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7 새벽기도회

본문: 시편 83:1-18

제목: 대적들의 우겨쌈을 당할지라도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3. 본문읽기: 시편 83:1-18

4. 본문의 내용

 

오늘 시편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오랜 침묵을 깨고 일어나서 주의 원수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존재감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주의 원수들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적하고 노략하려고 하고 있으니 그들이 실제적으로 행동을 취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움직이셔서 원수들의 계략을 무력화 시킬 뿐 아니라 다시는 그 이름이 기억되지 못하도록 섬멸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대적은 홀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나라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 하나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나라가 작정하고 공격을 해도 물리치기가 만만치 않은데 주변을 둘러쌓고 있는 열 개의 나라들이 서로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략한다면 이길 방법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불안과 두려움 속에 있을 때 시인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시고 동맹을 와해시키도록 간구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두려움도 컸겠지만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사 시대 때 사사들을 통해서 물리치신 대적들의 명단을 나열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기드온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오렙과 스엡, 그리고 미디안 족속의 왕 ‘세바’와 ‘살문나’를 언급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을 하나님의 목장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쉽게 취할 수 있을 것처럼 기대하지만, 시인은 오히려 그들을 심판하게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의 기도는 좀 더 적극적입니다. 그 원수들이 바람에 굴러가는 ‘검불같게’ 혹은 ‘지푸라기’같게 해 달라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두렵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들의 얼굴에 수치가 가득하게 해달라고 낭패와 멸망을 당하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이신 주 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5절. 그들이 한마음으로 의논하고 주를 대적하여 서로 동맹하니...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서로 동맹한다는 것이데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주변의 나라들이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늘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서 힘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상대하여 이길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함으로서 하나님을 공격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성도인 우리가 늘 사단의 표적이 되는 것은 우리가 사단의 대적인 하나님의 편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사단의 편에 서게 된다면 우리는 마귀의 공격이나 도전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사단으로부터 도움을 얻거나 단기적인 유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단의 공격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역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마시고 더욱 굳건하게 하나님을 붙잡고 의지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 침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잠히 계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를 대적하는 자가 다시는 기억되지 못 할 만큼 멸망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축복합니다. 

 

  2) 9절. 주는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 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소서. 

 

시인은 과거 이스라엘의 대적자들이 패배했던 사건을 떠올립니다. 첫째는 사사 드보라가 활동하던 때였습니다. 당시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군대장관 시스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야빈의 군대장관을 하나님께서 헤벨의 아내를 통해서 죽이신 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기드온이 300명의 군사로 미디안 수 만 명을 이긴 전쟁입니다.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죽였을 뿐 아니라 세바와 살문나를 심판한 역사들을 떠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한 자들이 심판을 받았던것처럼 지금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결국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편에 선자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대적의 힘이 크고 강하고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는 것 같은 상황이 되더라도 끝까지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고 그 편에 서면 하나님께서는 대적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메시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공의로운 하나님을 믿고 늘 정직과 공의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인내함으로 견뎌야 합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영적인 싸움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이미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싸움은 이미 승리한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불리해 보이고 위태로워 보인다 할지라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미 승리한 영적 싸움 앞에서 두려움이 아니라 담대함으로 승리를 선포하고 나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20220624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30:21-31

제목: 사람이 다윗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3. 본문읽기: 삼상 30:21-31

4. 본문의 내용

 

아말렉에게서 아내와 자녀 그리고 빼앗겼던 모든 것을 도로 찾은 다윗은 돌아오는 길에 브솔 시내를 지나게 됩니다. 브솔 시내는 아말렉을 쫓기 위해 가다가 피곤하여 능히 따라오지 못하는 병력 200명을 두고 간 곳이었습니다. 그 때 남아 있던 200명의 사람들이 아말렉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다윗과 400명의 백성을 맞이합니다. 이 때 아말렉과 싸운 사람들 중에 일부는 브솔 시내에 남아있던 200명의 사람들에게 아내와 자식들만 주고 그들의 물건은 주지 말자고 주장합니다. 처자식만 주고는 우리 가운데서 떠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전투에 대한 기여도 없을뿐더러 긴급한 순간에 함께 헌신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대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요구를 한 사람들을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22절) 이들의 이런 태도가 옳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전쟁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우리의 손에 넘겨주신 전쟁인데, 사람의 공로로 그 분깃에 차등을 줄 수 없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칙은 그 때부터 이스라엘의 하나의 율례와 규례가 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다윗의 이 넉넉한 마음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얻은 전리품들을 자신과 친분이 있는 유다의 장로들에게 나눕니다.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이곳저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는 것으로 오늘 본문은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22절.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성경은 이들을 악한 자와 불량배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들의 행동과 요구를 들어보면 과연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표현해야 할 사람들인가 싶습니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아말렉과 전쟁을 치룬 사람들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끝까지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의 공로와 힘들다는 이유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브솔 시내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 사이의 공로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차이에서 오는 정당한 요구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성경은 이들을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왜 그럴까?

 

다윗은 우선 이 싸움이 전쟁에 참여한 사람의 공로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셨고, 아말렉 군대를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손에 넘겨주셨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아말렉이 부인과 아이들을 하나도 죽이지 않은 것, 애굽의 종을 만난 것, 무방비한 아말렉과 싸워 이긴 것 등을 볼 때 이 전쟁은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이기게 한 전쟁이라는 것이 분명했기에 여기에 사람들의 공로를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 것입니다. 또한 형편에 따라서 전쟁에 참여할 수도 있고 그럴 수 없는 상황도 있는데 그것을 근거로 차등하지 않고 오히려 모두가 그 혜택을 함께 누리도록 하는 것이 더 좋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개인의 능력에 따라 성과를 나누는 것을 택하기 보다는 복지를 통해 전체적 형평성에 신경을 썼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강한 자 뿐 아니라 약한 자도 그 안에서 혜택을 누리고 사회 구원성원으로 정당한 권리를 누리도록 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성경은 인간 개인의 능력과 성과, 헌신도에 따라 차등을 강조하고 그 성과를 엄격하게 구분하려고 하는 사람을 향해서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똑같이 하려고 하는 사회도 문제지만 실력과 성과 헌신에 따라서 차등을 강조하는 사회도 건강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해 충분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없는 사람들도 함께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좀 넉넉한 마음으로 혜택을 나누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26절. 다윗이 시글락에 이르러 전리품을 그의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어 이르되...  

 

좀 전까지만 해도 다윗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뻔 했습니다. 하나님을 통해서 용기를 얻고 위기를 극복해 냅니다. 오히려 아말렉을 섬멸하고 잃은 것 없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사실 다윗은 더욱 교만해질 수 있고 이런 대역전을 만들어낸 자신이 자랑스럽고 대단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얻은 모든 전리품들은 당연히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으며 사람들도 다 그것은 다윗의 전리품으로 가질만하다고 인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20절) 그런데 다윗은 그 전리품들을 자신의 재산으로 챙겨놓지 않고 그의 친구 중 유다 장로들에게 그 전리품들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불의의 재물을 가지고라도 친구를 만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만큼 평소에 자신의 주변을 챙기고 섬겨서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중을 대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나중을 생각하고 한 행동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사울에게는 쫓기고 있는 신세지만 자기 민족의 지도자들과는 좋은 관계를 맺기를 원했습니다. 아기스의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기 원해서 유다 지역을 침략하고 그 전리품을 아기스에게 바치는 척 했지만 사실 유다지역을 침략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윗이 불가피하게 이스라엘의 적이 되었지만 그것은 사울에 대한 적이지 민족에 대한 적은 아니었기에 다윗은 언제나 자신의 민족에 대해서는 호의를 가졌고 그 마음을 잃지 않았음을 보게 됩니다. 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과 화목하라는 말씀을 따라 늘 좋은 관계를 주변과 만들어 가시는 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무엇보다 상대를 소중히 여기주시길 축복합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20220623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30:1-20

제목: 하나님을 의지하여 위기를 극복하라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3. 본문읽기: 삼상 30:1-20

4. 본문의 내용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투에 참전할 수 없었던 다윗은 자신의 군대와 함께 사흘만에 ‘시글락’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다윗이 군대를 이끌고 자리를 비운 사이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노략한 것입니다. 성읍은 불탔고 아내와 자녀들을 모두 사로잡아 간  것입니다. 전장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이 충격적인 상황에 목노아 울게 됩니다. 그러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분노한 백성들은 이 모든 일이 다윗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분위기가 됩니다. 

 

사울을 피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블레셋으로 망명하였고, 아기스 왕에게 충성을 다 하는 모습으로 신뢰를 얻고자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블레셋 방백들의 신뢰를 얻는 것에도 실패했습니다. 이제는 자신들의 가족을 아말렉에게 모두 빼앗겼고 심지어 자신의 백성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절망의 순간에 오히려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습니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라고 명령하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지금이라도 아말렉 군대를 쫓아가면 따라잡을 수 있는지 말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반드시 따라잡고 모든 것을 도로 찾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백성들을 이끌고 아말렉을 뒤쫓습니다. 뒤쫓는 도중 브솔 시내에서 더 이상 함께 가기 어려운 사람들 200명은 그곳에 머물게 하고 나머지 400명만 데리고 쫓아갑니다.  

 

아말렉을 쫓는 도중 우연히 아말렉 군대에서 낙오자 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로 하여금 아말렉을 쫓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얻게 됩니다. 그는 애굽 사람으로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습니다. 그 종이 병들자 주인은 그 종을 버리고 가버렸는데 다윗은 그 사람을 살려내서 그의 도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아말렉 사람들이 지나왔던 경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경로를 알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종의 도움을 받은 다윗과 400명의 사람들은 아말렉 사람들의 주둔지를 발견합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크게 약탈한 것을 기뻐하며 먹고 마시고 춤추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던 것입니다. 다윗의 400명의 군대는 이들을 급습했고 낙타를 타고 도망친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을 죽이고 빼앗겼던 모든 것을 도로 찾아오게 됩니다. 가족뿐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찾아오게 됩니다. 이로써 위기를 극복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6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어버린 다윗의 사람들이 흥분하여 다윗을 죽이려 하는 상황이 되자 다윗이 위기 속에서 오히려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기를 얻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다윗이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는 것은 아마도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라고 하고 다윗이 여호와의 약속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겁니다. 지금 당장은 아말렉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수 없는 상황이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충격과 분노가 너무 컸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신속히 힘을 모아 아말렉을 쫓아가야 한다는 것으로 마음이 모아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윗은 위기의 순간에 홀로 살기 위해 도망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도망했다면 다윗은 자신의 군대도 잃고 다시 아무것도 없이 실패한 인생으로 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방법이 없다고 손 놓지도 않았습니다. 그 긴급한 순간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인가를 묻고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확답을 얻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옮깁니다. // 우리도 생각지 못한 긴급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순간의 판단에 따라서 자신의 운명이 갈리는 상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다윗처럼 드라마틱한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서 ‘용기’와 ‘담력’를 얻게 됩니다. 순간 순간 기도하던 사람이 응급한 상황에서 기도가 나오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기도하는 것이 훈련이 되실 수 있길 바랍니다.    

 

  2) 11절. 무리가 들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그를 다윗에게로 데려다가 떡을 주어 먹게 하며 물을 마시게 하고... 

 

다윗이 만약 애굽의 종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아말렉 군대를 찾는데 상당한 곤란을 겪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시기를 놓쳐서 자신의 아내와 자녀, 가축과 재산들을 도로 찾지 못하거나 이미 큰 손실이 일어난 이후가 되었을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이 애굽의 종의 만나 그를 통해 아말렉을 손쉽게 제압하고 가족과 재산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애굽의 종을 만났다는 것은 매우 큰 행운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행운은 누가 마련한 장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도구요 장치였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으로 인도함을 받았고 그곳이 약속의 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도 갈바를 알지 못했지만 아말렉을 쫓았고 그 중간에서 애굽의 종을 만나 방향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명하고 분명하지 않더라도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중간 어디쯤,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지점에서 하나님의 이정표를 보게 될 것이고 그 이정표를 통해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순종하길.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20220622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29:1-11

제목: 경력까지 관리해 주시는 하나님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93장 오 신실하신 주
  3. 본문읽기: 삼상 29:1-11

4. 본문의 내용

 

지난 27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다윗은 사울을 피해 블레셋 지역을 망명을 했습니다. 유다 땅 안에서 도피하는 것에도 한계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블레셋의 아기스 왕은 다윗과 그 무리들이 살 수 있는 ‘시글락’을 주었습니다. 다윗은 유다를 배신하고 블레셋을 위해 싸우는척 했지만 다윗이 이스라엘을 배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망명하고 있는 동안 블레셋 왕 아기스의 신임을 얻기 위한 방책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간에 전쟁이 발생하게 된 것이고 아기스가 다윗도 데리고 나가서 전투에 참여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불가피하게 사울 왕과 대적하여 전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어쩌면 사울 왕이 블레셋에게 패하면 그 통치권이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쟁을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불가피하게 사울 왕과 전쟁을 치러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 놀라운 반전이 있게 됩니다. 그것은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의 참전을 반대한 것입니다. 블레셋의 방백들은 다윗은 온전히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아기스를 압박한 것입니다. 아기스는 그 동안 다윗이 보여준 충성심을 근거로 방백들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방백들은 다윗이 전쟁 중 블레셋을 배반하고 이스라엘의 편에 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결국 아기스가 한 발 물러나게 됩니다. 

 

아기스는 다윗에 불가피한 상황을 설명하고 다윗으로 하여금 철수할 것을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억울함을 피력하고 어쩔 수 없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새벽에 다윗의 병사들을 데리고 자신의 성읍(시글락)으로 돌아가고 블레셋은 이스라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이스르엘로 올라가게 됩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5절.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을 이기고 돌아온 전투에서 여인들이 불렀던 노래의 가사가 여러번 반복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다윗과 관련하여 이 노래가 여인들뿐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람들 가운데 불려졌으며 심지어 블레셋에서조차 회자될 정도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뜨린 일은 정말 대단한 일이였다는 것을 알수 있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정작 이 노래로 인하여 큰 위기를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사울의 시기를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울은 이 노래를 듣고 마음이 상했습니다. 자기의 백성들이 자기를 위해서는 천천을 돌리고 어린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린다는 것이 기분이 상한 것입니다. 사울은 그 때로부터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기 시작했고 다윗은 잘못한 것도 없이 왕의 질투 대상이 되어 생명의 위협 속에서 살아야했습니다. 두 번째는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다니던 초기입니다.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망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일부가 다윗을 알아본 것입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는 노래를 상기시키며 다윗이 블레셋의 원수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사실을 눈치 챈 다윗이 아기스 왕 앞에서는 미친적 해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삼상 21:10-15) 세 번째는 오늘 본문입니다. 다윗이 적인지는 알고 있지만 사울 왕의 대적이 되어 도망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인지 아기스는 다윗의 망명을 받아주고 오히려 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로 만들고자 합니다. 다윗은 아기스에게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신뢰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오히려 결정적인 순간에는 이 노래가 발목을 잡게 되고 결국 블레셋 방백들의 신뢰까지 얻지 못하게 됨을 보여주게 됩니다. 

 

다윗이 처음에 골리앗을 죽이고 사람들로부터 그 노래를 들었을 때 얼마나 흥분했겠습니까. 한 번의 전투에서 영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일이 다윗을 오랫동안 고난과 생명의 위협 속에 살게 되는 올무가 된 것입니다.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이와 같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기쁜 일이 늘 기쁜 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알고 오히려 하나님 뜻을 묻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말씀을 기억하며 겸손함으로 주 앞에 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9절.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블레셋의 방백들이 다윗으로 하여금 전장에 와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다윗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경력을 관리해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만약 다윗이 블레셋의 편에서 서서 이스라엘 전쟁을 했다면 나중에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큰 오점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럴 수 있는 우려를 막아주신 것입니다. 다윗이 나발을 직접 심판하려고 했을 때도 하나님은 아비가일을 통해서 다윗의 길을 막으셨고 다윗이 직접 복수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다윗도 부족하고 불완전하여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길 몇 차례의 상황이 있었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흠이 될 만한 것을 미리 방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며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시험에 완전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연약함이 결정적인 죄로 나아갈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존재가 바로 우리 자신이기도 합니다. 이런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로 피할 길을 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고 끝까지 믿음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20220617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25:23-44

제목: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믿자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298장 속죄하신 구세주를
  3. 본문읽기: 삼상 25:23-44

4. 본문의 내용

나발에게 모욕을 당한 다윗이 나발의 집을 멸하러 오는 중에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을 만납니다.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대처로 나발의 집 안이 멸망당하는 것도 막고 더 나아가 다윗도 친히 복수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만나자 엎드립니다. 그리고 나발의 죄를 자신에게 돌리라고 말합니다. 나발은 불량하고 미련한 자니 그와 같은 사람의 말을 개의치 말아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다윗이 친히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를 복수하는 것을 막으시는 것이니 참아달라고 하고 자신이 준비해온 예물을 받고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이 여인의 태도와 말을 보면서 다윗의 분노는 어느 정도 가라앉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기쁘게 하는 말을 이어서 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으로 든든한 집을 세울 것을 말하고 다윗의 평생에 악행이 없다고 다윗의 정직을 인정합니다. 사람들이 다윗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생명 싸개 속에 숨겨 보호하시고 원수들은 던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훗날 다윗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 ‘나발을 직접 보복한 일로 인하여 후회할 일도 없고 마음에 걸릴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아비가일의 말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결국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에 설득되어 나발 복수하기를 멈추고 아비가일이 준비한 것을 받고 돌아오게 됩니다. 

 

다윗의 분노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돌아온 아비가일은 한심한 남편 나발을 보게 됩니다. 나발은 아무것도 모른채 왕 같은 잔치를 벌이고 크게 취해 있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얼마나 한심해 보였겠습니까? 아비가일은 아침까지 아무말도 하고 있지 않다가 술이 깬 후에 전 날에 있었던 일을 나발에게 알리자 나발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됩니다. 결국 나발은 열 흘 만에 죽게 되는데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신 것이라고 말하고 다윗은 그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서 나발에게 당한 모욕을 갚아 주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다윗이 감정적으로 폭발하여 복수를 할 뻔한 일이었는데 다윗은 오히려 그와 같은 죄를 짓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은 다윗을 대신해 복수해 주신 장면이다. 다윗은 자신의 전령을 보내 아비가일을 자신의 아내로 맞게 되고 아비가일도 그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33절.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나발의 모욕에 분노한 다윗이 그 감정에 휩싸여 나발에게 복수하려고 했는데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말에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직접 복수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이 감정에서 이성으로 돌아서게 된 순간입니다.  

 

다윗에게 감정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다윗에게 분노가 있었고 억울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죄 없는 자신을 죽이고자 쫓아오는 사울에 대한 원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근거로 다윗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나발을 달랐습니다. 그는 왕도 아니었고 자기 민족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양들을 지켜준 은혜를 잊고 오히려 다윗을 모욕했습니다. 다윗이 복수하지 않고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려고 했고 그 정당성이 충분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을 통해서 다윗의 복수를 제지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제야 이성을 되찾고 복수를 멈추게 됩니다. 

 

다윗이 훌륭해서 무흠했던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사적인 감정에 휘말려 결정적인 잘못을 행하려고 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아비가일을 통해서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 준 것입니다. 물론 다윗은 그것을 하나님의 싸인을 알고 그 자리에서 복수를 멈춘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죄를 다스리시고자 합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시고 죄를 짓지 않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감정을 폭발시키고 후회하는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죄가 문앞에 있지만 죄를 다스리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39절.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다윗은 자신이 당한 모욕을 직접 갚으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시고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해 주심으로서 다윗으로 죄를 짓지 않게 하시면서  다윗의 억울함도 풀어주시고 명예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복수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죄 짓지 않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억울해서 어떻게 하냐고 따지게 되는데 그 때 하나님은 내가 공정하게 판단해 줄테니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성도의 믿음의 내용 중 하나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공의로 판단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지금 당장은 오해와 억울함이 있겠지만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께서 정확한 심판이 되어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심판하신다는 것을 믿고 오늘 내가 심판자가 되려는 것을 멈추는 것입니다. 

 

공의로 심판하실 하나님을 믿고 오늘 내가 심판자가 되려는 마음을 내려놓은 하루가 되길 축복합니다.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시고 우리는 우리가 행해야 하는 바 선행과 자비를 베풀어 가기에 힘쓰길 축복합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20220616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25:1-22

제목: 내가 누군가의 담이 되어주자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424장 아버지여 나의 맘을
  3. 본문읽기: 삼상 25:1-22

4. 본문의 내용

 

사무엘이 죽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도 다윗에게도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운 사람입니다. 당시의 영적 지도자로 사울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다윗도 의지했던 선지자였는데 그 사무엘이 죽게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으로 본문이 시작됩니다. 

 

다윗이 바란 광야에 있을 때 일입니다. 다윗은 나발이라는 사람이 그의 양 털을 깎고 있는 때에 그로 하여금 호의를 받고자 기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상당한 부자였을 뿐 아니라 양을 키우면서 다윗이 주고 있는 혜택을 어느 정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혜택이라는 것은 나발의 양 떼를 외부의 침임으로부터 보호해 준 것입니다. 당시에는 치안의 문제나 재산의 지키는 문제는 모두 자기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들에서 양을 칠 때 도적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지킬 능력이 없으면 그 양들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사람들이 나발의 양 떼를 지켜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것은 다윗도 알고 있었고 나발의 일꾼들도 다 알고 있었던 사실입니다. 

 

다윗은 나발이 양 털을 깎는 넉넉한 시기가 되었으니 그 풍요의 일부를 나누도록 소년들을 나발에게 보냅니다. 그러나 나발은 이를 거절합니다. 단순히 거절할 뿐 아니라 다윗에 대해서 모욕을 합니다. 다윗에 대해서 뿌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그런 작자에게 자신의 양식을 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소년들은 이 사실을 다윗에게 그대로 알립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즉각 400명의 부하를 데리고 나발을 치기 위해 떠납니다. 나발은 자신이 받은 혜택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해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다윗을 모욕함으로 위기를 스스로 자처하게 된 것입니다. 

 

나발의 하인들 중 나발의 집이 곧 위태롭게 될 것을 예측한 사람이 이 사실을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에게 알립니다. 나발에게는 이 사실을 알려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지혜롭고 총명한 그의 아내 아비가엘에게 알리고 그의 조치를 받는 것이 살 길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현명한 생각이었습니다. 아비가일은 나발이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직감하고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 요리한 양 5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200개를 가져다가 나귀에 싣고 하인들을 앞서 내보냅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해 나발에게 알리지 않습니다. 알려도 아무 도움도 안 될 뿐더라 알리면 오히려 일을 망칠수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나발의 집을 멸하러 온 다윗을 아비가일이 먼저 만나게 됩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16절.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나발의 하인들이 광야에서 양을 지킬 때 다윗의 사람들이 나발의 양들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해 주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구절을 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호해주는 담’이 되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나발의 하인들과 정식으로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닙니다. 우연히 근처에서 함께 있게 된 것입니다. 다윗의 부하들에게는 무기도 있고 병력도 있었습니다. 600명 가량의 군대가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먹일 양식도 적지 않게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당하게 나발의 양들을 훔치거나 뺏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적으로부터 나발의 양들을 지켜주는 역할을 해 왔습니다. 덕분에 나발의 하인들은 편안하게 양 들을 먹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군대 복무를 할 때 저희 부대에 사격장이 있었고 종종 사격 훈련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러면 사전에 사격장 전체를 돌면서 안내 방송을 해야 했습니다. 곧 사격이 시작되니 사격장 전면 산에 있는 분들은 자리를 피하시라고 안내 방송을 해야 합니다. 그 먼 거리를 매번 돌아다니면서 방송을 하려면 힘듭니다. 그리고 여름에는 너무 덥습니다. 대충하거나 안하고도 한 것처럼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종종 사고가 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적어도 내가 군 복무하는 동안은 사격장에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 이 부대가 나로 인해서 복을 받도록 하자... 그런 마음으로 사격장을 돌 곤 했습니다. 내가 있는 곳, 내가 일하는 곳 그곳에서 내가 누군가를 보호해주고 안전하게 해 주는 사람이 되자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내 가족, 내 동료가 날 만난게 축복이 되도록.  

 

  2) 21절.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다윗이 나발에게 모욕을 당하고 나발의 집을 멸하기 위해서 가다가 아비가일을 만나 처음에 한 말이다. 다윗 안에 그 동안 나발을 위해서 베풀었던 호의와 그들의 양 떼를 지켜주기 위해서 애써 왔던 모든 수고에 대해서 나발이 모른 척 할 뿐 아니라 모욕했기 때문에 다윗은 분노했던 것이고 심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일을 많이 당했던 것이다. ‘자신은 선을 베풀었는데 그 선이 악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도 그와 같은 일을 당했는데 지금 나발에게도 그와 같은 일을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 나발을 응징하기 위해 나선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이나 나발은 그렇지 않으니 맘 먹고 응징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언제 성장하게 되는가 생각합니다. 내가 죄가 있어서 벌을 받는 것으로는 신앙이 별로 자라지 않습니다.(죄를 짓지 말아야 겠다거나 아니면 다음에는 죄를 짓더라도 걸리지 말아야겠다 정도입니다) 그러나 죄가 없는데 벌을 받는 것 같을 때 우리는 고통당하게 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힘이 있다면 그 억울함에 대한 복수를 하겠지만 힘이 없다면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참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내적 성장의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그 과정은 고통도 크지만 우리의 내면이 더욱 강건해 지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무턱대고 참기만 하면 병이 걸리겠습니다만)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다윗은 ‘억울함’ 속에서 연단받고 있는 중입니다. 혹 억울함 중에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 과정을 잘 거쳐서 성숙의 자리로 나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선으로 만드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20220615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24:1-22

제목: 억울함에도 말씀을 따라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3. 본문읽기: 삼상 24:1-22

4. 본문의 내용

 

사울은 다윗을 쫓고 다윗은 사울을 피해 숨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다가 한번은 상황이 역전될 뻔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다윗이 사울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이 생긴겁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윗이 엔디게 광야에 있다는 정보를 얻은 사울은 군사 3000명을 데리고 그곳을 향합니다. 그러던 중 사울이 급히 뒤를 봐야 할 상황이 되었는데 그 때 근처에 굴이 있어서 그곳으로 들어가서 일을 보게 됩니다. 급박한 상황이라 그 굴 안에 상황을 미리 점검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굴 안에는 다윗과 다윗의 부하 몇이 사울을 피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은 이 사실도 모른 채 급하게 그 굴 안에 들어와 뒤를 보게 된 것입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이것은 하나님이 원수인 사울을 다윗에게 넘긴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겉옷자락만 가만히 베고는 사울을 살려 보내줍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오히려 사울의 겉 옷자락을 벤 것으로도 마음이 찔려했습니다. 

 

사울이 일을 보고 그 굴에서 멀리 떨어졌을 때 그 때 비로소 다윗은 사울을 부르고 그 앞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 자신이 왕의 생명을 취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으로 자신의 무죄함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자신은 죄가 없음에도 이렇게 억울한 상황이 된 것에 대해서 여호와께서 판단해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인 사울을 해하지 않지만 공의로운 하나님이 직접 하나님의 손으로 사울 왕에게 보복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표현을 볼 때 다윗도 사울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를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다는 원칙 때문에 자제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억울함은 하나님께서 풀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다윗의 말에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듯합니다. 사울은 울면서 자신은 다윗을 학대했는데 다윗은 자신을 선대했다는 말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듯합니다. 다윗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 죽이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사울은 다윗을 축복합니다. 다윗이 반드시 왕이 될 것이고 이스라엘 나라가 다윗은 손에서 견고해 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즉 자신과 자신의 후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요청합니다. 다윗은 이에 맹세하고 각 자 자신의 길로 갔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4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다윗의 부하들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사울을 넘겨주신 것이라고 말함으로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라고 설득합니다. 부하들의 말처럼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완벽한 기회가 어떻게 생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기회처럼 여겨졌고, 기회라고 믿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부하들의 말을 따르지도 않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르지도 않았습니다. 사울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사람의 손으로 죽일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 동생을 죽인 가인은 죄가 문 앞에 있으니 그 죄를 다스리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자신 안에 있는 시기와 원망이 아벨을 죽이도록 했던 것입니다. //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다스렸던 사람입니다. 다윗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도여러분, 언제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원리와 질서를 따라 순종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사울의 겉옷자락을 잘랐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무조건 사울을 용서해줬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겠지요.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겉옷자락을 잘랐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사울로 알게 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자신의 무죄함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죽일 수 있지만 죽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사울로 하여금 하나의 경고이기도 합니다. 나도 너를 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고입니다. //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착한 사람이 되어 당하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복수를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상대가 나를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함부로 해도 되는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기회가 있을 때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사람이지 쉬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용하고 악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알려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선한 사람이지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요. 선한 것과 쉬운 것은 다릅니다. 

 

  2) 15절.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우리의 억울함은 우리 자신이 푸는게 아닙니다. 만약 다윗이 자신의 억울함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려고 했다면 기회가 있을 때 사울을 심판했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심판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문제는 자신의 생각보다 길고 힘들었지만 오히려 다윗의 인생은 기도와 찬양 그리고 예배로 가득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려고 할 때 문제가 더 복잡하게 꼬이는 것을 볼 때가 종종 있습니다.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판단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로, 찬양으로, 예배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 꿇으시길 바랍니다. 거기에 주님의 은혜가 있고 해결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그 은혜가 충만하길 축복합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20220614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23:15-29

제목: 위기의 순간 힘을 더하시는 하나님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42장 너 시험을 당해
  3. 본문읽기: 삼상 23:15-29

4. 본문의 내용

 

사울은 다윗을 계속해서 찾고 있고 다윗은 사울을 피해 이곳 저곳으로 피신하면서 지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윗이 ‘십 광야’라는 지역에 숨어 있을 때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어떻게 알았는지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다윗을 찾아온 이유는 다윗을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사울의 손이 다윗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것과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그 다음에 될 것이라는 것을 사울 왕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해 줍니다.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힘있게 의지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다시 언약을 하고는 요나단은 다윗을 남겨두고 자기의 집으로 갑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이와 같은 격려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다윗의 피신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사울에게 다윗의 위치를 밀고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다윗이 십 지역에 있을 때에 십 지역의 사람들이 사울에게 다윗의 위치를 신고합니다. 그리고 만약 왕이 오신다면 다윗을 사울에게 넘기겠다고 약속합니다. 다윗의 위치를 알려준 십 사람들에게 사울은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을 잘 감시해서 보고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십 사람들은 사울의 요청을 들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이와 같은 이들이 반복됨으로 다윗은 늘 생명의 위협을 느꼈으며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한 때는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광야 남쪽 마온 광야 아라바에 있었습니다. 사울은 군대를 이끌고 여기까지 찾으러 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도망 다니는데 이골이 났습니다. 사울의 군대를 잘 따돌리면서 피해 다녔습니다. 그럼에도 다윗과 그 사람들이 사울의 군대에 에워싸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때마침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처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사울이 다윗 쫓기를 그치게 된 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울과 다윗 사이에는 계속 긴장의 관계가 지속되었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16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사울은 계속해서 다윗을 찾아 죽이려 하고 다윗은 이곳저곳을 도망하면서 십 광야 수풀에 숨어 있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적으로 간주했다면 사울에게 다윗의 위치를 알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아무도 모르게 다윗을 찾아온 것입니다. 이 때 요나단이 찾아온 이유는 ‘다윗으로 하여금 힘 있게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다윗도 당시는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는 것이 힘들었고 억울하기도 했고 게다가 많은 식솔들을 거느린다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요나단이 나타나 다윗을 위로 하고 큰 격려를 해주고 돌아간 것입니다. 

 

아무리 다윗이라도 힘든 순간이 있고 지치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요나단을 보내서 다윗을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심으로 힘든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견디도록 도와준 것입니다. 우리가 다윗과 같은 순간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요나단과 같은 친구를 보내 위로해 주실 때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가 누군가의 요나단이 되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누군가의 도움과 격려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에게 요나단처럼 나타나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기도하시면서 ‘하나님 제가 누군가의 요나단이 될 수 있게 해 주세요’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삶이 되게 해 주세요. 아니면 ‘오늘 제가 너무 힘듭니다. 저에게 요나단과 같은 사람을 붙여주세요’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2) 27절. 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사울이 다윗을 추격하여 다윗의 무리를 에워싸고 잡게 될 위협 가운데 있을 때 전령 하나가 사울 왕에게 와서 한 보고의 내용입니다. 블레셋의 침입으로 긴급 상황이 되었으니 빨리 다윗을 쫓던 군대를 돌려 블레셋의 침략을 막아야 한다는 보고입니다. 사울은 어쩔 수 없이 다윗 쫓기를 포기하고 돌아가게 됩니다. 사울은 다윗이 심히 지혜롭게 행동하기 때문에 잡기가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22절) 그러나 그것은 사실의 일부입니다. 다윗이 지혜롭게 사울을 따돌릴 때도 많았겠지만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사울에게 포위되어 잡힐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이 때는 다윗이 지혜롭게 행동한다고 해도 스스로를 구원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사울의 군대에게 포위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런 상황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동원해서 다윗을 사울로부터 구해 주는 것입니다. 

 

전에도 몇 차례 말씀드렸지만 고전 10:13의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모습니다.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할 때 피할 길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감당해야 할 시험을 미리 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시험들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며 그 시험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 시험조차 모두 피해 버리면 우리의 신앙은 어린아이의 신앙이 되며 누군가의 도움에 의존한 신앙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감당치 못할 시험이라면 피할 길을 내시거나 돕는 사람을 붙여주신다는 믿음을 가지시고 뒤로 물러나시지 않는 성도님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20220613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23:1-14

제목: 하나님께 길들여지는 다윗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25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3. 본문읽기: 삼상 23:1-14

4. 본문의 내용

 

사울은 본격적으로 다윗을 잡으려고 하고 다윗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이것 저곳 피해다니는 생활을 하면서 지내게 됩니다. 다윗은 놉 땅에 가서 양식도 얻고 무기도 얻어 도움을 받았지만 오히려 그로인해 놉 땅의 제사장들은 오해를 받아 사울에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사울을 피하기 위해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 망명을 해보려고도 하지만 그도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전에 블레셋과 대적하여 싸웠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이 다윗은 광야에 거하게 되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다윗에게로 와서 하나의 무리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모압 왕의 신세를 질 수 있게 되나 싶었는데 하나님의 선지자가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함으로 인해 다시 헤렛 수풀에 기거하는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광야에서 지내던 중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쳐서 타작 마당을 탈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듣고 다윗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다윗의 사람들이 두려워합니다. 블레셋과 전쟁을 치른다는 것이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다시 한 번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은 대답은 변함없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길테니 그일라를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다윗과 무리는 블레셋을 치고 그일라는 실제로 구원합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도망하는 중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반면 사울은 다윗을 죽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그일라 성안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는 오히려 백성들을 모아 그일라 성에 있는 다윗을 잡기 위해 그일라로 향합니다, 정작 그일라가 위기에 있을 때는 돕지 않다가 다윗을 잡기 위해서는 군대를 동원하는 모습이 어이없습니다. 사울이 군대를 끌고 그일라로 온다는 것을 알게 된 다윗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울이 내려올 것인가? 하는 것과 그 때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겨줄 것인가? 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사울이 그일라로 올 것이라는 것과 그일라 사람들이 너와 너의 사람들을 내어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답을 듣게 된 다윗은 자신의 사람들을 데리고 그일라를 떠나게 됩니다.(약 600명 가량됨) 다윗은 이렇게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니면 살아야 했다. 사울은 매일 다윗을 찾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았다라고 기록함.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2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과 그의 무리들은 사울에게서 쫓기는 신세였습니다. 사울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은밀하게 지내야 할 다윗에게 하나님은 블레셋과 전쟁을 치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윗이라면 별로 순종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그일라를 구하는 것은 사울이 자신의 군대를 동원해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블레셋과 전쟁을 치러 이긴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전투력으로는 당연히 블레셋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설사 이긴다 하더라도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된다면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는 것인데 블레셋과의 전투에서는 이기더라도 사울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와 같은 처지와 마음을 다 알고 있으셨겠지만, 구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구원을 베풀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신속하게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사람들의 반대도 있었기에) 그렇다고 자기 백성이 블레셋으로 인해 한 해의 결실을 모두 잃게 놔둘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하라고 말씀하셨고 다윗은 그 말씀에 순종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그일라를 구합니다. // 우리는 우리의 상황과 처지가 어떠하더라도 때로는 성도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내 형편이 어렵더라도 사랑과 선을 행해야 하고,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라도 관용의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성도는 성도로서의 삶이 있습니다. 핑계를 줄이시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어떤 상황에서도 순종하여 감당하시려 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함께하여 이기게 하실 줄 믿습니다. 

 

  2) 12절.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대답을 듣는 다윗은 큰 배신감이 들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울이 도와주지 않아 모든 곡식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그일라를 구해줬는데 사울이 오면 자신이 살겠다고 자신들의 구원자 다윗과 그 무리를 사울에게 넘겨주겠다는 것이 말이 되나 싶지만 그일라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간사한가를 직시하게 됩니다. 

 

우리는 순간 생각할 때, 다윗이 그일라 사람들을 괜히 구해줬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배신을 당했기 때문에 앞에 베풀었던 선행이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앞에 행했던 선행은 선행으로 인정받고 잘 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다윗의 자기 희생적 선택이 다윗을 다윗되게 한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했던 것이 다윗을 위대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늘 우리가 기대하는 대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 섭섭하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일에 집중하고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선택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분입니다. 우리를 잊지 않고 갚아주시는 분입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20220610 새벽기도회

본문: 삼상 20:24-42

제목: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3. 본문읽기: 삼상 20:24-42

4. 본문의 내용

 

다윗은 들에 숨고 이제 초하루가 되었습니다. 초하루에는 정례적으로 다윗이 왕와 함께 식탁에서 식사를 하도록 되어 있는 날인데 다윗은 사울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나아가지 않은 것입니다. 왕은 평시와 같이 자신의 자리에 앉았고 아브넬은 사울 왕의 곁에 앉았습니다. 요나단은 서 있었습니다. 다윗의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첫날 사울은 요나단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에게 생각지 못한 부정한 일이 있어서 못 왔나 보다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도 다윗이 보이지 않자 사울은 요나단에게 묻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고향 베들레헴에 다녀올 것을 자신에게 부탁을 해서 허락해 주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불같이 화를 냅니다. 요나단을 저주하고 다윗을 도망가게 두어서는 사울과 요나단의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할 것이라고 질책합니다. 다윗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사울의 속내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이와 같이 화를 내는 사울을 향해서 요나단은 항의 합니다. 다윗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죽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이에 분노한 사울은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합니다. 요나단도 화가 나서 그 자리를 떴고 그 날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다윗을 위하여 슬퍼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다윗과 약속한 셋째날 요나단은 작은 아이 하나를 데리고 들로 나갑니다. 다윗이 숨어 있는 곳으로 가서 활을 쏘고는 그 아이에게 활을 주워오도록 시킵니다. 요나단은 활을 그 아이 위로 지나게 하여 멀리 쏩니다. 그 아이에게 ‘화살이 네 앞쪽에 있지 아니하냐’ ‘지체하지 말고 빨리 달음질하라’라고 외쳤고 이 모든 소리를 다윗은 다 들었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알았습니다. 요나단이 작은 아이를 돌려보낸 후 다윗은 숨었던 곳에서 나와 요나단 앞에 절을 세 번 하고 울고 헤어지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맹세하여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니라’라는 상호간의 언약을 확인하고 각각 헤어집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31절.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다윗이 도망치도록 허락해준 요나단을 향해서 사울이 한 말입니다. 사울이 다윗은 왕권의 경쟁상대로 보았음을 드러내주는 표현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그저 감정적으로만 시기했던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잘되면 잘 될수록 자신의 왕권이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따라서 사울은 다윗을 자신의 품에 두면서 관리하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다윗을 제거함으로서 자신의 왕위를 보존할 뿐 아니라 자신의 아들 요나단에게 그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그 모든 계획을 다 망치고 다윗이 도망치도록 길을 열어줬다는 것에 사울은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경쟁자로 봤고 다윗의 편이 아닌 대적자의 자리에 자신의 위치를 설정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동행하고 있고 그의 길을 형통하게 하셨다는 것을 다 지켜본 사울이 다윗에게 그런 태도를 취한 것은 하나님과 대척점에 선 것과 같은 일이 된 것입니다. 요나단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사울 왕을 설득해 봤지만 바뀌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위험한 행위는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는 것입니다. 사울이 그와 같은 어리석은 결정을 한 것입니다. 다윗을 미워하고 다윗을 경계하여 대적한 것인데 결국 하나님을 대적한 결과가 된 것입니다.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한다는 것은 이만큼 어리석고 위험한 것입니다. 죄의 유혹이 늘 우리 앞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양심으로 경고하실 때 그 말씀을 따라 죄를 다스릴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죄는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2) 42절.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인간적으로 보면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의 편을 들어야 합니다. 실리적으로 볼 때도 요나단은 사울의 편을 드는 게 맞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사람은 바로 요나단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요나단도 다윗 못지않은 용기와 성품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다윗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다윗을 시기하지 않았고 적으로 삼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친구가 되기로 했고 마음으로 다윗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나단은 인간적인 힘과 권력을 소망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편에 서기를 원했고 그래서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을 사랑하고 보호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같은 다윗을 보면서 사울의 입장과 요나단의 입장이 전혀 다릅니다. 사울은 다윗의 대적이 되었고 요나단은 다윗의 친구가 되어 영원히 우호적인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 당시로는 사울의 선택이 맞는 것 같았고 사울이 다윗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권력으로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선택은 어리석었고 요나단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의 편에 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의 편에 선다는 것이고 그를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내가 꼭 다윗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윗 일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군가는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선택을 받아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요나단처럼 그의 편이 되어 줌으로 하나님의 편에 설수는 있는 것입니다. 요나단과 같은 선택을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