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절 묵상] 갈 4:19 직진 만이 정답은 아니다. 그 자리를 몇 번 돌아야 할 때도 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1. 바울은 목표(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를 완성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해산하는 수고)는 결심을 보여준다.

 

2. 그러나 이런 일이 얼마나 힘들고 맥빠지는 일인가! 죽을 힘을 다해 낳고 공들여 기른다고 길렀는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면 그간의 수고와 헌신이 얼마나 허무하게 느껴지겠는가! 허탈함과 배신감을 극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3. 처음에 한 수고가 헛되게 돌아갔다면, 두번째 하려는 수고가 헛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갈라디아 사람들이 이렇게 쉽고 빠르게 은혜에서 율법으로 넘어가버렸으니 바울은 무기력에 빠지기 쉬웠을 것이다.

 

4. 그러나 바울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시지프의 신화처럼 산 밑으로 굴러내려간 바위를 다시 들어올리기로 작정한다. 벌을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로서 자녀를 온전한 사람으로 키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5. 다시 시작해야 해서 그 자리를 반복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헛된 일이라기 보다는 영적 부모가 마땅히 가야할 길이고 반복해서 돌아가야 할 구간이다. 부모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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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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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갈 4:1 율법이 필요 없는 사람 보다는 율법을 통과한 사람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1. 종이 아니지만 종과 다름없는 시간이 있다.

 

2. 성인이 되기 전까지 건강한 판단과 성품을 가진 자녀로 성장하게 하기 위해 필수적인 규약을 세우고 그 규약의 통제를 받도록 한다. 마치 그 규약의 종처럼 그 통제 아래에 두려고 하는데 목적은 평생 그 규약 아래에서 살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다. 성인이 되어 그 규약의 유익함을 스스로 판단하여 활용하게 하기 위함이다.

 

3. 만약 어린 자녀에게 그와 같은 시간이 없다면, 아무런 규약이 없는 자연적 상태로 자라도록 둔다면 그 자녀가 건강하게 자랄 것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참된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종은 아니지만 종과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4. 율법과 규약이 우리를 다소 불편하게 하게 하지만 그것은 필요하다. 죄 된 심성을 가진 사회에서도 필요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통해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도 필요하다. 일정기간 종과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건강한 가치관을 만들어야 한다.

 

5. 나는 은혜로 구원얻었으니 율법과 규약이 필요없다고 말하기 보다는 나는 이제 율법과 규약으로 나를 구속하지 않아도 그 이상의 판단과 행위를 할 수 있는(성령의 도우심으로) 사람이라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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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갈 3:28 모두 같다기 보다는 달라도 차별이 없다가 더 좋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1.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차별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차별이 없고, 종이나 자유인의 차별이 없고, 남자나 여자의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2. 차별이 존재하고 있던 그룹에 대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하나님 나라)에서는 차별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차이'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3. 각 개별 존재가 모두 '같다'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있는 존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한 몸을 이루는데 전혀 제한이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공동번역은 '한 몸'을 이루었다고 번역했고, 29절은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4. 이 구절은 (물리절, 자연적) 차이를 이미 가진 사람들이 차이가 없다는 의미를 담았다기 보다는 그런 차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아무런 차별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나 싶다.

 

5. 모두를 같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많은 다양한 것이 하나를 이룬다는 것에 나는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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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갈 2:14 칼이 칼을 날카롭게 하는 법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사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 바울이나 베드로나 모두 위대한 사도들이지만 그들도 한계와 실수가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유대 문화에 길들여진 베드로의 경우 복음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었음에도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노출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했던 것이다.(2:12)

 

2. 이 장면에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당시 기독교 계의 거물이라면 거물일 사도 베드로도 그의 믿음과 삶에 어떤 괴리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괴리감을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괴리감을 인정한다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만큼 우리는 한계를 가진 존재며, 어느 정도의 모순이 삶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그게 베드로 같은 경험과 지식을 가진 자라도 말이다.

 

3. 당시 거물급(?)이었던 베드로를 향해서 신참(?)에 불과했던 바울이 책망할 수 있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베드로의 실수 혹은 부족함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는 바울의 용기도 대단하고 생각한다. 베드로가 바울의 그런 지적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했을지 모르지만.

 

4. 베드로라도 완전하지 않다. 문화와 경험의 한계로 복음의 확신과 다소 괴리있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바울도 한 때 혈기 왕성했고 바나바와 그게 다투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베드로를 향해서 직접 문제를 제기할 정도라면 바울의 성질도 만만치는 않은 사람이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서로 부딪히면서 다듬어져 갔을 것이다.

 

5. 지적받고 부딪히고 하면서 성장하는거다. 나도 그래야 하고 나도 그렇게 당해야 하고. 성장을 위해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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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갈 2:8 베드로는 유대인에게, 바울은 이방인에게. 그런 나는?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1. 주님의 지상명령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고 보편적인 명령이다. 모든 민족에게 모든 사람엑 복음을 전할 책임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대상에게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 오늘 구절에서 보듯이 베드로는 할례자(유대인)에게, 바울은 이방인(무할례자)에게 더욱 구체적인 부르심이 있다.

 

3. 하나님의 부르심은 들어 사용하시는 그 개인의 특징과 무관하지 않은거 같다. 즉 유대인에게는 베드로가 특화되어 있고, 헬라인과 같은 이방인들에게는 바울이 더 효과적인 요소가 크기 때문이다.

 

4.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사람을 캠퍼스 선교를 감당하는 사역자로 세우셔서 사역하게 하심은 캠퍼스에서 훈련받은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고 그 안에서 배움도 성장도 적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5. 이제 25년간의 캠퍼스 사역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지난 25년간의 경험이 헛되지 않는 사역이 연결될 것을 기대하고 소망해 본다. 모든 교회, 모든 사역이 주님의 사역이지만 나에게 잘 맞는 사역과 목회로의 부르심이 있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6. 베드로는 유대인으로, 바울은 이방인으로. 그럼 나는 어디로?! 결혼하게 될 두 남녀가 서로가 서로를 찾아 한 몸이 되듯이 우리 지금 당장 만납시다. 여러분도 여러분에게 맞는 짝을 만나보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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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갈 1:7 성경 한권만으로 충분하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1. 갈라디아인들이 전에 바울에게 들었던 '복음의 내용' 말고 다른 내용의 복음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본 구절만으로는 그 내용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갈라디아서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 말고 인간의 행위와 의가 추가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문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교회 밖 세력은 교회를 향해 박해를 통해 압박하고, 유혹을 통해 세속화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은 외부에만 있지 않다. 내부에도 적은 존재하고 그 내부의 적이 실로 무섭다.

 

3. 내부의 적은 교회의 본질인 복음의 핵심을 약간 비트는 것이다. 그럴듯 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비틈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복음을 다른 복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4. 우리는 늘 복음이 무엇이고 어떤 것은 왜 복음이 아닌지 분별할 수 있는 눈과 안목이 있어야 한다.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짜를 알 수 있는 것이다.

 

5. 복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복음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복음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고 신학도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 권만 읽은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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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고후 13:13 예배의 마지막 순서 축도, 별거있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1. 공식적인 예배 때 목사가 예배를 마치면서 성도들에게 마지막 축복의 기도(선포)를 할 때 인용되는 성경구절이다.

 

2. 예배를 마치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는 성도들을 위해서 설교자가 줄수 있는 최고의 기도가 무엇일까를 고민했던 적이 있다. 돈을 달라고 할까? 배우자를 만나도록 해달라고 해야할까? 취업이 되도록 해야할까? 등등.

 

3. 가장 좋은 기도는 지금 당장 필요한 선물이 아니라 언제든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채우고 도와주실 '좋은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성자 하나님과 성부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함께 하심만한 축복이 없는 것이다.

 

4. 성자 하나님의 은혜, 성부 하나님의 사랑,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 이만한 축복이 없다. 오늘 그 축복 기도를 받으시기 한 주가 함께 하시는 은혜를 누리시라. 가장 큰 복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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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고후 12:5 빠른 차가 될 것인가? 안전한 차가 될 것인가?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1. 바울은 자랑할 만한 것(고후 12:1-4)도 적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자신을 강화하기 보다는 자신의 약점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자랑함)으로 자신의 위치를 정한듯 하다.

 

2. 바울의 겸손이라는 입장으로 볼 수도 있지만 바울의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도 있다. 바울은 자신의 특별한 체험 뿐 아니라 자신이 날마다 당하고 있는 육체의 가시를 외면하지 않았다. 가시가 제거되지 않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던 것이다.

 

3. 육체의 가시, 연약함, 사람들의 오해와 빈정거림이 바울에게는 안전장치라는 것을 바울은 깨달았다.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는 달리고 속도를 내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 설수 없어서 결국은 자기 통제력을 잃고 망가지기 마련인 것이다.

 

4. 바울은 남들 보다 월등한 스피드를 자랑하는 위험한 차를 선택하지 않고, 안전하게 오래동안 운전할 수 있는 브레이크가 달린 차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게 된 것이다.

-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9,10절)

 

5. 남들보다 앞서갈 것인가 아니면 긴 여정을 즐기면서 여행할 것인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브레이크와 같은 연약함을 감사히 여기자. 긴 여행을 준비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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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고후 11:30 왜 맨날 내가 '을'인데?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1.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바울이 겸손함의 표현으로 한 말이 아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으로 인해 '을'이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2. 바로 앞 29절에서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라고 말하는 것과 연관있는데 이는 바울이 복음으로 인해 '을'이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3. 자식 앞에 부모는 늘 '을' 된다.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가 잘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 자식 앞에서 흔들리며, 변하며, 무력해지며, 약해진다. 자신의 자존심과 권위를 앞세우기 보다는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며 생각하고 행동한다.

 

4. 복음 전도자는 생명을 주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마다하지 않지만(고후 11:23-27) 그렇게 해서 얻은 성도에게 권위와 능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자식 앞에서 선 부모처럼 약해질 수 밖에 없다.

 

5.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하려한다 말인가! 죽을 고생을 해서 아이를 낳아 놓고 그 아이의 눈치를 보며 살게 되는 일을 말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사역자가 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인다.

 

6. 소명이 없이는 못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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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절 묵상] 고후 10:10 바울 공정한 평가를 받고 싶다.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1. 바울도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들었다. 바울의 글(편지)에는 힘이 있지만 직접 대하면 글(편지)에서 느꼈던 것과는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였고 부족해 보였다는 평가이다. 바울의 외모나 말이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2. 누군가를 평가할 때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를 해야 할까? 생각해 본다. 바울의 글이 바울을 대변하는 것일까? 바울의 외모나 언변이 바울을 대편하는 진짜 모습일까? 물론 둘 다 바울의 진짜 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택해서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가?

 

3.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가장 취약한 점(언변과 외모, 사도로서의 정통성)을 중심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려 할것이다. 정당한 평가라기 보다는 시기와 질투에 근거한 평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외모나 사도적 출신, 언변이 저 정도이니 사실 글(편지)라는 것도 과대 평가된 것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4. 나는 누군가를 공정하게 평가하고 있는가? 나는 누군가의 잘남을 시기하여 왜곡해서 평가하는 것은 아닌가? 공정하게 평가해 주도록 하자.

 

5. "넌 (외모는 좀 그래도), (출신은 좀 아쉽지만) 글은 진짜... 대박이다." (괄호 안의 내용은 속으로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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