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정리]


1. 내가 너희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너희들이 선호하는 방식(지혜로운 말)으로 가지 않고 <진리선포>(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목박히신 것)로 나아갔기에 나는 두렵고 떨렸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지혜로운 말이 아니라, 진리 선포에 있다. 


2. 그러나 바울이 지혜를 무시하는 것(반지성주의)이 아니다. 다만 너희들이 말하는 세상 지혜와 지혜의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 지혜는 세상이 모르는 것인데(만세전부터 감추어져있었던 것임, 그들이 예수를 죽였을 만큼 이 지혜를 몰랐고 무지했다.) 왜냐하면 이 지혜는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지 세상의 영을 가진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진리이다. 


3. 육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어리석게 본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 진리에 이를 수 없기 때문. 



[해설]


우선 바울의 이 세상의 지혜를 무시하는 것과 같은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듯 하다. 왜냐하면 이 본문을 근거로해서 인간의 지성 자체를 경계하는 경향이 나올 수도 있고, 또 어떤 광신적인 사람들은 '신비적 지혜'를 말하면서 합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어처구니 없는 논지의 근거를 이 본문에서 끌어오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인용하여 쓸 수 있는 구절들이 다수 나온다.

 고전 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의 지혜도 아니요

고전 2: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면, 과연 바울은 인간의 지혜(그 동안 인류가 축적해온 지혜와 지식들)를 부정하고 있는 것인가? 


고린도전서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 있었던 기간 중에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 전에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고린도 지역에서 1년 반 동안 사역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린도 교회를 세웠을 것으로 본다.(행 18장) 따라서 그곳이 복음 사역과 관련하여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이르기 전에 베뢰아를 떠나 도착한 곳은 '아덴'이었다.(행 17:13-15) 베뢰아에서 유대인들을 피신하여 도망치듯 온 '아덴'에서 바울이 봤던 것은 <우상이 가득한 것>이었다.(행 17:16) 이것을 본 바울은 마음에 격분이 일어났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날마다 변론하게 된다.(행 17:17)


(행 17:18-21)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그 지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말과 지식에 대한 자랑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에 대해서 충분히 보여주는 구절이라 하겠다. 고린도 지역이라고 해서 상황이 많이 다르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자신을 따라다니며 <복음 사역>을 방해하는 유대인들과 전부터 계속 싸워야 했지만, 인간의 지혜(헬라철학)를 말로 풀어내고 더 새로운 지식을 갈망하는 사람들인 이 지역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없는 것인지를 몸소 경험했을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리석게 들렸을 것이다. 신이 육체를 입었다는 것도 이해될 수 없을 것이고, 신이 죽었다는 것오 믿지 못할 일이다. 게다가 신이 부활하여 다시 육체를 입었다는 것은 그들의 지혜로는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복음>은 <능력>으로 나타났고 회심자가 생겼으며 교회는 세워졌던 것이다. 도저히 인간적인 지혜로는 설명하거나 설득할 수 없는 내용인데, 그 중에 일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믿게 된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지혜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바울은 이것을 체험적으로 안다.) 그런데도 이들 중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설득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은 '하늘의 지혜'(이 땅의 지혜로는 이해 불가능한 내용)를 얻은 것이고, 이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사람의 노력과 탐구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음. 고전 2:12)를 통해서 된 것임을 바울은 말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2장의 '세상의 지혜'에 대한 말은 이런 맥락 속에서 된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 지혜의 무용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바울이 말하는 무용론은 '세상의 지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복음을 알수 없다'란 측면에서만 유효한 것이다. 


따라서 고린도전서 2장의 내용을 근거로하여 '인간의 지성의 무용론'과 특수한 사람들에게만 '신령한 지식'이 주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솔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 본문 말고도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성적인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과 그 지성을 통해서 사고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감추신 분이 아니라 드러내시는 분이고, 그것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고자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도 안될 것이다. 



[묵상]


1. 우리는 인간의 지성주의는 경계하지만, 인간의 역사 속에서 축적해온 지혜를 존중히 여긴다.


2.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보이신 구원의 지혜는 소수의 제한된 자들에게만 밝히 보이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온 천하에 하나님의 지혜를 밝히 드러내신 것이다. 자신들의 교회만이 그 지혜가 있고, 그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이단으로 봐도 무방하다.


3. 하나님의 지혜인 복음을 믿게 되는 것은 신비로운 것이지만, 신비주의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4. 우리는 우리의 합리성을 넘어서는 사실과 실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그것이 지성주의로 흐르지도, 초월주의로 흐르지도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교회사의 보화


1부. 초대교회


2세기의 문제


1. 교회 내부의 갈등과 거짓 교리 그리고 박해였다. 이를 위해서 당시 속사도는 교회의 하나됨을 강조했고, 감독의 권위에 순복해야 함(왜냐하면 교회가 갈라지고 분열하는 일이 벌어짐)을 강조했다. 

2. 이단 중에는 영지주의와 마르키온 주의였다. 영지주의는 구약의 천지를 창조한 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참된 신)가 서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마르키온 주의자도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유대교의 신앙이지 신약의 하나님과는 다른 하나님(본질 이라기 보다는 경향성이 다른)이라고 주장하여 구약을 인정하지 않음. 따라서 이 때는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에 대한 것이 강조되었다. 

3. 핍박과 박해가 중요한 외부적 어려움이었는데, 이 때는 과도하리만큼 순교에 집착하여 순교를 추구하였다. 


4. 호교론자들은 당시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을 변호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왜냐하면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사람들에 매우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비난 내용은 세 가지다. 

  1) 기독교인들은 무신론이다. (로마의 다신론을 반대했기 때문에)

  2) 기독교인들은 인육을 먹는다. (성찬을 살과 피를 먹는 다는 것으로 알고, 은밀하게 자기들끼리만 했기에)

  3) 기독교인들은 근친상간을 행한다.(서로 형제 자매라고 불리는 사람들끼리 결혼했기 때문에)


4세기의 문제


1. 교회 내부로부터의 문제: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아리우스 이단: 성자는 성부와 함게 영원히 함께 있는 분이 아니라, 성부에 의해 창조되었다라고 가르침)

   논쟁: 325년 6월 19일 니케아 신조를 통해 성자가 성부의 신적 성품을 공유한다고 단언함.


2. 성령과 성부, 성자와의 관계

   381년 공의회에서 바르게 정립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성령과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를 낭독함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함. 


수도원 제도


수도사들은 그 공동체 안에서 제자도를 추구하게 됨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2013. 2. 29)
사랑하는주의형제자매여러분 제글을끝까지읽어주세요부디..

큰도움이되리라믿어요

11월말경~ 친구와차를마시던중~ 친구가 디테스에서 2006년도에강사로 있던한분을..만났습니다 인사와 몇마디를나눈후~ 친구의권유로 성경공부를시작하게되었습니다
첫날부터 이상한점이 많아서..

.교회집사님께 은밀히기도부탁을하고...
조금더들어본후에 판단하리라마음먹었지만... 이상한느낌이계속들어도... 느낌만있을뿐. 말씀자체에서는반박할수 없게만들어진논리와교리였습니다... 

더군다나 그 강사님은두달후에 외국으로 출국을 하실거여서 나쁘게끝내고 싶지않아. 그냥외국 나가면끝이니 듣자고판단했고 계시록을 푸는 방법이약간다르지만.. 반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성경에서 확인시켜주고보여줬기때운에요~수십군대를찾아가며 말이죠 통달이란건 이럴때 쓰는거구나싶었죠

저는계속의심중에 끋날이오길기다렸고이전에 이단에 빠졌던 친구를 통해 정보를얻었으나. 분별하기가 매우힘들었습니다

그런데갑자기. 아직도배울것이많다며..

두달여간후에 다른센터를소개시켜줬고 
강한권유로 고민끝에 등록후세번째수업을듣고 집으로어제 돌아왔씁니다 그런데말씀에서 찾아서 보여주고 확인시켜주는데도... 영적인부대낌이있었씁니다

집에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천지 인터넷 방송을들엇고~ 밤열한시부터새벽네시까지 강의를찾고듣던중~ 배운거랑똑같은
도입부터끝까지같은강의를 하시더군요 여러가지를 더들으며~ 신천지임이확실해졌습니다

제가경험한신천지의특징을몇개로요약해보려합니다도움되시길~

1.비유와실체(실상) 이라는말을 많이 쓰고 비사로감추었다가 이제드러낼때가되었다는말을자주합니다(물론성경에서그근거를찾구요)

2.영계와육계라는표현을자주합니다
3. 진리와비진리라는표현을자주쓰고
4.주재림때라는표현을자주씁니다
사람의계명이라는말을자주씁ㄴ다
5.음행의포도주, 참목자, 새부대 새포도주, 기성신학을 재로 표현합니다,거짓목자등을많이쓰고사람을그리거나도표로정리하여도식화시켜서 논리적으로 이해시켜줍니다
6.설명을한후 말씀에서그러한지아닌지확인해보자며
말씀을여러구절찾아주고종파나교파는사람이만들어낸것이고 사도바울이말씀을 성령께받았다고말하며
기존신학은변질된것이고 만국이 미혹되었다고말합니다(말씀으로확인시켜줍니다반드시)

7.어떤단어를 설명할때 영적 의미와육적의미를나누어설명하기좋아합니다
8. 이제교회에서사람을 빼오거나 하지않고 말씀만배우고각자교회로돌아가라고합니다 기존 목사님이나교회부인도안하고
말씀만 배우고 가라고하는데 흔히그곳을쎈터라고부릅니다
9.예수님 목사님 성도 형제자매등의호칭은타교회와똑같이쓰며등의 주기도문등모든것을같이합니다

결론을맺겠씁니다 신천지의전략이달라졌씁니다.
빼내오지않고 도리어 전하게만합니다

나중에결론적으로새요한이등장하는데 이만희는재림예수가아니라 계시를받은약속의목자로등장해요 그러나이런표현이강의중에나오면 이미그때는나올수 없습니다ㅜ너무늦었습니다.... 이만희는지금전세계적으로 성도를미혹중입니다

제일중요한것은하나님과의관계인데그런말은안하고말씀풀이에만집중을 합니다 왜목사님전도사님도더많이빠지고 사랑하는인하조이어들이빠졌는지.. 이해가십분갑니다~

이미인천에만해도다섯개 이상의센터가있고 전국각지에 수십개의센터가있어요 교회안에굉장히깊이들어와있다는겁니다 제가 배운곳에 약 백여명이함께했고 다 각자교회에서오신분들입니다 그들이육개월후가가교회로되아가어떻게하실지는... 여러분이잘아시겠죠~ 

뱀과같이 지혜로우라는예수님의말씀을항상기억합시다
좋아요 ·  · 약 1시간 전 모바일에서 · 
  • 님이 좋아합니다.
  •  신천지 인터넷 방송싸이트에접속해서 속임수를보는것도좋겠지만~ 논리적인거에 혹하시는분들은도리어 안하시는편이나을듯요 

    왜냐면그들은성경을통달했거든요
  • 그리고~했으면좋겠씁니다라 는표현을 자주쓰고(이만희말버릇) 매우친절하고 사랑한다고고백하고 매우온화합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합신 이승구 교수님(2013. 1. 27 한가족예배)

중동교회에서 한 이단에 대한 강의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

1. 한국 교회 많은 성도가 이단에 빠지는 것도 심각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대충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이 급속도로 늘어가는 것이다.

2. 이단까지는 아니지만 이단에서 말하는 용어나 가르침에 익숙해 질만한 용어나 가르침은 삼가해야 한다. 한 걸음만 더 가면 이단이 된다. 그런 것이 익숙해지면 이단에 가서도 전통교회와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생각] 이단 강의였지만 외부에 대한 경고보다, 내부의 온전함에 더 초점 맞춰진 강의였다. 이단의 심각한 문제는 외부의 유혹보다 내부의 부실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을 확인함.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이제 성경의 65번째 책인 유다서에 도달했네요. 암튼, 더디가도 꾸준히 하면 가긴 가는것 같습니다. 바로 이어서 계시록으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까지는 해 봅니다.

 

[정리1. 본문 내용의 정리]

1.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가 부르심을 받은 자(하나님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한다.

2. 유다가 편지를 쓴 목적
  1)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편지를 쓴 것이다.
  2) 이는 공동체 안에 가만히 들어온 몇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1)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2)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다.

3. 유다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편지를 썼다.
  1) 하나님은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다.
  2) 천사들 중에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아니한 천사들을 큰 심판의 날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둠
  3) 소돔과 고모라도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가다가 형벌 받음.
   :  그것이 거울이 되었다. 
 
  [경계해야 할 이 사람들에 대해서]
   (1) 그런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한다.
     : 천사장 미가엘도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였는데... (아래 내용으로 수정합니다. 13.05.15)

     [김백합님의 수정요구로 수정됨]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비방을 하지 않은게 아니라

   누가 모세의 시체를 가져갈 것인지 마귀랑 변론할 때에 감히 마귀에게조차도 비방하는 말을 하지않았고 다만 "주님께서 네게 벌을 내리실 것이다(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했다는 말 같은데요


   (2)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한다.
     : 따라서 이들은 이성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3)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로 행하며, 삵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가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4) 이 사람들은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5) 아담의 7대손 에녹은 이 사람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 주께서 경건한 자들과 함께 임하셔서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불경건한 행동과 불경건한 말을 정죄하리라.
   (6)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4. 사도들의 권면을 잊지 말라
  1)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2) 이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3) 너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영생에 이르도록)
  4)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5)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6)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5. 인사: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주.

[정리2. 본문 내용의 재정리]

유다서의 목적은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도록 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공동체 안에 악한 마음으로 가만히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어 버린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다. 예수의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이와 같은 자들은 자고로 공동체 가운데 분리되어 심판을 받았다.(출애굽 백성들 중에도 있었고, 천사들 중에도 있었고,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 중에도 있었다.)
이들은 육체를 더럽히는 자들(방탕한 삶)이고, 교회의 치리를 받지 아니함으로 권위를 업신 여기는 자들인듯 하다. 그리고 함부로 비방하여 가인의 길로 혹은 발람의 길로 가는 자니 결국은 멸망에 이를 것이다. 이들은 공동체의 암초요 삯꾼이요 열매없이 껍데기에 불과한 사람이라 뿌리까지 뽑힌 나무에 불과하다.
성도들은 마지막 때에 사도들이 일찌감치 일러준대로 이런 사람들을 경계하고, 거룩한 믿음과 사랑,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림으로 영생에 이르도록 힘쓰라.

주님은 너희를 능히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그 영광 앞에서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분이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는 자.(4절)

바울은 주로 율법주의자와 논쟁하면서 사역을 했고, 또 그들을 대항하며 편지들을 작성했다는 것을 그의 서신서들을 통해서 보게 된다. 반면 재미있게도 히브리서 이후로 나오는 야고보서부터는 율법적인(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강조하는 내용들이 이어진다. 베드로의 서신도 그렇고 요한의 서신은 교회를 힘들게 했던 이단에 대한 경계를 다루는데, 이 이단이라는 것은 <육체를 방종하게 했던> 이단으로 보여진다. 유다서도 마찬가지 이단에 대한 이야기인데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들을 이단으로 보고 이들에 대해서 경계하고 있는 것이 히브리서 이후 서신들의 특징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바울은 율법주의자(행위 구원)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서의 구원>을 강조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던 무리중 독버섯이 자랐다. 바로 <은혜를 빙자하여 방탕한 삶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성경은 이들에게 대해서 <이단>이라고 규정하고, 이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인이라고 규정한다.(요일 5장) 이들과는 상종하는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구분되어야 함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은 언제나 특정 정황 속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 바울의 서신의 입장에서만 복음을 배워온 것은 아닌가 반성해 본다. 야고보나 베드로나 요한, 유다의 서신들도 열심히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선포하고, 그 은혜의 복음을 왜곡시킨 이단들을 경계함으로 복음의 본질을 잊지 않게 하고 있는데 말이다. 바울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바울의 신학 만이 신학의 전부인것처럼 가르치고 배웠던 것도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배운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오늘은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다행이도 본문이 요한이서. 한 장이면서도 13절밖에 안되는 본문이라 짬을 이용해서 성경묵상을 해 봅니다.

 

[정리1. 본문의 내용 정리_주변 내용은 최소화하고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 중심으로 정리]

1. 장로인 요한이 택하심을 받은 부녀(성도로서)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는 것이다.(1절)
  1) 너희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가 있다고 하니 심히 기쁘다.
  2) 부녀여, 너희에게 구하노니 이제는 서로 사랑하자.(사랑해야 하는 것은 처음부터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다.)
   : 사랑은 행해야 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6절)
  3)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다.
   (1)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다.
   (2)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다.
  4) 그러나 너희들은 스스로 삼가 요한이 일한 것을 잃지 않고(미혹에 넘어지지 않고) 온전한 상을 받으라.
   (1) 지나쳐서 그리스도의 교훈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다.
   (2) 그러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신자다.
   (3)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2. 할말은 많으나 편지로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직접 대면해서 하길 원하므로 이만 줄인다.(12절)

[정리2. 본문 내용의 재정리_ 역사적 상황과 저자의 의도를 고려한 재정리]

내용의 정황으로 본다면 요한일서의 연장선 상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고, 그들은 집안에 받아들이지도, 인사조차도 하지 말라고 말한다. 
끝까지 요한으로부터 받은 교훈 안에 거하고 다른 교훈에 넘어지지 말라는 것이다.


외부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그렇게 행동하고, 내부적으로는 서로 사랑할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여 권면하고 있다.


특히, 부녀들에게 사랑을 권면하고 있고, 그들의 자녀들에게도 그와 같이 잘 가르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어쩌면 주로 부녀들을 대상으로 이런 권면을 하는 것을 보면, 당시 교회에서 부녀들이 이런 미혹에 잘 넘어가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요한은 한번의 정성들인 편지로 일을 다 했다고 보지 않고, 추가적인 필요가 있으면 또 다시 좀 더 구체적인 대상을 향해서 편지를 썼다.

  요한이서의 내용이 요한일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거의 비슷하다. 미혹케 하는 이단을 조심하고, 더불어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요한일서와 동일한 메시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막한 편지를 다시 보낸 이유는 무엇인가?

  요한이서가 좀 다른 것이 있다면 편지를 받는 대상이 좀 더 구체화 되었다는 것이다. 부녀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권면하기 위한 편지다. 같은 내용의 편지이지만, 그럼에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애정의 정도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사도 요한이 우리를 염려하여 이렇게 편지를 보내주었다는 것은 우리가 좀 더 잘 되기를 바라고, 우리가 혹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한 번 더 막아보려고 하는 요한의 열정어린 애정을 느꼈을 것이다.

   큰 거 한 방으로 자신의 할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목회가 아닐 것이다. 필요하다면 작은 것을 계속해서 필요한 대상을 향해 전해주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큰 편지 하나로 정리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자리를 잡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에게는 좀 더 구체적이고 세밀한 관심과 사랑, 진심어린 권면이 필요하다. 이런 수고는 매우 힘든것이고 번거로운 일이 될 수 있다. 이 일은 안해도 면책을 받을 만한 핑계거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요한은 그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필요한 대상이 있으면 했다.

  목회란 무엇인가? 큰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을 일일이 찾아가 작은 일을 해야 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 수고를 마다할 때, 우리는 목회의 진정한 역할을 잊게 되는 것이다.

  대형 교회에서는 이런 일을 담임목사가 할 수 없다. 중형 교회에서는 이런 일을 할 수도 있겠으나, 부교역자를 시킨다. 소형 교회에서는 계속 해서 작은 일만 한다고 불평한다. 그래서 목회자와 성도 모두가 불행하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요한일서의 마지막 장에 이르렀습니다. 명확하게 분석하지 못했을 때에는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에 맞춰 내용들을 살펴봅니다. 내용들이 가설을 입증해 준다면 그것은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절하고 상식적인 가설을 세워서 요한일서를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설을 전제하면서 내용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크게 부딪히거나 충돌이 없다면, 그 가설은 좀 더 근거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요한일서는 그런 방식을 통해서 좀 더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말하는 모든 구절과 단어에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길을 잃기 때문이죠. 큰 맥락과 흐름을 봐야 합니다. 근사한 표현이 있는 구절이라고 해도 그것이 전체적 논리의 맥락이 아니라, 어느 한 부분의 강조이거나 부연설명이라면 그 구절에 크게 집착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리1. 내용 정리... 굵직한 맥락 중심으로]

1. 논리: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다.
        또한 나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논리: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2절)
   권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3절)
       이것을 행하는 것은 무거운 것이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이다.(우리는 세상을 이긴 자들이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12절)

2. 요한이 이 글을 쓰는 목적
  1) 이 글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고.
  2) 너희들은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데, 누구든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너의 필요를 구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구하라는 것이다.)
  3)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3. 마지막 정리(확신하고 너 자신을 지속적으로 지키라)
  1)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시매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
    : 거대한 이단의 폭풍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견딘 것은 하나님의 지키심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19절)
  2)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그 안에 있는 것을 알게 하셨다.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
  3)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정리2. 본문의 재구성]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계명인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켜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사랑하라)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을 이긴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이기 때문이다.(사랑이 불가능하고 어렵기만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요한일서를 마무리하면서 주는 몇 가지 당부가 있다.


1. 이단에 휩쓸리지 않고 잘 견딘 너희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임이 확인된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에게서 난 자들을 모든 악에서 지켜주셨다. 너희 안에 영생이 있음을 확실히 알아라.


2. 범죄한 자 중에 사망에 이르지 않을 정도에 있는 자들을 위해서 구하라. 도가 심한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변방에서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기도하며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시리라.


3.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이단을 경계하라)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서신서는 교리를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 목회를 위한 가르침이다.

   따라서 교리적인 부분과 내용이 있지만, 그것은 교리를 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 상황에 맞게 어떤 부분을 강조하거나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목회적 가르침은 교리와는 차이가 있다. 교리를 우리가 가지는 진리를 명확하게 하고, 다른 이론을 파하기 위한 가르침이지만, 목회적 가르침이란 성도를 신앙안에서 굳건하게 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을 주기 위함이 더 크다. 이것을 혼돈하면,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일에서 길을 잃고 만다.

    로마서가 복음의 교리에 초점 맞춰저 있다면(물론 로마서도 목회적인 목적을 가지고 썼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교리적인 부분이 강한 내용에서도 중가중간 목회적인 요소를 고려하고 있고, 후반부에서는 목회적 가르침에 집중한다), 요한일서는 목회적인 가르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본다.

   이것을 잘 구분해서 읽는 것도 성경을 잘 읽어 낼 수 있는 중요한 팁이다.

 

2. 요일 5:14 무엇이든지 구하면 들어주신다는 것을 확신하라는 내용의 의미.

   이 구절은 기도할 때 믿음을 가지고, 구한 것을 얻은 줄로 확신하라고 강조할 때 자주 언급되는 본문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기도의 내용은 개인적인 간구라기 보다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범한 자'에 대한 기도를 말한다. 이들에 대해서 구하면 하나님께서 구한 바를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일이나 어떤 물건과 성취에 대한 기도가 아니라, 사람을 얻고자 하는 기도라는 것이다. 잃어버릴 뻔한 사람에 대한 기도, 포기해 버릴 수있는 사람에 대한 기도, 다시 기회가 있는 사람에 대한 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말로 <중보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아닌, 잃어버릴 위치에 있는 사람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줄로 믿고 또한 기도한 것은 얻은 주로 믿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마 18:15-20 에도 죄를 범한 형제에 대한 교정 문제를 다룬다. 그런데 그 절차를 다루고 나서, 기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너희 중에 두 세사람이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이 또한 같은 맥락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에 대한 기도, 특히, 죄인과 연약한 자에 대한 기도는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교역자 수련회를 다녀와서 다시 요한일서를 시작합니다. 장별요약이 좋은 것 중에 하는 어느 정도 일정한 패턴의 생활 속에서 중간에 새로운 상황이 되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시간에 작성했던 글을 다시 한 번 읽고 흐름을 잡은 후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봅니다.

 

[정리1. 본문 내용 정리]

1. 사랑하는 자들아,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1절)
  1) 왜?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서 나왔음이라. 따라서 영을 다 믿지 말라.
  2)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의 증거: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영
   (1) 육체의 악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육체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가 율법과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함.
  3) 예수의 육체로 오심을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이 아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라.(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2.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그들을 이긴(그들에게 미혹당하지 않은) 자들이다.(4절)
  1) 그들은 세상에 속해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며,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2)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는다.
  3) 반면,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자는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다. 이것으로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안다.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7,21절)
  1)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안다.(조건이 아니라 원리)
  2)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함)
  3)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바 되었다.
   (1)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사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다.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려고 화목제물로 아들을 보내셨다.
   (3)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4) 우리는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는 사람이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는 자는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리라. 따라서 우리가 사랑하면 그것으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을 증명하게 되는 것이고, 사랑을 온전히 이루면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다. 따라서 성도는 마땅히 서로 사랑해야 한다.
   (5)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것이다.
    :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안타까워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리2. 본문 내용을 흐름에 맞춰서 다시 정리]

기독교가 영적인 종교이기는 하나, 모든 영을 다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단의 영도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을 구분해야 하고, 그 구분하는 기준 중에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이다.(당시 이단의 영을 구분하는 기준은 이것이었다.)


한차례 이와 같은 이단이 요한의 공동체를 휩쓸고 지나간 것 같다. 그러는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어 넘어졌고, 교회를 떠나갔다. 그리고 여전히 그 영향을 받은 세력들이 남아있었고, 또 그 가운데 흔들리는 성도들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요한은 그들의 편과 우리 편을 명확하게 갈라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서로의 말이 통할 수 없는 집단이다. 그들은 그들의 말만 듣기 때문이다.


이제 남아있는 성도들간의 중요한 지침은 사랑이다. 서로 비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했던 그간의 과정을 거쳐, 떠나야 할 사람은 떠났다. 그리고 그 과정중에 남아있는 자들 중에도 많은 상처를 가지게 되었다. 전쟁후의 피폐한 상황과 같은 것이다. 이제 살아남은 이 공동체는 서로간의 사랑으로 다시 세워져야 한다.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을 받았고, 사랑을 실천해야만 한다. 사랑은 절대계명이면서 동시에 시대적 사명이었던 것이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이단이라는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후에 그 후속작업의 중요성.

요한은 영지주의 이단이라는 거대한 폭풍이 교회를 휩쓸고 지나간 공동체를 향해서 편지를 쓰고 있는듯 하다.(에베소 교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계시록 2장에 언급된 에베소 교회는 이단을 정죄하고 판단하느라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였는데, 요한복음 4장에서는 그 메시지와 매우 일치하는 상황을 접한다.) 이런 큰 어려움을 만난 공동체에 필요한 것은 두가지 메시지 일 것이다.

  첫째는, 남아있는 세력 혹은 정리되지 못한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정리해 주는 것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은 모호함이나 포용이 아니다. 분명한 선을 그어주는 것이며, 내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요한일서 1-3장은 그런 측면에서 쓰여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둘째는, 이단논쟁으로 전쟁터처럼 상처입은 공동체를 사랑으로 다시 세워내는 것이다. 전쟁은 큰 상처를 만들고, 가족간에도 분열과 다툼을 만들어 낸다. 이 상처는 전쟁이 마친 이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것이 쉽지 않다. 내면의 상처, 관계의 상처가 서로 싸우는 중에(진리의 싸움이라고 할지라도) 너무 크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할일서 4장부터는 <서로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요한계시록 2장에 언급된 에베소 교회도 같은 상황에서 그런 지적과 책망을 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이다.

2. <서로 사랑하라>는 당시 시대적으로 가장 시급한 메시지 였으나, 이 메시지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나 시급하고 중요한 메시지다.

  그것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 사이에는 언제나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갈등이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크게는 전쟁으로, 작게는 대립과 양극화(계급,빈부 등과 같은)로 늘 긴장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유경쟁의 시대인 지금 그것은 성장과 생존이라는 미명하에 조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혼이 피곤하리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다. 부는 있으나, 영혼과 삶은 가난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를 치유하고, 이런 핍절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메시지는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해야 할 대상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신 것처럼, 자기 희생을 통한 사랑을 감행할 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되며 그것이 사랑으로서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공동체와 사회는 치유가 되고 회복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메시지를 교회는 전해야 한다. 세상에 전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부터 교회는 그것을 실천함으로서 <서로 사랑함>이 교회의 핵심 강령이며, 그것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예증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는 중에 세상을 향해 <사랑의 메시지의 실효성을 증거>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교회도 온전하지 않기에 완전한 기준의 사랑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의 위인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교회에서 보여지고 있고,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우리는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 우리는 이것 저것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 할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전혀 다른 가치관이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비상식적인 가치관이 아니라 초상식적인 가치관이 일어나는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비상식적인 가치관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것만 보여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지난 주 청년 아웃리치를 다녀오느라 작업을 한 동안 못했네요. 이제 약간식 정신도 돌아오고 일상으로 돌아오려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 봅니다. 오늘은 베드로 후서 2장입니다. 먼저 1장에서 어떤 내용이었는지를 간략하게 정리한 글을 통해서 살펴봤습니다. ^^ 미리 정리해 놓은 것이 이럴때 도움이 되는 군요.

베드로는 변화산 체험을 가지고 있는 사도였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성경이라고 말했지요. 그래서 성경은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되고 신중하게 그 뜻이 이해될 수 있도록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더군요. 그런 흐름 속에서 2장으로 들어가 봅니다.

[정리1. 본문 내용 정리]

1. 그러나 너희 중에 성경을 사사로이 푸는 거짓선지자들이 너희를 유혹하는데 이들은 멸망을 스스로 취하리라.

  1) 이들은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다.

  2) 여러 사람들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고, 그들은 탐색으로 지어낸 말로 이득을 삼으니 반드시 심판당하게 되리라

  예)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를 용서하지 않음. 노아 때의 세상을 심판함으로 경건한 가정을 보존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의 경건치 않음으로 의로운 롯이 악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을 심판하셨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를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신다.

  예) 특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 행하는 자와 주관하는 자를 멸시하여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그를 비방하는데, 이들은 마치 잡혀 죽기 위해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멸망을 당하고 만다.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죄를 범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며,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이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다.

 

2. 만일 그들이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라.

  1) 도리어 처음부터 의의 도를 알지 못한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2)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워버린 격이되었다.

 

[정리2. 본문 내용의 재정리. 내 방식으로 정리하기]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함으로서 이단을 받아들이고, 또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미혹하여 범죄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운명은 심각할 것을 본문은 말해주고 있다.

이들은 거짓된 가르침 뿐아니라 더러움에 빠진 자요 정욕가운데 행하는 자며 하나님에 대해서 불경건하며 불의한 자들이라. 하나님은 경건한 자들을 위해서라도 이들을 반드시 분리하며, 이들의 운명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 이들의 앞날에 캄캄한 어둠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들은 의의 도를 알고,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다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에 처음형편보다 더 비참하게 될 것이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하나님의 말씀을 사사로이 자기 멋대로 풀어서 해석하는 자들에게 임할 심판이 크다.(단순한 해석의 미숙이나 실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악한 의도와 미혹으로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불경건한 사람이다. 그리고 탐욕에 사로잡힌 자들인 것이다.)

2. 특히, 거짓된 해석으로 성도들을 미혹하고 그들을 세상의 정욕과 탐욕적인 삶으로 유혹하는 자들은 오히려 한 때 믿는 않았던 것이 더 나았을 정도의 참담함이 있게 될 것이다.

3.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구별하고 보존하시기 위해서 이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4. 얼마전 이단에 빠진 사람은 다시 용서받지 못하는 건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친구의 가까운 사람이 기존교회에 다니다가 이단에 빠졌기 때문이다. 아마 그 친구가 그런 질문을 하게 된 것은 오늘 본문(벧후 2장)에 언급된 표현때문에 목회자들 사이에, 혹은 사람들 사이에 전해진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을 했다.

5. 오늘 본문에 나온 사람들의 특징은 단순히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아니다.

  1) 벧후 2장에서 말하는 이들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들이다.

  2) 이들은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하여 자신의 탐욕과 정욕의 근거로 삼는 사람이다. 이들의 삶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도 정숙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3) 잘못된 확신과 미혹에 빠져 잠시 이단에 속해 있는 사람들과는 차별이 있다고 보인다. 교회에 다니다가 순수하게(?) 이단에 빠지게 된 사람들은 성경을 더 열심히 알려고 하다가, 혹은 신앙적 열심을 통한 하나님의 종말때의 상급을 바라는 마음으로 빠지는 경우가 다수다. 이분들의 문제는 무지와 그릇된 열심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동기까지 악하다고 볼 수는 없다.

  4) 벧후 2장에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탐욕과 정욕을 위해 사사로이 성경을 해석할 뿐 아니라 사람들을 미혹하여 타락하게 끔 하는 역할(노아의 때처럼,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처럼, 브올의 아들 바람처럼... 의도적인 악을 통해 경건한 자들을 미혹하려고 함)을 주도적으로 의식적으로 하는 자들이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봐야 한다.

  5) 무지로 인해, 그릇된 열심으로 인해 이단에 빠지게 된 것과는 차별을 두어서 봐야 할 것이다. 이단에 빠졌다고 해서 다시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만 볼 수는 없다.

  [약 5:19-20]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들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