받아들이지 않는 완악함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이 옳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면서도 귀를 닫고 오히려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에 대해서 주님은 탄식하시고 분노하신다. 

[묵상하기]

1. 안식일은 자신의 생명, 자신의 확장, 자신의 번영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보여주는 날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사회적 선을 행함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뜻을 이 땅에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일꾼으로서의 충성을 보여주는 날이어야 하는 것이다.    

2. 사람들이 죄 때문에 망하는게 아니다. 죄를 짓고도 돌이키지 않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 죄를 숨기고 부정하고 죄를 드러낸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완악함이 결국 자신을 멸망에 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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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스바냐 3:11-20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

 

찬송가:

 

여는 이야기

스바냐의 마지막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실 때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예루살렘 안에 있는 교만한 자들을 모두 없애실 것이기에 남아 있는 자들은 더 이상 악을 행하지 않을 것이고 평안한 것임을 말씀하신다. 이제 원수를 쫓아버리고 이스라엘의 왕이신 여호와가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지 말고 평안할 것을 약속하신다.

 

절별 해설

3:11 <<다시는 예루살렘에 있는 내 거룩한 산에 교만한 사람이 없게 하겠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큰 일을 이루실 날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교만한 사람이 없도록 함으로 정결하게 하실 것임을 말한다. 교만한 사람이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함이다.

 

3:12 <<나는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내 성에 남겨 놓을 것이다>> 가난하고 겸손하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이고 성품적인 측면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가난하고 겸손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들만을 하나님의 성에 남겨 놓을 것이란 말이다.

 

3:15 <<여호와께서 너에 대한 심판을 그치셨고>> 하나님께서 그 동안 시온의 딸 이스라엘에게 대해서 행하셨던 모든 심판이 그쳐지게 되었음을 말씀하신다. 이 심판은 이스라엘에게는 힘들과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그로 인해 정결하게 되어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있게 되었다.

 

3:16 <<그 날에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가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스라엘 밖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백성을 향해서 부러워하듯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낙심할 필요도 없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며 주님의 사랑 안에서 편히 쉬고 노래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만큼 회복된 이스라엘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만큼 아름다운 곳이 된다.

 

3:20 <<그 때에 내가 너희를 모으겠다>> 약속하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흩어진 자기 백성들을 다시 모아들이시고, 자기 백성을 해친 자들을 모두 벌하실 것임을 약속하신다. 마치 한편의 역전 드라마를 방불케 하심으로 자기 백성들의 수치는 회복시켜주시고, 대적자들은 부끄럽게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기도

하나님, 저희들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지금의 고난이 연단의 과정이며 정결케 되는 과정임을 믿게 하시고, 내 안에 남아있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시간임을 알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성경의 역사는 단순히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역전의 승리를 말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긴장감이 있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약속을 가진 자들에게는 절망의 순간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게 한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날의 역전을 말한다. 사단의 권세가 세상을 장악하는 것 같지만, 결국 다시 오실 주님으로 인해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도행전도 마찬가지다. 복음을 전하려는 성도들을 박해하자 복음은 오히려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달된다. 예수는 죽음을 당하는 실패를 끝나는 것 같았지만, 부활로 역전하셨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자들은 배신자로 끝나는 줄 알았지만, 오히려 순교자가 되었다. 구약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은 멸망한 듯하지만, 약속대로 70년 만에 다시 회복되는 역사를 가진다. 에스더 이야기, 룻기의 이야기... 모두 마찬가지다. 그래서 성도는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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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박국 3:1-9 오늘을 견디는 힘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하박국 3장은 하박국의 기도 내용이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이 시대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진노하심으로 바빌로니아를 징계의 막대기로 사용하셨지만, 자비를 잊지 말아달라고 요청한다. 하박국이 기대하는 놀라운 일은 하나님의 임하심으로 대적자들이 두려워 떨게되는 심판임을 말한다. 


절별 해설

3:1 <<시기오놋에 맞춘 기도>> <시기오놋>는 열정적인 시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빠른 리듬과 열정적인 감정의 변화를 유도하는 음악의 한 형태라고 한다. 하박국의 감정이 그 만큼 강하고 긴장감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3:2 <<우리 시대에 주의 놀라운 일을 다시 행하여 주십시오>> <주의 놀라운 일>이란 시대의 흐름과 역전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것이다. 지금은 바빌로니아의 침략에 무력하게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실 때 행하셨던 기적과 같은 일을 이 시대에 다시 행하시길 기도하는 것이다.  


3:3 <<하나님은 남쪽 데만에서... 바란 산에서 오십니다>> <데만>은 에돔의 주요 거주지 중에 하나이고, <바란 산>은 에돔과 시내 산 사이의 산이 많은 지역이다. 특별히 본절에서 이 지역을 언급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70인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현현하셨던 장소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민 11:16,17)


3:4 <<주께서 광선 속에 그 능력을 감추십니다>> 주는 밝은 빛으로 묘사되었는데, 그로부터 나오는 밝은 빛으로 인해 그의 실체적인 능력은 오히려 숨겨져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실 때를 연상하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시기 전에 우레와 번개로 나타나셨고, 그것만으로도 이스라엘은 두려워했다.(출 19:16, 20:18)


3:7 <<구산의 장막들이... 미디안의 장막들이>> <구산>은 메소포타미아의 왕 <구사 리사다임>을 가리키는 것이고, <미디안>은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민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민족이지만, 이스라엘의 사사 옷니엘과 기드온에 의해서 각각 패했던 민족이다. 과거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로 있었던 승리들이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도

주여, 이 땅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은혜를 허락하여주시옵소서. 과거 평양의 대 부흥이 과거의 역사로만 끝나지 말게 하시고 저와 이 시대의 교회 위에 임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과거의 역사는 과거로만 끝나지 않는다. 하박국은 옛 영광을 다시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옛 영광의 사건은 단연 출애굽 사건이다. 당시 세계의 절대 강자인 이집트의 바로를 하나님은 보란 듯이 제압하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크심이 드러난 대표적인 사건이다. 오늘 본문 속에서는 사사 시대의 구원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메소포타미아의 왕 구산 리사다임을 제압한 옷니엘과 수 많은 미디안을 300명의 군사로 이긴 기드온의 역사도 등장한다. 과거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현재의 고난을 견디는 힘이 되고, 미래적 소망으로 이끈다. 성도의 과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고, 미래적으로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이 사실이 오늘을 견디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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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미가 7:7-13 진노 중에 베풀어진 자비

 

찬송가:

 

여는 이야기

본문은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기도를 듣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법정에서 변호를 해주시고, 의로운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며 자신들을 비웃었던 이방인들로 오히려 부끄럽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 날이 되면 여러 나라로 흩어졌던 백성들이 돌아오며 회복될 것을 약속하신다.

 

절별 해설

7:7 <<나는 여호와의 도우심을 바라며>> 자신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있던 백성들은 이제 자신의 죄를 돌이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하게 된다.

 

7:8 <<지금은 재앙의 그늘 속에 앉아 있으나>> 이 백성이 당한 진노도 미래의 일이지만, 그 진노의 재앙 속에 있던 백성들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님을 말한다. 그들은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완전히 잊으신 것은 아니라는 것을 믿는다. 여호와께서 이들의 등불이 되어 주실 것을 기대한다.

 

7:9 <<나를 위해 의로운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이 백성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진노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의 의로운 판결을 기대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판결은 이 언약 백성들을 의롭게 하시어 이들의 편을 들어주실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이다.

 

7:11 <<성벽을 다시 세워야 할 그 날이 오면>> 성벽을 다시 세워야 할 날이 온다는 것은 기존의 성벽이 허물어진다는 것을 전제한다. 미가가 활동하던 시대가 아직 유다의 멸망이 있기 훨씬 전이기에 이것은 다가올 유다의 멸망을 예언한 것이면서, 동시에 그 성벽을 다시 회복하게 되는 시대를 예언한 것으로 보인다.

 

7:12 <<여러 나라로부터 너희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11절과 마찬가지로 이 말씀은 이 백성이 여러 나라로 흩어지게 될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북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으로 흩어진 백성들은 약속된 때가 되면 다시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와 회복될 것이다.

 

기도

주여,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언약을 잊지 않는 백성이 되게 하여 주소서. 주의 백성을 잊지 마소서!

 

맺는 이야기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 측면을 배우게 된다. 하나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진노와 재앙을 내리시지만, 동시에 그 가운데에라도 언제나 긍휼과 자비를 베푸실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을 간구할 때, 하나님은 그 자비의 손을 내밀어 그들을 구원하신다. 그래서 성도들은 진노 중에라도 하나님의 긍휼을 잊지 않고 의지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하시는 과정 속에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기 위해 사용하셨던 이방의 나라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높아진 교만을 꺾으신다. 더불어 그들의 죄악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신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의 때가 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불러 모아 회복되지만, 오히려 대적자들은 심판을 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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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한 모금]


1. 말라기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날이란, 교만하고 악한 자들에게 대한 불 심판의 날이다. 완전히 소멸될 것을 말씀하신다. 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기쁨과 영광의 날이 된다. 주님의 재림의 때가 성경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날임에는 분명하다. 그 날이 되면 양과 염소가 나누어지며, 알곡과 가라지가 분명하게 갈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날의 징후는 주님의 재림 때에만 나타났던 것은 아니다. 주님의 초림때에도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헤롯의 무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기 위해서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과 목동들로 나누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 속에서는 이 둘은 분명하게 갈리기 보다는 서로 섞여있기도 하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다게 배신했다가 다시 쫓게되는 과정이 있듯이 말이다. 


2. 말라기 서의 마지막에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향해서 모세의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고 했고,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엘리야가 올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엘리야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들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돌이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만난 구약의 인물은 모세와 엘리야다. 이것은 말라기서 4장의 말씀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모세의 역할, 하나님의 법을 온전하게 하셨다는것과 또한 엘리야의 역할,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기 위한 역할 모두를 감당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와 같은 성취를 이루신 분이라는 것을 변화산 사건을 통해서 마태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3.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를 마쳤다. 구약 전체를 마친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만족감이 있다. 감사하다. 





[성경 한 장]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1)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라.

   (1)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2)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 용광로 불 같은 심판의 날이다.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지푸라기처럼 불타 없어질 것을 말한다. 교만한 자와 악행하는 자에 대해서 심판을 경고하신다.


   (3)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 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4)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5)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 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대해서는 영광과 승리를 보장하며, 악인을 밟아 재와 같이 여기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교만한 자와 경건한 자를 대조하며, 교만한 자는 멸망하며 경건한 자는 영광스럽게 드러나게 하신다. 



2. 너희는 하나님이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해서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라. 

  2)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3)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 다시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서 지키게 하려고 하셨던 법을 기억할 것을 요구하신다. 그 역할을 위해서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시겠다고 하셨다.(마 17장에서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봤던 구약 인물은 모세와 엘리야다.) 모세는 법을 대표하는 인물로, 엘리야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 백성의 상한 마음을 다시 회복시켜주는 역할로 언급된다. 법이 회복되고 마음이 회복되는 역할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이와 같은 하나님의 행하심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게 될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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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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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봄 비가 올 때,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그리하면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 채소를 얻게 하리라.


2. 그런데 너희들이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드라빔과 복술자를 헛되게 의지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백성들이 양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였다.


  * 비가 필요할 때, 하나님께 구하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헛된 우상을 의지하여 자신들의 필요를 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백성과 목자들에게 분노하고 벌하셨던 것임을 지적하신다. 


3.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께서 유다 족속을 돌보아 그들을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라.


  1) 모퉁잇돌이 그에게서, 말뚝이 그에게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서, 권세 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서 나올 것이다. 

  2)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한즉 대적하여 말탄 자들이 부끄럽게 될 것이다. 

  3)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고,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이 돌아오게 하리라.

  4) 내가 그들을 내버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될 것이다. 

  5)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시며 즐거워할 것이다. 그들의 자손을 보고 기뻐하리라. 


  * 그러나 이제는 달리 하신다. 마치 전에 이 백성을 내버린 적이 없던 것처럼, 완전하게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시 유다 민족에게서 구원자(메시야)를 세울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유다와 요셉이 견고하게 설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긍휼이 여기셔서 돌아오게 할 것임을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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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나님께서 그들을 휘파람을 불어 불러 모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구속하셨기 때문이다. 


  1) 이전의 번성하던 것처럼 번성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그들을 여러 백성들 가운데 흩을 것이지만, 그들이 먼 곳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살아서 자녀들과 함께 돌아올지라.

  3) 하나님께서 이들을 애굽에서 돌아오게 하고, 앗수르에서 모아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 것인데, 그들이 거할 곳이 부족할 것이다. 

  4) 하나님이 그들을 고난의 바다를 지나갈 때에, 바다 물결이 침으로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를 것이다.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규가 없어지리라. 


  * 새롭게 돌아오는 백성들은 애굽에서 돌아오고, 앗수르에게서 잡혀갔던 곳에서 돌아오는 것이다. 그 수가 적지 않아 길르앗과 레바논이 부족할 것이라고 말한다. 흩어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풍성해진 백성을 말하는 것이다. 애굽의 거주함으로 더욱 풍성해졌던 이스라엘처럼. 앗수르와 바벨론으로 인해 포로로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 풍성하게 되어 돌아오게 될 것을 스가랴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앗수르의 교만과 애굽의 권위를 낮추셨음을 말한다. 


  5) 하나님이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라. 



[묵상 한 모금]


1. 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분노하시고 벌하셨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


2. 6절에 '그들은 내가 내버린 일이 없었음 같이 되리라'는 구절은 이전과 같은 회복을 약속하시는 말씀이다. 마치 다친 곳이 다치기 전처럼 완전하게 회복될 것을 말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내버려짐으로 인해 고통이 컸지만, 그것을 상쇄하고 남을 만큼의 큰 회복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관계는 끊어질 수 없는 관계를 끊었다가(거의) 다시 회복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부모가 되어 관계를 회복할 것이며, 다시 결혼 관계를 회복하여 가정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3. 이 말은 9절의 표현으로 하면, 여러 백성들 가운데 흩었다가 다시 불러 모을 것이라는 것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전에 번성하던 것처럼 번성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들을 데리고 오려면 이들을 붙잡고 있는 강한 자들에게서 빼앗아 와야 한다. 그들은 이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애굽의 바로에게서는 큰 재앙을 통해서, 홍해를 가르는 기적과 심판으로 빼앗아 오셨고, 앗수르와 바벨론으로 흩어진 백성들에게 대해서는 고레스를 통해 보내도록 하셨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모든 제국의 권력을 제압하여 낮아지게 하시기도 하고,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기도 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더욱 부각된다. 


4. 내 주었다가 다시 데리고 와서 전과 같이 되는 것이 본전에 불과하고 시간만 낭비했다고 볼수는 없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행하였는지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 얼마나 큰 하나님이신지도 밝혀지게 되기 때문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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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척량줄을 잡은 사람의 환상


  1) 스가랴가 본즉 한 사람이 측량줄을 그의 손에 잡고 있어서, 스가랴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예루살렘을 측량하기 위해서 간다고 답한다. 

 

  * 건축하기 위해서 먼저 측량줄로 너비와 길이를 재듯이 이 사람은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기 위해서 측량줄을 잡고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말하는 것 같다. 


  2) 다른 천사가 와서 스가랴를 향해서 말한다. 측량줄을 잡은 그 소년에게 가서 예루살렘은 사람과 가축이 많아서 성곽이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고 말하라고 말씀한다. 

  3) 여호와는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 성곽을 짓기 위해서 측량사가 예루살렘으로 가지만, 지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불성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큰 격려가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예루살렘을 떠나신 하나님이 이제 다시 오셔서 예루살렘의 불성곽이 되어 주신다니 말이다. 


2. 북방 땅에 사로잡힌 시온들에게 그 땅에서 도피하라고 말씀하신다. 


  1) 바벨론 성에 거주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지니라.

  2) 여호와께서 스가랴를 보내 너희를 범한 자들에게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들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


   * 바벨론이 오히려 멸망하게 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레미야 시절에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 가서 머물며 살라고 말씀하시더니 이제 때가 되어 바벨론으로 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은 오히려 능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3) 시온의 딸아 노랙하고 기뻐하라. 

   (1) 하나님이 이제 너희 가운데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2)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나는 네 가운데 머물리라.

   (3)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라.

   (4) 모든 육체가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심이라. 

  

  * 이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일어나신다.(바벨론 포로의 시기를 보내는 때는 마치 잠자고 있는 것 같았다가) 아무도 하나님을 막을 수 없다. 심지어 세계의 제국인 바벨론조차도. 매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스가랴는 주고 있다.



[묵상 한 모금]


1. 측량줄을 가지고 성곽을 건축하기 위해 가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희망적인데, 오히려 가지 말라고 말함으로서 무슨 일이가 싶다.(혹 다시 절망의 메시지를 전하시려나?) 그러나 반전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돌로된 성곽이 아닌 하나님 스스로가 불로된 성곽이 되어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으니.. 듣는 이로 하여금 감격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2. 하나님은 참으로 문학적이시다. 아니, 문학을 아시는 분이고 문학을 활용하시는 분이시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많은 문화적 유산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은 반전에 반전을 활용하시어 자신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하시는 능력을 가지셨다. 


3. 하나님이 돌아오신다. 잠자고 있던 용이 일어나듯이 바벨론 통치 기간에 떠나버리시고 주무시고 계시는 것 같았던 하나님이 이제 서서이 움직이신다. 기지개를 켜신다.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머물던 곳에서 그들을 불러내어 오신다. 열국과 하나님을 대적하였던 모든 것들은 이제 잠잠할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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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1)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다.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2) 하나님께서 처녀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실 것이고, 너는 즐거워하면 춤추며 나오리라. 

  3)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파수꾼들이 이야기 하는 날이 올 것이다. 


  *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을 앞두고 있지만, 돌아올 희망을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알려주신다. 이것이 절망중에 소망이다. 지금은 절망이지만, 그 절망을 거치고 나면 희망의 결과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다.  


2.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1)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2) 하나님께서 그들을 북쪽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와 잉태한 자와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 큰 무리를 이루어 올 것이다. 

  3) 그들은 나의 인도함을 받고 올 것인데, 물있는 계곡의 곧은 길로 가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라. 


  * 돌아오게 될 때, 맹인과 다리 저는 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회복될 하나님의 나라는 이전과 달리 장애를 가진 자들에게도 열려있는 곳이다. 이전보다 더 풍성해졌고 완전해졌다. 고난을 거치면서, 환난을 거치면서 더 넓어지고 더 포용적이되는 것이 바로 참된 예루살렘이다. 천국은 온전한 사람만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천국에도 맹인과 다리 저는 자들도 존재할 것이다. 천국이 이 세상과 다른 것은 그들이 차별과 불편함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받아들여짐과 배려를 받으며 함께 어우러지는 곳이 천국이다. 


3. 이방인들이여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라.

  1)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 떼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

  2)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다. 

  3) 하나님께서 회복하시어, 그들의 심령은 물댄 동단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1)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린다. 

  2) 네 울음 소리를 멈추어라. 그의 대적들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3) 너희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희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4) 에브라임이 징벌을 당하고 내가 매를 맞고 징벌을 받았다. 돌이키고 뉘우치리라. 

  5) 하나님은 자식같은 에브라임을 책망하실때, 마음이 복잡하시다. 창자가 들끓으므로 그를 불쌍히 여긴다. 


  6) 처녀 이스라엘아, 이정표를 세우고 푯말을 만들어 큰 길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을 마음에 두라. 돌아오라 네 성읍으로 돌아오라.


  * 다시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포로로 잡혀갈 때에 길을 잘 익혀둘 것이고, 지나가는 길에 이정표와 푯말을 세워놓으라고 말씀하시다. 그와 같은 행위는 머지않아 돌아올 것을 확신하기에 행하는 것들이다. 그만큼 하나님의 구원이 신속할 것임을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자식들을 책망하시어 바벨론의 포로로 넘기실 때, 창자가 들끓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도 부모된 입장에서 매우 힘든 결정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온전한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은 책망함으로 그들을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5.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1)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2)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음이라. 

  3) 내가 깨어 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4) 여호와께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여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5)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 바벨론 포로 사건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신학적 개념을 명확하게 하셨다.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다고 해서 아들의 이가 시다하는 것과 같은 것이 없이 하겠다는 것이다. 즉 아버지의 잘못은 아버지에게 묻지, 그 아들에게까지 잘못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면 즉시 회복시켜 주겠다는 말씀이다. 


  * 죄를 짓기 전 과정에서는, 가능하면 죄를 짓는 것으로 인해 고통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게 됩니다. 그래야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되니까요. 그러나 막상 죄를 지은 자식에게는 가장 최소한의 책임만을 묻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그렇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정적인 멸망에 이르기 전까지는 죄가 자손에게 이어진다는 것을 그토록 강조한다. 그러나 막상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예레미야서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그 당대의 죄는 당대로 끝낸다는 식으로 룰을 바꾸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기를 때를 생각해 보면 금새 이해하게 된다. 


6.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심

  1) 애굽에서 인도하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이다. 

  2) (왜냐하면, 그 때에 맺은 언약은 깨질 수 있는 언약이었다.) 그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다.

  3) 그러나 내가 후에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4) 다시는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않을 것이다.(다 나를 알기 때문이다.)

  5)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34절)

  6) 하나님이 정하신 만물의 운행과 섭리가 폐하여 진다면,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한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7) 날이 이르면, 여호와가 예루살렘 성을 다시 건축할 것이며 그곳은 거룩한 곳이니 영원히 다시는 뽑거나 전복하지 못할 것이니라.(40절) 


  * 새언약이란, 내용이 새로운 언약이 아니라 전에는 그 내용을 지키지 못할 수 있는 언약이었는데, 이제는 그 언약을 지키지 못할 수 없는 방식으로 주시겠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법이 내 안에 주어지는 형식인 것이다. 마음에 새겨지는 것으로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 우리가 법을 이루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찾아오는 방식이며, 그분이 법을 이루시는 방식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내주하시는 방식을 통해서 법을 이루시는 방식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언약을 맺은 자가 실패할 수 있단 말인다. 신약시대에 말이다. 



[묵상 한 모금]


오늘 본문 속에는 여러가지 새롭게 깨닫게 해주시는 것들이 적지 않다. 특히 중요한 새언약에 대한 내용도 언급되는 중요한 장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지금 내게 남은 가장 큰 내용은 새로운 신학이 새로운 신학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예레미야 이전까지 아버지의 죄가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입장으로 말씀이 주어졌다. 그런데 예레미야에 와서는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다고 아들의 이가 시다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아버지의 죄에 대한 결과가 아들에게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법이 시대를 따라서 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것은 자식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다. 자식을 바르게 키우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에는 변화가 없다. 그러나 바르게 자식을 키우는 방식에는 계속 변화가 있다. 자식이 어떤 큰 죄를 저지르기 전까지는 그 죄에 대한 결과를 좀 과장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래야 자녀에게 더 크게 각인되고, 그 죄 근처로 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법정적 교육이라기 보다는 목양적, 교육적 지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자식이 그 죄를 지었을 때, 부모는 달라진다. 그 죄에 대한 과도한 벌까지 지지 않도록 한다. 그 자녀가 지은 죄에 대해서만 책임 질 수 있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법정적 의미에서만 죄의 책임을 따지게 된다. 


하나님이 지금 이스라엘에게 부모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태도를 취하시는 것이다. 기준이 오락가락하는 부모가 아니시다. 자녀가 죄를 짓기 전과 죄를 지은 후에 대한 부모의 입장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부모가 되어 자녀를 키워본 사람은 누구나가 공감하는 논리다. 


예레미야 31장에서 하나님의 진심을 발견하게 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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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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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장]


1.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2. 내가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 지금 이 내용이 문서로 남겨둘만큼 중요하며 확실한 내용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더불어 이렇게 적힌 하나님의 말씀은 바벨론에 있는 유대 백성들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고, 읽혀질 수 있는 것이다. 


3.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오게 할 날이 올 것이다. 내가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2)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남자들이 해산하는 여인처럼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하게 될 것이다. 

  3) 그러나 또한 그날에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을 것이다.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 버리고 포박을 끊으리라. 

  4) 다시는 이방인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그들을 위하여 세울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 

  5) 너를 먼 곳에서 구원하고, 네 자손이 잡혀가 있는 곳에서 구원하리라. 

  6) 그리고 너를 흩었던 그 모든 이방을 내가 멸망시키리라. 

  7)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 



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다. 

  1) 유다의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부상은 중하다. 약도 없고 처방도 없다. 

  2) 너를 사랑하던 자가 너를 잊은 것은 네 죄가 많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잔인한 징계를 내린 것이다. 

  3) 네가 네 상처와 고통 때문에 부르짖는데, 그것은 네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에게 내린 것 것이다. 

  4) 그런데, 너의 것을 빼앗고 탈취한 자들에 대해서 내가 노략하고 탈취할 것이다.

  5) 그리고 네 상처에 새 살이 나게 할 것이다. 


  * 하나님은 유다가 당하고 있는 고통이 그들이 하나님에게 잘못하고 죄를 많이 지었음으로 당하게 된 것임을 지적한다. 그들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데, 그 고통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유다의 죄와 기도의 모순됨을 말함)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 사랑, 자기 백성을 혼내시고 책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탈취하고 노략한 자들에게 대해서는 심판하실 것을 명백히 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죄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가 늘 의로운 정체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악한 도구를 자기 백성을 위해서 그들의 악을 허용하기도 하신다. 그러나 그들의 죄는 따지신다. 


5. 하나님의 말씀

  1)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2)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출될 것이요 그 보루는 규정에 따라 사람이 살게 되리라. 

  3) 그들의 수가 줄지 아니하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해지지 아니하리라. 

  4) 그들은 예전과 같고,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그를 압박하는 모든 사람은 내가 다 벌하리라. 

  5) 그 영도자를 너희 중에서 나오게 할 것이다. 

  6)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 하나님께서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고 성읍을 회복하게 할 것, 다시 백성들을 번성케 하사 줄어들지 않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들 중에 영도자도 나올 것이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임을 약속하신다. 


6. 여호와의 노여움은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 위에 임하고, 진노는 그 마음의 뜻 한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 돌이키지 아니한다. 너희가 끝날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 하나님의 언약도 신실하지만,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기로 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도 매우 신실하심을 보여준다. 마음에 뜻한바를 이루기까지 돌이키지 아니한다. 여자 한을 품으면 5-6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다. 하나님은 참, 무섭다. 


  *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무서우심을 끝날에야 깨닫게 되니, 안타깝다. 깨닫게 된 그 순간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말과 심판은 불현듯 올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보다. 불현듯이란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묵상 한모금]


내용을 정리해 보면


1. 유다가 지금 환난과 곤경 중에 있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2.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를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들어서 멸망시키시고 수치를 당하게 하셨다. 

3.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에게 영원한 멸망을 예정하신 것은 아니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수치를 회복시키시며 다시 약속의 땅에서 살게 하실 것이다. 

4. 그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수탈하고 노략했던 자들에게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심판을 하실 것이다. 그들이 죄를 징벌하는 도구가 되었다고 해서, 의로운 자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보다는 의로운 자를 해롭게 했으니, 그것에 대한 벌도 받아야 할 형편이다. 하나님은 바벨론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기준으로 심판하실 것임을 말씀하신다. 

5. 그날은 불현듯 다가올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약속대로 구원을 받고 회복될 것이지만,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 자들에게 대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완전한 심판에 이르게 될 것이다. 

6. 그러나 그것을 깨닫는 것은 그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다. 따라서 그것을 깨닫고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전에 먼저 하나님의 품으로 하나님의 편에 서는 자만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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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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