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서와 같은 설화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룻기서를 시작하는 글 (http://hunmill.tistory.com/1230) 을 참조해주세요. 왜 룻기인지? 설화체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습니다. 



[성경관찰해석적용샘플] 설화체_룻기02_룻1:6-14

어렵지 않고,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기초적인 내용 파악(문자적 이해)을 중심으로 훈련하는 차원

[본문] 

본문 

관찰(1차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

[본문: 룻 1:6-14]

본문 구절은 성경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모든 구절을 반복해서 넣을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다만, 본문을 읽고 본인이 스스로 본문 내용을 요약하는 훈련을 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자신의 말과 글로 요약할 수 있을 때 그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약]

나오미가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결국 자신의 고향인 유대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나오미는 돌아오면서 두 며느리에게 자신을 따라오지 말고, 본인들의 고향에 남아 재혼하여 살아갈 것을 권유하지만 두 며느리 모두 그러기를 원치 않아한다. 나오미는 다시 한번 두 며느리를 설득하는데, 현실적으로 자신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음을 인식시키고 결국 오르바는 설득이 되어 돌아갔으나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쫓기로 한다.  



[문장요약]

1. 룻기의 저자는 지난 10년간에 일어났던 일을 5절(1:1-5)로 정리했다. 그러나 나오미가 돌아오는 과정에서 짧은 시간 며느리들과 나눈 대화의 내용은 자세히 길게 다루고 있다. 이는 이 대화의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독자로 하여금 대화의 내용을 주목하여 보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2. 이와 같은 스토리 속에서 몇 가지 눈에 띄는 강조점들이 있다. 

 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오미가 고향으로 갈 것을 결심한다는 것(6절)

  -> 흉년으로 고통당하던 땅에 하나님의 돌보심이 회복되어 양식을 얻게 된다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시대를 기대하게 된다. 

 2) 나오미를 쫓으려는 두 며느리의 마음이 진심으로 보인다는 것(어떤 가식적인 표현이 없이 진정어린 태도로 나오미를 대하고 있다는 것)(9-10절, 14절)

  -> 이방여인이지만 나오미에대해 진정성있는 태도를 보이는 모습을 통해 이방여인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다. 

 3) 나오미는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을 불편하게 보시고 치셨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13절)

  -> 개인사를 고려할 때 나오미의 하나님 인식은 부정적이다. 고통을 주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나오미의 처지를 본다면 그와 같은 나오미의 입장에 공감할 것이다. 


3. 두 며느리의 진정성있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오미를 쫓아온 사람과 떠난 사람으로 구분된다. 오르바는 떠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고,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쫓아 하나님의 땅으로 들어오게 된다. 


4. 이제 룻기의 중심 이야기 속에서 나오미와 룻이 중심인물로 남는다. 오르바는 자신의 결정에 따라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배제되게 되었다. 

 1. 룻기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이야기로 들려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2. 나오미는 하나님의 땅을 떠났다가 실패하고 다시 하나님의 땅으로 돌아오는 유대인의 모습으로서 신앙이 있지만 고난 속에서 흔들리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야곱처럼 자신의 지혜를 따라 살다가 결국 빈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는 신앙인의 모습)


3. 룻은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하나님의 스토리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운명의 여인이다. 오늘날로 보면 교회 밖 사람이고, 신앙이 없는 자이거나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오미와의 관계 속에서 결국 하나님의 땅 안으로 들어오게 된 사람이다.(비로 충분한 신앙이 아직은 없겠지만) 그러나 누구나 룻과 같은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르바는 동일한 상황에서 나오미를 따르지 않고 떠났기 때문이다. 룻은 나오미와 연결되지 않고서는 유대 땅에 올 일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나오미를 통해 유대 땅까지 오게된 이방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신자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과정에는 '신앙'으로 시작하지 않는 통로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4. 나오미가 겪은 불행한 일이 결국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불행한 일이 불행한 결과만 낳지는 안는다. 아직은 반감이 더 많지만 결국 나오미는 고난을 통해 다시 하나님을 만나고, 더 나아가 룻까지 그 은혜 안으로 인도하게 된다. 현재의 고난은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5.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지나고 나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오늘 본문은 오르바와 룻의 선택이 결국 그의 운명을 갈라놓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인들의 선택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다.


[적용]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정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서 바른 고민을 하도록 돕는 것이 적절하다. 

1. 이 땅에서 겪는 고통과 불행은 부정적이기만 한것인가? 어떤 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는가? 

  - 나오미에게는 어떤 기회가 되었는가? 


2. 나오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룻이라는 여인을 하나님의 역사 속에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어떤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할 것인가? 

  - 나도 모르는 중에 선한 일이 일어날 수 있으며, 나도 알지 못하는 중에 생각지 못하는 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 결과는 알수 없지만, 매 순간 정직하고, 순수하려고 하는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끝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 장]


1. 봄 비가 올 때,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그리하면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 채소를 얻게 하리라.


2. 그런데 너희들이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드라빔과 복술자를 헛되게 의지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백성들이 양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였다.


  * 비가 필요할 때, 하나님께 구하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헛된 우상을 의지하여 자신들의 필요를 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백성과 목자들에게 분노하고 벌하셨던 것임을 지적하신다. 


3.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께서 유다 족속을 돌보아 그들을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라.


  1) 모퉁잇돌이 그에게서, 말뚝이 그에게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서, 권세 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서 나올 것이다. 

  2)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한즉 대적하여 말탄 자들이 부끄럽게 될 것이다. 

  3)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고,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이 돌아오게 하리라.

  4) 내가 그들을 내버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될 것이다. 

  5)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시며 즐거워할 것이다. 그들의 자손을 보고 기뻐하리라. 


  * 그러나 이제는 달리 하신다. 마치 전에 이 백성을 내버린 적이 없던 것처럼, 완전하게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시 유다 민족에게서 구원자(메시야)를 세울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유다와 요셉이 견고하게 설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긍휼이 여기셔서 돌아오게 할 것임을 말씀하신다. 

----------------


4. 하나님께서 그들을 휘파람을 불어 불러 모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구속하셨기 때문이다. 


  1) 이전의 번성하던 것처럼 번성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그들을 여러 백성들 가운데 흩을 것이지만, 그들이 먼 곳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살아서 자녀들과 함께 돌아올지라.

  3) 하나님께서 이들을 애굽에서 돌아오게 하고, 앗수르에서 모아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 것인데, 그들이 거할 곳이 부족할 것이다. 

  4) 하나님이 그들을 고난의 바다를 지나갈 때에, 바다 물결이 침으로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를 것이다.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규가 없어지리라. 


  * 새롭게 돌아오는 백성들은 애굽에서 돌아오고, 앗수르에게서 잡혀갔던 곳에서 돌아오는 것이다. 그 수가 적지 않아 길르앗과 레바논이 부족할 것이라고 말한다. 흩어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풍성해진 백성을 말하는 것이다. 애굽의 거주함으로 더욱 풍성해졌던 이스라엘처럼. 앗수르와 바벨론으로 인해 포로로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 풍성하게 되어 돌아오게 될 것을 스가랴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앗수르의 교만과 애굽의 권위를 낮추셨음을 말한다. 


  5) 하나님이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라. 



[묵상 한 모금]


1. 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분노하시고 벌하셨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


2. 6절에 '그들은 내가 내버린 일이 없었음 같이 되리라'는 구절은 이전과 같은 회복을 약속하시는 말씀이다. 마치 다친 곳이 다치기 전처럼 완전하게 회복될 것을 말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내버려짐으로 인해 고통이 컸지만, 그것을 상쇄하고 남을 만큼의 큰 회복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관계는 끊어질 수 없는 관계를 끊었다가(거의) 다시 회복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부모가 되어 관계를 회복할 것이며, 다시 결혼 관계를 회복하여 가정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3. 이 말은 9절의 표현으로 하면, 여러 백성들 가운데 흩었다가 다시 불러 모을 것이라는 것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전에 번성하던 것처럼 번성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들을 데리고 오려면 이들을 붙잡고 있는 강한 자들에게서 빼앗아 와야 한다. 그들은 이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애굽의 바로에게서는 큰 재앙을 통해서, 홍해를 가르는 기적과 심판으로 빼앗아 오셨고, 앗수르와 바벨론으로 흩어진 백성들에게 대해서는 고레스를 통해 보내도록 하셨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모든 제국의 권력을 제압하여 낮아지게 하시기도 하고,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기도 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더욱 부각된다. 


4. 내 주었다가 다시 데리고 와서 전과 같이 되는 것이 본전에 불과하고 시간만 낭비했다고 볼수는 없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행하였는지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 얼마나 큰 하나님이신지도 밝혀지게 되기 때문이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얼마전, 가난이 스펙이 되고, 목사가 스펙이 된다는 글에 대한 설명을 드리려 합니다. 이 설명은 한 두차례 올린 기도의 응답에 대한 해답도 되고요.


결과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희 집 큰 아들의 고등학교 입학과 관련된 것입니다. 


저희 큰 아들은 부모의 기대와 달리 중학교에 들어와서 공부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모는 일찌감치 큰 아들의 특별함을 접었지요. 그래서 사실 꼭 대학을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마음 한켠에서는 내려 놓았구요. 대학을 가려고 한다면 어디든 갈 수는 있지만 말입니다.


중3이 되고, 고등학교를 정해야 하는 시즌이 다가오면서 큰 아이가 경기도에 있는 기독교 학교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것보다 기숙사가 있는 학교인데, 신앙 있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다보면 스스로의 신앙이 성장하지 않을까 해서요. 제가 캠퍼스 사역을 할 때 그 학교 출신들을 몇 명 보았는데, 자아상도 건강하고 신앙도 좋은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학교는 실력이 상당히 있어야 입학이 가능한 학교였기 때문에 막연한 바람에 불과했습니다. 


그 학교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던 중 일반전형이 아닌, 사회균형발전 전형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적보다는 저소득층 자녀, 다문화가정 자녀 등을 대상으로 하는 전형이었습니다. 웃으며 아내에게 우리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이 방법밖에 없겠다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했습니다. 그러나 자세한 자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큰 아이 담임 선생님과 상담하던 중 그냥 흘려가는 말로 아내가 선생님께 그 학교에 사회균형발전을 위한 전형이라는 것이 있어서 함 생각해 봤다고 했더니, 선생님께서는 그제서야 그런 전형이 있다는 것을 아셨는지... 그 앞에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더니 제 아내에게 '현빈이 어머님, 현빈이 이거 한번 해봐요!' 하면서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오라고 하셨고, 선생님은 학교 측에서 필요한 자료들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아내는 얼떨결에 떠밀리듯이 서류를 준비해서 학교에 냈고, 학교에서는 급히 서류를 만들어 주어 경기도에 있는 자사고에 서류를 넣었습니다. 서류 마감 1주를 남겨놓고 일어난 일입니다. 


서류는 접수해 놓고도 실은 큰 기대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되면 좋지만, 실력면에서는 도저히 입학할 수 없는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희 아이가 넣은 전형은 저소득자녀들만이 지원하는 거라 좀 차등은 있겠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죠. 원서지원 마감일이 지나고 저희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일반전형, 그 지역 학생 전형 모두 지원자들이 모집인원에 비해 월등히 많았는데, 저희 큰 아이가 지원한 전형은 모집인원보다 3명 적은 미달인 것이었습니다.(작년에는 같은 전형도 미달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그랬는지 1차 서류 전형에 통과하고, 2차 면접도 무사히 통과하였습니다.(큰 아이가 지원한 전형은 다른 전형 지원자들과 경쟁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경쟁없이 되었다고 봐야 될 것입니다.) 그렇게 저희 큰 아이가 막연하게 바랬던 그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참, 저희들에게는 기가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아이에게 말했죠... 아버지가 잘 살지 않아서 네가 그 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요. 가난이 스펙이 된다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큰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학교가 저희 집에서 매우 멀기 때문에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으면 매우 곤란한 상황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편도로 거의 1시간 40분의 시간이 드는데, 고등학생이 그렇게 다닌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지요. 기숙사가 안되면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얻어야 한다고 하는데, 아이 혼자 자취를 시킬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기숙사가 안되면 오히려 입학하지 아니한만 못한 경우가 생길수도 있는 것이지요. 


지난 12월 7일, 큰 아이가 기숙사 지원자 면접을 보러갔습니다. 그날은 저도 시간이 되어 함께 갔습니다. 신입생 중 100명을 뽑는데 약 150명 정도가 지원한듯 합니다. 정원이 600명이 넘는데, 그 지역 지원자들은 기숙사 지원이 안되고 비기독교인은 또한 기숙사 지원이 안되기 때문에 그나마 지원이 그 정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희 큰 아이가 다닌 중학교에서 큰 아이 빼고 2명이 그 학교에 합격(이 친구들은 일반전형으로.. 공부를 정말 잘하는 친구들이죠..)했는데 그 중에 한 아이의 부모님은 저희 큰 아이를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아버지가 목사라서 말입니다. 학교 기숙사에 목사 자녀들은 수월하게 입사할 수 있다는 소문이 항간에 돌기때문에, 공부 잘하는 큰 아이 친구의 어머님이 저희 큰 아이를 부러워했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스펙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실제로 그런 기준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성적과 형편을 고려해서 뽑는다고 하니까요... 암튼 지난 수요일 저희 큰 아이는 기숙사 지원에도 합격했다는 발표가 났습니다. 


이렇게 됨으로 해서 11월초부터 있었던 큰 아이의 고등학교 입시과정이 마무리가 된 것입니다. 오늘 아내랑 함께 운동하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큰 아이가 그 학교에 들어가게 된것은 지금 생각해 봐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말입니다. 무엇하나 우리가 적극적으로 구하고 찾아서 된 것이라고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의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셔서 일을 이루셨으니까요.


여기서 한 가지 더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큰 아이가 그 고등학교를 입학 허가를 받고 나서 입학금 관련 안내를 받았습니다. 수업료와 학교발전기금 그리고 교과성 구입비 일부해서 110만원가량의 입학금을 내년 초까지 입금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중학교때까지는 의무교육에 급식비도 들지 않아아 기본적인 교육을 위한 비용이 거의들지 않았다가 갑자기 고등학교 수업료 통지를 받으니 매우 당황스럽더군요. 이런 금액을 3개월마다 한번씩 낸다고 하면 1년이면 440만원, 게다가 기숙사와 하루 세끼의 급식비를 합하면 1년이면 근 9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대학교 등록금 1년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반고등학교 였다면 훨씬 덜 들었겠지만, 자사고인데다가 기숙사비까지 포함되니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더군요.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은 바로 이 때, 6년전부터 큰 교회의 복재재단에서 매년 해외선교단체 선교사와 캠퍼스 선교단체 간사들을 위해서 병원비와 장학금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저희 죠이선교회에서도 매년 병으로 힘들어 하는 간사님 가정과 자녀들 학자금 지원이 필요한 간사에게 한 명씩 선정이 되어 해당되시는 분들이 혜택을 받았습니다. 병원비 지원이야 그 때 그 때 아픈 분들에게 전해지지만, 장학금 지원은 자녀들이 큰 순서대로 지원을 받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 순서가 저희 큰 아이에게 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그 복지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지급받은 것이 바로 지난 수요일이었습니다.(큰 아이가 기숙사에 합격발표가 난 날이지요) 게다가 이번 장학금은 다른 때 장학금보다 액수가 컸습니다. 큰 아이가 1/4분기 입학금을 내고, 첫 기숙사비와 식비를 낼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여러가지 일들이 아구가 서로 맞아 들어가는 그 현장을 경험하는 것만큼 가슴 벅찬 은혜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와 제 아내는 그 은혜 가운데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지난 한 달간 저희 가정에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혹 기도제목과 스펙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고, 나중에 저희 큰 아이가 그 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이 공부를 잘해서 입학한 것으로 오해(?)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립니다. 더불어 저희 가정 가운데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도 나누고 싶어서 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마음이 마냥 기쁜 것만은 아닙니다. 기도부탁을 드립니다. 


1. 큰 아이가 입학하면 십중팔구는 600여명의 학생들 중에서 성적을 깔아주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큰 아이가 내면이 강한 아이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큰 기대보다는 조금씩 조금씩 성적을 향상해 가면서 내면이 강해지는 아들이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2. 기숙사에서 신앙의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자기 자신의 신앙을 가지고 성장하는 기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이 학교를 보내고 싶었던 가장 큰 마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건강한 신앙, 자기 자신의 신앙, 성장하는 신앙의 기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3. 큰 아이가 아직 어린데, 가정을 떠나 기숙사에서 생활한다고 생각하니 사실 마음이 좀 그렇습니다. 너무 어린데 가족과 떨어져 지내도록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염려도 됩니다. 좀 이른감이 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독립적인 생각와 힘을 기르도록 기도해 주세요.


4. 재정 문제는 한편으로 걱정도 되지만, 사실 제일 걱정되지 않는 부분중에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채움을 입고 왔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저희가 늘 그 믿음과 신앙에서 흔들리지 않고 견고히 서가는 부모가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긴, 글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 장]


1.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악한 그 성읍이 화를 입을 것이다.(유다에 대한 재앙)


  1) 명령과 교훈을 받지 않은 백성들, 여호와를 의뢰하지 않는 백성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않는 백성들

  2) 그 가운데 방백들은 포악하고, 재판관들은 저녁 이리처럼 빼앗고,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하며,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한다.(지도층 인사들의 죄악)

  3) 그 가운데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 도다.

-----------

  4) 하나님께서 그들의 망대를 파괴하고, 거리를 비게 하여 황폐하게 하였다. 

  5) 하나님께서 경고하시길,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였지만, 너의 거쳐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이들은 부지런히 자신들의 행위를 더럽게 하였다. 


2.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불러 모을 때까지 기다리라.


  1) 하나님이 일어나 벌할 때까지 너희는 하나님을 기다리라.

  2) 하나님의 모든 진노와 분노를 쏟으려고 여러 왕국들을 소집하여 모을 것이다. 하나님의 질투의 불이 소멸하리라.

------

  3)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라.

  4) 하나님이 흩은 자들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먼 곳)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바칠 것이다. 

  5) 그 날에 네가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 때에 내가 네 가운데서 교만한 자들을 제거하여 네가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라.

  6) 내가 곤곤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 것이다. 


  * 유다의 심판이 그들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분노에 따른 심판이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모든 잘못에 대한 형벌로서의 심판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그 가운데 참된 백성들을 구별하시기 위한 심판이다. 이들도 함께 심판을 받는 자리에 있고, 열방으로 흩어진다. 그런나 이 백성들은 그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고 회개하여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다시는 그와 같이 교만해지지 않는 자들이 된다. 정결하게 하시기 위한 과정이다. 정금처럼 만드시기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 이방인들이 유다를 침략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들의 의로우심 때문이 아니라 유다의 죄악 때문이요. 그들은 심판의 막대기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도구다. 그러나 그들 또한 자신들의 죄에 대한 형벌을 받는다. 다만 혼란스러운 것은 우리의 시대에는 그것이 정의가 뒤바뀐채타나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기다리면, 곧 다시 정돈되어 심판에 이를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3. 그 날에 부르게 될 시온의 노래


  1)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르라.

  2) 여호와께서 네 형벌을 제거하셨고, 네 원수를 쫓아냈다. 그러니 다시는 화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3)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지 말라.

  4) 너희 가운데 계시는 여호와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다. 너희를 즐거워하시는 분이시다.

  5) 하나님께서 절기로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는데 그것을 제거하며, 그들을 괴롭게 한 자를 다 벌하리라. 쫓겨난 자들을 불러 모으리라. 그래서 온 세상의 수욕을 받던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할 것이다.


  *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결하게 하는 과정을 거쳐 정금같이 나오게 할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며 고만했던 자들은 오히려 심판하심으로 그들을 부끄럽게 하실 것이다. 따라서 그 날은 최종 완성의 날이고 역전의 날이 된다. 수치의 짐이 벗겨지는 해방의 날이 된다. 대적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된다. 


[묵상 한 모금]


1. 유다의 죄로 인해 심판에 이른다. 그 중에 죄악이 크고 돌이키지 않는 자들은 심판을 받는다. 아니 모든 사람들이 함께 심판에 이른다. 그 중에 흩어지는 자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을 포함해서 심판을 받는 것이다. 유대인들 중 다수가 이로 인해 형벌을 받는 것이다. 


2. 그러나 그 중에 하나님의 백성(참 백성)은 심판으로 흩어진  땅에서 다시 돌아온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해방을 허락하시고 다시 불러모으신다. 그들은 흩어진 땅에서 비로소 자신의 잘못과 죄를 깨닫는다. 이들은 이와 같은 심판과 재난 속에소 오히려 자신이 정금처럼 단련되어지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릇된 생각들을 깨뜨리고 회개하여 주를 바라고 부르짖는다.


3.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을 대적했던 이방 세력들이 있다. 이들은 마치 자신들이 강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망시켰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들의 백성들을 그들에게 내어준다.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 때문이다. 하나님은 잠시 자기 백성들을 교훈하시기 위해 이방의 막대기를 사용하신 것임에도 불구하고(그래서 하박국이 오해를 한 것이고, 심지어 이방인들도 오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방인들은 자신들이 의롭게 그릇된 유대인들을 심판한다고 생각하여 교만하였다. 그러나 이제 때가되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했던 이방인들의 죄를 묻게 되고 그들을 심판하게 된다. 


4. 이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 운행 섭리를 우리는 잘 정돈하여 이해해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가지로 오해가 생기기 때문이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 장]


1.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다.


2. 하나님, 하나님의 큰 일을 속히 이루시되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2절)



  * 하박국은 1장과 2장의 분위기와 달리 갑자기 겸비해졌다. 악한 바벨론에 대해서 고소하다가 그 문제가 바벨론 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진노와 심판에서 긍휼과 자비쪽으로 돌아셨다. 심판이 우리의 대적을 향하는 것이라고 믿으면 왜 빨리 심판하지 않는가 따지지만, 심판이 나를 향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 일이 더디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지금 하박국의 심정이 그와 같은 심정이다. 


3.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면 얼마나 두려운가에 대한 묘사다.

  

  1) 역병이 그 앞에서 행하고, 불덩이가 그의 발밑에서 나오는 도다.

  2)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고, 그가 보신즉 여러 나라가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엎드려진다.

  3) 주께서 활을 쏘시고, 강들로 땅을 쪼개셨다. 

  4)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을 두르셨고 분을 내사 여러 나라를 밟으셧다. 


4.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모습


  1) 주께서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에 드러내셨다. 

  2) 대적들이 나를 흩으려 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다. 


  * 바벨론(대적)이 이스라엘을 멸하려 하겠지만,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심판하시여 그들을 멸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에 대한 말씀이다. 미래적인 표현으로 지금 이 상황이 이상하게 보이지만, 하나님의 승리와 그 백성의 승리로 마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5. 지금 현재의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하박국의 고백


  1) 대적자들이 우리를 처들어 오는 것으로 인해 입술이 떨리고, 내 몸이 떨었다. 

  2) 그래서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을지라도....

  3)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 왜? 위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으므로 인해서 현재의 두려움과 환난을 극복하며 오히려 소망 가우데 지날 수 있는 것이다. 


  4)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리로다. 


  * 여호와 그 한 분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상황을 뛰어넘는 즐거움과 기쁨을 고백한다. 하나님은 세상의 환경을 뛰어넘게 하시어(극복했다기 보다는 극복할 수 있는 신앙과 소망 중 인내를 주심으로)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셨기 때문이다. 



[묵상 한 모금]


1. 하박국의 태도 변화(우리도 마찬가지)


하박국 1,2장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바벨론의 죄악을 고발하고, 이 극악 무도한 죄인을 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로 의인(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시는 것이 의로운 일인지 하나님께 따집니다. 참고 말씀을 아끼시던 하나님은 결국 악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시는데, 그 악은 바벨론에게만 해당된 것은 아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이스라엘 역시 그와 같은 죄로부터 자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박국은 바벨론을 고발하다가 우리 자신도 같은 죄를 지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자 하박국은 돌연, 바벨론에 대한 고발을 멈추고 정신을 차린다. 자신이 고발한 것으로 자기 백성들이 심판을 받을 상황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하박국은 심판이 아닌,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고 기다리게 된다. 정죄하는 자리에서 긍휼을 구하는 자리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바리새인의 자리에서 세리와 죄인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우리는 누구의 자리에 있는가! 심판하는 자리에 있기 원한다면, 심판을 받을 것이고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자리에 있다면 긍휼과 자비를 얻게 될 것이다. 


2.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행하실 심판을 기대함


하박국의 초기 기대는 바벨론의 신속한 심판이었다. 바베론이 자신을 공격하기 전에 그리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긍휼과 자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하박국은 신속한 심판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그래서 지금이 아니라도, 어쩌면 우리가 바벨론에게 능욕을 당하고나서라도 하나님은 선악간에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하박국의 기도는 바뀐다. 오히려 찬양으로. 지금 당장 두렵고 떨리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하나님의 공의로움과 섭리) 그래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겠습니다.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범죄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3. 나를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현재의 상황(기쁨이든 고통이든)에 좌우되지 않는 곳으로 인도하시니 마치 사슴이 높은 곳을 다니듯 세상 사람들과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란, 만사형통한 사람이라기 보다는 어떤 장애물도 그의 신념과 믿음을 굽히게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왜 우리는 이런 사람을 키워내지 못했는가! 장애물을 극복할 때 얻게 되는 배움도 크지만, 장애물 앞에 멈춰서야만 할 때 배우는 교훈도 적지 않은데 말이다. 우리가 높은 곳을 다니지 못하고, 낮은 곳에 머물고 있으니... 우리를 낮게 보는 것 같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 장]


1. 하나님의 답변을 기다리는 하박국

  1) 내가 파수하는 곳에 서며 망루에 서서 나의 질문에 어떻게 답하실지를 기다림



2. 여호와의 답변


  1)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2)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다.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더딜지라도 지체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 종말이 더디게 오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지체되는 것은 아니다. 예정된 대로 거쳐야 할 과정을 거치면서 오는 것이다. 하나의 재판이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밝혀지는 것이) 상당히 긴 시간을 거쳐서 나오는 것이며, 작은 미스라도 없도록 하기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물론 인간의 법정에서는 그런 일이 적지 않지만)


  3) 악인들은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다.(4절) 그들은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기 욕심을 넓히며(스올처럼) 족한 줄을 모르고 여러 민족들을 볼로로 잡으나 그것이 그들의 짐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결국 노략당한 자 중 남은 자들이 갑자기 일어나 그를 괴롭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강포를 행했기 때문이다.  


  4)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4절)


  * 바벨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 방향은 이스라엘을 향하기도 한다. 그에 대한 이야기에서 너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는 듯 하다. 하박국은 그들의 악함을 지적하여 하나님께 항변하나, 점차 우리들의 악함이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하박국이 그들의 죄를 지적하여 심판을 요구하듯이, 하나님은 그들과 같은 죄를 짓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은근히 지적하신다. 마치 요 8장에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처럼. 


----------

  5) 네가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높은 데 깃들이려고 하지만 헛되다. 자기 사욕을 위해 부당한 이익을 취했고, 많은 민족을 멸한 것이 오히려 재앙을 부르게 되었다. 담의 돌들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한다.


  6) 피로 성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7) 왜냐하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 악을 행하는 자들이 힘을 기르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데 거하며 성을 쌓을 찌라도 그들은 재앙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 정의와 공의의 영광이 바다처럼 그 모든 악인들을 심판할 것이기 때문이다. 

----------

  8) 이웃에게 악을 행하는 자에게 화가 돌아갈 것이다. 이웃을 술 취하게 하는 너에게 더 큰 수치가 임하게 될 것이다. 네가 레바논에 행한 강포를 행한 것이 네게로 돌아오리라. 


  9) 새겨 만든 우상이 무슨 능력이 있느냐? 은과 금으로 입혔다고 한들, 도무지 생기가 없다. 

 

  10)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하라.


  * 우상은 은과 금으로 장식하고 뭔가 그럴듯 해보이지만, 우상에게는 아무런 생명이 없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다른다. 성전에 계셔서 우리의 일상과는 떨어져있고, 별로 상관없어 보이지만 그는 살아계시고, 온 땅에 충만하기 때문이다. 



[묵상 한 모금]


1. 하박국의 질문에 대해 하나님은 본격적인 답변을 하신다. 


하나님은 달려가면서도 볼 수 있도록 명백하게 새기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논리가 없는 분이 아니시다. 그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보다 크고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논리를 부정하거나 무시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누가보더라도 합리적인 논리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부터 하실 묵시의 내용을 명백하게 새기라고 말씀하신다. 


2.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기대하는 시간보다 더디게 나타난다. 하나님이 일을 느리게 하시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고 엄밀하시게 하기 때문이다. 한 사건의 재판이 속전속결로 끝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시간을 가지고 정확한 사실여부를 파악해서 명확하게 선악을 판단해 주어야 좋은 재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좋은 판사처럼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한 절차들을 밟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느린것처럼 여긴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면 우리에게 유리하게 결정을 빨리 내려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편이 아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의 편이시기 때문이다. 

헛된 시간은 없다. 하나님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을 하나씩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더디지만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게 될 것이다. 


3. 바벨론의 악함으로 시작된 하박국의 고소는 너희 유다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것 같다. 


하박국의 첫 시작은 바벨론의 악함에 대한 고소로 시작된다. 하박국은 바벨론의 악함에 대한 증거가 너무 충분하기 때문에 그들을 당장 심판하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서 당당하게 힐난한다. 하나님의 조심스러운 답변이 있었지만, 하박국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몰아붙인다.


그러자 하나님은 작심하고 답변하신다. 그리고 그 답변은 하박국을 만족시켜 주는 답변이라기 보다는 하박국으로 하여금 부끄럽게 만들어 버리는 답변이다. 즉, 하박국에 대해서 심판할 것이지만, 너희 유대인들도 하박국과 같은 죄를 짓고 있지 않느냐? 말씀하고 있는 것 같다. 하박국을 당장 죽여야 한다면, 너희 유대인들도 지금 죽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왜 같은 죄를 짓고 있으니까! 너희라고 해서 그 심판을 피해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지 않겠니. 


하나님은 오히려 외부의 악인에 대한 심판을 뒤로 미루시고, 자기 자식들부터 손보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이방 사람들은 네 자식이나 잘 키우라고 말하면 이것만큼 부끄러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의인들은 믿음으로 기다리라(악인들의 심판을) 하나님의 영광은 세상에 가득하고, 하나님은 성전에 살아계시니 온 땅은 잠잠하라(토 달지 말고)...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 장]


1. 파괴하는 자가 니느웨를 치기 위해서 올라왔다. 

 

  1) 힘을 다해서 성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라.

  2)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시되

- 니느웨의 멸망을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니느웨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니느웨의 심판은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3) 치열한 전쟁의 모습(병사들의 싸우는 모습, 병거들의 움직임들)을 묘사하면서, 결국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왕후는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감으로 시녀들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장면을 묘사한다. 



2. 하나님이 니느웨를 대적함으로 말미암은 니느웨의 형편. 


  1)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곳 같은 곳인데, 이제는 모두 도망하니 서라고 해도 돌아보는 자가 없다. 

  2) 그 무궁히도 많았던 은과 금은 노략당했다. 

  3) 니느웨가 완전히 공허하고 황폐하게 되었더니 주변 사람들이 이 모습에 놀라고 떠는 모습을 묘사한다. 

        -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힌다.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4) 전에는 니느웨과 숫사자와 암사자처럼 자신의 굴에 먹을 것을 많이 채워넣는 존재였는데, 이제는 전혀 그렇지 못함을 말한다. 니느웨가 더 이상 사자이지 못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 보인다. 


  5) 하나님께서 니느웨의 대적이 되시어 병거를 불사르고,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 니느웨가 이와 같이 멸망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대적하시고 심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한다. 




[묵상 한 모금]


1. 거대하고 강한 나라 앗수르(니느웨)라도 영원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나라가 홀연히 망하게 되어 완전한 약탈을 당하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이 땅에 영원한 나라는 없다. 영원히 강대한 나라도 없다. 세계 역사는 제국이라 하더라도 흥망성쇠가 있음을 보여준다. 앗수르는 젊은 사자처럼 강했고, 아무도 상대할 수 없을 만큼 잔혹했다. 그런데 그 나라도 결국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영원한 나라, 영원한 왕조, 영원한 왕조는 없다. 마지막을 생각해야 한다. 멸망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멸망을 받아들이고 대비해야 한다. 멸망하지 않겠다고 무리하게 잔혹하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자는 다음 권력에 의해서 더욱 비참한 종말을 기하게 될 것이다. 끝을 생각하지 않은 정권처럼, 무모한 정권도 없는 것이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2. 제국은 망함은 단순히 자연적 멸망은 아니다. 시대적 흐름만도 아니다. 역사적 숙명만으로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앗수르의 멸망에 대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직접 그들을 대적하셨다고 표현하고 있다. 자기 백성들을 괴롭힌 것에 대한 보복이며, 악한 행위에 대한 심판인 것이다. 영적인 면에서, 신학적인 면에서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너무 협소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개인적인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으로 만 생각해서도 안된다. 한 나라, 한 제국, 한 시대를 움직이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멸망이후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사라져버린게 아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영토를 넘어 온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드러나고 밝혀지게 된 것이다. 크신 하나님. 세상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우리 일상의 작은 일들에 대해서는 기도가 응답되든 그렇지 않든 좀 더 초연해 질 수 있다. 여전히 하나님의 크심에 대해서 존경과 경외를 드리면서 말이다. 


이 나라의 지금 모습을 보면, 사방이 막힌듯 답답하다. 출구가 없다. 비상구도 없는 것 같다. 때론 숨죽이고 살아있는 것이 오히려 최선이라는 생각도 든다.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 말이다. 미리 용쓰다가 나자빠지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하나님은 크시다. 하나님은 섭리하시고 운행하신다. 믿음은 소망가운데 기다림을 낳는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 장]


1. 끝날에 이르러서 될 일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다.


  1)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다.

  2) 많은 이방 민족들이 그 산으로 가며 이르기를 

   (1)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2)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다.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3)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다. 


  * 끝날에는 여호와의 전이 세상에 높이 서게 될 것이다. 그것은 여호와가 세상의 왕으로 명확하게 드러나게 될 것임을 말한다. 그래서 이방 민족들도 높이 들리신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될 것이다. 


  3) 여호와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신다. 먼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실 것이다. 

   (1) 무리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2)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다.

   (3) 그래서 이 나라와 저 나라가 서로 치지 않고 전쟁을 일삼지 않을 것이다. 

   (4) 각 사라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다. 두려워할 자가 없을 것이다. 


  * 하나님은 자신 앞에 모여든 열방의 백성들을 판결하실 것이다. 그로 인해 칼과 창같은 상대를 해하는 무기는 사라지고, 보습과 낫과 같은 생산적인 도구로 변화될 것이다. 자신의 수고한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자신의 것을 빼앗길 염려와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인 결단]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할 것이다.(5절)


------------


2. 여호와께서 이방 백성들의 박해에서 자기 백성들을 불러 모으심


  1) 그 날에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받게 한 자를 모을 것이고, 발을 저는 자는 남은 백성(선택된 백성)이 되게 하고, 멀리 쫓겨났던 자들이 강한 나라가 되게 할 것이다.

  2)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리라 

  3) 이전 권능 곧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올 것이다.


  * 미래에 있을 일을 말씀하신다. 지금은 절며, 쫓겨나며 환난을 받는 자며 나그네지만 하나님께서 이들을 남은 백성이 되게 하고 강한 나라가 되게 해서 돌아오게 하시며, 여호와가 영원히 다스리시는 나라가 되게 할 것이다. 


3. 지금 이스라엘의 형편

  1)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2)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라.

  3)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4)이제 많은 이방 사람들이 모여서 너를 치고 조롱할 것이다. 시온이 더럽게 되었다. 

  5) 그들은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함이다. 그의 계획을 깨닫지 못함이라. 


  * 이방 사람들은 지금 당장 자신들의 힘은 강하고, 이 백성들의 힘이 무력함으로 조롱하고 무시하여 짓밟고 있지만, 그 이후에 하실 하나님의 일을 이들은 알지 못한다. 이 과정이 아이를 낳기 위한 고통의 과정이라는 역사적 메시지를 읽지 못한다. 


  6) 결국, 여호와께서 곡식 단을 타작 마당에 모음같이 그들을 모을 것이다.(해산 후에 아이를 낳은 모습이다.) 그 때는 시온이 일어나 이방을 칠 것이고, 뿔과 굽으로 여러 백성을 쳐서 깨뜨릴 것이다. 

  7) 그들의 탈취물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며 그들의 재물을 온 땅의 주께 돌리리라. 



[묵상 한 구절]


1. 미가 선지자는 미래에 있을 일을 알리지만 현재를 무시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래의 일을 밝히는 것을 현재의 의미를 밝히는데 목적을 둔다. 따라서 선지서를 읽을 때, 막연한 미래적 성취에만 도취되어 있는 것은 선지자의 의도를 잘못 파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지자는 현재적인 우리의 삶을 위해 미래를 말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에 대한 그림은 명확하다. 그들이 믿고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산 위에 우뚝 서게 될 것고, 이방 백성들은 그 하나님 앞에 판결을 받기 위해 모여들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재판관이 되어 선악간에 분명한 판단을 내리시면, 이 땅은 모든 시시비비가 사라지고(하나님이 최종 재판관이시기 때문에) 이 땅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중심으로 하는 화평의 나라가 오는 것이다. 


3. 그러나 지금은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기 위해 고통하는 과정과 같은 시간이다. 해산의 고통이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없듯이... 지금 하나님의 백성이 비참해지고, 무력해지고, 환난가운데 있는 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아이를 낳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즉, 지금 받은(혹은 이제 곧 받게 될) 고통스러운 시간은 여인이 아이를 낳기 위해 고통을 거쳐가야 하는 것과 같은 시간이다.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기다린다면 반드시 아이를 낳을 것이다. 하나님은 흩어져 있던 자기 백성들을 불러모아, 강한 나라가 되게 할 것이다. 


4. 선지자란, 미래를 보는 안목을 가진자다. 그러나 점쟁이와는 다르다. 점쟁이는 미래의 결과를 바꾸기 위해 어떤 빠르고 쉬운 처방을 쓰는 것이지만, 선지자는 미래를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밝힘으로 현재의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견디어 내도록(낙심하지 않도록/절망하지 않도록) 하고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다운 품위를 잃지 않도록 견지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 장]


1. 유다의 왕 시드기야 왕 열째 해, 곧 느부갓네살 열여덟째 해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셨다. 


  * 유다가 시드기야 11년에 완전한 멸망을 하게 되니, 시드기야 10년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로 코 앞에 두고 있는 풍전등화의 상황이다. 


2. 그 때에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혀있었다. 왜내하면 예레미야가 한 메시지 때문이었다. 메시지 내용은


  1) 예루살렘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라.

  2)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 하나님이 돌보실 때까지 거기 있으리라. 

  3) 바벨론과 싸워도 이기지 못하리라 하기에 시드기야가 이것을 문제삼아 가둠.


  * 풍전등화의 상황 속에서 예레미야는 궁전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다. 왜냐하면 갈대아에 의해서 유다가 멸망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시드기야까지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이다. 


3. 여호와의 말씀에 예레미야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아나돗에 있는 자신의 밭을 사라고 요청할 것을 말씀해 주셨고, 예레미야가 기업 무를 자라는 이유를 댈 것이라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그와 같은 일이 있으므로 예레미야가 그 밭을 샀다. 


4. 그 밭에 대한 매매 계약서를 작성해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봉인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두가지를 바룩을 통해 토기에 담아 보관하도록 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다시 집과 밭을 사게 될 것이라 하셨다. 


  *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으면서도 숙부의 아들이 제안한 밭을 구입하게 되는 사건은 하나님의 지시였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멸망을 앞둔 나라의 땅을 매입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5. 예레미야의 눈물어린 기도

  1)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당신은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십니다. 천만인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죄악에 대해서는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니 .. 만군의 여호와시다. 

  2) 주께서 강한 손과 편 팔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셨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을 주셨다. 그러나 이 백성들이 거기에 들어가서 주의 목소리에 청종하지 못했음으로 이 모든 재앙을 내리셨다. 

  3) 지금 우리의 처지가 그 재앙입니다. 

  4) 주님이 내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지만,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겨진 바 되었습니다.


  * 예레미야는 돌이킬 수 없는 자기 백성의 운명으로 인해 고통스러웠다. 그 모든 재앙의 원인은 그들의 죄로 인한 것임을 알기에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없다. 다만 소망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밭을 사라고 했지만 이 땅은 이미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간 상태라는 것이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하는 기도다. 예레미야라고 항상 모든 희망을 본 것은 아니다. 그도 보지 못한 <희망> 때문에 절망하고 애통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6.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1)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가 할 수 없는일이 있겠느냐?

  2) 이 성을 갈대아인에게 줄 것이다. 그들이 성에 불을 지르고, 우상을 만들어 나를 격노케 한 집들을 모두 불태울 것이다. 사실 이 성이 건설될 때부터 오늘가지 나의 노여움과 분을 일으켰나니 내가  내 앞에서 그것을 옮기려 한다.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 그들의 왕들과 그의 고관들이 악을 행하였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우상을 섬기며 자신의 자녀들을 몰렉 앞으로 지나가게 했다. 

  3)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하게 한 것은 내가 명령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

  ----------------

  4) 그러나 하나님께서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쫓아 보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다시 이곳으로 모여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

  5)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6)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않으리라.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어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7) 내가 이 백성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린 것 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 

  8) 네가 정식으로 밭을 사고 증서를 기록하여 봉인하고 증인을 세우리니 내가 그들을 돌아오게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이 크지만, 그만큼 하나님께서 복을 줄 것임을 약속하신다. 이제 복을 주기 위해 그들을 떠나지 않을 것이고, 마음과 정성을 다해 그 땅에 심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반드시 그들을 돌아오게 할 것을 의지를 담아 약속하신다.



[묵상 한 모금]


1. 하나님은 멸망을 코앞에 둔 역사적 상황에서, 시위대 뜰에 갇혀있는 예레미야에게 친척의 밭을 살 것을 요청하시면서 그것을 통해 유다의 회복을 약속하셨다. 


2. 그러나 예레미야에게 그런 행동은 의미없는 행동처럼 여겨졌다. 조상들의 죄가 너무크고, 완악함으로 돌이키지 않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돌이킬 기회조차 없음을 예레미야는 누구보다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힘들고 괴로웠다.


3. 그러나 예레미야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지금 유다를 바벨론을 통해서 멸망시키는 이유와 그 이후 하나님 유다에게 주신 큰 복에 대한 그림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3-1. 유다의 멸망은 단순하게 유다의 잘못에 대한 심판 뿐 아니라, 유다의 환경 전체를 바꾸는 작업이었다. 모든 우상들을 제거하는 과정이었고, 유다 백성들의 의식속에 찌꺼기처럼 남아있는 불결을 제거하는 시간이었다. 이것은 심판과는 별개로 다시 유다 백성들을 돌아오게 했을 때, 다시 죄악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정지작업인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것을 보지 못했다. 


  3-2 예레미야가 보지 못한 또 하나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내시려고 하는 것이었다. 전에는 유다 백성들이 자기 열심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찾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이 백성들을 찾아가는, 그래서 그과 함께 있고 떠나지 않는 방식으로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40절) 그 안에 경건한 마음을 두어 그들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더 큰 복을 주기 위함임을 말하는 것이다. 재앙이 큰 것만큼 하나님이 주시고자 한 복을 모두 주시겠다는 것이다.(41-42절)


4.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계획을 알지 못한다. 예레미야조차도 말이다. 예레미야가 임박한 멸망의 상황에 대해서는 예언하여 전했고 그 이후의 회복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속 마음까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래서 결과를 알고, 회복을 알면서도 그 안에 절망과 슬픔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그 의미를 밝히시고, 그 유익을 알려주셨다. 성도의 재앙은 우리의 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새로워지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수준으로 자라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5.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최초의 인간 아담의 타락은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만은 아니다. 물론 아담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로 인한 고통이 적지 않지만, 그것을 통해서 뭔가 새롭고 풍성한 일이 진행되었다는 것도 우리는 눈치챌 수 있어야 한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장]


1.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2. 내가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 지금 이 내용이 문서로 남겨둘만큼 중요하며 확실한 내용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더불어 이렇게 적힌 하나님의 말씀은 바벨론에 있는 유대 백성들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고, 읽혀질 수 있는 것이다. 


3.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오게 할 날이 올 것이다. 내가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2)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남자들이 해산하는 여인처럼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하게 될 것이다. 

  3) 그러나 또한 그날에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을 것이다.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 버리고 포박을 끊으리라. 

  4) 다시는 이방인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그들을 위하여 세울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 

  5) 너를 먼 곳에서 구원하고, 네 자손이 잡혀가 있는 곳에서 구원하리라. 

  6) 그리고 너를 흩었던 그 모든 이방을 내가 멸망시키리라. 

  7)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 



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다. 

  1) 유다의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부상은 중하다. 약도 없고 처방도 없다. 

  2) 너를 사랑하던 자가 너를 잊은 것은 네 죄가 많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잔인한 징계를 내린 것이다. 

  3) 네가 네 상처와 고통 때문에 부르짖는데, 그것은 네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에게 내린 것 것이다. 

  4) 그런데, 너의 것을 빼앗고 탈취한 자들에 대해서 내가 노략하고 탈취할 것이다.

  5) 그리고 네 상처에 새 살이 나게 할 것이다. 


  * 하나님은 유다가 당하고 있는 고통이 그들이 하나님에게 잘못하고 죄를 많이 지었음으로 당하게 된 것임을 지적한다. 그들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데, 그 고통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유다의 죄와 기도의 모순됨을 말함)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 사랑, 자기 백성을 혼내시고 책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탈취하고 노략한 자들에게 대해서는 심판하실 것을 명백히 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죄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가 늘 의로운 정체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악한 도구를 자기 백성을 위해서 그들의 악을 허용하기도 하신다. 그러나 그들의 죄는 따지신다. 


5. 하나님의 말씀

  1)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2)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출될 것이요 그 보루는 규정에 따라 사람이 살게 되리라. 

  3) 그들의 수가 줄지 아니하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해지지 아니하리라. 

  4) 그들은 예전과 같고,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그를 압박하는 모든 사람은 내가 다 벌하리라. 

  5) 그 영도자를 너희 중에서 나오게 할 것이다. 

  6)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 하나님께서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고 성읍을 회복하게 할 것, 다시 백성들을 번성케 하사 줄어들지 않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들 중에 영도자도 나올 것이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임을 약속하신다. 


6. 여호와의 노여움은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 위에 임하고, 진노는 그 마음의 뜻 한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 돌이키지 아니한다. 너희가 끝날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 하나님의 언약도 신실하지만,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기로 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도 매우 신실하심을 보여준다. 마음에 뜻한바를 이루기까지 돌이키지 아니한다. 여자 한을 품으면 5-6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다. 하나님은 참, 무섭다. 


  *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무서우심을 끝날에야 깨닫게 되니, 안타깝다. 깨닫게 된 그 순간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말과 심판은 불현듯 올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보다. 불현듯이란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묵상 한모금]


내용을 정리해 보면


1. 유다가 지금 환난과 곤경 중에 있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2.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를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들어서 멸망시키시고 수치를 당하게 하셨다. 

3.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에게 영원한 멸망을 예정하신 것은 아니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수치를 회복시키시며 다시 약속의 땅에서 살게 하실 것이다. 

4. 그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수탈하고 노략했던 자들에게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심판을 하실 것이다. 그들이 죄를 징벌하는 도구가 되었다고 해서, 의로운 자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보다는 의로운 자를 해롭게 했으니, 그것에 대한 벌도 받아야 할 형편이다. 하나님은 바벨론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기준으로 심판하실 것임을 말씀하신다. 

5. 그날은 불현듯 다가올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약속대로 구원을 받고 회복될 것이지만,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 자들에게 대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완전한 심판에 이르게 될 것이다. 

6. 그러나 그것을 깨닫는 것은 그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다. 따라서 그것을 깨닫고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전에 먼저 하나님의 품으로 하나님의 편에 서는 자만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