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정리]
1. 신학의 원리는 계시만이어야 한다. 

2. 그런데 신학에 이성이 개입되는 이유는, 계시는 이성이 없으면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계시가 이성에 감광되기 위해서는 초월적인 내용이 우리의 이성에 포착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필요.

4.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이성이 그것을 포착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성으로 포착할 수 있는것만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우를 범한다.

5.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의 계시가 이미 그 초월된 내용을 이성에 인식시키기 위해 어떤 지혜와 능력을 포함하고 나타나는 것이기에 이성이 그것을 감지하는 것이다. 


[이번주 내용]

1. 이성의 특징인 합리화

  1) 초월된 내용이 초월의 방식으로 오면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인식 가능한 가시화(합리화)가 필요하다.

    예) 사랑이라는 추상명사를 이해하려면, 추상 명사는 가시적이기 보다는 개념적이기 때문에 어렵다.

     - 우리는 사랑을 말로 배웠습니까? 동영상으로 배웠습니까? 

- 사랑은 추울 때 부모가 자식에게 옷을 벗어주는 장면(사랑=옷을 벗어 주는 것 혹은 남을 위한 것?)


        설리반이 헬렌 켈러를 가르칠 때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이 추상명사. 왜 개념의 가시화된 형태 조차도 인식할 수 있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2. 이성의 합리성이 불러 일으키는 오해들

  1) 배(이성)가 옥수수(초월적인 내용을 인식가능한 형태로 구체화해서 하나님이 계시하신 내용)를 만들어 낸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됨

  2) 세상 사람들 중 기독교에 호감을 가지게 되는 이유: 기독교는 윤리 도덕적으로 착하다는 보기 때문에

   (1) 그러나 실상 기독교는 착함이나 선을 추구하는 종교는 아니다.

   (2) 하나님을 본받는 것을 추구하는 종교인데,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니까 그것을 좇아서 우리도 선을 추구한다. 

   (3) 그럼, 하나님을 닯자(본받자)라고만 하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니까, 선하다 의롭다 이렇게 규정을 하게 되고 그것을 좇도록 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선과 의를 절대 가치로 선과 의를 좇는다.(옷을 벗어주는게 사랑으로 이해하는 것이 잘못된 이해인 것과 마찬가지로)

   (4) 그렇게 하고는 자신들이 신학에서 선하다와 의롭다는 가치를 발견했다고(자기가 생산했다고) 생각한다. 


3. 신신학의 문제점

  이성은 운반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초월의 내용이 수송되기 위해 어떤 형태를 취한 것을 '이런 형태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이해하고 해석해야 되는데, " 아, 이거구나"라고 자연계에서 우리가 경험한 어떤 비슷한 것으로 내용물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 바로 신신학이다. 그래서 신신학은 결정적으로 신학의 원리를 계시가 아니라 이성으로 본다. 

 

  예1) 왜 기독교가 가장 우수한 종교인가? 고상한 인류의 가치를 가장 그를 듯하게 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1) 인간에게 선을 행하라, 의를 해하라, 긍휼을 베풀어라, 이웃을 사랑해라... 를 가르치는데 탁월하다. 

     (2) 보통 인간은 중요한 가치를 늦게서야 깨닫게 되는데, 기독교는 중요한 가치를 일찌감치 습득할 수 있도록 했다. 

     (3) 기독교의 상벌 개념은 유치하지 않고 실재같이 해놨다는 것.. 그만큼 정교화된 종교라는 것이다. 


  예2)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1) 주께서 실재로 살아나셨다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난 것과 방불한 효과를 가지게 되었다는 주장을 한다. 

     (2) 제자들이 변화되어 사랑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은 주님의 살아나심과 같은 것이 아닌가!라고 이해함.


4. 하나님의 초월적인 내용은 다양한 방식으로 계시 된다.(그래서 해석이 필요하다.)

   사랑이라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옷을 벗어서 입혀주는 것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옷을 벗어 입혀준 형태(인식 가능한 모습)와 그 형태 속에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해석해 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옷을 벗어서 입혀주는 형식으로도 나타나지만, 매를 들어 때리는 것으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로서 계시는 해석되어야 한다.  


5. 정리해서 말하면

  1) 계시적 사고(계시의존 사색, 개방 체계)

계시된 내용을 일단 내용으로 감수를 해서, 이성의 방법으로 합리성을 추구하며 인식을 하고, 논리를 전개해 나가기는 하지만 그 내용을 이해해 가는데 상호 모순 되거나 충돌해 보여도 내용을 가감하지 않으며 성경이 가라는 떼까지 가고 가지 말라고 하는데까지 안 가는 것을 말한다. 

  2) 이성적 사고(폐쇄성 체계)

이성적 사고는 이성이 갖는 합리성을 위해서라면 내용을 가감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것이 계시된 내용을 딴 것으로 대치할 수 있고, 계시된 내용을 변질시킬 수 있다. 이성이 제단할 권한이 있다.(왜 이성이 생산해 낸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6. 우리 인간은 태생적으로 이성에게 주도권을 주려고 한다. 

  예 1) 하나님이 계실 것이냐? 아니면 안 계실 것이냐? -> 있을지도 모른다.(중간이 아니라 없다쪽에 있는 것)

  예 2) 우주 기원의 대표적 이론>  진화론과 창조론 (창조론이라는 경험은 아예 없고, 진화론적 경험 밖에 없다.)

  예 3) 고대 서구 사상,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헬레니즘은 모든 사실은 논증이 가능하다.(과학주의적 정신)

  예 4) 예수를 믿느니 내 주먹을 믿어라> 

  예 5) 중세시대 기독교인의 헤브라이즘을 헬레니즘에 접목 시킨, 스콜라 철학> 진리와 절대를 객관적으로 증명함.

        : 신앙인들에게는 그렇게 해도 결론이 하나님과 절대진리로 가게 된다. 그러나 그 뒤를 따라오는 사람은 전혀 다른 길로 갈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신이 없다는 것으로 가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세 시대가 와해되고 근대와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신신학이 대두되는 것이다.(약도는 자기 중심으로 그리면, 찾아 오는 사람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될 수 있다.)


7. 서구 신학의 문제(미국 신학의 흐름)

  1) 미국은 신앙을 위해서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에, 신학을 위해서 대학을 만들었다. 

  2) 그런데 신학을 시키려고 보니까 기초 학문이 필요하더라... 그래서 교양학부를 만들게 되었다. 

  3) 먼저 학문을 시키고, 신학으로 신앙의 깊이를 풍성하게 하려고 신학교를 만들었는데 학문의 방법이 과학이었다. 

  4) 그런데 학문의 방법인 과학이 신학의 계시된 내용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5) 그래서 계시된 내용들을 잘라내고 그 자리에 같은 개념의 세상적인 내용으로 메꾸기(재해석) 시작한다. 

    예) 하바드 -> 예일 -> 프린스톤 -> 웨스트민스터


8. 이성에 역할과 한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너무 근본주의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너무 자유주의자처럼 될 수 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