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다보면 난해 구절로 알려진 본문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냥 읽기에도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구절이다.

벧전 3: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 죽은 자들에게도 주님께서 내려 가셔서 복음을 선포하시는 것인가? 그럼 그 말씀을 듣고 이미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도 회심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인가? 와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벧전 4: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 벧전 3:19 한 절만 봐도 좀 이상한데, 벧전 4:6에서 다시한번 좀더 구체적으로 이미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니, 그렇다면 죽음 이후에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로마가톨릭에서 말하는 최후 심판을 위해서 대기하는 '연옥'이라는 곳에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그들이 교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인가? 등등...

문자적으로만 이해한다면 전통적인 교리와 충돌이 일어나는 이런 본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 그래서 난해 구절로 구분하고, 그 충돌을 피해보려는 나름대로의 변명(해석)을 학자들이 쓰는데 종종은 억지스러운 것조차 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난해 구절을 담고 있다. 그리고 내 생각에 이런 난해 구절은 단순히 문자적인 측면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문맥상에서 어떤 흐름 속에 나오 이야기인지를 파악해서 그 흐름에 맞게 역으로 그 문자적 의미를 규정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이런 난해 구절은 의외로 쉽게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서론이 길었지만 암튼 시작하자.

 

[정리1. 본문을 내용으로 정리하기]

1. 그리스도께도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1)

  1) 이는 육체의 고난은 죄를 그치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2) 고난을 통해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다.(2)

  3) 음란과 방탕한 삶은 지난 날로 족하다.

  4) 세상은 같이 극심한 방탕으로 가지 않는 너희들을 이상히 여겨 비방한다.

  5)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실대로 고하게 될 것이다.

2. 나그네처럼 사람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만물의 마지막이 되었다는 종말의식이다.(7-11)

  1)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2) 무엇보다 뜨겁게 사랑하라.

  3)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4) 각자 받은 은사대로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5) 말을 하려면 하나님이 하시는 것처럼, 봉사를 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심처럼 하라.

3. 성도들을 향해 오는 시험을 어떠한 태도로 맞이해야 하는가?

  1) 너희를 연단하기 위해서 오는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오히려 즐거워하라.

  2)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이 있다.(하나님의 영이 함께 있는 것이다)

  3) 너희가 악행이나 불필요한 일을 행해서 당하는 고난과 같은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4) 우리가 그릇행하여 심판을 받는다면 복음을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경건하지 않은 자와 죄인) 어찌하리요?

  5) 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 받는 자들은 선을 행하는 중에 그 영혼을 미쁘신 하나님께 의탁한다.

[정리2. 본문을 다시 정리하기.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1. 우리는 육체적인 고난을 받을 자들인데, 이 고난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그 고난이 주는 유익이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고난은 죄를 그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남은 생애를 정결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얻을 수 있다. 고난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악을 행한 자들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고하게 될 것이다.

2. 나그네처럼 살지만, 성도들이 행하면서 살아야 할 원칙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랑하고 원망하지 않으며 선한 청지기로 자기의 은사대로 봉사하는 살아야 한다.(하나님이 하시는 것처럼)

3. 성도들이 경험하게 되는 고난을 이상한 것처럼 여기지 말고 오히려 그것으로 말미암아 얻게 될 복으로 인해 즐거워하라.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 받는 자들은 선을 행하는 중에 그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한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나그네인 성도가 살면서 당하는 고난에 대해서(억울한 고난까지 포함해서)

   고난 자체는 힘든 것이지만, 이 땅을 나그네로 살아가는 자에게 고난은 불가피한 것이다.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고난이 주고 있는 유익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죄로 부터 멀어지고 정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평온한 중에 죄를 짓는다. 악이 들어오고 유혹이 커진다. 오히려 적절한 고난과 환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하고 불필요한 일과 생각으로부터 지켜준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죄를 가진다. 따라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질때 생길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은 죄다. 고난은 우리의 몸과 생각을 어느 정도는 구속함으로 오히려 죄를 짓지 않게 되는 유익을 누리게 된다.

  고난과 정결함의 문제는 중요하다. 하나님은 그래서 고난을 통해 그의 백성의 생각을 깊이하게 하시면도 동시에 죄로부터 멀어지게 하시기도 하신다. 잘 생각해 보라. 내가 언제 죄를 많이 짓게 되는지... 한가할 때인지, 정신없을 때인지...

 

2. 우리가 나그네이지만, 우리가 이 땅에서이 삶의 방식은 매우 높아야 한다.

나그네와 종들은 소극적인 삶, 가능하면 주류 중심의 가치와 법으로 형성된 사회시스템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려고 하기 쉽다. 최소한의 시민의식 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는 나그네다. 따라서 이 땅의 규칙과 룰에 적극적일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 최소한의 것만 따르면 그만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 땅의 나그네인 우리를 향해서 도덕적으로 순결하게,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살라고 권면한다. 자기가 해야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권면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처럼 넉넉하게 그리하라고 말한다.

종교인들의 세금 문제가 최근에 대두되었던 것이 생각난다. 종교인들은 면세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의 권리와 특권으로 생각해서 고집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이 땅의 시민들이 하는 것과 같이 종교인들도 법이 정한 규정 안에서 세금을 내는 것이 베드로의 가르침을 고려해 볼 때 옳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3. 난해 구절(4:6)에 대한 평이한 해설.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여기서 말하는 이미 죽은 자들에게도 회심을 할 기회를 다시 주어진다는 의미처럼 보여지지만 그렇지 않다. 여기서 죽은 자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핍박과 박해를 받고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는 억울한 죽음을 당했지만, 결국은 죽음 이후 복된 소식이 전파되는데, 그 복된 소식이란 예수를 믿고 회심하여 구원을 얻으라는 말이 아니라, 고난과 핍박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던 그들이 결국은 옳다 인정을 받고 승리하게 되었다는 측면에서의 복음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육체적인 삶에 있어서는 심판을 받은 것처럼 보이나, 영으로는 하나님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려는 의도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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