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1 새벽기도회

본문: 히 7:20-28

제목: 예수를 의지하는 자의 혜택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3. 본문읽기: 히 7:20-28

4. 본문의 내용

 

예수님은 레위 지파의 계통을 따른 제사장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있었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보다 더 온전한 제사장임을 대조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로 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은 하나님의 맹세를 통해서 된 제사장이 아니라 혈통을 따라 된 제사장인 반면 예수는 하나님의 맹세로 말미암아 된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할 수 없는 분이시니 그 맹세는 돌이키거나 뉘우침이 없는 영원한 보증이 된다. 따라서 예수는 하나님의 보증으로 된 영원한 제사장이란 뜻이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것입니다.(20-22절)

 

둘째로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 그 수효가 많다는 것이 그들이 가진 한계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홀로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인간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직분을 나눠서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 한 사람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지금도 죽지 않고 항상 살아계셔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위하여 간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3-25절)

 

예수와 같은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은 다릅니다. 그들 자신도 죄인이기 때문에 먼저 자기 죄를 위해서 제사를 드리고 그 이후에 백성의 죄를 위해 날마다 제사를 드려야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는 단번에 자기를 드려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으나 율법 이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다고 말함으로서 레위 계통의 제사가 가진 한계와 율법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오늘 본문에서 제가 함께 주목하여 보기를 원하는 말씀은 두 구절입니다. 

 

 1) 25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예수님은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레위 계통의 구약 제사장들은 자신의 제사장 직분을 통해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백성들을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을 온전히 항상 믿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반차를 따라서 그 날의 제사를 인도하는 사람이 달라지며, 또 이들이 나이를 들거나 죽을 경우에는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한 사람의 제사장이 그 역할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죽지 않으시기에 자기를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도움은 항상 유효한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까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한 분, 예수를 의지하셔서 하나님께 나아가시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이십니다. ‘그는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완전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항상 간구해 주고 계신다면 우리는 늘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에게 그 확신을 주고, 주님이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이 또한 그 확신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예수를 힘입어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27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구약의 제사장은 제사드리러 올 때마다 반복적으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의 죄 문제에 대한 해결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단번에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고 그 모든 죄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의 제사와 신약의 제사에 차이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매번 매년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물과 제사가 필요했지만 이제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단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속죄를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는 다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를 위한 제사였음을 믿는 것이고 그 제사는 단 한 번으로 영원한 효력을 가졌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다시 죄를 위해 제사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은 이후에도 죄를 짓기도 하고 그로 인한 책망을 듣기는 할지언정 그 죄로 인해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새 언약의 백성과 가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예수의 십자가 구속을 받아들인 자들이 믿는 믿음의 내용이고 확신입니다. 그 은혜 가운데 한주를 보내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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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8 새벽기도회

본문: 히 6:9-20

제목: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라.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3. 본문읽기: 히 6:9-20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은 어제에 이어서 멜기세덱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그 사이에 주고 있는 권면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서신을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정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신앙의 주변적인 주제가 아니라 더 좋은 것이고 구원에 속한 것임을 확신하고 강조합니다.(9절) 특히 성도들이 사랑으로 이전부터 다른 성도들을 섬긴 것과 지금도 계속해서 섬기고 있는 것을 하나님은 다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10절) 히브리서 기자가 권면하고 있는 것은 모든 성도들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일부의 성도들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게으르지 않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의 기업을 받는 자들을 본받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가 권면하는 첫 번째 내용입니다.(9-12절)

 

두 번째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의 확실함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원래 맹세라는 것은 자신보다 더 큰 존재의 이름을 걸고 해야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없으므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14절) 그리고 아브라함은 마침내 오래 참아 그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않을 것을 맹세로서 보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기에 우리는 그로 인해 소망을 얻고 큰 안위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혼의 닻을 하나님의 약속 앞에 내리고, 이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에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앞서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약속과 그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한 예수가 대제사장으로서 휘장 안으로 먼저 들어가는 장면을 묘사함으로서 우리에게 큰 확신을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13-20절)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 12절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라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 중 다수는 이미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전부터 사랑으로 성도를 섬겼고 지금도 섬기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있음을 확신시켜 주십니다. 다만 그 중에 일부는 그 귀한 일들을 멈추고 헛된 말에 사로잡혀 있게 된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게을러졌고, 믿음도 흐려졌으며, 오래 참지 못하고 옛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 듯합니다.(12절) 이들을 향해서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가 되라’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받았던 약속을 끝까지 붙잡고 구원에 속한 것 즉 사랑과 선행을 꾸준히 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바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성도의 섬김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적 열정이 식어지면 인간적인 노력으로 행해왔던 우리의 선행이라는 것이 밑천이 드러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만을 위한 우리의 이기적 본심이 우리로 게으르게 만들어갔고, 약속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니 선을 행할 동력도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참아왔던 우리의 욕망도 결국 그 힘이 다해지면서 사람들은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과 우리의 능력으로 선을 행할 수도 구원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살아가게 하시는 복음의 신비를 경험해야 합니다. 복음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풍요로움과 소망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구원에 속한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종교적인 형식과 산물이 아닌 신앙의 본질을 붙잡고 그 안에서 삶의 소망을 확인해 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19절.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약속은 ‘영혼의 닻’과 같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닻은 배가 흘러가지 않고 그 자리에 고정되기 위해서 바다 위에 내리는 무거운 추와 같은 것입니다. 배가 정박하기 위해서 닻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약속은 영혼의 닻을 내려서 이제는 우리의 영혼이 흔들리지 않고 안전하고 견고한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큰 풍랑과 시험이 닥쳐와도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항구에 닻을 내리고 있다면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맹세와 약속이 있기 그에 따른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피난처를 찾는 순간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평안을 얻고 큰 위로를 얻게 됩니다. (18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우리 주변에 우리를 정죄하고 우리를 판단하여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헤어지게 하려는 시험이나 환난이 있으시다면 하나님의 항구로 오셔서 정박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십자가의 복음을 믿으시고 그 아래 우리의 죄를 고백하시고 영혼의 닻을 내리셔서 안식을 누리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우리의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사 46:1) 그 은혜를 덧입으시는 하루와 주말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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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7 새벽기도회

본문: 히 5:11-6:8

제목: 초보의 자리에서 완전함으로 나아가라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453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
  3. 본문읽기: 히 5:11-6:8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은 히브리서 기자가 멜기세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려고 하다가 잠시 중단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쓰여졌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아론 계통의 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분이라는 것을 앞서 말했기 때문에 그 근거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다루려고 했다가 잠시 멈춘 것 같습니다. 멜기세덱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히 7장1절부터 시작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멜기세덱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하니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좀 어렵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기자의 입장에서 이 정도의 신앙생활을 했으면 충분히 알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영적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잔소리(?)를 합니다. 그것이 5:11-14까지의 내용입니다. 이제 영적으로 단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인데 그것은 지각을 사용하여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14절)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믿음에 있어서 초보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기초적인 지식을 다시 논하려고 하지 말고 더 심도 있는 주제로 나아가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6:1-2) 이미 하늘의 은사도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어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면 이제 앞으로 나아가면 될 것인데 다시 거쳐 온 과정을 돌이켜 다른 길로 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3-6) 비유하건데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지만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이 가까워 마지막은 불사름이 될 것이니(7-8절) 주의하고 조심하라고 경고 하는 것으로 본문은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두 가지 권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 5: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히브리서 기자는 이 서신을 읽고 있는 성도들이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운지가 오래되어 성장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여전히 신앙의 기초에 대해서조차 확신을 갖지 못하고 주변의 말에 쉽게 흔들리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할 때가 되었는데 초보의 수준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먹기 쉽고 소화하기 쉬운 음식만 먹게 된다. 먹을 때는 편하고 좋지만 쉽게 소화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좀 더 성장하면 다소 딱딱한 음식이라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고 더 다양한 양분을 오랫동안 몸 안에서 활용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신앙에 대한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소 딱딱한 주제이기도 하고 당장 필요한 주제는 아니더라도 미리 익히고 생각해 두면 그것을 기초양분으로 하여 신앙도 건강하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근육을 성장시키려면 기존의 근육이 편하게 생각하는 정도의 무게를 드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기존의 근육이 부담스러워 하는 무게를 들어야 합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공부하고 생각하고 씨름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문제들을 의식적으로 다루고 배울 때 우리의 신앙도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에 게으르지 않길 바랍니다. 신앙의 열정 뿐 아니라 신앙의 내용과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성경을 공부할 기회가 있을 때, 다소 딱딱해 보이는 주제고 어려운 본문처럼 보이더라도 배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시길 바라고 평상시에도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으시면 베뢰아 사람들처럼 정말로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상고해 보시면서 온전한 데로 나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2) 6:1-2. 그러므로 우리가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로 하여금 초보의 문제에서 뱅뱅돌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제 자리를 맴 돌거나 이미 다 확인하고 온 것을 다실 돌아가서 의심하고 부정하는 일과 같은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부정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약속을 믿고 여기까지 온 것인데 다시 옛날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이미 인정하고 믿었던 것을 부정하고 부인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런 행동은 예수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행위이며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는 행위임을 강하게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확실한 도를 듣고 지금까지 온 것이 분명하다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단의 거짓말에 흔들려서도 안 됩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고 잠시의 틈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의 다음 주제로 나아가야 합니다. 더 온전한 주제로 더 완전한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하고 더 많은 지식을 쌓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제는 주어진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우리의 행하는 바를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확신한 바를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도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듯이 우리도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함을 배우는 그것이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오늘도 순종함으로 신앙의 완전함으로 나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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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6 새벽기도회

본문: 히 4:14-5:10

제목: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해져라.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90장 예수가 거느리시니
  3. 본문읽기: 히 4:14-5:10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은 내용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4:14-16은 큰 대제사장으로서 예수에 대한 내용으로 예수를 통해 우리가 신앙적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는 내용 입니다. 5:1-3은 구약에 있었던 대제사장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5:4-10 예수는 구약의 대제사장들과 비교해서 어떤 차이가 있고 그로 인해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4:14-16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는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있고 그 예수는 큰 대제사장이니 우리가 현재 믿고 있는 믿음의 도리를 굳게 잡으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대제사장(예수)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그 분의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가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5:1-3은 일반적인 대제사장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이는 큰 대제사장인 예수와 비교하기 위함입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사람 가운데서 택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 위해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도 연약함에 휩싸여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대제사장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그런 속제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연약한 인간이기에 연약한 인간을 중재할 수 있으나, 그는 또한 자산의 연약함에 매여있는 인간이라는 한계가 있다.)

 

5:4-10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은 아무나 취할 수 없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특별한 사람만 가능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 되신 것도 스스로 취함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론의 계통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고 말씀하셨고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라고 말씀하셨다. 아론 그 이전에 있는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예수님의 특별함에 대한 강조였습니다. 그 이후(7절부터)는 예수가 우리가 같은 육체로 있으셨을 때 하나님께 통곡과 간구로 소원을 올리기도 했고 그 응답을 받기도 했다는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고 온전하게 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는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함을 받으신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이 말씀해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16절.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기자가 성도이면서도 연약하여 믿음과 신앙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우리를 향해서 주고 있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긍휼이 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늘 모든 순간 우리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한 순간 바로 그 순간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있는 줄을 믿으시고 ‘은헤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14절에 말하고 있는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는 방법’인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래서 늘 넘어지고 실패하고 때로 성공을 하더라도 당당하고 멋진 모습이 아니라 부끄럽고 초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괜찮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큰 대제사장이 계시다는 것이고 그 분도 우리와 같은 연약함에 노출되어 있었고 우리와 같은 시험을 받아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처지에 있으셨기에 충분히 우리의 처지를 이해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와 같은 처지였지만 예수님은 죄를 짓지는 않았습니다. 넘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같은 처지에 있으셨으면서도 승리하고 이긴 방법을 주님은 알고 있으시기에 그래서 우리는 또한 그 주님을 의지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이 분명하고 선명하기에 낙심하고 절망하게 되기도 하지만 우리 주님도 우리와 같으셨다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오늘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5:8절.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구원을 받게 된 것, 안식을 얻게 된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완전한 안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온전하게 되는 길은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울 때’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순종은 내가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충만해 질 때 순종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지는 것인데 그렇게 길들여지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고난’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고난이라는 것이 세상이 주는 박해와 환난인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익숙한 사람의 방식과 원리에 대해서 불편해지게 되는 것도 고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오른손잡이로 살던 사람이 앞으로 모든 생활을 왼손으로 해야만 한다면 모든 것을 다시 다 새로 배워야 하는 불편함을 겪는 것처럼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이전에 우리가 익숙했던 모든 세상의 방식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원리와 방식을 따라 살아가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고난이지만 그 고난에 순종할 때 우리는 새로운 나라에 적합한, 온전한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고난을 통해 순종함을 배우고 온전해지는 성도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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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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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5 새벽기도회

본문: 히 4:1-13

제목: 온전한 안식에 들어가려면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47장 허락하신 새 땅에
  3. 본문읽기: 히 4:1-13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의 내용이 복잡하게 보이지만 단순하게 보면 크게 두 가지 권면과 그에 따른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1절에 있는 대로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라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는 11절에 있는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두 가지 권면을 중심으로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면 좋을 듯합니다. 

 

1-10절까지의 내용은 이 권면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라는 말씀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일단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1절) - 안식에 대한 약속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안식에 이르지 못할 자가 너희 중에 있으니 그것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2절은 왜 그들이 안식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가를 설명합니다.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 즉 들은 말씀을 믿음으로까지 연결시키지 못해 그들은 안식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들이 이미 저 안식에 들어간다(3절)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3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창조 때 ‘제 칠일에 그 모든 일을 쉬셨다’(4절)라고 기록하였지만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5절)는 말씀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뒤에 말씀에 근거해서라면 안식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복음 전함을 받은 사람들 중에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기도 했던 것입니다.(6절) 그래서 다윗도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7절. 시편 95:7)고 말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이후 다른 안식을 약속하지 않았을 텐데 안식을 약속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9절) / 10절에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라는 말씀은 믿음 안에서 순교한 사람들에 대한 말씀인 듯하다. 

 

11-13절은 두 번째 권면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라는 말씀처럼 완전한 안식에 들어갈 때까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날 선 검보다도 예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다 들춰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겉으로 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서 완전한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1절.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수 있으니 교회 안에 들어와 있다고 해서 안심하지 말고 두려워하며 자신의 신앙을 잘 살펴야 한다는 말씀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에 대해서는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의 약속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제 자신의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약속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들은 내용이 믿음과 결부된다는 것은 나 자신과 세상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행동했던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보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리스크가 있고 환난도 있고 물질적인 손해도 감수해야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말씀이 믿음과 결부된 사람은 그 약속을 믿고 신앙의 도전과 모험을 감수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이 참된 신앙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늘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빌 2:12) 

 

  2) 11절.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자신이 들은 말씀을 믿음과 결부한 참된 성도라 하더라도 저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힘써야 합니다. 앞에 설명한 내용이 ‘안식’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라고 한 권면이라면, 이 말씀은 우리가 이미 얻은 ‘안식’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는 참된 안식이 남아 있는 것이고 그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 힘써야 함을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예수를 믿음과 동시에 구원을 받았으나 아직 몸의 구속을 받지는 못했기에 완전한 구속의 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안식도 완전한 안식을 얻을 때까지 힘써야 함을 말합니다.  그 힘을 쓰는 내용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미혹을 물리치고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을 할 때 우리는 완전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아주 깊은 곳까지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여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다 드러나게 합니다.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게 될 때 우리가 그 말씀 앞에 끝까지 온전하게 순종하게 될 때 완전한 안식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안식, 남은 구원이 있습니다. 그 구원의 완성을 향해 늘 하나님의 말씀을 앞에 우리 자신을 비추고 점검함으로 마침내 어제보다는 더 온전한 안식의 은혜를 이루어 가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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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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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4 새벽기도회

본문: 히 3:7-19

제목: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59장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3. 본문읽기: 히 3:7-19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애굽에서 구원은 받았으나 광야에서 불순종하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교훈 삼아, 서로 도우며 믿음의 길을 끝까지 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7-11절의 내용은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든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고 순종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교훈의 근거로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던 날에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40년의 시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증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그 세대에게 노하셨고 그들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이런 식으로 항상 마음이 미혹을 받아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고 어리석은 일을 행했습니다. 따라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 사건을 반면교사삼아 이제는 완악하게 하지 말고 순종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12-19절에서는 성도들을 향해서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오늘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시작할 때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될 것을 강조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 벌어지게 될 우려를 광야 40년의 시간을 보냈던 조상들의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그들은 마음이 완고했고 하나님을 격노케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노하셨고 결국 그 세대의 사람들은 광야에서 엎드러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맹세하여 그들을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다. 순종하지 않았던 자들의 종말은 이와 같은 것임을 지적합니다. 이와 같은 역사를 통해 볼 때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이 믿지 아니함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판단합니다. 처음 확신한 것을 끝까지 믿고 순종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7-8절.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출애굽한 히브리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순종하여 거역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불순종이 반복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완고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 세대의 사람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역사입니다. 저는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단 한 번의 죄로 진노하고 심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고 심판에 이르게 하는 것은 사람의 반복되는 죄 때문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완악함’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죄를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말씀이 아니라 어쩌다 우발적으로 범한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힐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우리 죄의 완고함에 대한 결과임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마음의 짐을 너무 크게 갖지는 마시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러나 반복적으로 순종하지 못하고 불순종할 경우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광야 1세대가 가나안 안식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로 하여금 완악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를 믿지 못하고, 구름기둥과 불기둥, 매일 주어지는 만나와 메추라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나면 언제나 먼저 염려와 걱정을 원망으로 토로하면서 믿음으로 잠잠히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그렇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우리 안에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리로 나아가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믿음의 성장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현재적으로 체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시고 믿음으로 순종하시길 축복합니다. 

 

  2) 13절.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이 구절은 우리에서 믿음의 동료가 필요함을 분명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신앙 생활하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교회로 불러주셔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신 이유는 매일 피차 권면하여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죄의 유혹으로 인해 완고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는 홀로 신앙을 잘 유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사단은 우는 사자처럼 자신의 먹이가 될 사람들을 찾아 우리 주변을 멤 돕니다. 함께 하는 신앙의 동료들이 서로가 서로를 격려해주고 권면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 중 누구도 스스로 온전히 세워지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나중으로 미룰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단은 늘 우리의 약점을 통해서 신속히 역사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이라는 일컫는 동안 매일 피차 권면하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작할 때 확신했던 것을 끝까지 견고히 붙잡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환난과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돕고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견고한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산울교회 성도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와 같은 성도가 되어주시길 간절히 바라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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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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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1 새벽기도회

본문: 히 1:1-14

제목: 예수와 구속받은 성도는 얼마나 존귀한가!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2장 만유의 주재
  3. 본문읽기: 히 1:1-14

4. 본문의 내용

 

오늘부터는 히브리서 말씀을 본문으로 묵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읽은 히 1:1-14은 하나님의 계시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과 그 예수가 천사보다 뛰어난 분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4절까지는 옛적부터 조상들에게 말씀해 오신 하나님께서 과거에는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는데 마지막 날에는 그 아들 예수를 통해서 말씀하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을 1)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2)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다고 말씀합니다. 3)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그 본체의 형상이라고 말씀합니다. 4)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5)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6)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라는 사실과 만물을 붙드시고 정결하게 하는 사역을 하시고 지금은 다시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설명함으로 예수가 앞으로 말하려고 하는 천사와는 비교도 안되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5-6절은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향해서 아들이라고도, 내가 너를 낳았다고도 말씀하신 적이 없다. 또 천사를 향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천사들로 하여금 그 아들에게 경배하라고 말씀하신다. 이어 7-9절에는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바람으로 불꽃으로, 하나의 ‘도구’로 삼으셨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들에 관해서는 천사들과는 다른 차원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10-12절은 하나님이 당신의 손으로 지으신 모든 피조 세계도 결국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고 의복처럼 갈아입게 되고 변할 것’이지만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고 여전하며 다함이 없을 것이라고 대조하여 설명합니다. 13-14절에서도 천사들은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도록 보내졌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2절.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말세에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우리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운데 오셔서 가르치시고 다양한 사역을 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이 모든 내용들이 다 하나님의 계시요 말씀이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이전, 즉 구약 시대에도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다양하게 말씀해 오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부터 자신을 드러내시고 알리셨는데 마지막 때에는 아들을 통해서 자신을 최종적으로 알리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역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의 가르침과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최종적으로 드러나고 알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서신서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해석해주고 교회에 적용해 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보여주고 있는 복음서를 꾸준히 읽고 묵상하시길 추천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소중하지만 예수님의 생생한 말씀과 사역을 주목하여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에 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최종적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고 말씀하십니다. 계시의 완성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하나님을 보실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히 12:2)

 

  2) 14절.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성경은 천사의 존재에 대해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종종 천사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기도 하고 마 18장 10절에는 우리 개별적인 담당하고 있는 천사가 따로 있다는 듯이 말씀하기도 합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히브리서가 쓰일 당시에는 천사가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천사는 전혀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을 강조합니다.(4절) 하나님은 천사를 향해서도 아들의 신분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5절) 천사가 뛰어난 존재인 것은 맞지만 천사들은 하나님의 도구와 방법일 뿐 그 이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천사는 예수에 비해 열등한 존재일 뿐 아니라 구원받을 백성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열등한 존재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입니다. 그래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는 존재”인 것입니다. 천사가 우리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는 천사가 낮은 신분이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 구원받은 백성들이 천사 이상으로 존귀한 존재임을 강조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존귀한 분입니다. 계시의 완성자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동시에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도 존귀한 존재입니다. 천사 그 이상의 존재이며 천사들의 섬김을 받는 존재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천사들에게나 또 다른 우상에게 우리의 자리를 내 주지 마시길 바라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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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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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30 새벽기도회

본문: 시편 86:1-17

제목: 주의 종에게 힘을 주소서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 가며
  3. 본문읽기: 시편 86:1-17

4. 본문의 내용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지켜 주시기를 간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절은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가난하고 궁핍한 상황임을 고백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한 상황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경건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으니 구원해 달라고, 자신의 영혼을 기쁘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1-4절까지가 자신의 절박함과 간절함에 대한 표현이었다면 5-7절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후하심에 대한 신뢰의 고백입니다. 주는 선하셔서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고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환난 날에 주께 부르짖으면 주께서 응답해 주시는 분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8-10절은 세상에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신은 없다고 찬양합니다.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11-13절에서 시인은 자신에게 하나님의 도를 가르쳐 달라고 말합니다. 그 진리에 행할 것이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며 찬송할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크고 영혼을 구원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14-17절에서 시인은 자신을 해 하려고 하는 자들을 고발하고 마지막 간구를 합니다. 교만한 자가 시인을 치고, 포악한 무리가 시인의 영혼을 찾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를 구원하는 것을 그들이 보게 하여 그들이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여호와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1절.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나 자신이 가난하고 궁핍한 처지에 있으니 주님께서 내 처지에 마음을 써주시고, 내 소리에 귀를 기울여 이 처지에서 나를 구원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보통 자신이 가난하고 궁핍하면 무엇을 요구해도 세상에 들어줄 사람이 없으며, 자신이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내가 가난한 것은 내가 게을렀기 때문이고 내가 궁핍한 것은 그에 따른 결과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향해서 무엇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릅니다. 마치 자신에게 달라고 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요구합니다. 당당하게 말합니다. 나는 가난한고 궁핍하다고. 늦게 들어온 자식이 배가 고파 죽겠으니 당장 밥을 차려 달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성도는 가난하고 궁핍할 때 즉각적으로 반응해주고 응답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이 아침에 이 시인처럼 하나님 앞에 우리의 가난함과 궁핍함을 고백하시고 내게 응답해 달라고 나를 구원해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시면서 나아갈수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2) 5절.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우리 하나님은 간절히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을 후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요청에 응답해 주실 것을 알고 있지만 쪼금씩 야금야금 주시는 분이 아니라 후히 주시고 넉넉히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인자함이 후하신 분이라고 시인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경험하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지난 주 주보에 글을 쓰면서 이번 민족화해주일 목적 헌금이 후하게 채워지도록 기대한다는 소망을 담았습니다. 그 헌금 액수에 우리 스스로가 놀라게 되는 은혜가 있기를 기대하며 개인적으로 목표한 금액이 있었습니다. 최소치가 있었고 소망하는 금액이 있었습니다. 어제 담당간사님께 여쭤보니 내가 소망했던 금액보다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역시 하나님은 그 인자함이 후하신 분이구나 고백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입을 크게 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후히 주시고 흔들어 채우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역사를 자주 경험하시는 은혜가 있길 축복합니다.  

 

  3) 16-17절.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저는 오늘 아침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주의 종에게 힘을 주소서’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직분을 맡기실 때 그 직분과 사명을 감당할만한 힘을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제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직면할 때 낙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으려고 힘을 씁니다. ‘주의 종에게 힘을 주소서’ 주의 종에게 지혜를 주소서. 주의 종에게 돕는 사람을 붙여 주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 일을 감당하게 하시는 경험들을 하게 될 때 ‘주님께서 내게 은총의 표적으로 보이셨구나’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여 주의 종에게 힘을 주소서’ ‘주여 은총의 표적을 오늘 내게 보여주소서’ 믿음으로 구하시고 그 은혜를 경험하시는 복된 하루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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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9 새벽기도회

본문: 시편 85:1-13

제목: 의와 화평이 입맞출 때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27장 주님 주실 평화
  3. 본문읽기: 시편 85:1-13

4. 본문의 내용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에게 다시 환난이 닥쳤습니다. 그 땅에 소산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그 땅의 소산을 얻을 수 없는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과거 그의 땅에 은혜를 베푸실 때 세 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그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백성들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어 주셨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진노를 거두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시인은 이 은혜가 다시 한 번 필요함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돌아오게 하시고 분노를 거두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계속 노하실 것이며 대대에 진노하실지 따지듯이 묻습니다. 다시 살려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땅에 돌아왔지만 상당히 큰 문제에 봉착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화평’을 말씀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백성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구원의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화평이 회복되는 날, 인애와 진리가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게 될 것이다.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게 된다. 땅과 하늘이 조화를 이루게 될 때,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이 서로 화평하게 될 때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게 될 것이다. 의가 주의 앞에 가며 길을 닦아 놓을 것입니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1절.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하나님의 땅에 은혜를 베푸시자 이스라엘의 포로되었던 자들이 그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반대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흩어지게 된 것은 그 땅에 은혜가 없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땅에 은혜가 사라지게 된 것은 그 땅에 거주하는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한 것이고 그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땅에 저주가 임했고 어쩌면 그 저주의 땅에서 그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서 이곳저곳으로 흩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때가되어 그 땅에 저주가 풀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되살아나자 흩어졌던 그의 백성들이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코로나로 지난 2년간 교회를 떠나 흩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를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교회가 위험해 보이고 교회에 은혜가 없어서 사람들이 흩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게 하시기 위해 잠시 교회를 떠나게 했던 것일 수 있겠구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코로나가 끝나가고, 하나님의 교회의 양식을 주시고 은혜를 주셨다면 떠났던 분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전에는 위험해 보였고 때로는 해롭게 보이기도 했으며 더 이상 은혜는 없다라고 느낄 정도로 아픔이 있었던 땅이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이 교회에 은혜를 베푸신 줄 믿습니다. 이 은혜가 떠나갔던 분들의 마음 속에 깊게 전달되어 다시 주님의 땅으로 돌아오시게 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2) 9절.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하나님의 구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이 있다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높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부유한 사람에게 있지도 않습니다. 뭔가 많은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들에게 달려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운 법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예배가 중요하고 그래서 우리에게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소망을 두는지는 매주 드리는 그 예배의 우선순위가 얼마나 되는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위급한 순간에 누구에게 전화를 할까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하겠구나 라고 생각할 때 우리가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 세상 사람들도 권력을 갖고자 하든지 아니면 권력을 가진 자를 곁에 두어 자신의 위기를 해결하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도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에 마음을 기울임으로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도움을 얻고자 힘쓰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3) 11절.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땅은 저절로 결실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하늘의 비가 없다면 땅의 노력은 공허할 뿐입니다. 땅은 진리를 내고 하늘에서 의로 반응하게 될 때 이 세상에 참된 결실과 풍요가 나타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보면서 성도인 우리는 이 땅에서 진리, 진실을 만들기 위해 힘써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합니다. 동시에 하늘에서 그 진실과 진리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반응하여 나타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둘이 만나야 이 땅에 참된 열매와 결실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와 같은 삶이 되도록 순간 순가 하늘에서 그와 같은 은혜가 반영되어 우리 삶의 주변에서 하늘의 신령한 것을 많이 경험하고 누리는 삶이 되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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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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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8 새벽기도회

본문: 시편 84:1-12

제목: 성전을 사모하는 성도의 복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490장 주여 지난밤 내 꿈에
  3. 본문읽기: 시편 84:1-12

4. 본문의 내용

 

시편 84편은 주님의 성전을 사모하나 그 성전에 나아갈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시인의 마음이 잘 담겨져 있는 시입니다. 시인은 성전에 대한 사랑의 마음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1절) 그러나 시인은 여호와의 궁전을 사모하여 쇠약해졌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치 상사병에 걸린 사람처럼 사랑하는 성전에 갈 수 없는 시인은 병이 들 정도이고 실로 쇠약해질 형편이 되고 맙니다. 그는 온 몸과 마음으로 주님의 전을 사모합니다. 제단 곁에 자유롭게 자기의 거처를 삼는 참새와 제비조차 부러울 지경이 되고 맙니다. 성전에 머물러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마음으로 시온의 대로 즉 예루살렘의 성전을 향하고 갈망하는 자들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여정이 평탄하지 않고 힘들다고 하더라도(눈물 골짜기로 지나는 것) 그곳에는 하나님의 부족하지 않은 은혜와 공급하심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샘이 있을 것이고,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줄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품었던 대로 그들은 힘을 얻어서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시인은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자, 곧 이스라엘의 왕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이 있어야 성전으로 돌아가 그 안에서 예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성전에서의 하루가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고 고백합니다. 악인의 장막에서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다고 고백합니다. 여호와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까지 않으실 것입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1절.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시인이 하나님의 성전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마치 사랑하는 커플이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사랑이 깊은지를 고백하듯이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고백의 배후에는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재 시인은 성전에 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성전이 너무 멀리 떨어져 갈 수 없을 수도 있고,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갈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간절한 것입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많은 성도들이 예배당을 떠나 각자의 자리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코로나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전환하면서 대면예배의 자리로 나오도록 하고 있고 가능하면 모든 것을 예배당에서 진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에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예배당에 가서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마음껏 찬양도 하고 싶었는데 이제 가능하게 되 감사하다는 분이 계십니다. 또 한 부류는 교회에 나오지 않고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고 신앙생활 하는게 이제 익숙해졌고, 심지어는 편해져서 굳이 예배당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구절이 우리 모두의 마음과 기도의 제목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 

 

  2) 5절.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니.. 

 

성도의 마음속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대로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시온 곧 하나님의 성전으로 향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늘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을 지향하고 있다면 그 성도는 참으로 복된 성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예배가 중심이 되고, 우리의 삶 속에 교회가 중심이 되어 살아간다면 그것은 실로 복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삶이라고 해서 고난이 없고 힘든 일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눈물 골짜기’를 지나가야 하지만 그 골짜기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심 ‘많은 샘들’을 만나고, 때를 따라 주시는 ‘이른 비’를 주시어 견디고 이기게 하시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6절) 그래서 더 힘을 얻게 되고 더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사모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믿음의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마음에 늘 시온의 대로가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예배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복이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3) 10절.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인은 하나님의 성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높은 지위보다 오히려 주님의 성전 문지기를 더 귀히 여겼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받은 직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목사든 집사든 권사와 장로든 우리는 우리의 직분을 소중히 여기는가? 우리가 우리의 직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다면 누가 이 직분을 소중히 여길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직분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은 그 직분을 자랑하라는 말씀이아니라 그 직분에 걸맞는 삶의 수준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는 우리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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