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시편 35편]우리가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잘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은 나는 선으로 행했는데, 그 사람은 나에게 악으로 대할 때다. 선의로 보증을 서 주었는데, 오히려 그 사람은 나몰라라 하는 식으로 되 돌아올 때 우리는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더 큰 분노는 왜 이런 악한 자를 심판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사회 법으로건 혹은 하나님의 법으로건) 결국 이 분노는 공의를 실행하지 않는 사회와 하나님에게 대한 분노로 옮겨가게 된다. 오늘 우리 사회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커진 이유도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기인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억울함이 많은 사람들_힘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배운게 없어서... 공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생긴 문제일 것이다. 어찌할꼬... 이 땅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하나님은 당장 일하시는 것 같지 않으니.... 정말 필요한 것은 공의의 하나님을 믿고 의의 자리에 서려는 인내로다.
[정리]
1. 급히 자신의 편에서 싸워 달라고 요청하는 시편 기자
1절.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2. 시편 기자의 적: 악을 선을 갚는 자들에 대한 자들
12절.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13절.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함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몸을 굽히고 슬퍼하기를 어머니를 곡함 같이 하였도다.
15절. 그러나 내가 넘어지매 그들이 기뻐하여 서로 모임이여
불량배가 내가 알지 못하는 중에 모여서 나를 치며 찢기를 마지아니하도다.
그들은 연회에서 망령되이 조롱하는 자 같이 나를 향하여 그들의 이를 갈도다.
: 우리가 제일 참기 어려우며,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케이스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선을 베풀었는데 그것을 망각하고는 악으로 되갚는 것이다. 이것은 공의가 아니며, 이런 악한 자가 심판받지 않거나 혹 잘 된다는 것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혹은 그 역할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행한 선의의 결과가 하나님이 없다는 것으로 되돌아 오는 것 같아 참, 마음이 아프다.
3. 여호와여 언제까지 놔두고 계시렵니까? 얼마나 더 참아야 합니까? 저들이 마침내 나를 짓밟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셔야 하겠습니까?
17절. 주여 어느 때까지 관망하시려 하나이까
내 영혼을 저 멸망자에게서 구원하시며
내 유일한 것을 사자들에게서 건지소서.
: 시편 기자의 원망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수가 있느냐?로 시작했지만, 왜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내버려 두시는가? 하는 신정론의 문제로 귀결된다.
28절.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 결국 시편기자의 결론은 자신의 혀로 주님의 의를 말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반드시 의를 이루시고 의인의 편에 서신다는 것을 확신하고는 주를 찬송한다는 것이다.
- 끝 -
'매일 성경 > 성경 한장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37편. 그리스도인들은 악행에 대해서도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는 오해 (0) | 2013.05.14 |
---|---|
시편 36편. 자신의 죄가 드러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나요? 윤**님. 하나님의 의는 공중에 가득합니다. (0) | 2013.05.13 |
시편 34편. 하나님의 눈은 의인도, 악인도 주목하신다. 그러나 목적은 다르다. (1) | 2013.05.08 |
시편 33편.기독교는 싸움을 강조하는 종교가 아니라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입니다. (0) | 2013.05.07 |
시편 32편. 숨어계셨던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_죄의 자백 (0) | 2013.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