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스바냐 3:1-10 심판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이유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하나님을 섬기지도 의지하지도 않고, 관리와 예언자와 제사장들까지도 모두 타락했다. 하나님께서 주변의 다른 나를 파괴하심으로 그 능력을 보이심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경고에도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 


절별 해설

3:2 <<듣지도 않고 가르쳐도 따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혹 모르나 싶어서 가르쳐 보지만 유다 백성들은 몰라서가 아니라 따를 마음이 없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섬기지도 않는 상태에 있다.  


3:3,4 <<성 안의 관리, 예언자들, 제사장들>>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들을 대표하는 직책이다. 이들은 백성을 선도하여 하나님의 법을 따라고,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가 유지되도록 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 원리를 따라 다스리도록 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의 사명을 권력으로 바꾸어서 하나님의 분노를 만들어낸 자들이다. 


3:5 <<날마다 정의를 나타내신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악을 행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한결같이 의로우시며 공정하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배반 속에서도 자신의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백성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3:8 <<그러므로 나를 기다려라>> 유다를 향해서 하나님을 기다리라고 한 것은 앞의 문맥과 연관해서 볼 때, 유다를 향한 것일 것이다. 하나님이 만국을 모아서는 불순종하고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이 백성을 심판할테니 이제 두고보면 그런 사태가 벌어질 것임을 말한다. 


3:10 <<흩어졌던 내 백성이 에티오피아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 당하고 포로로 흩어졌던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때에 다시 흩어졌던 곳에서 예물을 가지고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임을 말한다. 이 이미지는 과거 노예의 신분으로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나온 출애굽 사건을 연상하게 된다.


기도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불의와 패역을 행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향해 공의와 정의로 대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도 주를 닮아 공의로운 자, 정의로운 자 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유다 백성들의 악이 얼마나 크고 악한가를 보여주는 구절이다. 관리와 예언자와 제사장이 타락했다. 이들은 그 사회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백성보다 더 큰 악을 행했다면 그 사회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인 셈이다. 반면 하나님은 여전히 이 백성들을 향해서 의롭고 공정하게 통치하시고 다스리셨다. 그러나 악한 백성들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5절) 따라서 이들은 돌이킬 가능성이 없는 백성이다. 하나님은 주변의 나라들을 파괴하고 무너뜨렸다. 이는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경외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 마저도 이 백성들에게는 아무 소용 없었다. 여전히 악을 행했던 것이다.(7절) 유다의 악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흩어진 이들을 다시 불러 모으신다. 진노하시지만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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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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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다리오 왕 4년 아홉째 달,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였다.


2. 그 때에 있었던 한 사건에 대해서 말씀한다. 

 

  1)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의 부하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과 선지자들에게 물었다.

  2) 여러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할까요?


3. 그 때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였다. 


  1)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말하라. 

  2) 지난 70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한 것이 나를 위한 것이었느냐?

  3)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해 먹고 마시던 것이 아니었느냐?

  4) 너희 백성이 평온히 거주하던 시절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외친 말씀이 있지 않느냐?


  * 일상적으로 있었던 한 사건을 기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보인다. 벧엘 사람이 매년 하는 금식과 관련하여 올 해도 그것을 할 것인가를 묻기 위해 성전을 찾았을 때, 하나님은 다른 때와 달리 스가랴를 통해서 말씀을 주시는데, 이들의 이와 같은 물음에 지난 70년간의 금식이 나를 위한 금식이었는가! 반문하신다. 너희들이 먹고 마실 때는 너희 자신을 위해 그리 하였는데, 금식할 때는 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묻는 것 같다.

  너희가 평온 시절을 살 때, 너희 옛 선지자들이 어떤 말씀을 주었는지에 대해서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4.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1)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라

  2)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3) 그러나 너희들은 듣기를 싫어하고, 등을 돌리며 귀를 막았고 마음은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않았다.

  4) 그래서 너희들에게 큰 진노가 임하지 않았는가!


  5) 내가 불러도 너희가 듣지 않았으므로, 너희가 나를 불러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그들을 바람으로 불어 알지 못하는 곳으로 흩어버렸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땅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 옛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던 내용들이다. 진실한 재판과 인애와 긍휼 그리고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는 말씀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고 외면했고 마음은 금강석처럼 단단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옛 조상들을 향해서 진노하사 그 땅이 황폐하게 된 것이다. 



[묵상 한 모금]


1. 종교적인 열심과 노력에 사람들이 집착할 때(어떻게 보면 누가보더라도 가장 신앙이 정점에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시점인데) 하나님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외식과 한계를 지적하신다. 금식에 대해 묻는 신실한(?) 백성을 계기로 해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잊고 있는 헛점을 지적하신다. 먹고 마실 때는 나를 위해서 그리하였는가! 이 말은 먹고 마시던 시절, 일년의 열 달은 네 마음대로 살면서 금식하기로 정해진 두 달만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묻는 말씀이다. 


2. 하나님은 다시 옛날의 일을 반복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신다. 이미 옛 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말씀, 이스라엘이 평온한 시절에 해야할 것을 하지 않아 이것에 대해서 선지자들이 지적했던 것을 다시 끄집어 올리신다. 그것은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과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 대한 긍휼과 사랑을 베풀라는 것이다. 그것을 듣지 않았기에 이스라엘은 큰 고난을 겪은 것임을 다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옛 역사를 잊고 다시 옛 날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을 하나님은 우려하며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3. 우리는 종교적을 가장 열심과 희생을 많이 들이는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가장 종교적인 시간에 신앙은 변질을 향해서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신앙도 그렇고, 한 국가의 종교도 마찬가지다. 주류가 되고 행하는 것이 많고 드리는 것이 많을 때, 우리는 껍데기에 속아 내용의 진실성을 잃어 버린다. 모든 것이 무어졌을 때, 우리는 신앙의 겉 모양을 세워야 한다. 성전을 세우고, 제사를 세우고 형식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기본적인 틀이 세워진 이후에는 다시 내용으로 가야 한다. 기독교 신앙의 내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정의와 공의, 긍휼과 약자에 대한 배려를 주력하는 것이다. 이 주기를 볼 수 있는 종교 지도자가 늘 있어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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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37:27-29] 하나님은 성도를 버리지 않고 영원히 보호하시지만(28절), 그 의미는 하나님은 <정의>를 사랑하신다는 그분의 성품(28절) 안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앞에 이야기 한 것만을 붙잡는 것을 <복음>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 위에 복음을 세우며, 구약의 토대 위에 신약을 세우는 것이 마땅한듯 합니다. 



[본문] 


27절.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28절.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29절.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정리]


1. 하나님의 요청과 그 결과


   악에서 떠나라

   선을 행하라

    ->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라.


2. 하나님의 성품과 그 결과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신다. 


  그의 성도는 영원히 보호를 받는다.(그의 성도와 정의를 분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진다. 


[묵상]


하나님의 그의 백성들에게 악을 떠나고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은 <정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않으신다. 영원히 보호를 하신다. 그것은 사랑하신다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정의>를 사랑하듯 그의 성도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의와 그의 성도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본문의 문맥상 옳지 않고 오히려 그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정의에 합함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성도를 <은혜를 입은 자>라고만 생각하지, <거룩을 추구해야 하는 자>로서의 개념에는 미흡하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존재, 그래서 끊임없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에만 치중하지 왜 그렇게 하셨는가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성경은 그 다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쏟아 놓는데 비해 우리는 그 길에 들어서는 것에만 치중되어 있는 것이다. 


구약을 읽고 신약을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해본다. 물론 혼자 읽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율법이 있고 그 토대위에 복음이 복음될 수 있으며, 구약의 토대 위에 신약의 참된 메시지가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에도 한 번 쓴 것 같지만, 하나님은 우리 편이 아니라, 정의의 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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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35편]우리가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잘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은 나는 선으로 행했는데, 그 사람은 나에게 악으로 대할 때다. 선의로 보증을 서 주었는데, 오히려 그 사람은 나몰라라 하는 식으로 되 돌아올 때 우리는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더 큰 분노는 왜 이런 악한 자를 심판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사회 법으로건 혹은 하나님의 법으로건) 결국 이 분노는 공의를 실행하지 않는 사회와 하나님에게 대한 분노로 옮겨가게 된다. 오늘 우리 사회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커진 이유도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기인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억울함이 많은 사람들_힘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배운게 없어서... 공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생긴 문제일 것이다. 어찌할꼬... 이 땅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하나님은 당장 일하시는 것 같지 않으니.... 정말 필요한 것은 공의의 하나님을 믿고 의의 자리에 서려는 인내로다. 


[정리]


1. 급히 자신의 편에서 싸워 달라고 요청하는 시편 기자


1절.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2. 시편 기자의 적: 악을 선을 갚는 자들에 대한 자들


12절.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13절.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함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몸을 굽히고 슬퍼하기를 어머니를 곡함 같이 하였도다.


15절. 그러나 내가 넘어지매 그들이 기뻐하여 서로 모임이여

불량배가 내가 알지 못하는 중에 모여서 나를 치며 찢기를 마지아니하도다.

그들은 연회에서 망령되이 조롱하는 자 같이 나를 향하여 그들의 이를 갈도다. 


: 우리가 제일 참기 어려우며,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케이스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선을 베풀었는데 그것을 망각하고는 악으로 되갚는 것이다. 이것은 공의가 아니며, 이런 악한 자가 심판받지 않거나 혹 잘 된다는 것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혹은 그 역할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행한 선의의 결과가 하나님이 없다는 것으로 되돌아 오는 것 같아 참, 마음이 아프다. 


3. 여호와여 언제까지 놔두고 계시렵니까? 얼마나 더 참아야 합니까? 저들이 마침내 나를 짓밟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셔야 하겠습니까?


17절. 주여 어느 때까지 관망하시려 하나이까

내 영혼을 저 멸망자에게서 구원하시며

내 유일한 것을 사자들에게서 건지소서.


: 시편 기자의 원망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수가 있느냐?로 시작했지만, 왜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내버려 두시는가? 하는 신정론의 문제로 귀결된다. 


28절.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 결국 시편기자의 결론은 자신의 혀로 주님의 의를 말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반드시 의를 이루시고 의인의 편에 서신다는 것을 확신하고는 주를 찬송한다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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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29편]사자의 포효하는 소리에 작은 짐승들이 겁을 먹고 도망치지 못하듯, 세상의 권능있는 자들이라 할찌라도 여호와께서 한 번 소리를 발하시면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자기들이 힘이 있다고 하여 여호와의 백성들을 불의와 폭력으로 압제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여호와의 백성들은 고통 속에서 여호와를 찾을 것이고, 그러면 여호와께서 나타나 심판하지 아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권세있는 자들아, 정의와 공의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하라.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시다. 


[정리1]


1. 권능있는 자들아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배하라.(1-2절)

1절.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리지어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2절)


2. 여호와 하나님은 큰 능력과 큰 영광을 가지신 분이시다.(여호와의 소리로 그것을 표현함.3-9절)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3절)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4절)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5절)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6절)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7절)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8절)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9절)


3. 그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은 힘과 평강을 얻을 것이다.(10-11절)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10절)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11절)



[정리2]


1. 세상의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자들아, 하나님 앞에서는 겸비하여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


2.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은 심히 크기 때문이다.


3. 그의 소리는 우렛소리와 같아서, 많은 물 위에 있으며 그가 소리를 발하시면 레바논의 백향목들은 태풍에 쓰러지듯 쓰러진다. 쓰러질 뿐 아니라 송아지가 뛰듯이 날아가게 하신다. 그의 소리는 화염을 가르고, 그의 소리는 광야를 진동하게 한다. 그 소리에 놀란 동물들이 낙태하고 산은 말갛게 벗겨지고 만다. 이 모든 표현은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강력한 가를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9절)


4. 그와 같은 영광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물의 왕으로 계시며, 자기 백성을 모든 위협으로부터 구원하시어 힘과 평강을 주시지 않겠는가!


5. 그러니 너희 세상의 권세와 능력을 가진 자들이여, 여호와의 백성인 우리를 함부로 하지 말고 겸비하여 하나님 앞에 절하듯 그의 백성인 우리들에게 공의와 정의로 대하라.(불의와 폭력으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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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7편] 하나님은 매일 분노하신다.(11절)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자를 위해 칼을 가시고,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해 놓으신다.(12절) 성경에 이런 두려운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본모습을 감추고 숨기는지... 하나님은 끓어 오르는 분노를 매일 간신히 참고 계시는 것일 뿐이다. 그것을 모른채 우리는 얼마나 방종한지... 칼을 갈고 계시고, 활을 당기어 예비해 놓으시는 하나님을 묵상합시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자]


1. 여호와여 나를 구원하소서 나는 원수들에게 위태롭습니다.(1,2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 시편 기자는 자신을 대적하는 자를 피할 유일한 곳이 여호와 하나님 밖에는 없음을 고백하고 여호와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2. 자신은 이런 일을 당할만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3-5절)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자신은 누군가로부터 이런 일을 당할만한 악행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 일에 합당한 심판을 받을 각오가 되어 있음을 고백한다. 


3.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시고 나를 위해 깨소서.(6-10절)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하셨나이다.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제 나의 대적들에게 진노로 일어나 달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이니, 심판을 행하셔서 악을 끊고 의인을 세워달라고 요청한다.(자신의 떳떳함을 확신하고 있기에) 시편 기자는 자신의 유일한 방패는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한다. 우리의 삶의 태도도 이와 같아야 할 것이다. 무조건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께만이 아니라,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도 되어야 하는 것이다. 


4. 의로우신 하나님의 분노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다. 매일 분노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는 자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위태로운 일이다. 그는 회개하지 않는 자를 심판하기 위해 칼을 가시며, 활을 당기어 조준하고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심판관이시다. 죄를 두려워함이 없다면, 분노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5. 이와 같은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고 찬양함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정리2. 메시지와 묵상]


1.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시며, 악에 대해서 매일 분노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오해하는가?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신 분으로만 생각하고 그것이 복음이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러나 시편 7편의 기자는 여호와 하나님은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참으신다. 그러나 여유롭게 참으시는 것이 아니다.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시면 간신히 참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모르고 그냥 하나님께서 맘 편히 계신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도덕적 영적 타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2. 따라서 죄인은 회개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칼과 활로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악인들은 자신들이 행한 것에 대한 재앙을 자신이 받고, 자신이 해 놓은 올무에 스스로 묶이게 되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억울한 의인의 기도를 들으셔서 공의로 판결하심으로 의인들은 여호와를 찬양하게 될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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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기본 덕목


[전통적인 측면에서 기본 덕목]


기본 덕목: 4가지_분별력, 절제, 정의, 꿋꿋함.

신학적 덕목: 3가지


[기본 덕목]


1. 분별력(Prudence)

  1) 의미: 자신이 지금 어떤 행동을 하고 있으며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것.


  2) 착하기만 하고 어리석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3)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아이의 마음과 어른의 머리다. 


  4)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어느새 지성이 예리해 진다는 것이다. 존 버연 처럼 말이다. 


2. 절제(Temperance) 

  1) 의미: 절제는 특별히 음주와 관련된 말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쾌락과 관련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완전히 삼간다는 뜻이 아니라, 적절한 정도까지만 하고 그 이상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2) 절대 금주(?) 


  3) 결혼이든 고기든 술이든 영화든 절대금지가 아니라 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4) 골프나 오토바이나 옷이나 카드놀이 혹은 애완견에 온통 정신이 팔린 사람도 술취한 것 만큼이나 무절제한 사라이다. 


3. 정의(Justice)

  1) 의미: 지금 우리가 공정함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을 옛날에는 정의라고 불렀다. 

  2) 정직함이나 공평한 교환, 성실함, 약속을 지키는 일 등 삶의 모든 부분이 포함된다. 


4. 꿋꿋함(Fortitude)

  1) 의미: 꿋꿋함에는 두가지 종류의 용기(1. 고통속에서 버티는 용기, 2. 위험에 맞서는 용기)가 포함되어 있다. 


[주의]


1. 정의롭거나 절제있는 특정 행동을 한다는 것이 그 사람 자체가 정의롭거나 절제 있다는 뜻은 아니다. 


2. 여기서 말하는 '덕목'이란 특정 행동이 아니라 인격적 특질을 가리킨다. 


  (1) 옳은 행동을 했더라도, 그 동기가 옳지 않으면 특질이나 성품이라고 말할 수 없다. 

  (2) 그저 하나님이 정하신 한 묶음의 규칙만 따르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3) 성품은 현세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세에도 필요한 것이다.(천국에는 다툴일이 없으니까 필요없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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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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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2장] 하나님은 고니야(여호야긴)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다윗의 왕위를 이어갈자가 없음을 말씀하신다. 다윗과 맺은 영원한 왕권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폐기되는 것 같다. 500년 이상 그 언약은 폐기된 채로 유다의 역사는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왕, 다윗의 혈통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신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여호와께서 유다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1)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2)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3)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4) 너희가 이 말을 들으면 그 영광이 유지되지만, 이 말을 듣지 않으면 이 집은 반드시 황폐되리라.
  5) 여호와 하나님이 너를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그들의 손에 들린 무기를 가지고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
  6) 여러 민족은 지나가면서 여호와가 이 큰 성읍을 이같이 행함은 어찌됨인가? 놀랄 것이다.
  7) 그 이유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을 버리고, 여호와의 언약을 떠나 다른 신에게 가서 그에게 절한 까닭이라 하셨다 하라.

 

2. 여호와께서 유다 왕 살룸(여호아하스)에 대해서 말하다.
  1) 너희들은 죽은 자를 위해서 애통하지 말고, 사로 잡혀간 자를 위해 애통하라.
  2)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게 될 것이다.
  3)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살룸이 결국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게 될 것이다.

 

3. 여호와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해서 말하다.
  1) 화있을 진저:
   (1)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
   (2)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짓고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3)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2) 네 아버지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않았는가? 그 때 형통하지 않았는가?
   (1)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다.
   (2)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3) 그런데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다.
  3)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말씀하신다.
   (1)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4. 예루살렘에 대한 탄식
  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너는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2) 네 모든 악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3) 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5. 여호와께서 유다 왕 여호야긴(고니야)에 대해서 말하다. 
  1) 유다 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여호야긴)가 나의 인장 반지라도 내가 빼어서 네가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2) 너와 너를 낳은 어머니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으로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으리라.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리라.
  3) 고니야(여호야긴) 이후로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을 다시 풀어서 쓰기]

 

본문은 유다의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더불어 유다 왕 중에 살룸(여호아하스)과 여호야김, 여호야긴(고니야)의 죄과 그에 대한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유다의 사회적인 죄악은 그들이 마땅히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져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았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 즉 사회적인 약자를 오히려 학대한 것이며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것이다. 이와 같은 잘못에 대한 시정요구를 듣지 않은 것이 이들의 죄다. 결국 하나님은 이로 인해 이들을 적의 손에 넘겨주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요시야 왕 이후로 살룸(여호아하스)과 여호야김 그 뒤를 이은 여호야긴(고니야) 왕의 악행과 그 행위에 따른 결과가 어떠할지를 말씀한다. 살룸 왕은 죽은 자보다 더 비참한 살로잡혀간 자의 운명을 살게 될 것이다. 잡혀간 땅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죽을 것을 말씀하신다.

 

여호야김은 화려한 건축을 위해 그 백성들에게 그 품삯도 주지 않고 일을 시킴으로서 악을 행했다. 여호야김은 탐욕과 허영 그리고 무죄한 피를 많이 흘렸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왕을 예루살렘 문 밖에 끌려가서 나귀처럼 매장당하는 비참한 운명이 될 것을 말씀하신다.

 

고나야(여호야긴) 왕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인장 반지 같은 자라 할찌라도 빼서 바벨론의 손에 넘겨주겠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이 왕은 여호와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다윗의 왕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유다는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신하와 그 백성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졌다. 특히 왕들은 허영에 가득차 정의와 공의를 잊고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리게 한다. 이것이 결국 왕과 그 나라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원인이 되고 만다.

 

예루살렘은 평안할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고질적인 병처럼 이들의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들은 결국 가련한 운명이 될 것이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교훈과 묵상들]

 

1. 요시야 이후로 왕들은 허영으로 가득하고 공의와 정의를 잊었다.

 

권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왕은 자기 자신들의 권력을 자신의 허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였다. 품삯도 주지 않은 채 아름 다운 집을 짓는데 혈안이되었으며 그로 인해 백성의 고통은 말이 아니게되었다. 왕과 권력자들은 정의과 공의를 실현하는 것에는 무관심했다. 정의를 왜곡하여 무고한 자의 피를 흘리게 했다.

 

요시야 왕 이후로 국가적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며 추락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은 여전히 자신의 허영을 채우기 위해 급급했다. 앞을 보지 못했다. 그와 같은 유다의 운명은 여호야긴(고니야)을 마지막으로 그 후손 중에 다윗의 혈통이 왕이 되는 것은 끊어지고 만다. 다윗의 위가 영원할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과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권력과 힘이 올바른 룰 안에서 통제됨이 없이 사용되어질 때 권력은 언제나 권력을 가진 자를 중심으로 타락하게 되어 있다. 부정한 방식으로 재물을 축적하든지, 그 권력을 자신의 허영을 위해 낭비하게 된다. 그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은 무고한 자들이며, 힘없는 자들이다. 백성의 원성이 높아가게 마련이다. 유다는 하나님과의 신앙 문제에 있어서도 깊은 골이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일반 사회적인 상황에 있어서도 긴장과 갈등으로 인한 위험이 커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인장 반지와 같은 유다 왕을 빼어 버리기로 결정하신다. 그리고 원수의 손네 넘겨주시기로 결정하신다. 공의와 정의를 잊은 권력이 마지막은 원수에게 넘겨짐이 되고 만다.

 

2. 고니야(여호야긴) 이후로는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자가 없을 것이다.

 

다윗에게 주신 영원한 왕권에 대한 언약이 깨지는 순간이다. 유다가 철저하게 믿었던 믿음, 다윗의 왕권은 결코 빼앗길 수 없을 것이다라는 그들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 것이다. 하나님은 언약에 있어서 신실하신 분이지만, 결코 언약에 매여 하나님의 이루어가질 정의와 공의를 포기하시는 분은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제 유다와 그 백성들은 그들의 언약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 신앙에 대해서 전면적인 새로운 인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언약에 대한 재해석을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된 것이다.

 

3. 너는 어려서부터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유다의 죄가 얼마나 오래되고 뿌리깊은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표현이라 하겠다. 하나님은 이전까지 관심이 없다가 갑자기 사춘기 자녀에게 관심을 보이셨던 것이 아니다. 그들이 평안했을 때(어렸을 적부터)부터 관심을 가지고 말씀하셨으나, 이들은 그 때부터 듣지 않았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완악했음을 말한다.

 

갑작스러운 반항이나 임시적인 탈선이 아니었다. 이들의 반항과 탈선은 뿌리가 깊은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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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1장] 우리가 마지막 날 어떤 얼굴의 하나님의 만나게 될지, 우리는 잘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겸비하여야 한다. 겸비한다면 기회는 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1.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하나님의 뜻을 묻다.
  1)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 바벨론의 위협으로부터 구원받도록 간구하도록 부탁함.  하나님의 기적을 바람.


  2) 예레미야가 그들을 통해서 시드기야 왕에게 전하는 내용
   (1) 여호와께서 바벨론과 싸울 때 사용하는 너희들의 무기를 다 모아들이겠다.
   (2)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진노와 분노와 대노로 너희를 칠 것이다.
   (3) 이 성에 있는 사람이나 짐승을 치리니 큰 전염병에 죽으리라.
   (4) 전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살아남은 자는 원수들의 손에 넘겨 죽게하고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


  3) 너희들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다.
   (1) 이 성읍에 사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이다.
   (2) 그러나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다.(그러나 전리품처럼 여겨질 것이다.)


  4) 여호와께서 이곳을 향하여 얼굴을 두심은 복을 내리기 위함이 아니요 화를 내리기 위함.

 

2. 유다를 향한 권면
  1)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2)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 때문에 내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서 너희를 사르리라.
  3) 골짜기와 평원바위의 주민들아, 너희들은 누가 우리를 치고 우리 거처에 들어오겠는가 말하지만, 내가 너의 대적이다.
  4) 내가 너희 행위대로 너희를 벌할 것이요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모든 주위를 사르리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작성하기]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침공 앞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예레미야를 찾게 된다. 그리고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같은 도움을 구하려 한다. 그래서 시드기야는 바스훌과 제사장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낸다.


예레미야의 답변은 충분히 예상되는 답변이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돕는 것이 아니라, 유다가 사용할 무기들을 성 중앙으로 모으고,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진노와 분노와 대노로 유다를 칠 것을 오히려 말씀하신다. 유다는 바벨론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망하게 되는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염병과 칼과 기근으로 죽게 할 것을 말씀하신다. 비참한 죽음을 말씀하신다.


그러면서도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 있다고 말씀하여 뭔가 희망이 있는 것처럼 운을 떼신다. 그러나 생명의 길이라는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의 생명의 길은 아니다. 포로가 되어 목숨을 연명하는 정도의 생명의 길이다. 바벨론에게 항복하면 목숨을 건질 것이라는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지금 유다를 향해서 얼굴을 향한 것은 복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심판하시기 위함임을 명백하게 말씀하신다.


다윗의 집을 향해서 정의를 행하고, 탈취당한 자를 압제자의 손에서 건지라고 요청하신다.  

 

[정리3.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교훈과 묵상]

 

1. 시드기야는 은혜를 바랐지만, 하나님은 심판만 말씀하셨다.

 

시드기야는 절박한 마음으로 기적을 바라고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냈지만, 하나님은 냉정하게 심판만을 답하셨다. 하나님은 분노와 진노, 그리고 대노하셨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유다가 처한 위기는 바벨론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믿던 하나님때문에 일어나게 된 것을 강조하신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시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은혜를 받았고, 은혜를 누렸고 안타깝게도 은혜를 남용했다. 하나님은 은혜로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유다는 결정적인 순간에 은혜를 요청했지만, 하나님은 은혜로 답하지 않으셨다. 전에는 은혜를 주셨던 그 분이, 이제 진노를 작정하시고 몰아붙이신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 백성이 방자히 행하여 하나님을 진노와 분노, 대노하게 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얼굴 방향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해 얼굴을 향하신다. 마치 자식을 낳은 어미의 심정으로 늘 그 자녀에게로 고개를 향하신다. 그러다가 자녀에게 등을 돌리실 때가 있다. 자녀의 잘못이 반복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할 때, 하나님께서 등을 돌리신다. 회개하기를 기다리신다. 잘못을 구할 때까지 돌아보지 않으신다. 용서하시고 싶지만,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마음을 독하게 먹고 견디시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다시 고개를 향하는 것이다.

 

진심과 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면 은혜와 자비, 용서의 마음으로 고개를 향하시고 그 간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씻어주시고 위로와 격려로 인도하신다.

그러나 여전히 돌이키지 않고, 더 악한 길로 가며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남용하는 악한 태도를 견지할 때,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그들을 진멸하시도록 심판하신다. 분노의 얼굴이며 심판의 얼굴이다.

 

우리가 마지막 날 어떤 얼굴의 하나님의 만나게 될지, 우리는 잘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겸비하여야 한다. 겸비한다면 기회는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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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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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9장] 하나님의 눈물, 예레미야의 눈물은 당장 슬픈 현실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빤히 보이는 멸망을 돌이킬 수 없는 안타까움에 기인합니다. 아무리 부르고 소리쳐도 대답하지 않는 멀어져만 가는 자식의 운명에 대한 통애의 눈물입니다. 이스라엘이나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인생이나 결국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드라마인 것이지요.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함]


1. 눈물의 탄식

  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로 주야로 운다.

  2) 내 백성은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한다.(활을 당김같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못하다. 

  3) 이웃을 속이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지치도록 악을 행한다. 

  4)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또 나를 알지 못하느니라.


2.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1) 그들의 혀는 죽이는 화살이라.(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마음으로는 해를 꾸민다.)

  2) 내가 이들을 벌하지 않겠느냐? 이런 나라를 보복하지 않겠느냐?

  3) 그것들이 불에 타서 지나는 자가 없고, 가축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새도 도망가고 없는 황폐함을 만들겠다.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승냥이 굴이 되며 유다의 성읍이 황폐화 된다.


3. 누가 지혜가 있어서 깨달을만 한가? 누가 이 멸망을 막겠느냐? 

  1) 이들이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세운 율법을 버리고 목소리를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그들은 자기들의 완악함을 따라 그 조상들이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을 따라갔다. 

  3) 그래서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고 그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라로 흩어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 


4. 부녀들을 불러 통곡하게 하고 우리 눈꺼풀에서 물이 쏟아지게 하라. 

  1) 시온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기를 우리가 아주 망하였구나...

  2) 너희 딸들에게 애곡하게 하고 각기 이웃에게 슬픈 노래를 가르치라. 

  3) 창을 넘어 사망이 들어와서는 죽은 시체들이 거두지 못한 곡식단 같게 될 것이다. 

  4) 그러니 지혜로운 자는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용맹한 자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고,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지혜나 용맹이나 부도 이 재앙을 피할 수 없다)

  5) 자랑할 것은 

   (1) 명철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

   (2)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 닫는 것이라. 이 일을 기뻐함.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재구성하여 다시 정리함. 내 말로]


이 백성의 앞날을 보면 눈물과 탄식이 쏟아진다. 부녀들이 모여 통곡하는 소리로 가득차게 될 것이기에 하나님도 울고 예레미야도 운다.


이들은 거짓이 가득하다. 그들의 혀는 화살같이 이웃을 죽인다.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지만 마음으로는 해를 꾸밀 뿐이다. 이들은 지치도록 악을 행하여 악에서 악으로 행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어찌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벌하지 않고 진노하시지 않겠는가? 이들이 이렇게 된 것에는 그들과 세운 율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고 불순종했기 때문이다. 조상 때부터 하던 바알 숭배를 여전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기로 하시고, 독한 물을 마시우게 하기로 작정하셨다. 이들은 불에 타서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는 길과 같이 되고 가축의 울음소리도 새가 날아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황폐하게 되게 하겠다고 하신다. 사망은 이들의 집에 창을 타고 들어와서 많은 시체를 만들어 낼 것인데, 마치 거두지 못한 곡식단처럼 처리하지 못한 시체가 가득하게 할 것이다. 그 때는 지혜로운 자도, 용맹한 자도, 부유한 자도 그 재앙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만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께서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이 땅에 행하시는 분인 줄을 아는 것이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눈물, 눈물, 눈물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했던가! 오늘 본문은 눈물과 애통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자기 백성의 운명을 바라보는 예레미야의 마음도 그렇고,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왜냐하면 이들의 멸망이 너무 참혹하고 비참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들은 여전히 철부지 아이들처럼 자기들의 운명을 모른채 죄와 악을 행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일깨우기 위한 예레미야의 노력이 얼마였는가! 아니 하나님의 노력은 얼마였는가! 그러나 이 미련한 백성은 듣지를 않고 완악한 마음으로 더 깊은 파멸로 향하여 가고만 있다. 


여기서의 눈물은 멸망한 사실에 대한 눈물이면서(장례식 장에서의 눈물처럼) 동시에 멸망 당할 자기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보는대서 오는 안타까움의 눈물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라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역사다. 우리의 인생은 어떤가? 그런 측면에서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인생이 아닌가? 어리석은 인생이 아니던가? 


자녀에게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하는 부모, 지금 시간을 이렇게 사용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과 에너지를 허망한 것에 낭비하고 있는 젊은이들, 소중한 것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급한 일에, 별볼일없는 일에 인생을 다 허비해 버리는 우리의 인생 드라마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것이 아니가? 그 마지막의 불행함을 알기에, 알면서도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기에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드라마는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2.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서 행하는 자인 줄 알라. 


우리는 하나님을 한 편으로만 보고 있다. 은혜와 자비와 긍휼..한 마디로 사랑인데 우리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충분하게 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면서도 전체는 아닌 것을 우리는 잊고 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신 또 하나의 모습, 정의와 공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십자가에서 실행하신 것이 바로 정의와 공의였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다. 사랑이 정의와 공의를 삼켜 버려 변질된 복음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복음을 바로 알아야 한다. 사랑! 정의! 공의!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 복음을 알아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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