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시편 37:17-11] 팔복에 있는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라는 말씀에서 <온유하다는 것>과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된다>는 것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편 말씀입니다. 한 성경 구절이 연관된 다른 구절로 설명되면서 좀 더 구체화된 의미를 발견해 간다는 것에 기쁜 아침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온유한 성도들로 풍성해지기를 소원합니다. 무력한 자 같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믿기에 흔들리지 않는 자가 바로 성도입니다. 


[정리]


7절.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노를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8절)


: 악인의 악행에 대해서도 무조건 참으라고, 참아야지만 성도로 합당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어제 본문을 통해서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정당한 조치를 다하고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죄에 대한 공의롭고 적실한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음. 모순과 구조적인 악 때문에)에 대해서 분노하여 격하게 행동하고 하는 것은 자칫하면 또 다른 악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종종 목적인 정당하면 과정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묻지 않는 경향이 있다.(최근 우리나라는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악을 만들뿐이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려야 할 때이다. 이 기다림은 기도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속히 오도록 하는 간절한 마음을 드리며 하는 기다림이니 기도인 것이다.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9절)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10절)


: 마침내 악을 행하는 자는 끊어진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며, 세상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질서다. 성경은 복음을 말하며, 복음은 은혜가 중심이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이 질서_악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끊어지리라_를 기반으로 한다. 이 공의의 기반 위에 은혜가 있고, 복음이 있는 것이다. 공의가 무너진 곳에 복음과 은혜를 한낱 방종자의 자기 변명에 불과하다. 잠시 후면 이 땅에 득세하던 악인들은 그 자취를 찾아 볼 수 없도록 사라지고 끊어진다. 그들은 완전히 사라진다.(심판되어 진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11절)


 : 그러나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고 그 땅위에 가득하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산상수훈의 세번째 복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에 대한 구약적 병행구절이다. 예수님은 시편 37편 11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유>라는 말은 단순한 부드러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악한 세상에서 악행한 자들은 반드시 심판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믿고, 분노를 표출하고 불평하는 것을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참고 기다리는(하나님의 공의를) 자의 모습이다. 


또한 그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 다는 것은 그와 같은 자가 이 땅에 가득하게 될 것이라는(악행자가 땅에서 자취를 찾아 볼 수 없게 되는 것과 대조적으로)말씀임을 알게 된다. 결국 이 땅은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들이 다스리게 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온유함으로 세상의 바꿀 수 없는 악에 대해서 쉽게 불평하고 노를 표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대로 될 것에 대한 간절함으로 참고 기다리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 아니겠는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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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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