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 정리]



[오늘의 내용]


1. 이성은 감각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 감각될 수 밖에 없었는지 설명을 요구한다.

  1) 이성이 중심이된 사고는 그것을 인간이 경험하는 영역의 내용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성을 가진다.(설명주장)

  2) 그런데 성경은 보통 설명보다도 복종을 요구한다.(계시_권위를 주장)

   : 그래서 각 특성상 이성과 계시는 충돌할 수 밖에 없다. 이성은 설명을 통해 이해를 시켜주길 원하고, 계시는 권위로 순종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2. 오늘의 주제는 그런 측면에서 권위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1) 우리의 일반적 개념: 권위 <-> 자유 /  자유의지 <-> 하나님의 절대주권

    : 자유란 구속과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형성됨.(권위에 대한 나쁜 경험때문임)

  2) 그러나 긍정적인 권위가 있다. 

   (1) 부모가 어린 자녀들에게 권위를 가지고 말한다.(주사를 맞음, 학교에 가야함..)

   (2) 어떤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결정권을 갖는 힘이다. 

  3)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란(소극적인 자유)

   (1) 소극적 개념의 자유, 즉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이다. 

   (2) 소극적 개념의 자유는 결국 어떤 권위라는 개념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 되고 만다. 

   (3) 독재를 깨고 자유를 누리자고 했는데, 독재를 깨고나면 자유도 함께 없어지는 꼴이 되고 만다. 

      예) 수업하지 말고 놀아요~ 그래 그러자 그러면 심심해요.(소극적 거부만 있는 것)

   (4) 이런 소극적인 자유(권위를 거부하는)는 우리 인간의 죄성에서 나온 것(권위자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이다. 


  4) 적극적인 의미에서 권위란 무엇인가? 

권위란 권위를 행사하는 쪽의 힘에 의해서 권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자꾸 독재성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권위란 그 권위가 갖는 진리 됨과 힘이, 그것을 요구받아 순종해야 되는 대상의 만족에 의해서만 성립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권위란 자신을 힘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 자체로 자신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권위이다. 

   (1) 그러나 권위는 상대방에게 설명이 되지 않으니, 상대방은 그것을 독재라고 느끼게 된다.

   (2) 하나님이 계신가 안계신가?를 증명할 수 없다. 그렇다고 투표로 할 수도 없다. 다만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날 죽이려면 죽여라. 있는 건 있는 거다'라고 우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 기독교가 편협하다고 듣는다. 왜냐하면 한 끝차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중재안을 거절하면 편협하다함)


  5) 권위에 대한 반발이 정당한가?

  우리는 보통 권위에 대한 반발이 정당한 정신 위에서 시행된 것이 아니라 권위 자체에 대한 반발을 위해 인간의 죄성과 유치한 기분파적인 반발에 불과할 때가 많다. 그것을 어떻게 확인했는가 하면, 자유를 기껏 권위를 반대하기 위해서만 사용했다.(권위의 부정에 온 힘을 다 기울임)


  6) 자유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free from)만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 자유(free for)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정당한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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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정리]
1. 신학의 원리는 계시만이어야 한다. 

2. 그런데 신학에 이성이 개입되는 이유는, 계시는 이성이 없으면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계시가 이성에 감광되기 위해서는 초월적인 내용이 우리의 이성에 포착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필요.

4.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이성이 그것을 포착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성으로 포착할 수 있는것만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우를 범한다.

5.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의 계시가 이미 그 초월된 내용을 이성에 인식시키기 위해 어떤 지혜와 능력을 포함하고 나타나는 것이기에 이성이 그것을 감지하는 것이다. 


[이번주 내용]

1. 이성의 특징인 합리화

  1) 초월된 내용이 초월의 방식으로 오면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인식 가능한 가시화(합리화)가 필요하다.

    예) 사랑이라는 추상명사를 이해하려면, 추상 명사는 가시적이기 보다는 개념적이기 때문에 어렵다.

     - 우리는 사랑을 말로 배웠습니까? 동영상으로 배웠습니까? 

- 사랑은 추울 때 부모가 자식에게 옷을 벗어주는 장면(사랑=옷을 벗어 주는 것 혹은 남을 위한 것?)


        설리반이 헬렌 켈러를 가르칠 때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이 추상명사. 왜 개념의 가시화된 형태 조차도 인식할 수 있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2. 이성의 합리성이 불러 일으키는 오해들

  1) 배(이성)가 옥수수(초월적인 내용을 인식가능한 형태로 구체화해서 하나님이 계시하신 내용)를 만들어 낸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됨

  2) 세상 사람들 중 기독교에 호감을 가지게 되는 이유: 기독교는 윤리 도덕적으로 착하다는 보기 때문에

   (1) 그러나 실상 기독교는 착함이나 선을 추구하는 종교는 아니다.

   (2) 하나님을 본받는 것을 추구하는 종교인데,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니까 그것을 좇아서 우리도 선을 추구한다. 

   (3) 그럼, 하나님을 닯자(본받자)라고만 하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니까, 선하다 의롭다 이렇게 규정을 하게 되고 그것을 좇도록 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선과 의를 절대 가치로 선과 의를 좇는다.(옷을 벗어주는게 사랑으로 이해하는 것이 잘못된 이해인 것과 마찬가지로)

   (4) 그렇게 하고는 자신들이 신학에서 선하다와 의롭다는 가치를 발견했다고(자기가 생산했다고) 생각한다. 


3. 신신학의 문제점

  이성은 운반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초월의 내용이 수송되기 위해 어떤 형태를 취한 것을 '이런 형태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이해하고 해석해야 되는데, " 아, 이거구나"라고 자연계에서 우리가 경험한 어떤 비슷한 것으로 내용물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 바로 신신학이다. 그래서 신신학은 결정적으로 신학의 원리를 계시가 아니라 이성으로 본다. 

 

  예1) 왜 기독교가 가장 우수한 종교인가? 고상한 인류의 가치를 가장 그를 듯하게 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1) 인간에게 선을 행하라, 의를 해하라, 긍휼을 베풀어라, 이웃을 사랑해라... 를 가르치는데 탁월하다. 

     (2) 보통 인간은 중요한 가치를 늦게서야 깨닫게 되는데, 기독교는 중요한 가치를 일찌감치 습득할 수 있도록 했다. 

     (3) 기독교의 상벌 개념은 유치하지 않고 실재같이 해놨다는 것.. 그만큼 정교화된 종교라는 것이다. 


  예2)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1) 주께서 실재로 살아나셨다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난 것과 방불한 효과를 가지게 되었다는 주장을 한다. 

     (2) 제자들이 변화되어 사랑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은 주님의 살아나심과 같은 것이 아닌가!라고 이해함.


4. 하나님의 초월적인 내용은 다양한 방식으로 계시 된다.(그래서 해석이 필요하다.)

   사랑이라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옷을 벗어서 입혀주는 것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옷을 벗어 입혀준 형태(인식 가능한 모습)와 그 형태 속에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해석해 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옷을 벗어서 입혀주는 형식으로도 나타나지만, 매를 들어 때리는 것으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로서 계시는 해석되어야 한다.  


5. 정리해서 말하면

  1) 계시적 사고(계시의존 사색, 개방 체계)

계시된 내용을 일단 내용으로 감수를 해서, 이성의 방법으로 합리성을 추구하며 인식을 하고, 논리를 전개해 나가기는 하지만 그 내용을 이해해 가는데 상호 모순 되거나 충돌해 보여도 내용을 가감하지 않으며 성경이 가라는 떼까지 가고 가지 말라고 하는데까지 안 가는 것을 말한다. 

  2) 이성적 사고(폐쇄성 체계)

이성적 사고는 이성이 갖는 합리성을 위해서라면 내용을 가감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것이 계시된 내용을 딴 것으로 대치할 수 있고, 계시된 내용을 변질시킬 수 있다. 이성이 제단할 권한이 있다.(왜 이성이 생산해 낸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6. 우리 인간은 태생적으로 이성에게 주도권을 주려고 한다. 

  예 1) 하나님이 계실 것이냐? 아니면 안 계실 것이냐? -> 있을지도 모른다.(중간이 아니라 없다쪽에 있는 것)

  예 2) 우주 기원의 대표적 이론>  진화론과 창조론 (창조론이라는 경험은 아예 없고, 진화론적 경험 밖에 없다.)

  예 3) 고대 서구 사상,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헬레니즘은 모든 사실은 논증이 가능하다.(과학주의적 정신)

  예 4) 예수를 믿느니 내 주먹을 믿어라> 

  예 5) 중세시대 기독교인의 헤브라이즘을 헬레니즘에 접목 시킨, 스콜라 철학> 진리와 절대를 객관적으로 증명함.

        : 신앙인들에게는 그렇게 해도 결론이 하나님과 절대진리로 가게 된다. 그러나 그 뒤를 따라오는 사람은 전혀 다른 길로 갈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신이 없다는 것으로 가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세 시대가 와해되고 근대와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신신학이 대두되는 것이다.(약도는 자기 중심으로 그리면, 찾아 오는 사람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될 수 있다.)


7. 서구 신학의 문제(미국 신학의 흐름)

  1) 미국은 신앙을 위해서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에, 신학을 위해서 대학을 만들었다. 

  2) 그런데 신학을 시키려고 보니까 기초 학문이 필요하더라... 그래서 교양학부를 만들게 되었다. 

  3) 먼저 학문을 시키고, 신학으로 신앙의 깊이를 풍성하게 하려고 신학교를 만들었는데 학문의 방법이 과학이었다. 

  4) 그런데 학문의 방법인 과학이 신학의 계시된 내용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5) 그래서 계시된 내용들을 잘라내고 그 자리에 같은 개념의 세상적인 내용으로 메꾸기(재해석) 시작한다. 

    예) 하바드 -> 예일 -> 프린스톤 -> 웨스트민스터


8. 이성에 역할과 한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너무 근본주의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너무 자유주의자처럼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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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신학이란 이성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에 이성이 동원되는 것은 이성이 신학의 내용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이성을 통해서만 신적 계시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계시의 내용을 우리에게 인식 가능한 형태(합리적으로 인식 가능한 형태)로 드러내신다.(그래야 우리가 인식할 수 있기에) 그러나 사람의 이성은 보통 그것을 체계화하려는 경향, 폐쇄적 경향성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실 때,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계시하시면서도 초월적인 내용들을 보이심(시공간적 초월, 기적과 같은)으로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닫힌 시스템으로가 아니라, 열린 시스템으로 하도록 하신다. 



[내용 정리]


1. 지난시간: 계시란 하나님의 자기 진열이 아니라,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하시고 주도권을 갖는 것이 계시다. 


  예 1) 하박국의 질문: 왜 의인이 불의한 자들에게 횡포를 당하는데 가만히 계십니까? 

           하나님의 답변: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의 답변을 주시지 않는다)

  예 2) 시편 96편. 하나님에 대한 증명은 없고,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송축을 다룬 내용

           * 작자가 불분명: 선지자나 제사장 혹은 기름부음 받은 자가 썼다면, 저절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택되어 성경으로 구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편은 저자가 누군지 모르는데, 성경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그 내용이 정경에 포함될 만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채택된 것이다. 초월적이기 형태의 모습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성경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쳐서 확인되었기 때문에 포함된 것이다.(간적적이고 완곡한 방식으로 자기를 증명하신다.)


2. 오늘 본론: 신학이 하나님의 계시로만 되는 것인가 아니면 이성까지 포함되어야 하는가? 


  1) 신학의 방법론은 이성이 아니라, 계시일 수 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 확인했다. 

  2) 이성은 분명히 신학의 주제와 내용에서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확인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시와 이성의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것은 계시는 그 첫번째 목적이 초월적인 것을 인간에게 알리려는 것인데, 인간이 그것을 인식하는 방법과 기능이 이성적이지 않으면 안되는 제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4) 이 말은 인간은 하나의 내용을 인식하고 이해하는데 합리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합리적인 방식으로 계시되어야 만 인간은 인식하게 된다는 것)


   (1) 교리와 사상의 차이를 생각하면서 폐쇄된 체계를 이해해 보자.

   (2) 교리는 우리가 신앙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체계화하고 지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사상은 한 개인이 자기가 믿는 것을 자기의 지적체계, 자기의 이해의 어떤 인식체계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는데 서로 같을 수도 있고, 서로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 

   (3) 개인의 신앙 체계인 사상은 그 사람이 중요하다고 여긴 것을 더욱 부각시키는 개인적인 경험과 신앙의 칼라에 따라서 재편집된 모양을 가진다. (진보적이다 혹은 보수적이다)

      예]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서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느냐에 따라 사상이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4) 그래서 인간이 가지는 정신 체계는 언제나 단원론적이요, 페쇄된 체계가 되기 쉽다.(닫힌 시스템)

      예]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고 본 것을 더욱 확대하는 경향으로 해석하려고 한다.(경험과 환경)

      예]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의지에 대해서도 한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해석하려고 할 때, 폐쇄성 체계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지고만 성경 전체를 확대 해석하면 알미니안주의가 되고, 하나님의 주권만을 이야기하면 칼빈주의가 된다. 서로 문호를 개방하지 않으면 한 부분으로 확대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5) 인간은 합리석을 추구하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예) 돈을 잃어 버렸을 경우

     예) 방언 문제, 구원의 확신 문제_단원론적인 체계로만 가지고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들.


3. 왜 자꾸 계시의 문제에 이성이 끼어들게 되는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1) 이성이 없이는 계시가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이라는 것이 마치 내용인것처럼 끼어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내용인 것처럼 자신을 주장하게 된다. 

  2) 하나님은 초월적인 어떤 내용을 인간에게 알게 하시려 할 때, 이성이라는 틀로 이해 가능한 형식을 취하셔서 전해 주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이성의 틀에 맞춰서 보여 주셨기 때문에, 이성의 틀에서 벗어난  내용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내용이 아니라고 역으로 주장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3) 그래서 자신의 이성적 합리성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체계로 변형시키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렇다고 받은 것을 그대로 전하면 될 것이 아니냐? 말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그렇게 할 수없다. 우리가 받는 것이 물건이 아니라, 사상과 내용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해해야 하고 해석해야만 한다. 그래야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예] 모션으로 단어 맞추기 게임과는 다르다.


  4)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해야만 한다.(이성을 통하여 계시된 내용을 가공하는 것이 필연적인데, 잘 해야한다.) 그리고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이성이 가지는 한계, 합리성과 폐쇄성과 단원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개방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5) 개방성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주권을 모두 인정)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_ <계시의존 사색>이라고 말한다. 


4. 인간의 이성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으며,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다. 

  1) 순수이성비판

  2) 성경은 활자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의 글자가 아닌 우리의 문자로. 우리의 활자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찾아 내야 한다. 이것이 해석이다. 그러나 이것은 학문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성령의 조명 가운데서 이루어 져야 한다 

  3) 우리의 이성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데, 하나님은 초월적인 존재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신을 펼쳐 보이심으로 자신이 초월자라는 것을 나타내신다. 그래서 성경 기적은 두 가지 유형을 갖는다. 하나는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다. (예, 죽은 자를 살리심, 바다 위를 걸으심, 홍해를 가르심, 문둥병을 고치심(공간 초월) // 예언(시간 초월)) 이런 방식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개방 체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하신다. 

  4) 성경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해 졌다.그러나 그 내용들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기적이 점철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로 오시고,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시는 것으로 오신다. 

  5) 이성은 계시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면서, 그것을 가공(제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5. 신학을 하다보면 가장 무서운 것

  1) 근본주의: 해석을 금하는 것. 이성은 운반만 해라. 나타난 대로만 보자고 말하는 것이다.(편협하게 됨) A로 나타난 것은 A로만 나타나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함. 


  2) 자유주의: 이성이 받아들일 것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을 판단해서 선택권을 가지려고 함. 이성에 합하지 않은 내용들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받아들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어 버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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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에 대한 내용을 파워포인트로 정리한 내용



평신도 신학입문1-계시.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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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key019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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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엔즈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708


또 다른 글


http://orthodoxy.tistory.com/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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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보수와 자유를 넘어 21세기 복음주의로, 로저 올슨, 죠이선교회

7장. 지배가 아닌 문화 변혁

전통적인 입장(내 입자에서는 장로교회)에서 보면 낯선 개념의 설명을 한다. 문화변혁자로서의 그리스도인(칼빈주의)에 대한 개념이 신약성경에는 없다고 지적하면서 유일한 문화변혁의 모델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신약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는 문화 변혁의 개념은 '세상 안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개인 혹은 공동체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저자는 재세례파의 급진적 방법이 복음주의적인 방법이라고 지적한다. 

재세례파 신학자인 존 하워드 요더가 말했듯이, 그들은 자발적으로 세상 권력에 복종했으나 세상 권력이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요구할 때는 비폭력 불복종으로 맞섰던 자들이라고 재세례파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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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난 장로교회에 속해 있고, 문화 변혁이라는 측면에서 세상을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변혁해야 한다는 의식,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왔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정치나 사회, 문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변혁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극우 보수 신앙을 가진 분들이라고 비판하던 분들이 하려던 일이 그런 일들이다. 정치적 권력을 어떻게 든 확보해서 교회 옹호적이고 기독교 윤리에 입각한 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신학적 입장에서는 장로교회를 선호하지만, 교회와 정치 그리고 사회 변혁의 문제에 있어서는 오히려 재세례파의 견해가 기독교적 가치관과 더 부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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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인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는데, 존 드레인의 성경의 탄생이란 책(출판사 옥당)에서 간략한 설명을 해 놓았네요. 우리는 보통 사마리아인들이 혼합 주의적 신앙을 가졌다고 알고 있는데, 존 드레인은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오히려 보수적이었으며 정통 유대교인처럼 안식일과 할례, 음식 규례, 유일신 야췌에 대한 신앙을 엄격히 지켰다고 합니다.(313-314쪽) 자세한 내용은 아래 책 내용을 사진으로 올립니다. 참고하세요.^^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의구심들이 좀 더 풀리게 되는 것 같네요. 신앙에 전혀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여인이 매우 심도있는 신앙적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좀 의아하게 생각했는데요...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또하나의 색다른 정보를 드리자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 사마리아 여인(다섯번 째 남자와 헤어진 후 또 다른 남자와 동거 중인)이 매우 문란한 생활을 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존 드레인은 당시의 문화적 상황을 설명하면서 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더군요. 엄밀하게 보면 그 사마리아 여인은 불임 때문에 연달아 이혼을 당하고, 생식 능력이 없어 결혼하지 못하고 있던 같은 처지의 남자와 살았던 것이라고 봅니다.(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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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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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벤자민 워필드"와 같은 신학자들은 새롭게 밝혀지는 과학적, 역사적 진실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이 현명한가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합니다. "모든 빛에 우리는 조심스럽게 열린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책 내용 인용)


1.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세기 1장 해석에 다시 귀를 기울여보면, 그리고 당시에는 진화나 지구의 나이에 관한 과학적 증거가 없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성경 원문을 세심하고 진지하고 경건하게 읽는다고 해서 젊은지구창조론처럼 글자 하나하나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 진다. 


사실 성경을 이처럼 좁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주로 지난 100여 년간 다윈의 진화론에 반발해 일어난 결과다.(p.177)



2.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를 언급하면서, 17세기 교회가 마땅히 유념했어야 할 간곡한 훈계를 잊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도 대개는 알고 있다. 땅과 하늘과 그 밖의 이 세상 것들, 별의 움직임과 궤도, 심지어 그 크기와 상대적 위치, 예측 가능한 일식과 월식 그리고 일 년 열두 달과 계절의 주기, 동물과 관목과 돌 등에 대해. 그리고 이 지식을 이성과 경험에서 나온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제 성경의 의미를 전달한다며 이런 주제에 관해 허튼소리를 해대는 그리스도인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이교도들에게는 수치스럽고도 위험한 짓이 되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전반에 대해 잘 모르거나 그리스도인을 비웃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막아야 한다. 


무지한 한 개인이 비웃음을 받는 거야 문제될 게 없지만, 종교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쓴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런 의견을 가지고 있으려니 생각한다면, 그리고 성경을 쓴 사람들이 비난 대상이 되고 교육 받지 못한 사람으로 내몰려 우리가 애써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피해가 돌아가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리스도인이 일반 사람들도 빤히 아는 사실을 두고 실수를 하거나 성경에 관해 바보 같은 말만 늘어놓는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 성경을 믿을 것이며, 죽은 자의 부활이니 영적 삶이니 천국이니 하는 것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이미 경험을 통해 이성적 시각으로 터득한 사실을 놓고 성경은 온통 바보 같은 소리만 지껄인다면 그들은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 p.160-161)



3.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보수적인 개신교 신학자였던 벤저민 워필드는 사회적, 과학적으로 아무리 큰 변화가 일어나도 종교인들은 그 믿음의 영원한 진실에 굳건히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가진 그 역시 하느님이 창조한 자연계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 그것을 축하해야 한다고 보았다. 워필드는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깊이 새겨들어야 할 위대한 말을 남겼다. 


"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성의 진실, 철학의 진실, 과학의 진실, 역사의 진실, 비평의 진실에 반감을 가져서는 안된다. 빛의 자녀인 우리들은 모든 빛에 조심스레 열린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러니 오늘날의 연구 결과를 당당히 마주하는 용기를 기르자. 우리는 다른 누구보다도 더 그것에 열광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누구보다도 빨리 모든 영역에서 진실을 식별해야 하고, 더 적극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것이 어느 곳으로 향하든 더 충실히 따라야 한다." (p.18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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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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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게놈프로젝트를 총지휘하여 10년 만인 2003년에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31억 개의 유전사 서열을 모두 밝히는 게놈 지도를 완성한 <프랜시스 S. 콜린스>의 글을 통해서 볼 때, 현재 과학자들이 믿는 진화론적 확신은 보수적 창조론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확고하고 이성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라 보인다. 콜린스도 신을 믿는 유신론자이지만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을 쓴 것을 볼때, 이미 과학자들 사이에서 진화론은 확고부동한 논리로 여겨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도킨스와 같은 무신론적 진화론자가 아닌 유신론적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과학을 하는 학자들에게 진화론은 학문적 기본 토대라는 것이다. 이것인 현실이라는 측면에서 직면해야 할 내용이다.


------------------------(책 내용 중 일부)


1. 오늘날 그 어떤 진지한 생물학자도 생명의 경이로운 복잡성과 다양성을 설명하는 진화론을 의심치 않는다. 사실 모든 종이 진화 메커니즘 안에서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모든 생물을 이해하는 데 워낙 중요한 기초가 되기 때문에 진화론을 생각하지 않고, 생명을 연구하리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과학적 탐구영역 가운데 다윈의 혁명적 통찰력만큼 종교적 견해와 마찰을 일으킨 영역이 또 있을까? 1925년에 일어난 스콥스의 '원숭이 재판'부터, 오늘날 미국 학교에서 진화론 수업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에 이르기까지, 양쪽의 싸움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p.104)



2. 현재 활동하는 거의 모든 생물학자들은 다윈이 말한 변이와 자연선택이 기본적으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확한 이론이라고 확신한다. 사실 유전학을 연구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 보기에, 다윈의 이론이 기초가 되지 않았던들 게놈 연구에서 지금 같은 방대한 자료를 얻기란 불가능했다. (p.144)



3. 어쩌면 진화론에서 '론(theory)'이라는 단어를 오해해 이런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비평가들은 전화가 "단지 이론일 뿐"이라는 점을 즐겨 지적하는데, '이론'의 의미는 다르게 해석하는 과학자들에게는 당혹스러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내가 가진 <<펑크앤드왜늘스>> 사전을 보면 'theory(이론, 학설)'에 다음 두 정의를 달아놓았다. 


"(1) 추측 또는 억측에서 나온 견해 (2) 과학, 예술 등의 밑바탕에 깔린 근본 원칙. 예) 음악이론, 방정식론."


과학자들이 진화론이라고 할 때는 중력이론 또는 전염병에 관한 세균이론 등을 말할 때처럼 (2)번 뜻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론' 또는 '설'은 불확실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불확실성을 드러낼 때 과학자들은 '가설'이라는 말을 쓴다.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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