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해설]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갈라디아 교회가 바울로부터 처음 복음을 듣고 세워졌을 때, 이들은 순수한 복음 안에서 잘 자라났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상한 가르침이 들어와 교회 전체에 위협을 가하게 된 것이다. 이것을 바울은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진 것이라고 표현했다.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 정도의 작은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작아보였던 문제가 큰 문제로 금새 확대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교회 전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만큼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대한 기대를 잃지 않았다.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확신하노라"(10절) 바울은 다른 복음으로 인해 풍지박산이 난 것 같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여전히 살아날 수 있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시 소생하는 힘이 있다. 바울은 이와 같은 확신 속에서 '지금 연약한'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기대를 잊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갈라디아 교회에서 <다른 복음>에 사로잡혀 다른 복음을 주장하며 가르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순수한 복음>에 <다른 것>을 가미하였기에 사람들이 듣기에는 더욱 그럴듯 하게 들리고 보였을지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불완전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격이 되었다. 복음에 <다른 것>을 가미하자, 복음의 <대적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순수한 복음>에 천차해야 하는 이유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도우려 했던 것(?)이 오히려 원수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바울도 알았다.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전하지 않았던 것 때문에 유대인들이 바울을 불편해 했다는 것을. 만약 바울이 자신이 전한 <순수한 복음>에 <할례>라는 유대인들이 만족스러워하는 '가미료'를 살짝 넣었다면 바울은 이방인에게서 뿐 아니라, 유대인들에게서도 충분한 인정을 받으면서 사역할 수 있었다. 그렇게 했다면 바울 자신이 전한 <십자가 복음>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극적 방해(장애물)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바울의 사역은 순탄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알고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할례>를 복음에 가미한다는 것은 <순수 복음>을 훼손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불충분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할례>를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자들에게 대해서 <순수 복음>에는 그와 같은 요구가 들어가서는 안됨을 재차 확인하여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런 주장을 통해 교회를 혼란하게 하고 어지럽게 하려 한다면, 스스로 베어 버리라고 바울은 말한다. 이 말이 의미는 그토록 <할례> 즉, 성기의 끝을 잘라내는 것에 집착하고 중요하게 본다면, 아예 거세를 하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들을 향한 바울의 조롱(?)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묵상]


1. 상당한 타격을 입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바울은 여전히 희망을 가졌다. 


교회는 때로 강해 보이지만, 때로는 매우 무력해 보인다. 강력한 외부적 박해 가운데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힘을 가질 만큼 교회는 강하다. 오히려 박해를 통해서 더욱 확대되는 것이 교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히려 교회는 내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쉽게 무너질 수 있었다. 이단의 가르침도 그러했고, 갈라디아 교회처럼 다른 복음으로 말미암아 <순수 복음>이 훼손되고 그로 인해 그리스도의 사역이 불충분하다고 여겨질 때 교회는 인간적인 것들이 유입되고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생명은 희박해 진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교회라면, <순수 복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여전히 있다며 그 교회는 소멸되지 않는다. 교회가 사람의 수고와 노력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것처럼, 교회가 사람의 훼손으로 무너질 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라면, <순수 복음>으로 시작된 교회라면 '소망'은 있다.


2. 그릇된 가르침에 여전히 매여 있는 자들에게 대해서는 공동체적인 결단을 촉구한다.


그릇된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은 <누룩>처럼 공동체 전체를 순식간에 무력화 시킬 수 있다. 그들이 자신이 잘못된 생각을 지적받고 바르게 되도록 요청하는 내용을 듣고도, 그 자리에서 돌이키지 않고 여전히 자신들의 <복음_다른 복음>으로 교회를 흔든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그와 같은 강력한 경고가 전해져야 할 것이다.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는 자들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공동체 밖으로 쫓아내야 한다. 참된 교회란, <거짓된 복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혼돈케 하는 자를 경고하고 내쫓는 건강한 징계(치리)가 있는 교회다. 이것을 통해 교회의 순결함과 교회의 권위를 드러내게 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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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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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말 3:1-9 유다의 불순물을 제거하리라.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오늘 본문은 두 가지 주제를 다룬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갑자기 여호와의 성전에 이르시겠다는 것이다. 유다가 바라던 언약의 선지자가 올 것인데, 그가 나타나면 연단하는 불과 같은 역할을 함으로 레위 사람들을 정결하게 하고 올바른 제사를 받으실 것을 말씀하신다. 다른 하나는 십일조와 예물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을 다룬다.


절별 해설

3:1 <<너희가 바라는 언약의 사자가 이를 것이다>> 지금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하고 있다. 자신들이 눈물로 제단을 적시는데도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제사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불경건한 태도와 잘못된 제사와 삶으로 인한 것인데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래도 계속 하나님을 원망하고 찾으니 하니님께서 이제 직접 나타나셔서 그들을 대면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3:2 <<그러나 그가 오시는 날에는 아무도 견디지 못하며>> 유다가 그렇게 찾던 하나님이 성전에 오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했던 만남은 아닌 것이다.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 안에 있는 모든 불순물들을 제거하기 위해 오시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큰 고통을 겪어야 할 것임을 말씀하신다. 


3:4 <<옛날처럼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을 받으실 것이다>> 제사 제도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전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제사가 언약의 사자가 오심으로 그 백성을 정결하게 하시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질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적절하다. 


3:6 <<나는 여호와이다. 나는 변하지 않는다>> 특별히 하나님은 야곱 자손과 맺은 언약에 있어서 변하지 않으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야곱의 자손은 조장 때부터 하나님의 규례를 따르지 않았지만, 언제든지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돌아가시겠다고 말씀하셨다.


3:8 <<너희가 내게서 훔친 것은 십일조와 예물이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정을 스스로 가볍게 여겼다. 그것은 점점 온전한 십일조와 예물에 대한 규정을 허물어 버렸다. 결국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을, 자신의 임의대로 사용하는 자리에까지 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행동이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것임에도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찾지만 하나님이 숨어계신 것 같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나의 예배, 나의 삶, 나의 태도 모두를 돌아보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여호와께서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적 관계 안에서 신실하심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사랑으로 긍휼을 베풀기도 하신다. 그러나 때로는 엄중하게 질책하시고 책망하시기도 하신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시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다운 존재로 만드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사랑과 긍휼로 대하실 때도, 질책과 책망을 가하실 때도 그 의도는 변하지 않으신 것이다. 심지어 멸망시킬 것처럼 달려드실 때도 사실은 그 안에 불순물이 너무 많이 때문에 취하시는 행동이시지, 완전한 멸망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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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2.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날에 하실 심판


  1)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다 .

  2)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다

  3) 아직도 예언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낳은 부모가 그가 예언할 때에 칼로 찌르리라.

  4) 그 날에 선지자들은 자신을 부끄러워하여,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다. 나는 농부다. 나는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되었다 할 것이다. 

  5) 사람들이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가 무엇인가 물으면,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할 것이다. 


  * 우상과 우상숭배자들과 또한 예언하는 자들에게 임할 진노와 심판이 그 날에 있을 것임을 말씀하신다. 선지자들은 자신이 선지자였다는 것을 감추고 숨긴다. 그 만큼 그들이 그 동안 했던 과거의 사역들이 부끄러운 일이었음이 드러나게 됨을 말한다. 


3.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1)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2)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손을 드리울 것이다.

  3) 이 온 땅에서 2/3는 멸망하고, 1/3은 거기 남을 것이다.

  4) 그 남은 1/3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 목자를 치고, 양들은 흩어지게 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리라. 땅의 2/3가 멸망하고 1/3이 남겠지만, 그 남은 1/3도 불 가운데 던져 연단하고 시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나오는 자들에게는 내 백성이라 인정받게 될 것이고, 그들은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라 고백하게 될 것이다. 


[묵상 한 모금]


1. 그 날은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린다. 그러면서 우상의 제거, 우상 숭배자들의 제거, 거짓 예언자들의 제거, 거짓 선지자들의 제거(그들 스스로가 부끄러워하여 숨음)가 일어난다. 땅의 2/3는 멸망하고 남은 1/3도 불로 연단된다. 이 모든 과정이 죄와 더러움을 씻는 과정이다. 정결하게 되기 위해서는 죄가 벗겨져야 하며, 고난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온갖 불순물들이 제거되어야 한다. 


2. 고통스러운 불시험 속에서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불러내신다. 그리고 원래 의도했던 관계, 나는 네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되리라 하는 관계를 형성해 내신다.


3. 우리는 죄와 더러움이 씻겨지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대신했다고 믿는다. 이것은 신학적 결과로서는 사실이나, 그 과정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통해 정결하게 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잘 인식하지 못하는듯 하다. 우리 안에 있던 우상과 우상 숭배의 마음, 거짓 예언을 바라고 또 거짓 선지자로서 살아왔던 삶에 대한 부끄러움과 수치가 있음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엄청난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정제되어 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간과한다. 이런 부분에서의 깊이있는 메시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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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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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다보면 난해 구절로 알려진 본문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냥 읽기에도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구절이다.

벧전 3: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 죽은 자들에게도 주님께서 내려 가셔서 복음을 선포하시는 것인가? 그럼 그 말씀을 듣고 이미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도 회심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인가? 와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벧전 4: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 벧전 3:19 한 절만 봐도 좀 이상한데, 벧전 4:6에서 다시한번 좀더 구체적으로 이미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니, 그렇다면 죽음 이후에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로마가톨릭에서 말하는 최후 심판을 위해서 대기하는 '연옥'이라는 곳에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그들이 교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인가? 등등...

문자적으로만 이해한다면 전통적인 교리와 충돌이 일어나는 이런 본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 그래서 난해 구절로 구분하고, 그 충돌을 피해보려는 나름대로의 변명(해석)을 학자들이 쓰는데 종종은 억지스러운 것조차 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난해 구절을 담고 있다. 그리고 내 생각에 이런 난해 구절은 단순히 문자적인 측면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문맥상에서 어떤 흐름 속에 나오 이야기인지를 파악해서 그 흐름에 맞게 역으로 그 문자적 의미를 규정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이런 난해 구절은 의외로 쉽게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서론이 길었지만 암튼 시작하자.

 

[정리1. 본문을 내용으로 정리하기]

1. 그리스도께도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1)

  1) 이는 육체의 고난은 죄를 그치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2) 고난을 통해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다.(2)

  3) 음란과 방탕한 삶은 지난 날로 족하다.

  4) 세상은 같이 극심한 방탕으로 가지 않는 너희들을 이상히 여겨 비방한다.

  5)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실대로 고하게 될 것이다.

2. 나그네처럼 사람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만물의 마지막이 되었다는 종말의식이다.(7-11)

  1)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2) 무엇보다 뜨겁게 사랑하라.

  3)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4) 각자 받은 은사대로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5) 말을 하려면 하나님이 하시는 것처럼, 봉사를 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심처럼 하라.

3. 성도들을 향해 오는 시험을 어떠한 태도로 맞이해야 하는가?

  1) 너희를 연단하기 위해서 오는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오히려 즐거워하라.

  2)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이 있다.(하나님의 영이 함께 있는 것이다)

  3) 너희가 악행이나 불필요한 일을 행해서 당하는 고난과 같은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4) 우리가 그릇행하여 심판을 받는다면 복음을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경건하지 않은 자와 죄인) 어찌하리요?

  5) 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 받는 자들은 선을 행하는 중에 그 영혼을 미쁘신 하나님께 의탁한다.

[정리2. 본문을 다시 정리하기.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1. 우리는 육체적인 고난을 받을 자들인데, 이 고난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그 고난이 주는 유익이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고난은 죄를 그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남은 생애를 정결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얻을 수 있다. 고난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악을 행한 자들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고하게 될 것이다.

2. 나그네처럼 살지만, 성도들이 행하면서 살아야 할 원칙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랑하고 원망하지 않으며 선한 청지기로 자기의 은사대로 봉사하는 살아야 한다.(하나님이 하시는 것처럼)

3. 성도들이 경험하게 되는 고난을 이상한 것처럼 여기지 말고 오히려 그것으로 말미암아 얻게 될 복으로 인해 즐거워하라.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 받는 자들은 선을 행하는 중에 그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한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나그네인 성도가 살면서 당하는 고난에 대해서(억울한 고난까지 포함해서)

   고난 자체는 힘든 것이지만, 이 땅을 나그네로 살아가는 자에게 고난은 불가피한 것이다.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고난이 주고 있는 유익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죄로 부터 멀어지고 정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평온한 중에 죄를 짓는다. 악이 들어오고 유혹이 커진다. 오히려 적절한 고난과 환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하고 불필요한 일과 생각으로부터 지켜준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죄를 가진다. 따라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질때 생길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은 죄다. 고난은 우리의 몸과 생각을 어느 정도는 구속함으로 오히려 죄를 짓지 않게 되는 유익을 누리게 된다.

  고난과 정결함의 문제는 중요하다. 하나님은 그래서 고난을 통해 그의 백성의 생각을 깊이하게 하시면도 동시에 죄로부터 멀어지게 하시기도 하신다. 잘 생각해 보라. 내가 언제 죄를 많이 짓게 되는지... 한가할 때인지, 정신없을 때인지...

 

2. 우리가 나그네이지만, 우리가 이 땅에서이 삶의 방식은 매우 높아야 한다.

나그네와 종들은 소극적인 삶, 가능하면 주류 중심의 가치와 법으로 형성된 사회시스템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려고 하기 쉽다. 최소한의 시민의식 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는 나그네다. 따라서 이 땅의 규칙과 룰에 적극적일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 최소한의 것만 따르면 그만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 땅의 나그네인 우리를 향해서 도덕적으로 순결하게,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살라고 권면한다. 자기가 해야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권면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처럼 넉넉하게 그리하라고 말한다.

종교인들의 세금 문제가 최근에 대두되었던 것이 생각난다. 종교인들은 면세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의 권리와 특권으로 생각해서 고집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이 땅의 시민들이 하는 것과 같이 종교인들도 법이 정한 규정 안에서 세금을 내는 것이 베드로의 가르침을 고려해 볼 때 옳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3. 난해 구절(4:6)에 대한 평이한 해설.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여기서 말하는 이미 죽은 자들에게도 회심을 할 기회를 다시 주어진다는 의미처럼 보여지지만 그렇지 않다. 여기서 죽은 자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핍박과 박해를 받고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는 억울한 죽음을 당했지만, 결국은 죽음 이후 복된 소식이 전파되는데, 그 복된 소식이란 예수를 믿고 회심하여 구원을 얻으라는 말이 아니라, 고난과 핍박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던 그들이 결국은 옳다 인정을 받고 승리하게 되었다는 측면에서의 복음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육체적인 삶에 있어서는 심판을 받은 것처럼 보이나, 영으로는 하나님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려는 의도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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