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절 묵상] 고후 9:10 재물의 복을 받는 비결(?)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1. 고린도후서에는 연보와 물질을 나누는 것에 대해서 구체적 지침까지 주면서 자주 언급한다.

 

2. 오늘 구절도 가난한 자들에게 자신의 것을 흩어 나누어 주는 자의 복(고후 9:9, 시 112:9)에 대한 언급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3. 심고 자 하는 자, 즉 재물을 나누고 베풀고자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씨(재물)와 먹을 양식(필수품)을 주신다. 바울의 믿음과 바람은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이 심고 자 하는 자에게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의의 열매도 더하게 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그의 의로움은 영원히 기억되고, 그는 영광을 받으며 높아질 것이다. 시 112:9)

 

4. 이런 축복의 기도를 드려야겠다. 재물을 나누어 섬기고자 하는 자에게 재물도 주시고 필요한 양식도 주시옵소서. 재물을 나누고자 할 때마다 나눌 것이 더 풍성해지게 하시고 그에게 의의 열매(하늘에서의 열매)도 더하게 하여주시옵소서.

 

5. 그런 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은 주일, 여러분의 가진 것 중 일부를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시길.(고후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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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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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고후 8:14 자발적 균등으로 이루는 하나님 나라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1. 서로 다른 형편에 있는 두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서로 균등하게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2. 한 교회가 넉넉하고 다른 한 교회가 부족하다면 넉넉한 교회가 부족한 교회의 부족함을 보충해 주어 가급적 균등한 형편을 맞춰주도록 해야 한다.

 

3. 서로의 형편이 바뀌게 되면 이전에 받았던 교회가 도와주어 상황에 따라 서로 형편을 맞추는 균등함의 원리로 평형을 맞추어 가도록 해야 한다.

 

4. 그래서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고후 8:15, 출 16:18)의 말씀이 성취되게 된다.

 

5.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시선이 있다. 나의 형편만 보는 눈이 아니라 나와 형제 된 공동체의 형편을 돌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내가 좀 부족하지 않다고 여겨질 때 주변의 형편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6. 나의 넉넉함에 감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 풍요로움이 누구의 부족함을 채워야 하는가에 대한 안목도 있어야 한다.

 

7. 자발적 균등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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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고후 8:3 평상시에는 힘 닿는 만큼만 하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1. 마게도냐 교회의 형편도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연보를 힘있게 했다는 것을 바울이 증언해 주고 있는 내용이다.

 

2. 누군가를 도울 때는 내가 힘닿는대로 돕는 것이 기준이라고 본다. 내 형편을 돌아보지 않고 다른 이를 돕는 것이 늘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과잉 희생은 피해의식이나 자기 자랑으로 가기 쉽기 때문이다.

 

3. 다른 사람을 도울 때는 내게 너무 큰 피해가 오지 않을 만큼(없어도 그럭저럭 견디고 유지할 수 있을만큼)만 하고 그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 좋다. 돕는 일에도 절제가 필요하다.

 

4. 그러나 종종 힘에 지나도록 도와야 할 때도 있다. 여분의 것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되는 것의 일부를 나누는 것이다. 이 도움은 한 몸이라는 의식 속에서 가능하다. 운명 공동체라는 의식이 없으면 더 큰 피해의식이나 더 큰 자기자랑이 되고만다.

 

5. 그러나 운명 공동체는 다르다. 내 허벅지 살을 일부 떼어다 상처입은 다른 지체의 피부를 이식하거나 하는 것처럼 때로는 내 몸 전체를 살리기 위해 내 지체의 일부를 도려내야 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힘에 지나도록 하기도 한다.

 

6. 힘 닿는대로 선을 행하시는 것과 힘에 지나도록 선을 행하는 것을 잘 분별하시라. 선을 한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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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고후 7:10 근심에도 좋고 나쁨이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 '근심'이 모두 나쁜 것 만은 아니다. 사망을 이루는 근심도 있지만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근심'도 있기 때문이다. 근심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2. 그렇다면 어떤 근심은 독이 되고, 어떤 근심은 약이 되는가?

 

3. 자신의 가치를 잃게 만들고 삶의 방향을 왜곡시키는 '근심'은 사망을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두려움과 염려로 인해 타인에게 조정받으며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근심은 결국 세상 근심이고 그것이 사망에 이르게 하는게 아닌가 싶다.

 

4. 약이 되는 근심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의 본래의 자리를 잃지 않을까 염려하는 근심은 약이 되는 근심일 것이다. 내가 살아가야할 삶의 방향에서 내가 지금 벗어나고 있지 않은가와 같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과정 속에서 나오는 '근심'은 약이 되는 근심이 아닌가 싶다. (이런 근심은 회개를 이루기 때문에)

 

5. 또한 잘 살아가고 있음에도 교만하지 않고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에 조심조심 발을 내 디뎌야 한다고 생각하는 '근심'이 우리의 영혼이 병들지 않도록 하는게 아닌가 싶다.(조심성이라고 말할수도 있고, 겸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6. 약이 되는 근심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나의 위치를 잃지 않기 위한 나침반 바늘의 떨림이라면, 독이 되는 근심은 세상의 가치에 나를 맞추느라 분주한 불안함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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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고후 6:10 가난한 자의 부요함은 '정신 승리'인가?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1. 단순히 근심거리도 많고 가난하며 뭐하나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의 '정신 승리'의 고백이 아니다.

 

2. 자신은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할 수는 있다. 복음을 가진 사역자들이 그리 할 수 있는데 스스로는 물질적으로 가난하기도 하겠지만, 그들이 전하는 복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와 생명과 평안을 주기 때문이다.

 

3. 자기 자신이 부요한 사람이 부자인가? 아니면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사람이 부자인가? 나는 어떤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사역자들은 후자를 선택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그런 측면에서 바울은 가난했지만 행복했을 것이고 보람있었을 것이다.

 

4. 본인은 가지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자처럼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았다. 누가 더 넉넉한 사람인가? 많이 가진자인가 자신의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인가?

 

5. 내가 정의하는 부자는 다음과 같다. 자신의 통장에 돈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늘 챙겨보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다. 반면 자신의 통장에 돈이 얼마가 있는지 신경쓰지 않는 사람은 부자다. 계획성이 있고 없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넉넉하고 후한 마음이다.

 

6. 요즘 내가 통장의 잔고를 전 보다 자주 챙겨보게 되는 것은 부족함의 문제인지 아니면 넉넉한 마음의 결핍의 문제인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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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고후 6:1 입장이 좀 바뀌어도 되지 않나?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1. 사역자는 하나님과 함게 일하는 자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아니 자주 우리는 하나님이 시키는 일을 하는 수동적인 품꾼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은 뒤에서 시키기만 하시고 모든 일은 우리가 다 하고 잘 못하면 우리가 다 책임져야 하는 그런 관계로 생각하곤 한다.

 

3. 기도할 때도 이렇게 기도하지 않는가! '하나님 도와 달라고' 말이다. 모든 책임을 우리가 다 지고 있는것처럼. 하나님은 선심쓰듯 한 번 등장하는 분 정도록 생각하지 않는가 싶다.

 

4.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이지만 사실 책임과 주도권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다. 능력의 비중으로 보면 하나님이 중심이고 우리는 보조다. 그래서 난 이런 기도를 종종 한다.

 

5. 하나님,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뭘하고 싶으신데요. 말씀해 보세요. 제가 도와드릴께요. 동역자라면 늘 신세만 질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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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고후 5:17 너도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인식이 없다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 지금까지 이 구절을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존재'임을 확신하는 근거로 생각해 왔다.

 

2.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나만 그런게 아니다. 주 안에서 형제 된 주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하는 말씀이다.

 

3. 즉 나의 겉 사람은 이전과 비슷해 보여도 사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같이, 내 주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이전과 달라보이지 않더라도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4. 나의 변화가 느린 것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변명을 하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변화가 느린 것에 대해서 '저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 아니라'고 단정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자신과 똑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말이다.

 

5. 내가 새로운 피조물이듯 너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믿어주고, 너의 변화가 느린 것은 나의 변화가 느린것과 다르지 않은 이유일 것이라고 이해할 때 우리는 서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다 하는 것이 아닐까?(고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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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고후 4:12 신자의 자기 희생은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1.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자기 희생적 메시지다.

 

2. 그러나 주목해서 봐야 하는 것은 '나의 죽음' 아니라 '상대의 생명'이다. 나의 죽음은 상대의 생명을 살리는 것에 목적이 있고 의미가 있다. 생명을 일어나게 하기 위한 죽음이 핵심이다.

 

3. 우리는 혹 의미없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마치 그것이 제자도이며 자기 희생이라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그것은 역으로 근거없는 자기 변명일 수 있고 자기 포기일 수도 있겠다.

 

4. 우리는 살 길을 찾는 사람들이다. 함께 살 길을 찾는 사람들이다. 어떻게든 살아야한다. 그러나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이 확인된 순간, 누군가의 자기 희생이 필요한 순간까지 버티는 사람이다.

 

5. 그리스도인의 자기 희생은 포기도 아니고 절망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무력함도 아니고 이상적인 순수함도 아니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위대한 자의적 선택이며 희생이다. 나의 희생을 통해서 누군가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드려지는 완전한 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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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고후 4:5 사역자에게 너무 불리한 메시지.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1. 바울은 전도자로서 전파하는 것과 전파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2. 바울이 전파하지 않았던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자기 자신을 자랑하거나 자기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거나 대단한 헌신과 결실을 가진 자로 자신을 존경해 줄 것을 요구하거나 자랑하지 않았다. 그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은 전파하지 않았다.

 

3. 반면 바울은 두 가지를 전파했다. 첫번째는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이었다. 예수님의 주인되심은 강조되어야 했다. 우리의 구원자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소유권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것을 바울은 늘 강조했다. 두번째는 바울이 섬기는 사람들의 '종' 된 것을 전파했다.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은 선뜻 받아들일 수 있지만 굳이 성도들의 종이라고까지 강조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그러나 바울은 그것까지 전파했다.

 

4. 내가 너희의 종이야, 내가 너희를 섬기는 자야라고 전파할 필요가 있을까? 조용히 자기 자신만 그렇게 알고 섬기면 될텐데.. 바울처럼 떠벌리고 다니면 이상한 사람들이 자신을 이용해 먹거나 우습게 대우할 수도 있을텐데...

 

5. 그리스도의 종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고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입에 '나는 여러분들의 종입니다'라는 말을 달고 살기는 참 어려울듯 하다. 그러나 그것도 사역자의 과제요 의무다. 암튼 우리는 상대로 하여금 사역자가 그들의 종된 것을 알게 해야 한다. 그것까지 전파해야 한다.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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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고후 3:2 성과와 성과주의는 다르다.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1. 바울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어떤 '추천서'(사람이 증명해주는)가 필요하지 않았고 말한다. 그렇다고 자신은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서)

 

2. 그에게는 종이로 쓰인 추천서가 아니라 더욱 확실한 증명서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섬겼던 사람들이다.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3. 바울은 마음을 담아 그들을 대상으로 사역했고 그 결실이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결실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하나님의 역사였음이 읽혀졌다. 즉 바울은 종이가 아니라 사람을 통해 자신의 참됨을 증명하고 있다.

 

4. 좋은 사역자를 세우기 위해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는 종이 추천서도 중요하겠지만 그 사람이 맺은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을 읽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

 

5. 화려한 스펙과 유력한 추천장을 빌어 사람들에게 읽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박하지만 사역의 결실인 사람들을 우리가 읽어 낼 수 있다면 우리는 바울과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6. 사람에 대한 평가를 성과주의로 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성과가 없는 사람을 통해서는 가능성을 읽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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