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plash-logoRob Mulally

Photo by Rob Mulally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

30절.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절.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절.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33절.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34절.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은 다른 비유를 들어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시고자 했다.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마치 겨자씨 한 알이 땅에 심길 때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지에 공중의 새들이 그 나무 그늘에 깃들일 만큼 그 작은 씨가 성장하듯이 하나님 나라는 그런 특징을 가진다. 

2.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셨다. 많은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는데 가능하면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해가 부족할 경우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해 주셨다. 


[질문하기]

1. 겨자씨 비유를 통해서 드러내시고자 한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처럼 매우 작은 씨처럼 이 땅에 심겨지듯이 왔다. 

  2) 그러나 겨자씨가 자라면 꽤 큰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이듯 하나님의 나라도 이 땅에 매우 작은 모습으로 왔지만 훗날 큰 나무가 되고 그 그늘에서 안식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3) 하나님의 나라는 크고 강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지 않는다. 그러나 작고 약한 모습이라고 해서 없어지고 무력해지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크고 강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

2.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비유라는 의미인가? 

  1) 그렇지 않다. 예수님의 말씀 중 이 땅에 없는 개념을 설명하시기 위해 비유를 많이 사용하시기는 하셨지만 모든 말씀이 다 비유로만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또한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시면서 다양한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시지만 그것은 소통을 정확하고 예리하게 하기 위함이지 모호하고 난해하게 하려고 하신 것은 아니다.(아무리 잘 하시려고 해도 상대가 들을 귀가 없어 듣지 못하는 경우를 안타까워 하셨을 뿐) 

  2) 위의 구절은 비유를 많이 말씀하셨다 정도로 이해하든지,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비유로 말씀하실 수 밖에 없었다(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이 땅의 개념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정도로 이해해야지 정확한 해석이라 볼 수 있다. 겨자씨가 모든 씨보다 작다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매우 작다' 정도로 이해해야지, 이 땅에 있는 모든 씨보다 절대적으로 작다고 이해하면 예수님의 말씀에 오류가 생길 수 있다.(더 작은 씨도 있을테니)


[묵상하기]

1. 하나님 나라는 매우 작고 무력하게 이 땅에 심겨진다. 예수님도 이 땅에 무력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다. 탄생과정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숨어다니셔야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서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왔으나 너무 초라하고 불안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외면하고 세상의 나라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그것이 지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땅 속에서 죽은듯 지내다, 작은 싹을 틔우고, 점차 이삭이 되고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게 된다.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특징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현재의 씨만 봐서는 곧 세상의 나라가 더 신뢰할만 하게 보인다. 그래서 훗날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2. 예수님께서 비유를 많이 하셨지만, 비유의 목적은 숨기고 감추려는 것에 있지 않다. 알수 없는 개념, 낯선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설명하는것이 비유이기 때문이고 하나님 나라는 이 땅의 나라와는 다른 영역이기에 비유가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유의 목적은 분명하다. 드러내시는 것이고 밝히시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것도 마지막 때에 가장 명확한 방법(성육신과 십자가)으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신 것이다. 

성경에 너희는 알수없는 다른 의미가 있고, 그것을 자신들만이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성경에 기본이 안된 사람들이다. 믿지 마라. 쫓지 말고 배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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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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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과 함께 하는 교리문답


문2]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답] 하나님은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지으신 분입니다.


[암송구절](시편 86:8-10)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만이 하나님이시니이다.(시편 86:8-10)


[핵심덕목] 경외

[문답의 목적]

 1. 무신론 혹은 형식적 기독교인들의 무신론적 세계관에 문제 제기를 한다.

 2. 하나님을 알기 위해 성경을 알아야 하며 그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배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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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가이드>

1. 인도자가 지난 문1]에 대한 복습을 한다. 문1]을 읽으면 그 답]을 하도록 한다.(2번 천천히)

2. 복습을 마치면 인도자가 문2]를 읽으면, 답]을 전체적으로 같이 한다.(2회)

- 인도자가 문2]를 물으면, 개별적으로 한 명씩 답]을 하도록 하여 자연스럽게 숙지하도록 한다.

3. 암송구절을 함께 한다. 젅체가 함께 두번 반복해서 암송하고 개별적으로 한 명씩 돌아가면서 암송하도록 한다. 마지막은 함께 암송하고 쪽지에 기록해서 사회자에게 내도록 한다.(쪽지 준비)

4. 인도자가 문2]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한다. 

  1) '경외'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경외와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이 있으면 나누도록 한다. 


  2) 신의 존재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한다고 보는가?(물어보고 나오는 답변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해 주는 정도로 하자)

—————-(참고 내용)

   (1) 무신론: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 철저한 무신론자들은 많지 않다.

   (2) 불가지론: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3) 자신의 바람을 투영시키는 신을 기대함: 

—————-

  3)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정리] 초월자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참고 내용)

   (1) 일반적인 자서전: 자신을 기록한 사람에 대해서 스스로가 알리기 위해서 쓰는 글

   (2) 하나님의 자서전으로서 성경: 성경은 하나님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시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사실을 알수 있다. 


 4) 다음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설명 중 잘 모르는게 있다면 표시하라. 이 중 자신에게 가장 의미있는 성품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1-2개)

영원하심, 의로우심, 전지하심, 거룩하심, 은혜로우심, 무한하심, 전지하심, 지혜로우심, 신실하심, 전능하심, 편재하심, 불변하심, 자족하심, 자비하심, 불가해하심, 지치지않으심, 인내하심, 승리하심.

———————


 5) 만약 하나님이 온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시고, 선함과 사랑으로 그 피조세계를 운영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 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은 무엇이 되어야할까? (경외)

- 성도의 삶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주는 삶이어야 한다. 상식적인 행동을 넘어 그렇게 까지 할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을 행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경외에 준하는 성도들의 삶이다. 


5. 다시한번 문2]를 인도자가 읽으면, 전체가 답]을 한다.(2회)

6. 인도자 혹은 인도자가 사전에 지정한 구성원이 오늘 배운 내용을 정리하고 결단하는 기도로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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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순금 등잔대와 두 감람나무의 환상


  1) 천사가 와서 잠자고 있던 스가랴를 깨워서 보여주시는 장면

  2) 순금 등잔대가 보이고, 그 위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그 기름 그릇 위에는 일곱 등잔이있고, 또한 일곱 등잔을 위한 일곱 관이 있는 것을 보았다. 

  3) 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등잔대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등잔대 왼쪽에 있었다. 


  * 이 등잔대 환상은 마치 두 감람나무가 등잔의 기름을 공급해 주는 공급원으로, 그것을 통해 등잔이 밝혀지며 그 빛이 영광스럽다는 것을 관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은 환상이다. 

-----

  4) 스가랴는 이 환상이 무슨 의미인가를 묻는다. 

  5) 천사가 그 의미를 답한다. 

   (1)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신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않고, 능력으로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것이다. 

   (2) 큰 산일지라도 스룹바벨 앞에서는 평지가 될 것이다. 

   (3) 네가 머릿돌을 놓을 때,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 것임을 알리시겠다.

 

  * 이와같이 성전을 재건하고 성소 안에 등잔대 안에 꺼지지 않는 등불(감람나무에서 공급되는 기름으로 인해)이 들어서게 될 것인데,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며, 온전한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

   (4)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이 일을 마치리라. 

   (5)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지 말라.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다. 

   (6) 이 일곱은 온 세상을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 등대잔에 일곱개의 불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두루 살피시는 그 분의 눈을 의미한다. 즉, 모든 일을 밝히 보시는 하나님이 온 세상을 감찰하신다는 것이다. 


  6) 스가랴가 천사에게 묻는 다. 

   (1) 등잔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입니까?(두번 물으심)

   (2)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고 천사가 물으심

   (3) 두 감람나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 


  * 이 두 기름부음 받은 자가 누구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누구인가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시키며 동시에 기다리고 있는 분(메시야)가 바로 지금 우리 삶의 현장으로 오시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묵상 한 모금]


1. 환상을 보여주시고 스가랴가 무슨 뜻인지 몰라 물으면, 그 뜻이 무엇인지를 모르느냐? 고 다시 물으시는 것이 반복된다.(5절, 13절) 이것은 이 환상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대감을 고취시키고, 기대하게 만드는 방식이 아닌가 싶다. 


  1) 방식1: 이 의미는 이런 거란다... 아, 네.

  2) 방식2: 이 의미가 무엇입니까? 도대체? // 이 의미를 모른다 말야? // 네, 모른다니까요? //그럼 알려줄께...


2. 사용되고 있는 이미지는 등잔대와 감람나무다. 등잔대는 불을 밝히기 위한 것이고, 그것은 성전의 성소에 있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즉 다시 성전이 재건되고 그 안에 마땅히 회복되어야 할 성소에서 등잔대에 불이 밝혀져있는 모습은 성전 재건의 완성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서 일곱 등잔의 불은 온 세상을 두루 다니는 하나님의 눈(10절)이라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지금도 온 세상을 두루 감찰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감람나무는 기름의 근원을 말하며, 그 근원이 등잔대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기름이 끊어지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더불어 기름 부음 받은 자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음 메시야의 도래를 소망하는데 까지 이르게 된다. 


3. 기대한대로 스가랴는 처음부터 계속해서 완성될 성전의 모습을 통해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격려하고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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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15일 신입간사 훈련 중





강의안.


성경해석 2013. 10. 14. 2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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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정리]
1. 신학의 원리는 계시만이어야 한다. 

2. 그런데 신학에 이성이 개입되는 이유는, 계시는 이성이 없으면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계시가 이성에 감광되기 위해서는 초월적인 내용이 우리의 이성에 포착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필요.

4.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이성이 그것을 포착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성으로 포착할 수 있는것만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우를 범한다.

5.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의 계시가 이미 그 초월된 내용을 이성에 인식시키기 위해 어떤 지혜와 능력을 포함하고 나타나는 것이기에 이성이 그것을 감지하는 것이다. 


[이번주 내용]

1. 이성의 특징인 합리화

  1) 초월된 내용이 초월의 방식으로 오면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인식 가능한 가시화(합리화)가 필요하다.

    예) 사랑이라는 추상명사를 이해하려면, 추상 명사는 가시적이기 보다는 개념적이기 때문에 어렵다.

     - 우리는 사랑을 말로 배웠습니까? 동영상으로 배웠습니까? 

- 사랑은 추울 때 부모가 자식에게 옷을 벗어주는 장면(사랑=옷을 벗어 주는 것 혹은 남을 위한 것?)


        설리반이 헬렌 켈러를 가르칠 때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이 추상명사. 왜 개념의 가시화된 형태 조차도 인식할 수 있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2. 이성의 합리성이 불러 일으키는 오해들

  1) 배(이성)가 옥수수(초월적인 내용을 인식가능한 형태로 구체화해서 하나님이 계시하신 내용)를 만들어 낸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됨

  2) 세상 사람들 중 기독교에 호감을 가지게 되는 이유: 기독교는 윤리 도덕적으로 착하다는 보기 때문에

   (1) 그러나 실상 기독교는 착함이나 선을 추구하는 종교는 아니다.

   (2) 하나님을 본받는 것을 추구하는 종교인데,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니까 그것을 좇아서 우리도 선을 추구한다. 

   (3) 그럼, 하나님을 닯자(본받자)라고만 하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니까, 선하다 의롭다 이렇게 규정을 하게 되고 그것을 좇도록 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선과 의를 절대 가치로 선과 의를 좇는다.(옷을 벗어주는게 사랑으로 이해하는 것이 잘못된 이해인 것과 마찬가지로)

   (4) 그렇게 하고는 자신들이 신학에서 선하다와 의롭다는 가치를 발견했다고(자기가 생산했다고) 생각한다. 


3. 신신학의 문제점

  이성은 운반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초월의 내용이 수송되기 위해 어떤 형태를 취한 것을 '이런 형태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이해하고 해석해야 되는데, " 아, 이거구나"라고 자연계에서 우리가 경험한 어떤 비슷한 것으로 내용물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 바로 신신학이다. 그래서 신신학은 결정적으로 신학의 원리를 계시가 아니라 이성으로 본다. 

 

  예1) 왜 기독교가 가장 우수한 종교인가? 고상한 인류의 가치를 가장 그를 듯하게 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1) 인간에게 선을 행하라, 의를 해하라, 긍휼을 베풀어라, 이웃을 사랑해라... 를 가르치는데 탁월하다. 

     (2) 보통 인간은 중요한 가치를 늦게서야 깨닫게 되는데, 기독교는 중요한 가치를 일찌감치 습득할 수 있도록 했다. 

     (3) 기독교의 상벌 개념은 유치하지 않고 실재같이 해놨다는 것.. 그만큼 정교화된 종교라는 것이다. 


  예2)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1) 주께서 실재로 살아나셨다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난 것과 방불한 효과를 가지게 되었다는 주장을 한다. 

     (2) 제자들이 변화되어 사랑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은 주님의 살아나심과 같은 것이 아닌가!라고 이해함.


4. 하나님의 초월적인 내용은 다양한 방식으로 계시 된다.(그래서 해석이 필요하다.)

   사랑이라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옷을 벗어서 입혀주는 것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옷을 벗어 입혀준 형태(인식 가능한 모습)와 그 형태 속에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해석해 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옷을 벗어서 입혀주는 형식으로도 나타나지만, 매를 들어 때리는 것으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로서 계시는 해석되어야 한다.  


5. 정리해서 말하면

  1) 계시적 사고(계시의존 사색, 개방 체계)

계시된 내용을 일단 내용으로 감수를 해서, 이성의 방법으로 합리성을 추구하며 인식을 하고, 논리를 전개해 나가기는 하지만 그 내용을 이해해 가는데 상호 모순 되거나 충돌해 보여도 내용을 가감하지 않으며 성경이 가라는 떼까지 가고 가지 말라고 하는데까지 안 가는 것을 말한다. 

  2) 이성적 사고(폐쇄성 체계)

이성적 사고는 이성이 갖는 합리성을 위해서라면 내용을 가감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것이 계시된 내용을 딴 것으로 대치할 수 있고, 계시된 내용을 변질시킬 수 있다. 이성이 제단할 권한이 있다.(왜 이성이 생산해 낸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6. 우리 인간은 태생적으로 이성에게 주도권을 주려고 한다. 

  예 1) 하나님이 계실 것이냐? 아니면 안 계실 것이냐? -> 있을지도 모른다.(중간이 아니라 없다쪽에 있는 것)

  예 2) 우주 기원의 대표적 이론>  진화론과 창조론 (창조론이라는 경험은 아예 없고, 진화론적 경험 밖에 없다.)

  예 3) 고대 서구 사상,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헬레니즘은 모든 사실은 논증이 가능하다.(과학주의적 정신)

  예 4) 예수를 믿느니 내 주먹을 믿어라> 

  예 5) 중세시대 기독교인의 헤브라이즘을 헬레니즘에 접목 시킨, 스콜라 철학> 진리와 절대를 객관적으로 증명함.

        : 신앙인들에게는 그렇게 해도 결론이 하나님과 절대진리로 가게 된다. 그러나 그 뒤를 따라오는 사람은 전혀 다른 길로 갈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신이 없다는 것으로 가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세 시대가 와해되고 근대와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신신학이 대두되는 것이다.(약도는 자기 중심으로 그리면, 찾아 오는 사람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될 수 있다.)


7. 서구 신학의 문제(미국 신학의 흐름)

  1) 미국은 신앙을 위해서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에, 신학을 위해서 대학을 만들었다. 

  2) 그런데 신학을 시키려고 보니까 기초 학문이 필요하더라... 그래서 교양학부를 만들게 되었다. 

  3) 먼저 학문을 시키고, 신학으로 신앙의 깊이를 풍성하게 하려고 신학교를 만들었는데 학문의 방법이 과학이었다. 

  4) 그런데 학문의 방법인 과학이 신학의 계시된 내용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5) 그래서 계시된 내용들을 잘라내고 그 자리에 같은 개념의 세상적인 내용으로 메꾸기(재해석) 시작한다. 

    예) 하바드 -> 예일 -> 프린스톤 -> 웨스트민스터


8. 이성에 역할과 한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너무 근본주의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너무 자유주의자처럼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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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신학이란 이성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에 이성이 동원되는 것은 이성이 신학의 내용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이성을 통해서만 신적 계시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계시의 내용을 우리에게 인식 가능한 형태(합리적으로 인식 가능한 형태)로 드러내신다.(그래야 우리가 인식할 수 있기에) 그러나 사람의 이성은 보통 그것을 체계화하려는 경향, 폐쇄적 경향성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실 때,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계시하시면서도 초월적인 내용들을 보이심(시공간적 초월, 기적과 같은)으로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닫힌 시스템으로가 아니라, 열린 시스템으로 하도록 하신다. 



[내용 정리]


1. 지난시간: 계시란 하나님의 자기 진열이 아니라,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하시고 주도권을 갖는 것이 계시다. 


  예 1) 하박국의 질문: 왜 의인이 불의한 자들에게 횡포를 당하는데 가만히 계십니까? 

           하나님의 답변: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의 답변을 주시지 않는다)

  예 2) 시편 96편. 하나님에 대한 증명은 없고,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송축을 다룬 내용

           * 작자가 불분명: 선지자나 제사장 혹은 기름부음 받은 자가 썼다면, 저절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택되어 성경으로 구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편은 저자가 누군지 모르는데, 성경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그 내용이 정경에 포함될 만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채택된 것이다. 초월적이기 형태의 모습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성경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쳐서 확인되었기 때문에 포함된 것이다.(간적적이고 완곡한 방식으로 자기를 증명하신다.)


2. 오늘 본론: 신학이 하나님의 계시로만 되는 것인가 아니면 이성까지 포함되어야 하는가? 


  1) 신학의 방법론은 이성이 아니라, 계시일 수 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 확인했다. 

  2) 이성은 분명히 신학의 주제와 내용에서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확인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시와 이성의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것은 계시는 그 첫번째 목적이 초월적인 것을 인간에게 알리려는 것인데, 인간이 그것을 인식하는 방법과 기능이 이성적이지 않으면 안되는 제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4) 이 말은 인간은 하나의 내용을 인식하고 이해하는데 합리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합리적인 방식으로 계시되어야 만 인간은 인식하게 된다는 것)


   (1) 교리와 사상의 차이를 생각하면서 폐쇄된 체계를 이해해 보자.

   (2) 교리는 우리가 신앙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체계화하고 지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사상은 한 개인이 자기가 믿는 것을 자기의 지적체계, 자기의 이해의 어떤 인식체계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는데 서로 같을 수도 있고, 서로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 

   (3) 개인의 신앙 체계인 사상은 그 사람이 중요하다고 여긴 것을 더욱 부각시키는 개인적인 경험과 신앙의 칼라에 따라서 재편집된 모양을 가진다. (진보적이다 혹은 보수적이다)

      예]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서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느냐에 따라 사상이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4) 그래서 인간이 가지는 정신 체계는 언제나 단원론적이요, 페쇄된 체계가 되기 쉽다.(닫힌 시스템)

      예]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고 본 것을 더욱 확대하는 경향으로 해석하려고 한다.(경험과 환경)

      예]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의지에 대해서도 한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해석하려고 할 때, 폐쇄성 체계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지고만 성경 전체를 확대 해석하면 알미니안주의가 되고, 하나님의 주권만을 이야기하면 칼빈주의가 된다. 서로 문호를 개방하지 않으면 한 부분으로 확대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5) 인간은 합리석을 추구하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예) 돈을 잃어 버렸을 경우

     예) 방언 문제, 구원의 확신 문제_단원론적인 체계로만 가지고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들.


3. 왜 자꾸 계시의 문제에 이성이 끼어들게 되는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1) 이성이 없이는 계시가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이라는 것이 마치 내용인것처럼 끼어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내용인 것처럼 자신을 주장하게 된다. 

  2) 하나님은 초월적인 어떤 내용을 인간에게 알게 하시려 할 때, 이성이라는 틀로 이해 가능한 형식을 취하셔서 전해 주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이성의 틀에 맞춰서 보여 주셨기 때문에, 이성의 틀에서 벗어난  내용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내용이 아니라고 역으로 주장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3) 그래서 자신의 이성적 합리성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체계로 변형시키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렇다고 받은 것을 그대로 전하면 될 것이 아니냐? 말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그렇게 할 수없다. 우리가 받는 것이 물건이 아니라, 사상과 내용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해해야 하고 해석해야만 한다. 그래야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예] 모션으로 단어 맞추기 게임과는 다르다.


  4)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해야만 한다.(이성을 통하여 계시된 내용을 가공하는 것이 필연적인데, 잘 해야한다.) 그리고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이성이 가지는 한계, 합리성과 폐쇄성과 단원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개방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5) 개방성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주권을 모두 인정)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_ <계시의존 사색>이라고 말한다. 


4. 인간의 이성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으며,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다. 

  1) 순수이성비판

  2) 성경은 활자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의 글자가 아닌 우리의 문자로. 우리의 활자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찾아 내야 한다. 이것이 해석이다. 그러나 이것은 학문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성령의 조명 가운데서 이루어 져야 한다 

  3) 우리의 이성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데, 하나님은 초월적인 존재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신을 펼쳐 보이심으로 자신이 초월자라는 것을 나타내신다. 그래서 성경 기적은 두 가지 유형을 갖는다. 하나는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다. (예, 죽은 자를 살리심, 바다 위를 걸으심, 홍해를 가르심, 문둥병을 고치심(공간 초월) // 예언(시간 초월)) 이런 방식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개방 체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하신다. 

  4) 성경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해 졌다.그러나 그 내용들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기적이 점철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로 오시고,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시는 것으로 오신다. 

  5) 이성은 계시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면서, 그것을 가공(제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5. 신학을 하다보면 가장 무서운 것

  1) 근본주의: 해석을 금하는 것. 이성은 운반만 해라. 나타난 대로만 보자고 말하는 것이다.(편협하게 됨) A로 나타난 것은 A로만 나타나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함. 


  2) 자유주의: 이성이 받아들일 것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을 판단해서 선택권을 가지려고 함. 이성에 합하지 않은 내용들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받아들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어 버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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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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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에 대한 내용을 파워포인트로 정리한 내용



평신도 신학입문1-계시.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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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시 13장] 삼손의 수태고지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이삭의 수태고지, 에서와 야곱의 수태고지... 세례 요한의 수태고지, 예수의 수태고지로 이어지는 구속사적인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삼손의 이야기는 구속사와 연관된 메시지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야기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다시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40년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셨다. 

2.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가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임신하지 못하였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심.

  1)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2)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는 태에서부터 나면서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다.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리라.

3. 여인은 이 사실을 남편에게 그대로 고했다. 자신에게 나타나시 분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4. 남편 마노아는 기도하여 아내에게 보내셨던 사람을 다시 보내어 우리가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가르쳐 달라고 기도했다. 

5.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여인이 밭에 있을 때에 다시 하나님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났다. 여인은 급히 남편에게 알리고 남편은 달려와 여호와의 사자에게 전에 왔던 분인가 묻는다. 여호와의 사자는 맞다고 답한다. 

6. 마노아가 이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합니까라고 묻자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에게 말한다. 

  1) 네 아내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7.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청하여 염소 새끼를 대접하려고 하니, 여호와의 사자는 거절하고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마노아는 여호와의 사자인줄 몰랐다.)

8.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이름을 묻자 그는 기묘자라고 말한다.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드릴 때 제단 불꽃이 올라가면서 여호와의 사자도 함께 올라가 사라지는 기적을 보게 된다. 그제서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다. 

9. 마노아는 그제야 자신이 본 분이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자신이 죽게 되었다고 두려워할 때, 그의 아내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죽을 것이었다면 우리 손에서 번제를 받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10. 후에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삼손이라고 했다. 여호아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다. 삼손이 마하네단에 있을 때,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쓰기]


이제 사사기에 기록된 마지막 사사, 삼손의 이야기로 접어든다. 삼손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사사와 다르게 자세하게 기록된다. 


삼손은 원래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한 단지파의 마노아와 그의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자이다.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던 마노아의 아내에게 어느날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구별한 사람이기에 그 여인에게 부정한 것을 먹지 말 것을 명령하면서, 그가 낳게 될 아들은 태어나면서 나실인으로 구별된 사람이니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것을 명한다. 그가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라는 것도 확인시켜 주셨다. 이 사실을 그녀의 남편에게 말했지만, 그의 아내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충분히 잘 전달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마노아는 다시 그분이 오셔서 낳게 될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자 이번에는 자신의 남편을 급히 불러온다.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에게 이전에 그의 아내에게 말했던 내용들을 다시 말한다. 마노아는 그 사람에게 염소 새끼를 대접하려고 하자, 그 사람은 번제를 드릴거라면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면서 사양한다. 마노아가 번제를 드리려고 하자 제단에 불이 올라왔고, 하나님의 사자는 그 불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기적을 보게 된다. 그제서야 그가 하나님의 사자라는 것을 알게 된 마노아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의 아내의 말을 통해 안심하게 된다. 


결국 삼손이 그 사이에서 태어났고,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셨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삼손에 대한 출생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뭔가 메시지가 있음을 의미한다.(이전에는 없던 사사의 묘사이기 때문)


  1) 수태고지

마노아의 아내가 아이를 갖게 될 것을 누군가가 찾아와 알려주는 것은 다른 사사들에게는 언급되지 않는 내용이다. 물론 출신에 대한 이야기는 있지만, 태어나는 과정에 대한 것까지 언급된 사사는 삼손이 처음이자 유일하다. 이는 수태고지라는 패턴의 연결선 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수태를 알린 여호와의 사자, 리브가에게 쌍태를 알린 여호와의 사자.... 그리고 사사 삼손의 탄생을 알리는 여호와의 사자. 훗날  세례 요한의 탄생,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수태고지는 이어지게 된다. 


그와 같은 구속사 속에서 하나의 방점으로 삼손이란 사사가 등장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삼손은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연구하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겠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훗날이 일이지만, 그런 맥락 속에서 하나님은 구약에서 일하면서 예수까지 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나실인(태어나면서 구별된)_ 원래 나실인은 스스로 자신이 결정하여 구별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나실인이란 원래 태생적으로 레위인이 아닌 사람들이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고자 할 경우, 스스로 서원하여 자신을 특정 기간동안 구별하여 드리는 제도이다. 그런데 삼손의 경우는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나실인이 된 것이다. 레위인도 아닌, 제사장 출신도 아닌 단지파의 후손인 삼손은 하나님에 의해서 태어나면서 나실인으로 구별된 존재가 된 것이다. 


삼손은 태어나면서 특별한 사명, 블레셋으로부터 자신의 백성을 구원할 것이라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사명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거룩함으로 자신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로 부름을 받았다. 예수를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로 구분하여 말하고 있는 신약의 수태고지를 우리가 알고 있다면, 삼손과 예수는 그 태어남에 있어서 유사한 목적을 가지고 부름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나실인은 자기 헌신적인 나실인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도 나실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삼손과 같은 나실인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 구속사적인 부르심이다.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부르심이 아니다. 다만, 삼손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과정과 계시를 발견하고 깨닫는 것이다. 삼손도, 예수도 그런 측면에서 구속사적인 계시를 발견해야 한다. 


  3) 삼손의 수태를 고지한 자가 천사 혹은 하나님이라는 사실


오늘 이야기 속에서 삼손의 수태를 고지한 사람이 하나님의 천사라는 것을 굳이 확인시켜 준다. 이는 이와 같은 소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확실한 것임을 알려주기 위함이고, 또한 삼손의 경우에는 마노아의 아내에게 한 번, 다시 마노아에게 한 번 두번에 걸쳐 나타남으로 분명한 확신을 주고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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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해 배울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두권의 책. 하나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이다.

이 은유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과학과 종교 간의 갈등을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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