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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32]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33]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의 제자파송(막 6:7-13)이후 다시 모인 제자들의 보고회가 있었던것 같다. 고생하고 온 제자들을 위해서 한 적한 곳에서 쉴수 있도록 배려했다. 왜냐하면 여전히 예수님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식사할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가려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도보로 예수님을 따라올 정도록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다. 그 모습을 본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다시 가르치시게 되었다. 

2. 날이 저물고 사람들이 모인 곳은 마을과 떨어져있어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각자 마을과 촌에 가서 식사를 해결하도록 할까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이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요구셨다. 그들에게 줄 떡을 사려면 이백 데나리온의 떡도 부족할 판이었다. 

3. 예수님은 너희에게 떡이 몇 개가 있는 지 물었고 알아보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모여 앉게 했고 그들은 100명씩, 50명씩 앉았다.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눠주게 하셨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다. 떡을 먹은 남자는 5000명이었다. 


[질문하기]

1. 예수님은 왜 한적한 곳으로 가려하셨는가? 

  제자들이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셨기 때문이다. 이제 막 전도여행을 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안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반면 사람들은 계속 예수를 찾아왔기 때문에 식사할 겨를도 없을 정도로 상황은 분주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가려하셨다. 

2. 그러나 왜 한적한 곳에서 쉬지 못하셨는가? 

  무리를 피해 배로 멀리 떠나감에도 사람들은 도보로라도 예수를 따라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보자 예수님은 '목자없는 양 같음을 느끼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다시 가르치시기 시작했다.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쉴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3. 오병이어라는 기적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1)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주님은 무리가 촌과 마을로 가서 먹도록 하지도 않으셨다.(현실적인 책임회피, 내겐 능력이 없다) 제자들에게는 충분한 능력이 없음에도 이들의 필요를 회피해서는 안되고 어떻게 해서든 네가 책임져야 한다. 오병이어 밖에 없어도, 무리는 남자만 5천명이어도 회피하지 말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 제자의 사명을 일깨우는 말씀이다. 

  2) 말도 안되는 상황이지만 무리의 필요에 대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작은 능력이지만 책임지려고 하는 태도가 주님 안에서 시도될때 하나님은 기적을 배푸시는 분이시다. 


[묵상하기]

예수님은 제자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신다. 피곤함을 아시고 쉼이 필요함을 아셨다. 그리고 실제로 배를 타고 무리를 피해 리트릿을 떠나고자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무리들의 간절한 필요가 더 크게 보였다. 결국 리트릿은 무산되고 제자들은 수천명의 무리를 돌봐야 했다. 

그들은 육체적인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오병이어 밖에 없는 물질적인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역은 진행해야했다. 그렇게 기적은 일어났다. 한계를 넘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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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7절.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8절.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9절.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10절.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11절.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12절.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절.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둘씩 파송하셨다.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다. 그리고 여행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1) 여행을 위해서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2) 여행을 위한 신만 신고 심지어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3)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4) 혹 너희를 영접하는 곳이 없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면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내가 와서 전하고자 했으나 너희가 환대하지 않았고 거절했다. 그래서 나는 여길 떠난다)

2. 제자들은 예수님이 주신 지침을 따랐으며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했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쳐주었다. 


[질문하기]

1.본문의 이야기를 통해서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1) 예수님을 통해서 권세를 위임받은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시던 사역을 하였고 제자들을 통해서도 그 일이 일어났다.

   (1) 이제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제자들에게도 위임되었고, 제자들의 입을 통해서도 제자들의 위임받은 권세를 통해서 세상 가운데 확장될 수 있다. 

   (2) 실제로 제자들은 그 권세를 위임받아 갔고, 주님과 동일한 역사가 일어났다.(귀신이 쫓겨가고, 병자들이 나았다) 


  2)많은 귀신이 쫓겨가고 병든자가 낫게 되는 구체적인 묘사보다는, 제자들이 어떤 마인드로 전도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원칙을 가르쳐주는 것이라 하겠다. 

   (1) 전도의 일을 위해서 이곳 저곳을 다닐 때 필수적이고 필요한 도구(지팡이, 신발 등)만 있으면 나아가고

   (2) 전도의 일을 하면서 환대해 주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이 제공해주는 것을 먹고 머물며 전도하라. 만약 아무도 환대하지않고 듣지 않는다면 그 지역에서 발 아래 먼지를 털고 나오라. 


[묵상하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가져오시고, 이 땅에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이제 제자들의 입을 통해서도 전파되며, 제자들의 위임받은 권세를 통해서도 이 땅에서 실현된다. 예수라는 독특한 분의 능력만이 아니다. 이제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의 첫 백성이 된 사람들을 통해서 동일한 성취가 일어난다. 예수님이 직접 가지 않았지만 그 곳까지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났고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였다. 예수님께 위임받은 열 두 제자는 예수님께 위임받은 이 땅의 교회로 봐도 될 것이다. 이제 예수님이 직접 가시는 대신 교회가 이 땅의 구석 구석 찾아가고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요청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명확하게 한 것이다. 

이 사명을 위임받은 자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생계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다. 최소한의 것만으로 전도여행을 다니며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로 공급받았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곳에서는 환대를, 어떤 곳에서는 배척을 받겠지만 전도자는 환대받는 곳에 안주해서도 안되고 배척받았다고 낙심해서도 안된다. 물흐르듯 흘러가되, 거친 돌이 있다면 돌아가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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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13절.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절.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보내사 전도도 하며

15절.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절.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1)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절.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2)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3)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절. 또 안드레(4)와 빌립(5)과 바돌로매(6)와 마태(7)와 도마(8)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9)와 및 다대오(10)와 가나나인 시몬(11)이며

19절. 또 가룟 유다(12)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질서와 능력을 가지고 오신 분으로서 어느 정도 인정받으셨을 때(하나님의 아들로서) 이제 예수님은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13절)

2. 열 둘을 세웠는데 이들을 세운 이유를 살펴보면(14-15절)

  1)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고

  2) 보내사 전도도 하며

  3)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었다.

3. 열 두 명의 제자 명단은 다음과 같았다. 

  시몬(베드로), 야고보와 요한,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다대오, 시몬(가나나인), 가룟 유다.

4. 이들 중 특징적인 제자는

  1) 원래의 이름 외에 새로운 이름을 더한 제자는 시몬(베드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보아너게, 우뢰의 아들)

  2) 예수를 판 제자: 가룟 유다


[질문하기]

1.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역 전략(?)을 찾아 볼 수 있을까? 

  - 예수님께서 복음의 시작으로 이 땅에 오셔서 공적 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으셨다. 다양한 문제 제기에 대해 답하시면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고, 사람을 위하시고, 안식일의 주인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명확하게 하셨다. 그 결과 예수님의 초기 사역은 성공적이었고 사람들은 예수님께 주목했고, 심지어 유다와 예루살렘 뿐 아니라 주변 이방 지역에까지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확장하는 일을 홀로 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 중에서 따로 사람을 세워 일하시기를 원하셨다. 열 두 명을 따로 세우셨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있게 했으며, 보내사 전도도 하게 하시고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행하게 하심으로서 예수님 홀로가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제자들을 통해) 그 일을 이루어 가시길 기대하셨다. 사역의 새로운 전환점이 시작된 것이다. 

2. 열 두 명의 제자 중 다른 이름을 부여한 세 명의 제자에 대한 언급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 시몬에게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고,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에게는 보아너게(우뢰의 아들)이란 새 이름을 주었다. 본문에서는 새 이름을 주신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베드로의 이름이 반석이란 뜻이므로 베드로가 그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셨다고 볼 수 있고,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기질과 성향을 특징적으로 드러낸 말이 아닌가 싶다.(이후 성경을 읽는 중에 그 의미가 좀 더 밝혀질 수 도 있으리라)

3. 왜 예수님이 선택한 제자 중에 예수를 팔 사람을 포함하셨으며, 성경은 굳이 가룟 유다를 언급하며 숨기지 않았을까? 

  - 예수님의 제자가 열 둘이라는 것은 구약 이스라엘의 지파가 열 둘 이라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열 두명을 제자로 세웠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열 둘의 숫 자 안에는 배신자(예수를 파는 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이상하다.

  - 어쩌면 하나님의 완전한 나라는 이 땅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불완전함을 극복하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열 두 명 중 한 명은 배반하게 될 것을 모르지 않으셨음에도 그 배반자를 선택하시고 그와 함께 동행하셨고 마지마까지 함께 하셨다는 것은 이 땅에서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한 요소가 있을 수 밖에 없고,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팔리고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 같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더 큰 그림 안에 있으며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묵상하기]

1. 완벽한 완성을 위해 치명적인 문제를 심는다. 예수님께서 열 두명의 제자를 선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다.  열 두명의 제자 중에 예수를 판 가룟 유다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주는 메시지가 이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완벽한 성취와 결과를 위해 무흠한 사람을 찾고 방해가 될 모든 변수를 제거하는 것에 힘쓴다. 그렇게 준비하고도 기대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에 불안해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함을 이루기 위해 가장 불완전한 요소를 심어 놓으신다. 그리고 그 불완전한 요소로 인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까지 극복하시고 그것을 넘어 완전에 이르신다. 이것은 오히려 우리가 불완전함으로 가득한 이 땅을 살면서도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이라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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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13절.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14절.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5절.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16절.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은 바닷가로 나가셨고 많은 무리가 나오자 그들에게 가르치셨다.(평범한 사람들의 현장 속을 다니셨고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러는 중에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있는 것을 보시고 그를 부르셨다. 어부들 중에서 제자를 부르신 예수님은 이제 세리(당시 죄인이라고 여겨진)를 제자로 부르셨고 레위는 그 부르심에 순종했다.(13-14절)

2. 예수님은 레위의 집에서 음식을 드실 대,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함께 있었다. 예수님 주변에 많은 죄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죄인들은 편하게 예수님 주변으로 모여들 수 있었던 것이다.(15절)

3. 이 모습을 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제자들에게 '예수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라고 물었고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당신이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이 땅에 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셨다.(16-17절)

-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받으라'고 하셨을 때 서기관 중에 어떤 사람이 속으로 '하나님 한 분 위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는가!'라고 생각했을 때 주님은 그 속 마음을 알아채시고 답변을 주셨다.(막 2:7,8절) 이번에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노골적으로 제자들에게 의의를 제기했고 그 문제제기에 대한 답을 예수님이 하셨다. 


[질문하기]

1. 왜 예수님은 세리인 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것을 따로 기록하고 있을까? 

- 어부들은 사회적으로 낮은 자를 대표한다면, 레위는 세리로서 죄인들을 대표한다 하겠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사회적으로 낮은자, 죄인으로 소외된 자를 먼저 하나님 나라의 제자로 부르셨다. 어쩌면 하나님의 나라는 그와 같은 자들이 중심되는 나라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예수님의 이루게 될 나라의 특징을 잘 반영하는 선택인지 모르겠다.


2. 예수님께서 세리인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면서 얻은 부수적인 효과는 무엇인가? 

-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랐다는 것이다. 레위가 예수님을 따르게 되자 레위와 같은 처지에 있었던 사람, 레위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예수와 함께 있고, 그 분을 따르게 되었다. 한 사람을 부르는 것은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씀처럼 한 가정이 돌아오고,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이 돌아오는 연결점이 된다. 한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다. 아담이 아담 혼자일 수 없고, 예수가 예수 혼자 일 수 없다. 


3. 이 사건을 통해서 마가가 명확하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1) 세리조차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고, 세리조차 하나님 나라의 중추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 

  2)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쓸데 없는 곳이된다. 그러나 이 땅에서 죄인으로 인식되고 인정된 자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곳이 된다. 예수님은 그런 죄인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온 것이다. 


[묵상하기]

1. 한 사람은 사람 한 명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리 레위가 예수의 제자가 될 때, 많은 수의 세리들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만나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레위의 뒤를 이어 예수를 따르게 된듯 하다. 바울을 만나 자주장사 루디아 한 사람을 통해 그의 집이 주님께 돌아왔고, 빌립보 감옥에서 간수장 한사람의 회심으로 그 가족 모두가 세례를 받게 된다.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되듯, 한 사람은 숫자 하나가 아니다. 그와 연결된 수 많은 가능성의 시작인 것이다. 아담 한 사람이 모든 인류의 조상이 된것처럼, 예수 한 분을 통해서 모든 구원받은 백성의 나라가 된다. 한 사람에게는 그와 같은 가능성이 있다. 

2. 건강한 사람들만 모여 산다면 그들에게 의사는 무용한 사람이고 잉여의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병든 사람에게 의사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요 인생의 구원자다. 주님은 인류의 구원자로 치료자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따라서 자신의 병을 인식하고 인정한 사람들은 주님을 찾고 만나 구원을 받지만, 자산의 병을 모른채 자신이 건강한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결코 주님을 만날 수 없다. 복음의 적용은 자신이 병든 상태, 스스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 그 병의 끝은 사명이요 멸망이요 비참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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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2:25-30>(정리하기)

(바울이 디모데를 당장 보내기는 어려운 상황임을 설명한 후에)

1.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것에 대해서 설명한다.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설명]

  (1)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의 형제다.(형제와 같은 관계)

  (2)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자다.

  (3) 빌립보 교회의 사자로서 바울의 쓸 것을 돕왔던 자다. (25절)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 교회로 가기를 요청함]

  (1)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2)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에 빌립보 교회가 알았다는 것에 근심함(26절)

   -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에바드로디도와 바울을 긍휼히 여겨 회복시켜 주심으로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해 주셨다.(27절)


  [바울도 우선 에바브로디도를 먼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것이 낫다 생각함]

  (1) 바울은 디모데보다 에바브로디도를 먼저 보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2) 빌립보 교회도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3) 바울이 가졌던 근심(에바브로디도가 병들므로 서로 걱정함)도 해결됨(28절)


2. (권면) 이런 이유들로 에바브로디도를 먼저 보내니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라. 그리고 존귀히 여기라(29절)

  1) 그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도 돌보지 않고 나 바울을 섬겼다. 

  2) 너희 빌립보 교회의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그는 빌립보 교회의 사자로 교회를 대신해서 바울을 돕고자 보냄받은 사람이기에)(30절)


(질문하며 묵상하기)

1. 디모데는 빌립보 교회에서도 인정받았던 사람이었지만, 에바브로디도는 아직 충분히 인정받은 일군은 아니었던 것인가?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디모데를 보내주기를 원한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바울에게 인정된 자일뿐 아니라 빌립보 교회에서도 인정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에게 인정된 디모데를 보내서 서로의 형편을 알고 전하는 것이 매우 유리할 것이다. 에바브로디도는 차선이었던듯 하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의 보냄을 받아 바울에게 온 사자이지만 아직 사역자로서 충분히 검증되지 못한 일꾼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첫 임무를 부여받고 왔던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을 제대로 섬기지도 못하고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빌립보 교회는 오히려 에바브로디도가 폐가 되는 것은 아닌지 근심했던 것 같고,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의 병때문에 많이 위축되고 교회가 알고 있다는 것에도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다. 

  디모데 대신 에바브로디로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면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에바드로디도를 오해하지 않도록, 또 에바브로디도가 너무 낙심하지 않도록 설명해 주고 있다. 그는 오히려 힘에 지나도록 자신을 돕자가 병이 났지만, 하나님의 은혜도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에바브로디도는 원래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그 마음과 정성만큼은 충분히 인정받을 만큼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바울은 설명하고 있다. 

 [묵상] 디모데 같은 일꾼도 있다. 모든 검증이 끝난 일꾼. 그러나 에바브로디도 같은 일꾼도 있다.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 검증해가야 하는 일꾼 말이다. 모두가 디모데 같을 수는 없다.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검증의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어떻게보면 실패로 여겨질 수 있는 에바브로디도의 과제에 대해서 바울은 낮게 평가하고 있지 않다. 결과는 취약했지만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의 태도를 봤고, 지금은 그 태도 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고 보았다. 

디모데를 만들고 싶다면,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사람들에게서 가능성을 보고 그 수준에 맞는 적절한 격려와 평가를 해주어야 한다. 


2.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에바브로디도를 기쁨으로 영접하고 존귀하게 여기라고 권면하고 있다. 

  에바브로디도는 첫 사역에서 성공적이지 못했다. 바울을 충분히 돕지 못했을 뿐더러 오히려 바울의 근심(그가 병들었으므로)이 되기도 했다. 교회는 자신을 대신해서 보낸 사역자의 실패(?)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묵상] 단순히 그 일의 결과만 봐서는 안될 것이다. 그의 태도도 함께 봐야 하고 그의 노력과 희생도 함께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런 종합적인 검토가 함께 되어야 한다. 성공한 사람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다양한 측면을 교회는 평가해 보아야 한다.(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 반대로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사역자에 대한 평가는 더욱 다각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스텝으로 성장하도록 돕든지 아니면 다른 사역의 장으로 가이드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디모데도 중요하지만 에바브로디도가 디모데가 되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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