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해설]


18절. 그 후 3년 만에


다메섹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나와 아라비아에서 3년의 시간을 보낸 후 바울은 게바를 만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이 때가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처음으로 예루살렘으로 간 때이며, 이 때 처음 유대 사도들을 만난 것이다. 이 때의 배경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9장 26-30에 나와 있다.


 (행 9:26-30)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18절. 그와 함께 15일을 머무는 동안...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게바와 함께 있었던 15일 동안 복음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없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현실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보인다. 복음을 전하는 대표적인 두 사도가 15일을 함께 보내면서 복음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하다. 오히려 진지하게 자신들이 이해하고 받은 복음을 서로 나누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이 게바(베드로)에게서 복음의 내용을 전수받는 차원에서의 만남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바울이 지속적으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15일 동안 함께 있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서 복음을 전수받은 것은 아니라는 행간의 의미를 읽어야 할 것이다.(그 기간 중 바울과 베드로는 이미 자신의 복음에 대한 내용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복음을 이야기하는 정도의 나눔이 있었을 것이라 본다) 그 기간 중 야고보(예수님의 동생)  정도만 보았지 다른 사도들은 만나지도 않았다. 즉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내용을 형성하는데 그 기원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있지 않음을 바울은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 


22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 교회들은 사실 바울을 제대로 본자는 거의 없다는 말이다. 즉, 처음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만 잠시 보았을 뿐 유대인들과의 공개적인 접촉은 거의 없었음을 말한다. 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이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았음을 강조하는데, 이는 갈라디아 교회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이 예루살렘 사도들의 복음에 비해 열등하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묵상]


갈 1:11절 이후로 1장의 마지막까지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논지는 자신이 전한 복음이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에게서 직접적으로 온 것임을 회심 후 자신의 활동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바울이 예루살렘의 유대 사도들과 자신과의 연관성에 섯을 긋는 것은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거나 그들과 자신을 구별하기 위함이 아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바울이 직면한 문제(오해)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예루살렘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에 비해서 열등한 복음(충분하지 못한 복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이고, 더 핵심적인 문제는 그래서 바울이 전한 복음 외에 추가적인 어떤 내용들을 가미하여 갈라디아 교회를 그릇된 길로 인도 했다는 것에 있다. 지금의 상황이 이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대등한 위치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더불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예루살렘의 게바다 야고보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 불충분하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갈라디아서를 단순히 복음과 율법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된다. 또한 바울이 처한 입장에 대해서도 이해가 있어야 바울의 표현이 좀 더 엄밀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이 게바(베드로)와 야고보의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 공회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권위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바울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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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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