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고대근동 문헌들]


1. 신명기와 히타이트 종주조약


  1) 성경에는 있었지만, 고고학적으로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던 문명이 히타이트 문명이었다. 

  2) 20세기 동안 수차례의 고고학자들의 발굴로 빛을 보게 되었다.(터키 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한 문명)

  3) 발굴품 중에 종주국과 종속국 사이에 맺은 조약문서가 있는데 이 조약문서가 신명기 전체 구조와 비교가 되며, 또한 십계명의 구조와도 비교가 된다. 

  4) 그 유사성에 대해서는 책 45쪽 참조

    (1) 조약문서는 먼저 종주국 왕의 이름을 밝히고, 그가 종속국을 위해 베푼 업적을 나열하는 것으로 서언이 시작된다.

    (2) 히타이트 조약문서는 역사적 서언에 이어 몇 가지 법조항들을 제시한다. 종속국들이 지켜야 할 규정들...

    (3) 더불어 종속국이 그 충성을 파기했을 때 신들에 의해 응징받을 것을 명시함.

    (4) 그 다음으로 축복과 저주가 나열된다. 순종하는 자에게 축복을, 불순종하는 자에게 저주를 .

    (5) 두 개의 돌판에 새겨졌다. 십계명도 두개의 돌판에 있었던 것과 유사함.

    (6) 신명기의 구조는 히타이트의 구조와 유사하다.(46쪽 참고)


[저자 정리]

신명기나 십계명이 히타이트 조약문서 구조를 반영한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서로 전혀 무관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십계명이나 신명기가 당시 고대근동의 문서양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 분명하다. 


                                                                   히타이트 상형문자



2. 다윗과 텔 단 비문


  1) 아람어로 쓰여진 텔 단 비문의 발견(주전 9세기 혹은 8세기의 것으로 추정)

  2) 이 비문에 <다윗의 집>이라는 문구가 있다. 여기서의 다윗이 주전 10세기 경에 살았던 이스라엘의 왕 다윗 왕을 가리치는 것인가 하는 논쟁이 일었다. 많은 학자들은 다윗과 그 자손들이 그 당시에도 유명했던 역사적 인물이었다는 사실에 동의하게 되었다. 


3. 히스기야와 실로암 터널 비문


  1) 1880년 예루살렘에 있는 한 터널에서 비문이 발견되었다.  그 터널은 기혼샘에서 실로암 못까지 통과하게 되었다. 

  2) 터널은 양쪽에서 인부들이 뚫어 가다가 중간에 만나서 뚫은 터널이다. 비문은 그들이 마추친 순간을 기록한다.(참고. 48쪽)

  3) 이 터널에 히스기야나 산헤립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왕하 20:20절에 기록된 터널공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4) 특히 이 비문에 눈에 잘 띄는 곳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터날 안쪽에 들어가 잘 안보이는 곳에 있는데 이는 이 비문이 왕의 업적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 그 당시 일했던 사람들의 기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4. 오므리와 메사 비문


  1) 메사는 고대 모압의 왕으로서 주전 830년 인물이다.(역사적) 그는 자신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다. 

  2) 메사는 구약 성경에도 언급된 왕이다.(왕하 3:4-5)

  3) 메사 비문이 중요한 것은 비문이 모압 왕 메사의 역사성을 증거해 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조. 50쪽)

  4) 이 비문을 통해서 오므리 왕이 얼마나 메사를 괴롭혔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역사를 확인시켜주고 보충해 주는 중요한 성경 외적인 자료임에 틀림이 없다. 






5. 잠언과 아메네모페의 교훈


  1) 구약성경의 잠언에는 <아메네모페의 교훈>이라 불리는 이집트의 지혜서와 매우 유사한 부분이 나온다. (참고. 51쪽)

  2)  잠언 22:17-24:22까지와 <아메네모페의 교훈>은 분명히 서로 연관돼 있고, 그들의 유사성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3) 아메네모페의 교훈은 잠언에 비해 더 오래된 것(주전 1200년)인데, 이것은 잠언의 기록자가 아메네모페의 교훈을 미리 알았고, 참고했을 수 있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집트 문자_파피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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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요한 발견


  1) 앗수르바니팔 왕(주전 668-627)의 도서관에서 고고학자들의 발굴 작업(주후1848~1876년)

   (1) 초기에는 해독을 못해 그 중요성을 알지 못했지만, 해독되면서 이 토판들이 성서학 연구에 중요함을 알게 됨.

   (2) 그 안에는 천지 창조나 홍수에 관한 고대인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3) 이들은 이스라엘과 이웃 문화권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다. 

   (4) 조지 스미스가 이 토판을 번역하여 출판하고서 성경을 보는 방법이 혁명적으로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5) 이 언어는 아카드어(주전 3000년)라고 하는데, 고대근동 사회들의 주요 언어로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앗시리아와 바벨론 제국의 언어가 바로 아카드어였다. 

   (6) 아카드어 토판들에는 법률문서, 경제문서, 역사문서, 서신문서 등이 포함되었다. 3000-4000년 전 고대근동 지역의 생활을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2) 그중에서 종교문서들에서 발견된 것들

  (1) 구약성경과 매우 유사한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있다. 

  (2) 전통적인 성경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발견이 충격적이다. 

  (3)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가 당시 고대 종교 문헌에도 나온다는 것은 선뜻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았다. 


2. 구체적인 예들


  1) 천지 창조 이야기: 에누마 엘리쉬

   (1) 에누마 엘리쉬는 바벨론의 창세기로 알려져 왔다.

   (2) 그 문서의 작성 연대는 주전 7세기 경으로 보지만, 그 내용의 이야기는 주전 2000-1000 사이 추정한다. 

   (3) 그러나 그 이야기가 기록되기 전에 구전되어 오는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예측할 수 있다. 


  2) 창세기와 에누마 엘리쉬의 유사성과 그 유사성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 창조의 순서가 유사하다. 

   (2) 창조 전의 상태가 흑암으로 표현된다.

   (3) 물의 분할과 구획이 이루어진다.

   (4) 태양, 달, 별 등이 창조되기 이전에 빛이 존재한다. 


  [주의] 

   - 창세기가 에누마 엘리쉬의 모방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 창세기와 에누마 엘리쉬가 유사성 뿐 아니라 동시에 분명한 차이도 존재한다.(차이. 35쪽 참고)


3. 이러한 증거들이 말하고 있는 것들

  1)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방식이 유사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창세기와 에누마 엘리쉬를 쓴 사람은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호 공통점만 강조해도 문제지만, 차이점만 강조해도 문제다.(창세기의 고대근동적 문맥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


  2) 또 하나의 견해: 창세기가 에누마 엘리쉬와 같은 고대 근동의 유사 이야기들을 반박하기 위해 쓰여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창세기는 바벨론의 마르둑이 우주의 주인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된 신임을 밝히려는 목적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4. 홍수 이야기: 아트라하시스와 길가메쉬 _ 재앙적 대홍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 아트라하시스: 엘릴 이라는 신은 인간이 시끄럽다는 이유로 홍수로 멸망시키려한다. 주인공 아트라하시스는 에아의 도움으로 방주를 만들어 엔릴이 보낸 홍수에서 살아남는다. 


  2) 길가메쉬(38쪽 참조)


  3) 창세기 6-8장의 홍수 이야기와 아트라하시스 / 길가메쉬의 유사성이 얼마나 큰가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었다고 보아야 한다.(한 쪽이 다른 쪽에게 영향을 주었든지 아니면 두 이야기의 공동의 뿌리가 되는 보다 오래된 제 3의 원작이 있었을 수도 있다.) 아카드어로 기록된 홍수 이야기와 성경의 홍수 이야기보다 더 오래된 수메르어로 된 홍수 이야기가 존재함으로 후자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도 있다. 


5. 이스라엘의 족장들: 누지 문서


  1) 누지(NUZI)는 주전 1500-1300년대에 오늘날 이라크 북부지역에서 번성했던 고대 도시의 이름이다. 

  2) 1920년대 중반부터 발굴되기 시작한 토판: 문학, 법률, 행정, 경제 문서들을 담고 있다. 

  3) 주전 14세기에서 15세기의 것으로 추정: 당시 생활상을 보여줌(아브라함, 사라,이삭, 야곱의 시대상)

  4) 창세기에 나온 이스라엘 족장들의 이야기와 누지 문서 사이의 몇 몇 중요한 유사성( 참고, 41쪽)

    - 족장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풍습이 실제 그 당시의 풍습과 일치하는 역사성을 확인시켜 준다.


6. 율법: 함무라비 법전


  1) 함무라비는 주전 18세기에 바벨론의 왕. 그는 통치 기간 중에 법전을 집대성했다. 

  2) 1901년과 1902년에 걸쳐 프랑스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다. 

  3) 함무라비 법전은 약 300개에 가까운 법 조항을 가진 상당히 긴 문서인데 이 법전과 구약 성경의 율법 사이에는 많은 유사성이 존재한다. (참고. 42-43쪽)


  4) 질문: 출애굽기를 보면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직접 계시하신 것이 아닌가? 

   (1) 함무라비 법전은 시대적으로 시내산 율법보다 훨씬 앞선다. 

   (2) 모세의 율법을 함무라비 법전및 다른 고대 근동의 법전들과 비교했을 때, 모세의 율법이 그다지 특별한 법은 아니다. 



[정리]


1. 최근 학자들은 구약 성경을 고대 근동의 틀(역사적인 문맥) 안에서 연구하려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2. 문제는 고대근동 문화의 영향권 아래서 성경이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어떤 면에서 성경이 그리 독특하거나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자료를 보면서 성경은 고대근동의 종교문헌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결론 짓는다. 한편 보주주의자들은 구약성경과 고대근동의 문헌 사이의 상관관계를 과소평가하려는 입장을 취해왔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성경관을 위협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 저자는 자유주의자들이나 보수주의자들이나 모두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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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정리]


1. 이 책이 지향하는 목표


  1) 복음주의적 성경관과 현대 성서학 사이에 대화가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2) 저자가 볼 때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생각: 현대 성서학을 공부하면 복음적인 신앙이 망가진다고 생각한다.

  3) 저자의 목적: 성경을 생동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면서도, 또한 동시에 현대 성서학적 연구가 주는 도전들 때문에 고민하며, 기존의 교회에서 주는 대답들에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 나는 이들을 주된 독자로 하여 이 책을 썼다. 


  4) 저자가 기존의 성경관에 대해서 가지는 확신과 새로운 제안

   (1) 성경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2)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선물이다. _ 복음주의적 통찰에 대해서는 받아들여야 한다. 

   (3) 그러나 교리화한 것에 대해서는 항상 잠정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새로운 증거들이 나오면 그것들을 반영해야 하며 교리적인 언어도 조정해야 한다.(?)

예) 코페르니쿠스.(1473-1543) 당시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이단으로 정죄 받았다.(과학적 사실을 잘못알고 있었음으로 인해)


[추가논지] 이런 의식은 특별계시(성경)과 일반계시(피조세계)와의 관계라는 고전적인 문제다. 특별계시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한 나머지 일반계시(특별계시와 다르게 보이는)에 대해서 매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대표적인 사건은 20세기에 초에 있었던 스코프 원숭이 재판(고등학교 생물 교사가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법정에 선 사건) / 자유주의대 근본주의의 싸움이 되었고 주류론자와 복음주의자, 진보주의자와 전통주의자의 충돌을 의미.


  5) 저자가 하려고 하는 작업은 타협점을 찾거나 난해구절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려고 하는 것이다. 즉,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역동적이고 긍정적인 성경관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성경 외적인 증거와 자료들을 설명해내기에 보다 적합한 패러다임을 갖는 것이다. 


저자는 복음주의자들이 현대 성서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제기하는 질문에 대해서 충분하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오히려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6) 저자가 제안하는 전제


  "성경에  대하여 우리가 느끼는 문제들은 성경 자체와 관련이 있기보다는 성경에 대한 우리의 선이해와 관련이 있다."


   (1) 우리의 선이해를 일단 보류하고,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어떻게 말하는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우리의 영적 성장에 매우 유익하다. 


   (2) 복음주의 신학에서 잘 다루지 않는 세 가지 주제

주제1. 구약 성경과 고대근동 문학: 왜 성경은 많은 부분에서 이스라엘 주변 국가의 문학 작품들과 유사한가? 구약성경은 정말 독특하고 고유한 것인가? 아니면 구약성경도 고대근동 문학의 하나에 불과한 것인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왜 그렇게도 고대근동 문학과 잘 어울리는가?(유일성 문제_내 정리)


주제2.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신학적 다양성: 왜 구약성경은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여러 곳에서 상반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구약성경은 마치 모순들로 가득 찬 것 같다. (일관성 문제_내 정리)


주제3. 신약성경 저자들의 구약성경 인용 방식: 신약성경 저자들은 왜 그렇게도 기묘한 방식으로 구약성경을 인용하고 있는가? 그들은 구약성경을 문맥과 관계없이 자의적으로 인용하는 것처럼 보인다.(해석의 문제_내 정리)


[추가적 설명] 주제2,3에 대해서는 성경 자체에서 제기되는 문제다. 주제1에 대해서는 최근 150년 사이에 활발하게 발견되고 있는 것인데, 전통적인 성경관은 그 전에 이미 확립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내용들이 반영되지 못한 상태에서 확립된 성경관이다.(저자의 입장은 최근 발견된 이 고고학적 발견을 반영한 개정된 성경관을 형성해야 한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3) 이 세가지 주제를 잡은 이유: 전통적인 복음주의 성경관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제1: 성경의 유일성에 대한 도전 / 성경은 정말 특별한 책인가?(신적 계시인가 인간적인 산물인가?)

주제2: 성경의 일관성에 대한 도전 / 성경은 정말 믿을만한 책인가?

주제3: 성경의 바른 해석에 대한 도전 / 신약의 저자는 구약을 인용할 때 본래 문맥적 의미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이것은 성경을 문맥과 상관없이 해석해도 된다는 것을 성경이 증거해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2. 문제에 접근하는 한 가지 방법: 성육신 유비


 1) 성육신 유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이신 것처럼, 성경도 그렇다." 기독교인이 예수님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자신이 살았던 세계의 문화적 옷을 완전히 갖추어 입고 계셨다. 

 2) 성경도 하나님의 책인 동시에 인간의 책이다. 성경도 고대근동의 문화 가운데서 생산된 책이다. 성경은 고대근동의 문화와 연결점을 가지면서, 바로 그 문화에 호소하는 책이다. 즉, 성경도 역사적 산물이다. 

 3) 초대교회 가현설을 주장(완전한 신이지만, 인간처럼 보였다.)했던 이단처럼, 성경에 대해서도 성경은 하나님의 책이지만, 단지 인간의 책처럼 보일 뿐이다.(복음주의자들의 속내(?)_저자의 지적)

 4) 성경의 인간적인 특징은 성경을 성경되게 하는 것이다.(성경의 인간적 측면을 강조하게 될 것임을 알수있는 문구이다.)


 5) 성경이 인간적인 옷을 입었다는 것에 대한 몇 가지 증거들


  (1) 성경에 사용된 언어(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 하늘의 언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언어학적 발견을 통해서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히브리어는 고대 셈어 중 하나며, 신약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이전에 알려진 그리스 문학에서 사용하던 언어와 많이 달랐는제, 고고학적 문헌들이 발견되면서 평민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라는 것이 훗날 알려지게 되었다.)


  (2)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성전, 제사장, 그리고 제사는 이스라엘 만의 것은 아니고,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3)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에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주변 국가에도 있었던 존재들이다. 


  (4) 이스라엘의 왕정 또한 주변 국들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주변 국가들보다 늦었다. 

  (5) 이스라엘의 법률체제는 주변 국가의 법률체제와 현저하게 유사하다. 이스라엘의 율법을 바벨론의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주변 법전과 비교하면 그 둘 사이에 상당한 유사성이 발견된다. 


  : 이와 같은 것들은 19세기 중반부터 꽃 피운 언어학, 역사학, 고고학적 연구에 의해서 밝혀진 것들이다. 이전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던 정보들을 얻게 된 것이다. 


6) 저자의 이해

  (1) 성경이 곳곳에서 주변 세계의 문화와 종교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언제나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성육신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 자신 때문에 생긴 필연적인 결과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씀하시고 사람들은 시대에 제한된 존재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 시대의 특성을 채용하시어 자신을 계시하신다. 


  (2) 좀 더 강경한 표현을 쓰면 이렇다. 

   "성경이 주변 국가의 문화를 반영하는 것,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그다지 특별하지 않는 것은 계시의 성격상 필연적인 결과이다. 성경의 인간적 특징은 성경을 성경이 되게 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3) 이와 같은 논리를 그릇되게 이끌어가는 결론들

       ㅁ. 자유주의자: 성경이 고대 근동 문학의 하나에 불과하다.

ㅁ. 보수주의자: 성경에 있는 인간적 특징들의 중요성을 평가 절하하면서, 성경만의 독특한 점만 찾으려 함 


* 저자가 보는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의 공통으로 잘못 생각하는 것: 어떤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지금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성경과는 조금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의 인간적인 특징만 부각시키고, 그것이 전부인양 말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성경의 인간적 특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 정리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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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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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 정리]


기독교 교육이란,

1. 종교의식이 싹트는 전통과 공동체를 효율적으로 의도하는 것

2. 무질서하고 감추어진 사건과 환경, 즉 세상의 모든 일과 모습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파악하는 눈을 길러주는 것

3. 주어진 기독교 유산을 가능한 한 일찍 항복시켜서 더 높은 경지로의 도전을 시도하는 것


이런 결론은 신학과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로부터 나온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인 교육의 조건>

1. 무엇을 가르칠 것이냐?(가르치는 내용)

2. 왜 그것을 가르쳐야 되는가?(교육의 가치)

3.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방법론)

  -> 이번에는 이와 같은 일반론적인 차원에서 교육에 대해서 논해보고자 한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1. 내용으로 당연히 기독교 신앙과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 

2.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살펴봤듯이 같은 성경을 다루면서도 다르게 가르친다.(해석에 따라)

3. 따라서 성경의 내용이 실제로 무엇이냐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서 기독교 교육은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4. 그래서 결국 기독교 교육이라는 것은 신학과 손을 잡게 된다. 따라서 기독교 교육을 시행하는 기관이 어떤 신앙관을 가지며 어떠한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예) 성경이 추구하는 것이 사회구원이 먼저냐? 아니면 개인구원이 먼저냐?


  [참고] 오늘날은 교육하면 방법론에 치중해서 마치 방법론이 하나의 가치인 것처럼 말하는데, 방법론은 내용은 아니다. 방법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용과 그것을 잘 전하고자 하는 열정에 있다고 저자는 본다.(방법론이 중요한 가치가 된 것은 세분화된 사회에서 그것으로만 업을 삼는 사람들이 나오면서 생기게 되는 주장이라는 입장)

  주일 학교에서 반사(교사)에게 중요한 자질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과 열정, 감격.. 이런 것이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초고 내용이다. 


5. 성경에 중요한 내용은 하나님 / 구원 = 하나님 나라

  기독교 교육을 단순히 착하게 살자 / 경건에 힘쓰자 정도로만 생각하면 안된다는 측면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 살기 위해서 우리는 죄에서 꺼내어 거룩케 하시어 영광의 자리로까지 인도하신다는 것은 성경의 내용이다. 그것을 어디서 하느냐? 이 세상에서 하신다는 것.


  이것을 사회구원론식으로 설명하면, WCC운동이 되는 것이다. 개인의 죄보다는 사회적인 모순(구조적 죄)에 비중이 더 커진다. 그래서 그것부터 제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재로부터의 해방, 민중신학 등등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 폭력에 대해서도 허용함.(목적이 옳으면 방법은 허용된다는 의식을 가짐)


<왜 그것을 가르쳐야 되는가?>(왜 배워야 하는가? _ 동기부여)


1. 아이들에게 왜 공부를 열심히 시키는가?(동기부여가 무엇인가?)_성공에 대한 보장

2. 기독교 교육의 동기부여는 <교리>로 한다. 교리를 통해서 우리가 왜 신앙 생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친다.(종말론을 가르쳐야 다가올 종말을 준비하는 삶을 살게 된다.)

3. 그런데 문제는 자연인에게는 기독교의 교리라는게 전혀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에)

4. 그래서 기독교 교육에는 교육답지 않은 요소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님의 간섭>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 교육과 기독교 교육이 전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이유. 

5. 기독교 교육은 중간에 <성령님의 간섭>이 중심으로 나타나서 교육이라는 개념을 무참하게 밟아 버린다.(세상에서 말하는 교육적인 방법론을 자랑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림)

6. 바울의 고백(고전 2:1-5/6-8 사람의 지혜와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 성령의 간섭이 중심에 있다는 것은 기독교 교육이 일반적인 교육학의 범주하고는 전혀 다르다고 봐야 한다. 

7. 따라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과 은혜와 긍휼에 의존하는 것이지, 테크닉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그래서 대충해도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최선을 다해 준비하지만)

8. 따라서 우리는 아무도 자랑하지도 못하지만, 못한다고도 못하는 것이다.(교사를 하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1. 신 6:4-9 신앙을 자녀들에게 전수하라?의 의미

2. 부모가 그 내용의 중요성을 알아서 말로서 그들에게 전수하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부모가 그 중요성을 아는 대로 삶을 살아감으로 자녀 교육의 샘플이나 모델이 되는 방식으로 전해 주라는 말씀인 것이다. 

3. 기독교 교육의 핵심은 가르치는 자가 하나님을 얼마나 살아하는가가 모든 문제에서 나타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기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부지런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고, 안타까운 모습으로도, 좌절의 모습으로도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기독교 교육이다. 

4. 전도란 방법론 중에 최악의 방법론이다.(가장 될 수 없는 방법론이다. 그런데 그것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라고 한다. 그런데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 입증되는 것이다.)

5. 성경은 상식을 넘어서는 믿음의 사람에 대한 강조가 아니라, 도대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길래 사람들이 상식을 넘어서 순종하시는가? 하는 것이다. 

  예)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아이를 하나님께 바쳤다.-> 도대체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길래 

6. 요한복음 13장.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모델로서)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리라. 

7. 핵심적인 기독교 교육 방법론: 주께 항복하고 순종하고 주를 만족하는 것(모델)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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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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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의 보화


1부. 초대교회


2세기의 문제


1. 교회 내부의 갈등과 거짓 교리 그리고 박해였다. 이를 위해서 당시 속사도는 교회의 하나됨을 강조했고, 감독의 권위에 순복해야 함(왜냐하면 교회가 갈라지고 분열하는 일이 벌어짐)을 강조했다. 

2. 이단 중에는 영지주의와 마르키온 주의였다. 영지주의는 구약의 천지를 창조한 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참된 신)가 서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마르키온 주의자도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유대교의 신앙이지 신약의 하나님과는 다른 하나님(본질 이라기 보다는 경향성이 다른)이라고 주장하여 구약을 인정하지 않음. 따라서 이 때는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에 대한 것이 강조되었다. 

3. 핍박과 박해가 중요한 외부적 어려움이었는데, 이 때는 과도하리만큼 순교에 집착하여 순교를 추구하였다. 


4. 호교론자들은 당시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을 변호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왜냐하면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사람들에 매우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비난 내용은 세 가지다. 

  1) 기독교인들은 무신론이다. (로마의 다신론을 반대했기 때문에)

  2) 기독교인들은 인육을 먹는다. (성찬을 살과 피를 먹는 다는 것으로 알고, 은밀하게 자기들끼리만 했기에)

  3) 기독교인들은 근친상간을 행한다.(서로 형제 자매라고 불리는 사람들끼리 결혼했기 때문에)


4세기의 문제


1. 교회 내부로부터의 문제: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아리우스 이단: 성자는 성부와 함게 영원히 함께 있는 분이 아니라, 성부에 의해 창조되었다라고 가르침)

   논쟁: 325년 6월 19일 니케아 신조를 통해 성자가 성부의 신적 성품을 공유한다고 단언함.


2. 성령과 성부, 성자와의 관계

   381년 공의회에서 바르게 정립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성령과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를 낭독함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함. 


수도원 제도


수도사들은 그 공동체 안에서 제자도를 추구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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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이어> 과부의 기도(눅 18장)에 대한 해석

 보통 붙잡고 늘어지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해석하지만, 낙망하지 말고 기도해 한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 

 기도하는데 낙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기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식/때 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 눅 16장.

이 비유는 불의한 청지기가 지혜가 있다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세대를 사는 사람은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대를 사는 사람들이 다음 세대를 준비하지 않더라...빛의 자녀들도. 이 세대의 것으로 다음 세대를 준비해 한다는 것이 비유의 핵심이다. 


밤에 찾아온 친구 비유> 눅 11장. 

눅 10장의 주기도문을 보충하는 비유다. 강청(부끄러움없는 고집)이란 의미는 요구함에 있어서 당연한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마치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친한 친구에게는 자기 것인양 달라고 요구하는 것(예의와 법도를 떠나서)이다. 서로 배려하고 구분하고 하는 것은 이미 관계가 남임을 의미한다. 강청함이란 그런 관계를 전제한 행동이다. 


------------- 정리하자.


1.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성경의 주제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가 가장 근접하다. 

 

  1) 하나님 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주권>이다. 

  2) 이것은 성경의 최고 사상이 하나님의 주권 사상이라는 말과 일치한다. (칼빈주의)

  3) 하나님의 주권과 함께 중요한 것은 그의 백성들이 그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 성경 신구약 통틀어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목표로 하고 대주제로 삼고 모든 사건과 약속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 진행에서 하나님의 주권의 유일성, 절대성, 사실성, 이런 것들이 강조되는 것과 함께 그 통치의 대상인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통치를 기쁨으로 수용하고 그들의 소원으로 삼고 양식으로 삼는 자로서 고쳐지고 훈련받고 완성되는 것이 동시에 다루어진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을 알려주고, 그 계획에 우리가 순종하도록 설득하고 납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유와 같은 방식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설득시키고 이해시켜서 설복하도록 만드신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때가 차매"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고집스럽게 거절한다. 그래서 이와 같은 우리를 향해서 성경에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 무엇인가? '나를 믿어라', '나는 네 편이다'라는 설명 밖에는 할 것이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때리거나 더불어 사랑으로 편이 되어 주는 것처럼)


설명해야 하는 데 설명이 안되니까? 사랑하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한다는 것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십자가다. 그런데 못 알아들으니까? 억지로 끌고 가고, 개같이 끌고 가는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결국 복받는 자리로까지.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이유는 그 이유를 알아서 그의 뜻에 순복하게 되어 가는 것이다 .그것을 묘사함에 있어서 다양한 장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장르를 사용해도 상관없다. 목적은 같다. 그러나 장르에 따라 사용하는 칼라가 다르다. 풍경화를 그리면 초록이 많이 들어가고, 인물화를 그리면 초록이 많이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묘사함에 있어서 진노로 나타날 수도 있고, 용서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훈련하시는 것이 상을 주시는 것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매를 드는 것으로 나타날 때도 있는 것이다. 색깔과 그림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듯이 표현과 내용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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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석해야 하는 두번째 이유: 인격자의 발언이기 때문에(지,정,의)


1. 하나님은 감정을 가지고 표현하시는 분이시다.(흑백이 아닌 칼라의 측면으로 이해해야 함)

  이 부분을 지성과 의지의 차원으로만 본다면 하나님은 변덕쟁이가 되고 만다.


2. 하나님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 분이시다.

  그래서 죄가 없는 욥이나 요셉같은 인물이 고난을 거치도록 하신다. 그것은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시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해서 '인간은 그 속이 변하지 않는 이상은 외적으로는 무슨 방법과 조건을 제시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필연성을 증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내적 변화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요 중생이다.

  따라서 신약에서는 중생을 결과시키는 작업으로 오시지 더 이상 설득하고 설명하고 잡아끄는 것으로는 오시지 않는다고 본다.


3. 영적인 계시의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것 중 하나 <비유>

  1) 비유(parable)와 알레고리(allegory)의 차이: 

   (1) 비유는 '하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가 잘 아는 일상생활에서의 한 장면을 도입하는 것.

예1) 빠른 사람을 <제트기>라고 표현함. 그러나 알레고리는 <제트기>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함(비싸다)

비유는 1차 개념만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알레고리는 모든 의미를 등장시키는 것이다.(삿 9장의 알레고리)


예2)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비유를 들어주시는 목적인 무엇인가? 이웃이 누구인가를 알려주시기 위한 것(따라서 언급된 세부적인 내용들은 무대장치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 하나에 의미를 둘것이 아니라 목적과 방향을 파악)

  : 선한 사마리아 인이 되자! 라고 결론 맺으면 올바른 해석이 못된다. 


예3) 씨 뿌리는 비유: 우리도 옥토가 됩시다(?)

 하나님의 사역이 이 땅에서 방해를 받는 다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밭에 떨어진 것이 큰 결실을 얻게 될 것.

 천국이 방해 받을 수 있는 형태의 모습으로 왔으나, 천국은 확장되어 완성될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4. 조직 신학을 통한 성경해석

  1) 역사적 흐름


조직신학이라는 것은 마치 자동차 광고를 위해서 차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전면과 측면)을 중심으로 표여주듯이 하는 신학이다. 어떤 주제를 부각하여 드러내는 신학.


사람들은 처음부터 조직신학적 접근을 했다.(주제별로, 논리적으로) 이 때는 성경구절을 주로 신학에 대한 증거구절로 사용했다. 그런데 자신이 하고 싶은 말에 대한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오면서(성경을 증거구절식으로 가지고 옴) 사람들 사이에 그 구절의 원래의 의미를 추적해 보니까 그것이 그런 뜻이 아니더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성경의 문맥을 중시하는 것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성경신학은 문맥을 중시해서 원래의 의미를 추적하는 신학이다. 


사실 성경신학은 조직신학이 교조주의적으로 성경을 얼토당토 않게 인용해서 쓴 것이 사실은 성경이 하나의 통일된 문서가 아니라 편집자에 의해서 (여러문서가)짜집기 된 것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지적한 문서설에 대한 대답으로 나온 신학이다. 성경이 여러문서를 짜집기 해서 된 것이 아니라, 문맥을 통해서 보면 이런 의도고 이런 뜻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등장한 신학이다.(단어가 갖는 뜻이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해석에서는 결국 단어가 갖는 뜻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도록 안되어있다.)


문서설과 비평적인 여러 사조 때문에 성경 신학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대두되어, 20세기에는 매우 인기있는 사조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마가복음 16:15과 같은 곳을 해석하는데는 성경신학도 한계를 가진다.(뱀을 집고 독을 마시는 것) 그래서 최근에는 성경신학적 접근이 선행된 위에 조직신학이 서야 한다는 것이 최근 성경신학의 답이다. 막 16:15은 단순히 문맥만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조직신학적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게 본다면 본문은 하나님께서 하시려고 하는 그 일을 반드시 이루시고 말 것이라는 것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예) 요 3:16 만인구원설? / 성경의 다른 본문 내 양은 나를 안다. ..(다양한 측면에서의 사진을 찍어야 한다.)


5. 성경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걸리는 두가지 올무

  1) 성경을 많은 정보들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올무


  2) 가난한 성경신학적인 방법으로 이해하는 올무

예) 북한군에게 국군 2명을 숨겨준 목사 / 거짓말 하지 않음.(문자적으로만 생각 / 거짓말_하나님 편들지 않은 것) / 풍성한 성경신학적 방법의 예_초대 교회 시대에 십자가를 밟고 온 교부(주님의 십자가 말고 강도의 십자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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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해석해야 하는 이유_ 계시의 초월적 내용이 인간의 이성에 인식가능하기 위해서는 변형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1.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의 부작용은 계시된 내용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2. 계시의 내용은 초월적이다. 그러나 계시가 드러난 방식은 초자연으로 계시될수도 있고, 자연으로 계시될 수 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은 계시가 내용적으로 가지고 있는 초월을 계시 방식의 초월성으로만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신비 자체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예) 마리아 - 로마 카톨릭은 마리아를 신비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리고(결과적으로 중보자)

  개혁주의는 마리아가 가지는 신앙과 그 자세에 초점을 맞추게 됨


  예)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 - 그 은사가 어떤 메시지를 가지느냐로 가야 하는데, 은사 자체의 신비 쪽으로만 갔다.(은사가 가지는 의미를 해석하지 않고, 그 현상의 신비만을 추구함)

: 고전 12-14장에서 은사에 대한 이야기 / 한 몸이라는 비유 / 불완전한 지금

  - 밤중에 손전등이 필요한 것은 사람의 시력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 내가 손전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빛과 더 가깝다라는 의미는 아니다. 


[정리해서 읽을 것] 113쪽 7줄부터~


3.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종들은 그 말씀을 단순히 그대로 전하는 자가 아니라, 먼저 내가 그 말씀에 의해서 항복하게 되는 것이 필요하다.(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언어의 수단이나 논리성의 수단 등을 이용하신다.) _ 단순히 제스쳐로 단어 맞추는 게임식 전달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시(초월성)가 우리의 인식 가능한 형태로 변형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의 원형을 찾기 위해서 해석해야 한다.(A를 전달하기 위해서 A'로 왔는데, 이미 이 땅에는 A'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러나 기존의 A'와 하나님이 보여주신 A'는 완전히 같은 내용을 가진 것이 아니다. 기존의 A'이 개념을 빌려서 원래의 A 개념의 일면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동일한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해석자는 계시된 A'를 시작으로 해서 하나님이 뜻하시는 바의 내용까지 들어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4. 해석을 하지 않게 되면, 초월이라는 계시된 형식자체를 내용으로 받아 초월주의로 빠지게 되거나 혹은 계시된 것(A')을 원래 인간들이 가지고 있던 개념(A')와 동일시 해 버리게 되고 만다(자연주의).

  예) 자유주의 신학은 <부활>을 <부활적인 개념>으로 바꾸어 버린다. 


5. 성경의 특징: 구약은 사건적이고 신약은 설명적이다. 

  영화를 예로 든다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막이 있는 편이 낫다. 화면만으로는 그 뜻을 명확하게 알아내기 어렵다.(법정영화)_그래서 신약이 내용을 파악하는데는 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영상이 없으면, 잃어버리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스케일이다. 구약은 그와 같은 스케일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구약은 사건과 스케일을 통해서 단어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는 작업을 한다. 

예) 죄의 값은 사망이다. - 문둥병으로 죽는다, 지진으로 죽는다.... 그 죽음의 잔혹함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십자가 사건, 우상숭배하면 질투하시는 하나님

  구약의 사건들을 통해서 내용을 담을 수 있는 단어들을 만드시는 것이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그것을 가지고 내용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6. 국어를 공부하는 방식

  1) 초등학교 때에는 문자를 가르친다. 단어를 정확하게 아는 것에 주안점을 맞춘다. 

  2) 중학교 국어교육: 그 단어들을 엮어서 문장을 만들어 문장 안에 사상을 담기 시작한다. 글자가 연결되어 사상을 담는 그릇을 만들게 된다. 따라서 우리 말을 배운다는 것은 우리의 사상을 배운다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민족사상교육>이 되는 것이다.  

  3) 행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개념과 이유와 목적을 알아야 한다)

일상: 네 마음대로 해!    집에 들어오지 마!!

성경: 내가 이 백성을 다 진멸해 버리겠다. 그러다가 다음 장에선 내 백성 치는 자는 죽는 줄 알아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따라서 성경의 내용들을 일차적으로 그 단어가 성경상에 어떤 뜻을 가지는가를 알아야 제대로 해석되는데, 그걸 알기 위해서는 많은 사건들을 알아야 된다. 왜냐하면 사건들이 그 단어를 정의하기 때문이다. 


7. 성경에 기록된 제일 중요한 계시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접하시느냐 하는 것이다. 

  1) 그런데 우리는 실존주의 영향으로 우리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진 주제로 성경을 이해하도록 했다.


8. 근본주의란?

근본주의라는 것은 성경이 초월의 내용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어떤 형태와 모습으로 계시했을 때(A'), 그 내용(A)은 꼭 그 모습(A')만을 가져야 된다고 하는 것.

  1) 정당한 근본주의: 자유주의를 대항 할 때는 근본주의가 필요하다.

- 예수의 유일성,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예수, 하나님의 아들, 부활 등.


      곤란한 근본주의(율법주의적 근본주의)


  2) 이혼 증서: 이혼증서를 써주어 내보내라고 했으니까, 그렇게해서 이혼하면 적법하다.

그러나 이혼에 합당한 이유없이 아내를 버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절차를 두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함. 더 나아가 부부는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함.


  3) 침례에 대해서.

어느게 맞느냐 하면, 물속에 집어 넣는 게 옳다. 그러면 왜 물을 뿌리냐? 그것은 의미가 같기 때문이다. 

  4) 유아세례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 아니라, 은혜를 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마땅함.

  5)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근본주의적 사고방식:

   (1) 6일 창조 / 6세대 창조(날: 욤 에 대한 해석문제) 

  6)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는 의미지, 간음한 자는 돌로쳐서 죽여도 좋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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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내용]

로마 가톨릭은 세상을 초월과 자연으로 나누고, 자연을 하나님의 통치 영역에서 배제시킴으로서 자연은 하나님과 독립된 영역이 되었다. 여기에서 이신론과 자연신론이 나오게 되었다. 


[본론]


1. 종교개혁은 당시 자연에 대한 이해 때문이었다. 

  1) 기독교적인 것이 그 내용을 초자연으로만 품는다면, 자연은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가? 

  2) 가톨릭이 신적인 영역을 초자연으로 제한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으로부터 독립하게 됨.(자연,인생)


2. 종교 개혁자들은 이것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1) 초월과 자연으로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은혜 아닌 것으로 구별해야 한다는 견해.

   (1) 로마 가톨릭은 초월만이 신적인 것을 함유할 수 있다고 봤고, 자연은 함유할 수 없다고 봤다. 

   (2) 개혁주의는 초자연도 신적인 내용을 함유할 수 있고, 자연도 신적인 내용을 함유할 수 있다고 봤다. 


  2) 특별계시와 일반계시의 이해

   (1) 우리는 특별한 방식(초월적)으로 계시한 것을 특별계시, 일반적인 방식(자연적)으로 계시한 것을 일반계시라고 이해한다. 

   (2) 그러나, 종교 개혁자들은 하나님은 자연 속에서도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시 19편)

   (3) 로마 가톨릭은 초월과 자연으로 특별계시와 일반계시를 나누었지만, 종교 개혁자들은 특별 계시가 자연 속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특별계시와 일반계시의 구분을 <은혜>로 봤다. 즉,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을 나타내는 것을 특별계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는 것을 일반계시라고 한다. 

   (4) 성경은 특별계시고, 자연은 일반계시는 아니다. 그 계시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오느냐의 문제로 규정해야 한다.

   (5) 아담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방식에는 차이가 없다. 다만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서 <은혜>가 적용될 때는 특별계시가 되고, 그렇지 않는 것은 자연계시가 되는 것이다. 


3. 세대주의의 문제

  1) 세대주의란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그 세대마다 독특한 방법으로 일하신다는 것.

  2) 구약과 신약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다르다고 생각하게 됨(구약은 율법, 신약은 은혜)

  3) 이런 의식은 신약 시대에 사는 사람들을 반율법주의자로 만들 수 있다.(은혜 만능 주의)

  4) 구약도 은혜다. 왜? 죄지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셨으니까 은혜다. 

  5)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이미 은혜요 특별계시인 것이다 


4. 사단의 전략

  1) 예전에는 <초월>이라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게 했다. 

  2) 이제는 <계시의 내용>에 대해서 공격한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신앙은 선과 의로 가는 싸움아니냐? 꼭 십자가로 가야 할 필요가 있느냐? (종교 다원주의, 혼합주의 등 죄의 문제를 약화시키는 쪽으로 간다)

  3) 그래서 기독교의 적은 도덕이요 철학입니다.(내용의 싸움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인본주의와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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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은총론


[정리]

이성은 납득과 설명을 요구하고, 계시는 복종을 요구하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권위가 누구에게 있느냐의 싸움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권위는 힘에 의해서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내용에 의해서 확인되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 다른 이야기]


그런데 그 권위를 내용으로 끌고 가지 못하고, 초월이란 형식으로 권위를 가지려고 하면 문제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즉, 신앙의 내용을 증명하려고 하는데 상대방에게 납득을 못시키니까... 초월을 입증함으로서 증명하려는 방식으로 가게 된다.(즉, 기적과 같은 방식으로 증명하고 싶어진다는 것)


1. 기독교적 권위를 초월성으로 이해한 곳이 바로 가톨릭(로만 카톨릭)이다. 

  1) 로마 가톨릭은 세계를 초월과 자연의 대립되는 두 영역으로 보았다.(이원론)

  2) 로마 가톨릭의 인간론: 

  인간은 원래 이성적이고 도덕적으로 창조되었다. (중립적인 존재) 그런 상태에서 그것이 선을 좇아갈 수도 있고, 더러운 욕망을 좇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선한 쪽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것이 <덧붙여진 은사>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타락으로 인해 이 덧붙여진 은사가 파괴되었다고 본다. 그러니까 타락 이후의 인간은 덧붙여진 은사가 없는 중성적 입장에서 태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적으로 완전하게 선을 행하면 천상의 자리에 이를 수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월적인 어떤 방법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초자연적인 신의 은혜를 입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은혜를 시여해 주는 곳은 교회고, 그 시여의 방편은 교회의 성례라는 것이다. 


   참고] 연옥: 가장 선하게 살다가 죽으면 가는 곳(초월적 은혜를 배제하고)

          펠라기안주의: 로마 가톨릭은 펠라기안니즘에 많이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중립적 상태에서 태어난다는 것이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모범을 보이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대속이 아닌 모범)


  3)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의가 발생하게 된 과정

로마 가톨릭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통치하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자연과 초자연을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그러나 초자연이 신적 영역이라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자연이란 영역에서 하나님의 역할이 축소되게 된다.(소극적) 그래서 원래의 의도와 다르게 초자연과 자연이 대립되는 개념이 되어 버림(구분->대립) 더 나아가서 자연 속에서는 초월이 없다고 본다. 자연속에서 하나님의 영역을 빼 버림. 자연은 자연의 손에 넘겨지고, 인간도 자연의 영역이 된다. 그리고 영원한 가치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초월에 귀의해야 했다.(교회에 귀속됨)


  4) 그러면서 하나님의 계기가 자연 속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놓치게 됨. 자연의 참된 가치를 놓치게 된다.(자연 세계에 대한 가치) 자연보다 초월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심지어 종교재판이라는 것까지 생기게 되었다. 종교 재판에서 항변하는 방법으로 결투를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초월적인 방식으로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함)


2. 이와 같은 기독교의 초월주의로 말미암은 부작용

  1) 난관과 고난을 <죄>의 문제로 귀결시키려는 경향, 초월주의적 성향... 회개하자, 기도하자라는 답변으로 간다.

  2) 난관을 만났을 때, 죄의 문제로 인한 것도 있지만(요나), 극복해야 하는 과정으로 겪는 경우도 많다.(욥, 요셉)

  3) 죄값을 받는다? 벌을 받아 행실을 고친다?(징계)

    예] 죄의 결과들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평생 죄를 짓지 않도록 경각심이 일어나게 한다. 


3. 초월과 자연으로 세상을 구분하면서 생기는 문제


  1) 이신론: 자연에 법칙을 심어 놓고 멀리 물러가 계신 하나님 / 

  2) 자연주의: 자연신론_ 자연은  자연의 법칙이 있어서 스스로 다스린다 

 - 성경 속에서 언급되는 기적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은 한 법칙을 만들어 놓고 방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섭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 심지어 하나님의 계시를 얻는 방식도 자연주의적 방식으로 얻게 된다고 생각(캐는 만큼 가져간다고 생각함)

  3) 초월을 얻기 위해서 자연주의적 방식을 도입한다.

    예] 방언을 받기 위해(초월의 내용) 할렐루야를 천번해라.(자연주의법 발상)

         대입에 합격하기 위해서 100일 기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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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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