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시편 23편] 시편 기자는 지금 정적인 평안(수동적인 평안)을 얻은 것이 아니다. 그는 사망의 골짜기에서, 해를 받아 죽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싸우면서 얻은 평안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전투하여 얻어낸 평안이다. 그래서 왠만한 시련에는 내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수동적으로 얻은 평안은 늘 그 평안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또 다른 두려움에 몸을 움추린다. 추가적인 작은 바람에도 무너져 내릴것을 두려워해서 말이다. 우리가 말하는 평안은 어떤 평안인가? 두려운 평안은 아닌가!


[정리1]


1. 선한 목자되시는 여호와로 인한 감사(1-3절)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절.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절.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 여호와께서 목자가 되시어 양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책임져 주신다고 시편 기자는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단순히 육신의 회복만이 아니라, 영혼을 회복시켰다. 그리고 결국 시편 기자를 의의 길로 지속하여 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었다. 


2. 위기와 두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4-6절)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절.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 시편 기자는 사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고 있는 상황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해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깊은 두려움 속에 사로잡혀있는 것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가 그 현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한 것이고, 그 분의 목자되심을 다시 한번 확신했던 것이다. 그리고 앞 날에 대한 확신과 승리를 예견할 수 있게 되어 평안을 얻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 시편 기자가 얻은 평안은 수동적인 평안이 아니다. 좀 더 힘든일이 오면 무너져 내리는, 간신히 현재까지만 견디어 낼 수 있는 정적 평안이 아니다. 두려움과 싸워 이긴 평안이며, 과거의 역사로 부터 건져올려 미래로 방향지어진 그런 평안이다. 좀 더 강한 시련이 있다고 해서 금새 무너져 내릴 위태로운 평안이 아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시편 기자를 도왔다고 고백하는 겸손한 믿음의 고백이다. 



[정리2]

 

1. 시편 23편은 참으로 목가적인 시이지만, 그 글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쓴 시다. 


2. 시편 기자가 얻은 평안은 수동적으로 받은 정적 평안이 아니다. 그는 두려움과 싸우고, 불신과 싸우고, 죽음과 싸워 얻은 역사적이고 종말론적인 전투를 거쳐 얻어낸 평안으로 능동적인 평안이다. 


3. 그래서 시편 기자가 얻은 그 평안은 쉽게 빼앗길 수 없는 평안이다. 지금보다 약간의 바람, 고통이 더하며 무너질까봐 두려워하는 위태로운 평안이 아니다. 


4. 버림받아 고통스러워 하는 시편기자의 고백(22장)에 이어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빼앗길 수 없는 평안을 얻고 여호와 안에서 큰 위로와 확신을 얻는 시편 기자의 고백(23장)은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틍스럽게 버림받은 몸으로 돌아가셨지만, 결국 그 안에 큰 평안으로 인도받았음을 암시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여호와 하나님의 그의 아들을 그렇게 인도하셨고, 결국 예수님은 부활과 승천으로 원수들 앞에서 기름부음을 받고 상을 차림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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