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구절] 고전 12:26 나의 크기.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1. 한 몸이라면 한 지체의 고통이 온 몸에 동시에 이르고, 한 지체의 행복이 온 몸에 동시에 이른다. 한 몸이라면.

 

2. 따라서 한 몸이라면 한 지체의 고통을 방치할 수 없고. 온 몸이 동원되어 그

지체의 고통을 없애든지 줄이든지 하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고통의 순간 온 몸은 하나의 목표로 움직인다. 그 목적을 성취하면 살지만 실패하면 몸은 죽음에 이른다.

 

3. 한 지체가 행복하다면 온 몸은 함께 즐거워한다. 입이 즐거우면 인생이 행복하다. 입이 행복하다고 손과 발이 입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입이 행복해지도록 손과 발은 도울 것이다.

 

4.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까지 한 몸이라고 생각하느냐이다. 나 혼자만 한 몸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내 가족까지만 한 몸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속한 교회 공동체 혹은 나라와 민족.. 아니며 인류 전체? 어디까지가 한 몸인가라고 보느냐에 따라 주변의 고통과 즐거움에 대한 나의 반응은 달라진다.

 

5. 주변의 고통을 줄어주려고 하고, 주변의 즐거움에 함께 즐거워해 줄 수 있는 마음이 어디에 이르느냐에 따라 내 몸의 크기는 매우 달라진다. 나는 매우 적은 아이일 수도 있고, 나는 매우 넓은 어른일 수도 있다. 고통과 즐거움에 어디까지 반응하느냐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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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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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구절] 고전 11:11-12 남자와 여자(분쟁) - 설명이 좀 길어졌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 구체적으로는 상호 질서(위계)의 문제를 다루는듯 하다. 고린도전서가 교회 내에 분쟁과 파당에 대해 지속적으로 다룬다. 처음에는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등등. 11장에서는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지는 갈등, 있는 자가 없는 자에 대한 배려가 없을시 성만찬을 위해 모인 교회가 어떤 갈등이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다룬다.

 

2. 바울의 핵심은 '전통'을 따라 '여자는 머리에 표'를 두라는 것이다.

1) 그것은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전통이고(긍정적인 전통이라고 본 것)(2절)

2) 창조 질서에도 맞다고 본 것이고(8,9절)

3) 여성의 머리인 남자이기에 가려주어야 한다.(남자의 불완전성을 말하는듯) 반면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가리면 안된다. 이는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그리스도의 완전성을 말하는 것인듯)(4,5절)

-> 바울은 여자들에게 머리를 무엇인가로 가리게 함으로 존귀한 여성임을 드러내는 권세의 표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한다. (당시 머리를 가리지 않은 여인들은 매춘부로 여겨졌기에 이들과 구별하기 위한 표로서)

 

3. 바울은 자신이 볼 때 당시의 전통(여성이 머리를 가리는 것)이 문화적으로도 적절하고 성경의 창조 질서와도 맞는 것이라고 본듯 하다. 그러나 그 논리가 혹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새로운 질서에 대해 오해하지 않도록 한다.

- 여성에게 머리에 표를 두라고 말하면서(10절) 그 이후 바로 '주 안에서'의 새로운 질서를 언급한다.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을 수 없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오고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았다. 남자와 여자의 동등성과 상호필요성에 대해서 강조한다.

 

4. 질서를 위해서 위계가 정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여기에 높낮이를 구분하는 계급은 없다.(창조 질서든, 구속의 새질서든) 여기서는 여성의 머리를 가리는 것이 전통적인 측면에서든, 창조질서의 입장에서든 적절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머리에 무슨 표'를 한다는 것이 여전히 유효할 수는 없다.

 

5. 바울의 이 때 논리는. 당시 문화의 전통에서도 지지를 받고, 창조질서의 입장에서도 자연스러운 일이니 따르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혹 오해가 생길까봐 남자 여자는 주 안에서 서로 우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말이다.(11,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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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구절] 고전 10: 13 내가 다가올 시험을 감당할 수 있을까?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1. 이 구절은 한 마디로 <어떤 시험이 오든 우선 감당하라는 것이다.> 구절이 복잡하게 꼬여있는듯 하지만 풀면 단순하다. 시험이 오면 우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감당해. 할 수 있어!! 이런 구절이다.

 

2. 그러면 우리는 이런 걱정을 한다. '시험이 작은 것은 그래도 해 볼만 하지만 큰 시험(내가 감당할 수 없을것 같은)을 감당하다 내가 아예 쓰러져버리면 어떡해 해요?' 그러면 바울은 답한다. '왠만하면 네가 다 감당할 수 있는 거긴한데 혹시 감당하기 어려운게 정말 있다면 피할길을 주실거야. 아니면 돕는 사람이 나타나든 갑자기 상황이 바뀌든.. 정 이도 저도 아니면 그 시험이 너를 피해 갈거야'

 

3. 그러면 우리는 또 질문한다. '그럼 닥쳐올 시험이 내가 감당할수 있을지 못할지 미리 어떻게 알 수 있어요?' 그럼 성경은 말한다.

그건 감당해 봐야 알지.'

 

4. 그러니까 결론은 어떤 시험이 오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피하지 말고 감당해. 할 수 있어. 하면서 강해지는거야. 정 죽을 것 같으면 눈감고 견뎌.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감당하게 되든지 아니면 그 시험이라는 놈이 피해갈거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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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고전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1. 복음은 우리를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로 인도한다. 심지어 내가 '종'의 신분으로 태어난 자라고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자유는 빼앗길 수 없다.

 

2. 자유로운 사람은 어떤 목적을 위해 스스로 누군가의 종이 되기를 자처한다. 그 사람 또한 자유로운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3. 이 때의 종 됨은 매여있는 종이 아니라 자유케 하기 위한 종 됨이다.

 

4. 복음이 내 자유의 확보까지만 이른다면 충분하지 못하다. 다른 사람의 자유까지 확대되어야 하면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종됨(절제)이 필요하다.

 

5. 그리스도인들의 절제는 금욕이 아니라 타인의 자유를 위한 복음적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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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고전 8:8-9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니라.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 무엇을 먹을 수 있느냐 못 먹느냐는 우리 신앙의 본질과는 멀리 떨어져있는 문제다. 맛집을 얼마나 가봤는지, 근사한 카페와 숙소 혹은 여행지를 얼마나 가봤는지 혹은 그렇지 못한지는 신앙의 본질과는 멀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인스타그램의 세상 속에서 웃고 울고 있는 것일까?

 

2.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했는데(8:1)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란 자신의 욕구를 변론할 수 있는 지식을 말한다. 그러나 사랑은 자신의 욕구가 아닌 타인의 형편을 고려한 절제를 말한다.

 

3. 신앙의 본질은 이기적 지식이 아닌 타인에 대한 배려하는 절제로서의 사랑이다.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지만 개인의 자유가 누군가를 넘어뜨리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함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8:9) 사랑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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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고전 7: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1. 바울의 신분제도의 철폐를 먼저 말하지 않는다.

 

2. 오히려 바울은 어떤 시대와 상황, 제도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문제 없음에 대해서 말한다.

 

3. 종으로 태어났는가? 아니면 어릴적 부모 손에 팔려서 종이 되었는가? 전쟁에 져서 종이 되었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종의 신분이어도 그리스도께 속한 자유인으로 살수 있다.

 

4. 태어날 때부터 자유인이었는가? 죄가 아니다.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네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너는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네 멋대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도록 해라.

 

5. 종이든 자유인이든 이와 같은 태도로 살아간다면 불평등하고 불완전한 제도는 점차 개선될 것이다. 혹 개선되지 않더라도 불행하지 않은 사회가 될 것이다.

 

6. 7장에서 주로 다루는 결혼할 것인가 혼자 살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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