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올렸던 글에서 언급했던 '예전에 복클에서 썼던 글'입니다.
조금 다듬고 추가해서 다시 올려봅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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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진화 논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들]

창조론의 영어 표현이 'Theory of Creation'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창조론'에 대응되는 영어 표현은 'Doctrine of Creation'입니다. (Doctrine : 교리) 즉, 창조론은 '기독론', '구원론', '종말론' 등 기독교의 여러 '교리이론'의 한 영역인 것입니다.

네이버 사전만 찾아봐도 바로잡을 수 있는 이런 사소한 오해 때문에 쓸 데 없이 논의가 꼬이고 감정이 상하고 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이 오해로 인해 발생되는 대표적인 문제들을 짚어 보자면...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이 오해와 갈등은 '창조과학'을 '창조론'과 동일시하여 표현하는 습관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고, 다시 말해서 '창조과학'을 '창조론'과 분리해서 이야기하면 아주 깔끔하게 해결됩니다.)

1. 많은 개신교인들이 이런 논리를 내세우곤 합니다.
"창조론도 이론(Theory)이고 진화론도 이론이다. (진화'법칙'이 아니고 진화'론'이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 과학적으로 우세하다고 할 수 없다." (응용 : "과학교과서에서 동등한 비중을 두고 가르쳐야 한다.")
(1) 이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말입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창조론은 'Theory'(과학이론)가 아니고 'Doctrine'(교리이론)이거든요.
(2) 그리고 이건 과학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과학적 권위가 '법칙>이론>가설' 순서로 부여되는 건 절대 아니거든요.
- 단적인 예로, 뉴튼이 제창한 만유인력의 '법칙'(혹은 중력법칙)은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제창하고 이것이 실험적으로 증명되면서 완전하지 못하다는 게 입증되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만, 만유인력의법칙에 비해서는 훨씬 정확하고 정교하다는 것이죠.)
- 드 브로이가 제창한 '물질파 가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물리 과정에서도 잠깐 나옵니다.) 사실상 현대 양자역학의 전제조건이 되는 이론이고, 당연히 실험적으로도 입증이 되었습니다. 
- 일반상대성'이론'에는 (양자역학과의 접점을 찾는 과정에서) 앞으로도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물질파 '가설'은 그런 거 없습니다.
- 이 사례들만 보면 오히려 '가설(물질파 가설)>이론(일반상대성이론)>법칙(만유인력의 법칙)' 순서로 진리에 가까운 것 같네요.(!!)
다시 말하지만, 과학에서 꼭 '법칙>이론>가설' 순서로 권위가 있고 진리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건 아닙니다.

2. 개신교 측의 이런 어리석은 주장들 때문에 많은 비기독교인들은 이런 반대 논리를 내세웁니다.
"창조론을 어떻게 이론(Theory)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과학이론으로서의 기본적인 자격요건도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창조'론'이라고 하면 안되고 창조'설'이라고 불러야 한다."
(1) 당연히 창조론을 Theory라고 할 수 없죠. 창조론은 Doctrine이니까요.
(2) 창조'설'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서 '설'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가설', 그리고 하나는 '설화'. 그런데 둘 다 이 논의에서 유의미한 접근이 못됩니다.
- '가설'의 경우 : 앞에서 말한 '법칙/이론/가설'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주장입니다. 가설이라고 권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거니와, 창조론은 '가설'이라고 부르기에도 적합하지 않거든요. (게다가 애초에 창조론은 Theory가 아니죠.)
- '설화'의 경우 : 차라리 이 쪽은 교리(Doctrine)로서의 창조론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운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창조론을 깎아 내려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감정적 만족 이외에 실제 논의에서의 실익은 없습니다. 애초에 창조론이 과학이론으로서 진화론과 대립하는 구조가 아니거든요. (어제 글에서도 말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과 대립관계에 있는 창조론'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은 '창조과학'이라는 것입니다.)

3. 원래 이렇게 민감한 토론에서는 용어의 정의가 모호하면 으레 논의가 겉돌고 유의미한 결론에 다다르기 어려운 것이 보통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은 간단한 사실관계만 바로잡아도(네이버 영어사전만 한 번 찾아봐도...ㅠㅠ)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문제들이지만, 너도나도 '창조과학'을 '창조론'과 동일시하여 표현하는 습관 때문에 기독인이든 비기독인이든 이 사실관계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전혀 본질적이지 않은 이 문제로 박터지게 싸우느라 정작 핵심은 건드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4. 창조과학에 동의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창조과학이 창조론의 동의어(혹은 전부)인 마냥 여겨지고 있는 현실은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갈등들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더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4-1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전제를 가지고, 그 '어떤 방식으로'에 대한 탐구를 하는 것이 바로 '창조론'이라고 하는 영역일 것입니다. 성경관과 세계관에 따라 창조론의 접근법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떤 방식이든 간에' 하나님의 창조 자체를 부정해버리면 기독교 신앙이 성립될 여지가 없거나 심각하게 왜곡된 형태의 신앙이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4-2. 바로 이것이 창조과학과 창조론을 동일시하는 것의 가장 큰 위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과학이 개신교 창조론의 전부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만약 창조과학과 진화론과의 대립구조에서 창조과학이 진화론에 비해 훨씬 열등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창조 신앙 자체에 대한 회의, 더 나아가 기독교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게 될 여지가 있습니다. 혹은 성경에 대한 신뢰가 창조과학에 대한 신뢰로 잘못 연결되어 다양한 오해와 갈등이 발생할 여지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실제로 굉장히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결론. 그렇기 때문에 쉽게 쉽게 '창조과학'과 '창조론'을 섞어서 부르는 기독인들의 습관은 고쳐져야 하며(예를 들어서, 어제 글에서 차성훈님께서 제안하신 것인데, 창조론 대신 창조신학이라고 바꿔서 부르는 것도 좋은 시도인 것 같습니다.) 창조론에 대한 바른 이해와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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