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사사기 15장] 삼손은 블레셋에게 복수할 수 있는 인간적인 기회들을 최대한 활용함으로 자신의 영웅됨을 자랑할지 모르지만, 상황은 자기 민족에게 더 불리한 방향으로 나타난다. 삼손은 목적은 옳았으나, 과정을 순결하지 못했으며, 인간적으로는 지혜로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더 악화된 상황을 만들어내는, 하나님의 일꾼이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삼손이 아내와 장인을 핑계 삼아 블레셋을 공격했다.  

  1) 삼손이 밀 거둘 때에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의 아내를 찾고자 하여 장인에게로 갔다. 

  2) 장인은 삼손이 그 아내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 삼손의 친구에게 주었다고 하면서, 그의 동생을 아내로 취할 것을 제안했다.(동생이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

  3) 삼손은 블레셋에게 복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고, 이것을 핑계삼아 여우 300마리를 잡아 그 꼬리를 둘씩 묶고 거기에 홰를 달아 블레셋 사람의 곡식 밭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불태웠다.

  4) 블레셋 사람은 이런 일로 말미암아 흥분하고 누구로 말미암음인가를 알아보니 삼손의 장인인 블레셋 사람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여인과 그의 아버지를 불살랐다. 

  5) 삼손은 자신의 아내와 장인을 죽인 것을 핑계로 블레셋 사람에게 다시 원수를 갚는 형식으로 블레셋 사람을 죽였다. 그들의 정장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였다. 

  6) 그리고 에담 바위 틈에 머물렀다. 


2. 삼손은 자기 민족인 유다 백성들에 의해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진다. 

  1) 블레셋은 이 사건으로 인해 유다 민족을 치기 위해 레히에 가득히 몰려들었다. 

  2) 유다는 갑작스러운 블레셋 사람의 공격에 이유를 묻자, 삼손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3) 유다 사람 3000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왜 블레셋에게 그리하였는지를 따졌다. 블레셋이 우리를 지금 지배하고 있는데, 왜 그와 같이 했는가? 그러자 삼손은 그들이 나에게 행한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한 것이라고 한다. 

  4) 유다 사람들은 삼손을 결박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고, 삼손은 너희들이 나를 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유다 사람들의 손에 의해 결박되어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진다. 

  5) 삼손을 넘겨 받은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향해 소리지르자, 여호와의 영이 갑자기 임하여 묶인 줄을 끊고, 삼손이 나귀의 턱뼈를 집어들고 블레셋 천 명을 죽이게 된다. 

  6) 삼손은 나귀 턱뼈를 집어 던지고, 자신을 통해 큰 구원을 베푸셨으나 이제 자신은 목말라 할례 받지 못한 자들에게 죽게 되었다고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7)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 삼손이 정신을 회복되고 소생되었다.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다.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었다. 

  8)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 동안 지냈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풀어서 쓰기]


삼손이 블레셋 여인과의 결혼을 통해서 이루려고 했던 블레셋에 대한 복수가 실패로 돌아가자 삼손은 분을 내고 집을 돌아갔었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장인은 그의 딸을 삼손은 친구에게 주었다. 다시 삼손이 그의 딸을 찾지 않을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런데 삼손은 밀 거둘 때에 염소 새끼 한 마리를 가지고 그의 아내를 찾기 위해 장인의 집으로 간다. 장인은 당황하여 상황을 설명하고 그 부인의 동생을 주려하지만, 삼손은 오히려 이것을 핑계삼아 블레셋 주민들에게 복수를 한다. 여우의 꼬리에 홰를 달아서 농작물을 모두 태워버리도록 한 것이다. 화가난 블레셋 주민들은 삼손의 장인의 잘못으로 기인되었기 때문에 삼손의 부인과 그의 아비를 불살라 죽인다. 삼손은 블레셋 주민들이 자신의 아내와 장인을 죽인 것에 대해서 또 다른 복수할 정당한 기회라고 보고, 그 마을 사람들을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였다. 그리고는 에담 바위 틈에 숨어 지냈다. 


삼손으로 마을이 쑥대밭이 되자, 블레셋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삼손에 대한 보복을 유다 사람들에게 하고자 했다. 당황한 유다 사람들은 이 일이 삼손으로 말미암은 줄 알고, 에담 바위 틈에 숨어 있는 삼손을 찾아간다. 그리고 삼손을 결박하고는 블레셋 사람에게 넘겨준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넘겨받으면서 삼손을 죽이고자 달려들자, 하나님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여 나귀 턱뼈로 천 명의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다. 이스라엘이 큰 구원을 이루었으나, 급격한 갈증으로 인해 하나님께 호소한 삼손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샘에서 물을 마시고 회복되었다. 그렇게 삼손은 20년간 사사로 지냈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삼손은 인간적인 방법들로 블레셋을 복수할 기회를 찾으나 상황은 점점 이상하게 된다. 


삼손이 처음부터 그의 아내가 다른 사람에게 간 것을 알고, 그것을 기회로 삼아 복수하려고 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아내를 찾으러 갔을 때, 아내가 다른 사람에게 보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오히려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3절) 그렇게 마을에 피해를 주자, 그 마을 사람들은 잘못행한 삼손의 장인을 심판하고 삼손은 또 다시 이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명분을 얻어 그 마을 사람들을 죽인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간다. 블레셋이 오히려 유다 백성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몰려들게 된 것이다. 결국 삼손은 자기 민족의 손에 의해 블레셋으로 다시 넘겨지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인간적인 방법과 기회를 노린 삼손은 그의 힘으로 일시적인 복수를 했지만, 그러나 그런 복수는 더 큰 위험으로 다가 오게 된다. 자신을 넘어 자신의 민족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 되고 만다. 삼손은 하나님의 사사지만, 가장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그것을 이루어 가려고 하는 사사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나님의 종이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셈에 
빠른 목회자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단기간 무엇을 얻어 낸것 같은 영웅심을 가질지 모르겠으나 더 큰 위험이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2. 삼손에게서 예수의 냄새가 난다. 


삼손에게서 예수의 냄새가 난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유대인)에게 잡히어 죽게 된 것처럼, 삼손도 자기 백성을 위해서 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에 의해서 포박되어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게 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목말라 고통스러워하셨던 것처럼, 삼손도 나귀 턱 뼈로 천명의 블레셋과 싸운 이후에 매우 목말라했다. 


물론 차이가 나는 것도 많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삼손의 탄생에서부터 오늘 본문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지향하는 것 같은 냄새가 솔솔 난다. 위에서 살펴봤던 자기 백성들을 위해 싸웠는데, 결국은 자기 백성들 특히 유다 지파 사람들에 의해서 넘겨지게 되는 장면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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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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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기 11장] 입다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는 자기 백성들에게 버림 받았다가 구원자로 다시 부름을 받았고, 사사 시대에는 여호수아와 그 시대의 장로들이 죽은 후에 하나님과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아는 자가 없다고 했는데, 입다는 과거 이스라엘 가운데 역사하신 내용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무남독녀를 자신이 서원한대로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들이게 되는 운명을 가지게 된다. 이런 사사의 독특성을 통해서 성경은 우링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했을까?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이스라엘을 암몬의 손에서 건져낸 사사 입다의 배경 설명

  1) 길르앗 사람이 기생에게서 나은 자식으로 큰 용사였다. 그 길르앗 사람의 아내에게도 자식들이 있었는데, 그 자식들이 기생에게서 난 형제 입다에게는 기업을 주지 않으려고 좇아냈고 입다는 돕 땅에 거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주위로 잡류들이 그들에게 모였다. 

  2) 얼마 후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가 자신들의 장관이 되어 달라고 한다. 

  3) 입다는 전에는 너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더니 이제 환란을 당한다고 나를 부르니 말이되느냐? 라며 거절했으나 장로들은 입다에게 당신이 우리를 위해서 싸워주면 길르앗 모든 주님의 머리가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입다는 그 제안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확인하고 그들에게로 갔다. 


2.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입다의 행적

  1) 입다는 먼저 전쟁을 치르기 전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무슨 이유를 이 땅을 치러왔는지 묻는다. 

  2) 암몬 자손의 왕은 이 땅은 너희들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빼앗은 것이니 돌려달라는 것이었다.(아르논에서 얍복과 요단까지의 땅) 

  3) 입다는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점령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1)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에돔 땅을 통과하려 했으나 못하게 하였고, 그래서 모압 땅을 통과하려고 사람을 보냈으나 모압 왕도 허락하지 않아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머물러 있었다. 그 후에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돌아 모압 쪽으로 들어가는 아르논 저쪽에 진을 쳤으나, 아르논은 모압의 경계이므로 모압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2) 그 후에 이스라엘은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그들의 땅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했으나 오히려 이스라엘을 치려함으로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므로 이스라엘이 그들을 쳐서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족속의 온 지역을 점령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아모리 족속을 쫓아내셨는데,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3) 네가 모압의 왕 발락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과 싸운 일이 있느냐? 없다. 이스라엘이 이 곳에 거주한 것이 300년이 지났거늘 너희가 찾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가 너희들에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도로 찾겠다고 하니 우리에게 왜 악을 행하는가? 하나님께서 너희와 우리 사이에 판결해 주실 것이다. 


  4) 설득에도 넘어가지 않자 입다는 전쟁을 시작하는데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했다. 

   (1) 입다는 여호와께 서원하여 암몬 자손을 넘겨 주시면, 자신이 평안이 돌아올 때 나늘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서원한다. 

   (2) 입다가 암몬 자손과 싸우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입다의 손에 넘겨 주었다. 암몬이 항복함.


3. 입다가 승리하고 돌아오면서 생긴 일

  1) 입다가 승리하여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였는데, 그는 무남독녀였다. 

  2) 입다는 이로 인하여 고통스러워하고, 그 딸은 아버지가 서원하였으니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라고 말한다. 

  3) 그 딸은 두 달간의 시간만 자신에게 달라고 하고, 두 달동안 자신이 처녀로 죽게 된 것에 대한 애곡을 친구들과 하고 돌아왔다. 

  4) 입다는 자기가 서원한대로 딸에게 행했다. 

  5) 그 이후로 이스라엘의 관습이 되어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였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풀어서 쓰기]


11장에서는 사사 입다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입다는 길르앗이 기생을 통해 낳은 아들이다. 그는 큰 용사였으나 원래 부인을 통해서 나은 아들들이 입다에게 기업이 없다고 하고 그를 길르앗에서 쫓아냈고 그는 하는 수 없이 돕 땅에 거주하며 살게 된다. 그런데 입다 주변으로 여러 잡류들의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그러던 중 암몬 자손들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하자 위기 의식을 느낀 길르앗의 장로들은 쫓아 버렸던 입다를 다시 불러올 것을 결정하여 입다를 찾아간다. 입다는 처음에는 거절하였지만, 그들이 길르앗을 머리로 삼겠다는 제안까지 하자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로 간다. 


입다는 먼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왜 이 땅을 치고자 하는지 묻는다. 암몬 자손은 이 땅(아르논에서 얍복과 요단까지의 땅)이 원래 자기네 땅이었는데 너희 이스라엘이 빼앗은 것이기에 도로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입다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역사적 이야기를 통해서 말한다. 

이스라엘 가나안에 들어오기 전에 아르논 지역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곳은 모압의 경계였지 모압 안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너희들이 말하는 아르논에서 얍복과 요단까지의 땅이라는 것도 아모리 족속의 땅을 점령해서 얻은 것이지 너희들의 땅이 아니었다. 지난 300년 동안 이곳을 점령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 땅을 도로 찾겠다고 한 적이 없지 않은가? 라는 말로 암몬 족속의 왕을 설득하려고 했으나 암몬 족속은 설득되지 않았고 전쟁은 발발하게 되었다. 

입다는 이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시면 평안이 돌아올 때 자신을 처음으로 맞는 이를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서원했다. 입다는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자신의 무남독녀인 딸이 자신을 처음으로 맞는 일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입다는 고통스러워 한다. 입다의 딸은 자신의 운명이 안따까우면서도 자신의 아버지가 한 서원대로 하나님께 행하도록 말하고, 두 달의 말미를 얻여 여자들과 함께 자신이 결혼하지 못하고 처녀의 몸으로 죽게 된 것을 슬퍼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서원대로 행해진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관습이 되어 해마다 입다의 딸을 위해 나흘씩 애곡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입다는 출생이 미천했고, 사람들에게 버려진바 되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구원자다.




2. 입다는 이스라엘의 역사(하나님이 하신 일)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사사 시대에는 그와 같은 사람들이 없었다고 했는데.... 입다는 과거 조상의 일들을 잘 알고 있었다. 



3. 입다는 자신의 서원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무남독녀인 딸을 번제물로 바치는 일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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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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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여호수아 11장] 북쪽 연합군을 여호수아가 이겨 결국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는 이야깁니다. 여호수아의 모습 속에서 성취하시고 승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마지막 날, 악한 자는 오히려 심판을 자초하는 자리로 자신을 몰고가서 생각보다 신속한 심판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승리도 갑자기, 심판도 홀연히 오게 되는 것입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하솔 왕 야빈이 가나안 북방 왕들을 결집시키고 이스라엘과 전쟁하다.
  1) 하솔 왕 야빈이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및 북쪽 산지와 긴네롯 남쪽 아라바와 평지와 서쪽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동쪽과 서쪽의 가나안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산지의 여부스 족속과 미스바 땅 헤르몬 산 아래 히위 족속에게 사람을 보내 그들이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다. 해변의 모래 같이 많았고, 말과 병거도 많았다.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내일 이맘 때에 그들을 이맘 때에 넘겨주어 몰살케 하시겠다고 말씀하심.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병거를 불사르게 하시겠다고 함.
  3) 여호수아와 모든 군대가 메롬 물가로 가서 갑자기 급습하여 그들을 격파하고 승리함.
  4) 이스라엘은 그 연합군의 머리인 하솔을 취하고 왕을 칼날로 쳐죽였다. 더불어 모든 왕들과 모든 성읍을 진멸하였으되 하솔만 그리하고 산 위에 세운 성읍들은 불사르지는 않았다.
  5) 이 성읍들의 모든 재물과 가축은 이스라엘이 탈취하되 나머지는 멸하였다.
  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한대로 모든 것을 하나도 행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2. 가나안 전쟁에 대한 간략한 정리
  1) 그 땅 산지와 온 네겝과 고센 온 땅과 평지와 아라바와 이스라엘 산지와 평지를 점령함.
  2) 그 땅에 있는 모든 왕들을 잡아 죽였다. 오로지 기브온 주민 히위 족속 만 살아남았다.
  3) 그 땅의 왕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나온 것을 통해 그들을 진멸하게 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여 그들을 멸하려고 한 것이다.
  4) 이스라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들을 멸절하고 그들의 성읍들을 진멸하여 바쳤다. 이스라엘 땅에는 아낙 자손이 하나도 없었다. 오직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아 있었다.
  5)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온 땅을 점령하고,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다.

 


[구글에서 검색한 이미지 자료]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쓰기]

 

기브온을 공격하기 위해 연합한 가나안 남부 5왕의 연합군을 이스라엘이 이기자, 이제는 북방에 있는 왕들이 하솔 왕 야빈을 중심으로 대규모로 모여 메롬에서 이스라엘 대적하려고 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승리를 약속하셨고, 두려워하지 말 것을 당부하신다. 여호수아는 이들이 기대하지 못하는 순간에 급습하여 이들을 공격한다. 당황한 이들은 제대로된 싸움을 해보지도 못한 채 패하고 만다. 하솔 왕을 비롯한 모든 왕이 죽임을 당하고, 모든 성읍의 재물과 가축을 제외하고는 이스라엘에 의해 멸절 당하게 된다.
이와 같은 여호수아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된다.


결국 가나안 전쟁을 통해 화친을 맺은 기브온 주민 히위 족속 외에는 모든 족속을 이스라엘이 싸워서 점령했고, 그들은 스스로 이스라엘을 대적함으로 은혜를 입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한대로 온 땅을 점령했고,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을 주어 그 땅에 전쟁이 그쳤다.


참고로, 그 땅 전역의 아낙 자손들은 다 멸절되었는데 오직 가사와 가드, 아스돗에는 남아 있었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

 

1. 가나안 땅의 북쪽 연합군들은 은혜를 입을 수 없도록 먼저 대적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

 

남쪽 연합군의 기브온 공격으로 시작된 본격적인 가나안 땅에서의 전쟁은 북쪽 연합군에 의해서도 계속 되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성읍들을 하나씩 격파해 나간것이 아니라 그들이 한꺼번에 대적함으로서 한꺼번에 승리를 거두게 되는 형식이었다. 물론 전쟁이 시간이 짧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의 전쟁은 먼저 공격하는 형식이 아닌, 대적하기 때문에 맞서 싸울 수 밖에 없는 형식의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먼저 선전포고를 한 것이고, 이스라엘은 그 선전포고에 대한 대응을 한 것이다.

 

이런 모양새는 북쪽 연합군들이 먼저 대적자의 자리에 섬으로서 은혜를 스스로 거부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기브온 백성들의 행동과 대조적인 차이를 보인다. 기브온 백성들은 은혜를 얻기 위해 이스라엘 속이기까지 했으니까...

 

이것은 역으로 가나안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대상이라는 것을 역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마지막 날까지 은혜를 거절하고 대적하여 싸우기를 원한다면 이들에게 남는 것이란 멸망 밖에는 없는 것임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기브온처럼 겸손히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길이다.

 

2. 모세에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성취하는 여호수아

 

본 장에서는 중간 중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여호수아가 모두 이루었다고 강조하고 있다.(15,23절) 이는 약속을 받은 자와 약속을 성취한 자로서의 모세와 여호수아를 말하는 것인데, 신학적으로는 모세와 여호수아를 합친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을 온전히 성취했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모세가 구약을 상징하고, 여호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구약은 약속을 받고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 약속의 성취로서 오셨다는 측면에서 여호수아와 대응된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찌 되었든 여호수아게게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지도자와 승리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여호수아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3. 여호수아의 전략은 갑자기 습격하는 것이다.

 

여호수아의 주무기는 급습이다. 밤에 급습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순간에 갑자기 습격한다. 여호수아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전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는 그 전술을 활용하여 아이 성도 이겼고, 남쪽 연합군과 북쪽 연합군도 모두 이겼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 전투만 빼고 이 전술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는 사람이면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략을 극대화했던 지도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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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루이스는 현재 악이 권세를 장악하고 있다면, 그보다 윌등한 하나님은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라는 질문은 한다. 루이스는 선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그 선한 세상이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일어나기를 원하신 것도 그의 뜻이라고 말한다. 루이스는 반대자들의 논리에 대응하면서 이제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 장에서 본격적으로.



<이전논의들>

악에 대한 설명은 기독교적 관점과 이원론적 관점이 있는데, 생각해보면 악이란 선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 왜곡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선과 악을 대등한 관계로 보는 이원론의 관점은 적절치 않다. 오히려 기독교적 관점이 실재에 더 근접한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질문들>

그렇다면 악한 권세가 현재 이 세상의 군주로 행세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만약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다면 하나님은 그야말로 이상한 분이 되고, 일치하지 않는다면 절대적 권세를 가진 존재의 뜻에 반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하는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진다.


<루이스의 설명>

1. 자녀의 방을 깨끗하게 청소해 놓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뜻과 실제로 그 일을 행하는 자녀와는 차이가 있다. 

  1) 자녀에게 자유를 준것도 어머니의 뜻이었다. 

  2) 마찬가지로 분명히 어머니의 뜻한 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뜻한 바로 인해 일어난 일이다.


2. 이 우주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들을 창조하셨습니다. 

  1) 자유 의지를 가졌다는 것은 옳을 일을 할 수도 있고 그른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것은 사랑이나 선 그리고 기쁨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유 의지에 있기 때문이다.  

  3) 자유의지로 말미암아 전쟁 상태가 일어나는 한이 있더라도, 어쩌면 자유 의지를 통해서 나오는 진짜 선을 행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것을 치러야 할 과정으로 생각하셨던 것으로 봐야 한다. 


<자유의지와 관련된 또 다른 질문들>

1. 하나님은 왜 이리 쉽게 부패하는 재료로 피조물로 만드셨을까? 

  좋은 재료일 수록 옳은 길로 가면 더 선해지지만, 그른 길로 가면 그만큼 더 악해지는 법이다. 소보다는 개가, 개보다는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보다는 어른이, 어른 보다는 천재적인 성인이 더 그렇습니다. 초인적인 영도 마찬가지입니다. 


2. 어두운 권세는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을까?

  1) 인간이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임에는 분명하다.

  2) 그러나 우리 자신이 타락했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분명하다. 

   (1)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심에 의해서 타락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성적인 문제와 관련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틀렸다. 성적인 것은 죄의 결과지 원인이 아니다. 

   (2) 사탄이 지은 죄도 이와 같은 죄이다. 

  3) 이런 사탄과 인간의 시도(하나님을 배제하고 스스로 가려는)는 성공할 수 없는 시도였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넣어야만 달릴 수 있는 인간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휘발유를 넣어야 달리는 엔진을 만든것 처럼)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넣고 달리려고 할 때 문제는 발생하고 만다. 하나님을 제외하고 평화나 행복은 만들어질 수 없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문명과 제도들은 처음에는 잘 굴러가는 것 같으나 곧 비참과 파멸로 빠지게 되었다. 


3. 이와 같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는가?

  1) 무엇보다 먼저 우리에게 양심, 즉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분별력을 남겨 주셨다. 

  2) 좋은 꿈이라는 것을 인류에게 보내 주셨다.(인간에게 새 생명을 주는 신에 대한 이야기와 같은 희망)

  3) 하나님은 한 특정한 민족을 택하여 자신이 어떤 하나님인가를 수세기에 걸쳐 그들의 머리에 심어 주셨다. 

    : 그 민족인 바로 유대 민족이고, 그 심어주신 과정을 기록한 것이 바로 구약성경이다. 


4.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유대인 중에서 한 사람이 나타나 자신을 하나님으로 자처하면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는 권한이 자신에게 있음을 주장하며 다니는 사람이 나타났다.


  1) 이 사람은 범신론자는 아니다. 이 사람은 유대인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세상 밖에 계셨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이 진짜 하나님이 아닌 다음에는 이상한 사람으로 밖에는 인식할 수 없다. 


  2) 이 사람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준다고 하였는데, 이것도 이상한 행동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용서라는 것은 피해를 입은 사람이 피해를 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것인데,  자신이 피해를 입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한다고 할 때 이런 일은 그가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죄는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는 것이며 그의 사랑에 상처를 내는 것이기에 그렇다. 


  3) 그런데 성경은 이런 사람, 예수에 대해서 우스꽝스럽거나, 자만심에 차있다는 인상을 받지 않았다. 우리는 그가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그의 말을 믿는다. 사실은 온유와 겸손과는 관계가 먼 이야기(자신을 하나님으로 묘사하는 말들)를 그가 많이 했다는 것을 잊은 채로 말이다. 이것은 예수를 단순히 도덕적인 스승 정도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서 하는 말이다. 예수는 그렇게 평가할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판단의 결단을 촉구하는 루이스]

우리는 예수가 그의 말대로 정말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미치광이거나 그보다 못한 인간으로 여겨 그의 입을 틀어 막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며 그 발 앞에 엎드려 하나님이요 주님이라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니 하는 헛소리는 삼가해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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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2장] 하나님은 고니야(여호야긴)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다윗의 왕위를 이어갈자가 없음을 말씀하신다. 다윗과 맺은 영원한 왕권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폐기되는 것 같다. 500년 이상 그 언약은 폐기된 채로 유다의 역사는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왕, 다윗의 혈통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신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여호와께서 유다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1)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2)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3)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4) 너희가 이 말을 들으면 그 영광이 유지되지만, 이 말을 듣지 않으면 이 집은 반드시 황폐되리라.
  5) 여호와 하나님이 너를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그들의 손에 들린 무기를 가지고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
  6) 여러 민족은 지나가면서 여호와가 이 큰 성읍을 이같이 행함은 어찌됨인가? 놀랄 것이다.
  7) 그 이유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을 버리고, 여호와의 언약을 떠나 다른 신에게 가서 그에게 절한 까닭이라 하셨다 하라.

 

2. 여호와께서 유다 왕 살룸(여호아하스)에 대해서 말하다.
  1) 너희들은 죽은 자를 위해서 애통하지 말고, 사로 잡혀간 자를 위해 애통하라.
  2)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게 될 것이다.
  3)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살룸이 결국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게 될 것이다.

 

3. 여호와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해서 말하다.
  1) 화있을 진저:
   (1)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
   (2)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짓고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3)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2) 네 아버지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않았는가? 그 때 형통하지 않았는가?
   (1)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다.
   (2)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3) 그런데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다.
  3)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말씀하신다.
   (1)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4. 예루살렘에 대한 탄식
  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너는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2) 네 모든 악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3) 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5. 여호와께서 유다 왕 여호야긴(고니야)에 대해서 말하다. 
  1) 유다 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여호야긴)가 나의 인장 반지라도 내가 빼어서 네가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2) 너와 너를 낳은 어머니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으로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으리라.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리라.
  3) 고니야(여호야긴) 이후로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을 다시 풀어서 쓰기]

 

본문은 유다의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더불어 유다 왕 중에 살룸(여호아하스)과 여호야김, 여호야긴(고니야)의 죄과 그에 대한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유다의 사회적인 죄악은 그들이 마땅히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져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았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 즉 사회적인 약자를 오히려 학대한 것이며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것이다. 이와 같은 잘못에 대한 시정요구를 듣지 않은 것이 이들의 죄다. 결국 하나님은 이로 인해 이들을 적의 손에 넘겨주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요시야 왕 이후로 살룸(여호아하스)과 여호야김 그 뒤를 이은 여호야긴(고니야) 왕의 악행과 그 행위에 따른 결과가 어떠할지를 말씀한다. 살룸 왕은 죽은 자보다 더 비참한 살로잡혀간 자의 운명을 살게 될 것이다. 잡혀간 땅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죽을 것을 말씀하신다.

 

여호야김은 화려한 건축을 위해 그 백성들에게 그 품삯도 주지 않고 일을 시킴으로서 악을 행했다. 여호야김은 탐욕과 허영 그리고 무죄한 피를 많이 흘렸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왕을 예루살렘 문 밖에 끌려가서 나귀처럼 매장당하는 비참한 운명이 될 것을 말씀하신다.

 

고나야(여호야긴) 왕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인장 반지 같은 자라 할찌라도 빼서 바벨론의 손에 넘겨주겠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이 왕은 여호와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다윗의 왕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유다는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신하와 그 백성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졌다. 특히 왕들은 허영에 가득차 정의와 공의를 잊고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리게 한다. 이것이 결국 왕과 그 나라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원인이 되고 만다.

 

예루살렘은 평안할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고질적인 병처럼 이들의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들은 결국 가련한 운명이 될 것이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교훈과 묵상들]

 

1. 요시야 이후로 왕들은 허영으로 가득하고 공의와 정의를 잊었다.

 

권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왕은 자기 자신들의 권력을 자신의 허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였다. 품삯도 주지 않은 채 아름 다운 집을 짓는데 혈안이되었으며 그로 인해 백성의 고통은 말이 아니게되었다. 왕과 권력자들은 정의과 공의를 실현하는 것에는 무관심했다. 정의를 왜곡하여 무고한 자의 피를 흘리게 했다.

 

요시야 왕 이후로 국가적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며 추락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은 여전히 자신의 허영을 채우기 위해 급급했다. 앞을 보지 못했다. 그와 같은 유다의 운명은 여호야긴(고니야)을 마지막으로 그 후손 중에 다윗의 혈통이 왕이 되는 것은 끊어지고 만다. 다윗의 위가 영원할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과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권력과 힘이 올바른 룰 안에서 통제됨이 없이 사용되어질 때 권력은 언제나 권력을 가진 자를 중심으로 타락하게 되어 있다. 부정한 방식으로 재물을 축적하든지, 그 권력을 자신의 허영을 위해 낭비하게 된다. 그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은 무고한 자들이며, 힘없는 자들이다. 백성의 원성이 높아가게 마련이다. 유다는 하나님과의 신앙 문제에 있어서도 깊은 골이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일반 사회적인 상황에 있어서도 긴장과 갈등으로 인한 위험이 커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인장 반지와 같은 유다 왕을 빼어 버리기로 결정하신다. 그리고 원수의 손네 넘겨주시기로 결정하신다. 공의와 정의를 잊은 권력이 마지막은 원수에게 넘겨짐이 되고 만다.

 

2. 고니야(여호야긴) 이후로는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자가 없을 것이다.

 

다윗에게 주신 영원한 왕권에 대한 언약이 깨지는 순간이다. 유다가 철저하게 믿었던 믿음, 다윗의 왕권은 결코 빼앗길 수 없을 것이다라는 그들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 것이다. 하나님은 언약에 있어서 신실하신 분이지만, 결코 언약에 매여 하나님의 이루어가질 정의와 공의를 포기하시는 분은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제 유다와 그 백성들은 그들의 언약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 신앙에 대해서 전면적인 새로운 인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언약에 대한 재해석을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된 것이다.

 

3. 너는 어려서부터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유다의 죄가 얼마나 오래되고 뿌리깊은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표현이라 하겠다. 하나님은 이전까지 관심이 없다가 갑자기 사춘기 자녀에게 관심을 보이셨던 것이 아니다. 그들이 평안했을 때(어렸을 적부터)부터 관심을 가지고 말씀하셨으나, 이들은 그 때부터 듣지 않았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완악했음을 말한다.

 

갑작스러운 반항이나 임시적인 탈선이 아니었다. 이들의 반항과 탈선은 뿌리가 깊은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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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4:6 6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창조때의 빛이 있으라는 말씀이

우리 마음(어두움)에 빛을 바추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셨다.


창조의 빛이

오늘날 우리 어두운 마음에 구원을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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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에는 벽이 우측에는 높은 낭떨어지 가 있는 좁은 길을 갑니다. 그런데 길은 막히고 좌측에 있던 벽이 천천히 우측으로 움직여 제가 서있을 수 있는 자리는 점점 좁아집니다. 조금 있으면 벽에 밀려 낭떨어지로 떨어질 형편입니다.

다행히 제 위로 여러개의 줄이 달려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에 제 몸을 묶는다면 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줄에는 각각 이름이 있는데 하나의 줄에는 예수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모든 줄은 튼튼해 보였습니다. 오히려 가장 허술하게 보인 줄이 예수라는 줄이었습니다.

구원 얻는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1. 예수가 아닌 다른 줄에 자신의 몸을 묶는 것은 구원 얻는 믿음이 아닙니다. 다른 줄에 비해 굵기가 두배라고 해도, 그것은 구원을 줄 수 없습니다. 썩은 동아줄이기 때문입니다.

2. 여러 개의 줄을 내 몸에 감는 것입니다.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많은 줄을 감으면 아무래도 한 줄에 감기는 것보다는 나을테니까요. 그런데 이것도 구원 얻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 중에 예수라는 줄이 혹 있더라도 말입니다.

3. 먼저 예수라는 줄에 몸을 감습니다. 교회다니는 사람이라면 당연하겠지요. 그리고 덤으로 옆에 있는 줄도 시간이 되는대로 감아봅니다. 날 구원해 줄 줄은 당연히 예수라는 줄이겠지만 다른 줄을 보테면 그래도 더 튼튼할테니까요... 뭐라도 하나 더 있으면 낫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시간이 있는대로 감아 봅니다. 여기에도 구원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문제가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믿고 다른 것도 추가로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4. 구원 얻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우선 예수를 제외한 나머지 줄을 끊어 버립니다. 촉박한 시간이지만 먼저 그 일을 합니다. 예수 외에 다른 것에 대한 부인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예수라는 줄만이 나의 구원에 있어서 유일한 줄이라는 의식 속에서 그 줄에 내 모든 무게를 실는 것이 구원 얻는 믿음이다. 다른 것에 대한 부인, 그리고 유일한 소망으로 예수를 의지해 내 몸의 모든 하중을 거는 것.

다른 줄을 끊느라 시간이 없어 예수라는 줄을 자기 몸에 제대로 묶지못해도 괜찮다. 오히려 예수라는 줄이 당신을 묶어줄테니... 따라서 구원 얻는 믿음이란  다른 줄을 끊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예수님이 가난한 자와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에게 관대했던 것은 그들은 자의적이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모든 끈에서 끊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바리새인들에게 까다롭게 한 것은 그들에게는 다른 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비유가 적절한가요?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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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이 믿음의 장이고, 그 장에는 많은 믿음의 위인들이 언급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그 믿음의 결실을 얻은 위인들의 현재적 삶에 과정으로서의 수 많은 부끄러움과 연약함, 낙심과 환난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노골적으로 말한다. 이 모든 과정을 도망치지 않고 거치고 나올 때, 우리는 그를 믿음의 위인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성도가 되기 위해서 가져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지침이 있다.

첫째는 예수를 바라보면서 현재의 고난과 수치를 참고 견디는 것이다.

둘째는 땅뿐 아니라 하늘까지도 진동하게 하실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한 마음이다. 그럴때 흔들리지 않을 영원한 나라를 받게 될 것이다.

 

1.예수를 바라보고 참고 견디자.

성도로 살아가면서 부끄럽고 피곤하고 낙심되며 여러 가지 환난으로 인하여 손은 피곤해 지고 무릎은 연약해져서 서 있을 힘도 없겠지만, 두 가지를 기억하며 견디자.

하나, 우리를 낙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 더 나아가 세우기 위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자기를 거역한 일을 참으시고 그들을 위해 십자가로 나아가신 예수를 생각하고 바라보자.

둘, 하나님께서 자식에게 더 엄격하게 때론 혹독하게 징계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지금의 고통과 부끄러움이 크면 클수록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성애가 더욱 강렬함을 잊지 말자.

2.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자.

망령되이 행동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죄를 짓지 않고(음행, 쓴 뿌리)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에 이르라.

 

[성도의 맷집]

믿음이 좋다는 것은 환난과 시험에 대한 맷집이 좋다는 것이고, 마음이 강하다는 것이다. 믿음의 거장이란 바로 이와 같은 영적 맷집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 여집사님이 생각난다. 외소한 체구에 늘 소녀같으신 분인데, 그 분의 환경이라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이 있는 가정이다. 그런데 늘 밝게 생각하시고 성실하게 교회를 섬기신다. 나이가 더 많은 권사님이 오히려 그 분이 더 어른스럽다고 묘사할 정도다.

믿음이란 외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부드러움과 친절함. 웃음과 관용 속에서도 영적 맷집이 있어서 왼만한 것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믿음이 좋다는 것이 현재적으로 형통하다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성도들이 안다면 얼마나 놀라고 당황스러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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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3장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 대한 천사와의 비교에서 모세와의 비교로 옮겨가고 있다. 모세와 관련해서는 모세가 하나님의 집에 신실한 종이었다면, 신실성에 있어서는 같이 인정을 받지만 예수는 하나님의 집의 종의 신분이 아니나 아들의 신분으로서  신실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모세를 따르는 것에 잘못이 없었지만, 이제는 모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더욱 큰 신실함의 혜택을 누리게 됨을 강조하게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율법의 절대성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율법의 수여자 모세를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그 보다 더 큰 예수를 알게 되었으니 그 분을 끝까지 의지하고 순종할 것에 대한 권면을 하는 것이다.

 

그 다음의 이야기는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조상들)이 항상 마음에 미혹을 받아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하지 못하고 완고했던 것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던 것처럼, 너희들(이 편지를 보고 있는 성도들)도 그렇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권면한다. 성도들끼리 서로 권면해서 너희 중에 그와 같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 하라고 경고하고 있다.(12,13절)

 

히브리서 3장에 중요한 주제중에 하나는 현재 성도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배교하거나, 예수 신앙을 떠나게 되는 사람들(아마 유대 그리스도인들 중에서)에게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모세의 신실성보다 예수의 신실성이 더욱 큼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다분히 유대인들 중에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더 큰 확신을 주기 위함으로 보인다.

더불어, 지금 현재의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미혹에 의해서든, 완고함으로 믿음을 가지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든) 현재의 믿음(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주어진 구원의 약속)을 버린다면 광야에서 믿음으로 순종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엎드러지게 될 것(심판, 그래서 안식에 들어오지 못함)을 경계한다.

 

구원얻는 믿음이란 현재적으로 확인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현재적으로 믿음이 유지 되지 않았다면, 과거의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에게 있어서 구원을 확증할 수 있는 순간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현재적으로 예수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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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구원받았음과 구원받을 것이다.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조

6장. 세례_연합의 비유

      종의 비유(죄의 종, 의의 종)

7장. 법의 비유

      성도의 실존적 갈등

 

음질이 좋지는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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