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본 장에서 루이스는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상식적인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예수의 사역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사역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에 대해서 말한다. 루이스는 영향력이 미치는 과정에 대한 설명(다양한 견해가 있으므로)에 대해서는 이해를 돕는 부차적인 것으로 보고, 본질은 암튼, 효력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에 강조점을 둔다. 그리고 루이스가 이해한 설명을 해본다.(대속, 인간의 상태, 회개의 개념, 회개의 필요성, 회개의 능력,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셔야 하는 이유, 대속의 개념 등)



<예수에 대한 판단>

우리는 그를 자기의 주장대로 하나님으로 보든지 아니면 그를 미치광이 혹은 그 보다 못한 자였을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루이스는 아무리 봐도 예수를 미치광이나 그보다 못한 자라고 볼 수는 없다고 본다. 따라서 정말 경악스럽기는 하지만 그가 하나님이고 지금도 하나님이라는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예수는 이 땅에 왜 오셨는가?>

<예수의 죽으심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인가?>


1. 성경은 예수가 고난 받고 죽임당하기 위해서 이 땅에 왔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1) 루이스는 예수의 죽음이 어떻게 우리에게 그와 같은 효과를 이루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이론들은 그 자체로 기독교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어떻게 효력을 갖느냐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다양한 설명중 어떤 것을 택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임무는 아니라고 한계를 정한다. 


  2) 루이스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예수의 죽음이 효력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인정한다. 

    예) 우리는 음식을 먹으면 체력적으로 회복되고 원기를 되찾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비타민이나 단백질 이론을 통해서 더 구체적인 이해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혹 그런 설명이 틀렸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져온 영향력]

  (1)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가 바깥에서부터 우리 세상으로 뚫고 들어온 역사의 지점이다. 

  (2) 우리가 원자도 그림으로 그려낼 수 없는 것처럼, 이런 사건을 완전하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3) 음식이 우리에게 어떻게 효력을 주는지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음식을 먹음으로 효과는 얻을 수 있다.


2. 예수의 죽으심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기본)공식

  1)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죽임을 당했다.

  2) 그 죽음이 우리의 죄를 씻어 주었다. 

  3) 그가 죽음으로써 죽음의 세력이 힘을 잃었다.


  [루이스가 제안하는 하나의 이론]

   (1) 그리스도가 자원해서 우리 대신 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사면받았다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이론.

      : 어떤 사람은 사면해 줄 작정이면 그냥해 주면되지 왜 죄없는 사람에게 벌을 준다는 말인가? 질문할 수 있음.

     [답] 이 벌을 즉결재판소의 '처벌'로 생각하지 말고, '빚'으로 생각하면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죄값을 치른다'는 개념을 '계산을 치른다'나 '비용을 부담한다' 정도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2) 인간이 빠진 곤경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 그것은 스스로 서려고 하는 것으로 자신의 주인인 양 행세하는 것이란 점이다. 타락한 인간은 개선의 필요가 있는 불완전한 피조물이 아니라 손에 무기를 내려놓아야 하는 반역자라는 것이다.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면서 그 동안 잘못된 길을 걸어왔음을 깨닫고 삶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회개'다. 회개란 수천 년 간 익혀 온 자기 만족과 자기 의지를 버린다는 뜻이다. 여러분 자신의 일부를 죽이는 것, 일종의 죽음을 겪는 것을 뜻한다. 


   (3)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를 해야 하는데, 회개를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가? 

      : 하나님이 도와 주실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이 도와 주신다는 것은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조금 넣어 주신다는 뜻이다. 그분 자신의 추론 능력을 우리에게 조금 빌려주셨고, 그분 자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조금 넣어 주셨기에 우리는 생각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어린 아이가 글을 배울 때, 부모가 함께 손을 잡고 글을 써주듯이 그가 우리 손을 잡고 있는 것이다. 


      : 사실 하나님은 회개와 관련하여 한번도 경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돕기 위해 사람이 되어 사람으로서 경험해야 하는 자기 뜻을 포기하고, 고난을 겪으며 심지어 죽을 수도 있게 되었으므로 이 모든 일을 완전하게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써야 할 모든 과정을 함께 써내려갈 수 있는 존재가 되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셔서 죽음까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존재가 되셔야 했다. 


     <질문: 예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죽음의 고통이 지극히 쉬웠던 것 아니냐?>

 

   그렇게 질문하는 것은 어떤 오해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하나님이시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쉬웠다는 것이 우리가 그를 거절해야 할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의지해야 할 이유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1) 어린 아이의 손을 잡아 글씨를 지도하고 있는 어른의 실력이 어린 아이보다 낫기 때문에 불공평하다고 말하면서 그 어른에게서 배우지 않고 오히려 아직 글도 모르는 동료들에게 배우려고 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어디있는가? 

    (2) 물에 빠진 사람이, 한 다리를 강둑에 두고 팔을 뻣어 손을 내민 사람을 향해서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오히려 그 사람의 유리한 조건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자기 보다 더 강한 자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겠는가? 


    (3) 이것이 저자가 <대속>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그림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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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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