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plash-logoPerry Gr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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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13절.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절.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보내사 전도도 하며

15절.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절.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1)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절.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2)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3)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절. 또 안드레(4)와 빌립(5)과 바돌로매(6)와 마태(7)와 도마(8)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9)와 및 다대오(10)와 가나나인 시몬(11)이며

19절. 또 가룟 유다(12)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질서와 능력을 가지고 오신 분으로서 어느 정도 인정받으셨을 때(하나님의 아들로서) 이제 예수님은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13절)

2. 열 둘을 세웠는데 이들을 세운 이유를 살펴보면(14-15절)

  1)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고

  2) 보내사 전도도 하며

  3)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었다.

3. 열 두 명의 제자 명단은 다음과 같았다. 

  시몬(베드로), 야고보와 요한,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다대오, 시몬(가나나인), 가룟 유다.

4. 이들 중 특징적인 제자는

  1) 원래의 이름 외에 새로운 이름을 더한 제자는 시몬(베드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보아너게, 우뢰의 아들)

  2) 예수를 판 제자: 가룟 유다


[질문하기]

1.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역 전략(?)을 찾아 볼 수 있을까? 

  - 예수님께서 복음의 시작으로 이 땅에 오셔서 공적 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으셨다. 다양한 문제 제기에 대해 답하시면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고, 사람을 위하시고, 안식일의 주인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명확하게 하셨다. 그 결과 예수님의 초기 사역은 성공적이었고 사람들은 예수님께 주목했고, 심지어 유다와 예루살렘 뿐 아니라 주변 이방 지역에까지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확장하는 일을 홀로 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 중에서 따로 사람을 세워 일하시기를 원하셨다. 열 두 명을 따로 세우셨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있게 했으며, 보내사 전도도 하게 하시고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행하게 하심으로서 예수님 홀로가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제자들을 통해) 그 일을 이루어 가시길 기대하셨다. 사역의 새로운 전환점이 시작된 것이다. 

2. 열 두 명의 제자 중 다른 이름을 부여한 세 명의 제자에 대한 언급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 시몬에게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고,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에게는 보아너게(우뢰의 아들)이란 새 이름을 주었다. 본문에서는 새 이름을 주신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베드로의 이름이 반석이란 뜻이므로 베드로가 그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셨다고 볼 수 있고,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기질과 성향을 특징적으로 드러낸 말이 아닌가 싶다.(이후 성경을 읽는 중에 그 의미가 좀 더 밝혀질 수 도 있으리라)

3. 왜 예수님이 선택한 제자 중에 예수를 팔 사람을 포함하셨으며, 성경은 굳이 가룟 유다를 언급하며 숨기지 않았을까? 

  - 예수님의 제자가 열 둘이라는 것은 구약 이스라엘의 지파가 열 둘 이라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열 두명을 제자로 세웠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열 둘의 숫 자 안에는 배신자(예수를 파는 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이상하다.

  - 어쩌면 하나님의 완전한 나라는 이 땅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불완전함을 극복하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열 두 명 중 한 명은 배반하게 될 것을 모르지 않으셨음에도 그 배반자를 선택하시고 그와 함께 동행하셨고 마지마까지 함께 하셨다는 것은 이 땅에서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한 요소가 있을 수 밖에 없고,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팔리고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 같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더 큰 그림 안에 있으며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묵상하기]

1. 완벽한 완성을 위해 치명적인 문제를 심는다. 예수님께서 열 두명의 제자를 선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다.  열 두명의 제자 중에 예수를 판 가룟 유다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주는 메시지가 이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완벽한 성취와 결과를 위해 무흠한 사람을 찾고 방해가 될 모든 변수를 제거하는 것에 힘쓴다. 그렇게 준비하고도 기대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에 불안해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함을 이루기 위해 가장 불완전한 요소를 심어 놓으신다. 그리고 그 불완전한 요소로 인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까지 극복하시고 그것을 넘어 완전에 이르신다. 이것은 오히려 우리가 불완전함으로 가득한 이 땅을 살면서도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이라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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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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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기 19장] 음행을 행한 첩을 다시 데리고 오는 레위인의 모습, 다른 이방 성읍보다는 자기 민족의 성읍을 의지했는데, 오히려 자기 민족으로부터 큰 상처를 입게 되는 레위인의 상황. 그리고 그 처참한 사건의 배경 속에 너무나 중요한 존재인, 에브라임과 유다와 레위인이 주배경이라는 것이 혼란스럽게 만드는 본문이다. 혼란을 위한 장이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상황 설정

  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2)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 하였다. 

  3)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의 아버지 집에 돌아가서 넉 달을 머물렀다.


2. 레위 사람이 자기의 첩을 데리러 유다 베들레헴으로 가다.

  1) 레위 사람은 자기의 첩을 잘 설득하여 데리고 오려고 유다 베들레헴 장인의 집으로 갔다.

  2) 첩의 아버지는 레위 사람을 반기면서 3일간을 머물게 했다. 넷째 날 떠나고자 했으나 하루 더 머물것을 제안해서 하루더 머물렀다. 넷째 날 떠나고자 했으나 장인의 간곡한 제안으로 하루더 머물렀다. 다섯 째 날 떠나고자 하자 저녁까지 머물게 했고, 또 자고 갈 것을 제안했으나 레위인은 그 집에서 더 머물기를 원치 않아 늦은 시간에 나오게 되었다. 

  3) 늦은 시간에 나온 터라 얼마가지 못해서 숙박을 해야 할 곳이 필요했다. 가까운 곳에 여부스(예루살렘)가 있었지만, 레위인은 그래도 자기 민족이 다스리는 기브아로 갈 것을 결정한다.    4) 베냐민 지파의 땅 기브아에 들어갔으나 아무도 자기 집에서 유숙하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저녁 늦게 밭에서 일하다 돌아온 노인의 초대로 그 집에 유숙할 수 있게 되었다. 


3. 베냐민 땅 기브아에서 벌어진 참혹한 사건

  1) 노인의 배려로 하룻 밤을 평안이 머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기브아에 있는 불량자들이 노인의 집으로 찾아와 집에 들어온 손님을 끌어내라고 협박한다. 

  2) 노인이 자신의 딸과 이 사람의 첩을 내어 줄테니 손님을 괴롭히지 말라고 했지만, 이들은 진정되지 않았다. 레위인은 자기 첩을 그들에게 내어주었다. 그들은 그 첩을 밤새도록 괴롭히고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아주었다. 그 첩은 그 집 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 

  3) 아침에 레위인이 집에 가고자 하였으나, 그 여인은 문 앞에서 죽은 채로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여인을 데리고 집으로 온다.

  4) 그 레위인은 자기 첩의 시신을 12 덩어리로 나누어 이스라엘 사방으로 보냈다. 

  5) 그것을 본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이후로 이런 일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풀어서 쓰기]


오늘 본문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한 레위인과 에브라임 그리고 유다 베들레헴이라는 핵심적인 소재로 구성되어 있다.


한 레위인은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첩이 있었다. 그 첩은 유다 베들레헴 출신의 여자였다. 그런데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있었다. 레위인은 선한 마음으로 그 행음한 첩을 데리고 오고자 유다 베들레헴 장인의 집으로 갔다. 자신의 딸을 데리러 온 장인은 3일간 레위인 사위와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돌아가고자 한 레위인을 붙잡고 붙잡아 이틀을 더 머물게 했다. 장인은 계속 붙잡았지만, 레위인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은 늦은 시간이지만 장인의 집을 나와 고향으로 향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해가 떨어지고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해야 했다. 


가까운 곳은 여부스, 지금의 예루살렘이지만 그곳은 그 때까지만 해도 이방의 성읍이었다. 그래서 레위인은 이방인의 성읍이 아닌 자기 백성의 성읍에 있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는 베냐민 지파의 땅인 기브아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아무도 레위인을 영접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노인의 배려로 간신이 머물 곳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 곳에 있는 불량배들의 행패로 인해 곤란한 상황이 되자, 레위인은 자신의 첩을 그들에게 내어 주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첩은 밤새 능욕을 당하고 죽게 된다. 이 사실에 분개한 레위인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그 첩의 시신을 12 덩어리로 나누어 이스라엘 사방에 보내게 된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함께 분개하게 된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또 다시 에브라임, 유다, 레위인 이라는 소재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사기의 이야기 속에서 에브라임이 자치하는 비중과 유다가 차지하는 비중, 그리고 유독 레위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브라임은 대부분은 부정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고, 유다는 자꾸 에브라임과 연관되는 관계로 등장한다. 레위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구분된 지파의 백성으로서가 아니라, 매우 세속적이며 영적으로 무감각한 존재로 등장한다. 


훗날 북이스라엘의 중심과 남유다의 중심 그리고 성전의 중심이 될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부정적임을 사사기에서는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많은 다수의 사사들이 그 외의 지파에서 나와서 활동하고 있음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싶다. 


2. 믿었던 자기 백성에게 오히려 배신을 당하게 되다.


레위인은 길에서 밤을 맞게 되었기 때문에 머물 곳이 필요했다. 가장 가까운 성읍은 여부스(예루살렘)였지만, 그래도 레위인은 이방인의 성읍에 머물기 보다는 자기 백성이 다스리는 성읍에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하고 베냐민 지파의 땅 기브아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 백성들은 레위의 일행을 맞아주지 않았다. 나중에 한 노인의 초대로 머물수 있는 곳을 얻긴 했지만, 불량배들의 무례한 행동으로 인해 레위인은 자신의 첩이 능욕받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자기 백성에게 더 큰 피해를 입었고, 더 큰 고통을 얻게 된 것이다. 


왕이 없언 시대, 법이 없고 믿음과 신뢰가 모두 깨어진 시대가 우리가 보고 있는 사사 시대였다. 믿었던 자기 민족이 오히려 더욱 큰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볼 수 밖에 없는 시대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누가 딱히 선이고 누가 악이라고 구분하기도 어려운,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섞여 있는 시대가 이 시대인 것이다


지금 우리의 시대를 보고 있는 것인지, 과거 사사 시대를 보고 있는 것인지 착각이 들 정도다. 이 모든 혼란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왕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왕을 세우자가 아니라, 과연 나는 지금 누구를 나의 왕으로 섬기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때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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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기 17장.] 이스라엘에 왕이 없다는 것,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의 법에 따라야 하겠지만, 이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왕이 나와야 할 시대가 되었고,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스려야할 때가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하는 사람과 얽힌 이야기

  1) 미가의 어머니가 은 천백을 잃어버린 것으로 인해 저주를 하게 되었다. 

  2) 미가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그 은 천백을 가져갔다고 하자 미가의 어머니는 자신의 저주한 말을 돌이켜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한다고 했다. 

  3) 미가는 그의 어머니에게 은 천백을 돌려드리자, 어머니는 이 은으로 자신의 아들을 위하여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이 돈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린다고 하면서 다시 아들에게 돌려주었다.

  4) 미가가 그 돈을 어머니에게 다시 돌려주자, 어머니는 그 중에 은 이백을 가져다가 신상을 부어 만들어서는 미가의 집에 두었다. 

  5) 미가는 자기 집에 신당이 있으므로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어 한 사람을 세워서 그를 제사장으로 삼았다. 

 [결론]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 


2. 미가의 집에 제사장이 된 유다 베들레헴에서 온 레위인 이야기

  1) 유다 베들레헴에 한 레위인 청년이 거류할 곳을 찾아 다니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렀다. 

  2) 미가는 그가 거류지를 찾는 것과 레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을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어 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줄 것은 약속했다. 

  3) 레위인은 그 사람과 함께 거주하기를 만족해 했고, 그 레위 청년은 미가의 아들 중 하나와 같이 되었따. 

  4) 미가가 그 청년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미가의 제사장이 되게 했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복 주실 것을 기대했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을 다시 풀어서 쓰기]


사사의 이야기가 삼손으로 끝나고 이제는 이스라엘의 영적 도덕적 상황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처음으로 소개된 사람은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미가라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의 어머니는 집에서 없어진 은 천백에 대해서 가져간 사람을 저주한다. 그러나 그 은을 가져간 것이 자신의 아들 미가라는 것을 알게 되자, 오히려 자신의 저주가 아들 미가에게 오게 하지 않게 할 방법으로 그 은의 일부로 한 신상을 만들어 미가의 집에 두게 하였다. 미가는 그것을 모셔둔 신당을 위해서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어 놓기 까지 했다. 


영적인 면에서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었다. 성경 기자는 그 때에 왕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다고 표현한다.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미가의 집에 고용된 제사장에 대한 것이다. 유다 베들레헴에 머물던 레위인 청년이 거류지를 찾아다니다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까지 오게 된다. 미가는 그를 자신의 집의 제사장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하고 그와 계약을 한다. 레위인은 그 계약에 만족해 하면서 미가의 집 제사장이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가는 자신이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에브라임 과 유다에 대한 이야기가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에브라임에 대한 이야기는 사사기 속에서 몇 차례 언급된다. 주로 부정적으로 묘사되었었는데 여기서도 그렇게 언급된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에브라임과 더불어 유다 베들레헴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물론 레위인이 유다 지파는 아니지만,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의 한 청년이라고 표현한 것(7절)을 볼 때 거의 유다와 같은 상태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그런 레위인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거류할 곳을 찾아 다니다가 미가를 만나 그의 집에 제사장이 된다. 


에브라임이나 유다 지파나 또한 레위인이나 모두 부정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는 사사기의 기록 자체가 에브라임과 유다 그리고 레위인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따라서 독자는 사사기를 읽으면서 소재로 사용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의 저변에 깔린 의도를 읽어 내야 할 것이다. 


2. 우리가 보면 이상해 보이는 행동을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상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상을 만들고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그러면서도 개인 제사장을 들이는 미가의 집이나, 거류할 곳이 필요하지만 레위인이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고용되어 큰 갈등없이 지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매우 거북하게 들린다. 그런데 미가와 레위인은 전혀 거북함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복을 내리시지 않겠는가 기대까지 하게 된다.(2,3절, 13절)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이것이 그 당시의 영적인 상황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함이리라 본다. 그 만큼 사사 시대는 무지했고(그래서 그릇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축복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나님의 법이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각자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으나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적 무지는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다. 특히, 한 개인이 아니라 그 시대와 그 시대의 교회가 그와 같은 상황이 될 때 교회는 더더욱 돌이킬 수 없는 무지와 영적 타락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시대의 교회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교회에게 주신 자정능력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고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3.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왕이 없었기 때문에 각자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다.(6절)


왕이 필요한 시대가 와야 한다는 것에 대한 명분을 주기 위함인지 아니면 모든 사람이 왕처럼 행동하여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못한 무법한 시대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를 의미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왕이 없다는 것, 최종적 권위가 없다는 것은 이와같은 영적 무질서를 만들어 내면서도 문제의식이 없서 개선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인도한다. 


이제 이스라엘은 다시 왕을 통해 재정비가 필요한 때가 되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 그렇게 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을 대신 하여 하나님의 법을 세우고 다스릴 인간 대리자의 통치가 필요한 순간이 된 것이다. 그렇게 사사기는 사무엘서의 사울과 다윗으로 이어지는 것인가 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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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기 15장] 삼손은 블레셋에게 복수할 수 있는 인간적인 기회들을 최대한 활용함으로 자신의 영웅됨을 자랑할지 모르지만, 상황은 자기 민족에게 더 불리한 방향으로 나타난다. 삼손은 목적은 옳았으나, 과정을 순결하지 못했으며, 인간적으로는 지혜로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더 악화된 상황을 만들어내는, 하나님의 일꾼이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삼손이 아내와 장인을 핑계 삼아 블레셋을 공격했다.  

  1) 삼손이 밀 거둘 때에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의 아내를 찾고자 하여 장인에게로 갔다. 

  2) 장인은 삼손이 그 아내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 삼손의 친구에게 주었다고 하면서, 그의 동생을 아내로 취할 것을 제안했다.(동생이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

  3) 삼손은 블레셋에게 복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고, 이것을 핑계삼아 여우 300마리를 잡아 그 꼬리를 둘씩 묶고 거기에 홰를 달아 블레셋 사람의 곡식 밭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불태웠다.

  4) 블레셋 사람은 이런 일로 말미암아 흥분하고 누구로 말미암음인가를 알아보니 삼손의 장인인 블레셋 사람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여인과 그의 아버지를 불살랐다. 

  5) 삼손은 자신의 아내와 장인을 죽인 것을 핑계로 블레셋 사람에게 다시 원수를 갚는 형식으로 블레셋 사람을 죽였다. 그들의 정장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였다. 

  6) 그리고 에담 바위 틈에 머물렀다. 


2. 삼손은 자기 민족인 유다 백성들에 의해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진다. 

  1) 블레셋은 이 사건으로 인해 유다 민족을 치기 위해 레히에 가득히 몰려들었다. 

  2) 유다는 갑작스러운 블레셋 사람의 공격에 이유를 묻자, 삼손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3) 유다 사람 3000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왜 블레셋에게 그리하였는지를 따졌다. 블레셋이 우리를 지금 지배하고 있는데, 왜 그와 같이 했는가? 그러자 삼손은 그들이 나에게 행한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한 것이라고 한다. 

  4) 유다 사람들은 삼손을 결박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고, 삼손은 너희들이 나를 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유다 사람들의 손에 의해 결박되어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진다. 

  5) 삼손을 넘겨 받은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향해 소리지르자, 여호와의 영이 갑자기 임하여 묶인 줄을 끊고, 삼손이 나귀의 턱뼈를 집어들고 블레셋 천 명을 죽이게 된다. 

  6) 삼손은 나귀 턱뼈를 집어 던지고, 자신을 통해 큰 구원을 베푸셨으나 이제 자신은 목말라 할례 받지 못한 자들에게 죽게 되었다고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7)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 삼손이 정신을 회복되고 소생되었다.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다.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었다. 

  8)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 동안 지냈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풀어서 쓰기]


삼손이 블레셋 여인과의 결혼을 통해서 이루려고 했던 블레셋에 대한 복수가 실패로 돌아가자 삼손은 분을 내고 집을 돌아갔었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장인은 그의 딸을 삼손은 친구에게 주었다. 다시 삼손이 그의 딸을 찾지 않을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런데 삼손은 밀 거둘 때에 염소 새끼 한 마리를 가지고 그의 아내를 찾기 위해 장인의 집으로 간다. 장인은 당황하여 상황을 설명하고 그 부인의 동생을 주려하지만, 삼손은 오히려 이것을 핑계삼아 블레셋 주민들에게 복수를 한다. 여우의 꼬리에 홰를 달아서 농작물을 모두 태워버리도록 한 것이다. 화가난 블레셋 주민들은 삼손의 장인의 잘못으로 기인되었기 때문에 삼손의 부인과 그의 아비를 불살라 죽인다. 삼손은 블레셋 주민들이 자신의 아내와 장인을 죽인 것에 대해서 또 다른 복수할 정당한 기회라고 보고, 그 마을 사람들을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였다. 그리고는 에담 바위 틈에 숨어 지냈다. 


삼손으로 마을이 쑥대밭이 되자, 블레셋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삼손에 대한 보복을 유다 사람들에게 하고자 했다. 당황한 유다 사람들은 이 일이 삼손으로 말미암은 줄 알고, 에담 바위 틈에 숨어 있는 삼손을 찾아간다. 그리고 삼손을 결박하고는 블레셋 사람에게 넘겨준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넘겨받으면서 삼손을 죽이고자 달려들자, 하나님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여 나귀 턱뼈로 천 명의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다. 이스라엘이 큰 구원을 이루었으나, 급격한 갈증으로 인해 하나님께 호소한 삼손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샘에서 물을 마시고 회복되었다. 그렇게 삼손은 20년간 사사로 지냈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삼손은 인간적인 방법들로 블레셋을 복수할 기회를 찾으나 상황은 점점 이상하게 된다. 


삼손이 처음부터 그의 아내가 다른 사람에게 간 것을 알고, 그것을 기회로 삼아 복수하려고 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아내를 찾으러 갔을 때, 아내가 다른 사람에게 보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오히려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3절) 그렇게 마을에 피해를 주자, 그 마을 사람들은 잘못행한 삼손의 장인을 심판하고 삼손은 또 다시 이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명분을 얻어 그 마을 사람들을 죽인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간다. 블레셋이 오히려 유다 백성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몰려들게 된 것이다. 결국 삼손은 자기 민족의 손에 의해 블레셋으로 다시 넘겨지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인간적인 방법과 기회를 노린 삼손은 그의 힘으로 일시적인 복수를 했지만, 그러나 그런 복수는 더 큰 위험으로 다가 오게 된다. 자신을 넘어 자신의 민족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 되고 만다. 삼손은 하나님의 사사지만, 가장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그것을 이루어 가려고 하는 사사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나님의 종이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셈에 
빠른 목회자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단기간 무엇을 얻어 낸것 같은 영웅심을 가질지 모르겠으나 더 큰 위험이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2. 삼손에게서 예수의 냄새가 난다. 


삼손에게서 예수의 냄새가 난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유대인)에게 잡히어 죽게 된 것처럼, 삼손도 자기 백성을 위해서 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에 의해서 포박되어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게 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목말라 고통스러워하셨던 것처럼, 삼손도 나귀 턱 뼈로 천명의 블레셋과 싸운 이후에 매우 목말라했다. 


물론 차이가 나는 것도 많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삼손의 탄생에서부터 오늘 본문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지향하는 것 같은 냄새가 솔솔 난다. 위에서 살펴봤던 자기 백성들을 위해 싸웠는데, 결국은 자기 백성들 특히 유다 지파 사람들에 의해서 넘겨지게 되는 장면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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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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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시 1장]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부분과 사사기 1장이 서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관점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호수아서는 언약의 성취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사사기는 실재적인 현상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마치 열왕기와 역대기가 같은 역사를 다르게 기록하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바라볼 때, 두 가지 관점이 모두 필요한 듯 합니다. 언약의 성취로서의 종말을 바라보는 안목도 필요하고 언약의 성취와는 괴리된 현실에 대한 안목도 필요합니다. 이 두가지 안목이 모두 필요하니까 성경은 역사적 사건을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요?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유다와 시므온의 정복 활동

  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과 가나안 족속과의 싸움에 대해서

  2) 여호와께서 유다를 먼저 부르셨다. 그래서 유다는 시므온과 연대하여 전쟁을 치르게 됨.

   (1) 유다가 올라가자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다.

   (2) 베섹에서 아도니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이기니 아도니 베섹의 엄지손가락과 엄지 발가락을 자름

   (3) 아도니 베섹은 자신이 전에 70명의 왕들에게 그와 같은 행동을 했던 것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아도니 베섹이 그렇게 죽었다. 

  3)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고, 성을 불살랐다.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다.

  4) 갈렙은 기럇세벨을 점령한 자에게 자신의 딸을 주겠다고 했는데,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했다. 갈렙은 그의 딸을 그에게 주었다. 그의 딸 악사는 출가하면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땅과 함께 샘물로 구했는데, 갈렙으로부터 윗샘과 아랫샘도 얻었다. 

  5) 모세의 장인은 겐사람인데,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거주했다.

  6)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을 진멸하였는데 그 성읍의 이름이 호르마라 하였다. 

  7) 유다가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다. 

  8)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셨으므로 그의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 주민들은 철병거가 있어서 쫓아내지 못했다. 

  9) 헤브론은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베냐민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여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다.


2.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벧엘을 치다. 

  1) 요셉의 가문도 벧엘(본 이름은 루스)을 치러 올라갔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 

  2) 정탐꾼들은 벧엘에서 나오는 사람에게 성읍의 입구를 알려달라고 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벧엘을 치고  그 사람과 그의 가족들은 놓아 보냈다. 이들이 헷사람의 땅에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고 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있다. 


3.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족속

  1) 므낫세가 쫓아내지 못하자,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다.

  2)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게셀이 그들중에 거주함.

  3)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해서 그들에게 노역을 지켰다. 

  4) 아셀이 그 땅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면서 그들을 쫓아내지 못했다. 

  5) 납달리도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다. 그 중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은 노역함.

  6) 아모리 족속은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었다. 골짜기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였다. 후에 요셉 가문의 힘이 강성해 지자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 노역을 하였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쓰기]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라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시점으로 보면 여호수아서 다음의 이야기인데, 처음 얼마는 여호수아서와 중첩되는 내용이 있지 않은가 싶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의 정복을 마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사사기에서는 아직도 전쟁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그 중에는 아직 완전히 점령되지 못한 지파와 지역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서는 언약적 관점에서 예언적으로 본 것이고, 사사기는 실재적인 상황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가나안 정복과 관련되어 크게 두 지파가 부각된다. 유다와 요셉지파다. 유다는 시므온과 연합하고, 베냐민과 같이 언급된다. 주로 유다의 성공적인 정복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아도니 베섹을 심판한 장면과 옷니엘을 통해 기럇세벨을 정복한 내용, 모세의 장인 겐사람들의 후손들이 유다와 함께 하게 된 것(모세와의 연결점을 의도한 듯) 등 유다의 정복을 성공적으로 그린듯 하다. 물론 유다의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골짜기 주민들은 철병거로 인해 정복하지 못했다고 언급한다. 

유다와 대조되는 지파는 요셉(에브라임과 므낫세)지파다. 이들은 벧엘을 성공적으로 정복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지파들의 이야기가 언급되는데, 므낫세와 에브라임, 스불론, 아셀, 납달리도 그 땅 주민들을 온전히 정복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단 지파의 경우는 오히려 아모리 족속에게 쫓겨서 산지로 몰려나갔다. 그들 가운데 거주한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의 각지파가 강해진 후에야 노역을 시킬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다른 지파에 비해 두드러지게 보이는 지파는 요셉지파인데 이들이 단 지파를 쫓아낸 아모리 족속을 제압하여 노역을 시킨 것으로 언급된다. 


1. 사사기의 시작에서 유다와 요셉 자파에 대한 기록이 강조되고 있다. 

2. 완전한 정복을 이루지 못하고 시간적인 간격을 두고 점진적으로 정복해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오랜시간 가나안 족속과 함께 상존하는 시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리3.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사사기의 관점 포인트

  1) 유다 지파와 요셉 지파(에브라임과 므낫세)에 대해서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읽으라.

  2) 가나안 땅에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족속들과 이스라엘 사이의 역학관계를 살피면서 읽으라.

  3) 다른 지파에 비해서 상당히 위축된 <단지파>의 운명에 대해서 살피면서 읽으라. 


사사기 1장은 사사기서를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디에 주목해서 읽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속에서 초점을 잃지 않으려면 위의 세 가지 항목(추가적으로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을 기본적으로 주의하면서 읽어 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2. 완전한 정복이면서 충분하지 못한 정복이었다.


사사기 1장에서의 이스라엘 정복에 대한 이야기는 여호수아서에서 본 이스라엘 정복이야기하고 분위기가 다르다. 사사기는 아직도 정복해야 할 곳이 많고 쉽게 정복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시간적으로 앞선 이야기를 다룬 여호수아서는 모든 정복이 잘 마무리 된 것처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적지 않은 혼동이 온다. 


이는 여호수아서의 정복이야기 관점은 예언적인 성취에 초점을 둔 것이고, 사사기의 정복이야기는 실재적인 현상을 중심으로 기록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같은 기간의 역사 기록에 있어서 열왕기서와 역대기의 기록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서로 모순처럼 보이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두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언약의 성취시점인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지금 현실에서 보는 역사적 한계에 대해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여호수아서는 완성을 지향하고 승리를 지향함으로 연약한 성도로 하여금 소망을 바라보게 한다. 반면 사사기는 현재의 불완전함을 설명함으로서 영적인 긴장을 유발시킨다. 성도는 이 두가지 내용을 공히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하며, 상황과 시대에 따라 그 강조점을 다리하면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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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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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여호수아 15장] 갈렙은 헤브론을 정복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헤브론을 정복하는 그 옆에 있는 드빌까지 정복했다. 갈렙의 열정과 에너지가 묻어나는 장면이다. 최소치로 살것인가? 아니면 최대치에 도전할 것인가? 실패하더라도 시작은 최대치로 시작해 보자! 갈렙처럼!!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유다 자손의 땅(지도를 참고해야 할 듯, 정리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

  1) 유다 땅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설명함

  2) 유다 지파 갈렙이 헤브론(기럇 아르바)과 드빌(기럇 세벨)을 정복하다. 

   (1) 갈렙은 아낙의 소생 그 세 아들 곧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다. 

   (2) 헤브론을 정복하고 거기서 올라가 드빌(기럇 세벨) 주민을 쳤다. 기럇 세벨을 정복할 때에는 정복하는 자에게 자신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기로 해는데 갈렙의 동생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함으로 악사를 아내로 맞아들이게 되었다. 

   (3) 악사는 출가하면서 아비에게 복을 받기를 원하면서 샘물도 달라고 하자 갈렙은 윗샘과 아랫샘을 주었다. 

  3) 유다 자손의 기업(유다 영토 내에 있는 성읍의 이름과 그 성읍의 숫자를 알려줌)

  4) 예루살렘 주민은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다.(63절)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쓰기]


유다 지파가 차지한 땅에 대한 경계가 어떻게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해 주고 있다.(지도를 통해서 확인하는 것은 더 손쉬울 듯 하여 정리를 하지는 않는다.) 그 과정 중에서 유다 지파인 갈렙은 헤브론의 아낙 자손들을 죽이고 그 성읍을 정복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갈렙은 드빌까지 정복하기를 원했고, 정복한 자에게 자신의 딸인 악사를 아내로 주는 제안도 했다. 적극적인 의지에 발맞추어 옷니엘은 드빌을 정복하고 악사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악사는 옷니엘에게 큰 유익을 주는 여인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샘물을 요구함으로 윗샘과 아랫샘을 얻음)유다 전역을 정복하기는 했지만,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 사람들은 온전히 정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유다의 기업(영토)을 먼저 언급하고 있다. 


정복해야 할 본토로 들어와서 정복사업을 마치고 제일먼저 땅에 대한 기업을 언급한 지파는 유다지파다. 이것은 유다지파가 앞으로 이루게 될 이스라엘에서 가지는 중요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유다 지파 안에는 예루살렘이 있고, 베들레헴이 있다. 헤브론로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이후에 지속적인 갈등을 일으켜 이스라엘의 적이 되는 블레셋의 중요한 도시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유다가 차지한 영통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고, 궁극적으로는 유다 지파를 통헤서 다윗과 메시야로 이어지는 혈통이 형성되게 된다. 예수님의 탄생도 베들레헴에서 일어난다. 유다 지파는 신약 뿐 아니라 이미 구약에서부터 그 중심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성경 본문을 통해서 적용할 내용을 찾아야만 할 필요는 없다. 이와 같은 정리된 정보를 가지고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것이 나중에 다른 본문을 이해하고 삶에 적용으로 가는 과정으로 얻어두어야 할 아이템일 수 있으니, 득템한 셈인 것이다. 


2. 갈렙의 헤브론 정복을 언급하고 있다.


14장에서 언급했던 갈렙의 자신감있던 고백이 실제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그것도 충분히 넉넉히 성취되었음을 말한다. 갈렙은 아낙의 세 아들을 멸하고 헤브론을 차지한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드빌(기럇 세벨)까지 점령하려 했고, 그것을 점령하기 좋은 방법(자신의 딸을 상급을 줌)을 동원하여 조카인 옷니엘은 그 성읍을 정복한다. 실제로  옷니엘에게 자신의 딸 악사를 준다. 악사는 지혜로운 여인이었고, 남편에게 큰 유익을 주는 여인이었다. 출가하기 전 아버지에게 샘물에 대한 요구를 하고 결국은 윗 샘과 아랫 샘을 얻어왔다. 결국 옷니엘은 큰 복을 얻게 된 것이다. 


갈렙의 헤브론 정복은 간신이 이긴 전쟁이 아니다. 갈렙이 남은 힘을 다 쏟아 자신이 한 말을 책임지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다. 갈렙의 에너지와 열정은 그 이상이었다. 헤브론을 정복한 갈렙은 더 나아가 드빌까지 욕심을 냈다. 자신이 하기 어려운 것은 포상제도를 통해서 다른 장수를 통해 성취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는 과정 중에서 옷니엘이라는 장수가 발견되었다.(옷니엘은 사사 시대에 사사로서 다시 언급된다.)


최소치로 살것인가 최대치를 향해서 도전할 것인가에 대한 자극을 주는 인물은 갈렙이다.


3. 예루살렘의 여부스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오늘 본문은 결정적으로 중요하게 될 땅, 예루살렘은 정복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여부스 족속이 강력했는지 아니면 예루살렘이 철옹성과 같이 견고했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둘 다일수도 있겠다. 암튼 결과적으로 예루살렘은 정복하지 못한 상태로 후대의 누군가를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반드시 정복해야 할 성임을 알게 된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이 큰 승리인 것만은 확실하지만, 완전하지 못했다는 것을 중간 중간 보여준다. 이는 훗날 사사 시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남겨진 과업이 됨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내 시대에 완전하게 마칠 수는 없다. 모세도 그렇게 하지 못했고, 여호수아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은 후대에까지 이어져서야 완성되는 경우가 있고, 중요한 일일수록 더욱 그렇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에는 부족함이 없고 미진한 부분이 없다. 완벽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래서 복음은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복음 외에 어떤 것도 완전한 것은 없다. 여유를 가지고 자신에게 좀 느긋해지자.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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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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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성경의 65번째 책인 유다서에 도달했네요. 암튼, 더디가도 꾸준히 하면 가긴 가는것 같습니다. 바로 이어서 계시록으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까지는 해 봅니다.

 

[정리1. 본문 내용의 정리]

1.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가 부르심을 받은 자(하나님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한다.

2. 유다가 편지를 쓴 목적
  1)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편지를 쓴 것이다.
  2) 이는 공동체 안에 가만히 들어온 몇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1)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2)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다.

3. 유다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편지를 썼다.
  1) 하나님은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다.
  2) 천사들 중에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아니한 천사들을 큰 심판의 날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둠
  3) 소돔과 고모라도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가다가 형벌 받음.
   :  그것이 거울이 되었다. 
 
  [경계해야 할 이 사람들에 대해서]
   (1) 그런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한다.
     : 천사장 미가엘도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였는데... (아래 내용으로 수정합니다. 13.05.15)

     [김백합님의 수정요구로 수정됨]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비방을 하지 않은게 아니라

   누가 모세의 시체를 가져갈 것인지 마귀랑 변론할 때에 감히 마귀에게조차도 비방하는 말을 하지않았고 다만 "주님께서 네게 벌을 내리실 것이다(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했다는 말 같은데요


   (2)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한다.
     : 따라서 이들은 이성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3)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로 행하며, 삵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가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4) 이 사람들은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5) 아담의 7대손 에녹은 이 사람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 주께서 경건한 자들과 함께 임하셔서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불경건한 행동과 불경건한 말을 정죄하리라.
   (6)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4. 사도들의 권면을 잊지 말라
  1)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2) 이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3) 너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영생에 이르도록)
  4)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5)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6)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5. 인사: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주.

[정리2. 본문 내용의 재정리]

유다서의 목적은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도록 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공동체 안에 악한 마음으로 가만히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어 버린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다. 예수의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이와 같은 자들은 자고로 공동체 가운데 분리되어 심판을 받았다.(출애굽 백성들 중에도 있었고, 천사들 중에도 있었고,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 중에도 있었다.)
이들은 육체를 더럽히는 자들(방탕한 삶)이고, 교회의 치리를 받지 아니함으로 권위를 업신 여기는 자들인듯 하다. 그리고 함부로 비방하여 가인의 길로 혹은 발람의 길로 가는 자니 결국은 멸망에 이를 것이다. 이들은 공동체의 암초요 삯꾼이요 열매없이 껍데기에 불과한 사람이라 뿌리까지 뽑힌 나무에 불과하다.
성도들은 마지막 때에 사도들이 일찌감치 일러준대로 이런 사람들을 경계하고, 거룩한 믿음과 사랑,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림으로 영생에 이르도록 힘쓰라.

주님은 너희를 능히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그 영광 앞에서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분이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는 자.(4절)

바울은 주로 율법주의자와 논쟁하면서 사역을 했고, 또 그들을 대항하며 편지들을 작성했다는 것을 그의 서신서들을 통해서 보게 된다. 반면 재미있게도 히브리서 이후로 나오는 야고보서부터는 율법적인(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강조하는 내용들이 이어진다. 베드로의 서신도 그렇고 요한의 서신은 교회를 힘들게 했던 이단에 대한 경계를 다루는데, 이 이단이라는 것은 <육체를 방종하게 했던> 이단으로 보여진다. 유다서도 마찬가지 이단에 대한 이야기인데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들을 이단으로 보고 이들에 대해서 경계하고 있는 것이 히브리서 이후 서신들의 특징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바울은 율법주의자(행위 구원)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서의 구원>을 강조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던 무리중 독버섯이 자랐다. 바로 <은혜를 빙자하여 방탕한 삶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성경은 이들에게 대해서 <이단>이라고 규정하고, 이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인이라고 규정한다.(요일 5장) 이들과는 상종하는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구분되어야 함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은 언제나 특정 정황 속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 바울의 서신의 입장에서만 복음을 배워온 것은 아닌가 반성해 본다. 야고보나 베드로나 요한, 유다의 서신들도 열심히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선포하고, 그 은혜의 복음을 왜곡시킨 이단들을 경계함으로 복음의 본질을 잊지 않게 하고 있는데 말이다. 바울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바울의 신학 만이 신학의 전부인것처럼 가르치고 배웠던 것도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배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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