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개역개정]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해설]


1. 바울의 서신은 주로 편지를 받는 대상의 교회의 이름을 따거나 받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어져있다. 그리고 보통 바울이 교회에 편지를 보낼 적에는 본인이 전도하여 개척한 교회에 대한 AS차원에서의 서신이다. 물론 <로마서>의 경우는 예외다. 그러나 고린도전후서나 데살로니가 전후서 그리고 빌립보서와 같은 서신들은 바울의 전도 활동을 통해서 세워진 교회에 보낸 편지다.


2. 갈라디아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바울의 전도여행 내용을 읽어보면 '갈라디아'라는 언급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곳은 빌립보와 같은 식의 한 지명이 아니다. 갈라디아라는 지역의 이름인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2절에서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이라고 언급한다. 비시디아 안디옥,루스드라, 이고니온, 데베라는 도시를 포함하고 있는 지역이 갈라디아인 것이다. 

 

3. 그러나 사실 일반적으로 <갈라디아 지역>이라고 하면 위에 언급한 지명이 있는 남갈라디아 지역이 아니라, 북갈라디아 지역(위 지도 참고)이다. 남갈라디아 지역은 나중에 갈라디아 지역으로 편입된 곳이기에 <갈라디아 사람들>(갈 3:1)이라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는 북갈라디아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다. 


4. 일반적인 북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라면, 바울의 갈라디아서는 적어도 2차 전도여행 이후가 된다. 왜냐하면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전도한 지역은 남갈라디아 지역이기 때문이다. 2차 전도여행때 1차 전도여행한 지역인 남갈라디아 지역을 지나 유럽으로 넘어가기 전에 북갈라디아 지역을 다녀간거 같다.(행 16:6) 그렇게 되면 적어도 2차 전도여행 이후에 갈라디아서를 쓰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안에 중요한 이슈 중에 하나인 '할례'문제를 다루는데 이 문제와 관련하여 사도행전 15장에 공식적으로 다루고 있고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공식적인 결론을 맺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라디아 지역 교회에서 '할례' 문제로 복음의 내용에 있어서 혼선이 있다는 것은 갈라디아서가 사도행전 15장 이전, 즉 예루살렘 공의회가 있기전(주전 49년)에 기록된 것이라는 견해가 있는 것이다. 그게 맞다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이란 바울이 1차 전도 여행을 통해서 세웠던 <남갈라디아 지역> 교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 하겠다.  



   * 좀 더 세부적인 논의가 더 있긴 하지만, 이 정도로만 정리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 분은 남갈라디아 지역과 북갈라디아지역에 있는 모든 교회를 포함하여 말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기도 하신다. 

  * 갈라디아서의 저작 시점에 대한 논의가 있는데... 정작 논의를 하는 분들도 갈라디아서의 본문을 파악하는데 저작 시가 이르던 좀 늦던 큰 상관은 없다고 보는듯 하다. 



5. 이제 다른 주제로 넘어가서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설명할 때,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예수님과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표현은 본론에 가서도 자주 반복된다. 특히 자신의 사도됨을 <사람>으로부터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한 것을 분명히 한다. 그러니까 바울은 갈라디아서의 시작부터(1:1) 자신의 이야기 하려는 논지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갈라디아서를 읽다보면 논지 파악이 혼란스럽다고 한다. 나도 다르지 않은데... 읽으면서 느낀 것은 갈라디아서는 차분히 앉아서 쓴 글이라기 보다는, 약간은 감정적으로 흥분한 상태에서 쓴 글로 보인다. 그래서 중간 중간 차분한 설명을 하다가 갑자기 감정적 표현들을 한다. 논리적인 글이 아니라는 느낌 보다는 바울의 감정이 많이 뭍어나는 글이라 생각하면 보면 좋을 것 같다. 


 

6. 한 절에 축약한 복음(4절)


간략하게 정리하면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주셨다>는 것이다. 왜?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지시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그리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역사는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된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짧지만 명확한 복음의 내용이다. 


자세한 설명보다는 갈라디아서의 편지의 서문의 특징을 생각해 보자. 다른 편지 서문에 비해 상당히 짧은 편이다. 이 짧은 인사말 속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성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과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밝힌다. 갈라디아서의 글이 상당히 밀도 있고, 공격적(?)인 글이 될 것임을 예견해 볼 수도 있겠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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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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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바울의 서신 중 하나인 갈라디아서에 대해서 조금씩 소개해 볼까 한다.


먼저 밝힐 것은 이글은 전문가의 글이 아니다. 신학을 공부하기는 했지만, 원어의 뜻까지 세밀이 살피고 다양한 학자의 견해까지 소상히 밝힐만한 능력은 없는 자다. 다만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읽으면서 그 안에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를 즐겨하는 자이기에 나와 같이 성경을 사랑하고 배우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쓰는 글이다


갈라디아서로부터 시작하게 된 것은 이 본문에 가장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다. 최근에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것보다 좀 더 자신있는 본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내가 읽는 방식을 함께 나누고 또 점검도 받으면서 가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에 이 본문을 택했다.(어떤 페친분의 개인적 요청이 자극이 되었는데, 울고 싶었는데 뺨을 맞은 격이기도 하다) 


끝까지 완전히 정리한 다음에 쓰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본문을 다루어가면서 조금씩 논지가 바뀔수도 있다. 그래서 열린 글이 아닐까 싶다. 나는 교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글을 써내려가는 성경 기자의 의중을 파악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의중의 메시지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찾아보고 싶은 것이다. 끝을 알아버린 글처럼 읽기에 흥미가 없는 책은 없을 것이다. 결론도 중요하지만, 그 결론에 이르게 되는 논지도 중요하다고 본다. 보통 글은 앞에서부터 읽는 것이고 읽어가면서 처음 읽은 것이 보완되기도 하고, 구체화되기도 하는 법이다. 종종 처음의 생각이 그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마지막까지 다 읽고 하게 되기도 한다. 나는 이런 과정이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학적인 토론을 할만큼 실력은 없으니, 읽으시는 분들 중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시라. 일일이 답변드릴 능력은 안되지만, 타당한 견해는 언제든지 수용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 바로 수정할 수도 있고, 검토해서 나중에 다시 글을 쓰게 될때 사용할 수도 있겠다. 객관적인 팩트의 오류가 있다면 즉각적인 지적을 해주시면 좋겠다. 논문을 쓰듯이 쓰는 작업이 아니라 편하게 쓰는 글이므로 중간중간 오류가 있을 것이다. 지적해 주시면 감사의 마음으로<바로> 수정하도록 할 것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견해가 다르시면 그것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다. 다른 견해도 듣고 내 생각도 보완하도록 하겠다. 


나는 성경은 읽으면 해석이 되는 책이라고 믿는다. 원어가 아닌 모국어로 번역된 성경이라도 마찬가지다. 물론 번역자체가 가지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누구나 인정하는, 핵심을 흔드는 결정적인 오류는 없을 것이다. 우리 나라의 성경학자들이 그와 같은 오류를 알고도 남겨두지는 않았을테니...그렇다면 시중에 나와 있는 공인된 번역본들을 믿고 봐도 충분하다고 나는 본다. 사소한 표현의 차이로 인한 오해에 집착하고 싶지는 않다.(그것은 학자들의 몫이라 본다) 이런 생각으로 쓰여지는 글이니, 도움이 되겠다 싶은 분들은 참고하시고 이런류의 글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패스하시라.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이 글도 나 자신을 위한 글이다. 내가 과제를 하기 위해 내가 나에게 과제를 내 준 꼴이다. 그리고 그 과제를 해 가는 과정을 나는 즐기고 싶을 뿐이다. 그 과정이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이는 덤이다. 


 - 읽어 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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