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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13절.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절.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절.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절.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1)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절.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2)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3)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절. 또 안드레(4)와 빌립(5)과 바돌로매(6)와 마태(7)와 도마(8)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9)와 및 다대오(10)와 가나나인 시몬(11)이며
19절. 또 가룟 유다(12)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질서와 능력을 가지고 오신 분으로서 어느 정도 인정받으셨을 때(하나님의 아들로서) 이제 예수님은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13절)
2. 열 둘을 세웠는데 이들을 세운 이유를 살펴보면(14-15절)
1)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고
2) 보내사 전도도 하며
3)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었다.
3. 열 두 명의 제자 명단은 다음과 같았다.
시몬(베드로), 야고보와 요한,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다대오, 시몬(가나나인), 가룟 유다.
4. 이들 중 특징적인 제자는
1) 원래의 이름 외에 새로운 이름을 더한 제자는 시몬(베드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보아너게, 우뢰의 아들)
2) 예수를 판 제자: 가룟 유다
[질문하기]
1.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역 전략(?)을 찾아 볼 수 있을까?
- 예수님께서 복음의 시작으로 이 땅에 오셔서 공적 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으셨다. 다양한 문제 제기에 대해 답하시면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고, 사람을 위하시고, 안식일의 주인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명확하게 하셨다. 그 결과 예수님의 초기 사역은 성공적이었고 사람들은 예수님께 주목했고, 심지어 유다와 예루살렘 뿐 아니라 주변 이방 지역에까지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확장하는 일을 홀로 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 중에서 따로 사람을 세워 일하시기를 원하셨다. 열 두 명을 따로 세우셨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있게 했으며, 보내사 전도도 하게 하시고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행하게 하심으로서 예수님 홀로가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제자들을 통해) 그 일을 이루어 가시길 기대하셨다. 사역의 새로운 전환점이 시작된 것이다.
2. 열 두 명의 제자 중 다른 이름을 부여한 세 명의 제자에 대한 언급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 시몬에게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고,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에게는 보아너게(우뢰의 아들)이란 새 이름을 주었다. 본문에서는 새 이름을 주신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베드로의 이름이 반석이란 뜻이므로 베드로가 그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셨다고 볼 수 있고,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기질과 성향을 특징적으로 드러낸 말이 아닌가 싶다.(이후 성경을 읽는 중에 그 의미가 좀 더 밝혀질 수 도 있으리라)
3. 왜 예수님이 선택한 제자 중에 예수를 팔 사람을 포함하셨으며, 성경은 굳이 가룟 유다를 언급하며 숨기지 않았을까?
- 예수님의 제자가 열 둘이라는 것은 구약 이스라엘의 지파가 열 둘 이라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열 두명을 제자로 세웠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열 둘의 숫 자 안에는 배신자(예수를 파는 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이상하다.
- 어쩌면 하나님의 완전한 나라는 이 땅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불완전함을 극복하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열 두 명 중 한 명은 배반하게 될 것을 모르지 않으셨음에도 그 배반자를 선택하시고 그와 함께 동행하셨고 마지마까지 함께 하셨다는 것은 이 땅에서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한 요소가 있을 수 밖에 없고,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팔리고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 같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더 큰 그림 안에 있으며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묵상하기]
1. 완벽한 완성을 위해 치명적인 문제를 심는다. 예수님께서 열 두명의 제자를 선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다. 열 두명의 제자 중에 예수를 판 가룟 유다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주는 메시지가 이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완벽한 성취와 결과를 위해 무흠한 사람을 찾고 방해가 될 모든 변수를 제거하는 것에 힘쓴다. 그렇게 준비하고도 기대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에 불안해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함을 이루기 위해 가장 불완전한 요소를 심어 놓으신다. 그리고 그 불완전한 요소로 인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까지 극복하시고 그것을 넘어 완전에 이르신다. 이것은 오히려 우리가 불완전함으로 가득한 이 땅을 살면서도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이라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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