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4:1-3>(정리하기)


1. (권면)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권면)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2절)

     -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3.(권면)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1) 동역자: 복음에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2) 동역자: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질문하며 묵상하기)

1. 바울은 1,2장의 권면, 3장의 권면을 마치면서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다. 그 정리하는 권면은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아 주 안에 서라>이다. 이것은 한 개인을 향해 주는 권면이라기 보다는 공동체(투기와 분쟁이 있는)를 향해 주신 권면이라고 봐야 한다. 

  이는 만약 교회가 서로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지 못하고 서로 투기와 분쟁을 지속한다면 교회는 설 수 없게 될 것이란 의미다. 빌립보서의 내용을 근거로 정리하면 교회 내의 분쟁으로 인한 것이라면, 큰 그림을 보면서 서로 돌아보고 자신을 낮춤으로서 하나되기를 힘써야 한다.(2장) 반면 교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육체의 자랑, 의에 근거한 신앙)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쫓아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3장) 이 둘을 잘 구분해야 연합할 때 연합하고, 경계해야 할 때 경계할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 구별이 모호한 영역이 있지만, 늘 이 두 영역이 혼용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빌 4:4-7>(정리하기)

1. (권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절)

2. (권면)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5절)

3. (권면)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6절)

 <정리>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7절)


(질문하며 묵상하기)

1.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뻐하라'가 아니다. '주 안에서'이다. 주 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묵상] 그것은 빌 1장을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바울은 매임에 있었고, 경쟁자들의 시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기뻐한다고 말한다.(18절) 이유는 그의 시선이 자기 자신의 형편이나 상대방의 성공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 '복음의 전파', '그리스도의 확장'에 그 삶의 중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뻐하라'는 명령은 '주 안에서'라는 의미가 명확해 질 때 가능한 것이지 당위로서의 기뻐하라는 또 하나의 무거움 짐이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 두번째 권면은 '관용'이다. '관용'은 갈등이 있는 두 집단 이상이 있을 때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돌리지 않고 한 편이 되기 위해서 품는 마음이다. 이는 교회 뿐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품어야 할 마음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관용'이라는 것은 '실현'하기 어려운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바울은 '종말론적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관용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주께서 가까우시다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마지막 심판자가 오셔서 최종 판단을 내려 주실테니 서로의 주장을 강요하지 말고, 입장은 다르지만 최종 결정을 기다려보자. 곧 판결난다. 이 일로 서로 원수가 되지는 말자! 라는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면 우리는 좀 더 관용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서로에게. 아내와 내가 부부싸움이 현저하게 줄어든 결정적인 이유는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는 종말론적 태도 때문이다. 


3. 이런 바울의 입장을 따라가다보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기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자기의 입장에서 옳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한 결정을 하나님께 위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분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위탁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입장이 다른 입장과 싸우거나 적을 만들지 않고 그러면서도 그 입장이 진실하기에 그 입장에 서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자들은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평안해 지는 것이다. 

  [묵상] 바울은 교회 안에 파당이나 갈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그것을 정죄하지 않았다. 다른 복음을 경고하고 있지만 다른 입장 자체를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시기와 질투, 분쟁으로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했다. 그것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 긴장이 있을 때, 

<주 안에서> 우리가 서로 입장은 다르지만 한 집안 사람임을 잊지말라

<관용> 곧 주께서 오셔서 선명하게 판단해 주실테니 좀 참고 서로에게 관용하라.

<기도> 그러면서도 네 입장에서 네 마음이 소원을 하나님께 구해라. 하나님께 맡겨라.(그 분이 정답을 알려주실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하나님의 정답이는 너는 따르든지 감사하든지 하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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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말 3:10-18 지금은 공존하나 그 때는 구분하리라.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오늘 본문은 어제에 이어 십일조 문제를 다룬다.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의 집을 채우면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또한 거친 말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무리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구별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따로 책에 기록하여 그렇지 않은 자와 구별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절별 해설

3:10 <<십일조를 가져와 나의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여라>> 유다 백성들의 십일조로 하나님의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다는 것은 성전을 통해서 생활해야 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말라기가 쓰여졌다고 보는 느헤미야 시대에 백성들이 십일조를 하지 않음으로 레위인들이 생계 문제로 자기 밭으로 흩어진 일이 있었다.(느 13:10)


3:12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다>> 지금 말라기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분이 만군의 여호와 이심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하나님이 지적하신 것이 문제의 본질임을 말씀하시고, 그 본질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그 이후에 되어진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도 분명히 이루어 지게 될 것이 강조되는 표현이다. 


3:13 <<너희가 거친 말로 나 주를 욕되게 했다>> 하나님을 욕되게 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두려움없이 함부로 말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든지, 율법을 지켜봤자 소용이 없다. 오히려 교만한 사람이 복이 있고, 악한 사람이 성공한다(14,15절)와 같은 말을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말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한 것이다.  


3:16 <<그 때에 주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서로 하는 말을 들었다>> 하나님에 대해 두려움 없이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나님은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여 책에 기록하도록 했다. 이들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며, 아버지가 자식을 아끼듯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자들을 아끼신다고 말씀하신다. 


3:18 <<그 때... 차이를 보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던 자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던 자들 사이에 차이가 생겨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마치 추수 이전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공존하다가 추수때가 되면 알곡과 가라지를 완전하게 분리하여 놓는 것처럼 말이다.(마 13장)  


기도

하나님, 저 자신이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하여 주세요. 나의 말 속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묻어나게 하시고, 나의 삶 속에서 경건이 흘러나오게 하여주세요.

 

맺는 이야기

하나님의 크심과 전능하심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종종 질문이 생기는 것이 있다. 하나님을 향해서 함부로 말하고 하나님이 아무 능력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하나님께서 왜 당신의 능력을 당장 드러내시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왜 당장 알곡만 남겨두고 가라지는 모두 제거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것인데, 오늘 본문에서도 같은 질문이 나올만 하다. 하나님에 대해 두려움 없이 함부로 말하는 자를 당장 심판하시면 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그 중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만 따로 책에 기록했다고 나중에(그 때) 악인과 명확하게 구별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최종적 천국(하나님 나라)은 이런 중간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이루어 진다는 것을 우리는 구약을 통해서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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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장]


1.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


  1) 스가랴가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본다.

  2) 무엇을 보느냐 묻기에 두루마리를 본다고 했고, 길이가 20 규빗, 너비가 10 규빗이다.

  3) 이 두루마리는 저주를 말하는 것인데

   (1) 도둑질 하는 자는 이 쪽 글대로 끊어지고

   (2) 맹세하는 자는 저쪽 글대로 끊어지리라. 

  4) 도둑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으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사르리라. 


  * 날아가는 두루마리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쓰여져있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도둑질 하는 자와 망령되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자들에 대한 저주의 말씀이다. 이제 도둑질 하고 망령된 맹세를 한 사람의 집에 그 두루마리가 들어가서 그 집을 심판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2. 에바 속의 여인


  1) 천사가 무엇을 보느냐고 묻고 스가랴는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

  2) 천사는 그것이 '에바'라고 알려준다. 

  3)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아있고, 그 때에 둥근 납 조각이 들려있었다.

  4) 천사는 그 여인을 악이라고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귀에 던져 덮었다. 

  5) 또 다시 보니 두 여인이 나오는 그 여인에게는 학의 날개 같은 것이 있었고, 그들이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어서 옮기려고 했다.

  6) 스가랴는 천사에게 어디로 옮기려 하느냐고 묻자, 시날 땅으로 가서 그것을 위하여 집을 지으려 함이라고 말한다. 준공되면 그것이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말씀한다. 


  * 악이라고 지칭된 여인이 에바 속에 던져지고 그것이 납 조각으로 밀봉되어 시날 땅으로 옮겨지게 되었다는 환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악으로 상징된 것이 에바에 가두어저 시날 땅으로 옮겨지게 된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본다.



[묵상 한 모금]


1. 스가랴 5장은 예루살렘에서 행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 도둑질과 망령된 맹세에 대해서 심판하실 것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한다. 예루살렘에서 자행되고 있는 죄에 대해서 심판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의 요체가 되는 악(한 여인)을 에바에 가두고 밀봉하여 예루살렘에서 시날로 옮겨버리시는 것을 환상중에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성전만 새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전체를 정결하게 하는 작업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2. 이와 같은 메시지는 예루살렘에 있으면서 그 동안 영적인 안일함 속에서 보냈던 귀환한 백성들에게는 책망과 경고를 주고 있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악이 제거되는 날이 올 것임으로 악에 대한 유혹에 대해서까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라 하겠다. 악으로 상징되는 한 여인이 에바에 던져서 납으로 밀봉될 때(감옥과 같은 이미지) 그를 따르던 자도 함께 그런처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3. 이 장면은 요한계시록에서도 비슷한 장면으로 연출되는 것 같다. 악한 음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결국 무저갱에 던져저 천 년간 밀봉된 상태로 있게 된다는 계 20장의 이야기도 연상된다. 요한은 스가랴의 환상을 빌어 역사의 종말과 연결시키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것은 계시록을 공부할 때 다시 살펴봐야겠다.


4.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실 때, 말씀에 따라(두루마리에 쓰여진 대로) 판단하신닥. 그리고 최종적으로 악은 가두고 밀봉하시어 멀리 내던지신다. 성경 전체가 말씀하고 있는 심판의 메시지와 궤를 같이 하고 있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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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유다의 시드기야 왕의 제구년 열째 달에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제 십일년 넷째 달 아홉째 날에 성이 함락되었다.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었다.(1년 반만에 함락됨)


  * 바벨론의 공격에 1년 반을 견디던 예루살렘이 결국은 무너지고 만다. 오래 버티면 버틸수록 패하게 되었을 때에 더욱 잔혹하게 멸망을 당하게 된다. 


2.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모든 군대가 도망함. 

  1) 왕과 군대가 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도망감.

  2) 갈대아 군대가 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잡아 립나에 있는 느부갓네살에게 올라감.

  3) 느부갓네살은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아들들을 죽였고, 유다의 모든 귀족들을 죽였다.

  4)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했다. 

  5) 예루살렘 성벽을 헐고, 왕궁과 백성들의 집은 불살랐다. 

  6)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에 남은 백성을 잡아 바벨론으로 옮겼다. 

  7)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다. 


  * 시드기야는 성이 무너지자, 샛문으로 도망치는 비겁함을 보였다. 시드기야가 왕으로서 얼마나 자격이 부족한 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결국 시드기야는 잡히게 되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앞에 잡혀가서는 자식과 신하들이 죽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의 눈마져 빼았기고 바벨론으로 잡혀가고 만다. 시드기야 왕의 비참한 최후를 보여주고 있다.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결과임을 보여준다.


  * 왕궁과 백성들의 가옥은 불타버리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으며 빈천한 자들만 남겨두어 포도원과 밭을 주었다. 


3.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예레미야에게 대해서는 선대해 줄 것을 지시했다. 

  1) 사령관 느부사라단과 내시장 느부사스반과 궁중 장관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모든 장관이 예레미야를 옥에서 꺼내어 주고, 그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 어떻게 예레미야에 대해서 알았는지 바벨론 왕은 예레미야에게 선대해 줄 것을 지시했다. 예레미야는 유다에 있으면서 바벨론에 항복할 것을 주장했기 때문에 바벨론 입장에서는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소문에 바벨론에게까지 흘러가지 않았을까 싶다. 암튼,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레미야는 옥에서 풀려나게 되었고,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람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되었다. 


4.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갇혔을 때,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다. 

  1)내가 이 성에 재앙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한 말을 네 앞에서 이루리라고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말하라 하심.

  2)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라, 네가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하리라. 네가 칼에 죽지 않고 네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 성경은 예레미야가 감옥에서 나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구원하시려고 하는 것을 실현한 것으로 말씀한다. 세상에서는 바벨론의 침공으로 다행히 예레미야가 살아나게 되어 마치 바베론의 왕이 예레미야에게는 해방군으로 묘사될 수 있으나, 성경은 그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것임을 늘 상기시키며 심지어 바베론의 왕 느부갓네살도 하나님의 뜻 가우데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묵상 한모금]


1. 결국, 유다의 멸망이 왔다. 줄기차게 예레미야를 통해서 예언되었던 유다의 멸망이 왔다. 참 선지자의 구분은 그의 말이 실현되었는가를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데, 예레미야가 예언했던대로 역사가 이루어짐으로 인해 예레미야는 참 선지자임이 확인되었다. 


2. 그렇다고 해서 예레미야가 유다의 멸망을 앞당기려 한것은 없다. 바벨론의 첩자 노릇을 한 것도 아니고, 유다 안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워 내적 붕괴를 이루고자 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이런 역사적 흐름 안에서 지혜로운 결정을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바벨론과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 아니라, 항복하고 일정기간 그들의 통치를 받아들이면서 때를 기다리자였다는 것이다. 


3. 이런 판단과 메시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통치를 영원히 받게 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다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 매를 드신 것이기 때문에 유다의 죄에 대한 징계가 충분하다 싶으면 다시 회복시키실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간은 70년으로 정해져있음을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통해 알고 있었다. 


4. 결국 유다는 멸망했다. 우리의 낙관적 소망과 기대와는 상관없이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때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도 이와 같은 기대하지 않은 순간 찾아온 멸망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5. 나와 우리 그리고 이땅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듣고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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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교회 한가족예배(주일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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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은 말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고통의 때라고 표현한다.(1절) 갑자기 껑충뛰어 종말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현실에 대한 이야기라고 본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지금 우리는 어떤 역사적 이해와 현실 감각을 가져야 할지를 알려준다.

말세의 특징을 한 마다로 표현하면, 불경건이라고 볼 수 있다.(2-5절) 좀 더 구체적으로 바울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5절)는 것이다. 종말에 가서는 불경건함이 더욱 거세질 것이고, 그것은 주류가 되고 상식이 될 것이다. 오히려 경건하게 사는 자들은 낯선 사람이 될 것이고, 비주류가 될 것이다. 외계인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직장 생활을 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들과 능력과 실력의 문제로 고민하는 친구는 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말한다. 직접적인 갈등도 있지만, 그들(의 불경건)과 어울릴수 없는 것으로 인한 고립감인 경우가 많다. 이것은 하나의 고통이며 박해이다.)

또 하나의 말세적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미혹'이다. 거짓 가치관, 거짓 진리로의 미혹이다. 이들은 열심히 배우고 가르치나 마침내 진리에는 이를 수 없는 자들이다.(7절)

이 두가지 현상들이 말세의 현상이라면, 적어도 말세는 모세 때부터 존재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시대에도 사람들을 미혹하던 얀네와 얌브레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이 말하는 말세라는 것은 먼 미래의 종말의 때를 말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금 말세의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최종적인 종말에는 그와 같은 현상의 농도가 더우 진해질 것이며, 강해질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어쩌면 아담의 타락이후 아담이 죽음을 경험하고, 죽음의 현상들을 인류가 직면하면서 말세는 존재해왔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도 된다.

암튼,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이와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5절)이다.

말세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지침 중에 하나는 이와 같은 불경건의 가치관과 현상 속에서 날마다 돌아서는 것이다. 세상은 그들에 의해 흘러가고 그와 같은 가치관이 주류가 되어 다른 말을 하거나 가치관을 피력할 때, 왕따가 되는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나는 그와 같은 가치관에 동조할 수 없다고, 그와 같은 불경건에 동참할 수 없다고 '거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매일 매일의 결단과 순종이 일상의 제자도인 것이다.

세상은 모든 것을 잠식할 것같이 덤벼들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역사적 의식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 모세 시대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영향력 그 이상은 나아갈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의 어리석음은 드러났고 그들의 공격도 힘을 잃었다.(8,9절)

하나님은 불경건과 거짓 진리의 미혹에 대해서는 한계를 정해 놓으셨다. 어느 정도는 활동하여 영향력을 키울수는 있지만, 항상 그 한계가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도 정해져있다.(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는 이를 수 없다.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난다.)

말세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또하나의 중요한 지침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배운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 가운데 거하는 삶이다.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따라서 진리다.)으로 된 것으로 읽고 순종하는 자들로 하여금 유익하여 온전함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14-17절)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서 이 일에 착념할 것을 계속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불경건과 미혹의 시대에 살아남는 길은

1. 불경건함과 미혹의 가치관으로부터 매일 매일 돌아서는 것이다.

   : 집에 돌아오면 손을 깨끗이 씻는 것만으로도 많은 병을 예방할 수 있듯이... 더러운 것이 뭍어 들어오지 않도록 (정신)위생을 철저히 해야 한다.

2.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건강한(온전한) 성도가 되는 것이다.

   : 건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고, 몸에 좋은 음식으로 식생활을 하며, 적절한 운동으로 자신을 훈련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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