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교회 주일낮예배(2016.8.14)


제목: 예수의 풍요성

본문: 요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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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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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2부 예배(2016.8.7)


제목: 예수의 유일성과 충족성

본문: 요 14:1-7


 * <우리의 소망 예수>에 대한 3번의 설교 중 첫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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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6.7.10)

 

제목: 마음이 뜨거워지다.(부활, 재림)

본문: 눅 24:13-35


 * 녹음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이어폰으로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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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6.4.3)


제목: 예수님의 가르침과 율법

본문: 마 5: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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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5.6.28)

제목: 매끈한 예수 거친 예수

본문: 요 1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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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말 4:1-6 신약으로 이어지는 구약의 끝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심판의 때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다. 교만하고 악한 사람들은 지푸라기처럼 완전히 타 없어질 것이다. 반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의로움이 해처럼 비추게 될 것이다. 의인들이 악인들을 짓밟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심판의 때가 이르기전 엘리야를 보내셔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는 일을 먼저 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절별 해설

4:1 <<뜨거운 용광로와 같은 날이 오고 있다>> 철을 녹일만큼 뜨거운 불 심판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것이라도 불타 없어지지 않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교만한 자와 악한 자는 용광로 앞에 지푸라기 같은 존재다. 그 날에 교만한 자와 악한 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4:2 <<그러나 나를 섬기는 너희에게는>> 이 땅에 교만하고 악한 사람들과 다르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자들에게는 그 날이 전혀 다른 날이 된다. 의로움이 해처럼 비춤으로서 자신들이 의를 지켰던 것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고, 치료하는 광선을 통해 상처입은 것이 회복될 것이다. 그래서 눌려있던 삶은 회복되어 외양간에서 풀려난 송아지처럼 자유롭게 뛰놀 것이다.


4:3 <<그 날에 내가 이 일을 이루겠다>> 심판의 날에 교만한 자, 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의로운 자기 백성을 완전히 회복하실 것에 대한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의지를 가지고 이 일을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심으로 이 말씀을 듣는 자 중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는 믿음의 인내를, 교만한 태도를 가진 자들에게는 강력한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4:4 <<모세에게 명령한 율법과 규례를 기억하여라>> 이제 다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과 규례로 통치되는 나라가 회복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모세의 율법을 잊고 자기 마음대로 살던 백성들은 돌이키고,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다시 간직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준비해야 함을 말씀하신다. 


4:6 <<아버지가 자녀를 사랑하게 하고, 자녀가 아버지를 사랑하게 할 것이다>> 심판의 날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 하신다. 엘리야의 역할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다. 즉, 아버지와 자녀 모두의 마음을 서로 다시 돌아오게 하여 관계를 회복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중재 노력이 다시 한번 있게 됨을 말라기는 알려주시면서 구약을 마친다. 


기도

하나님, 이 땅의 백성들이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을 놓치지 않은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책이다. 마지막 책의 마지막 4장의 마지막 부분(4-6절)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언급되었다는 것은 특이하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십자가를 고난의 길을 가시기 전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셨던 그 장소에서 나타난 구약의 인물이 바로 모세와 엘리야이기 때문이다.(마 17:1-3) 예수님께서 자신이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고 사랑으로서 모세의 율법을 온전히 세우셨다.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심으로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그의 자녀들에게, 또한 자녀들의 마음을 다시 하나님에게 돌이키게 한 사역을 감당하셨다. 예수님의 초림은 말라기에서 예언하고 있는 종말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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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정리]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 주전 609년 요시야가 므깃도에서 죽고, 애굽의 영향력 하에서 여호야김이 왕으로 세워진다. 국제 정세의 급변하는 환경 가운데 놓이게 되었다. 특히 애굽과 바벨론 누구의 편에 설것인가가 나라의 흥망성쇠에 중요한 결정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여호야김 시대는 그랬다. 


2.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성전 뜰에서 가감없이 외치라고 명하신다. 이들이 듣고 혹시라도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던 뜻을 돌이키시겠다고 말씀하신다. 


  * 예레미야는 유다를 향한 마지막 회심의 기회라고 보았다.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듣을 돌이킬 것이다. 니느웨의 죄에 대해서도 뜻을 돌이키신 하나님께서(요나서) 유다의 회개에 대해서 충분히 뜻을 돌이키실 의향이 있으신 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

  1) 너희는 나에게 순종하지 않았다. 내 율법을 행하지 않았다. 

  2)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에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순종하지 않았다. 

  3) 그래서 내가 이 성전을 실로같이 되게 하고,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 하나님은 언제나 한 번의 죄로 심판하지 않으신다. 두번이나 세번... 횟수의 문제가 아니다. 태도의 문제다. 그 죄를 지적하고 시정하도록 일깨워주고 경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킬 의향이 없는 자에 대해서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반역의 의지를 가진자에게 심판을 행하신다. 


4.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

  1)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예레미야를 잡아 죽이려고 한다.

  2) 이 성전을 실로같이 될 것이라고 저주하고, 이 성이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며 예레미야에게 모여듬

  3) 유다의 고관들은 예레미야가 한 말을 근거로 예레미야가 죽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결함.


  * 이 장면에서는 예수님이 생각난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던 무리들. 예수님의 죄 명도 성전을 허물어 질 것이라는 것에 대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예레미야와 예수님은 유사성을 가진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으로 죽음에 위협을 당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심으로 죽음에 이른다. 


5. 백성들의 반응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 성전과 이 성을 향하여 한 예언을 청종할 것을 다시 촉구한다. 그리하면 지금이라도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해 하나님은 뜻을 돌이킬 것이라고 말한다. 괜히 나를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그 댓가를 이 성과 성에 사는 주민에게 돌리지 말게 하라.


6. 고관과 모든 백성들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말한다. 

  1)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였으니 죽일 만한 이유가 없다. 

7.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일어나 온 회중에게 말하였다. 

  1) 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에 대해 예언하기를 시온은 밭가는 경작지가 되고, 예루살렘은 돌무더기가 되며,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했으나, 유다 왕 히스기야가 그를 죽였느냐?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그것에 대해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지 않으셨는냐! 

  2) 우리가 예레미야를 죽인다면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는 것이다. 


  * 흥분하며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닌것 같다. 그 중에서도 여전히 영적으로 민감하려고 하고 역사적인 판단을 고려하여 하려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고관과 백성들 중에 일부가 그랬고,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그랬다. 예레미야를 죽일 죄목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역대 히스기야 왕 때도 그와 같은 선지자가 예레미야와 동일한 메시지를 전했지만, 히스기야는 오히려 겸비하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예레미야의 경우도 그와 같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하나님은 무리 중에도 고관과 장로들 중에도 정상적이고 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두어 그들로 하여금 충동적 마귀적 행동에 대해서 제지하도록 역사하신다.(그런데 왜 예수님에게 대해서 만큼은 그리 침묵하셨는지.. 예수님에게는 왜 그와 같은 대변자가 없었는지...)

 

8. 또 여호야김 왕은 전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우리야라는 사람이 예레미야와 같은 메시지로 경고하여 예언하자, 그를 죽이려 했고 그가 애굽으로 도망하자 사람을 보내 끝까지 그를 잡아와 칼로 그를 죽이지 않았느냐? 그리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지 않았느냐...


  * 여호야김이 자신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는 선지자를 얼마나 잔혹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죽였는지를 그 당시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최근 그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함을 지적한다. 


9.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도와주어 백성들의 손에 그를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죽지 않았다. 


  * 다행히도 예레미야는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도움으로 죽지 않고 살아난다. 죽을 위협으로부터 건짐을 받은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당시 사회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치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어떤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려움 상황임을 확인하다. 오히려 예레미야가 죽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일 정도다. 




[묵상 한 모금]


하나님의 심판은 갑작스럽게 한 두 번의 실수와 그릇된 판단으로 임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심판의 근거는 죄의 행위가 아니라 죄를 알고도 돌이키지 않는 완악한 마음이다. 그것이 우리를 심판과 지옥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예레미야 26장의 사건은 그 당시 정치와 종교계가 얼마나 죄 가운데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왕부터 제사장과 고관들 그리고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께서 무고하게 십자가 형벌을 받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도 우리는 같은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그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얼마나 죄 가운데 있었는지를 보게 된다. 


다행히 예레미야는 그의 역할이 남아있었기에 하나님이 살 길을 열어주시고 살려주신다. 그러나 예수의 역할은 십자가를 향하는 것이었기에 하나님은 정작 당신의 독생자에게 살 길을 열어주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살리기 위해서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들을 동원하셨지만, 당신의 독생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예수)에 대해서는 왜 이리 모지셨는가!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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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34편] 자기 백성의 간구에 응답하여 구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은 <의인>을 향하시고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신다는 것으로 모든 인류를 향한 구원자로서 묘사하고 있다. 기독교는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스라엘을 넘어 모든 인류를 위한 종교다. 특히, 의롭게 살고자 하는 자들과 이 땅에서 마음의 상함을 입은 자들에게 만물의 창조자가 그들과 가까이 있다는 복된 소식을 전해주는 종교다. 더불어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목하여 보고 계시며, 반드시 그들의 자취를 끊어버리시겠다고 경고하시는 종교다. 의롭게 살고자 하는 자여, 심령이 상함을 입은 자여, 이 하나님으로 인해 위로를 얻으시길. 오늘도 악을 일상으로 행하면서도 알지 못하는 자들은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시길(눈가리고 아웅하지 마시고)



[정리]


여느 시편과 그 메시지가 비슷하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를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1. 자기 백성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4절.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6절.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절.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8절.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절. 젊은 사자는 궁핌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의인과 마음이 상한자를 돌보시는 하나님


15절.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16절)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17절)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18절)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19절)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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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22편] 주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은 육체적 아픔이 아니라 영적 아픔이다. 제자들에게 배신당하고 버림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에 대한 아픔이다. 왜 마지막 순간까지 없는 자처럼 침묵하시며 나를 구원하시지 않는가! 우리가 어찌 이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정리1]


1. 신음하고 있는 향해 대답이 없으신 하나님(1-21절)


  1절.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2절)


: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자가 도움이 있지 못하고, 오히려 비참한 형국에 빠져 사람들의 놀림을 받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으신다. 그들을 벌하시지도,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 비참하다. 원수들이 자기의 속옷을 제비 뽑아 나누어가지려고 하는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절규하듯이, 한탄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2.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라.(22-31절)


[정리2] 


1. 앞 부분의 내용과 뒷부분의 내용이 아직은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2. 앞 부분이 고백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는 중에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예수님의 처지를 잘 묘사해주고 있다. 


3. 예수님이 당한 고난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단순한 육체적 아픔과 죽음이 아니라, 버림받은 것과 같은 느낌과 상황.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음과 그 동안의 나의 믿음과 신앙이 헛된 것이었다는 지울 수 없는 후회...


4. 예수님의 가장 큰 고통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신하고 버렸다가 아니라, 자신를 보낸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배신당하고 버려졌다는 것에 대한 고통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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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사기 16장] 삼손에서 인간의 냄새가 난다. 너무나 인간적인 삼손. 삼손에게서 예수의 냄새가 난다. 죽음으로 자신의 사명을 완성하신 예수. 삼손에게서 은헤의 냄새가 난다. 나실인의 거룩함을 버린 삼손에게 다시 머리털이 자랐다는 문구에서 은혜의 냄새가 난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삼손에게 강력한 힘이 있어서 블레셋 사람들이 대적하지를 못했다. 

  1) 한 번은 삼손이 가사에 가서 한 기생의 집에 들어간 것을 알고, 그를 죽이려고 밤새 매복하고 있었다. 

  2) 그런데 삼손이 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들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빼어 어깨에 매고는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지고 갔다. 


2. 블레셋은 들릴라를 통하여 삼손의 힘의 근원을 알아내 그를 잡고자 했다. 

  1)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자를 사랑했다. 

  2)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그 여자에게 돈을 줄 것을 약속하고 삼손의 힘의 근원을 알려주고, 그를 결박할 수 있도록 해주면 돈을 주겠다고 했다.(각각 은 1100씩)

  3) 들릴라는 삼손을 꼬득여 힘의 근원을 찾아내고자 하는 시도를 한다.

   (1) 마르지 않은 새 활줄 일곱으로 자신을 결박하면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이 된다. 

   (2) 만일 쓰지 아니한 밧줄들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해져 다른 사람과 같이 된다. 

   (3) 만일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짜면 된다.

   : 세 번 모두 시행하고 블레셋 사람들을 잠복 시켜 놓았지만, 블레셋 사람이 잡으러 왔다고 거짓말을 하면 모든 끈을 금새 풀어버렸다. 삼손이 들릴라에게 진심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4) 들리라는 삼손에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삼손을 재촉하여 조르자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 되어 결국은 사실을 고백하게 된다. 

   (1) 자신은 나면서부터 나실인이 되었기에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다.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될 것이다. 

   (2) 들릴라는 블레셋에게 사람을 보내 올라 오도록 하고, 들릴라는 자신의 무릎 위에서 삼손이 자게 하고는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이 들이 닥쳤다고 말하자 삼손이 잠이 깼지만 전과 같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셨다는 것을 그 때까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5)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잡아다가 눈을 빼고 가사에 데리고 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다. 

  6)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3. 블레셋 방백이 자신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릴 때, 삼손의 재주를 보기를 원했다. 

  1) 자신들을 괴롭힌 삼손을 데려다 재주를 부리도록 시켰다.

  2) 삼손은 자신을 이끈 소년에게 요청하여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함.

  3) 그 집 안에 약 3000명 가량의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의 재주를 보고 있었다. 

  4) 삼손은 여호와께 부르짖어 나를 이번만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해 달라고 요청하고, 집을 버틴 두 기둥을 양팔로 잡고 몸을 굽히매 그 집이 무너졌다. 그 안에 모인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죽을 때에 죽인 자가 더 많았다. 

  5)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내려가서 삼손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왔다.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였다.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 동안 지냈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풀어서 쓰기]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었다. 블레셋은 늘 기회를 엿봐 삼손을 제거하려고 했지만, 삼손은 워낙 힘이 강해서(성문까지 뽑아들고 가는 정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 삼손이 들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어 그와 머물게 됨을 알고, 블레셋 사람들은 그 여인을 통해 삼손의 힘을 근원을 알아내고자 한다. 들릴라는 그들이 주겠다는 돈에 현혹되어 몇 차례 삼손으로 하여금 그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다. 삼손은 장난처럼 그 여인에게 가르쳐 준다. (1) 마르지 않는 새 활줄 일곱으로 자신을 결박하면 된다. (2) 쓰지 않은 밧줄로 나를 결박하면 된다. (3)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짜면 된다. 와 같은 이야기를 해주면 들리라는 그것을 시행하지만 번번히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들릴라는 삼손의 이런 태도에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며, 계속해서 채근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삼손은 괴로워하다가 결국은 자신이 나실인으로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 떠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들릴라는 블레셋 사람을 부르고 삼손의 머리카락 7개를 민다. 그러자 삼손은 무력하게 되어 블레셋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들의 손에 잡혀 눈을 뽑히고 옥에서 맷돌을 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런 슬픈 상황 속에서 삼손의 머리는 조금씩 다시 나게 되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는 축제일에 삼손을 불러 그의 재주를 보기를 원했다. 삼손은 소경이 되어 한 소년의 손에 이끌리어 블레셋 사람들 앞에 서게 되고 그들이 원하는 재주를 부려야 했다. 그러는 중에 삼손은 그 집의 힘을 지탱해 주는 기둥을 알아내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신에게 한 번의 힘을 주어 복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힘을 다해 기둥을 민다. 결국 기둥은 넘어지고 집이 무너져 많은 블레셋 사람들이 죽게 된다. 오히려 삼손이 살아 있을 때 죽인 사람들보다 삼손이 죽으면서 죽인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성경은 기록된다. 

삼손의 가족들이 삼손의 시신을 거두어 그의 아버지의 장지에 함께 장사했다. 삼손은 2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지냈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삼손의 인간적인 연약함


삼손은 강한 힘으로 블레셋을 제압했었다. 그렇게 20년간 사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했었다. 힘으로 삼손을 제압하려고 했지만 블레셋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삼손은 여자에 약했고(아내의 채근에 결국 수수께끼의 답을 알려주고 만다. 이번에는 들릴라의 채근에 진실을 말하고 만다) 결국 들릴라의 꾀임에 넘어가 블레셋에게 눈을 뽑히우고 잡히는 결과를 맞게 된다. 


육체적 강력함(군사적 강력함)이 진정한 이스라엘의 구원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힘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었고, 영적인 강인함이 없었던 삼손은 육체적 강인함마져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진정한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2. 삼손에게 주어진 다시 한번의 기회


삼손은 포박되어 눈을 뽑히고, 놋 줄에 매여 옥에서 맷돌을 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삼손의 방탕한 삶이 그와 같은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처절한 실패 속에서도 밀린 머리털이 다시 자랐다는 것은 하나님은 다시 삼손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이고, 삼손에게 다시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으로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들 앞에서 실패자로 마감할 수 밖에 없는 인생에게도 하나님은 다시 한 번의 기회를 허락하신다.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완전한 실패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다시 한 번의 기회를 허락해 주신다. 


3. 삼손이 죽음으로 대적을 심판하였다.


삼손에서 예수의 냄새가 난다고 이전에도  표현했다. 오늘 삼손의 마지막 죽는 장면도 그런 냄새가 난다. 삼손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대적들을 심판한다. 성경은 삼손이 살아서 죽인 자보다 죽으면서 죽인 자가 더 많다고 말한다. 삼손은 죽음으로서 자신의 사사로서의 역할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십자가의 죽음이 구속사적으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것처럼 삼손도 그와 같은 것이다. 죽음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한 것이다. 


물론 삼손의 죽음 이전의 삶은 부끄러운 모습이다. 이방 여인을 탐하고 그 여인의 계략에 넘어가 나실인으로서의 서약을 잊어버린채 지냈다.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 뿐이었다. 힘으로 구원자가 되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사랑하는 여인의 계략에 넘어져 자신의 자리를 잃어 버리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 삼손이 회개하고 자신의 사명을 되찾을 때 하나님은 그를 구원의 도구, 사사로 다시 세우신다. 예수를 아는 사람이라면 삼손의 이야기에 예수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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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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