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1> (정리하기)

1. (편지정보)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1절)

  - 야고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질문하고 묵상하기)

1.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흩어진 열두 지파(유대인)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써야할 필요를 느꼈다. 앞으로 야고보가 다룰 내용을 아직 알 수 없으나, 야고보 안에는 뭔가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궁금함을 가지고 야고보서를 읽어가야 한다. 


<약 1:2-4> (정리하기)

1. (권면) 내 형제들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2절)

  -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1) (근거)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3절)

        - (권면)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 (근거)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4절)


(질문하고 묵상하기)

1. 야고보는 형식적으로 안부의 인사와 같은 내용을 다루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야고보서의 성급함일 수도 있고, 사안의 시급함일 수도 있다. 어쩌면 편지를 받는 대상과 야고보와의 관계가 그와 같은 절차를 생략해도 되는 관계일 수도 있다. 야고보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2. 야고보의 첫번째 주제는 '시험 당함'에 대한 것이고 그 상황에 대해서 측은한 위로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험 당함'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그 유익함을 말한다. 

  1) 시험(various trial)을 당하거든, 당황해하거나 놀라거나 위축되지 말고 오히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2) 믿음의 시험(the testing of your faith)이 인내를 만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내를 충분히 발휘하도록 하라.

  3) 온전한 인내를 기름으로 온전해지고(perfect) 구비하여(complete)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자(not lacking anything)가 될 수 있다.

  [묵상] 다양한 시험을 만나게 되면 사람들은 당황하고 힘들어한다.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예수를 통해서 만사가 잘되기를 바랐던 사람들은 더욱 당황한다. 초대교회에 성도들에게 닥쳐온 다양한 시험이 있었고 이로 인해 성도들 중 상당수는 이 시험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시험을 힘겹게 참아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야고보고 생각할 때 성도들이 시험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를 신속히 해결해 주어야 할만큼 문제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야고보는 시험을 믿음의 시험으로 보았고, 그 믿음의 시험은 성도들에게 인내를 만들어내는데 그 인내는 성도로 하여금 온전해지고, 완전해지며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는 완전 식품과 같은 것이었다. 신앙의 핵심은 인내인데 그 인내를 성장시키는 것이 바로 '시험'이다. 다양한 시험을 통해서 성도는 인내가 자라게 되고, 인내는 성도로서 모든 일을 완전하게 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개인 트래이너를 통해서 훈련하는 이유는 스스로는 잘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어려움과 불편함을 스스로 선택해서 근육을 키우기 어렵기 때문에 누군가의 관리를 받게 된다. 트래이너의 역할은 운동이 필요한 사람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운동을 시키는 역할이다. 기본적으로 하기 싫은 것을 시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돈을 들여가며 스스로 트래이너를 고용해서 그의 말을 듣는 것은 몸의 유익을 위해서다. 불필요한 살이 빠지고, 부족하던 근육이 생겨 몸을 더 균형잡히게 하고 더 건강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힘들과 짜증내지만, 후에는 그 트래이너에게 고마워하고 즐겁게 순종하게 된다. (마치 현빈이가 학원에서 조용히 시키는 역할을 하는 선생들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지만, 훗날 그 선생으로 인해 학습태도가 좋아지고 성적이 올라간다면 고마워하듯이)

  예) 학교 시험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시험을 싫어하지만 일반적으로 시험을 통해 학생은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시험은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시험을 피해서는 인내를 배울수 없고, 인내가 없이는 성숙함으로 나아갈 수 없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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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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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박국 2:1-10 더디지만 이루어진다.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하박국은 하나님이 답변을 주실때까지 작심하고 기다리겠다고 말하고, 하나님은 그에 대하 답변을 명백하게 보여주겠다고 말씀하신다. 바빌로니아는 그 자신의 힘을 과신하는 교만으로 인해 오히려 그들이 침략하고 빼앗은 나라들로부터 도리어 약탈을 당하는 운명이 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더디게 이루어지겠지만, 참고 믿음으로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  


절별 해설

2:1 <<내가 보초처럼 서서 지키겠습니다.>> 1:17에 했던 하박국의 항변에 대해서 하박국 선지자는 그 답을 들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모습이다. 그만큼 하박국 선지자의 고민은 컸고,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답답해 하고 있는 것이다. 


2:2 <<그것을 돌판 위에 뚜렷이 새겨서>> 돌판 위에 새긴다는 것은 변하지 않을 말씀이라는 측면에서의 강조점이고, 뚜렷이 새긴다는 것은 달려가면서도 그 내용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선명하게 하기 위한다는 말씀이다. 


2:5 <<포도주를 즐기는 바빌로니아 사람은 교만하기 때문에>>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교만하여 자신을 과신하고 또한 포도주를 즐기므로 이성의 통제를 받지 못하고 그 힘을 함부로 사용하는 잘못을 행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바빌로니아는 다함없는 욕심으로 인해 오히려 해를 자초하게 될 것임을 예견하게 된다. 


2:8 <<네가 여러나라를 털었음로, 살아 남은 모든 백성들이 너희 것을 빼앗을 것이다>> 바빌로니아는 자신이 가진 힘으로 주변의 많은 나라들을 공격하고 빼앗고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와 같은 침략으로 인해 침략당한 백성에 의해서 빼앗기는 운명이 될 것이다. 


2:9 <<화가 있을 것이다... 재난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집에 둥지를 세우는 자야!>> 바빌로니아는 주변 나라를 공격하고 또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높은 성을 쌓고 철저한 대비를 통해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려고 하겠지만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안전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바빌로니아가 행한 악행대로 스스로 당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기도

하나님, 교만한 자는 자신의 힘을 과신하여 끝임없는 욕심을 채우며 살아가려 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인정하여 겸손한 인생이 되게 하시고,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하박국을 향한 하나님의 답변이 뭔가 분명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사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답변이 하박국과 독자들의 마음에 시원한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바빌로니아에 대한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하게 말씀하신 것은 일이 더디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참고 기다리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역으로 이야기 하면 지금은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고, 상당한 시간을 이렇게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운행하시고 섭리하시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하나님의 대원리는 언제나 살아있다. <의인은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더디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기에,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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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묵상]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과 변론하신다. 산들을 향해서 고소하신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는지 스스로 증언하라고 하신다. 

  2) 오히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신 일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1) 이스라엘을 종노릇 하던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다. 

   (2) 모압 왕 발람이 발락을 통해서 하려고했던 일(이스라엘의 저주)에 대해 언급하신다. 그 때 하나님께서 발락으로 하여금 저주하지 못하고 오히려 축복하게 했던 것을 언급하는 것이라 본다. 


  3) 너희들의 마땅한 태도는 나에게 대해서 번제물과 수양을 가지고 나오든지, 아니면 그 은혜에 감격하여 네 맏아들이나 네 몸의 열매를 드릴까 하는 태도여야 하지 않겠는가!

  4) 그런 하나님께서 네게 원하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여 겸손히 행하는 것이 아닌가!(온갖 제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것은 필요없고... 은혜를 받은 자로서 정의를 행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겸손하여야 함이 아니겠는가!)


  *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변론처럼 진행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억울함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하나님이 얼마나 오래 참으셨는가! 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해서 자신을 괴롭게 하는 분이라고 불경하게 말하는가!를 보여준다. 이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도 충분하지 못한데, 하나님께서 이들을 향해 지시하신 성도의 기본적인 삶(정의를 행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태도)조차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억울하심을 산들과 작은 산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2. 하나님은 이 백성을 향해서 매를 준비하셨다. 


  1) 너희 중에 아직도 불의한 재물이 있지 않느냐?

  2)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지 않느냐?

  3)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4) 그 주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거짓되도다.


  * 불의와 강포 그리고 거짓으로 가득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고발한다. 당연히 이와 같은 것에 대한 피해자는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들에게 돌아간다. 권력을 없는 자들을 피해를 보게 된다. 하나님은 이들의 악함에 분노를 느낀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과 인내로 이스라엘 돌보고 지키셨는데, 이스라엘은 완전히 몹쓸 자식이 되어 버린 것과 같다.


---------

  5) 그래서 나도 너를 쳐서 병들게 하였고, 네 죄로 말미암아 너를 황폐하게 하였다. 

  6) 네가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항상 속이 빌 것이며

  7) 네가 감추어도 보존되지 못하겠고 보존된 것은 내가 칼에 붙일 것이며

  8) 네가 씨를 뿌려도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9) 감람 열매를 밟아도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10) 포도를 밟아도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


  *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해서 매를 들었다. 항상 부족하게 하고, 열매를 얻지 못하도록 하였다. 수고하는 모든 것이 헛되게 돌아가도록 하셨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이요, 하나님도 이들을 참고 인내하는 것으로만이 아니라, 매를 들고 혼내는 것으로 행하도록 한 것이다. 


  11) 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예법을 지키고 그들의 전통을 따르니, 내가 너를 황폐하게 하며 조소거리가 되게하리라. 너희가 내 백성의 수욕음 담당하리라.


  * 유다 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의 때에 있는 미가의 말씀이지만, 이들이 지금 직면한 죄의 문제는 그 근원이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에 기인한 것이며, 특히 아합 왕에 의한 것임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북이스라엘의 죄는 그 자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유다에까지 깊숙히 파고들어 마침내 남유다에까지 큰 피해를 만들어 낸 것이다. 



[묵상 한 모금]


1. 하나님은 억울하고 답답하다. 마치 자기 자식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처럼 말이다. 낳아주고 길러주었으며 그간 수많은 잘못에 대해서 인내와 사랑으로 견디어 오셨지만, 거기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기는 커녕 '왜 자신의 인생에 관여하시며, 왜 자신을 피곤하게 하냐'며 부모에게 함부로 말하는 꼴과 유사하지 않나 싶다. 

하나님이 부모의 입장이시기에 이런 패륜아같은 자식에 대해서 동네방네 다니며 말할 수는 없어, 참아오셨으나.. 결국 답답한 하나님의 마음이 토로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부모의 모습에서 재판관과 검사의 입장으로 하나님의 이미지가 바뀐다. 사랑에서 공의로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이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는 것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는 엄격하시다. 이 지점에서 하나님은 부모의 모습에서 재판관의 모습으로 변하신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지점이다. 


2. 하나님이 매를 드실 때, 그 징계의 방식은 하나님을 배제한 모든 노력을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웅덩이를 파고 채울 것을 기대했으나, 그것이 터진 웅덩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다. 

지금 무엇인가를 충분히 채울 수 있는 것 같을 때, 그때 눈치채고 변화되지 못하면 늦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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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37:17-11] 팔복에 있는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라는 말씀에서 <온유하다는 것>과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된다>는 것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편 말씀입니다. 한 성경 구절이 연관된 다른 구절로 설명되면서 좀 더 구체화된 의미를 발견해 간다는 것에 기쁜 아침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온유한 성도들로 풍성해지기를 소원합니다. 무력한 자 같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믿기에 흔들리지 않는 자가 바로 성도입니다. 


[정리]


7절.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노를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8절)


: 악인의 악행에 대해서도 무조건 참으라고, 참아야지만 성도로 합당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어제 본문을 통해서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정당한 조치를 다하고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죄에 대한 공의롭고 적실한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음. 모순과 구조적인 악 때문에)에 대해서 분노하여 격하게 행동하고 하는 것은 자칫하면 또 다른 악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종종 목적인 정당하면 과정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묻지 않는 경향이 있다.(최근 우리나라는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악을 만들뿐이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려야 할 때이다. 이 기다림은 기도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속히 오도록 하는 간절한 마음을 드리며 하는 기다림이니 기도인 것이다.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9절)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10절)


: 마침내 악을 행하는 자는 끊어진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며, 세상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질서다. 성경은 복음을 말하며, 복음은 은혜가 중심이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이 질서_악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끊어지리라_를 기반으로 한다. 이 공의의 기반 위에 은혜가 있고, 복음이 있는 것이다. 공의가 무너진 곳에 복음과 은혜를 한낱 방종자의 자기 변명에 불과하다. 잠시 후면 이 땅에 득세하던 악인들은 그 자취를 찾아 볼 수 없도록 사라지고 끊어진다. 그들은 완전히 사라진다.(심판되어 진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11절)


 : 그러나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고 그 땅위에 가득하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산상수훈의 세번째 복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에 대한 구약적 병행구절이다. 예수님은 시편 37편 11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유>라는 말은 단순한 부드러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악한 세상에서 악행한 자들은 반드시 심판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믿고, 분노를 표출하고 불평하는 것을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참고 기다리는(하나님의 공의를) 자의 모습이다. 


또한 그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 다는 것은 그와 같은 자가 이 땅에 가득하게 될 것이라는(악행자가 땅에서 자취를 찾아 볼 수 없게 되는 것과 대조적으로)말씀임을 알게 된다. 결국 이 땅은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들이 다스리게 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온유함으로 세상의 바꿀 수 없는 악에 대해서 쉽게 불평하고 노를 표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대로 될 것에 대한 간절함으로 참고 기다리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 아니겠는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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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35편]우리가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잘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은 나는 선으로 행했는데, 그 사람은 나에게 악으로 대할 때다. 선의로 보증을 서 주었는데, 오히려 그 사람은 나몰라라 하는 식으로 되 돌아올 때 우리는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더 큰 분노는 왜 이런 악한 자를 심판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사회 법으로건 혹은 하나님의 법으로건) 결국 이 분노는 공의를 실행하지 않는 사회와 하나님에게 대한 분노로 옮겨가게 된다. 오늘 우리 사회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커진 이유도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기인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억울함이 많은 사람들_힘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배운게 없어서... 공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생긴 문제일 것이다. 어찌할꼬... 이 땅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하나님은 당장 일하시는 것 같지 않으니.... 정말 필요한 것은 공의의 하나님을 믿고 의의 자리에 서려는 인내로다. 


[정리]


1. 급히 자신의 편에서 싸워 달라고 요청하는 시편 기자


1절.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2. 시편 기자의 적: 악을 선을 갚는 자들에 대한 자들


12절.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13절.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함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몸을 굽히고 슬퍼하기를 어머니를 곡함 같이 하였도다.


15절. 그러나 내가 넘어지매 그들이 기뻐하여 서로 모임이여

불량배가 내가 알지 못하는 중에 모여서 나를 치며 찢기를 마지아니하도다.

그들은 연회에서 망령되이 조롱하는 자 같이 나를 향하여 그들의 이를 갈도다. 


: 우리가 제일 참기 어려우며,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케이스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선을 베풀었는데 그것을 망각하고는 악으로 되갚는 것이다. 이것은 공의가 아니며, 이런 악한 자가 심판받지 않거나 혹 잘 된다는 것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혹은 그 역할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행한 선의의 결과가 하나님이 없다는 것으로 되돌아 오는 것 같아 참, 마음이 아프다. 


3. 여호와여 언제까지 놔두고 계시렵니까? 얼마나 더 참아야 합니까? 저들이 마침내 나를 짓밟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셔야 하겠습니까?


17절. 주여 어느 때까지 관망하시려 하나이까

내 영혼을 저 멸망자에게서 구원하시며

내 유일한 것을 사자들에게서 건지소서.


: 시편 기자의 원망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수가 있느냐?로 시작했지만, 왜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내버려 두시는가? 하는 신정론의 문제로 귀결된다. 


28절.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 결국 시편기자의 결론은 자신의 혀로 주님의 의를 말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반드시 의를 이루시고 의인의 편에 서신다는 것을 확신하고는 주를 찬송한다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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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1장.므낫세 왕] 므낫세는 두 가지 메시지를 준다. 하나는 절대권력에 제동장치가 없을까 생기는 최악의 경우를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출애굽 이후부터 지금까지 유다와 하나님과 관계는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으로 유지된 것이었음을 밝혀준다. 므낫세는 그 인내의 한계점을 보여준 인물이다.  

 

[정리1. 내용을 객관적으로 정리]

 

1. 유다 왕 므낫세 왕의 악행에 대해서
  1) 20세에 왕이되어 55년간 예루살렘에서 통치함. 그의 어머니는 헵시바.
  2)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이전에 좇아낸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행함.
   (1)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움
   (2)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3)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겼다. 그것도 여호와의 성전에다...
   (4)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
   (5) 여호와의 이름을 두리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성전에 아세라의 목상을 세워놓음
   (6)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고, 백성들은 므낫세의 꾐을 받아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였다.
  3) 여호와께서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므낫세에게 말씀하신 내용
   (1) 유다 왕 므낫세의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전에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악하다.
   (2)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예루살렘을 완전히 씻어버릴 것이라.
   (3) 나의 백성들 중에 남은 자들(유다)을 버려 원수의 손에 넘겨 모든 원수의 노략거리가 되게 하겠다.
   (4)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
  4) 므낫세는 이와 같은 종교적인 악행 뿐 아니라,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렸다.
  5) 므낫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있고, 그가 죽고 아들 아몬이 왕이 됨.

 

2. 유다 왕 아몬에 대해서
  1) 왕이 될 때의 나이는 22세, 예루살렘에서 2년간 다스림. 그의 어머니는 므술레멧이요.
  2) 아몬은 그의 아버지 므낫세와 같은 악을 행했다. 아버지가 섬기던 우상을 섬겨 경배했다.
  3)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그 길로 행하지 아니했다.
  4) 그의 신복들이 그에게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였다.
  5) 국민들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을 세움.
  6) 아몬의 남은 사적은 유대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었고, 그의 아들 요시야가 왕이 됨.

 

[정리2. 내용을 개인화해서 정리]

 

유다가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로부터의 위협을 이겨 북이스라엘과 같이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히스기야가 깨어있음으로 앗수르를 약화시키는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들 므낫세는 아버지의 모든 개혁을 원점으로 돌렸을 뿐 아니라, 더욱 악한 상황으로 몰고 갔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웠고, 이방의 우상을 가져왔다. 아합의 때와 같이 바알을 섬겼고, 아세라 신을 섬겼으며 일원성신을 섬기기도 했다.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 지나가게도 했고, 점치며 사술을 행하고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세우기도 했다. 므낫세는 왕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악행을 일삼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하나님은 이제 사마리아를 멸망시킨 그 기준을 가지고 그대로 유다에게 행할 것이며 완전히 씻어버릴 것임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결국은 모든 원수들의 조롱거리와 노략거리가 되게 하시겠다고 까지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므낫세를 계기로 그 동안 담고 있으셨던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셨다.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켜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므낫세에 와서는 결국 폭발한 것이다.

 


그의 아들 아몬은 2년간 통치한다. 아버지 므낫세의 통치와 달라진 것은 없다. 므낫세와 같이 악을 행한 왕으로 기록된다. 결국 신하들에 의해 죽고 국민들은 그의 아들 요시야를 세운다.

 

 

[정리3. 내용을 통한 묵상과 적용, 주관화]

 

1. 장기간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보여준 대표적 인물: 므낫세

 

므낫세는 왕이 되어 55년을 통치한 왕이다. 역대 이스라엘의 왕 중 가장 오랜 통치를 한 왕이다. 55년을 통치했다는 것은 그의 평가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그는 매우 강력한 권력을 잡고 있다는 것을 반증으로 보여준다. 무력하면서 악을 행했다면 결국은 반대자들에 의해서 혹은 자신이 키운 신하들에 의해석 배신을 당할 수 밖에 없기 마련이다. 그런데 55년 동안이나 왕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권력이 막강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므낫세는 유다 역사상 강장 악한 왕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29년간 이루어 놓은 개혁을 한 순간에 다 수포로 만들었다. 그의 아버지의 정확하게 반대되는 정책들로 나라를 이끌었다. 아버지가 버린 모든 우상을 다시 다 가지고 들어왔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노를 참으실 수 없을 만큼, 므낫세는 하나님의 심기를 매우 분편하게 했던 왕이다. 그동안 베푸신 인내와 자비를 모두 무색하게 만드는 악행을 행했고, 결국 하나님은 므낫세 때에 유다를 완전하게 멸망시키기로 결심하셨다고 표현하고 있다.

 

가장 오랜 통치를 했던 므낫세의 통치가 이와 같았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므낫세 한 사람의 문제만은 아닌듯 하다. 누군가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그 권력이 견제되지 아니하면 이와 같은 일은 언제든지 발생하게 마련이고, 아니 누구에게나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므낫세 만의 문제는 아니고,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조차도 그의 마지막 임기 때에는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누구든지 장기간 지속되는 절대권력 앞에서 균형을 잡고 초심을 잃지 않기란 힘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권력을 가진자가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이는 겉잡을 수 없는 형국으로 치닷는다. 그 때는 아무도 그를 막을 방법이 없다. 죽이지 않는한 말이다.

 

대통령의 임기제를 생각한다. 훌륭한 대통령이 들어선다면 임기를 더 연장해서 대통령 직무를 더 수행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재임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도 좋은 방법인듯 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대통령, 아무리 좋은 왕이라고 할찌라도 권력을 집중하여 견제할 수 없도록, 임기의 한계를 정하지 않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빠른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있어야 하듯이, 권력에는 언제나 멈춰 세울 수 있는 장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최근 대형교회의 목회세습에 대한 문제가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감리교회가 세습반대 법안을 통과시켰고, 한기총 회장을 역임한 목사는 자기 아들에게 급하게 교회를 세습시켰고... 대형교회로서는 처음으로 무리하게 자신의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한 한 목사님은 돌아가시기 전 자신이 무리하게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시킨 것을 후회하는 고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도 마찬가지겠지만, 교회의 목사도 이와 같은 부분에서 더욱 깨어있지 않으면 끝이 좋지 않은 결말을 보게 될 것이라 본다.

 

2. 므낫세는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의 한계점을 보여준 왕

 

하나님은 므낫세의 악행에 치를 떠셨다. 그리고 그의 악행을 통해서 그 동안 묵혀 두고 있던 내면의 상처(?)를 유다에게 쏟아 내셨다.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15절)

 

사실 그 동안도 유다가 이쁘고 괜찮아서 관계가 유지 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이 백성들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들이 악을 떠나지 않는 것에 대한 진노가 한 순간도 없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다윗의 시대에 조차도.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순간을 하나님은 참고 인내하시고 자비를 베푸시면서 견디어 오신 것이다.

 

그러다가 므낫세를 만나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므낫세는 유독 악한 왕이지만,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하게 한 심판의 기폭제와 같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므낫세와 같은 인간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나님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인간...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 동안 우리가 하나님과 잘 지내온 것이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종종 괜찮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오신 것이 아니었다. 우리를 구원하신 순간부터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 때문에 분노를 느끼신다. 우리에게 진노를 쏟을까 하는 충동을 늘 느끼신다. 그러나 그 분의 인내와 자비가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그것을 간과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관계의 평화의 근거가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게 있고, 십자가의 진노에 있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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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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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5장의 초반부를 읽으면서 전에 야고보서가 신약의 잠언과 같다는 말을 한것이 생각났다. 아니다. 구약의 선지서와 같은 느낌이 솔솔난다. 부자들을 향해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는 아모스와 같은 선지자들의 글을 읽는 것 같다. 야고보서 5장은 그렇게 시작한다. 

1. 부자들에 대한 경고

부자들의 재물 축적이 문제다. 약자에게는 덜 주고자 하고, 자기 자신은 사치했기에 그들은 위험하다. 또한 마지막 날에 부를 축적했기에, 나누지 못하고 자신의 것으로만 쌓았기에 그들은 울고 통곡하게 될 것이다.

 

2. 때(곧 다가온 심판)를 기다리고, 길이 참고 기다리라.마음을 굳게 하라.

농부가 열매를 기다리듯 기다리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듯 참고 때를 기다리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미리 마음을 굳게 하라. 그리고 흔들리지 말라.

 

3. 맹세하지 말라.

너무 큰 확신을 가지지 말라. 그렇다고 여겨지고 판단되면 그렇다. 아니라고 판단되면 아니다라고 말하는 정도 까지만 하라. 맹세까지 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 네가 맹세할 만큼 확실히 맞는 것인지, 확실히 그릇된 것인지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지 않은가! 그저 그 때에 내가 가진 역량을 판단해서 옳다 그르다 정도만 하라. 그러면 나중에 틀렸을 때에라도 내가 몰랐습니다 부족했습니다. 정도로 마무리 될 수 있다. 그런데 맹세까지 하고 그러면 수습이 어려워진다.

4. 기도해라.

고난당하고 있거든, 병든 자가 있거든 기도해라. 기도에는 능력이 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기도로 풀어가라. 풀릴 것이다.

5. 미혹된 자를 그 길에서 돌아오게 하라. 그러면 그것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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