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_혁명에 냉소한다.(엄기호)

[정리] 

민주주의는 하나의 우상이 되고, 모든 사람(다양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의 궁극적 목적과 당위가 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실제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의 말과 삶은 민주적이지도 않다. 다만 쇼에 불과하다고 대학생들은 본다. 이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탈정치화된 학생들이 아니라, 정치의 본질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정치에 대해서 냉소하고, 가치가 배반당하는 현실에 대해서 냉소하고 있는 것이다.

냉소주의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당위(도덕성)나 속물적 이익이 아니다. 냉소주의자들은 '놀이'를 통해서 움직이고 참여하게 된다. 최근 대학생들의 정치적 활동에 계기가 된 것은 정치활동이 하나의 '놀이'가 되고 나서다. '놀이'를 방해하는 것으로 인해 정치적 활동을 하기도 한다. 


[질문]

1. 지금 대학생들에게 종교적 냉소주의가 있다고 보는가?

2. 정치적 냉소주의자들을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놀이'가 필요하듯이, 종교적 냉소주의자들에게 종교적 활동에 참여하도록(제자화 되는 과정) 하기 위해서는 어떤 '놀이'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구체적인 내용)-------------

1. 정치적 측면에서 이 시대의 절대가치: 민주주의의 우상화(?)

2. 따라서 20대 대학생들에게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기대.(386세대, 유럽과 홍콩 등에서 대학생들의 정치활동)
  - 반면 한국에서는 투표율 저조

3. 20대들의 생각:
1) 정권이 바뀌어 봤자.. 어차피 제자리.역사적으로 보면/이명박 대통령을 만든것도 결국 민주화 세력이 아니던가!
2)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또 다른 영웅(독재)이 필요

4. 저자의 정리.
1) 대학생들은 탈 정치화가 아니라 정치에 대한 냉소다.
2) 구분: 정치 그 자체에 대한 냉소가 있고, 가치가 배반당하는 현실에 대한 냉소가 있다.

-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에게서 민주적 절차를 못찾음. 민주주의가 하나의 목적이 되어 비민주적 태도.
- 정치 자체가 하나의 쇼며, 사기에 불과하다. 정치의 본질을 파악함으로 주변에 관한 정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음.

3) 냉소주의자에게 필요한 말은, 

   그러면? 너의 대안은 뭔데? 대안이라도 내 놓고 냉소를 하든지 해야지! 가 아니라

  그러나 정말 필요한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가 뭔가를 해야하지 않겠느냐?(행동하도록 촉구함)


4) 냉소주의자가 움직이는 순간.
(1) 정치가 오락이 되거나: 투표 인증샷.개념트위, 인정. 이들은 시민이 아니라 게이머로 정치에 참여한다.
(2) 정치가 이들의 오락을 방해할때: 정치인들이 개콘의 정치적 소재를 억압할 때.

  : 냉소에 맞서는 것은, 진정성이 아니라 재미, 오락이다.

5. 이 시대의 문제점

1) 민주주의를 당위성으로 도덕성으로 요구하려 함.
2) 민주주의를 생존문제로 만들어 속물적으로 만들어 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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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storyM에서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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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에 냉소한다] - 엄기호, 우리는 왜 청춘이 아니라 말인가.


정치에 대한 청년들의 입장에 대한 오해


<청년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고, 민주주의에 관심이 없서서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다.>


청년들은 정치를 모르고 관심이 없어서 참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수적 인사든 진보적 인사든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본질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시시콜콜한 차이에 대해서는 알아볼 필요를 못느낀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냉소주의다. (청년들에겐 냉소주의만이 현실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본 장비다.)


청년들의 이런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들의 냉소주의를 도덕적인 비난으로 대한다면 이들의 마음에 도저히 다가설 수 없다. 오히려 이들의 냉소의 힘에 의지해서 냉소적이기 '때문에', 냉소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은 정치가 사기라는 것을 알기에, 정치적으로 움직일 때는 정치가 오락이 되거나(투표후 인증샷 같은) 혹은 정치가 오락을 방해할 때(정치인이 개그적 소재를 업악하려 할 때)다. 따라서 냉소에 맞서는 것은 진정성이 아니라 재미, 오락이다. 



민주주의라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독재?


우리는 민주주의가 절대가치가 된 사회에 살고 있다. 민주주의는 절차과 과정을 중요시하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목적이 되고 도덕과 윤리가 되었다. 민주주의를 지나치게 도덕적인 것으로 포장하여, 민주주의를 정치의 문제가 아닌 생존에 대한 도덕의 문제로 전환시켜버렸다.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폭력조차도 정당화할만큼 민주주의는 목적화되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희망하는 대중은 강력한 영웅을 기대한다. 영웅은 강하지만, 대중은 무력하다. 민주주의를 기대하면 독재를 양산하는 꼴이 되고 만다. 


대학생들의 탈정치화가 아니라, 우리가 일조한 정치의 도덕화가 문제다. 




[핵심만 정리하면]


1. 저자는 대학생들의 문제가 <정치적 무관심>이 아니라 <정치적 냉소주의>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진단한다. 


2.이들의 정치적 냉소주의는 정치의 본질을 파악한 자들의 기본 방어장치다. 


3. 이들의 정치적 냉소주의를 비판할 것이 아니라, 냉소적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으로 이들을 이끌어야 한다. 


4. 이들은 민주주의에 도덕적 기준을 대는 것에 반발한다. 도덕적 진지성을 가지고 판단받는 것으로 정치적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것이 <놀이>가 되거나 <놀이를 막는 진지함>이 될 때 정치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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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하나님께서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을 향해서 책망하신다. 


  1)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1) 그런데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고 있다. 

   (2)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기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3)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 담을 고기처럼 한다.


  *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얼마나 심각하게 착취하고 있는가를 묘사하고 있다. 뼈까지 모두 발라 먹는 묘사를 통해 통치자들의 악이 얼마나 잔혹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2. 그 때에 그들이 하나님을 부르짖을 찌라도 응답하지 아니하셨고 

   / 그들의 행위가 악했던 만큼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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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지자들의 죄를 지적하심


  1) 그 당시 선지자들은 자신의 입에 물것을 주면 평강을 외치나

  2) 그 입에 채워주지 않으면, 전쟁을 준비하는 자들이었다. 


  *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뜻에 기초한 사역이 아니라, 자신의 육신의 탐욕에 사로잡힌 사역자들임을 지적한다. 


4. 그러므로 

  1)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 어둠을 만나리니 점을 치지 못할 것이다. 

  2) 하나님이 응답하지 아니하심으로 선견자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술객이 수치를 당할 것이다. 


  3) 반면, 미가 선지자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 거짓 선지자들은 영적인 어둠 가운데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직 미가 선지자 만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져서 야곱과 이스라엘의 죄를 드러내는 참된 사역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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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에게 하시는 경고

 

  1)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

  2)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 도다.

  3)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4)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5)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 우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으리라! 이런 식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6. 이러므로 너희(우두머리, 통치자, 제사장, 선지자)로 말미암아


  1)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2)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3)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 시온과 예루살렘과 성전..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이곳이 큰 심판과 재앙이 임할 것을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우두머리, 통치자, 제사장, 선지자)의 죄악이 그 근거가 된다.



[묵상 한 모금]


1. 크게 3개의 구조로 되어있다. 죄에 대한 고발과 그로 말미암은 심판의 내용이 나오는 형식인데, 처음에는 야곱의 우두머리와 통치자들의 죄에 대한 고발이다. 두번째는 선지자들의 죄에 대한 고발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우두머리와 통치자 그리고 제사장과 선지자를 모두 포함한 죄에 대한 고발이고 그에 따른 심판이다. 


2. 우두머리와 통치자들의 죄는 정의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착취하는 것이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이 무엇을 위함인줄을 알지 못하고, 그 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하여 오히려 자신을 위해 약자를 착취하는데, 악한 방식으로 그리 한다는 것이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언제자 그것이 왜 자신에게 주어지게 되었는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절대로 그 자신을 위해서 주어진 권력은 없다. 권력이 자신을 위한 것으로, 자신의 공로로부터 얻은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 권력은 폭력이 되고 악이 된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부여하는 절차는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하나, 일단 권력이 주어지고 나면 그 권력자로부터 분리되고 마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3. 제사장과 선지자들의 죄는 이들은 직업적 종교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제사장은 삯을 위해 일하고(삯이 없으면 안한다.) 선지자는 돈을 위해 점을 친다.(돈을 더 벌 수 있다면, 점도 친다) 이들은 신성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잊은 채 물질에 사로잡혀버린 직업적인 종교인에 불과하다. 종교에서조차 세속적인 가치관이 관여하자 더이상 그 사회를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은 상실해 버린 것이다. 


4. 권력자들의 타락, 종교 지도자들의 세속성... 이것이야 말로 이 땅이 막장 드라마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권력자들의 타락이야 지금 내가 있는 곳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종교 지도자들과는 훨씬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이 내부적 세속성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다. 정치와 관련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긴장감을 가지고 경계하지만, 종교와 관련해서는 건강한 긴장감을 유지해 줄 수 있는 사람들간의 연대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멸망은 한 요소 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상과 종교 둘 다 실패할 때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라도 잘 버티면 큰 재난은 막을 수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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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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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백성들의 죄의 심각함


  1) 침상에서 죄를 꾀하고 악을 꾸민 후에 날이 밝으면 힘(권세)이 있으므로 그 악을 행한다. 

  2) 밭을 빼앗고 집을 탐하여 차지한다. 약한 자의 산업을 강탈한다. 


  * 악한 생각이 실현되는 것을 최소화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힘을 빼는 것이다. 권력을 빼앗고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악한 사람이 리더가 되거 권력을 휘두를 때 생기는 큰 위험이 이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보다 더 악해서가 아니다. 그 생각한 악을 실제로 실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재가 위험한 것이고, 민주주의가 힘들어도 서로가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불완전한 인간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장로정치도 이런 취지에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2. 따라서 하나님은 이들에게 재앙을 계획하신다.


  1)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정도로 비참하게 될 것이다. 

  2) 그 때에 너희의 처지를 조롱하는 시와 노래를 부를 것이다. 

  3) 너희 중에 여호와의 회중의 분깃에 줄을 댈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 하나님은 반드시 악을 행하는 자들을 제압하신다. 그의 목을 잡고 벗어나지 못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의 인생이 다시는 교만하지 못하도록 심판하시고 그를 조롱하신다. 이런 날이 미래의 종말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지금 이 땅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나와 우리는 미력한 것 같아 불의한 자들이 득세하는 것 같지만,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000명이 이 시대 가운데 있다는 것을 잊지는 말자.


3. 그들의 답변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니.. 욕하는 말을 그치라고 말한다. 


  * 그들은 참된 예언자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욕을 한다고만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죄인이 가지고 있는 한계다. 스스로는 돌이킬 수 없다. 지금 이스라엘의 상태가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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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나님의 답변


  1) 너희 야곱의 족속들아, 여호와의 영이 성급하시다 하겠느냐?(하나님이 인내가 부족해서 그러겠느냐?)

  2) 하나님은 정직을 행하는 자에게는 유익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시냐?

  3) 근래에 내 백성이 나의 원수처럼 일어났다. 

   (1) 전쟁을 피하여 지나가는 자들의 의복에서 겉옷을 벗기고

   (2) 백성의 부녀들을 그들의 집에서 쫓아내고, 그들의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원히 빼앗는도다. 


  4) 이곳에서 떠나라. 이곳은 네가 쉴 곳이 아니다. 

   (1) 이것은 이미 더러워졌음이라. 반드시 멸하리라. 그 멸망이 크리라. 

   (2) 이 백성들은 예언자가 포도주와 독주에 대해서 예언할 때만이 너희의 선지자로 인정한다.(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자극을 주지 않는 예언을 하는 자들만 예언자로 인정한다는 말?)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어처구니 없는 답변(6절) 놀랄 뿐이다. 자신들의 잘못을 하나님에게 떠 넘기려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죄악된 모습을 돌이키지 않는다. 결국 하나님의 재앙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재앙을 통한 멸망에 이르게 된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독주'나 '포도주'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 싶어했다. 농사와 생활의 향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또한 종교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어떤가? 죄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성공과 승리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지 않은지 모르겠다. 그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자를 좋아하고, 무겁고 도덕적인 것에 대해서는 부담스러워 싫어한다. 편한 메시지만으로 무슨 변화를 기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마음에 찔림과 영적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메시지를 통과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한 신앙인의 삶에 이르게 될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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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야곱(이스라엘, 죄를 범한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


  1) 야곱아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다 모을 것이다. 

  2) 내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둘 것이다. (양떼를 한 곳에 모으듯이)

  3) 길을 여는 자가 앞에서 설 것이고, 그 뒤를 따르는 자들은 기뻐 떠들 것이다. 

  4)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가실 것이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서는 심판의 말씀을 전하시면서도, 회복의 말씀을 전한다.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회복을 말함은 아닐 것이다. 로마서 9장에서 바울이 이스라엘 중에서도 참이스라엘(약속의 씨로 된)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다시 모으고 회복하게 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하심으로 그 안에 있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힘과 격려를 주고 있는 것이다.  

  * 다시 불러 모을 것이며, 이들을 위한 처소가 있으며 이들의 왕이 앞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두에 서실 것임을 확신가운데 알려주고 있다. 


[묵상 한 모금]


1. 악한 생각이 실현되는 것을 최소화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힘을 빼는 것이다. 권력을 빼앗고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악한 사람이 리더가 되거 권력을 휘두를 때 생기는 큰 위험이 이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보다 더 악해서가 아니다. 그 생각한 악을 실제로 실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재가 위험한 것이고, 민주주의가 힘들어도 서로가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불완전한 인간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장로정치도 이런 취지에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2. 이스라엘 백성들은 '독주'나 '포도주'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 싶어했다. 농사와 생활의 향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또한 종교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어떤가? 죄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성공과 승리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지 않은지 모르겠다. 그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자를 좋아하고, 무겁고 도덕적인 것에 대해서는 부담스러워 싫어한다. 편한 메시지만으로 무슨 변화를 기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마음에 찔림과 영적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메시지를 통과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한 신앙인의 삶에 이르게 될 것인지 모르겠다. 


3. 모든 인류가 심판과 재앙을 당하게 되는 것 같다. 실재로 그런 현상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은 그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을 것이고, 따로 구분된 처소로 인도함을 받을 것이다. 그 길을 왕(메시야, 예수)과 하나님께서 선두에 서서 인도하실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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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장, 묵상 한모금] 삼상 11장. 암몬과의 전쟁 승리로 사울이 왕으로 인정받음.



1.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위협하였다.

2.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그들과 언약을 맺어 섬기려 하였다.

3. 암몬 사람 나하스는 야베스 사람들의 오른 눈을 빼야 언약을 하겠다는 말도 되지 않는 요구를 함으로 야베스 사람들을 모독하였다.

4. 그러나 야베스 사람들은 그들을 힘으로 이길 수 없었기에 약간의 말미를 요구하고 자신들을 암몬 사람 나하스로부터 구원해 주길 기대하면서 <사울>에게 전령을 보냈다.


* 사사 시대와 같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암몬 사람에게 능욕을 당할 처지에 놓여있게 되었다. 전과 같으면 이들에게는 희망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들은 얼마전 왕으로 뽑혀진 <사울>에게 희망을 걸었다. 사울의 입장에서는 이제 진짜 왕의 노릇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시험대가 되는 상황이다. 승리하면 왕으로서의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게 되는 상황이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사역자라 할지라도 그것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공인되는 현장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두려움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기회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 매우 중요하다.


5. 그 소식은 사울이 사는 기브아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그 소식을 들은 기브아 사람들은 그 억울한 일에 대해 통곡했다.

6. 밭에서 소를 몰고 돌아오던 사울은 백성들의 우는 소리에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알아보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사울은 분노가 일어났다.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된 분노였다.

7. 사울은 몰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각 지파에 보내어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않는 자는 이와 같이 될 것이라고 엄중하게  백성들을 호출하자, 많은 무리가 모여 들었다.(이스라엘이 30만명, 유다가 3만명)


* 사울은 자신의 리더십에 어떤 반응이 있을지 알지 못하는 중에 마땅히 품어야 할 분노를 품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신속한 결단을 촉구하도록 했다. 백성들은 그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전 지파별로 모여 들었다. 이런 많은 호응이 사울에게 더욱 큰 자신감을 주었을 것이다. 자기 살기에도 바쁜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것은 뭔가 큰 의지와 동기부여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무리가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민주사회에서는 더욱 그 메시지를 잘 잡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광장에 많이 모여서 그들의 의견을 피력하고있는데 그 의견에 귀를 닫고 무관심하는 정부는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킬 것이고 그들에게 권력을 준 시민들을 무시하는 처사가 된다. 무리가 모였다. 그것이 주고 있는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8. 사울은 야베스 사람에게 전령을 보내 내일 낮이 되면 구원을 받을 것임을 알려주었다. 야베스 사람들은 기뻐했다.

9. 이튿날 사울은 백성을 삼 대로 나누어 새벽에 적진 한 가운데로 들어가서 암몬 사람들을 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누구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자기 생명 살기위해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 사울은 기습 공격을 한것 같다. 암몬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스라엘에 이와 같은 민첩함과 힘이 있는지 암몬은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역이 아닌 전체 국가의 왕에게는 이와 같은 힘이 있다. 전국의 힘을 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는 힘 말이다. 사울의 첫 잰쟁은 대대적인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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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전쟁에서 승리하자, 사울이 왕이 될 때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하면 반감을 표현했던 자들을 죽이자는 여론이 흘러 나왔다.

11. 그러나 사울은 이스라엘에 구원을 베푼 날에 사람을 죽이지는 말자고 함으로 화합을 도모한다.

 * 초기 사울의 모습은 매우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준다. 강함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반대자들까지 품을 수 있는 용량을 보여주는 것이 오늘 본문이다. 적을 품을 때와 적을 처단할 때를 사울은 잘 구분하였고, 그것을 통해 사울은 전 지역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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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사무엘은 백성에게 길갈로 나가 나라를 새롭게 하자고 제안하고 백성들을 길갈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여호와 앞에서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였다.


 * 사무엘의 기름부으심, 12 지파 가운데 제비로 뽑힘, 그리고 이제 암몬 사람과의 전쟁을 통해서야 비로소 왕으로 취임을 하게 되는 사울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울은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매우 신중하게 세워진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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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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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불멸한다는 믿음은 또 다른 차이도 만들어 내는데, 이 차이는 <전제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차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만약, 각 개인이 겨우 70년만 살다가 죽는다면, 아마 천 년 동안은 계속될 국가나 민족이나 문명이 개인보다 더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참이라면 영원히 살 인간에 비해 국가나 문명의 생명은 겨우 한 순간에 불과하므로, 각 개인은 국가나 문명보다 단순히 더 중요한 존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중요한 존재로 격상됩니다.(순전한 기독교,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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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믿음은 성도들로 하여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는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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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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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 읽다가 옮겨왔습니다.

페북 공유로 해서는 제가 다시 보기가 싶지 않을 듯 해서요^^

이렇게 간단하고 명료하게 가르쳐줘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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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구


어제 아내와 딸에게 간단히 정리해 준 몇가지...

1. 민주주의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독재란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진술이며 공산주의는 경제적 진술이구. 공산독재란 말은 있어도 민주독재란 말은 없잖니.

2. 자본주의와 대비되는 것이 공산주의이고 전통적으로 대표적 차이는 사유재산의 인정 여부이지. 음... 그럼 자본독재라는 말은 가능하다는 거란다.
...
3. 자유주의와 대비되는 것이 사회주의인데 개인의 행복추구권이나 사유재산의 한계를 두지 않으면 자유주의라고, 이를 사회적 합의로 정부나 법이 적극적으로 제한하면 사회주의라고 하지.

4.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는 생산수단만 공유(사회주의)하느냐, 거기서 개인의 노력으로 거둔 소득까지 균등분배(공산주의)하느냐의 차이로 보면 된단다.

5. 사유재산의 인정도 자기 노력의 결과물에 한하도록 하고, 사회적 자산과 서비스(토지, 통신, 전기, 수도, 금융, 의료, 교육 등등)은 개인이나 특정자본이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사회주의라고 보면 되겠다.

6. 그러므로 요즘 대두되고 있는 경제민주화란 정치경제적인 진술로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에 가깝다고봐야 한다. 근데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공산주의를 떠올리게 되어 우리나라에선 피하는 경향이 있지.

7. 자본주의는 기업의 생산활동에 필요한 [자본], [기술], [노동] 중에서 [자본]이 기업의 경영권을 가지고 기업의 이윤처리를 자본가들이 좌우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단다.

8. 노동운동이나 협동조합운동을 하시는 분들은 [자본], [기술], [노동] 중에 [노동]을 제공하는 측에서도 기업의 이윤과 인사에 대한 의사결정권에 참여하고자 하는 것이구.

9. 투자자들은 금전의 자유를 제한 당하고 거기서 배당소득을 취하고, 노동자들을 신체의 자유를 제한 당하고 거기서 근로소득을 취하는데, 투자자본만 기업 내 의사결정 권력을 독점하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는 거지.

10. 예를 들어, 가치를 지향하는 조직인 교육, 언론, 의료 분야 등에서 일하시는 교육자, 언론인, 의료인들은 자본을 댄 사람들과 노사관계라기보다는 동업자 관계로 보는 것이 옳은 것 같구나.

11. 곧 아빠가 함께 일하는 복음과 상황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해 제대로 다룰 테니 언제고 자세히 함 읽어봐라.

딸 왈, 이런 거 학교에선 안가르쳐 줬다고... 교과서에도 민주주의의 반대를 공산주의로 기술하고 있다고... ㅠㅠ 아빠는 사회주의자인 거 같다고... 20년 전에는 이런 말하면 잡혀가지 않았냐고...

제가 그랬습니다. 아빠를 경제민주주의자라고 해달라고 ㅎ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감옥에 가서 이제 이런 말해도 잡혀가지는 않는 나라가 되었다고. 암튼 결과적으로는 복음과상황 스포일러를 빙자한 홍보가 되었군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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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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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3장은 두 부류의 권위자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2:15을 포함해서) 첫째는 그레데에 있는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디도의 권위에 대해서, 다른 하나는 당시 정치권력의 통치자에 대해서 권면한다. 요즘처럼 민주주의적 사고가 편재하고, 탈 권위적인 사회 속에서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권면같지만, 시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메시지가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1. 목회자의 권위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아야 한다.(2:15)

목회자가 권위로 권면과 책망을 해야 한다는 것과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선 이 말이 목회자의 권위주의를 인정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것이다. 권위주의란 자기 스스로가 권위의 근거가 되어 언제든지, 누구든지, 어떤 일에 대해서건 권위를 가지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권위는 권면과 책망의 내용에 대한 권위를 말하는 것이다. 목회자가 권면하고 책망하는 근거가 권위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을 때, 그 권위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시행하는 목회자는 평소에 권위있는 내용이 가벼운 것이 되지 않도록 품위를 잃지 않아 업신여김을 받지 말아야 한다.

포장보다 내용이 중요하긴 하지만 내용에 맞는 포장이 있어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이 권위있게 교회와 세상 가운데 들려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전하고 보여주는 목회자와 성도(교회)가 걸맞는 포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권위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가톨릭의 권위, 불교의 권위는 사제와 승들의 자기 희생적 삶의 태도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는 목회자와 교회의 삶에 모습으로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목회자와 성도는 품위있는 겉모습을 가져야 한다. 정직하고, 공중도덕을 잘 지키며 자신의 꾸밈에 있어서도 품위를 잃지 말아야 한다. 편하다고 다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2. 통치자의 권위

  통치자들에게 대해서 다른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복종하고 순종하며 선한 일을 하기에 준비하게 하라고 권면한다. 국가의 권력이라는 것이 악을 지양하고 선을 격려하는 것이 기본일찐데 우리는 마땅히 그 권위 아래에서 순종하고 복종하여 선을 격려하고 악을 멀리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권위를 잃게 만드는 것은 공직자들(권세자들)의 부정과 부패다. 권위는 인정하되 그들의 부정과 부패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책임을 묻고, 밝혀 낼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방치된다면 국가의 권위라도 정당한 힘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권력의 권위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공직자들의 부정과 부패는 반드시 감시되고, 처벌되어야 하는 구조를 가져야 한다.

 

교회든 국가든 권위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가 잃어지지 않도록 목회자와 성도는 품행을 단정하게 해야 할 것이다. 성도다운 높은 수준의 삶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국가는 공직자의 권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권력을 가지고 사적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부정과 부패를 척결해야 한다. 그래야 공직자의 권위가 살고, 그들이 권위를 주장하여 선을 격려하고 악을 제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한가지 더 있다. 어떤 일을 결정하는 절차가 옳아야 한다. 절차가 합법적이지 못하면 그 권위의 기반이 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민주적이다, 비민주적이다라는 것은 그런 절차의 합법성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통진당의 행태를 보면서 만약 당권파가 다시 당 권력을 장악한다고 한들 거기에 무슨 권위가 실리겠는가 생각한다. 만에 하나 그들이 다시 당을 장악한다고 하더라고 그 당은 금세 무너질것이고 지리멸멸해 질 것이 분명하다. 스스로의 권위를 헐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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