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도입


 1. 163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주장: 태양이 중심이고 지구와 다른 모든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주장.


 2. 그 때까지 지구가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확신했던 교황청의 주장과 다름으로 인해 이단으로 규정됨(가택연금)


 3. 갈릴레오는 처음 개발된 망원경으로 관찰했고, 교황청은 매일의 경험과 성경에 기초한 교회 전통으로 주장했다.


 4. 왜 이런 갈등이 생기는 것일까? 


 5. 두권의 책: 하나님의 말씀(성경)과 하나님의 세계(자연)와의 관계에 대해서 다루어 보자.


  1) 이 갈등은 하나님의 두 가지 계시 사이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과학과 성경에 대한 <인간의 해석>에서 비롯됨

  2) 과학과 성경을 해석하는 과정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단절된 진공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문화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3) 올바른 방법을 사용한 과학 해석과 성경 해석은 신뢰할 수 있다. 



II. 본론


 1. 하나님의 계시가 드러난 두 권의 책

  1)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특별 계시라고 부르고, 자연을 일반 계시라고 부른다. 

  2) 벨직 신앙고백:우리는 두가지 도구를 통해서 하나님을 안다. 

1)우주의 창조와 보존과 통치 2) 거룩한 말씀

  3) 아우구스티누스: 당신은 반드시 그 거룩한 책을 읽어야 하며, 우주라는 책을 관찰해야 한다. 성경은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만이 읽을 수 있지만, 우주라는 책은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도 읽을 수 있다.(시편 강해)


  4) 하나님의 계시가 드러난 두 권의 책

   (1) 하나님은 두 권의 책, 성경과 자연을 통해서 상호 갈등없이 자신을 계시하신다. 

   (2) 그러나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계시 자체가 아니라, 그 계시를 해석하는 인식에 따라서 잠재적 갈등이 발생한다.

      # 83쪽 그림 참고.



 2. 문화가 과학에 미치는 영향


  1) 세계관과 과학이 서로 미치는 영향

    (1) 주어진 자료만으로는 최적의 모델을 가려낼 수 없을 때, 각기 다른 세계관을 가진 과학자들은 똑같은 자료를 보고 서로 다른 모델을 최적의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2) 자신의 세계관으로 특정 과학 모델을 지지하는 부정적인 영향도 받긴 하는데, 과학자들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자기 교정> 장치를 통해서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다. 


  [원칙들]

1. 실제로 과학자들 중에는 무신론자가 아닌 사람들이 많다. 과학계가 진정한 합의점을 도달했다면, 그 내용은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모든 다양한 종교적 관점을 지닌 사람들의 전문적인 판단 전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2.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다. 과학을 통해 진리를 발견했다면, 그 지식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3. 단순히 우리가 믿는 것과 다르다고 해서 그 과학적 결과를 성급하게 부정해서는 안된다. 


   (3) 신앙적 정보와 과학적 정보가 서로 다를 때, 성급하게 과학적 정보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정보를 모두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모두 하나님의 계시라면 서로 연결되는 어떤 것이 있을테니까...)


   (4) 과학적 결론이 확실한 증거로 입증된 것이라면,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더 나은 접근법은 전제로 제시된 세계관적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전제1. 기독교는 지구가 우주상에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최선의 전략은 과학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에서 세계관적 주장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2) 정치와 과학이 서로 미치는 영향향

과학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끼여들면 매우 복잡해 지게 된다. 개발이냐 환경보호냐? 식의 갈등. 하나를 택하면 하나를 버릴 수 밖에 없는 갈등이 형성된다. (4대강 사업과 같은... 정치적 목적으로 과학적 사실을 왜곡하는 현상까지 나타남)



 3. 문화가 성경 해석에 미치는 영향


      성경해석도 과학과 마찬가지로 외부와 단절된 진공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회 특히 신학과 교회 전통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1) 신학과 교회 전통이 성경 해석에 미치는 영향

    (1) 신학과 교회 전통은 성경 해석에 영향을 미치며, 반대로 성경 해석도 신학과 교회 전통에 영향을 미친다. 

    (2)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교회 전통의 지식이 있기 때문에 성경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새롭게 하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유익이 얻을 수도 있고, 과거 전통 중에 존재했던 곤란한 상황들을 반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3) 그러나 때로는 교회 전통이 성경의 의미를 해석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예) 종교 개혁 당시의 성경 해석, 노예 폐지 등... 그러나 여기에 정치적, 경제적 문제까지 개입되면 굉장히 복잡히 진다. 

   (4) 이 경우 교회의 여러 교파가 있다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과학자들이 서로의 편견과 맹점을 찾아내는 것처럼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진 교회들이 서로를 책임져 주는 것이다. 



 4. 인간의 해석은 신뢰할 만한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하나님의 세계인 자연은 서로 모순될 수 없다. 다만 그 해석에 있어서 갈등이 있는 것인데 어느 것을 우선으로 놓아야 한다기 보다는 <서로에 대한 해석>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과학에 적합한 방법과 체계적인 성경 해석법도 익혀야 한다. 두 해석에 대한 쟁점 몇 가지를 살펴보자.



  1) 과학적 해석의 신뢰성

   (1) 과학자들이 하나의 물리적 체계를 두고 두 가지 다른 모델을 가지고 논쟁을 벌일때가 있고, 과학 연구를 하다 보면 결정적인 실험 결과와 관찰 결과가 나오지 않아 두 모델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을 자주 만나다. 

   (2) 그러나 과학계는 이 같은 오류를 줄일 수 있는 여러 방법을 발전시켜 왔다. 

      - 동료검토(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전문 과학자들이 새로운 결과를 심사하고 평가하는 것)

      같은 분야의 과학자가 연구한 것이 다른 결과치를 내면 과학계에 보고를 하게 되어 재확인을 하게 되는 과정

- 과학계가 하나의 공동체로 움직이면서 서로의 오류를 바로 잡는 것이다. 

- 하나의 모델이 사용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이전 실험들의 결과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전의 모델이 잘못되었다면 문제가 드러나게 된다. 만약 오래도록 문제가 없다면, 그 모델은 상당히 믿을만한 모델이 된다. 



   2) 성경 해석의 신뢰성

    (1) 성경의 나머지 부분에 비추어 한 구절 한 구절을 해석해야 한다.(문자주의적 해석은 잘못된 해석방법이다.)


    (2) 원 저자와 최초의 독자들이 그 말씀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 

- 번역본 선택, 문학적 기법, 문학 장르의 이해, 문화 역사적 배경을 고려(역사적 해석)

    

    (3) 성경 해석의 예) 아모스 4:4 / 눅 1:1-3


    (4) 성경의 명료성: 종교개혁자들. 좋은 성경 번역본을 읽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경의 중요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봤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7항)




 5. 하나님의 계시가 드러난 두 권의 책: 갈릴에오 시대


   1) 과학: 지구가 우주 공간에서 움직인다. 

    (1) 중세 이전까지는 주후 200년경 그리스의 과학자 프톨레마이오스(90-168)가 지동설에 대한 모델을 정교하게 발전시킴.

    (2) 이후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모델만 가지고도 각 행성이 위치를 예측할 수 있었다. 

    (3)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나타나서 행성의 움직임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 태양중심 모델(혁명적 생각)

    (4) 갈릴레오 시대에는 이렇게 두 개의 모델이 있었으나 어느 것이 더 나은 모델인지 판별할 수 없었다. 

    (5) 1609년 초기 형태의 망원경을 알게 된 갈릴레오가 그 망원경을 좀 보완하여 하늘을 관찰하기 시작함.

    (6) 못 보던 행성들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보이게 되자, 지구 중심 모델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발견. 태양 중심설이 옳다고 확신하게 된다. 



  2) 성경 해석: 지구는 견고하게 서 있다. (수 10:12-14, 시 19:4-6)

   (1) 이전까지 성경의 표현에 따라서 지구가 견고해 서있다는 것을 지구 중심설의 확인해 준다고 봤다. 

   (2)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이 구절을 지구 중심설의 근거로 보지 않는다. 

   (3) 그렇다고 성경을 무조건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봐서는 안된다. 시편의 장르가 시라고 해서, 언제나 상징적 표현방식으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서술적인 방식을 취할 때도 많다. 그런식으로 보면 기적과 부활에 대한 역사적 사실도 부정해 버릴 수 있다. 

   (4) 어떤 사람은 이 말을 지구가 태양을 돌면서 견고하게 서있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것은 현대 과학와 일치하는 동시에 독자들에게도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해석이다. 

   (5) 그러나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 구절이 최초의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권위>를 찬양하기 위한 표현이지, 그것을 통해서 행성 궤도에 대한 지식을 전해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6) 이와 같은 입장에서 성경을 이해하면 과학과 그렇게 큰 갈등이 생길 것 같지 않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매우 복잡하다. 왜 그럴까?



6. 갈릴레오 시대의 세계관과 정치, 교회 전통(뼈아픈 과오의 역사/복잡한 상황)


  1) 세계관과 철학이 이 갈등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1) 처음 갈릴레오가 태양중심설을 주장하기 시작할 때는 교회 안에서도 그의 지지하는 여론이 많았다. 

   (2) 그러나 그가 성경 해석에 관한 다른 해석을 내놓기 시작하면서부터 교회가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다. 

   (3) 갈릴레오는 지구중심설을 여전히 지지하고 있는 교황을 비꼬는 형태로 책을 쓰면서, 더욱 복잡해 졌다. 

   (4) 17세기의 그 혹독했던 논쟁으로 21세기인 지금까지 교회는 반과학적이라는 부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5) 갈릴레오가 가택연금을 사망할 즈음, 유럽은 그의 발견에 관심이 높아졌고, 아이작 뉴턴은 1687년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표하면서, 태양계에게 가장 무거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것이 완벽하게 설명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838년 별의 시차를 발견함으로써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바티칸은 1992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갈릴레오에 대한 유죄 판결이 과오였음을 인정했다.(비공식적으로는 더 일찍 인정했다. 그 이후 최첨단 연구를 지속적으로 후원함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탐구하는 활동으로서의 과학에 헌신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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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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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진화에 대한 영상1_ 무신론자(불가지론자)/과학적 방법/진화론의 헛점/지적설계 등등..





I. 도입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어김없이 가을이 온다. 하나님은 정하신 때에 우주만물의 움직임을 질서있게 정하셔서 운행하신다는 것을 안다면, 무더운 여름도 혹독한 겨울도 우리는 소망가운데 견디어 낼 수 있다. 


 과학자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그와 같은 일을 하시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그것을 밝혀 보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세계를 주의 깊에 연구하여 어떤 내용들을 얻지만, 그것은 창조세계에 대한 전체 과학 지식의 일부일 뿐이다. 


 과학은 이런 지식의 총체가 아니라, 인간이 지식을 쌓아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과학 지식을 얻는 과정으로

  1. 실험

  2. 관찰

  3. 역사적 방법이 있다.


이 중에서도 역사 과학을 광범위하게 다루고자 한다. 



II. 도입


 1. 실험 과학

   1) 물리학, 화학, 분자생물학 분야에서 사용하는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과학

   2) 실험실에서 가능한 실험들을 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뛰어남(실험, 측정, 다시 실험, 변수 통제 등)

   3) 찬 흙과 따듯한 흙에서 발아 실험 -> 더 차가운 흙, 더 뜨거운 흙


 2. 관찰 과학

   1) 실험실에서 실험하기에는 부적합한 것을 확인해야 할 때

   2) 기상학, 생태학, 의학, 천문학, 지리학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는 방법

   3) 접근성이 떨어지는 일(식물의 성장을 1년간 관찰할 수는 없다. 행성의 온도를 측정하기 위해 우주여행할 수는 없다. 한랭전선을 만들수도 없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찰이 가능하다. 예, 산불 후 산림 회복 과정을 위한 연구(양생화, 4,5년후 나무...)


 3. 역사 과학

   1) 생태학, 기후학, 천문학, 우주학, 진화생물학, 지질학, 고생물학 등에 주로 사용되는 방법

   2) 실험과 관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증거를 가지고 간접적인 접근을 하는 방식.

   3)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것만을 연구함(마치 형사가 사건 발생 후 흔적만으로 당시 정황을 구성하듯)

   4) 산림연구, 131년 전 산불이 있었다는 흔적 발견 / 그 산림의 대부분의 오래된 나무들은 125년 이후의 것 구성)

        여러가지 측면에서 서로 지지해 주는 증거


예) 역사 과학의 예: 게성운 초신성 잔해

(1) 1054년 중국과 아랍의 천문학적 자료에는 <빛나는 객성>하나가 하늘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별은 조금씩 어두워져 2년 후에 완전히 사라졌다. 


(2) 1900년대 초, 현대식 천체 망원경으로 게운성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10년 간격으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비교하면서 성운이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성운이 폭발한 한 별의 잔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폭발시기를 역으로 추적해 보니 900년 전에 폭발한 것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4. 과학의 세 가지 방법이 모두 필요하다. 

이 세 가지 형태의 연구 방법은 서로의 연구를 보강하거나 잘못된 점들을 고쳐주면서 자연 세계와 그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나간다. 


 5. 인간의 죄와 역사 과학: 인간의 타락이후 자연의 법칙은 타락 전과 달라져 버린 것은 아닌가!에 대한 이야기


  1) 성경은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은 결과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창 3:14-19)

(1) 인간이 더 큰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을 것이며

(2)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있는 땅을 힘들게 일구게 될 것이다. 


  2) 이런 저주의 결과로 자연은 얼마나 변하게 되었을까? 변했다면, 무엇이 변하고 얼마나 변했을까? 

[그리스도인들의 견해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인듯 하다.]

(1) 자연법칙에 있어서까지의 변화가 생겼다.

(2) 자연법칙에 있어서까지의 변화는 아니다. (타락이후에도 하나님이 천지의 법칙을 지속함/렘 33:16-26, 시 19:1)

 - 둘 다 창 3:14-19을 해석하며, 양쪽 모두 나름대로의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3) 과학은 이 두 가지 해석 중에서 하나를 지지한다. 

(1) 천문학이나 지질학 같은 역사 과학이 자연 세계의 과거 행적에 관한 정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2) 우리가 밤 하늘에서 보는 별 빛이란 오래전 과거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빛이다. 이 빛은 아주 오래 전 기본적인 자연 법칙이 어떠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연법칙은 한 시점에서 갑자기 변한적이 없다는 것이다. 

(3) 지질학자들도 비슷한 자료를 내놓는다. 가장 오래된 암석과 최근에 형성된 암석을 비교하여 봐도 자연법칙이 갑작스럽게 변한 흔적이 없다.

(4) 따라서 과학은 처음 우주가 생성된 이후로 자연법칙에 있어서 갑작스러운 변화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III. 결론


 1. 과학은 자연 세계와 그 역사에 대한 질문의 답을 얻으려 할 때, 큰 도움을 주는 강력하고 신뢰할 만한 도구다. 하지만 자연 세계와 상관없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으려 할 때는 별 쓸모가 없는 도구에 불과하다. 


 2. 과학 지식은 우리가 역사와 성경, 개인적인 경험, 문화를 통해서 배운 중요한 진리를 보충할 뿐, 그 모든 것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환원주의적 사고의 그릇됨) 과학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많은 선물 중 하나일 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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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스터디 3기 진행과정


1. 전체 진행 계획

일정 

 오리진 분량

 정리 / 요약 /질문 

 이스라엘의 역사 

 비고(장요약)

 9/4

 1-2장. 

 김수억 

 

 

 9/11

 3-4장.

 심재용

 481-492p 읽기

 장요약 설명

 9/25

 5-6장.

 노성은

 493-508p 읽기

 에스라1-5장

 10/2

 7-8장.

 한나영

 508-521p 읽기

 에스라6-10장

 10/9

 9-10장.

 정수원

 522-539p 읽기

 느헤미야1-6장

 10/16

 11-12장.

 윤상아

 

 느헤미야7-13장


 2. 참여자

  인도: 김수억(010-6405-9114)

  윤상아, 심재용, 노성은, 한나영, 정수언, 오승주(6명)


3. 과제

  1) 오리진 발제 담당자는 책 정리 / 질문 준비할 것

  2) 이스라엘의 역사. 정해진 분량까지 읽고 개인적으로 정리할 것(본문에 언급된 성경 찾아서 함께 읽을 것)

  3) 성경 장 요약(에스라 1-10장, 느헤미야1-13장)_개인 블로그에 정리해서 올릴 것(없으면 만들고^^)


4. 진행시간

   1  교  시(11:30-12:30)  오리진 정리/ 토론

   점심시간(12:30-1:00) 개인도시락 준비

   2  교  시(1:00-2:00) 이스라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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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도입


왜 당신은 기원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가? 우리 모두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 세계관은 기원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정리가 되기 때문이다.  2장에서 논의할 주제


  주제1. 다양한 세계관이 어떻게 표출되는지

  주제2.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과학자들이 어떻게 협업할 수 있는지

  주제3.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과학자들이 아래 4가지 현상에 대한 하나님의 다스림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1. 과학자들이 설명할 수 있는 자연 현상

2. 과학자들이 연구 중이나 아직 명확하게 설명해 내지 못한 자연 현상

3. 초자연적인 기적

4. 무작위로 일어나는 현상


II. 본론


 1. 현대 과학자들의 세계관(첫번째 주제)

   1-1. 상대주의

   1-2. 불가지론

   1-3. 환원주의적 무신론(무신론적 세계관): 자연세계만이 실재. 신은 존재하지 않음. 논리나 실험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세계관.



 2. 매우 다양한 세계관을 가진 과학자들이 어떻게 협업할 수 있을까?(두번째 주제)


  2-1. 과학 연구에 필요한 세계관적 신념(부분적 신념: 다른 세계관을 가진 과학자들과도 공통된 신념)


  2-2. 기독교적 신념(더 포괄적 신념)


  * 표 참조(50쪽)



 3. 세계관과 하나님의 다스림.(세번째 주제)


  3-1. 설명할 수 있는 자연 현상에 대한 하나님의 다스림.

      과학자들이 발견한 자연법칙에 대해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방법(자연법칙을 통해서)으로 이해하면 된다. 자연법칙으로 설명가능하다고 해서 하나님이 배제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세계의 작동원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내는 순간 불필요해지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다. 

* 맥케이: 역동적 안정성_사물들이 겉으로는 안정적이고 불변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속적인 역동적 과정을 통해 유지된다는 말이다. 


 3-2 명확하게 설명해 내지 못한 자연 현상들에 대한 하나님의 다스림.(제왕 나비의 예)

과학자들은 아직 명확한 과학적 설명을 해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래서 여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는 식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반증하기 쉽다. 이런 식의 증명을 <틈새의 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학은 점점 발전해서 얼마 후에 이것을 설명해 낼 수도 있다. 그럴경우 하나님을 증명해 내는 틈새는 자꾸 좁아지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증명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입장은 줄어들게 마련이다.(창조과학자들의 논증방식 중 하나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설명 방식은 과학의 이해 여부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모든 자연 세계의 규칙적인 기능들을 다스린다는 정도로만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면 과학이 아무리 이 사실을 밝혀내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3-3 초자연적 기적들에 대한 하나님의 다스림.

기적은 이전이나 이후나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없다. 과학은 다만, 일반적인 자연법칙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정도만 말할 수 있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자연적인 법칙을 넘어서 기적을 행하실 수 있다. (간적적 역사_자연법칙, 직접적 역사_기적)


 3-4 무작위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한 하나님의 다스림

과학에서 사용하는 무작위는 예측할 수 없는의 의미를 가진다. 마치 주사위를 던지는 것처럼. 확률을 알 수는 있지만, 그 숫자가 언제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을 무작위라고 하고, 그것을 우연이라고 한다. 

우연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한다. 과학적 의미(무작위)와 철학적 의미(절대자가 없음)

하나님은 과학적 의미의 우연을 사용하신다. 예를들면, 제비뽑기와 같은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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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도입


1. 종교적 질문과 과학적 질문에 대한 답

   종교적 질문은 종교가 과학적인 질문은 과학이 답해 주면 될 문제.(간단한 해결방법 같지만...)


2. 그러나 종교와 과학을 항상 분리할 수는 없다. 

  예) 광대한 우주를 연구할 때, 미미한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질병을 일으키는 병균들을 연구할 때, 우리는 고통의 원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


3. 또한 우리는 어느 한 분야에게 해당되는 답변에 만족하지 못한다. 


4. 게다가 우리는 하나님이 삶의 모든 영역을 주관하신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종교와 과학을 별개의 것으로 간단하게 분리시킬 수 만은 없다. 



II. 본론


 1.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하는 내용과 이견이 존재하는 주제들

    창조, 진화, 설계를 두고 이야기하다보면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해서만 집중하게 되는데, 먼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1) 하나님은 이 우주를 창조하셨고, 지키시며 다스리신다.


  2)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신다.(직접적인 드러내심을 믿음)


  3) 이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동시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다. 


  4) 성경은 권위 있는 책이며, 구원의 길을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 위의 문구가 축자 영감설을 지지하는 말은 아니다. 성경에 대한 이해가 사실 관건이다. 

- 복음주의자들이 모두 인정하는 정도의 명제다. 


  5) 하나님은 인간의 노력이 미치는 모든 영역을 다스리시며 인간에게 특별한 능력과 책임을 맡기셨다. 

      - 결혼, 가족, 예술, 언어, 상업.... 문화적 선물까지.

      - 이를 자연 과학에 적용해 보면, 하나님이 자연 세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때 필요한 능력과 책임도 인간에게 은혜로 주셨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2. 그리스도인들 간에 이견이 존재하는 주제들

만물을 누가 창조했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나, 어떻게 창조했느냐에 대해서는 지난 수십 년간 다양한 이견이 존재해 왔다. 그 다양한 질문들의 핵심은 두 가지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핵심1.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때,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설명하는 성경 구절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최선인가?(성경 장체에 대한 해석문제)


     핵심2. 하나님의 세계(자연)를 연구할 때, 자연이 그 역사에 대해 말하는 바를 어떻게 결론짓는 것이 옳은가? (팩트에 대한 해석 문제)


  견해1. 젊은 지구 창조론자: 지구의 나이가 수천 년에 지나지 않음. 대홍수에 의해 지금의 모양을 갖췄다고 보는 것이 창세기에 대한 최선의 해석이라고 믿음.


  견해2. 오랜 지구 창조론자: 창세기 1장에서 말하는 하루가 실제적으로는 과학역사에 존재하는 긴연대라고 해석함. 이들은 성경 본문을 통해 지구 나이를 유추하는 것은 성경이 의도하지 않은 가르침이라고 말함.


  견해3. 진화론적 창조론자들: 과학 데이터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한다면 하나님이 진화의 과정을 주관하고 이용하여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알 수 있다고 본다. 또 다른 부류는 점진적 창조론자들은 성경과 과학 모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 중에서도 특히 인간 역사를 이루실 때 자연적 과정뿐 아니라 기적도 함께 사용하셨음을 말한다고 주장함. 


  [소결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까닭에 많은 교회와 기관에서 기원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이 모든 관점이 진심으로 하나님과 성경에 충실하기 위한 열망에서 나온 것이며 기독교 신앙의 테두리 안에 있다고 (본인들은) 설명한다.



 3. 이 논란을 풀기 위한 사전 과정: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세게에 귀를 기울이라.


  1) 과학을 토대로 성경 읽기 방법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성경을 토대로 과학을 연구할 것인가?


  2) 대답은? 모두 그렇다. 그러나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긍정적 결과도 혹은 부정적 결과도 가져올 수 있다. 


 3-1. 자연 해석에 대한 성경의 영향


1) 성경을 원래의 용도 밖으로 모든 영역에서 너무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활용해서는 안된다. 

2)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기적의 방법이라도)에 대해서 열린 태도로 과학을 할 수 있도록 제안해야 한다. 

3) 성경은 과학만으로 알 수 없는 자연 세계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1) 과학은 식물과 암석, 먼지를 구성하는 원수들이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원소와 같다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성경은 그럼에도 인간이 모든 창조세계에서 특별한 존재임을 말한다. 

  (2) 과학자들은 봄, 여름, 가을,겨울의 계절 변화가 공전 궤도와 자전 각도 때문이라는 것을 설명하지만, 성경은 신실하고 지속적인 하나님의 다스리심으로 인해 사계절이 생긴다고 알려준다.(이 두 사실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3-2. 성경 해석에 대한 과학의 영향


1) 특정 성경 구절의 내용이 모호하거나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할 때도 과학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2)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시고 법칙으로 운행하신다는 것을 성경이 말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그렇게 하시는가에 대한 궁금증은 과학을 통해서 배울 수 있게 된다. 

3) 과학을 성경해석에 우위에 둘 필요는 없지만, 성경을 해석함에 과학이 도움을 줄 수 있음도 간과해서도 안된다. 



III. 결론


 1. 성경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을 하고 있지, 어떻게 만드신 것에 대한 고백은 없다. 어떻게 만드셨는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구원에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2. 다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호기심을 따라 어떻게 만드셨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 버렸다.(저자 자신을 포함하여 과학자들)


 3. 이 연구를 함에 있어서의 원칙


  3-1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세계, 이 두 영역을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3-2 서로를 비방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그리스도인들의 다양한 견해와 입장에 대해서)

  3-3 복음 앞에서 불필요한 걸림돌을 놓지 말아야 한다.(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

예) 아우구스티누스의 말(41쪽 참고) 비상식적인 내용으로 증거하다보면, 오히려 기독교인들을 무지한 자로 인식하게 만들게 된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까지도 거부당하게 된다.

  3-4 그리스도인들의 자녀들이 과학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공부해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3-5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일차적인 반응은 논쟁이 아니라, 찬양과 경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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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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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성경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사용해야 하나?


성경 영감설에 대한 재 정립이 필요하지 않는가 제안함. 


1. 이전까지 성경을 비성육신적인 관점에서만 다루었다.(정확, 무오, 권위, 계시, 영감)

 

그러나 기록됨으로써 육화된 말씀인 성경도, 그리스도를 우리가 다 이해할 수없듯이 완벽하게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가 특정한 역사와 문화적 순간을 사는 인간들이라면 우리의 모든 신학적 작업은 시간 제한적이며 잠정적이고 더 나아가 타락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에서 문화적 문맥을 모두 벗기고 본질적인 것만을 뽑아서 절대적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문화적 문맥을 벗어 던지는 것

우리의 문화에 노예가 되는 것

이 양 극단을 지양해야 한다. 


2. 성육신 유비는 하나인 동시에 여러가지 측면을 가진 하나님의 복음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3. 그러나 신학적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의 일관성과 신뢰성에 대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이끈다. 


4. 우리가 성경을 믿는 것은 성경에 어떤 다양성도 없어서가 아니라, 성경을 주신 분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 다양성을 틀림이 아닌 다른 방식(역동성)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5. 성경은 우리의 일상생활의 세칙을 주는 책이 아니다. 교회가 당면한 많은 문제들에 대한 큰 궤적을 그려주는 책이다. 


6. 구약성경은 그리스도를 목적으로 해서 읽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읽어야 한다. 

성경해석에 있어서 우리의 임무는 하나의 불변하는 복음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전하는 것이다. 즉, 다른 문맥에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복음의 메시지를 존중하고 나아가 그런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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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대화는 계속 된다: 들으며 배우기


1. 고대 근동의 증거와 성경 교리 사이의 대화가 많이 부족하다. 시도는 있었지만 보통 파괴적이었다. 


2. 복음 주의자들은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다. 새로운 견해와 증거로 인해 무너지는 분이 아니다. 


3. 덕목

  1) 겸손: 다른 견해에 대해서 열린 마음

  2) 사랑: 다른 것보다 같은 것을 볼 수 있도록 하자. 최대한 좋게 생각해 주자.

  3) 인내 어떤 전통도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성급한 결론은 내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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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신약저자들의 구약인용_우리도 사도들처럼 구약성경을 해석해도 되는가?


사도들의 해석학을 따르게 된다면 구약 성경은 해석학적 상식에 위배되는 방식으로 다루게 될지 모른다. 우리가 사도들의 해석방법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들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든지 아니면 그들은 영감된 사도이니 그들만 예외로 해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1. 사도들의 해석은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당시 구약성경을 해석하는 방식을 따른 것이다. 


[배제해야 할 입장]

1. 사도들의 해석학은 오늘날 교회의 해석적 작업과는 관계없는 것이므로 무시한다.

2. 사도들의 해석 방법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사도들이 말한 구약해석은 그대로 하고, 언급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침묵한다.)


[우리에게 남겨진 두 가지 입장]

1.  제2 성전기 유대교의 잘못된 해석학을 활용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사도들을 변호하고, 신약성경의 구약성경인용은 문법적_역사적 주해와 근본적으로 조화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2. 사도적 해석학의 제2성전기의 배경을 인정하나 오늘날 따라야 할 것과 따르지 말아야 할 것을 주의 깊게 분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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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자들의 지배적인 대답은 1번 이겠지만, 이것은 제2성전기의 배경과 분리시키는 것이고 신약성경에 인용된 구약 성경의 구절이 구약성경의 본래 문맥과 일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는 것이 된다. 


피터 엔즈의 입장은 2번이다. 

피터 엔즈는 해석학적 방법으로 기준을 삼기 보다, 해석학적 목적으로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피터 엔즈의 방법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내가 구약성경의 이 부분을 읽을 때 어떤 영향을 주는' 물으면서 읽는 것이다. 부활 이후에 살고 있는 우리의 특권적 입장이 우리의 구약성경 독해에 반드시 반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차 읽기: 구약성경을 본래적 문맥에서만 읽는 것

2차 읽기: 그리스도 목적적 읽기(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구약성경과 연결시키는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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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사도들의 해석학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


1. 계시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문맥을 전제한다. 

2. 하나님은 인간역사와 무관하게 자신을 계시하려 하지 않는다.

3. 성경 저자들의 역사적 문맥이 하나님의 계시의 형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4.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역사적인 문맥도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시를 주는 방식과 받을 때의 방식에 모두 변화가 있다

5. 따라서 성경 해석에 엄밀한 과학의 측면만큼 예술적 측면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6. 구약 성경은 다층의 의미들을 가질 수 있다. 


  * 성경해석을 그리스도와 교회를 목적적으로 해 나가는 기계적인 한 방법이라기 보다는 겸손하게 현재의 상황(역사의 결과물로서)을 위한 성경해석을 하는 것이 피터엔즈가 제안하는 방식이 아닌가 싶다. 


  즉, 피터 엔즈는 문법적-역사적 해석이라는 기존의 틀에만 매여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면, 신약의 사도들은 잘못된 해석을 한 것이 된다고 보고, 구약이든 신약이든 구약 성경을 해석할 때 당시에 처한 상황에 따라 해석의 방법이 바뀌었던 것처럼(모범적인 해석방법을 파괴하는 방식으로까지 현격하게) 성경을 받는 시대와 받는 사람들의 상황에 따라 좀 폭 넓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겠는가 제안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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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신약저자들의 구약인용_어떤 점에서 사도들의 해석학이 독특한가?


[결론] 

1. 구약성경은 그리스도 목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2. 구약성경은 교회 목적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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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약 성경의 해석방법이 제 2성전기의 해석방법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물론 사도들은 보다 많은 절제와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살이지만, 둘 사이의 해석학적 방법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2. 피터 엔즈는 신약성경의 저자도 그 당시의 문화 일원이라는 측면을 강조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의 해석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은 <종말론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그들의 확신에 있다. 이런 확신은 구약 성경 전체를 그리스도를 절정으로 하여 해석하도록 하였다. 즉, 구약 성경을 냉철하게 읽음으로써 그리스도가 주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진리로 확신하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기초로 구약 성경을 새롭게 읽은 것이다. 


4. 이런 관점은 전통적인 복음주의적 성경관에 따르면, 그런 신약 저자들의 해석법은 올바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곡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들의 구약해석을 본래의 문맥에서 이탈시켜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다. 


5. 그들은 구약성경을 하나의 문맥에서 이탈시켜, 다른 하나의 문맥, 즉 이스라엘의 역사가 지향하는 최종적인 목표를 반영하는 그런 문맥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6. 신약의 기자가 구약 기자의 언급에 대한 해석을 한 것이다. 이 결과를 보니, 과거 당신의 이야기가 이런 지향점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해주는 것이다.(호세아의 말을 마태가 결과를 보고나서 당신의 말이 이런 의미를 가졌던 것임을 설명해 주는 방식이라 볼 수 있다. 호세아의 말을 호세아에게서 듣는 것이 아니라, 호세아의 말을 마태에게 들을 때 그것이 더 정확한 해석이 된다는 말이다.)


7. 이와 같은 해석 방법을 그리스도 목적적(christotelic)이라고 규정함. 기독론적, 그리스도 중심적이라는 용어보다 <그리스도 목적적>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한다. 그리스도 목적적이란 말은, 그리스도가 구약성경의 이야기가 지향하는 바, 즉 이야기의 종착점이라는 사실을 주지하고 구약성경을 읽는 것이다. (구약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로 대치 시킨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강조하는 것 같다.)


8. 구약 성경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한다는 것

  1) 문자적 역사적 해석을 하여 읽는다.

  2) 종말론적인 읽기, 그리스도 목적적 읽기이다.(신약의 사도들의 우리에게 보여준 성경해석의 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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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구약성경의 이야기는 그리스도 안에서뿐 아니라 하나님의 새 백성 공동체 안에서도 성취되었다.


10. 사도들의 해석학에는 그리스도 목적적 차원뿐 아니라, 교회 목적적(ecclesiatelic) 차원도 있는 것이다. 사도들이 구약 성경을 다룰 때, 그리스도의 개인에게만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즉 그의 백성, 교회에게도 초점을 두었다. 


11.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먼저 성취(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씨다. 갈 3:16)하였기 때문에 비로소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교회 안에서 그 텔로스(목적)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 견해] 구약성경이 그리스도 목적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는데,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해서 권면하고 있으므로 교회 목적적으로 더불어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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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신약저자들의 구약인용_제2성전기 현상으로서의 사도들의 해석학: 해석의 전통


이 시기의 성경전통들이 옳은 성경해석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이해를 위해서 그렇게 해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도 그렇게 해석했고, 그것이 그 당시 성경 해석에 관한 담론에서 상식의 한 부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성육신 유비에 비추어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부터 특정 문화의 옷을 입고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1. 얀네와 얌브레(딤후 3:8)

   1) 구약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은 인물이지만, 제2성전기의 해석 전통에서는 찾을 수 있다. 

   2) 얀네라는 이름은 다마스커스의 언약으로 알려진 쿰란 문서에서 찾을 수 있다.(타르굼 위요나단의 출 1:15 언급됨)_이것은 바울이 속한 시대의 성경 상식에 속한다. / 실제 인물이라는 말이 아니라, 바울이 <해석된 성경>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3) 얀네와 얌브레에 대한 기록은 그 당시 그 사건에 대해서 해설된 것이 성경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2. 노아, 의를 전파하는 자

   1) 노아가 의를 전파했다는 것은 구약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2) 제 2성전기의 해석전통: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를 포함한 몇몇 고대 문서에서 노아는 동시대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를 로마인 독자를 위해 구약성경을 보강한 재서술이다.)

   3) 베드로는 구약 성경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는지만, 다른 고대 문서에는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해석 전통을 사용해 노아를 묘사하였다.(이와 같은 해석이 이미 그 당시에는 널리 받아들여 졌다고 봐야 한다.)


 3. 모세의 시체를 둘러싼 쟁탈전

   1) 모세의 시체를 둘러싼 쟁탈전은 구약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는 것이 없는데, 유다서에 기록되고 있다. 

   2) 모세의 시체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언급하듯 자연스럽게 가지고 오고, 그런 필요가 있는 논지 속에서 끌어온다. 

   3)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크와 오리겐과 같은 3세기 교부들은 모세의 시체에 관한 일화가 <모세의 승천서>에 나와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4. 유다서와 에녹1서 

   1) 유다서 14-15절에 에녹이 말했다고 여겨지는 예언의 일부에 대해서 언급된다. 

   2) 이 예언은 구약성경에서가 아니라 에녹1서라는 외경에서 발견된다. 

   3) 유다는 당시 외경인 에녹1서의 언급된 에녹의 예언을 그대로 가져와서 성경에 포함시켰다.

   4) 이것은 그 당시 에녹1서의 내용들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한다. 


 5. 모세의 애굽에서의 교육(행 7:21-22)

   1) 스데반의 연설중에 있는 내용인데, 구약성경에는 명시적으로 언급된 것이 없다.

   2) 스데반은 왜 연설 중 모세의 교육에 대한 내용을 구지 언급했을까? 꼭 필요한 내용도 아니었는데....단순한 창작이아니다.

   3) 모세의 교육에 대해서는 언급된 고대의 두 문서가 있다. 첫째, 필로의 <모세의 생애>를 보면, 모세가 아직 유아였을 때 천재성을 보였다는 것과 둘째, <비극 작가 에스겔>에 의해 쓰여진 한 고대 희곡 <엑사고게>에도 모세의 교육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당시 이스라엘 인들은 자신들의 전통 속에서도 아리스도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가 있었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도록 그들의 지도자였던 모세를 매우 잘 교육받은 인물로 보이게 한 것이아닐까 싶다. 


 6. 천사들을 통해 중보된 율법

   .....(211-212쪽 참조)


 7. 바울의 움직이는 우물(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쳤으매)

   1) 바울은 출애굽기 17장과 신명기 20장의 내용을 기초로 음료를 공급했던 바위에 대해서 언급한다.

   2) 제2성전기의 문서들을 보면 광야 생활 중 이스라엘을 따라다녔던 <움직이는 물의 원천>을 언급하는 것들이 있다. 

   3) 바울은 그 문헌들을 근거로, 고전 10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르는 바위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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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던 것 중에서 당시 궁금했었던 것들에 대한 해설들이 제2성전기의 문서들에 나타나고 있고, 그 중의 일부를 신약성경의 기자들이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 신약성경에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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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제 2성전기 현상으로서의 사도들의 해석학: 해석의 방법]


1. 예수님이 출 3:6의 말씀을 문법적-역사적 주해를 하지 않아 오늘날 우리는 당황스럽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해석에 감명을 받았다.(눅 20:39-40) 그것은 예수님이 다름 아닌 바로 제2 성전기의 해석 방법을 사용하셨기 때문이다. 


2. 신약의 저자들이 변증적인 목적으로 구약을 인용했다는 주장(목적 지향적 해석)은 그 당시의 해석 방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사도들의 성경해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 


3. 예를 살펴보자.

  1) 마 2:15과 호 11:1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1) 1차 문제: 호세아서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마태는 예수가 애굽으로 가는 상황(올것을 염두하고 쓴 것이라 볼 수 있다.)

   (2) 2차 문제: 호세아에서의 내 아들은 이스라엘로, 예언적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의 경험을 말함. 그렇다면 예언적 표현으로 인용하고있는 마태의 인용은 역사적-문자적 해석은 아니다. 

첫째 안: 그 당시의 해석 방법으로는 자연적인 것이다.

둘째 안: 믿음의 해석이다. 구약의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를 지향한다는 믿음을 전제한 해석

호세아 서에의 <아들>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이었지만, 마태가 말하는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는 참 이스라엘이요, 참 아들임을 강조하는 방식의 해석으로 볼 수 있다.(저자의 추측)


  2) 고후 6:2과 이사야 49:8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1) 이사야는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을 예언하는 것으로 이 내용을 썼다. 

   (2) 바울의 말하는 지금은 단순한 현재가 아니라, 종말론적인 지금을 말한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찾아온 종말론적인 지금이 바로 그와 같은 때라는 것을 말한다. 

    (3) 바울이 하려고 했던 것은 현대 과학적인 주해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이야기의 궁극적인 성취라는 확신에 근거한 성경해석이라는 것이다. 


  3) 갈라디아서 3:16,29과 아브라함의 자손 '자손들이라고 하지 않고, 자손이라고 했다는 것'

   (1) 바울이 인용한 구약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창세기 13:14-17 인듯 하다. 여기에 '자손'이라 표현

   (2) 자손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제라>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복수 혹은 단수로 사용 가능함.

   (3) 그러나 문맥 상으로 본다면, 복수로 보는 것이 맞다.(문자적, 문맥적 해석을 통해 본다면)

   (4) 바울은 갈 3:29에서 <자손>을 복수의 개념으로 사용했다.(복수의 뜻이 있음을 알고 있다.)

   (5) 저자의 결론: 바울은 제2성전 시대의 해석 관행에 따라 해석하고 있는 것인데, 단어의 문법적 모호성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에 대한 심도 있는 신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수는 아브라함의 유일한 참된 자손(단수)이며, 동시에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복수)임을 말한다.)

      : 이런 해석은 그 당시의 자손신학의 입장에서의 해석으로 봐야 한다. 


  4) 로마서 11:26-27절과 이사야 59:20

      이사야 59:20 구속자가 시온에(로 향햐, 을 위하여)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로마서 11:26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1) 구원자의 개념의 변형: 여호와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2) 시온을 위한 구원자 -> 시온에서 나온 구원자(예수 그리스도도 유대인이라는 측면을 증명)


   : 이런 방식으로 구약의 내용을 신약 기자는 의도적으로 변형하여 인용하고 있다는 것(당시 해석방식)


  5) 히브리서 3:7-11과 시편 95:9-10

    책 참조(198-201쪽)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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