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5]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해설]


[15]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내용을 정리해 보면

1. 사람의 언약이라도 일단 정해진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한다. 즉 변할 수 없다.

  - 언약이라는 단어보다 '유언'이라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보기도 하나, 문장안에서 바울이 사용할 때는 변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은 분명하다. 

2. 하나님은 그 약속을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하신 것인데, 그 자손이라 함은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이 이미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있는데, 그 언약 이후 430년 지나서 생긴 <율법>이 폐할수는 없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더 상위적 권한을 가진다는 것을 말한다. 

4. 따라서 유업은 하나님이 약속으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지,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변할 수 없는 언약을 근거로, 그 유업을 약속한 것이다.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그 유업의 유무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앞 본문에서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 즉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둔 유대인과 이방인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언약>을 근거로 주어진 것이므로 여기서 <율법>이 나서서 무엇인가를 추가하거나 빼거나 할 수 없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의롭게 되는 일과 그 유업을 얻는 일이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로 칭해진 것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과 맺은 언약에 근거한 것이라면, 도대체 하나님이 율법은 왜 주신 것인가? 하는 유대인들의 상식적인 질문에 대해서 바울이 설명하고자 먼저 그 질문을 던진 것이다. 


1. 범법함으로 더하여 진 것이라.

2. 천사들을 통해서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

3 그 중보자는 한 편만을 위한 자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구체적인 해석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율법은 무엇이냐?에 대한 굵직한 답변은 이것이다. 율법의 용도는 <임시적인 것>이었다는 것이다. 범법함으로 더 하여 진 것(원래부터 있던 것은 아닌)이고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끝이 정해져있다.)이다. 그런데 이것을 그냔 <율법>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하면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서 오셨고, 바울이 율법의 폐기를 주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이란 엄밀하게 말해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방법론>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율법과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방법론을 혼돈해서 이해해서는 안된다. 보통 성경에서 율법이라고 사용할 때 이 두 개념이 혼용해서 서술할 때가 많은데 읽는 사람은 문맥을 통해서 이 둘을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바울은 율법 자체를 폐기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도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더불어 폐기된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방법론>의 폐기다. 그 방법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의의 방법론: 은혜>이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었고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방법론>은 폐기 되었다.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또 다른 질문이 유대인들에게서 나올 수 있다.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라는 질문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우선하여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해석하려고 했던 것 같고, 바울은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약속을 우선적으로 근거로 하여 율법의 한계성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율법과 약속이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율법은 모든 사람이 죄 아래에 있기 때문에 율법으로는 의를 이룰 수 없다는 한계를 하나님이 아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 오기 전에(예수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율법은 단순히 수동적이고 어쩔 수 없이 임시적인 것은 아니다. 즉, 생각지 못한 일로 인해 임시방편으로 보강해 놓은 것과 같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율법은 죄 아래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우리의 시선을 돌리도록 안내해 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즉, 율법이 없었다면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율법은 임시적이지만 고유의 역할이 있었고, 이 역할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향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믿음(예수 그리스도 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온 후로는 율법이라는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는 않는다. 왜? 궁극적인 목적지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까지 와 있기 때문이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은 이미 믿음이 왔기 때문에(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의를 얻게되는 복음을 들었고,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1.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그리스도)에게 주신 약속과 유업을 얻게 되었다.(그 자손, 곧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이기에)

2. 교회에 속한 자는 모두 세례를 받았을텐데, 그 세례를 받을 때 성도는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함이었기에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것이다 .

  - 그리스도의 옷을 입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세례와 연관함)

3. 그래서 너희들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다.

4.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다. 


이 구절에서의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유대인 헬라인, 자유자나 종, 남자나 여자 등)이 다 하나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그 유업을 이을 자라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차별이 없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주시는 칭의의 옷을 입는다'는 개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리스도와 같은 옷을 입었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 마치 과티를 입듯이 모두가 한 옷을 입음으로서 한 팀, 한 몸과 같은 것을 강조하듯이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옷을 입음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백성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묵상]


순수한 복음을 전할 때, 가장 오해되기 쉬운 것이 그럼 율법의 용도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조건으로서 으뜸되는 기준은 당연히 <율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다른 방식의 조건(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방식)을 제시했고, 그것의 구약 성경의 근거로 아브라함이 의롭게 인정받는 것을 들고왔다. 율법보다 상위가 언약이고 이 언약은 변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절대적으로 생각했던 율법의 용도는 무엇이고 한계는 무엇이란 말인가? 일단 율법은 인간의 범법함을 제한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지만, 영원한 법으로서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만 유효한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중에 율법이 복음과 관련해서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지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율법이 가진 한계이면서 동시에 복음을 위한 결정적인 역할(꼭 필요한)인 것이다. 


1. 여전히 율법의 법에 매여 믿음의 때를 얻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제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시대가 왔음을 선포해야 한다. 이것이 복음이다. 


2. 그러나 이미 그 믿음의 시대 안으로 들어와 있는 성도들에게는 다시 옛 율법의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믿음의 시대 이후에 다시 율법으로 인정되는 방식(옛 방식)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3. 그 다음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백성들에게 그럼, 율법의 역할은 무엇이었느지를 가르쳐야 한다. 

  1) 믿음이 오기 전 율법의 역할(약속의 경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줌)

  2) 믿음이 왔을 때 율법의 역할(바톤을 믿음에게 넘겨줌)

  3) 믿음이 온 이후의 율법의 역할

    - 율법을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방식과 혼돈하여 이해하면, 율법 폐기론자가 된다.(방탕과 방임)

    - 율법을 행해야 하는데, 율법의 의를 쫓으려 한다면 다시 율법이 바톤을 빼앗아 뛰게 하는 것.

    - 율법의 의를 쫓지는 않지만, 율법을 삶의 중요한 원리로 인식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삶.(추천)


  * 갈라디아서 5-6장에 가면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주는 것은 복음과 율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 가운데서 권면으로 주어진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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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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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미가 7:14-20 과거는 미래의 소망이다.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본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양 떼를 돌보듯 지켜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이전 조상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진실하고 자비로우시다는 고백으로 마무리 된다. 하나님께서 다시 이집트에서 인도하실 때처럼 기적을 베푸시며, 자기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실 것을 미가는 고백한다.


절별 해설

7:14 <<주여, 주의 지팡이로 인도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양 떼를 인도하여 맑은 물 푸른 초원으로 인도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자기 백성의 목자가 되어주시길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여주십시오>> 바산과 길르앗은 목축하기 좋은 비옥한 땅으로(민 32:1 대상 5:9, 시 22:12) 풍요와 비옥 그리고 안정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이스라엘이 과거에 누렸던 풍요의 시대로 다시 회복하게 해달라는 바램이다. 


7:16 <<놀라서 손으로 입을 가릴 것이며 귀는 막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때, 이집트의 바로에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주변의 많은 나라들은 놀라고 두려워했다. 그 소식을 듣고 이방인들의 놀라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얼마나 충격적이고 큰 일인지를 반영한다.


7:17 <<그들이 뱀처럼 잿더미 속을 기어가고>> 그들이라 함은, 이스라엘 주변이 강대국을 포함한 이방 나라들을 말한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모습을 보며 이스라엘을 비웃고 조롱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을 위해 놀라운 일을 하자, 역으로 부끄러워하며 보잘 것 없이 된 것을 뱀처럼 잿더미 속을 기어간다고 표현한 것이다. 


7:18 <<주와 같은 분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노하지 않으심과 자비하심이 다른 어떤 신보다 크시기 때문에 하는 고백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죄 지은 자기 백성을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 큰 죄 가운데에서도 다시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백성이 드리는 찬양이다.


7:20 <<오래 전에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대로>> 죄 지은 백성이 하나님을 향해서 다시 회복을 기대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래 전에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에 있어서 언제나 신실하시고 그의 백성에게 자비하시다. 


기도

주여, 이 땅에 주와 같은 분이 없습니다. 한 번 하신 언약에 있어서 언제나 신실하시고, 우리의 연약함과 죄에 대해 인내하시고 우리의 목자되심을 포기하지 않으시니 감사합니다.


맺는 이야기

이스라엘의 전 역사 속에서 언제나 하나님과 맺었던 언약,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구원하셨던 역사는 늘 반복적으로 기억되고 미래의 소망으로 작동된다. 백성들의 죄와 이방 나라들의 침략으로 위태로운 시대를 살면서도 이들은 언제나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언약에 대해서 신실하게 행하실 것을 믿었다. 또한 이들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있던 자신들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해낸 사건을 잊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어떤 강력한 나라에 종속되어 있다고 해도, 그 때의 그 하나님께서 과거와 같은 일을 반복하시면 충분히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을 잊지 않았다. 우리가 성경의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어떤 언약을 맺고 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어떤 기적을 행하셨는지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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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이이 임의로 복사하여 무단으로 사용하시면 안됩니다.]


3. 2:1-9 제사장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

 

찬송가:

 

여는 이야기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의 잘못에 대해서 질책하시고 그로 인해 그들을 부끄럽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은 바른 길에서 벗어났고, 많은 사람들로 죄를 짓게 함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루시는 이유는 이들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어가게 하기 위함임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절별 해설

1:2 <<너희가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아니함으로>> 말라기서에서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섬기는 제사장임에도 이런 태도를 취한다는 것을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하나님께 가지는 마음이 어떠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3 <<너희가 절기때 바친 제물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르겠다>> 절기 때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가져온 제물에게서 나오는 똥을 제사장들의 얼굴에 바르겠다는 것은 제사장으로 하여금 큰 수치를 드러내도록 하시겠다는 표현이다. 더불어 제물의 똥을 버리듯 제사장들을 버리시겠다는 심판의 말씀이다.

 

1:4 <<그것은 내가 레위와 맺은 언약을 이어가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 제사장들을 부끄럽게 하고 심판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레위와 맺은 언약을 이어가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지금 제사장들을 심판하심으로 언약을 파기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이어가기 위해 제사장들을 돌이키시게 하기 위한 징계라는 것을 알리시는 것이다.

 

1:8 <<너희는 레위 지파와 맺은 언약을 어겼다>> 하나님이 레위와 언약을 맺은 것은 그들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었다.(5) 바른 가르침을 베풀고 많은 사람을 죄에서 떠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6) 그러나 제사장들은 이 언약을 어기고 바른 길을 떠났으며 그릇되게 가르쳐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게 하였다. 레위 지파와 맺은 언약을 어긴 것이다.

 

1:9 <<재판을 할 때에 공평하지 않게 한쪽 편만 들었다>> 제사장은 백성들을 재판하는 일도 맡아서 해야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공평하게 해야 할 재판에 오히려 한 쪽 편만 들어주어 재판의 공정성을 왜곡했던 것이다. 이런 모든 현상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제사장들의 불경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이들은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기도

하나님, 누구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편에 서야 할 제사장이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할 수 있는 자임을 발견합니다. 늘 깨어 자신을 돌아보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본문을 통해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첫째는 가장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섬기고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제사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마치 직업처럼 자신의 일을 행하려 할 때 도리어 얼마나 큰 죄를 짓게 되는지를 본문은 지적하고 있다. 자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죄 짓는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목회자 혹은 그에 준하는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들은 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둘째는 이렇게 불경건한 삶으로 하나님의 징계에 이를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그렇게 하신 것은 언약을 파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어가게 하시기 위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4) 하나님의 매는 부모가 자녀를 교정하기 위한 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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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군대로 예루살렘과 그 모든 성읍을 칠 때에

 

  * 유다의 멸망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바벨론은 유다의 성읍들을 하나씩 점령하며 예루살렘으로 오고 있는 중이다. 


2.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말씀하셨다. 


  1) 시드기야 왕에게 말하되,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이 성을 불사를 것이다 .

  2) 너 시드기야는 바벨론 왕과 대면하게 될 것이고, 바베론으로 가게 될 것이다. 

  3) 그러나 네가 칼에 죽지는 않고 평안히 죽을 것이다. 


  * 예레미야가 유다의 멸망과 시드기야의 포로됨을 예언했지만, 그래도 칼에 죽지 않고 평안히 죽을 것이라는 것에 감사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시드기야가 백성들과 고관들과 언약을 맺는 의식을 행한 것이 아닐까 싶다.


3. 예레미야는 이 말씀을 시드기야에게 말했다. 그 때에 바벨론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성읍들을 쳤다. 대표적으로 라기스와 아세가 성이다. 



4.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한 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고 자유를 선포했다. 


  1)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2) 시드기야가 백성과 맺은 언약은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해주고 동족으로 종을 삼지 못하도록 한 것이었다. 

  3) 이 계약에 가담한 고관들과 백성들이 각기 노비를 자유롭게 해주라는 약속에 순종했다. 그러나 그들은 뜻을 변하여 자유로이 놓아준 노비들을 다시 끌어다가 종으로 삼았다. 


  * 처음에는 위기의식 속에서 시드기야 왕이 시키는 대로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바벨론의 태도가 좀 느슨해지자 긴장감은 사라지고, 노예가 부족해 진 것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자 그들은 언제 언약을 맺었느냐는 식으로 풀어준 종들을 다시 잡아 온다. 그리고 손바닥 뒤집드이 언약을 뒤집는다. 


5.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예레미야에게 임했다. 

 

  1)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선조를 애굽 땅 종의 집에서 인도하여 낼 때 그들과 언약을 맺으며 히브리 형제가 팔려오면 6년간 섬기게 하고, 7년째에는 놓아주라고 했으나 그들이 순종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2) 그러나 이제 너희가 뜻을 돌이켜 내 앞에서 계약을 맺고 순종했다가, 돌이켜 내 이름을 더럽히고 노예를 풀어 주었다가 다시 종으로 삼았다. 


  * 언약을 파기해버린 시드기야의 고관 백성들로 인해 하나님은 더욱 진노하셨다. 과거 조상들도 그렇게 언약을 파기하더니만, 그 후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맺고 지키는듯 하지만 곧 언약을 파기해 버린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한 것이다. 


  3) 그렇게 언약을 파기한 너희들에게 내가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 그래서 너희를 여러 나라에 흩어지게 하리라.

  4) 언약을 파기한 유다 고관들과 예루살렘 고관들과 내시들과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을 원수의 손에 넘겨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짐승이 먹게 할 것이다. 

  5) 너희들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넘기리라.  그들을 다시 불러 이 성을 치게 하고 불사르게 하여 황무지가 되게 할 것이다. 


  * 하나님 앞에서 한 언약을 파기한 이들을, 하나님은 대적자의 손에 넘겨줌으로 그들을 철저하게 심판하신다. 그 성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 




[묵상 한 모금]


오늘 본문에서 시드기야와 그의 고관들, 제사장들,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을 파기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이 분노가 폭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래전 출애굽 때부터 요청하셨던 언약을 조상들이 지키지 않았는데, 이제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지킬 것처럼 행하다가, 그 위기가 조금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해 버린 것이다. 


자기 민족에게 언약에서 정한 그 이상으로 가혹하게 행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 행위에 분노하셨다. 


최근 대통령이 후보 시절 핵심공약으로 말했던 노인복지정책에 대해서,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폐기할 수 밖에 없음이 공식화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여러 공약 중에 하나였다면,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핵심 공약이었고, 그것으로 인해 노인들의 표를 많이 얻었을 것이며 그로 인해 대통령에 대해 당선되었다. 그런데 이제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는 그 공약을 버린다?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맺은 공약(언약)을 스스로 뒤집는다면, 그것은 중차대한 일이고 대통령으로 결정적인 잘못을 행한 것이다.(잘못된 예측을 한 것이고,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잘못된 결과를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국민을 향해 최소한 <자신의 부족함을 통해 신뢰를 깨뜨린 것에 대한 정중한 사과>가 있어야 함은 마땅하다. 그것이 국민들을 이용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최소한의 태도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은 언약을 파기한 유다의 고관과 백성들을 향해서 자신의 이름을 더럽힌 것이라고 지적하셨다.(렘 34:16)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가 유다 백성들에게 쏟아졌다. 공약을 지켜야 한다. 특별히 핵심공약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불가피 한 상황이 되어 지킬 수 없다면, 진심을 담아 그 공약을 믿고 신뢰를 보내준 국민들을 향해서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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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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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번째로 임하였다. 


  * 시드기야 왕 10년 때의 일이다. 첫번째 말씀은 친척의 밭을 사라는 것이었고, 이번이 두번째 주어진 말씀이다. 


2. 일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크고 은밀한 비밀(회복될 멸망)을 알려주신다. 


  * 곧 멸망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되지 않은 것이고 다시 회복할 것이 확실함만큼 크고 은밀한 비밀이 무엇이 있겠는가!


3.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비밀


  1)무리가 갈대아 인을 상대로 싸우려하나, 하나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시체로 성을 채울 것이다. 

  2)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시고, 성을 돌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3)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할 것이다.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다. 

  4) 내가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고, 처음과 같이 그들을 세울 것이다. 

  5) 그들이 내게 범한 죄에서 그들을 정하게 하고, 그들이 내게 범한 죄악을 사할 것이다. 

  6)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다. 그들은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 임박한 멸망, 돌이킬 수 없는 멸망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이기에 그 멸망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곧 이 성읍을 치유하시고 낫게 하실 것이다. 처음처럼 회복하고 그들을 정케 하며 그들의 죄를 사하실 것이다. 이들의 회복은 주변 민족들을 두렵게 할만큼 큰 회복임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다. 


4. 이 땅은 황페하게 되었다가 역동적이고 활기찬, 거룩한 자들의 성읍으로 회복될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찬양할 것이다. 


5.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다.(14,15절)


6. 다윗에게 영원히 왕위에 앉을 사람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제사를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않으리라.(17,18절)


7.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그것을 잃게 할 수 있다면,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뜨릴 수 있고, 레위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 하나님께서 다윗 왕의 왕위가 끊어지지 않을 것과 레위 제사장이 끊어지지 않을 것을 다시한번 강조하신다. 주야의 순환과 같은 하나님의 언약이 깨어질 수 없는 것이듯, 다윗과 맺은 언약도 깨어질 수 없는 것임을 명확하게 하셨다. 


8. 내가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리고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묵상 한 모금]


1. 크고 비밀한 계획은, 멸망을 앞둔 유다에게 주신 말씀이다. 


  1) 곧 멸망할 것이다.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이기에.

  2) 그러나 곧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래서 성읍을 회복하게 하시고 다시 예루살렘은 활기차고 거룩한 성읍이 될 것이다. 

  3) 그 나라를 다스릴 왕도 이어질 것인데, 다윗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다윗의 혈통이 될 것이다. 제사장도 마찬가지다. 레위 출신 제사장들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며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다. 

  4) 이 계획은 확실하게 이루어 진다. 주야의 법칙과 천지의 법칙을 변개할 수 없는 것처럼, 다윗에게 주신 약속과 레위 제사장이 끊어지지 않을 것에 대한 약속은 분명하다. 



2. 끊어지지 않을 다윗의 왕권과 제사장의 역할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혈통임을 마태복음 1장은 족보를 통해서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사역과 십자가 죽음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사장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기록한다. 하나님께서 포로가 되어 잡혀갈 죄인된 유다와 오늘날 죄인되어 사단의 포로가 된 우리들에게 크고 놀라운 비밀, 복음을 말씀하셨다. 


우리가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곧 멸망할 것이지만,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라고.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롬 1:18)를 일으켰지만,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이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약속하신 언약으로 인해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예수는 다윗의 왕권을 이어 받은 자이며, 끊어지지 않는 제사장으로서 이 땅에서 사역하셨다. 


예레미야서는 수천년전 그들에게 준 이야기이면서,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적용되는 살아있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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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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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여호수아 24장] 모든 일을 최종적인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여호수아는 자기 인생의 마무리, 가나안 정복의 마무리를 24장을 통해서 합니다. 핵심은 우리의 신앙의 근거를 어디에 둘 것인가을 명확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단에 따른 언약을 체결하는 것이지요. 마무리까지 깔끔한 여호수아. 리더십의 모형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위해 하신 일

  1) 너희 조상 아브라함의 조상은 강 저쪽에서 거주하면서 다른 신을 섬겼으나

  2)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가나안으로 부르고 그에게 이삭을 줬다.

  3)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는데, 에서는 세일 산을 소유했고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다. 

  4) 거기서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냈고, 애굽에 재앙을 내려 너희 조상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었다. 홍해에서 너희는 살렸고, 너희를 좇던 애굽의 병사들은 내가 멸하였는데 너희들이 이 모든 것을 너희 눈으로 봤다. 

  5)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요단 저쪽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의 땅으로 들어가매 싸울 때,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매 너희가 그 땅을 점령하고 나는 그들을 멸절시켰다. 

  6) 모압 왕 발락이 너희와 싸울 때, 발람을 불러다가 너희를 저주하려고 할 때, 오히려 발람이 너희들을 축복하였다.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었다. 

  7) 내가 왕 벌을 보내, 그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는데, 이것이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한 것이 아니다. 

  8) [결론] 너희는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땅과 건설하지 않은 성읍을 얻었다. 그 가운데 거주하면서 심지 않은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이것은 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다.


2. 이제 우리가 여호와를 위해서 결단해야 할 일

  1)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2) 만약 여호와 섬기는 것이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가 섬길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3) 백성들의 고백: 우리는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하리라. 여호와는 우리 조상들을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올라오게 하셨고, 우리 목전에서 큰 이적을 행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심이니이다. 


3. 백성들의 결단에 대한 여호수아의 경고와 언약 체결

  1)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라’ 예언함. 왜냐하면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저희들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2) 만약,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셨다가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3) 백성들은 강력하게 부인하며,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고백한다. (21절)

  4) 여호수아는 그렇다면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버리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라고 권면한다. 

  5) 백성들은 여호와만을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겠다고 다시 고백한다. (24절)

  6)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함.

  7)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증거로 삼음.

  8) 언약을 체결하고 각기 기업으로 돌아갔다. 


4. 여호수아서의 마무리

  1)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었다. 

  2) 여호수아를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인 딤낫 세라에 장사했다. 

  3)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그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다. 

  4)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다. 

  5)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도 죽으매 그의 아들 비느하스가 에브라임 산지에서 받은 산에 장사.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쓰기]


[여호수아의 마지막 권면] 여호수아가 장로와 수령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세겜으로 부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인 장로들과 수령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세겜으로 불러모았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결단을 통한 언약을 체결하는 과정을 이끈다.


여호수아는 먼저 이들에게 우리 조상의 과거가 어떠했는지를 말한다. 아브라함의 조상은 강 저편에서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을 우상을 섬기던 그 자리에서 불러내어 가나안으로 불러오셨다. 그리고 씨에 대한 약속을 주시고는 이삭을 주셨고,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셨다. 에서는 세일 산을 기업으로 받았지만, 야곱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부르셔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다. 애굽을 나오게 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적을 봤고, 대적자들을 어떻게 하시는가도 경험했다. 그 때 뿐만이 아니라 요단 저편에서도 아모리와 전쟁에서도 모압의 위협(발람의 저주) 속에서도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들을 지켜 오셨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수고하지 않은 열매를 거두어 먹고 있다고 먼저 역사적인 정리를 한다. 


그 뒤를 이어서 이들을 향해 결단을 촉구한다. 이제 우리가 믿을 신을 정해야 한다고.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길 것인데, 너희들은 어떤 신을 섬기리 것인지를 결정하라고 촉구하자 이들도 여호와만을 섬길 것을 결심한다. 


그러나 백성들의 결심을 듣고 여호수아는 이들을 향해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너희들의 잘못과 죄를 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여호수아는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복을 내리셨다가도 돌이켜 재앙을 내리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백성들은 절대로 이방신을 섬기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다짐한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는다. 그리고 백성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여호수아서의 마지막은 여호수아가 죽어 장사 지내게 되었다는 것, 그제서야 비로소 애굽에서 가져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했다는 것,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도 죽어 장사지나게 되었다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드는 메시지와 생각들]


1. 다 경험하고 다 아는 내용이지만 결단이 필요하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다 불러 모아놓고 지난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다시 회고하고 정리해 준다. 그 이야기는 모여있던 지도자들은 다 아는 이야기이거나 함께 경험한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이들에게 다시 정리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다음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결단할 것을 촉구하신다. 심정적으로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입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마 이스라엘 무리 중에는 은근히 한 두개씩 가나안의 우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는지도 모른다.(23절) 그러니까 심정적으로는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명확하지만, 보험처럼 우상을 한 두개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모두 아는 내용이라고, 다 그럴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모두 한 두가지 말하지 않는 자기만의 우상을 붙잡고 있다.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모를 한 두가지의 불필요한 것들을 쥐고 있다. 결단은 그것마져 버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내 스스로 그렇게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함으로서 자신의 신앙을 결단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말하지 않으면, 그 안에 무슨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결단은 선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이제 선 안에서 행하든지 선 밖으로 나갔는지를 자기 자신에게 속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2. 언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체결자의 의지를 점검해야 한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이 여호와만을 섬길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의심했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성들이 전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어쩌면 이들의 연약함 때문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완전하심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일 수 있다. 암튼,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계속 의심했고,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백성들은 그렇지 않다고 재차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여호수아는 이들과 언약을 체결한다. 언약의 체결이란 서로의 언약에 대한 내용에 대한 온전한 숙지와 함께 그것을 체결하려고 하는 그 사람의 의지가 명확해야 한다. 왜냐하면 약속이기 때문이고, 언약을 어겼을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그것을 명확하게 한다. 


이제 여호수아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가 어떠했는가? 또한 하나님은 이들을 향해서 어떻게 대하셨는가?에 대한 진행이 어떻게 될지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여호수아를 지나 사사기에 이르면 그것을 확인해 갈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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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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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여호수아 6장] 여리고의 성벽이 이스라엘 제사장의 나팔과 백성들의 함성에 의해 무너진 이야기다. 세상을 강력함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높은 벽과 스펙과 기득권... 언론의 장악.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함성으로 싸운다. 한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백성들의 함성이 대적의 성벽을 무너뜨린다. 성은 무너진다. 곧 무너진다. 모든 백성들이 함께 함성을 지른다면.(12/19)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1. 이스라엘로 여리고를 돌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1) 이스라엘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었다.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과 네 손을 넘겨주었다.
  3) 너희 군대는 그 성을 둘러 매 한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감.
  4)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나팔을 길게 불 때 백성들이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르면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들은 앞으로 올라가라.
  5) 여호수아는 무장한 자들을 매 앞에 그 뒤로 나팔을 부는 제사장 7명, 언약궤를 맨 제사장 순으로 배치시켰다.

 

2. 여호수아의 명대로 진행된 이스라엘 백성들
  1) 실전배치: 무장한 자들 - 양각 나팔 일곱을 잡은 제사장 일곱 - 여호와의 언약궤 - 무장한 자들(후군) / 나팔을 불면서 행진했다.
  2) 백성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다가, 여호수아의 명령이 떨어지면 그 때 외치라고 명함.
  3) 여호와의 궤가 그 성을 한 번 돌게 하고 그들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진영에서 잔다.
  4) 둘째날도 동일한 방식으로 여리고를 한바퀴 돌고 진영으로 돌아왔다. 엿새 동안 이렇게 함.
  5) 일곱째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돌았다.
   (1)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명함
   (2)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다. 성과 그 가운데 있는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모든 자는 살려주라. 우리가 보낸 사자를 살려주었기 때문.
   (3) 여호와께 바친 것이 온전하게 되기 위해 그 바친 물건에 손을 대지 말라.
   (4)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다.
  6) 나팔 소리를 듣고 백성들이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졌고 백성들은 각기 앞으로 나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했다.

 

3. 여리고를 점령하는 이스라엘
  1) 먼저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그 기생의 집에 가서 맹세한 대로 그에게 속한 모든 가족과 형제들을 이끌어 내어 이스라엘 진영 밖에 두라.(이들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다. 이들은 여리고 정탐군들을 숨겨주었기 때무이다.)
  2) 무리가 그 성에 있는 모든 것을 불로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3) 여호수아가 맹세하게 하여 여리고를 저주함: 누구든지 여리고를 세우는 사람은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고,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 아들을 잃으리라.
  4)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이 온 땅에 퍼진지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풀어서 쓰기]

 

여리고를 시작으로 가나안 백성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두려움 가운데 있었다. 여리고는 모든 문을 닫고 출입을 통제했다. 철두철미한 방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하나의 지시를 내린다. 군대로 하여금 여리고 성을 한 바퀴씩 돌도록 한 것이다. 엿세 동안을 그렇게 하는데 무장한 자들을 맨 앞에 그리고 나팔부는 제사장 7명 그리고 언약궤를 배치하여 성을 한 바퀴씩 돌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성을 일곱 번 불고 제사장이 나팔을 길게 불면 백성들이 큰 소리를 외쳐 부르라고 한다. 그러면 성이 무너져 내릴 것이고 백성들로 올라가라고 한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에게 그와 같은 지시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고, 백성들은 그 지시를 따라 여리고 성을 돌았다. 여호수아는 성을 정복할 때 두 가지 사항을 미리 일러준다.  첫째 성의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라. 물건에 손을 대지 말라. 둘째는 라합의 집에 있는 자들은 모두 살려주라. 그것은 정탐꾼을 살려주었기 때문이다.


일곱째 날 나팔소리와 함께 백성들이 외칠 때 성은 무너졌고, 백성들은 앞으로 나아가 성을 점령했다. 무리는 성의 모든 것을 불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를 향해 저주하여 누구든지 여리고를 세우는 사람은 그 기초를 쌓을 때 맏아들이 죽고, 그 문을 세울 때 막내 아들이 잃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훗날 이루어진다.) 여호와와 여호수아에 대한 소문이 온 땅에 퍼졌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여리고 성의 철두 철미한 방어 시스템이 막지 못했다.

 

여리고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철저한 방어 시스템을 가동했다. 그러나 여리고는 하나님과 그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들에 의해서 힘없이 무너졌다. 나름대로의 철저한 방어시스템이 하나님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백성들의 나팔소리와 함성 소리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대적의 강력한 방어시스템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는 무력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팔소리와 백성들의 함성소리... 그것만으로 대적이 취하 최대한의 방어는 무력화되는 것이다. 물론 나팔소리와 백성의 소리만으로 된 것은 아니다. 철저하게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믿음을 통해서 역사한 것이고,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을 철저하게 따르는 백성들 가운데서 강력하게 역사하신 것이다.

 

세상을 강력함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높은 벽과 스펙과 기득권... 언론의 장악.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함성으로 싸운다. 한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백성들의 함성이 대적의 성벽을 무너뜨린다. 성은 무너진다.

 

 

2. 정탐꾼을 도운 기생 라합과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힘쓰고 이는 모습 강조.

 

여호수아 6장은 여리고를 정복함에 있어서 기생 라합과 그 가족들의 생명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했다는 것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훗날 이들은 이스라엘 가운데 편입되는데, 이방 사람들인 이들과 맺은 언약에 있어서 신실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정탐꾼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푼 행위에 대해서 반드시 은혜와 자비의 행위로 갚아준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이라 하겠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은혜를 은혜로 갚아야 한다. 은혜를 모르는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일 수 없다. 은헤를 베푼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라도, 나중에 상황이 역전되었더라도 그 은혜는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언약은 언제라도 누구에게라도 신실하게 지켜야 한다. 오늘 본문은 은혜에 대한 보답과 언약에 대한 신실함에 대한 덕목을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 

 

3. 여리고 승리의 전리품은 모두 하나님의 집으로 옮겨야 함: 하나님의 전적인 승리

 

여리고 전투의 특이한 것은 전쟁의 전리품을 모두 하나님께 드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취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불태워야 했다. 이것은 여리고 전쟁에 있어서 온전하고 유일한 공로자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여리고 전쟁에 있어서 만큼은 인간의 공로를 조금이라도 챙겨서는 안된다.

 

나중에 아간이 자신의 것을 일부 챙긴것은 단순한 욕심에 대한 처벌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완전한 공로를 흠집내는 죄였기 때문에 엄중한 처벌을 받은 것이라 볼 수 있겠다. 하나님은 우리의 공로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분은 아니시다. 우리의 공로를 인정하시기에 상급도 주시고, 전리품도 갖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전혀 손 댈수 없는 영역이 있다. 구원에 있어서 우리가 의롭게 되는 칭의와 중생의 은혜에 있어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공로를 취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아간과 같은 행위가 되고 마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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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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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1장] 예레미야를 읽다보면 신약의 이야기들이 여기에서부터 나왔구나 싶은 부분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런부분들에 대한 이야기와 종교적 제의로 윤리적 도덕적 책임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신앙에 대한 지적도 다루어 봅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하는 포인트]

 

1.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의 죄
  1)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너희 조상들을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서 던 날에 명령한 것.
  2)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듣고,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룸.
  3) 이 언약의 말씀을 듣고 지키라고 애굽에서 나온 날부터 지금까지 경계하며 경계했다.
  4) 그러나 그들이 순종하지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그 마음이 완악하게 행동했다. 그래서 언약의 규정대로 그들이게 행하였다.

 

2. 계속되어지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반역
  1) 선조뿐 아니라 지금도 유다인들과 예루살렘 주민 중에 반역이 있다. 이들은 자기 선조들의 죄악을 돌아가서 다른 신들을 따라 섬겼은즉 그들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다. 
  2) 그래서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는데,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부르짖어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심.
  3)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주민이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신들이 그 고난 가운데서 절대로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리라.

 

3.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 
  1) 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2)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 집에서 많은 악한 음모를 꾸미더니 내 집에서 무엇을 피하겠느냐? 거룩한 제물 고기로 네 재난을 피할 수 있겠느냐? 
  3)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 좋은 열매 맺는 푸른 감람나무라 부른 유다를 그 위에 불을 피우고 가지는 꺾어 재앙을 선언하였다.

 

4. 아나돗 사람들이 예레미야의 메시지로 인하여 그를 죽이려 함.
  1) 예레미야의 고향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해하려고 하고, 그의 결실을 박멸하고 자 했다. 
  2) 이로 인해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그들에게 대한 보복을 요청했다.
  3)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게 대해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1)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에게 예언하지 말라고 예언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2) 하나님께서 아나돗을 벌하시리니, 청년들은 칼에 죽고, 자녀들은 기근에 죽고 남는 자가 없게 될 것이다. 아나돗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곧 그들을 벌할 해에 하리라.

 

 

[정리1.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풀어서 쓰는 것이 포인트]

 

유다가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그들의 조상 때부터 언약 순종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책망하시고 더 이상 용서할 수만은 없음으로 지적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출애굽할때부터 언약을 맺으셨다. 그러나 그들이 순종하지 않았고, 마음을 기울여 듣지 않았다. 그들 뿐 아니라, 그의 후손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다른 신을 섬겨 언약을 깨뜨렸다. 그래서 기도하며 부르짖어도 듣지 않았고, 그들이 따르는 우상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어도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셨다.

이제 예레미야의 중보의 기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이 백성은 하나님의 집에서 많은 악을 꾸미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을 향해 좋은 열매를 맺는 푸른 감람나무라는 이름을 처음에는 주었으나, 이제 그 나무를 불 태우며 가지를 꺽을 것이다.

 

예레미야의 고향인 아나돗 사람들의 완악함에 대해서도 지적하신다. 이들은 예레미야를 향해서 예언을 그만하라고 협박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나돗 사람들에게 큰 재앙을 선포하셨다. 자녀들과 청년들, 그리고 예루살렘 거민들을 벌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예레미야와 신약과의 연관성

 

예레미야를 읽다보면 신약의 여러 장면들이 떠오른다. 우선 이스라엘과 유다가 지은 죄의 내용들은 로마서 1-3장에 언급되어 있는 하나님을 진노를 일으키는 죄의 내용들과 유사하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유다를 감람나무라고 비유하시고, 그들에 대한 심판을 그의 가지를 꺾었다고 표현했는데 이또한 로마서 11장에 언급된 비유와 유사한 방식이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자신의 고향인 아나돗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박해를 받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자기 고향애서 박해를 받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누군가는 예레미야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의 모습이 겹쳐진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이겠다는 생각을 한다. 신약의 많은 부분이 예례미야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유다의 멸망을 지켜보는 선지자의 모습과 그의 메시지 속에서 그 시대의 심판, 절대적 심판 속에서도 샘솟는 소망, 그리고 그 일을 증거하는 선지자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사역... 예수님의 시대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그림이라 보인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도 반영되고 있는 그림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우리는 이 시대 속에서 어두을 보고 빛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안에서 우리의 사역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 사역을 이루어 감에 있어서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담금질을 거쳐야 한다. 이것인 우리의 운명이다.

 

2. 거룩한 제물 고기로 네 재난을 피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언약을 깨뜨리고 반역하는 네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물이랍시고 드리는 고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에 대한 태도는 잊어버리고 종교적인 제의(그것을 위해서 어떤 희생을 드렸든지 상관없이)만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샤머니즘적인 신앙은 대체할 수 있다. 윤리와 도덕보다는 신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중시한다. 그래서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르다. 종교적인 의식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법에 대한,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신실성과 충성이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윤리적이며 도덕적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거룩한 제물이며, 과도한 헌금과 헌신이면 주님을 향한 열정이면 도덕과 윤리와 법도 제맘대로 벗어 던지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주를 위한다는 말과 교회를 위한 다는 말이면 도덕과 윤리는 뒤로 던져지는 물건이 되고 말지 않았는가? 어찌 우리가 이 재난을 피할 수 있겠는가? 어찌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이 질책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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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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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5장] 성경적 역사의식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낙관의 시대에 교만을 지적하고,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는 그 시대에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는자는 다음 시대를 예비할 수 있는 복이 있다.

 

[정리1. 본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자]

 

1. 예루살렘의 멸망: 히스기야 왕이 잡혀감
  1) 시드기야 9년 11째 달.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군대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옴
  2) 시드기야 11년까지 포위함. 모든 병사들이 밤중에 도망함.
  3)갈대아 군대가 도망치던 왕을 쫓아가 여리고 평지에서 잡음. 모든 군대는 그를 떠나 흩어짐.
  4) 시드기야를 사로잡아 바벨론 왕에게 데려가고,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 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베론으로 끌고 갔다.

 

2. 예루살렘의 멸망: 남은 자를 데려가고, 성벽을 허물고 성전의 기물을 가져감 
  1)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19년 째에 왕의 신복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름.
  2)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태움, 성벽을 험.
  3)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는 모두 사로잡아감. 느부사라단이 비천한 자들은 그 땅에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셨다.
  4) 갈대아 사람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놋으로 된 물건들을 바벨론으로 가져갔다.(두 놋 기둥과 받침, 놋 바다, 가마들과 부삽, 부집게, 숟가락, 모든 놋그릇, 불 옮기는 그릇, 주발 등 금이나 은으로 만든 모든 것을 가져감. 헤아릴 수 없는 양의 놋을 가져감)

 

3. 예루살렘의 멸망: 유다 백성들이 잡혀감
  1)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성중에서 여러 지도자들을 60여명을 잡아 가지고 바벨론 왕에게로 데려감
  2) 바벨론 왕은 하맛 땅 립나에서 이들을 다 쳐서 죽임당함.
  3)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4. 예루살렘의 멸망: 바벨론은 유다에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세움
  1) 바벨론이 남긴 사람만 유다 땅에 남아 있었다.
  2)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가 관할하게 하였다.
  3) 유다의 군대 지휘관과 그를 따르는 자가 바벨론이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삼았다는 것을 알고, 그달랴에게 찾아왔다.(이스마엘, 요하난, 스라야, 야아사니야...등 이들과 따르는 무리들)
  4) 그달리야가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면서 바벨론 왕을 섬기라고 요청함.
  5) 나중에 이스마엘이 부하 열 명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였다. 그리고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였다.
  6) 이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애굽으로 도망쳤는데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했기 때문.

 

5. 예루살렘의 회복(?): 여호야긴의 회복
  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지 37년 만에 옥에서 나왔다.
  2)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죄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다.
  3) 그가 쓸 것을 날마다 왕에게서 받아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했다.

 

[정리2. 정리된 내용을 내 말로 다시 풀어보자]

 

유대의 멸망을 다루게 되는 장이다. 시드기야 9년에 바벨론은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고, 3년간 예루살렘 성을 애워쌓으므로 결국 예루살렘 성에 있던 왕과 신하들은 견딜 수 없게 된다. 도망치려던 것이 발각되어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 왕에게 끌려간다.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눈까지 뽑고 바벨론으로 데리고 간다. 그와 함께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은 예루살렘을 완전히 훼파한다. 모든 귀인들의 집은 불태우고, 성벽은 헐었으며 성전에 있는 놋과 금과 은으로 된 것들은 모두 거두어 바벨론으로 가지고 갔다.


포로로 잡혔던 사람 중에는 60여명의 지도층 인사들이 있었는데 이들도 바벨론 왕에게 잡혀 왔으나, 왕은 이들을 모두 죽이도록 했다. 이것은 포로된 자의 운명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바벨론 왕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남겨 놓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 중에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세워놓았으나, 유다의 군벌들이 그달리야의 친바벨론적 태도에 불만을 가지고, 그 중 이스마엘에 자기 병사들과 함께 그달리야를 죽인다. 그리고 미스바에 있던 유다인들과 갈대아인까지 모두 죽인다. 그리고 갈대아 인들의 복수가 두려워서 애굽으로 도망치기에 이른다.


유다는 정치적 공백의 시간을 맞게 된다.

본 장의 마지막은 포로로 잡혀갔던 여호야긴 왕이 잡혀간지 31년 만에 옥에서 나와 왕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회복하였음을 기록하는데, 이는 앞으로 유다의 상황도 이와 같이 회복될 것을 염두해 두고 표현한 거라 보여 진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유다의 멸망이 완전한 멸망임을 보여준다.

 

시드기야 왕이 도망하다가 잡혀, 자신의 아들들의 죽음을 봐야 했고 자기 자신은 눈이 뽑히는 고통 속에서 애굽으로 끄려가는 인생이 되었다. 모든 지도층들은 거의 포로로 잡혀가거나 잡혀 죽게 된다. 성벽은 허물어지고,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든 성전의 물건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지게 된다.

 

바벨론의 왕이 남은 자들을 위해서 세워놓은 유다의 지도자인 그달리야조차 옛 유다 세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갈대아 인들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생활한다. 유다의 황폐함을 보여주며, 유대에 남아 있는 자들의 비천함과 비참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제 북이스라엘도 남유다도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말씀하셨던 성전도 훼파되었으며, 다윗의 언약도 파기된것처럼 이스라엘의 영원할 것 같은 왕조도 끊어지고 만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 분의 뜻을 포기하신 것 같기도 하고, 성취하시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유다의 멸망의 상황에서 보여지고 있는 현상이다. 이와 같은 일이 그 당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신앙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 우리는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유다는 완전히 망했다. 이 현상을 토대로 성전의 의미와 다윗 언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다른 해석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그 이후 선지자들에게 새로운 해석을 하게 한 것이다. 해석은 이렇듯 현장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2. 여호야긴의 회복에 대한 기사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완전한 멸망으로 마친것 같은 유대의 역사에 열왕기하 기자는 하나의 사건을 덧붙인다. 여호야긴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포로로 잡혀간지 37년 만에 옥에서 풀려 존귀한 자리를 회복하며 평생을 왕의 진미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완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열왕기하 기자는 여호야긴 왕의 회복 사건(작은 사건이지만)을 통해 유다에 다시 한 번 회복의 기회가 시작되고 있다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고 그것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이 열왕기하를 기록한 것이다. 그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았고, 그 희망이 작았지만 그 희망 속에서 미래를 그렸다. 그리고 절망의 늪에 있는 자들에게 지푸라기 하나 같은 것이지만, 그것이 생명의 동아줄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망을 가졌던 것이다. 절망의 시대에 절망을 보며 절망을 지적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어쩌면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설득력을 가지는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절망 속에서 절망적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소망을 비추는 것으로 마감하는 역사의식을 가진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역사 의식을 가진자가 되어야 한다. 어떤 역사의식인가? 낙관의 시대에 절망을 볼 수 있는 역사의식이다. 절망으로 가야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또한 절망의 시대에 소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절망 속에서 살아날 수 있고 견딜 수 있어서 희망의 때를 준비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역사의식의 사람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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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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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의 이야기는 성벽 재건 이후에도 상당히 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모르는것 같습니다. 느헤미야 = 성벽 재건, 땡.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느헤미야의 이야기는 성벽 과정 처럼 다이나믹 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성벽 재건 이후의 이야기를 길고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는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 과정 뿐 아니라 그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까지 모두 설명해야 느헤미야서를 기록한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지요.

암튼, 6장에서 성벽을 재건하고 나서도 7장, 8장, 9장, 10장까지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1차 정리. 본문 내용 중심으로]

1. 언약에 인봉한 자들의 명단(1-27절)

  1) 총독 느헤미야에서부터 시작해서 제사장들, 레위인들, 백성의 우두머리들이 인봉에 참여

2. 맹세한 사람들의 맹세의 내용들(28-39절)

  1) 언약에 인봉하지는 않았지만 그 언약에 맹세한 사람들은 남은 백성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및 이방 사람과 절교한 사람과 가족들.

  2) 저주로 맹세하기를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과 계명과 규례를 지켜 행한다.

   (1) 우리 딸을 이방인에게 주지 않으며, 이방인의 딸을 데리고 오지 않는다.

   (2) 안식일에는 물건을 사지도 않고 팔지도 않는다.(이 땅 사람들이 요구하더라도)

   (3) 일곱째 해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해 주겠다.

   (4) 스스로 규례를 정하여 해마다 각기 세겔의 삼분의 일을 수납하여 하나님의 전을 위해씀

   (5) 항상 드리는 전설병, 소제, 번제를 드리고, 안식일과 초하루에 쓰는 쓸 것과 성물과 이스라엘의 속죄제를 드리고.

   (6) 제사를 위해 사용되는 나무를 하나님의 전에 바쳐 제단에 사르게 하고

   (7) 해마다 토지 소산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고

   (8) 맏아들과 가축의 처음 난 것과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하나님의 전에 가져가 드리고..

   (9)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주고

   (10) 레위인들은 받은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하나님의 전 곳간에 넣어 두라.

   (11)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자손이 거제로 드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가져다가 성소의 그릇들을 두는 골방 곧 섬기는 제사장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있는 골방에 둘 것이라.

    :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2차 정리. 본문을 저자의 의도에 맞춰 내 방식으로 재구성]

귀환한 온 국민적인 회개의 운동이 마치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근거로 다시 언약을 맺기로 결심했다. 이제 느헤미야 10장에서는 그 언약 체결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실현할 인봉한 사람들의 명단이 언급되고, 그 외에도 모든 사람이 그 언약을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어떻게 보면 가나안 정복을 마치고 여호수아가 너희가 믿을 하나님을 선택하라고 제안하고 그 제안에 모든 사람이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약속한 선조들의 모습처럼, 이들이 언약을 지키겠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결심이면서도 동시에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여운을 남기는 결정입니다.

그들이 결심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방인과 통혼하지 않을 것이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이며(안식년도 지킴) 성전을 통해서 드려야 할 제사와 절기의 예물을 온전히 드릴 것과 또한 성전에 바쳐야할 것을 바쳐서 성전을 섬기는 사람들의 필요도 채워주고, 성전 자체를 버려두지 않도록 하겠다는 결심이다.

이들의 이와 같은 결심이 잘 지켜지게 되는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선조의 역사를 통해 깨달았는지 아니면 깨달았어도 행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질인지를 봐야 할 일이다.

[3차 정리. 묵상과 적용]

1.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재 언약의 체결은 매우 공식적이고 무게감있게 진행되었다.

다시 언약을 맺고 그것을 인봉한 사람들의 이름이 일일이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 언약의 맺은 내용들에 대해서 하나씩 구체적인 실행 지침을 확인해 주고 있다.

귀환한 공동체는 새로운 언약식을 통해서 조상들의 신실하지 못함에 대한 반성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들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새로운 마음으로 언약식에 임했다. 책임있는 지도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적어, 역사에 남김으로 책임감 있는 삶을 살것을 결심했을 것이다.

우리가 뭔가 새로워지길 원한다면, 내적으로 개인적으로만 결심하는 것으로는 약할 수 있다. 공개적이고 가시적인 형식을 통해서 나의 결정의 무게를 더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말하고, 공개적으로 표현함으로서 나의 결심에 다른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요, 또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나를 감시하는 사람이 되어서 나로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아달라는 요청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변화는 좀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정치인들의 정견발표, 연예인들의 기자회견, 대통령의 담화문...자신의 의지와 견해를 오해없이 분명하게 함으로 자신의 의지와 입장을 강화하고, 오해를 불식시키고 또 자기 자신도 그 일에 책임을 지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다. 또한 공개적으로 행한 것이기에 자신을 스스로 감시하고 채찍질하는 제어장치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제발, 이런 의지와 무게감으로 이런 장치들을 활용해 주셨으면 좋겠다. 언론 플레이가 아니라.. 어떤 꼼수로서의 말장난이 아니라... 무게감있고 책임감있게...

 

2. 백성들이 지키겠다고 했던 항목들을 잘 살펴야 한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들을 보면 뭔가 뒷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돌아온 백성들이 맺은 언약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치인들의 공약을 잘 살피고, 그 공약대로 진행하고 있는지를 감시해야 하는 것처럼 백성들의 구체적인 의지와 결단의 내용들이 잘 진행될 것인지 우리는 살펴봐야 한다.

만약 꾸준히 그렇게 행한다면, 하나님은 언약대로 행한 이들을 향해 어떤 복을 허락하시는지 봐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왜그렇지 못했는지를 봐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와 같은 언약을 성실하게 성취해 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궁금해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을 예측하며 성경을 보는 것은 좋은 성경읽기다. 한 마디로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 다는 것이고, 성경의 스토리에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에는 이렇게 했었는데 과연 지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역사적 안목을 기반으로 한 예측이라면 더욱 유익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1. 통혼하지 않는 것

2.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거래행위 금지)

3. 성전과 관계된 제사, 절기, 봉사자들에 대한 생계보장 등

관전 포인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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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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