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6.10.2)

제목: 북이스라엘03_바아사 

본문: 왕상 15: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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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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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3장] 판을 새로 짜려면 요시야 왕처럼 개혁해야 합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개혁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때가 너무 늦었기 때문입니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너무 늦지 않게 전면적인 새판을 짜야 하는 것입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유다 왕 요시야가 행한 개혁1: 우상과 산당을 제거함

  1) 요시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들을 불러 모왔다. 

  2) 왕이 여호와의 성전으로 올라가서 그들을 모아 언약책을 읽어주었다. 

  3) 왕은 여호와 앞에서 다시 여호와와의 언약을 지킬 것을 요청하자 모두 따르기로 함.

  4) 대제사장 힐기야와 부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성전과 유다,이스라엘의 우상과 산당을 없앰.

   (1)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을 성전에서 꺼내 불사름

   (2)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운 우상과 산당 숭배자들을 모두 폐하였다. 

   (3)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성전 가운데 있던 남창의 집을 헐었다. 

   (4)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들을 불러 모으고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더럽히고 험.

   (5) 왕이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몰록에게 자녀를 드리지 못하도록 함.

   (6) 유다 여러 왕들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림. 태양 수레를 불사름.

   (7)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제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세운 제단들을 요시야 왕이 다 헐고 빻아 가루를 만들어 기드론 시내에 쏟아 버림.

   (8)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산당(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세운 산당들) 훼손시킴.

   (9)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산당을 불사르고 아세라 목상을 불사름.

   (10) 주변 무덤에서 해골을 꺼내 벧엘 산당을 훼손하려고 할 때, 옛날 여로보암의 벧엘 산당을 지적하기 위해 왔던 하나님의 사람(왕상 13장)의 묘는 그대로 두었다. 

   (11) 이스라엘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 여호와를 격노케 한 산당을 요시야가 제거함.


2. 유다 왕 요시야가 행한 개혁2: 유월절을 지킴

  1) 왕은 언약의 기록된 대로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함.

  2) 요시야 왕 18번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킴. 

  3) 사사시대 이후로 이와 같이 유월절을 지킨 왕은 없었다고 기록함.


3. 유다왕 요시야의 개혁의 정리

  1) 유다 땅와 예루살렘에서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함.

  2) 이는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고 함이었다. 


4. 유다 왕 요시야의 개혁에도 유다의 멸망은 돌이킬 수 없었다. 

  1)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는 못했다. 

  2)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케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었다. 

  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리라. 내가 택한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다.


5. 요시야의 죽음

  1) 요시야 왕이 당시에 애굽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를 치기 위해 올라오는 것을 막고자 나서다가 므깃도에서 죽게 됨

  2) 신복들이 그의 시체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와 장사를 치르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기름을 붓고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았다. 


6. 유다 왕 여호아하스에 대해서

  1) 23세의 나이로 왕이 되고, 예루살렘에서 석달간 통치함.

  2)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3) 바로 느고가 그를 왕 위에서 폐위시키고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 엘리야김을 왕으로 세움.

  4)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가서 그는 거기서 죽게 된다. 

  5) 여호야 김은 애굽의 명대로 돈을 주기 위해 백성으로 은과 금을 정하여 징수하였다. 

  6) 여호야김은 25세에 왕이 되었고, 11년간 통치하였다. 

  7) 여호야김은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한 것을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서술]


유다 왕 요시야의 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요시야 왕은 본격적인 개혁을 시작하기 전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장로들을 불러 모아 성전으로 데리고 간다. 거기서 찾은 율법책을 읽어주고,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을 다시 맺을 것을 제안한다. 그러자 모든 지도자들을 그렇게 할 것을 맹세한다. 


그리고 나서 요시야는 대제사장 힐기야와 부제사장들을 불러 모아서는 유다 지역에 있는 우상들을 제거하도록 시킨다. 심지어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아세라 신상도 끄집어 내여 불태웠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전역에 있던 제사장들을 통해서 산당들을 제거하도록 시킨다. 심지어 이스라엘 지역인 벧엘 산당까지 가서 벧엘 산당을 제거하고 훼손시킨다. 요시야는 유다 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에 있던 산당(여호와를 격노케 한)을 완전히 제거한다. 


그리고 나서 요시야는 유월절을 지키도록 명령한다. 요시야는 철저하게 유월절을 지켰는데, 이와 같이 유월절을 지킨 것은 사사시대 이후 요시야와 같은 왕은 없었다고 한다. 


요시야의 개혁은 한 마디로 모든 이방 종교와 우상, 잡다한 점쟁이, 신접한 자까지 완전히 제거하는 개혁이었으며, 이와 같은 개혁은 성전에서 찾은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고 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완전한 개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므낫세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와 결정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므낫세 때에 하나님을 격노케 한 죄가 너무 컸기에 하나님은 요시야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유다를 이스라엘처럼 물리치시겠다고 하신다. 택한 성 예루살렘도, 내 이름을 두리라고 말한 성전도 버리리라고 말씀하신다. 


그 후 요시야는 애굽의 바로 느고가 앗수르를 치기 위해 가던 길을 막다가 므깃도에서 전사하고 만다. 이로 인해 신하들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우나 여호아하스는 3개월 만에 애굽에 의해 폐위되어 애굽으로 잡혀가 죽고 만다. 애굽은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운다. 여호야김은 11년간을 통치하는데 애굽의 정한 액수의 돈을 주어야 했다. 여호야김 또한 여호와 보시기에는 악을 행한 왕이었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요시야의 개혁은 집중력있게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요시야의 개혁의 특징은 이전의 왕들이 하지 못했던 것까지 했다는 것이다. 모든 우상과 잡다한 이교의식까지 제거했다. 그리고 이전의 왕들은 감히 하지 못한 전역에 있는 산당에까지 손을 댄 것이다. 요시야 개혁의 집중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요시야의 개혁은 유다와 이스라엘을 포함한 광범위한 개혁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한 상태였지만, 요시야는 이스라엘 지역에 있던 벧엘(물론 유다와 인접해 있던 지역이지만) 산당까지 정리했다. 여로보암 이후로 어떤 왕도 정리하지 못했던 벧엘 산당을 남유다의 요시야 왕이 제거한 것이다. 요시야의 개혁의 집중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악과 더러움의 제거는 일부만 해서는 안된다. 청소할 때 완전하게 청소를 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남아있는 작은 죄와 더러움에서 곰팡이가 생기고, 세균이 자라 결국 다시 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전의 왕들은 개혁을 하긴 했더어 요시야와 같이 완전하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우리 우리 자신을 바꾸고, 내 가정을 바꾸고 주변을 바꾸려면 전면적인 조정을 감행해야 한다. 약간의 보수, 약간의 수정으로는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때론 완벽한 탈바꿈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것에까지 엄격할 필요가 있고, 작은 것이라고 넘겨서는 안된다. 개혁은 그렇게 이루어져야 한다. 


나도 개혁을 단행해야 할 때가 왔다. 년 말이고 이전의 모습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취약함이 집중력.. 완벽성... 작은 것에서까지 타협하지 말아야 하는 집중력과 완벽성. 이것이 이젠 필요하다. 


주여 나로 요시야와 같이 거듭나게 하소서.


2. 요시야의 완벽한 개혁도 므낫세의 완벽한 악을 넘지 못했다.


하나님은 요시야의 개혁이 거의 완벽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다를 다시 회복하시겠다고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전에 므낫세의 죄악이 너무 크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격노하심이 너무 커서 요시야의 개혁이 대단하긴 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지는 않겠다고 말씀하신다.(26,27절) 하나님은 유다를 이스라엘 처럼 물리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택한 성 예루살렘도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리라 한 성전도 버리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개혁에도 때가 있는듯 하다. 개혁은 언제나 일어나야 하며 일어날 수 있는 것이겠으나, 그 개혁이 성공할 수 있으려면 그 때가 있는 것이라 보인다. 요시야는 개혁에는 부족함이 없었으나, 그 때의 한계를 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속한 교회,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언제나 무지와 연약의 자리에서 개혁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때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리더는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때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 다. 그 때에 따라서 역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전반기와 후반기가 달랐다. 그는 그 때를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금 어떤가? 때를 놓치지 않았는가? 아직도 때가 남아있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조금이라도 희망이 남이 있는 지금 완벽한 개혁을 시작해야한다. 작은 모양으로 흩어져 있는 산당에까지 손을 대어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작은 희망이라도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 때를 놓치면 요시야가 나와서 소용이 없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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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43면.

교회와 교단을 비롯한 모든 복음주의 기관은 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정통 신앙을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한다. 그것이 참된 복음주의자의 자세다. 이런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전통과 신조에 변함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더라도, '전통이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을 새롭게 보고 나서 그런 결론을 내린다. 복음주의자는 개혁자로서 늘 개혁해야 한다.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보수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재점검하지 않는 전통주의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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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신앙인을 <구도자>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끊임없이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파악해 가는 과정에 선 사람들. 구원의 시작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 가는 <구도자>적인 태도가 우리 신앙에 부족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이전 선조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하면서도 그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금 이 시대에 적실한 답을 찾아 가는 <구도자>적인 삶이 전통주의에 매이지 않으면서도 매일 매일을 성경으로 살피는 삶이라 여겨진다.

그렇다고 저자가 전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말한다.

"역사를 무시하거나 전통을 버리는 사람은 실수를 반복하고 시간을 낭비할 공산이 크다"고 말한다.(45면)

아주 간단하면서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믿으면서도 믿는 바를 의심하자".(45면)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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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3일간 제주답사를 청년들과 다녀오면서 유행한 말 중에 '새로고침'이란 말이 있었다. 이는 함께 간 청년 중 자매 한 명이 중간 중간 화장을 고치는데 스스로 이것을 '새로 고침'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컴퓨터에서 인터넷 화면을 다시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 클릭하는 것인데, 중간 중간 화장을 통해 자기 자신을 새로 고쳐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모습인 것이다.

느헤미야 13장은 그와 같은 것이다. 새로고침.

이전에 세팅하고 정했던 것들이 원래의 모습을 잃고 다시 옛모습(생얼)으로 돌아가는 것을 중간 중간 새로 고치는 과정을 통해서 개혁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반복적인 연약함과 죄 때문에 이스라엘의 한계와 인간의 한계를 보면서도, 어쩌면 그런 가운데에서도 계속해서 '새로고침'(계속되는 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정리1. 본문에 나온 내용 정리]

1. 섞인 무리 중에서 모압과 암몬 사람들을 분리시킨 이유

  1) 그 날(이전의 어떤 날인듯)에 모세의 책을 읽었는데 그 중에 모압과 암몬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알게 됨

  2) 이는 과거 출애굽한 백성이 가나안을 향해 오는 과정 속에서 모압과 암몬 사람들이 따듯하게 영접해주지 못할망정,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저주를 바꾸어 복이 되게 하셨다.

  3) 이스라엘 가운데서 모압과 암몬 사람들을 분리하였다.

2. 그런데 암몬 사람 도비야가 예루살렘 성전에 자리를 잡게 되다.

  1) 성전의 방을 담당했던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2) 도비야를 위해 큰 방을 만들어주었는데 원래 그곳은 소제물을 보관하고,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포도주와 기름 그리고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었다.

  3)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떠나 아닥사스다 왕 32년에 왕에게 잠시 다녀와서 보니 이와 같은 악한 일이 벌어져있었다.

  4) 느헤미야가 도비야의 세간을 다 치워버리고,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소제물과 유향으로 다시 채워넣음.

3. 다시 고치는 느헤미야의 개혁1 (레위인을 불러옴)

  1) 레위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함으로 레위인들이 각기 자기 밭으로 도망하여 성전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게 되었다.

  2) 느헤미야가 레위인들을 다시 불러오고 책임을 맡기고, 그들의 필요한 양식을 채워 넣었다.

  3)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느헤미야가 한 선한일을 기억하소서.

4. 다시 고치는 느헤미야의 개혁2 (안식일을 다시 지키도록 함)

  1)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여러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들어와 장사를 함.

  2) 느헤미야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을 책망함.

  3) 문지기를 세워 안식일에 문을 닫고 장사하는 사람이 없도록 함.

  4) 자신이 주를 위하여 한 이 일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함. 주의 큰 은혜로 나를 아끼소서!

5. 다시 고치는 느헤미야의 개혁3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지시킴)

  1) 유다사람들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다.

  2) 그 통혼한 자녀들 중에 아스돗 말을 반쯤 하면서도 유다 말은 못하는 자녀도 있었다.

  3) 느헤미야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고 그들 중 몇은 때리고 머리털을 뽑았다.

  4) 그들에게 우리의 딸을 주지 말고, 그들의 딸을 데리고 오지 말라고 맹세하라.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던 왕 솔로몬도 아내로 맞은 이방여인들로 말미암아 범죄하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어찌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큰 악을 하나님께 범하겠는가?

  5) 느헤미야는 대제사장의 아들이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된 것을 알고, 그를 쫓아내어 제사장의 직분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다시 세웠다. 그리고 그들로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했다.

  6) 느헤미야는 자신의 이와 같은 일을 기억하사 복을 달라고 소망했다.

[정리2. 본문의 재구성]

느헤미야 13장은 느헤미야 12장과 잠시 시간적인 공백이 있다. 성벽재건과 성벽 봉헌식을 마치고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과의 약속(다시 돌아오겠다는) 때문에 왕에게도 돌아갔다. 그리고 몇 일후 다시 왕에게 요청하여 말미를 정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왕을 만난 시간은 몇 일이지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떠나 있는 시간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1년 이상되지 않았을까?)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예루살렘에서는 그 짧은 시간에 다시 옛 모습을 돌아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느헤미야가 다시 돌아왔을 때 4가지의 큰 죄악이 있었다.

1. 과거 발람 사건으로 영원히 이스라엘의 총회에는 들어올 수 없는 암몬 사람인 도비야가 버젓이 제사장 엘리아십과의 관계 속에서 성전에 곳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이른 본 느헤미야는 도비야의 세간을 다 꺼내고, 다시 원래의 것으로 채워 넣었다.

2. 성전을 섬기는 레위인과 문지기, 노래하는 자들에게 주어야 할 것들을 주지 아니함으로 이들이 생계 때문에 다 성전을 떠나고 없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다시 이들을 불러오고 직분을 맡기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도록 했다.

3. 안식일을 지키도록 한 것을 어겼다. 안식일임에도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장사를 하는 것이었다. 이에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문을 닫게 하고 그 주변을 얼씬 거리는 사람마저 경계하여 있지 못하도록 했다.

4. 이방인과의 통혼 문제도 심각했다. 대제사장의 자손이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어 있을 정도로 문제는 심각했다. 느헤미야는 이들 중에 일부를 때리고 털을 뽑아 버림으로 경계를 삼았다. 그리고 맹세하여 그렇게 행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와 같은 개혁을 행할 때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이와 같은 노력과 애씀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이 특징적이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사람들은 하드웨어적 요소와 인적 자원, 컨텐츠 만으로 개선이 일어나지 않는다.

스룹바벨과 느헤미야을 통해서 성전과 성벽이 재건되고,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내적 개혁을 통해서 말씀과 성전 제사와 직분과 이들이 장기적으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이전의 모세의 때와 같이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이스라엘, 남은 자 이스라엘은 온전해 질 수 없었다.

즉, 이와 같은 것이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사람과 인류가 변화되기에는 충분하지 못한 것이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인간적인 모든 개혁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다시 옛 죄악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에스라, 느헤미야는 그와 같은 메시지도 함께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멋진 개혁과 변혁을 일구어 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에는 한계가 있다. 뭔가 더 필요하다. 이들의 외부적 환경이 아닌 내부적으로부터 오는 개혁이 일어나야만 한다는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내적 생명의 탄생, 이것을 중생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새생명의 탄생이 없이는 진정한 개혁이란 불가능한 것이 된다.

2. 반복적인 새로고침이 필요하다.

중간 중간 화장을 고쳐야 하듯이, 우리의 신앙은 지속적인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느헤미야가 출동하고, 에스라가 출동했어도 개혁은 다시 반복되어야 할 필요가 생기게 된다. 탁월한 지도자의 부재가 아니라, 그 만큼 우리의 본성이 타락해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느헤미야처럼(미리 예상하지는 못했겠지만) 개혁을 일상으로 생각하고 정기적인 자기 평가와 새로 고침의 사역을 꾸준히 감당해야 필요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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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5장입니다. 성벽 재건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던 중 외부의 장애를 만나게 됩니다. 그 외부적 장애를 담대히 극복해 가는 과정을 4장에서 다루면서 이젠 순적하게 진행되겠구나 생각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내부적 문제이이죠. 외부의 적을 함께 잘 이겨냈다가도, 내부적인 갈등을 만나게 되면 쉽게 무너지는게 우리의 모습인데 느헤미야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게 되는지 살펴봅시다. ^^

 

[1차 정리. 본문 내용을 이해하기 좋게 정리하기]

1. 백성들이 불평과 원망

  1) 백성들 중에서 흉년의 때를 만나 먹고 살기 위해서 밭과 포도원을 저당 잡혀 곡식을 구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2) 또 어떤 사람들은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치기도 했다.

  3) 이런 과정 속에서 빚을 갚지 못해 자신의 자녀들이 종으로 팔려갈 신세가 된 사람들(일부는 이미 종이 되었다.)이 자신의 상황을 한탄했다.

2. 백성들의 이런 어려움에 대한 느헤미야의 신속한 조치

  1) 느헤미야는 이 말을 듣고 노하였으나, 깊이 생각하고 행동했다.(7절)

  2)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1)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2)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를 힘을 다해 도로 찾았는데 너희들은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3)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다. 이로 인해 대적들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4) 내 형제와 종자들도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주었다니 우리는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5) 오늘이라도 너희가 그들에게 받은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3) 귀족들과 민장들이 느헤미야의 제안대로 행하겠다고 맹세함.

   (1) 느헤미야는 자신의 옷을 털며, 말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겠다고 경고했고 회중은 여호와를 찬양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대로 행하였다.

3. 총독으로서 느헤미야의 헌신적인 삶

  1) 유다 총독으로 와 있는 12년의 시간 동안 느헤미야와 그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않음

  2) 이전의 총독들은 양식과 포도주를 그 지역의 백성들에게서 빼앗았는데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3) 도리어 성벽 공사에만 전심하였고, 땅을 사는 것과 같은 투기도 하지 않았다.

  4) 도리어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을 위해 매일 소와 양과 닭을 잡아 먹였고, 열흘에 한 번은 포도주를 갖춘 잔치를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독의 녹을 받지 않았던 것은 이 백성들의 부역이 중하였기 때문이다.

: 느헤미야는 본인이 백성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섬긴 일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하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함.(19절)

 

[2차 정리. 본문 내용을 내 말로 다시 정리하기. 강조점이 살아있는 정리]

느헤미야 4장이 외부적인 대적에 대한 기록이라면 5장은 내부적인 문제에 대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양극화문제라고 볼수 있다. 가난한 자가 먹을 것과 세금을 내기 위해 밭과 포도원을 담보로 양식과 돈을 빌렸는데 갚을 길이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자녀들을 종으로 내 주어야 하는 비참한 상황이 되었고 이로 인해 백성들은 느헤미야에게 답답함을 호소한 것이다.

이정도 일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느헤미야는 실상을 파악하고 깊이 생각한 후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결단을 내린다. 그것은 자신과(자신의 형제와 종자들과) 귀족과 민장들 편에서의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자를 받지 말 것과 원금의 1/100은 탕감해 주라는 명령인 것이다. (원금을 탕감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자로 받았던 것을 돌려주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2013. 4.4 수정)

느헤미야의 다소 불합리하게 보이는 요구에 대해서 귀족과 민장들은 그대로 따르기로 결정하고 맹세하기도 한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느헤미야가 보여준 청렴하고 희생적인 삶이 모든 사람에들에게 영향력을 준 것이다.

느헤미야는 유다 총독으로 있는 12년 동안 당연히 받고, 마땅히 받을 수 있는 총독의 녹을 받지 않았다. 그로 인해 백성들의 세금 부담은 훨씬 줄었을 것이다. 게다가 느헤미야는 자신의 재산을 소비해 가면서 유다 사람들을 위해 소와 양과 닭을 매일 공급했고, 열흘에 한 번씩은 회식을 시켜주기도 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성벽 재건을 위해서 많은 수고를 감당했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이들의 수고를 격려하고, 중간에 공사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힘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차 정리. 묵상과 적용]

1. 외부의 갈등보다 내부의 갈등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느헤미야는 외부의 적을 유다 공동체가 혼신의 힘을 다해 극복해 가는 과정 중이다.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힘이 나기도 한다. 성취감도 있다. 공동체원들이 서로 희생하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 몸은 피곤하지만 오히려 결속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데 내부적인 문제가 터졌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문제요. 귀족과 농민의 문제다. 어느 정도는 참았지만, 자신의 자녀들이 빚 때문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는 상황을 접하면서 이들에게 원망과 불평이 생기게 된 것이다. 유다 민족 내부적으로 서로가 한 팀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팀이라는 인식으로  나눠지게 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균열이 가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은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일로 발전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유다 공동체는 더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2. 느헤미야의 깊은 생각과 자기 희생적 결단

느헤미야는 이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 크게 분노했지만, 흥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깊이 생각했다.(7절) 그리고 이 양자간의 갈등(양극화 갈등으로 볼 수도 있을까?) 속에서 그가 찾았던 방법은 자기 자신과 연관된 사람들, 그리고 귀족들과 민장들이 자기 희생적 결단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부자라고 해서 희생을 해야 하고, 가난하다고 해서 봐줘야 한다는 논리는 서로에게 좋지 않다고 본다. 어떤 면에서 보면 부자들은(구조적 시스템 문제로 보려고 하지 말고, 단순하게 이 문제만 본다면) 가난한 자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 도움을 주고 정당한 대가(이자가 크지 않았다면)를 받는 것은 오히려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문제는 누구의 잘못인지, 아니면 환경적으로 경제 침체라는 어려움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양자 간의 갈등을 낳았고, 결국 약한 자 쪽에서 문제 제기를 한 일이 된 것이다.

성경에서 이 문제는 경제 논리로 다루고 있지 않다. 이 문제는 성벽을 재건하는 전국가적 중요한 목표 속에서 일어난 이 내적 갈등을 어떻게 풀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의 과제 속에서 다루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느헤미야는 내적 갈등을 종식시키고 다시 본연의 목적을 위해 하나의 공동체로 형성하기 위해서는 가진자가 희생해야 한다고 보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들의 자기 희생적 결단과 포기가 있어야만 공동체는 양자간의 분열을 극복하고 다시 하나가 되어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느헤미야는 이제부터 이자 받기를 금하고, 오히려 원금의 1/100을 탕감해 주는 정도의 개혁을 감행하고 이런 결정에 이들이 따라 줌으로서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3. 느헤미야가 이런 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평소의 삶 때문이다.

좋은 취지를 가지고 개혁을 하더라도, 그것을 따라주어야 가능하다. 귀족들과 민장들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고, 이자는 안받겠지만 원금의 일부는 탕감할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 논의는 길어졌을 것이고, 그러는 사이에 국논을 더 분열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귀족들과 민장들이 맹세하고 따라오 것은 느헤미야가 보여준 그간의 삶 때문이었다.

느헤미야는 12년간 총독으로 있으면서도 총독의 녹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고생하는 백성들을 위해서 자기의 재산을 내놓고, 정기적으로 회식을 시켜주시까지 했다. 느헤미야의 이와 같은 자기 희생적 삶은 많은 지도자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또한 존경을 얻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느헤미야의 이런 삶이 뒷받침 되었기에 그의 개혁은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버스파업의 노사간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현장에 가서 머리를 숙여 도움을 요청할 때, 노조측과 사측은 서로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버스파업을 막을 수 있었다는 기사를 우리는 봤다. 그가 시장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박원순 시장의 삶이 그간 사람들에게 존경이 되었기에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리더의 영향력은 재간에서 나오지 않는다. 평소의 자기 희생적 삶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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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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