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2장은 디도가 그레데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대상 별로 권면하고 있는 그 내용과 특징을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대상은 늙은 남자, 늙은 여자(젊은 여자), 젊은 남자, 종. 이렇게 다섯 부류로 나누어 권면한다.

1. 신중하라.

늙은 남자들을 향해서도, 젊은 남자들을 향해서도 마지막 전체적인 권면가운데에서도 '신중하라'는 권면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젊은 여자들에게도 신중하라는 권면으로 늙은 여자들로 하라고 하는 것으로 볼 때, 사실은 늙은 여자들은 당연히 신중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젊은 남녀, 늙은 남녀 모두에게 신중할 것을 권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NIV는 셀프 컨트롤이라고 번역했고, 다른 번역본에서는 센서블이라고 번역했다. 원어적으로는 절제하는, 사려깊은, 신중한 이란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교회 안의 모든 대상들에게 있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여 흥분하고 신중하지 못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란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교회가 흥분을 조장하고, 감정을 의도적으로 증폭시켜 절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요 비성경적인 것이다. 교회는 오히려 성도들로 하여금 감정을 가라앉히고(감정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신중히 생각하도록 그래서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 되어야 한다.

충동하고, 선동하는 것처럼 교회에서 위험한 것은 없는 것이다.

2. 성도들의 행동지침의 근거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책잡힐 것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5,8,10절)

  교회의 성도들은 적극적인 면에서는 사랑과 선행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늘 그렇게 살수는 없다.(늘 이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에너지와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삶에서는 그 기준을 좀 낮추어야 한다. 그 기준이란, 책잡히지 않는 삶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 속에서 최소한 책잡히는(흠있는) 삶을 살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이것도 힘든것은 사실이지만)

   물론 모함하는 사람들과 꼬트리 잡는 사람들의 모함까지 우리가 다 빗겨 갈수는 없을 것이다.(이들은 근거없는 사실과 억지 확대해석으로 모함하는 자들이니) 그러나 이들에게 책망할 어떤 정당한 빌미를 만들어 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다니엘이 책망 잡으려고 하는 자들에게도 책망잡힐 것이 없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귀한 귀감이 된다.(그러나 악한 자들의 모함 속에 책망잡힐 일이 만들어졌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그래서 거룩하고 선해야 하며, 자신의 역할(당시 사회적 한계가 있었지만)_ 심지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과 주인에게 충성해야 하는 종의 입장에 있어서도 _을 소홀히 하지 않으므로 책망받지 않도록 해야 함을 바울은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성경만 봐서는 안된다. 늘 주변 사람들,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과 질서도 봐야 한다. 무조건 기존의 전통과 관습을 무시해서는 그들의 비판과 책망에 빌미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종교적 열심이 너무 뛰어난 사람들에게서 이런 무모한 일들이 발생한다. 그러면서도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과 관습의 기본적인 인식 위에서 지혜롭게 생활해야 한다. 그래야 비난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나라를 구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3. 젊은 여자들에 대한 권면의 방법

이것을 성경적이라고 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바울은 디도에게 젊은 여자들에게 대한 권면은 본인이 직접하라고 하기보다는 늙은 여자를 통해서 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이분들이 오늘날 권사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권사들을 통하여 젊은 여인들을 권면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본 것 같다.

또한 목회자와 젊은 여자들의 직접적인 대면을 조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같은 미혹의 시대에는 그런 이유에서라도 너무 가까운 접촉은 피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

4. 종과 가정안에서 여자의 역할에 대한 견해

바울의 서신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결혼한 여자를 향해서 남편에게 복종하도록 권면한다. 바울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런 권면을 한다. 또한 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주인에게 순종하고 종의 역할을 다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남녀가 평등한 사회에서, 종과 노예가 없는 사회에서 이 권면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할 것인지에 대한(적어도 노예제도의 성경적 근거나 남성 상위의 성경적 근거라고 볼수는 없는 것이다) 고민이 생긴다.

난, 바울이 당시의 관습과 제도라는 상식 속에서 바울이 세상 사람들에게 책망할 것에 대한 빌미를 제공해 주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선행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이 바울의 권면이 아니었나 싶다.

종은 더 종되도록 한 것이다. 당시의 보통 종은 신분적으로는 종이어서 겉 모습은 주인에게 순종하는 척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권면은 더 진실된 종이 되라는 권면이다. 상전에게 범사에 순종하고 더 진실되고, 더 정직한(9,10절) 종이되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아내된 여성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여성이여 해방하라는 권면으로가 아니라 더 본질적인 아내가 되라고 권면한 것이라 보인다. 남편에게 복종하라(남성 중심의 사회였으니, 기본적으로 그런 관념이 팽배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으로부터 남편을 존중하고 복종하는 아내는 흔치 않았을 것이다.)는 권면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한 것으로 생각된다.

종과 아내의 리버럴한 생각의 시작은 교회와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사람을 형제, 자매로 부르고 대하는 평등사상, 그것은 남자와 여자라는 구분 속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교회는 당시 사회의 관습과 제도에 반하는 운동이 일어나는 곳처럼 여겨졌을 것이고, 이것을 위협적으로 보았을 것은 당연하다. 교회가 커질수록 당시 지도자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교회 내부적으로도 혼란스러웠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교회의 지도자였던 바울은 <평등하다, 대등하다>와 같은 측면에서 성도들을 가르치거나 권면하여 그 혼란을 더 격화시키지 않았던 것 같다.(바울의 서신서를 보면) 오히려 매우 래디컬한 방식으로 권면을 한 것이다.

 

종은 참된 종이 되라.(진실하고 정직하며 성실하여 주인의 말에 복종하는 종)

아내는 참된 아내가 되라.(마치 남편에게 종속된 자처럼 남편의 말에는 순종하고, 가정의 일을 잘 돌보는 자가 되라)

주인은 참된 주인이 되라.(종을 인격적인 존재로 대우하고, 형제처럼 따듯하게 대해주라.)

남편은 참된 남편이 되라.(아내된 여인을 사랑하되, 목숨을 걸고라도 책임져주는 남편이 되라)

 

바울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만 세상 사람들로부터 교회가 책망받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평등적(인격적) 가치관의 나라가 형성될 것이라고 본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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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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