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훔 2:1-7 높아진 자는 낮아지게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본문은 니느웨가 바벨론과 메데에 의해서 멸망당하는 모습을 그 자리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바벨론과 메데의 전차들이 니느웨 성 광장을 마음껏 달리는 모습이나 니느웨 백성들이 사로잡혀가면서 슬퍼하는 모습을 과거 일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이는 확실한 미래에 대한 서술 방식으로 봐야 할 것이다. 


절별 해설

2:1 <<힘을 다해 지켜라>> 하나님께서 나훔을 통해 니느웨가 당할 공격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파괴자가 오는 것을 알고 최선의 준비를 할지라도 니느웨가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조롱하는 조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만큼 침략자들이 강하며, 이것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심판임으로 견딜 수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2:2 <<여호와께서 야곱 백성을 이스라엘 백성처럼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본 구절은 야곱 백성의 회복을 약속해 주시는 말씀인데, 오히려 나훔 1:15과 연관지어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2:3 <<방패, 갑옷, 공격용 전차, 소나무 창>> 니느웨를 공격하는 바벨론과 메데의 군대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소재들이다. 또한 이들을 묘사함에 있어서 붉은색, 주홍색, 번쩍임, 흔들림의 시각적인 표현들을 사용하여 그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2:4 <<달리는 모습이 번개 같다>> 바벨론과 메데 군대들이 잘 훈련된 군인으로서 신속하게 움직이며 일사분란하게 니느웨를 공격해 들어오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파괴자들의 강인함을 말한다. 


2:5 <<그들은 쓰러질 듯 급히 성벽으로 달려가>> 니느웨의 왕이 장교들을 불러 성벽을 방어하도록 지시해 보지만, 이들의 방어는 바벨론과 메데의 공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력함을 말한다.  


2:7 <<여종들은 비둘기처럼 신음하고>> 백성들이 잡혀가고, 왕과 왕후, 왕자들과 신하들이 포로로 잡혀 감으로 그를 섬기는 여종들이 나라의 멸망 앞에 애통해 하고, 자신의 처지로 말미암아 가슴을 친다. 니느웨의 완전한 패배를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기도

주여, 하나님께서 만물과 만사를 다스리시고 운행하시는 줄 믿습니다. 악인을 잠시 징계의 막대기로 사용하시기도 하시지만, 반드시 심판하시고 멸하시는 분이신 줄을 믿습니다. 아멘.


맺는 이야기

니느웨는 난공불락의 성으로 알려져있었다. 그래서 니느웨의 침략을 받은 나라들은 그 나라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지 못했고, 니느웨의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들은 곧 그들에 의해서 멸망 당할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 니느웨 백성들은 교만했음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니느웨가 바벨론과 메데에 의해서 무너지고 말게 될 것을 나훔은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실제로 그와 같은 결과를 이루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은 결국 낮아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리다. 그리고 낮아졌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시 높아지게 될 것이다. 나훔은 높아진 자에게는 경고를 낮아진 자에게는 위로를 선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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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훔 1:9-15 대적자의 용도와 최후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본문은 니느웨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악한 계획을 세운 것을 지적하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니느웨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유다에 대한 회복을 이어서 말씀하심으로서 니느웨의 심판과 유다의 회복이 상호 연관관계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제압하시니, 유다는 절기를 지키고 하니님께 맹세한 것들을 지킬 것을 요구하신다. 


절별 해설

1:9 <<너희가 여호와를 대적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니느웨가 여호와를 직접적으로 대적하려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여호와의 백성인 유다 백성들을 위협함으로서 여호와를 대적하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니느웨를 오히려 하나님이 먼저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을 말씀하신다.


1:10 <<그들은 ... 포도주에 취한 사람 같다>> 술에 만취한 사람을 물리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듯이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들을 대적 하여 멸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듯 쉬운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말라 버린 지푸라기처럼 이내 타 버릴 존재에 불과하다.


1:12 <<유다야, 내가 너를 심판했지만 다시는 너를 심판하지 않겠다>> 유다도 하나님 앞에서 잘못이 없지 않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잘못에 대해서 니느웨 라는 막대기를 사용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니느웨라는 심판의 막대를 꺾으시기로 작정하셨다. 니느웨를 다시 유다를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하지는 않기로 한 것이다. 


1:14 <<네가 악하므로 네 무덤을 파겠다>> 하나님은 니느웨가 악함으로 그들의 자손을 끊고, 신전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겠다고 하신다. 이들은 민족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끊어 버리시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멸절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바벨론에 의해서 니느웨는 멸망한다. 


1:15 <<유다 백성아, 너희 절기를 지키고>> 나훔서가 니느웨 백성들의 멸망을 예언하는 말씀이지만, 동시에 이 예언의 말씀은 유다 백성들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심판하실테니, 이제 너희들은 절기를 지키고 하나님께 맹세한 것을 지키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현재 유다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적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수 있다. 


기도

주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주를 위해 당하는 고난 앞에서 이것은 나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임을 믿음으로 보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를 대적하는 악에 대해 두가지 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을 공격할 때, 사단은 우리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우리를 대적하는 자에 대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간주하시고, 그와 싸울 준비를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이라면 그 싸움이 하나님의 승리가 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악인이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일시적으로 그들이 성도들에게 악을 행하도록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악이 얼마나 큰가를 확인하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성도들을 정결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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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1-9 영광으로 채워질 성전에 대한 약속


찬송가:


여는 이야기


성전 공사가 다시 시작된 지 한 달여 후에 하나님이 학개에게 말씀하셨다. 이전 솔로몬의 성전의 영광을 아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현재 다시 짓고 있는 성전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인 것을 하나님도 아셨는지, 하나님은 용기를 내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흔들어서 이 전에 보화를 채우고, 이전의 솔로몬 성전보다 더 아름다운 성전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주신다.


절별 해설


2:1 <<여호와께서 일곱째 달 이십일 일에>> 학개에게 처음 말씀을 주신 것이 여섯째 날 초하루고, 성전을 재건하게 된 것이 여섯째 날 24일이었다. 그리고 한 달 정도 후인 일곱째 날 21일에 하나님의 말씀이 학개에게 임하셨다. 한 달 정도의 건축 진행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추가적으로 이 백성들에게 주셔야 할 말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3 <<하찮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한 달여간의 공사를 하면서, 일부의 사람들은 새로 재건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오히려 초라해 보였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전 솔로몬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이미 봤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욕을 가지고 성전을 재건하려는 사람들의 사기를 적지 않게 떨어뜨린 것 같다. 18년 전 성전의 기초를 쌓을 때도 그런 현상이 있었다.(3:12)


2:4,5 <<용기를 내어라. 내 영이 아직도 너희와 함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마음에 가장 큰 짐을 졌던 사람은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서 이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줄 것이니 용기를 내라고 말씀하신다. 이집트에서 나올 때 약속을 주신 하나님의 영이 변함없이 여전히 이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시며 이들에게 힘을 주고 있는 것이다.


2:7 <<그 때에 내가 이 성전을 영광으로 채울 것이다>> 귀환한 유다 백성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이 재건되지만, 그 사람들만의 노력으로 성전이 완공되는 것이 아니다. 이 성전 공사의 마지막은 하나님께서 성전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채우는 그 때에 완성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2:9 <<저 옛날 아름다웠던 성전보다 이 성전이 더 아름다울 것이다>> 백성들은 지금 짓는 성전이 이전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해서 초라함에 실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서 지금 짓고 있는 성전이 이전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해서 더 아름답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 사기가 떨어진 백성들을 격려하시며 완성될 성전의 비전을 보여주시는 말씀이다.


기도

주님, 우리는 눈에 보이는 화려함에 놀라고 초라함에 실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눈을 거룩하게 하사, 지금이 아니라 마지막을 볼 수 있는 신령한 안목을 허락하여 주소서.

 

맺는 이야기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전과 관련하여 솔로몬의 성전과 스룹바벨의 성전 그리고 신약시대에 헤롯 성전에 대해서 언급된다. 스룹바벨의 성전은 외관상 솔로몬의 성전에 비해 초라하게 지어졌지만, 신약 성경에 나오는 헤롯의 성전은 헤롯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공들여 짓는 성전이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헤롯 성전의 규모에 놀라고 심지어는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헤롯 성전을 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삼일 만에 다시 세우시겠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이미 그 성전은 46년 동안이나 지어오고 있는 굉장한 규모였는데도 말이다.(2:19,20)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이란 바로 예수님 자신을 말한다고 요한은 말한다.(2:21)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의 초라한 성전을 이전 영광보다 더 아름다운 성전으로 만들겠다는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 자신이 성전이 될 것임을 예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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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7 목적을 잊은 백성들


찬송가:


여는 이야기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 2년 여섯 째 달 초하루에 학개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당시의 유대 총독이었던 스룹바벨과 대제사장인 여호수아에게 전한 내용을 다룬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이 오랫동안 성전 공사가 멈춰지고, 자신의 일상생활에만 머물러있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시면서 성전 재건을 다시 시작하라고 말씀하시는 말씀이다.


절별 해설


1:1 <<다리오 왕 이 년>> 다리오 왕은 주전 521-486년 동안 다스렸던 <히스타스페스>를 가리킨다. 따라서 다리오 왕 이년은 주전 520년을 말하는데, 이는 고레스가 스룹바벨을 총독으로 하여 포로인 유대인들을 귀한 시킨 년대를 주전 538년으로 보았을 때 무려 18년이 지났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전 재건을 위해서 귀환한 백성들이 18년의 시간 동안 성전을 완공하지 못한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유다 총독 스룹바벨, 대제사장인 여호수아>> 이들은 학개가 전할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대상들이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은 다윗 왕조에 속한 여호야긴의 자손으로 알려져있고,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아버지 여호사닥(요사닥)은 대제사장 스라야의 아들이다. 스라야는 바벨론 포로시에 끌려갔었다.(대상 6:14,15) 이를 통해 보면 총독 스룹바벨은 다윗 왕조의 혈통을,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아론 계열의 직계손임을 알수 있다.


1:2 <<아직 여호와의 성전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스룹바벨이 고레스의 허락으로 성전을 재건하려고 했지만 주변의 방해로 인해서 성전 재건은 중단되었다.(4:23,24)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백성들은 성전을 재건한다면 목적을 가지고 돌아왔지만, 성전을 재건할 수 없는 상황이 장기화되자 성전 재건이라는 목적을 잊어버린 채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에만 급급하게 되었던 것 같다.


1:4 <<너희가 그렇게 멋진 집에서 사는 것이 옳으냐?>> 귀환한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할 수 없게 되자 성전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줄어들고, 자신의 일상적인 생활에만 집중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자신의 집과 생활을 유지하고 꾸미는 일에는 집착하면서 정작 하나님의 성전이 재건되지 못한 채로 익숙해진 백성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1:6 <<너희가 심기는 많이 심었으나 거두기는 적게 거두었다>> 자신의 필요만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유다 백성들의 최근 상황이 이러했음을 보여준 것인데,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얻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은 더 자신의 생활에 몰두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이런 어려움이 생긴 것은 하나님을 잊고 자신의 필요만을 채우려고 했던 유다 백성들의 그릇된 삶 때문임을 하나님을 지적하신다.


기도


주님, 우리에게 주신 본질적인 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잊고 우리의 일상에 허덕이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부르심을 날마다 기억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백성들의 목표는 분명했다.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재건하기 위함이었고, 그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유다의 회복을 시기하는 주변 세력들의 방해로 성전 재건은 그 기초만 세운 채 더 이상의 진척을 하지 못한다.(3) 그리고 다시 성전 재건을 위한 조건이 형성되기 전까지 그들은 생활을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18년의 시간이 흐르자 상황은 역전되었다. 성전 재건은 요원한 일로, 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이들은 자신의 생활에 더욱 집착하게 된 것이다. 우리도 지금 혹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도로서 살아가고 싸워가야 할 목표를 잊은 채, 내 일상의 편안함에만 매몰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학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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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이이 임의로 복사하여 무단으로 사용하시면 안됩니다.]


3. 2:1-9 제사장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

 

찬송가:

 

여는 이야기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의 잘못에 대해서 질책하시고 그로 인해 그들을 부끄럽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은 바른 길에서 벗어났고, 많은 사람들로 죄를 짓게 함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루시는 이유는 이들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어가게 하기 위함임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절별 해설

1:2 <<너희가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아니함으로>> 말라기서에서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섬기는 제사장임에도 이런 태도를 취한다는 것을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하나님께 가지는 마음이 어떠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3 <<너희가 절기때 바친 제물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르겠다>> 절기 때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가져온 제물에게서 나오는 똥을 제사장들의 얼굴에 바르겠다는 것은 제사장으로 하여금 큰 수치를 드러내도록 하시겠다는 표현이다. 더불어 제물의 똥을 버리듯 제사장들을 버리시겠다는 심판의 말씀이다.

 

1:4 <<그것은 내가 레위와 맺은 언약을 이어가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 제사장들을 부끄럽게 하고 심판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레위와 맺은 언약을 이어가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지금 제사장들을 심판하심으로 언약을 파기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이어가기 위해 제사장들을 돌이키시게 하기 위한 징계라는 것을 알리시는 것이다.

 

1:8 <<너희는 레위 지파와 맺은 언약을 어겼다>> 하나님이 레위와 언약을 맺은 것은 그들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었다.(5) 바른 가르침을 베풀고 많은 사람을 죄에서 떠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6) 그러나 제사장들은 이 언약을 어기고 바른 길을 떠났으며 그릇되게 가르쳐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게 하였다. 레위 지파와 맺은 언약을 어긴 것이다.

 

1:9 <<재판을 할 때에 공평하지 않게 한쪽 편만 들었다>> 제사장은 백성들을 재판하는 일도 맡아서 해야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공평하게 해야 할 재판에 오히려 한 쪽 편만 들어주어 재판의 공정성을 왜곡했던 것이다. 이런 모든 현상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제사장들의 불경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이들은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기도

하나님, 누구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편에 서야 할 제사장이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할 수 있는 자임을 발견합니다. 늘 깨어 자신을 돌아보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본문을 통해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첫째는 가장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섬기고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제사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마치 직업처럼 자신의 일을 행하려 할 때 도리어 얼마나 큰 죄를 짓게 되는지를 본문은 지적하고 있다. 자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죄 짓는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목회자 혹은 그에 준하는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들은 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둘째는 이렇게 불경건한 삶으로 하나님의 징계에 이를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그렇게 하신 것은 언약을 파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어가게 하시기 위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4) 하나님의 매는 부모가 자녀를 교정하기 위한 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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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8-14 최소가 아니라 최선을 드리는 삶


찬송가:


여는 이야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물들이 흠이 있는 것들로 받으실 수 없음을 지적하신다. 이와 같은 제사를 지속적으로 드리려 한다면 아예 성전 문을 닫아 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드리는 것에서부터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이들을 저주하신다.


절별 해설

1:8 <<그런 것을 너희 총독에게 바쳐 보아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신다. 총독에게도 동물을 바칠 때도, 좋은 것을 선별하여 드리고 그렇지 않은 것을 총독에게 주었다가 오히려 큰 봉변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의도적으로 눈멀고 다리를 저는 제물을 드리는 백성들에게 따지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1:10 <<너희 가운데 누가 성전 문을 닫아서>> 이 표현을 통해서 말라기서의 배경을 성전이 있던 시대, 즉 스룹바벨의 성전이 완성된 시대로 본다. 이스라엘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드리지만, 이스라엘이 드리는 제사는 불경한 제사로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행위에 불과했다. 하나님은 이런 제사라면 성전 문을 닫아서라도 받기 원하지 않음을 말씀하고 있다.


1:11 <<곳곳마다 사람들이 향과 깨끗한 제물을 내게 바칠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는 존중히 여김과 경외함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대우를 받으실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하나님은 모든 민족들 가운데 영광을 받으시고, 이방인들이 오히려 하나님에게 깨끗한 제물을 바침으로서 하나님이 모든 민족 위에 얼마나 크신 분임이 드러나게 된다.


1:13 <<이 일은 귀찮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본적인 마음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말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요구를 귀찮게 여겼다. 괜한 트집으로 불편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받으실 수 없음은 너무 당연하다.


1:14 <<흠 있는 것을 바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지 않고 우습게 여기어 부정한 제물을 드리는 백성들을 향해서 더 이상 묵과하시지 않으신다. 이들에게 저주를 선포하신다. 하나님을 경홀한 마음으로 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위엄을 드러내시고자 하신다.



기도

하나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인해 이방인 가운데 모독을 당하심을 봅니다. 우리의 불경건함을 용서하시고,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백성이 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한 제사 제도를 통해 죄를 극복하고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방편을 모르고 이와 같은 제도를 불편해 했고 번거롭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마음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제사도 드리고 요구하시는 종교적 의식을 행하지만,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드리지 않고, <최소한의 것>을 드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인간 통치자에게는 좋지 않은 것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오히려 하나님께는 아무것이나 드리는 불경건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께 최선의 것을 드리는가? 아니면 최소한의 것을 드리는가? 늘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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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 1:1-7 형식은 내용 만큼이나 중요하다.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질문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 질문과 답변은 감정적으로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했다고 말하나, 이들은 어떻게 사랑했냐고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너희들은 왜 나를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이스라엘은 우리가 언제 주를 멸시했습니까? 답하기 때문이다. 감정적 균열이 있는 대화가 오고가는 내용이다. 

 

절별 해설

1:1 <<이스라엘에게 하신 경고의 말씀입니다>> 말라기서가 말하고자는 성격을 분명하게 해주는 표현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지난 잘못에 대한 경고요, 앞으로 고치지 않을 경우에 임할 재앙을 <경고>하시기 위한 말씀이다. 

 

1:2 <<여호와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가지고 있는 감정이 묻어있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시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했다는 것을 현실 속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과는 멀어진 자신의 형편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감정적으로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1:3 <<에서는 미워했다>>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셨다는 것을 강조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는 것의 한 증거로 사용하시려 한다. 에서의 산악지방을 폐허로 만들것이고, 그들이 다시 일으키려고 해도 헐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에돔에 대해서 진노하신다는 말씀을 주셨음에도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마음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1:6 <<우리가 언제 주를 업신여겼습니까?>> 이 말은 하나님께서 너희의 아버지임에도, 주인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로 존경받지 못했다는 하나님의 한탄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례한 답변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은 하나님 앞에 해야 할 도리를 다했고, 드려야 할 것을 어기지 않고 드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 한탄에 오히려 억울해 한다.

 

1:7 <<너희는 내 제단에 부정한 제물을 가져옴으로 나를 업신여겼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존경하지 않았다는 물증은 그들이 하나님께 정결하지 않은 제물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정결한 제물을 원하심을 알고고 정결한 제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스라엘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대접했던 것이다. 

 

기도

주님,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힘쓰기보다 편안하고 쉬운 신앙 생활을 바라고 소망함니다. 우리 신앙의 중심이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늘 인도하여 주소서!


맺는 이야기

내용이 없는 형식주의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다. 예수님도 내용이 없는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를 질타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형식없이 내용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산이다. 물이 그릇에만 담길 수 있듯이, 내용은 반드시 그 내용을 담는 틀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내용과 형식을 균형있게 간직해야 한다. 

최근 내용만을 중심하고 형식을 너무 소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큰 문제가 된다.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은 만족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정결한 제물을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하게 흠없는 제물이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물을 드리는 자의 태도를 중요하게 보시는 것이다. 최대한 좋은 것으로 흠없는 것으로 드리고자 하는 마음 말이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자리까지 가게 된다.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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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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