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시편 32편] 시편 32편에서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하라>는 말씀은 일반적인 <기도>에 대한 권면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자신의 죄를 입을 열어 자복하라>는 의미이다.(5절) 사람은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숨긴 죄는 더 커지게 마련이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죄를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철저한 약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죄를 인정하여 자백하는 순간, 우리는 양심의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숨어계셨던 큰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될 것이다. 약자로서가 아니라, 아들로서 말이다. 


            [시편내용과 무관하지만, 죄의 자백 검색으로 나온 사진 중 하나/사진 테스트 중]


[정리]


1. 하나님 앞에서 복이 있는 자(죄가 가리워지고 정죄당하지 않는 자)


1절.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복이 있도다

2절.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복이 있도다.


2. 마침내 자신의 죄를 자백할 때 얻게 되는 자유(하나님의 사하심)


3절.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절.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5절.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3. 지혜: 주를 만날만한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하라.(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나오라)


6절.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7절.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셀라)

: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면, 네 죄를 고백하여 하나님께 아뢴다면 홍수가 범람하는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너는 걱정이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너의 환난날의 은신처가 되어 주실 것이기에 그렇다. 


8절.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9절. 너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 제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훈계를 주목해라. 무지한 말로 노새같은 고집은 부리지 말아라. 불필요한 변명은 하지 말아라. 그런 것들을 멈추지 않으면 우리는 참된 회개에 이르지 못하며 그 앞에 가까이 갈 수 없게 될 것이다. 


4. 시편의 결론: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의인(여호와를 신뢰하는 자, 그래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자)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10절.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11절.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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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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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31편] 주의 공의가 그를 의지하는 자를 부끄럽게 하지 않고 구원하게 하신다.(1절)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는 나의 삶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공의가 아니라, 우리의 견고한 바위와 산성이 되어 주시는 공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의> 속에 <복음>이 나타났다고 고백한 것이리라.(롬 1:17)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공의가 <넘치는 은혜>(19절)이 되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공의가 <공의로운 판단>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입장에 따라, 공의가 다른 의미를 가지고 다르게 적용된다. 


[정리/발췌]


1. 시편 기자의 신학적인 내용의 믿음


1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2. 시편 기자의 신학적인 확신을 통해 얻은 여호와 하나님의 든든함


2절. ...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3절.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4절. ...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3. 시편 기자가 당면한 고난과 그 상황


11절.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13절.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4. 하나님께서 그에게 피하는 자들을 위해 준비하신 은혜의 풍성함


19절.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23절.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5. 결론적인 적용: 강하고 담대하라.


24절.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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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13편]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많이 하게 될 말 중에 하나가 "할렐루야"보다는 "어찌하여"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때까지"일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자연스러움이고 성숙으로 가는 과정이다. 거기에서 자신의 한계와 복음, 그리고 은혜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주님도 마지막 순간,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말씀하셨다. 


[정리1]


1. 시편 기자의 탄식

  1절.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절.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 시편 기자는 고통의 끝을 보지 못하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참고 기다려야만 하는 것인지 가늠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어느 때까지입니까? 고통의 원인자(원수)에 대한 신원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의 대상인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탄식이며 불평이라 볼 수 있겠다. 


2. 시편 기자의 간구

  3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4절)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 이런 식으로 더 가다가는 자기 자신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자신이 죽을 지경이라는 말이기도 하면서, 결국 자신이 넘어지게 될 것이라는 너무 뻔히 보이는 상황이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믿음을 견고하게 해달라고, 지켜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자신이 포기할 것 같다고, 질 것 같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래 참된 신앙과 기도란 바로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토설이다. 그 토설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기독교다. 


3. 시편 기자의 의지

  5절.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절.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 시편 기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한다고 했다. 그것이 더 늦기전에 도와주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포기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으켜 세워주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후자의 개념도 있으리라 본다. 



[정리2]


1.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보다 늦게 혹은 훨씬 늦게까지 내버려 두신다.

  우리가 생각한 최선을 다하고, 우리가 기다릴 수 있는 지점까지 힘들게 참고 갔더라도, 하나님은 그곳에서도 아무 말씀이 없으실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2. 그래서 우리는 견딜 수 없어, 실패하거나 배신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될 수도 있게 된다.

  우리 힘으로만은 견딜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심지어 사망에 이르게 되는(배신과 실패의 자리에 이르게 되는) 지경까지 갈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의 무력함을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요청할 뿐이다. 


3. 그래서 우린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게 된다. 

실패하거나 배신하지 않는 사랑이 아니라, 실패와 배신 속에서도 사랑으로 다시 세워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 이것이 복음이며, 은혜며 하나님의 구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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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내용]

로마 가톨릭은 세상을 초월과 자연으로 나누고, 자연을 하나님의 통치 영역에서 배제시킴으로서 자연은 하나님과 독립된 영역이 되었다. 여기에서 이신론과 자연신론이 나오게 되었다. 


[본론]


1. 종교개혁은 당시 자연에 대한 이해 때문이었다. 

  1) 기독교적인 것이 그 내용을 초자연으로만 품는다면, 자연은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가? 

  2) 가톨릭이 신적인 영역을 초자연으로 제한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으로부터 독립하게 됨.(자연,인생)


2. 종교 개혁자들은 이것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1) 초월과 자연으로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은혜 아닌 것으로 구별해야 한다는 견해.

   (1) 로마 가톨릭은 초월만이 신적인 것을 함유할 수 있다고 봤고, 자연은 함유할 수 없다고 봤다. 

   (2) 개혁주의는 초자연도 신적인 내용을 함유할 수 있고, 자연도 신적인 내용을 함유할 수 있다고 봤다. 


  2) 특별계시와 일반계시의 이해

   (1) 우리는 특별한 방식(초월적)으로 계시한 것을 특별계시, 일반적인 방식(자연적)으로 계시한 것을 일반계시라고 이해한다. 

   (2) 그러나, 종교 개혁자들은 하나님은 자연 속에서도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시 19편)

   (3) 로마 가톨릭은 초월과 자연으로 특별계시와 일반계시를 나누었지만, 종교 개혁자들은 특별 계시가 자연 속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특별계시와 일반계시의 구분을 <은혜>로 봤다. 즉,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을 나타내는 것을 특별계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는 것을 일반계시라고 한다. 

   (4) 성경은 특별계시고, 자연은 일반계시는 아니다. 그 계시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오느냐의 문제로 규정해야 한다.

   (5) 아담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방식에는 차이가 없다. 다만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서 <은혜>가 적용될 때는 특별계시가 되고, 그렇지 않는 것은 자연계시가 되는 것이다. 


3. 세대주의의 문제

  1) 세대주의란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그 세대마다 독특한 방법으로 일하신다는 것.

  2) 구약과 신약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다르다고 생각하게 됨(구약은 율법, 신약은 은혜)

  3) 이런 의식은 신약 시대에 사는 사람들을 반율법주의자로 만들 수 있다.(은혜 만능 주의)

  4) 구약도 은혜다. 왜? 죄지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셨으니까 은혜다. 

  5)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이미 은혜요 특별계시인 것이다 


4. 사단의 전략

  1) 예전에는 <초월>이라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게 했다. 

  2) 이제는 <계시의 내용>에 대해서 공격한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신앙은 선과 의로 가는 싸움아니냐? 꼭 십자가로 가야 할 필요가 있느냐? (종교 다원주의, 혼합주의 등 죄의 문제를 약화시키는 쪽으로 간다)

  3) 그래서 기독교의 적은 도덕이요 철학입니다.(내용의 싸움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인본주의와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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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룻기 2장] 율법은 구속이고 제한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율법은 은혜와 자비의 통로였다. 율법이 구속이요 제한이라고 여겼던 자들은 강한자요 부한 자들이었다. 왜냐하면 율법은 이들의 힘과 권력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한자 연약한 자들에게는 율법은 은혜의 통로였고, 그들이 살 수 있는 숨통이었다. 오늘날의 복지 정책이 이와 같은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룻이 베들레헴의 유력한 자 보아스의 밭에서 일하게 된 이야기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였다. 

  2) 룻은 나오미에게 자신이 누군가에게 은혜를 얻으면 그를 따라 이삭을 줍겠다고 하자, 나오미는 이를 허락한다. 

  3) 룻은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는데, 우연히 들어간 그 밭은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이었다. 

  4) 보아스는 때마침 그곳을 방문하여 일하는 농부들에게 축복의 말을 인사로 했다. 

  5) 보아스는 자기 밭에서 일하는 낯선 소녀를 보게 되고 그 종 중에 하나에게 그녀가 누구인지를 묻는다. 

  6) 종은 룻이 나오미와 함께 모압에서 왔고, 아침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 보아스가 룻에게 호의를 베푸는 말을 해주다.

  1) 보아스는 룻에게 이삭을 주으러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여기를 떠나지 말라고 말해준다.

  2) 보아스는 일하는 일꾼들에게 룻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목이 마르면 일꾼들이 떠온 물을 마시도록 호의를 베풀었다. 

  3) 룻은 자신에게 큰 호의를 베풀어 준 것에 대해서 감사함을 표현했고,(나는 이방여인인데 어찌 은혜를 베풀어주시나이까?) 룻이 자신의 시모를 위해 자신의 고국을 떠나 왔다는 사실을 안 보아스는 하나님의 날게  아래에 보호 받으러 온 너에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축복했다.   

  4) 룻은 보아스에게 자신에게 그런 은혜입기를 원한다고 고백했고, 보아스의 말에 큰 위로를 얻었다. 


3.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호의

  1) 식사할 때에 

   (1) 이리 와서 떡을 먹고,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어 먹으라. 좋은 자리에 앉아 볶은 곡식을 주매 배불리 먹었다. 

  2) 보아스는 자기 소년들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3) 그를 위해서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벌셔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고 했다. 


4. 보아스에게 얻은 호의를 룻이 나오미에게 말하다. 

  1) 룻이 그 날 하루 이삭을 주워 모은 양이 보리 한 에바쯤 되었다. 또한 자신의 먹고 남은 양식을 보여드렸다. 

  2) 나오미는 어디에서 이런 은혜를 얻었는지를 묻자, 룻은 보아스 라는 사람의 밭에서 일했다고 했다. 

  3) 나오미는 보아스라는 말에 그는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고백하고, 그가 자신들과 가까운 친족으로 기업 무를 자라는 사실을 언급한다. 

  4) 나오미는 룻에게 추수가 마칠 때까지 다른 밭에 가지 말고 그 밭에서만 일하라고 했고, 룻은 결국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였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을 다시 풀어서 쓰기]


룻은 나오미의 허락을 받고 이삭을 줍기 위해 밭으로 나간다. 우연히 찾아 들어간 곳이 보아스 라는 유력한 사람의 밭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와 같은 사실은 모른채 룻은 아침부터 보아스가 자신의 밭을 둘러보러 오는 시간까지 열심히 일했다. 


마침 자신의 밭을 둘러보기 위해서 온 보아스는 낯 선 소녀를 보게 된다. 종에게 그녀가 누구인지를 묻자 나오미와 함께 자신의 고향을 떠나온 룻이라는 여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보아스도 소문을 통해서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던 터고 자신의 시모를 섬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젊은 여인의 모습이 귀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보아스는 룻에게 위로의 말과 축복의 말을 한다. 하나님은 그 날개 아래 피하는 백성에게 복을 주신다는 말로. 더불어 자신의 남종들에게 룻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음식과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해준다. 룻은 보아스의 이와 같은 호의에 감사하며, 큰 위로를 받는다. 자신은 이방 여인인데...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감사한 것이었다. 


보아스가 베푼 배려는 매우 파격적이었는데, 곡식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도록 한다든지 일부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서 룻이 주울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룻은 한 에바나 되는 양의 이삭을 얻었고, 충분히 먹은 음식의 남은 것을 가지고 나오미에게로 갔다. 나오미는 룻이 들고 온 이삭의 양과 음식을 보고, 누구에게 호의를 입었다는 것을 금새 알게 된다. 룻은 그 사람이 보아스라는 것을 알려주고, 나오미는 보아스가 자신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 사람인지를 간파한다. 기업을 물어줄만큼 가까운 사람인 것이다. 보아스는 룻에게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계속 그 밭에서 일하도록 지시한다. 룻은 보리추수와 밀추수가 마칠 때까지 그곳에서 이삭을 주으며 지내게 된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하나님은 룻과 보아스를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만나게 하셨다. 

룻과 보아스의 만남은 우연의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갔고, 보아스는 마침 자기의 밭에 찾아 왔다. 그리고 유독 룻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우연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 중에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하나님의 섭리적인 만남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을 통해서 필연을 만들고 역사를 만들어가 가신다. 우리는 일상에서 눈을 떠서 우연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필연이 무엇인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더욱 의식하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간파할 수 있게 되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더욱 분명하게 느끼며 살수 있게 된다 


2. 보아스는 룻의 행실을 보고 칭찬하고 축복했으며 많은 혜택을 주었고, 룻은 그것으로 인해 위로를 얻고 감사했다. 


보아스는 룻의 행실에 대한 소식을 알 고 있었다. 자기 민족과 신을 버리고 나오미를 좇아 온 룻의 귀한 충성을 들었다. 보아스는 그것을 좋게 여겼다. 그런데 자신의 밭에서 일하고 있는 룻을 보게 된 것이고, 룻이 성실하다는 평가를 듣게 된다. 보아스는 룻의 행실을 칭찬하고 그에게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축복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와 은혜를 배풀었다 

룻은 보아스를 통해서 큰 위로를 얻었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그런 선한 행실에 대한 복을 빌어주며 현실적으로 따듯한 대우를 해주는 보아스로부터 큰 격려를 얻은 것이다. 


나오미의 배려는 룻의 충성으로 나타났다. 룻의 충성은 보아스의 마음에 좋은 이미지를 주었고, 보아스는 그 충성을 축복했다. 그리고 다시 룻은 그것으로 인해 위로를 얻게 된다. 선한 헌신이 하나님의 위로로 나타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우리의 선한 수고와 헌신은 하나님 안에서 인정과 상급으로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 



3. 나오미는 이와 같은 사건을 통해서 <기업 물어줌을 통해서 얻는 소망>을 바라보게 되었다. 


나오미는 룻의 생각 밖 수확에 놀란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은혜에 보아스라는 친족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거의 본능적으로 <기업무를 자>의 법에 대한 잊고 있던 율법이 생각나게 되었다. 즉, 이 만남은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 된 것이다. 그리고 나오미는 그 자신들에게는 은혜로운 법을 의지하여 나아가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을 가장 민첩하게 본 사람이 바로 나오미다. 나오미는 많이 세속화 되어 있는 이스라엘을 대변하는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의 법이 있고, 그 법은 그들에게 유효했던 것이다. 이제 나오미는 그 길을 열어가는 사람이 된다. 


율법이란 강하고 부한자들에게는 제한이 된다. 그러나 약하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은혜와 복지가 된다. 율법을 제한으로만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강한 때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약할 때에는 율법이 은혜의 통로가 된 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약한 자가 강한 자로 어떤 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의 강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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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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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기 16장] 삼손에서 인간의 냄새가 난다. 너무나 인간적인 삼손. 삼손에게서 예수의 냄새가 난다. 죽음으로 자신의 사명을 완성하신 예수. 삼손에게서 은헤의 냄새가 난다. 나실인의 거룩함을 버린 삼손에게 다시 머리털이 자랐다는 문구에서 은혜의 냄새가 난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삼손에게 강력한 힘이 있어서 블레셋 사람들이 대적하지를 못했다. 

  1) 한 번은 삼손이 가사에 가서 한 기생의 집에 들어간 것을 알고, 그를 죽이려고 밤새 매복하고 있었다. 

  2) 그런데 삼손이 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들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빼어 어깨에 매고는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지고 갔다. 


2. 블레셋은 들릴라를 통하여 삼손의 힘의 근원을 알아내 그를 잡고자 했다. 

  1)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자를 사랑했다. 

  2)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그 여자에게 돈을 줄 것을 약속하고 삼손의 힘의 근원을 알려주고, 그를 결박할 수 있도록 해주면 돈을 주겠다고 했다.(각각 은 1100씩)

  3) 들릴라는 삼손을 꼬득여 힘의 근원을 찾아내고자 하는 시도를 한다.

   (1) 마르지 않은 새 활줄 일곱으로 자신을 결박하면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이 된다. 

   (2) 만일 쓰지 아니한 밧줄들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해져 다른 사람과 같이 된다. 

   (3) 만일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짜면 된다.

   : 세 번 모두 시행하고 블레셋 사람들을 잠복 시켜 놓았지만, 블레셋 사람이 잡으러 왔다고 거짓말을 하면 모든 끈을 금새 풀어버렸다. 삼손이 들릴라에게 진심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4) 들리라는 삼손에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삼손을 재촉하여 조르자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 되어 결국은 사실을 고백하게 된다. 

   (1) 자신은 나면서부터 나실인이 되었기에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다.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될 것이다. 

   (2) 들릴라는 블레셋에게 사람을 보내 올라 오도록 하고, 들릴라는 자신의 무릎 위에서 삼손이 자게 하고는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이 들이 닥쳤다고 말하자 삼손이 잠이 깼지만 전과 같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셨다는 것을 그 때까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5)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잡아다가 눈을 빼고 가사에 데리고 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다. 

  6)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3. 블레셋 방백이 자신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릴 때, 삼손의 재주를 보기를 원했다. 

  1) 자신들을 괴롭힌 삼손을 데려다 재주를 부리도록 시켰다.

  2) 삼손은 자신을 이끈 소년에게 요청하여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함.

  3) 그 집 안에 약 3000명 가량의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의 재주를 보고 있었다. 

  4) 삼손은 여호와께 부르짖어 나를 이번만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해 달라고 요청하고, 집을 버틴 두 기둥을 양팔로 잡고 몸을 굽히매 그 집이 무너졌다. 그 안에 모인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죽을 때에 죽인 자가 더 많았다. 

  5)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내려가서 삼손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왔다.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였다.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 동안 지냈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풀어서 쓰기]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었다. 블레셋은 늘 기회를 엿봐 삼손을 제거하려고 했지만, 삼손은 워낙 힘이 강해서(성문까지 뽑아들고 가는 정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 삼손이 들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어 그와 머물게 됨을 알고, 블레셋 사람들은 그 여인을 통해 삼손의 힘을 근원을 알아내고자 한다. 들릴라는 그들이 주겠다는 돈에 현혹되어 몇 차례 삼손으로 하여금 그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다. 삼손은 장난처럼 그 여인에게 가르쳐 준다. (1) 마르지 않는 새 활줄 일곱으로 자신을 결박하면 된다. (2) 쓰지 않은 밧줄로 나를 결박하면 된다. (3)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짜면 된다. 와 같은 이야기를 해주면 들리라는 그것을 시행하지만 번번히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들릴라는 삼손의 이런 태도에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며, 계속해서 채근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삼손은 괴로워하다가 결국은 자신이 나실인으로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 떠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들릴라는 블레셋 사람을 부르고 삼손의 머리카락 7개를 민다. 그러자 삼손은 무력하게 되어 블레셋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들의 손에 잡혀 눈을 뽑히고 옥에서 맷돌을 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런 슬픈 상황 속에서 삼손의 머리는 조금씩 다시 나게 되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는 축제일에 삼손을 불러 그의 재주를 보기를 원했다. 삼손은 소경이 되어 한 소년의 손에 이끌리어 블레셋 사람들 앞에 서게 되고 그들이 원하는 재주를 부려야 했다. 그러는 중에 삼손은 그 집의 힘을 지탱해 주는 기둥을 알아내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신에게 한 번의 힘을 주어 복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힘을 다해 기둥을 민다. 결국 기둥은 넘어지고 집이 무너져 많은 블레셋 사람들이 죽게 된다. 오히려 삼손이 살아 있을 때 죽인 사람들보다 삼손이 죽으면서 죽인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성경은 기록된다. 

삼손의 가족들이 삼손의 시신을 거두어 그의 아버지의 장지에 함께 장사했다. 삼손은 2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지냈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삼손의 인간적인 연약함


삼손은 강한 힘으로 블레셋을 제압했었다. 그렇게 20년간 사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했었다. 힘으로 삼손을 제압하려고 했지만 블레셋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삼손은 여자에 약했고(아내의 채근에 결국 수수께끼의 답을 알려주고 만다. 이번에는 들릴라의 채근에 진실을 말하고 만다) 결국 들릴라의 꾀임에 넘어가 블레셋에게 눈을 뽑히우고 잡히는 결과를 맞게 된다. 


육체적 강력함(군사적 강력함)이 진정한 이스라엘의 구원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힘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었고, 영적인 강인함이 없었던 삼손은 육체적 강인함마져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진정한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2. 삼손에게 주어진 다시 한번의 기회


삼손은 포박되어 눈을 뽑히고, 놋 줄에 매여 옥에서 맷돌을 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삼손의 방탕한 삶이 그와 같은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처절한 실패 속에서도 밀린 머리털이 다시 자랐다는 것은 하나님은 다시 삼손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이고, 삼손에게 다시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으로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들 앞에서 실패자로 마감할 수 밖에 없는 인생에게도 하나님은 다시 한 번의 기회를 허락하신다.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완전한 실패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다시 한 번의 기회를 허락해 주신다. 


3. 삼손이 죽음으로 대적을 심판하였다.


삼손에서 예수의 냄새가 난다고 이전에도  표현했다. 오늘 삼손의 마지막 죽는 장면도 그런 냄새가 난다. 삼손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대적들을 심판한다. 성경은 삼손이 살아서 죽인 자보다 죽으면서 죽인 자가 더 많다고 말한다. 삼손은 죽음으로서 자신의 사사로서의 역할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십자가의 죽음이 구속사적으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것처럼 삼손도 그와 같은 것이다. 죽음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한 것이다. 


물론 삼손의 죽음 이전의 삶은 부끄러운 모습이다. 이방 여인을 탐하고 그 여인의 계략에 넘어가 나실인으로서의 서약을 잊어버린채 지냈다.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 뿐이었다. 힘으로 구원자가 되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사랑하는 여인의 계략에 넘어져 자신의 자리를 잃어 버리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 삼손이 회개하고 자신의 사명을 되찾을 때 하나님은 그를 구원의 도구, 사사로 다시 세우신다. 예수를 아는 사람이라면 삼손의 이야기에 예수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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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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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기 8장] 성경의 이야기를 너무 신학적으로만 보면 그 풍성함이 다 드러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의 일상 속에서도 모두 공감할만한 주제로 접근하는 내용도 있다고 봅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듯 합니다. 은헤와 자비를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심판. 배은망덕한 자들에 대한 심판_신학적으로 풀수도 있지만, 일상적인 상식으로도 충분히 공감되는 메시지입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에브라임 지파에서 기드온에게 따지다

  1) 에브라임은 왜 미디안과 싸우러갈 때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다투었다.

  2) 기드온은 에브라임의 위대함과 공로를 치하하는 것으로 그들의 노여움을 풀어주었다. 


2. 기드온이 미디안의 왕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기까지의 과정에서 생긴일.

  1) 기드온이 삼백명의 병사들과 요단을 건너 힘들게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면서 숙곳 사람들에게 떡덩이라를 달라고 하였으나, 숙곳 사람들은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이스라엘 군대를 무시했다.(은혜를 베풀지 않았다.) 기드온은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오면서 숙곳을 찢을 것이라고 말하고 떠났다. 

  2) 기드온은 브누엘로 올라가서 그곳에서 떡을 구했으나 이들도 숙곳과 같은 이유로 기드온의 군대를 무시했다. 기드온은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와서 브누엘의 망대를 무너뜨리겠다고 말하고 떠났다.(이들도 은혜를 베풀지 않았다.)


3.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숙곳과 브누엘을 심판하다. 

  1) 세바와 살문나는 살아남은 15000명의 병사와 함께 갈곱에 있었는데, 그들이 안심하고 있는 중에 기드온과 300용사들은 기습으로 그들을 치고 결국은 도망하는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았다. 

  2) 기드온은 돌아오는 길에 숙곳과 브누엘에서 전에 말한대로 그들에게 행함으로 심판했다.

  3) 사로잡았던 세바와 살문나에 대해서도 그들이 전에 은혜를 베풀지 않은 것에 대해서 그대로 그들에게 심판함으로 세바와 살문나를 직접 죽인다. 그리고 그들의 목에 걸려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져갔다. 


4. 전쟁에 승리하나 기드온의 잘한 것과 잘못한 것

  1) 그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드온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기드온은 자신과 자신의 아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않을 것이라고 거절했다. 오히려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실 것이라고 했다. 

  2) 오히려 기드온은 그들에게 탈취한 귀고리를 달라고 했고, 사람들은 기꺼이 금 귀고리를 모아 주었다. 기드온은 그것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오히려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었다. 

  3) 다시는 미디안이 이스라엘 앞에서 머리를 들지 못했고, 기드온이 사는 40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게 되었다. 


5. 기드온의 죽음(은혜를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자손들)

  1) 기드온은 아내가 많아서 그 몸에서 낳은 아들이 70명이었다. 

  2)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다. 

  3) 기드온이 나이 많아 죽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돌아서서 바알들을 따라가 음행하였으며 또 바알브릿을 자신들의 신으로 삼았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원수에서 건져주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베푼 은혜를 따라 그의 집을 후대하지도 않았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쓰기]


이미 시작된 미디안과의 전쟁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이다. 먼저는 에브라임에 대해서 말한다. 에브라임은 결정적 순간에 도와준 것에 대한 교만함이 있는 듯하다. 왜 일찌감치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냐는 것이다. 기드온은 겸손함과 그들을 높이는 말로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성숙함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는 숙곳과 브누엘에서 있었던, 이스라엘에 대한 몰인정한 태도에 대한 기록이다. 지치고 배고팠던 이스라엘에게 떡덩이를 달라고 요청했으나, 숙곳과 브누엘은 기드온과 삼백용사에게 몰인정하게 대했다. 거절한 것이다. 기드온은 그들의 몰인정함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하고 미디안의 왕 세바와 살문나를 치러간다. 안주하고 있던 그들을 기습하여 결국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는다. 그런 이후의 이야기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세바와 살문나를 죽였다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들을 죽인 이유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바와 살문나는 이전에 몰인정하게 행했던 것에 대한 심판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미디안을 완전히 이긴 기드온은 영웅이되고 이스라엘은 기드온과 그의 아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다스릴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임을 분명히 했다. 기드온이 잘한 부분이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릇된 행동을 한다. 사람들에게 금귀고리를 요청하고 그들을 받아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신의 고향인 오브라에 두었다. 물론 그 금에는 초승달 장식의 이뱡인들의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올무가 되어 사람들은 그 에봇을 음란하게 섬기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기드온은 많은 아내가 있었고, 그로 인해 70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 중에 아비멜렉이란 아들도 있었다.(9장에 등장한다) 기드온이 죽고 나자 사람들은 기드온도 잊고 여호와 하나님도 잊었다. 그리고 그 자손들은 돌아서서 바알을 따라갔다. 이스라엘은 은혜를 잊어버린 백성이 되었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자비롭지 못한 자들에 대한 심판에 대해서 다룬다. 


오늘 본문에는 기드온이 미디안의 왕 세바와 살문나를 죽였다는 것으로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과정을 기록하고 있고 그 과정 속에서 숙곳이란 곳과 브누엘이 등장한다. 이들은 지치고 피곤한 이스라엘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오히려 무시하고 완악하게 대했다. 결국 세바와 살문나 왕을 죽인 후 기드온에 의해서 그들의 자비롭지 못함이 심판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바와 살문나도 바로 죽이지 않았다. 나중에 죽게 되는데 그 이유는 전에 자비를 베풀지 않은 것에 대한 이유로 죽게 된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자비롭지 못한 태도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것과 대조적인 이야기도 있다. 에브라임이 억지스러운 태도로 기드온을 향해서 분을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이들의 억지를 달래주고 이들을 높여준다. 그 장면이 인상적이다. 또 마지막 부분을 보면 기드온이 죽은 후, 이스라엘의 태도에서 보여지는 것이 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주신 여호와 자신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다. 또한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베푼 모든 은혜를 잊고 그 집에 후대하지 않았다. 


은혜와 자비의 혜택을 받았음에도 그것이 잊고 다른 신을 쫓으며, 기드온의 집안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은헤가 없는 이스라엘의 운명이, 자비를 베풀지 않았던 숙곳과 브누엘과 같은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우리는 은혜를 잊고 산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우리를 도운 누군가의 은혜를 잊고 산다. 이것이 모두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른다. 배은망덕이라 했던가? 심판의 근거가 배은망덕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고 은혜를 아는 은혜를 배푸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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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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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여호수아 6장] 여리고의 성벽이 이스라엘 제사장의 나팔과 백성들의 함성에 의해 무너진 이야기다. 세상을 강력함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높은 벽과 스펙과 기득권... 언론의 장악.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함성으로 싸운다. 한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백성들의 함성이 대적의 성벽을 무너뜨린다. 성은 무너진다. 곧 무너진다. 모든 백성들이 함께 함성을 지른다면.(12/19)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1. 이스라엘로 여리고를 돌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1) 이스라엘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었다.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과 네 손을 넘겨주었다.
  3) 너희 군대는 그 성을 둘러 매 한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감.
  4)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나팔을 길게 불 때 백성들이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르면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들은 앞으로 올라가라.
  5) 여호수아는 무장한 자들을 매 앞에 그 뒤로 나팔을 부는 제사장 7명, 언약궤를 맨 제사장 순으로 배치시켰다.

 

2. 여호수아의 명대로 진행된 이스라엘 백성들
  1) 실전배치: 무장한 자들 - 양각 나팔 일곱을 잡은 제사장 일곱 - 여호와의 언약궤 - 무장한 자들(후군) / 나팔을 불면서 행진했다.
  2) 백성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다가, 여호수아의 명령이 떨어지면 그 때 외치라고 명함.
  3) 여호와의 궤가 그 성을 한 번 돌게 하고 그들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진영에서 잔다.
  4) 둘째날도 동일한 방식으로 여리고를 한바퀴 돌고 진영으로 돌아왔다. 엿새 동안 이렇게 함.
  5) 일곱째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돌았다.
   (1)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명함
   (2)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다. 성과 그 가운데 있는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모든 자는 살려주라. 우리가 보낸 사자를 살려주었기 때문.
   (3) 여호와께 바친 것이 온전하게 되기 위해 그 바친 물건에 손을 대지 말라.
   (4)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다.
  6) 나팔 소리를 듣고 백성들이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졌고 백성들은 각기 앞으로 나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했다.

 

3. 여리고를 점령하는 이스라엘
  1) 먼저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그 기생의 집에 가서 맹세한 대로 그에게 속한 모든 가족과 형제들을 이끌어 내어 이스라엘 진영 밖에 두라.(이들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다. 이들은 여리고 정탐군들을 숨겨주었기 때무이다.)
  2) 무리가 그 성에 있는 모든 것을 불로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3) 여호수아가 맹세하게 하여 여리고를 저주함: 누구든지 여리고를 세우는 사람은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고,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 아들을 잃으리라.
  4)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이 온 땅에 퍼진지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풀어서 쓰기]

 

여리고를 시작으로 가나안 백성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두려움 가운데 있었다. 여리고는 모든 문을 닫고 출입을 통제했다. 철두철미한 방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하나의 지시를 내린다. 군대로 하여금 여리고 성을 한 바퀴씩 돌도록 한 것이다. 엿세 동안을 그렇게 하는데 무장한 자들을 맨 앞에 그리고 나팔부는 제사장 7명 그리고 언약궤를 배치하여 성을 한 바퀴씩 돌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성을 일곱 번 불고 제사장이 나팔을 길게 불면 백성들이 큰 소리를 외쳐 부르라고 한다. 그러면 성이 무너져 내릴 것이고 백성들로 올라가라고 한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에게 그와 같은 지시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고, 백성들은 그 지시를 따라 여리고 성을 돌았다. 여호수아는 성을 정복할 때 두 가지 사항을 미리 일러준다.  첫째 성의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라. 물건에 손을 대지 말라. 둘째는 라합의 집에 있는 자들은 모두 살려주라. 그것은 정탐꾼을 살려주었기 때문이다.


일곱째 날 나팔소리와 함께 백성들이 외칠 때 성은 무너졌고, 백성들은 앞으로 나아가 성을 점령했다. 무리는 성의 모든 것을 불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를 향해 저주하여 누구든지 여리고를 세우는 사람은 그 기초를 쌓을 때 맏아들이 죽고, 그 문을 세울 때 막내 아들이 잃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훗날 이루어진다.) 여호와와 여호수아에 대한 소문이 온 땅에 퍼졌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여리고 성의 철두 철미한 방어 시스템이 막지 못했다.

 

여리고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철저한 방어 시스템을 가동했다. 그러나 여리고는 하나님과 그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들에 의해서 힘없이 무너졌다. 나름대로의 철저한 방어시스템이 하나님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백성들의 나팔소리와 함성 소리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대적의 강력한 방어시스템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는 무력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팔소리와 백성들의 함성소리... 그것만으로 대적이 취하 최대한의 방어는 무력화되는 것이다. 물론 나팔소리와 백성의 소리만으로 된 것은 아니다. 철저하게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믿음을 통해서 역사한 것이고,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을 철저하게 따르는 백성들 가운데서 강력하게 역사하신 것이다.

 

세상을 강력함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높은 벽과 스펙과 기득권... 언론의 장악.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함성으로 싸운다. 한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백성들의 함성이 대적의 성벽을 무너뜨린다. 성은 무너진다.

 

 

2. 정탐꾼을 도운 기생 라합과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힘쓰고 이는 모습 강조.

 

여호수아 6장은 여리고를 정복함에 있어서 기생 라합과 그 가족들의 생명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했다는 것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훗날 이들은 이스라엘 가운데 편입되는데, 이방 사람들인 이들과 맺은 언약에 있어서 신실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정탐꾼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푼 행위에 대해서 반드시 은혜와 자비의 행위로 갚아준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이라 하겠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은혜를 은혜로 갚아야 한다. 은혜를 모르는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일 수 없다. 은헤를 베푼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라도, 나중에 상황이 역전되었더라도 그 은혜는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언약은 언제라도 누구에게라도 신실하게 지켜야 한다. 오늘 본문은 은혜에 대한 보답과 언약에 대한 신실함에 대한 덕목을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 

 

3. 여리고 승리의 전리품은 모두 하나님의 집으로 옮겨야 함: 하나님의 전적인 승리

 

여리고 전투의 특이한 것은 전쟁의 전리품을 모두 하나님께 드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취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불태워야 했다. 이것은 여리고 전쟁에 있어서 온전하고 유일한 공로자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여리고 전쟁에 있어서 만큼은 인간의 공로를 조금이라도 챙겨서는 안된다.

 

나중에 아간이 자신의 것을 일부 챙긴것은 단순한 욕심에 대한 처벌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완전한 공로를 흠집내는 죄였기 때문에 엄중한 처벌을 받은 것이라 볼 수 있겠다. 하나님은 우리의 공로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분은 아니시다. 우리의 공로를 인정하시기에 상급도 주시고, 전리품도 갖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전혀 손 댈수 없는 영역이 있다. 구원에 있어서 우리가 의롭게 되는 칭의와 중생의 은혜에 있어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공로를 취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아간과 같은 행위가 되고 마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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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4장] 긍정적 메시지만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거짓 선지자들은 긍정적 메시지로 찾아오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메시지는 쓴 소리, 아픈 소리 가운데 있습니다. 고통을 참고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에게 소망은 열려있습니다.(묵상 내용만 참고하세요)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백성들의 탄식과 하나님의 응답

  1) 가뭄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이다.  

  2) 상황: 유다가 슬퍼한다. 사환을 보내 물을 얻으려 하나 얻지 못하고, 밭 가는 자가 물이 없으므로 부끄러워하고 근심한다.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버린다. 

  3) 백성들의 탄식: 우리가 죄가 많을지라도 우리의 소망이신 하나님이여, 우리를 위하여 일하소서. 어찌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까? 왜 나그네처럼 무심하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리이까? 우리를 버리지 마소서.

  4) 여호와의 말씀: 이 백성은 어그러진 길을 가면서 그 길을 사랑하고 멈추지 않았다. 예레미야아,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금식이나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들을 칼과 기근으로 전염병으로 멸하리라. 

  5) 예레미야의 탄식: 거짓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은 없을 것이라고 하고 평강을 예언하는 것에 대해서 예레미야가 탄식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은 거짓 선지자라고 하면서, 그들을 보내지 아니했다고 말씀하신다. 오히려 그 선지자들과 처자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모든 백성이 칼과 기근으로 멸망하게 되고 알지 못하는 땅으로 다니게 된다고 하심. 


2. 백성들이 주 앞에 호소하다.

  1) 여호와여, 우리를 버리시는 것입니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는 치료하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치료를 기다리나 두려움만 봅니다. 

  2)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합니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3) 주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4) 우상 가운데 누가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주만 앙망합니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내글로 쓰기]


하나님께서 유다에 큰 기근으로 보내셨다. 그로인해 귀족들이나 백성들이나 농부들 모두가 물을 얻지 못할 지경이 된 것이다. 풀이 없으므로 암사슴도 자기 자식을 돌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기고 하고 호소하기도 한다. 어찌해서 우리를 이 지경에까지 내버려 두시는가!하고 묻는다. 자신들의 잘못이 있음도 알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너무하시다고 말한다. 유다 백성과 관계가 전혀 없는 분처럼 냉정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에게 이 백성을 위해서 복을 빌지 말라고 하신다. 이들이 금식하과 번제와 소제를 드려서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결국은 칼과 기근으로 멸망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이들은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면서 가고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멈춰서지를 않았다. 여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말한다. 자신을 제외한 많은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은 곧 해결되고 평강이 있을 것이라고. 자기 자신만 백성들이 싫어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은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가 아니라고, 그들과 그들의 처자식들이 먼저 칼과 기근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뒤 이어지는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가 있으나, 하나님의 마음이 이미 떠났으니 공허하게만 들린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은혜라는 것은 본질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질 수 없는 것이다. 


유다 백성들은 따진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너무 심하게 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들이 잘못한 것을 알고 뉘우치고 있으니, 이제 그만 화를 풀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한다. 은혜를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은혜는 요청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신에게 요청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했는데, 그것을 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분을 품는 것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협박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은혜란 본질상 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고 주어야 할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베풀어 주시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은혜의 본질이다. 따라서 은혜는 구할 수는 있지만, 얻지 못했다고 해서 수여자에게 화를 내거나 탓을 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다 백성들이 지금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있는 것인가? 글쎄 나는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서 생떼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든다. 이 정도로 간절한데, 왠만하면 들어달라는 식이다. 만약에 들어주지 않으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고 협박하는 것일수도 있고... 


암튼,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생떼를 부리면서 하나님을 협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2. 거짓 선지자들 때문에 고통당하는 참 선지자 예레미야.


당시 대 다수의 선지자들은 현재 당하고 있는 칼과 기근의 고통은 잠깐이요. 곧 화평과 평강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공영방송에서는 별 문제 없다고 현재 하던 일을 동요없이 그대로 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고, 다른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곧 해결될테니 별일 없는 것처럼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받은 예언은 달랐다. 지금의 칼과 기근은 앞으로 다가올 재앙의 시작에 불과하다. 더 큰 재앙과 심판이 임할 것이며, 이것은 중대 사태로 하나님이 이 민족으로 버리시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민족이 총체적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메시지는 예레미야 혼자의 메시지니, 다수의 언론에 밀려 사람들에게는 잘 전달되지도 않는다. 그로 인해 예레미야는 고통 당했고, 혹 자신만 너무 부정적인 것은 아닌지 생각도 했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명확하게 해주신다. 예레미야의 손을 들어주신다. 우리는 이 시대에서 참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적어도 무조건적인 낙관과 긍정만이 참된 메시지가 아니라는 것은 오늘 본문 속에서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쓴 소리를 들을 때 그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빨리 간파해야 한다. 


쓴 소리, 아픈 소리를 들을 수 있을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거기서부터 바른 삶을 시작할 수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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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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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의 이야기는 모세보다 신실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성을 강조하면서 너희는 모세의 신실함 속에서도 광야에서 엎드러진 자처럼 마음을 완고하게 함으로 믿지 못하여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자가 되지 말라고 경계하는 것으로 마쳐진다.

4장은 안식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4:1)

하나님의 안식은 이미 창조때에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3절)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의 참된 안식은 준비가 이미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안식에 들어가는 것은 다르다. 누구나가 그 안식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광야 때에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백성들의 이야기가 있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던 여호수아 때에도 참된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3절, 8-9절)

따라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 어떤 시간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안식에 들어갈 약속을 받은 자가 그 약속에 믿음으로 결부할 때(2절)에 얻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완고하게 하지 않고 그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될 때 그 안식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미 그 분의 안식에 들어간 자들이 있다고 말한다.(10절) 아마 이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주 안에서 살다가 죽은 자들을 말하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들이 주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위해서 힘쓸 것을 요청하면서, 현재의 삶 속에서 완고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이다(광야 이스라엘 백성중에 불순종함으로 엎드러졌으므로)

우리가 큰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믿는 도리를 굳게 붙잡아야 한다. 그 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는 분이다. 또한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라.

성도가 되고난 후에도 우리의 믿음이 잃어지지 않으려면, 우리가 믿음의 도리를 굳게 붙잡아야 하며, 또한 우리를 우리 입장에서 도우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그래야 주의 안식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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