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plash-logorawpixel

Photo by rawpixel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

1절.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절.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절.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절.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절.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절.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거기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고(고침받기를 원해서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예수님이 그 손 마른 사람을 고치는가 주시하고 있었다. 

2. 예수님은 오히려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하신듯 하다. 그 손 마른 사람을 한 가운데 일어서라고 하고 모인 사람들을 향해서 질문하시고 그들 스스로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를 답하도록 하셨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무엇이 옳은 일인가?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 무엇이 옳은 것이냐?” 무리는 잠잠했지만 그것은 모르거나 알 수 없다는 반응이 아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옳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었다. 

3. 문제의 핵심은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에 있는 것이었다. 안식일 규정도 문제가 없고,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안식일의 본질은 잊고 껍데기를 율법주의적으로 붙잡고 강요하고 있는 이들의 ‘완악함’이 문제인 것이다. 주님은 그들에게 탄식하시고 노하셨다. 

4. 예수님은 한쪽 손 마른 자에게 ‘네 손을 내밀라’하시고 그가 내밀매 손이 회복되게 하셨다. 

5. 이런 현장을 직접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에 헤롯당과 함께 예수를 죽이는 것에 대한 논의를 한다. 이런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완악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질문하기]

1. 예수님은 이 사건을 계기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왜 굳이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심으로 스스로를 생명의 위협에 빠지도록 자처하셨는가? 

  - 예수님은 치유하시는 능력이 있으시고 손 마른 사람은 긴급한 환자는 아니기 때문에 다음날 오라고 해서 고치셔도 문제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괜한 갈등을 일으키지도 않고, 실속도 있는 행동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안식일에 그 병자를 공개적으로 고치심을 통해 ‘안식일이 무엇을 위한 날’인지, ‘하나님이 왜 안식일 규정을 주셨는지’ 명확하게 알리기 원하셨다. 그렇게 하려면 안식일, 회당에서 공개적으로 손 마른 자를 고치시는 것 만큼 좋은 효과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바리새인들은 그 손 마른 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지켜보고 있었으니 더욱 효과적)

2. 과연 안식일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 날인가? 

  - 안식일은 구별된 날로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는) 일하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날이다.(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처럼)

  - 그러나 안식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되는 날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서나 선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날이다. 예수님이 손 마른 자를 안식일에 고쳐주시고 회복시켜 주셨던 것처럼.

3. 예수님께서 탄식하시며 분노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 완악함이다. 가르쳐주어도 듣지 않고, 깨닫게 해주어도  받아들이지 않는 완악함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이 옳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면서도 귀를 닫고 오히려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에 대해서 주님은 탄식하시고 분노하신다. 

[묵상하기]

1. 안식일은 자신의 생명, 자신의 확장, 자신의 번영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보여주는 날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사회적 선을 행함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뜻을 이 땅에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일꾼으로서의 충성을 보여주는 날이어야 하는 것이다.    

2. 사람들이 죄 때문에 망하는게 아니다. 죄를 짓고도 돌이키지 않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 죄를 숨기고 부정하고 죄를 드러낸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완악함이 결국 자신을 멸망에 이르게 한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unsplash-logoPolina Rytova

Photo by Polina Rytova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

23절.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4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절.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7절.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아니니

28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성경내용 정리]

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 제자들이 이삭을 잘랐다. 이 일을 알게 된 바리새인들이 ‘안식이 규정을 어긴 것’에 대해서 지적했다. 어떻게 안식일 규정을 어길 수 있는가?

2. 예수님은 다윗의 경우를 들어 답변하신다. 다윗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되는 진설병을 본인이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 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이 일에 대해서 다윗에게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3.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 (규정을 지키기 위해서)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다. 

4. 예수님이 안식일에 주인이심을 밝히셨다. 


[질문하기]

1.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제기한 문제는 무엇인가? 

왜 안식일 규정이 있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그 규정을 지키지 않는가? 안식일에 이삭을 자른 행위는 ‘추수’ 행위에 해당하므로 이것은 ‘일’을 한 것이고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아야 한다는 엄중한 계명을 어긴 것이다. 그런데 왜 예수는 제자들의 잘못에 대서 문책하거나 지적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2. 왜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삭을 자른 행위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셨는가? 

예수님은 안식일 규정을 무시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다만 특수성까지 고려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원래의 율법의 취지를 훼손 시키는 것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신다. 다윗은 제사장 외에는 먹으면 안되는 진설병을 먹었다. 이 때는 사울에게서 살기 위해 도망치던 때였고, 위급한 상황에서 진설병을 먹은 것이다. 성경은 그 일은 기록하면서 다윗이 잘못했다고 언급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율법이라는 규정보다 더 위중한 상황(생명의 위협 등)에서는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융통성을 발휘했던 것이고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 

제자들이 이삭을 자른 행위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자들의 허기짐이 긴급할 정도 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사건을 통해서 안식일 규정보다는 사람의 생명이 우선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알리시는 계기를 삼으셨다. 

3.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라는 말씀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1) 예수님께서 안식일 규정을 세울 수 있는 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표면적인 안식일 규정이 있지만 그 해석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안식일 규정을 판단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다)

 2) 안식일 규정이 중요한 것은 안식일 규정을 지키는가 지키지 않는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식일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핵심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해석할 수도 있겠다. 예수의 본질은 참된 안식의 회복이지 어떤 규정을 지키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묵상하기]

1. 율법주의의 위기는 율법의 본질을 잊고 문자와 형식에 매이기 시작하면서다. 바리새인의 문제는 바로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문자주의, 형식주의에 굳어져 버린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의 형식을 부정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다. 오히려 율법의 본질과 정신을 살려내기 위해서 오신 분이다. 율법이 형식과 판단만 남아 있는 곳에서 예수님의 사역은 오히려 율법을 파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논란의 중심이 계시면서도 율법을 무시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필요한 경우 의도적으로 기존의 전통을 깨심으로서 ‘본질’을 명확하게 드러내도록 하셨다. 

2. 이미 구약시대에도 긴급한 상황에서는 예외적인 인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이후에도 다윗의 이 문제를 지적하거나 문제삼은 사람이 없었다. 율법과 전통은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에 매이기 시작하면 율법주의가 되고 보수주의가 되고 만다. 율법주의보다 더 핵심적인 율법이 있다. 그것은 생명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즉 살리는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것은 율법을 앞선다. 전쟁 중에서도 의사의 의술은 이념의 차이와 적군 아군을 가리지 않듯, 생명을 살리는 것은 율법과 전통에 우선한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unsplash-logoIan Stauffer

Photo by Ian Stauffer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하기]

21절.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절.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절.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절.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절.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절.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절.     예수의 소문이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성경내용 정리하기]

1. 마가복음은 여전히 사건 전개가 급하게 진행되는 형식으로 전한다. ‘곧’ 안식일이 되었고(21절)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게 되었다.(28절) 

2. 안식일 회당에서 사람들은 두 가지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첫째는 그의 가르침에 대한 것이었다.(22절) 예수의 가르침은 권위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다. 형식적이거나 뻔한 내용의 반복이 아니었다. 그 가르침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부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무게감이 있었다.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깊은 울림이 있는 말씀으로 생명력이 느껴지는 가르침이었다. 전혀 다른 차원의 가르침이라고 느껴졌던 것이다. 

두번째는 그의 권세있는 말씀(귀신에게 명한즉 귀신도 순종하게 되는)이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단순히 깊은 통찰이나 깨우침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권위’(말을 하면 그 말대로 되는. 심지어 귀신조차도)있는 새 교훈인 것이다.(27절)

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 가르침과 귀신을 내쫓는 말씀은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게 되었다. 어둠은 빛을 감출수 없듯이, 사람들을 놀라게 한 가르침과 권위는 순식간에 온 갈릴리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질문하기]

1.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시작된 일을 정리해 보자.

제일 처음 하신 것은 갈릴리에서 제자를 부르신 것이었다.(부름받은 제자들은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았다.) 그 이후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셨다. 권위있는 말씀(귀신을 쫓아내심)을 행하셨다. 이 두 가지는 모두 공동점이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그에 대한 반응(순종)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 주님의 사람(백성. 12명의 제자)이 부르심에 순종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고, 심지어 귀신조차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2. 예수님이 말씀으로 귀신에게 명한즉 귀신이 나가게 된 사건의 의미는 무엇인가? 

귀신을 내쫓는 사건은 단순한 치유사역과 구별된다. 귀신을 내쫓았다고 말하지 않고 귀신에게 명한즉 순종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 앞에 귀신 조차도 순종할 수 밖에 없는 ‘권위’를 강조하는 것이라 하겠다. 모든 사람이 순종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대적자, 인간의 대적자인 귀신까지도 예수님의 말씀 앞에는 순종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권위가 어디에까지 미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라 하겠다. 


[묵상하기]

1.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다.(14절) 그리고 첫 사역은 향후 12사도가 될 제자를 부르신 것이었고, 가르침(율법과 대비되는)을 주셨고, 권위있는 일(귀신에게 명하고 귀신이 순종하는)을 하셨다. 이 일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말씀하시면 바로 순종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이 일은 신속하게 확장되었다.(말씀에 권세가 있다는 것과 귀신을 내쫓았다는 것은 소문으로 갈릴리 사방에 퍼져나갔다.)

공생애를 시작하자 거침없이, 신속하게 예수님의 영역이 확장되고 실현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가복음은 1장은 진행된다. 사람들의 불순종과 무지 그리고 귀신들의 방해로 지금까지 실현되지 못해왔던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과 함께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무지에서 깨달음으로, 귀신들의 방해에서 귀신들을 내쫓음으로 전환되었음을 마가복음 1장은 보여주고 있는듯 하다. 

2. 한 나라의 정권이 바뀌기 전에는 많은 노력이 열매를 거둘 수 없지만, 정권이 바뀌고 나면 그 동안 쌓여왔던 적폐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질서를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이전의 권세를 대체하고 새로운 왕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그동안 결실을 맺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실행해 나가시는 것이다. 그 시작을 보여주시는 장면이라 하겠다. 아직 모든 영역에 그 질서를 실현한 것은 아니지만, 시작되었고 완성될 것을 보여준다. 

3. 우리는 지금 그 시작을 과거에 두고 있고, 그 완성을 미래에 두고 있다. 그 시작을 믿는 자는 완성을 확신해야 하며 그 완성을 믿기에 오늘을 흔들림없이(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과거를 믿지 못하는 자가 미래를 논할 수 없다. 과거의 시작을 믿지 못하는 미래의 완성을 확신할 수 없고 당연히 오늘의 믿음이라는 것도 시련과 유혹에 쉽게 무너지는 것에 불과하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중동교회 주일낯예배(2014.6.22)

제목: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십시오.

본문: 롬 14:1-6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09성경개관 준비자료9_모세5(25-34장)


출 25장.성소의 예물과 증거궤,진설별, 등잔대와 도구들.

출 26장. 성막에 대한 지침/기구 배치

출 27장. 제단, 성막의 뜰, 등불관리

출 28장. 제사장의 옷에 대한 규례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1)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2)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2. 증거궤를 만들라.

 1) 조각목과 금을 주로 사용

 2) 궤 속에는 증거판을 두라

 3) 속죄소 위에 그룹의 얼굴을 마주보게.

 4)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웨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3. 진설병을 두는 상을 만들라

 1)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라.

 2)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순금으로 만들라.

 3) 상 위에 진설병을 항상 내 앞에 두라.


4. 등대잔과 기구들

 1) 순금으로 등잔대를 만들라.

 2) 모두 한 덩이로 연결하여 만들라.

 3) 가지는 6개가 되게 하라.

 4)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라.

 5) 불집게, 불 똥 그릇도 순금으로 만들라.

 6)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하라.

1. 성막을 지을 휘장과 널판과에 대한 규격과 양식


2. 너는 산에서 보인 양식대로 성막을 세울 것이다.(30절)


3.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라.


 * 증거궤와 속죄소는 구별된 기구다. 그런데 그것을 함께 두기 때문에 혼용해설 쓸 수 있겠다.


4. 휘장 바깥쪽에 상(진설병을 두는 상)을 두고 등잔대를 놓아 상과 마주하게 한다.


5. 청색, 자색, 혹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짜서 성막 문을 위하여 휘장을 만들라.

1. 제단을 만들라.

 1) 다섯 규빗의 정사각형 크기, 높이는 3규빗.

 2) 조각 목으로 만들고 그 위에 놋을 싸라.

 3) 재를 담는 통, 부삽, 대야,고기 갈고리, 불 옮기는 그릇은 다 놋으로 만들라.

 4) 제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라.

 5) 산에서 보여준 대로 만들라.


2. 성막의 뜰을 만들라

 1) 남쪽과 북쪽은 100규빗으로

 2) 서쪽과 동쪽은 50규빗으로

 3) 성막에서 쓰는 모든 기구와 말뚝과 뜰의 포장 말뚝을 다 놋으로 하라.


3. 등불관리

 1)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라.

 2)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기름이 끊이지 않게 하라.

 3)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다.

 * 아론의 제사장들은 등불 관리를 위해서 밤마다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야했다.

1. 제사장 직분을 맡기다.

 1)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2) 아른 위해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라.

2. 제사장의 의복

 1) 흉패, 에봇, 겉옷, 반포 속옷, 관...

 2) 에봇: 호마노 두 개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나이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니 여섯이름을 다른 보석에 새긴다.

 3) 판결흉패:

  (1) 네 줄로 보석을 물린다.

  (2)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라.

  (3)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도록 한다.ㅏ

  (4)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 그의 가슴에 붙이게 하라.

 4) 다른 옷 규정.

  (1) 옷에 금 방울을 달아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러면 죽지 아니하리라.

  (2) 순금으로 ‘여호와께서 성결'이란 패를 아론의 이마에 두게 함. 아론이 성물과 죄책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있은 즉 받으시리라.

  (3) 아론을 위해 속옷을 아름답게 만들고, 하체가 보이지 않도록 하라.

  (4)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 죄를 짋어진채 죽지 아니하도록 하라.

  (5) 영원한 규례니라.

  

출 29장. 제사장 직분 위임

출 30장. 분향 제단, 속전, 물두멍,향

출 31장. 성막을 만든 사람들 / 안식일

출 32장. 금 송아지 사건/분노와 중재

1. 제물을 준비하라(수소,숫양,무교병 등)

2.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의복을 입힘.

3. 관유를 가져다가 그의 머리에 부어 바름.

4. 속옷을 입히고, 띠를 띠우고, 관을 씌워 제사장 직분을 맡김.

------------

5.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해 속죄제를 드림.

6. 화제

7. 요제

8. 아론과 아들들에게 이레동안 위임식을 하도록 함. 매일 수송아지 하나로 속죄하기 위하여 깨끗하게 하고 그것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라.

9. 이레 동안 속죄를 위해 거룩하게 하면, 지극히 거룩한 제단이 되어 제단에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리라.


10. 매일 상번제의 제물

 1)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드릴 번제다.

 2)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3)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11.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1. 분향할 제단

 1) 지성소 휘장 밖에 두라.

 2) 한 규빗의 정사각형, 높이 2규빗.

 3) 향을 사르는 곳이지 제물을 드리는 곳은 아니다.

 4) 일년에 한 번만 향단 뿔을 위해서 속죄할지라. 이 제단은 여호아께 지극히 거룩하다.

2. 속전

 1) 이스라엘 자손의 계수에 따라 속전을 여호아께 드리라.

 2) 그래야 계수할 때,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된다.

 3) 계수에 드는 자는 반 세겔씩 내야 함.

 4) 20세 이상 된자. 더도 덜도 내지 마라.

 * 다윗이 계수할 때, 질병이 생긴 사건은 속전을 내지 않았기 때문인가?


3. 놋 물두멍

 1)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어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라.

 2) 아론과 그 아들들이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하라.

4. 거룩한 향기름

 1) 거룩한 관유를 만들라.

 2) 그것으로 회막과 증거궤, 상, 모든 기구, 등잔대와 그 기구, 분향단, 번제단, 물두멍..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구분하라.

 3) 사람에게 붓지 말고, 이와 같은 것을 다른용도로 만들지 말라.

5. 거룩한 향

 1) 향을 만들고 소금을 쳐 성결하게 함.

 2) 그 향을 증거궤 앞에 두라. 이 향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다.

 3) 개인적인 용도로 이 향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1.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통해 말들다.


 1)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의 브살렐을 부르시고, 단 지파의 오홀리압을 세워 성막과 제사에 필요한 것들을 정교하게 만들도록 하셨다.


2. 안식일을 지킬 것을 강조하심.


 1) 안식일은 거룩한 날이다.

 2) 그것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것디ㅏ.

 3)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리라.

 4) 안식일을 지켜 영원한 규례를 삼으라.

 5)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영원한 표징이며, 여호와께서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날 쉬었다.


3. 증거판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이르기를 마치신후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며,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 하나님께서 친히 쓰실 때, 히브리어로 쓰셨겠지... 당시 히브리인들이 읽고 알수 있는 언어로...^^

1. 모세를 기다리던 백성들이 모세의 더딤을 보고 그의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판단했다.

2. 그리고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내라고 한다.

3. 아론은 백성들에게 헌물을 받아 금으로 부처 금 송아지를 만들었다.

4. 그리고 여호와의 절일을 위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춤추며 뛰놀았다.

--------------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백성들의 부패함을 고발하신다.

6. 그리고 여호와는 이 백성들을 멸하자 하시니, 모세는 여호와를 설득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다.

7. 모세는 여호수아와 함께 내려갔다. 하나님이 직접 새겨주신 두 돌판을 들고.

8. 모세는 백성  앞에서 돌 판을 던져 깨뜨리고, 금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내어 백성들에게 먹게 했다.

-----------

9. 모세가 아론을 책망하자, 아론은 백성의 악함 때무이라고 변명한다.

10. 모세는  여호와의 편에 선 레위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진영에서 칼로 그 형제와 이웃을 심판하도록 했다.

11. 모세는 백성들의 속죄를 위해 여호와께 올라갔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큰 죄를 저질렀음을 자백했다.

12. 자신의 생명을 걸고 이 백성의 죄를 사해 달라고 요청함.

13. 하나님께 사자를 보내시겠다고 했지만, 보응하는 날에는 그 죄를 보응하시겠다고 선언하심.

출 33장.




1. 하나님은 모세의 중재로 마음을 돌이켜 이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보내실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신다.

2. 그러나 하나님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신다. 왜냐하면 이 백성은 목이 곧은 백성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이들과 함께 하다가 결국은 이들의 죄로 이들을 진멸하게 될 것을 염려함이다.

3. 백성이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치장하지 아니하니, 여호와께서 이들에게 장신구를 떼어내면 어떻게 할지를 정하신다고 말씀함.

4. 그러나 백성들이 장신구를 떼어냄.

---------------

5. 모세는 진과 떨어진 회막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6. 백성들은 자기의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으로 들어감을 보았다.

7.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친구와 이야기 함같이 하였다.

8. 사람들은 이를 보고 각자 장막 문에서 서서 예배하였다.

9. 모세가 진으로 돌아올 때에도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믹을 떠나지 않았다.

---------

10. 모세가 여호와를 다그치며, 자신에게 주를 알리시고, 주의 목전에서 은총을 입게 해달라 한다. 그리고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겨 달라고 한다.

11.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한다.

12. 이 백성은 여호와의 함께 하심으로만 구별되는 백성이다.

13. 모세는 주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하고, 여호와는 모세를 죽지 않도록 하시면서 자신의 등을 보도록 허용하셨다.





1. 아론이 백성들과 함께 범죄했을 때, 모세가 아론을 책망하자 아론은 백성들의 죄를 지적한다. 이 장면은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과 아담 그리고 하와와의 모습을 연상 시킨다. (산, 변명)


2. 모세는 하나님께 중재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의 요청에 대해서는 응답하신다.

 1) 멸하지 않는 것도

 2) 사자만 보내겠다고 하셨다가, 다시 함께 가겠다고 하신 것도

 3) 모세에게 은총을 입은 것을 알게 해 달라고 , 주의 영광을 보게 해달라는 요청도 다 들어주신다.


3. 이 백성이 다른 민족과 천하 만민 중에 구별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 하나때문이다.(33:16)


4. 아직 시내산에서 받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는데, 이미 백성들 사이에서는 그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여호와의 절일, 번제, 화목제... 등 / 출 32:5,6)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지난 주말 3일간 제주답사를 청년들과 다녀오면서 유행한 말 중에 '새로고침'이란 말이 있었다. 이는 함께 간 청년 중 자매 한 명이 중간 중간 화장을 고치는데 스스로 이것을 '새로 고침'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컴퓨터에서 인터넷 화면을 다시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 클릭하는 것인데, 중간 중간 화장을 통해 자기 자신을 새로 고쳐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모습인 것이다.

느헤미야 13장은 그와 같은 것이다. 새로고침.

이전에 세팅하고 정했던 것들이 원래의 모습을 잃고 다시 옛모습(생얼)으로 돌아가는 것을 중간 중간 새로 고치는 과정을 통해서 개혁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반복적인 연약함과 죄 때문에 이스라엘의 한계와 인간의 한계를 보면서도, 어쩌면 그런 가운데에서도 계속해서 '새로고침'(계속되는 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정리1. 본문에 나온 내용 정리]

1. 섞인 무리 중에서 모압과 암몬 사람들을 분리시킨 이유

  1) 그 날(이전의 어떤 날인듯)에 모세의 책을 읽었는데 그 중에 모압과 암몬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알게 됨

  2) 이는 과거 출애굽한 백성이 가나안을 향해 오는 과정 속에서 모압과 암몬 사람들이 따듯하게 영접해주지 못할망정,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저주를 바꾸어 복이 되게 하셨다.

  3) 이스라엘 가운데서 모압과 암몬 사람들을 분리하였다.

2. 그런데 암몬 사람 도비야가 예루살렘 성전에 자리를 잡게 되다.

  1) 성전의 방을 담당했던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2) 도비야를 위해 큰 방을 만들어주었는데 원래 그곳은 소제물을 보관하고,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포도주와 기름 그리고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었다.

  3)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떠나 아닥사스다 왕 32년에 왕에게 잠시 다녀와서 보니 이와 같은 악한 일이 벌어져있었다.

  4) 느헤미야가 도비야의 세간을 다 치워버리고,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소제물과 유향으로 다시 채워넣음.

3. 다시 고치는 느헤미야의 개혁1 (레위인을 불러옴)

  1) 레위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함으로 레위인들이 각기 자기 밭으로 도망하여 성전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게 되었다.

  2) 느헤미야가 레위인들을 다시 불러오고 책임을 맡기고, 그들의 필요한 양식을 채워 넣었다.

  3)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느헤미야가 한 선한일을 기억하소서.

4. 다시 고치는 느헤미야의 개혁2 (안식일을 다시 지키도록 함)

  1)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여러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들어와 장사를 함.

  2) 느헤미야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을 책망함.

  3) 문지기를 세워 안식일에 문을 닫고 장사하는 사람이 없도록 함.

  4) 자신이 주를 위하여 한 이 일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함. 주의 큰 은혜로 나를 아끼소서!

5. 다시 고치는 느헤미야의 개혁3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지시킴)

  1) 유다사람들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다.

  2) 그 통혼한 자녀들 중에 아스돗 말을 반쯤 하면서도 유다 말은 못하는 자녀도 있었다.

  3) 느헤미야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고 그들 중 몇은 때리고 머리털을 뽑았다.

  4) 그들에게 우리의 딸을 주지 말고, 그들의 딸을 데리고 오지 말라고 맹세하라.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던 왕 솔로몬도 아내로 맞은 이방여인들로 말미암아 범죄하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어찌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큰 악을 하나님께 범하겠는가?

  5) 느헤미야는 대제사장의 아들이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된 것을 알고, 그를 쫓아내어 제사장의 직분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다시 세웠다. 그리고 그들로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했다.

  6) 느헤미야는 자신의 이와 같은 일을 기억하사 복을 달라고 소망했다.

[정리2. 본문의 재구성]

느헤미야 13장은 느헤미야 12장과 잠시 시간적인 공백이 있다. 성벽재건과 성벽 봉헌식을 마치고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과의 약속(다시 돌아오겠다는) 때문에 왕에게도 돌아갔다. 그리고 몇 일후 다시 왕에게 요청하여 말미를 정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왕을 만난 시간은 몇 일이지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떠나 있는 시간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1년 이상되지 않았을까?)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예루살렘에서는 그 짧은 시간에 다시 옛 모습을 돌아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느헤미야가 다시 돌아왔을 때 4가지의 큰 죄악이 있었다.

1. 과거 발람 사건으로 영원히 이스라엘의 총회에는 들어올 수 없는 암몬 사람인 도비야가 버젓이 제사장 엘리아십과의 관계 속에서 성전에 곳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이른 본 느헤미야는 도비야의 세간을 다 꺼내고, 다시 원래의 것으로 채워 넣었다.

2. 성전을 섬기는 레위인과 문지기, 노래하는 자들에게 주어야 할 것들을 주지 아니함으로 이들이 생계 때문에 다 성전을 떠나고 없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다시 이들을 불러오고 직분을 맡기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도록 했다.

3. 안식일을 지키도록 한 것을 어겼다. 안식일임에도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장사를 하는 것이었다. 이에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문을 닫게 하고 그 주변을 얼씬 거리는 사람마저 경계하여 있지 못하도록 했다.

4. 이방인과의 통혼 문제도 심각했다. 대제사장의 자손이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어 있을 정도로 문제는 심각했다. 느헤미야는 이들 중에 일부를 때리고 털을 뽑아 버림으로 경계를 삼았다. 그리고 맹세하여 그렇게 행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와 같은 개혁을 행할 때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이와 같은 노력과 애씀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이 특징적이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사람들은 하드웨어적 요소와 인적 자원, 컨텐츠 만으로 개선이 일어나지 않는다.

스룹바벨과 느헤미야을 통해서 성전과 성벽이 재건되고,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내적 개혁을 통해서 말씀과 성전 제사와 직분과 이들이 장기적으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이전의 모세의 때와 같이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이스라엘, 남은 자 이스라엘은 온전해 질 수 없었다.

즉, 이와 같은 것이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사람과 인류가 변화되기에는 충분하지 못한 것이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인간적인 모든 개혁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다시 옛 죄악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에스라, 느헤미야는 그와 같은 메시지도 함께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멋진 개혁과 변혁을 일구어 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에는 한계가 있다. 뭔가 더 필요하다. 이들의 외부적 환경이 아닌 내부적으로부터 오는 개혁이 일어나야만 한다는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내적 생명의 탄생, 이것을 중생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새생명의 탄생이 없이는 진정한 개혁이란 불가능한 것이 된다.

2. 반복적인 새로고침이 필요하다.

중간 중간 화장을 고쳐야 하듯이, 우리의 신앙은 지속적인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느헤미야가 출동하고, 에스라가 출동했어도 개혁은 다시 반복되어야 할 필요가 생기게 된다. 탁월한 지도자의 부재가 아니라, 그 만큼 우리의 본성이 타락해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느헤미야처럼(미리 예상하지는 못했겠지만) 개혁을 일상으로 생각하고 정기적인 자기 평가와 새로 고침의 사역을 꾸준히 감당해야 필요성을 가진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비밀이 있고,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선언한다.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2,3절)


그 비밀은 뭐고 그 보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알아갈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세워져 가는 것이다.


우선 그 당시 골로새 교인들 사이에 있었던 혼란은 과도한 금욕에 대한 것인 듯 하다. (23절. 몸을 괴롭게 하는 것) 먹고 마시는 것, 절기나 초하루, 안식일을 지키는 것(16절)을 골자로 하는 사람들의 요구였다.

골 2: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골 2: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더 엄격하게, 더 철저하게, 더 행함으로 신앙을 표현하자는 것이 나쁘게 보일리 없다. 그래야 더 헌신적인듯 하고, 더 열심인것 같기도 하다. 또 그래야 뭔가 보상을 기대해도 될듯 하다. 부담스럽지만 금욕을 행하는 자의 이성에도 만족이 있고, 누가보더라도 종교인 다운 냄새가 나는 효과가 있다.


바울이 이런 가르침을 묵인만 했더라도 유대인들에게, 세상의 종교인들에게 비난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과도한 금욕은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자유와 풍요를 갈취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본체되신(그림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불완전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골로새 교회와 주변 교회(라오디게아 등과 같은) 사이에서는 그런  가르침이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인지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럴듯한(육체로 뭔가를 행하여 자신의 헌신을 보여 줌으로) 가르침에 넘어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나 보다. (이런 가르침을 바울은 세상의 초등학문이라 했다.20절)

골 2: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그리스도는 그의 죽으심과 더불어 육체로 행해야 신앙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율법적 가르침을 폐하셨다. 세례받은 성도란, 그런 가르침에 대해서는 육체적으로 죽은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가르침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금욕주의자가 아니다.
금욕주의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뭔가 행위로서 보여줄 수 있는 그럴듯한 행위를 만들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금욕주의자가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발적 절제를 요구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경건이라고 부른다. 절제는 고도로 성숙한 자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폭식하거나 단식하는 것은 극단적 모습이다. 그러나 즐기되 절제할 수 있는 모습은 아름답고 성숙한 모습이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부족한 것은


금욕이 아니라 절제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