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plash-logoLeon L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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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21절.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22절.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23절.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24절.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25절.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26절.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27절.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28절.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29절.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성경내용 정리]

1.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다. 그 기회라는 것은 헤로디아에게 좋은 날임을 알 수 있다. 헤롯이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 귀신들을 불러 잔치를 열었다.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서 춤을 추었고 그것은 헤롯과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었다. 기분이 좋아진 헤롯은 헤로디아의 딸에게 원하는 것을 구하라고 이야기했고, 맹세하기를 구하는 것을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했다. 

2. 헤로디아의 딸은 어머니를 찾아가 무엇을 구할까를 묻고, 어머니는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도록 지시한다. 헤로디아의 딸은 왕에게 급히가서 세례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한다. 왕은 당황하고 근심했으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함께 있는 사람들로 인해 거절하지 못하고 요한의 목을 베어 그 소녀에게 주고 만다. 그 소녀는 헤로디아에게 요한의 목을 가져다 준다. 

3. 요한의 제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지냈다. 


[질문하기]

1. 헤롯은 왜 요한을 죽일 수 밖에 없었는가? 

  1) 헤로디아의 딸에게, 공개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약속했다. 

  2) 헤로디아의 딸이 요한의 목숨을 달라고 할줄은 생각도 못했다. 

  3) 그럼에도 왕으로서 공개적인 맹세를 한 것을 취소할 수 없었다.(취소한다면 권위가 서지도 않을 뿐더러, 헤롯이 요한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4) 헤로디아는 호시탐탐 요한을 죽이고자 했고, 결국 헤로디아의 계략에 헤롯이 넘어가고 만 것이다. 

2.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1) 세례 요한의 죽음이 생각지 못한 순간에, 허무하게 벌어지고 말았다.(한 소녀를 계기로)

  2) 예수님의 죽으심 사건과 유사하다. (헤롯-빌라도, 무죄한 죽음 등)

  3) 아합과 이세벨로 인해 많은 선지자가 죽었던 시대처럼, 세례 요한도 헤롯과 헤로디아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되고 결국 예수에게까지 이 억울한 죽음이 이어질 것에 대한 예고편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묵상하기]

헤롯과 헤로디아를 보고 있으면 아합과 이세벨의 조합이 떠오른다. 아합과 이세벨 시대에 많은 선지자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것처럼, 요한도 헤롯과 헤로디아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생각지 못한 순간에 어처구니 없이 죽고만다. 주님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의 죽음이 그렇게 아무 저항없이 신속하게 일어나리라고 누가 생각을 했겠는가?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제자들은 허탈한 마음에 엠마오로 가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의인의 억울한 허무한 죽음처럼 보인 사건을 통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다. (마가복음에서는 이 사건 이후 주님께서 제자를 둘씩 파송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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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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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족예배 중동교회(2016.11.13)


제목: 이스라엘 왕 아합의 최후

본문: 왕상 22: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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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6.11.6)


제목: 아합 왕 이야기2

본문: 왕상 18: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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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6.10.30)


제목: 아합 왕 이야기1

본문: 왕상 16: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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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가 6:9-16 죄와 죄의 영향력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백성들끼리 하나님의 의를 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주로 지적한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시는 이유가 이들이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고, 저울을 속여 이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부자들이 악한 일을 하고 백성들은 거짓을 말한다. 이로 인해 이들이 얻고자 하는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하시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절별 해설

6:9 <<지혜로운 사람은 주를 존경한다>> 심판의 막대기로 심판하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거짓을 행하지 않고, 의를 행하게 된다는 말씀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존경이 그 분의 뜻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6:10 <<남을 속이는 그들을 어찌 내가 잊겠느냐?>>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시는 사람이 있음을 말한다. 남을 속여 그 훔친 것을 자신의 집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순간적 충동이었다면 돌려주었겠지만, 불의한 욕심으로 말미암은 악행에 대해서 하나님은 잊지 않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물으신다는 것이다. 


6:12 <<성 안의 부자들이 아직도 못된 짓을 하고 있다>> 가난한 자들이 생계와 관련하여 죄를 짓는 것도 율법은 허락하지 않지만, 생계형 범죄가 아니라 부자들의 욕심에 근거한 죄에 대해서는 더욱 엄히 지적하신다. 

<<백성은 아직도 거짓말을 하며>> 부자들이 욕심으로 죄를 범한다면, 백성들은 진실된 증언을 통해 공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지만, 백성들은 거짓 증언을 함으로 말미암아 진실은 더욱 왜곡되어 버린다. 하나님은 이에 대해서도 심판을 말씀하신다. 


6:15 <<포도를 밟아도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은 탐욕과 거짓으로 많은 것을 얻어 부를 축적할 것 같지만, 오히려 쌓아둔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인간적인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정작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하게 할 것임을 말한다. 


6:16 <<너희가 오므리 왕의 못된 율법을 따르고>> 오므리는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오므리 왕조를 형성했다. 오므리 왕의 아들은 그 유명한 아합 왕이다. 아합의 아내는 악명 높은 이세벨이다. 오므리 왕조가 예후에 의해서 잔혹하게 심판을 받았듯이 오므리 왕조를 따라 악을 행하는 이 백성들에게 대해서 같은 잔혹함을 멸망시키실 것임을 말씀한다. 


기도

주여, 우리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공의를 행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악인의 자리에 서지 않게 하시고 의를 행하는 자리에 서게 하소서. 죄는 작은 것에도 민감할 수 있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오므리 왕은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고 북이스라엘을 강력하게 이끌었던 왕이다. 성경에 자세한 언급이 나오지는 않지만, 주변 나라에게도 위협적일만큼 강력한 왕이었다. 또한 외교적으로 뛰어났던 것 같다. 시돈 왕의 딸 이세벨은 자신의 아들 아합과 결혼시켰다. 그러나 오므리의 강력하고 뛰어난 통치는 북이스라엘을 외형적으로는 강하게 했는지 모르지만, 내면적으로는 급속한 타락으로 인도한 셈이 되고 만다. 오므리 왕조는 결국 예후에 의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지만, 남유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죄는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와서는 우리를 죄에게 종속시키고, 더 나아가 주변으로 죄를 확산시키는 영향력을 가졌다는 경각심을 늘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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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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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엘리사의 말씀을 따라 고향을 떠나 블레셋으로 간 수넴 여인의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떠나라고, 떠나는 것이 손해도 아니고 잃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아니.. 더 풍성이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본문입니다.

 

[정리1. 내용 정리]

1. 7년간의 기근을 피하고 돌아온 수넴 여인이 땅을 회복하다.
  1) 엘리사는 수넴여인을 불러 7년간의 기근이 있으니 가족과 7년을 블레셋 땅에 머물게 함.
  2) 7년이 다하매 블레셋 땅에서 돌아와 자기의 집과 땅을 호소하기 위해 왕을 찾아 감.
  3) 그 때에 왕은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를 통해 죽은 자를 살린 수넴 여인의 아들이야기를 함.
  4) 그 순간에 수넴 여인이 이스라엘 왕을 찾아와 자기의 집과 땅을 위해 호소하자, 게하시는 저 여인이 그 수넴 여자며, 그의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난 아이라고 알려준다.
  5) 왕은 그 여인의 설명대로 그 여인에게 속한 것과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의 밭의 소출을 다 돌려 주라고 명한다.

2. 엘리사가 다메섹에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붓는다. 
  1) 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때, 아람 왕 벤하닷은 병에 걸려있을 때였다.
  2) 벤하닷은 엘리사가 온 다는 것을 알고 하사엘과 함께 예물을 보내 병에서 살아나겠는지를 묻도록 했다.
  3) 하사엘은 엘리사를 맞으러 나갔고, 예물을 낙타 40마리에 싣고 나갔다.
  4) 엘리사는 벤하닷이 반드시 나을 것이라고 알려주었지만, 동시에 반드시 죽을 것을 알린다.
  5) 그리고는 하사엘의 얼굴을 쏘아보다가 울기 시작하자, 하사엘이 당황해 하며 이유를 물음.
  6) 엘리사는 하사엘이 아람의 왕이 될 것인데, 이스라엘에게 큰 악을 행할 것을 보았다.
  7) 하사엘은 벤하닷에게 병에서 살아날 것이라고 알리고, 그 이튿날 벤하닷을 죽임. 그리고 그가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3.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이 여호람이 왕이 되다.
  1) 나이 32세에 왕이 되어 8년간 통치했다.
  2) 여호람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갔다. 아합의 집과 같이 되었다.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았기 때문에 그리 되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않은 것은 다윗을 위해서 인데,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4) 여호람 때에 에돔이 독자적인 왕을 세우고 유다로부터 배반, 그 때 립나도 유다를 배반했다.

4. 유다 왕 아하시야가 욍이 되었다. 
  1) 그는 22세에 왕이 되었고, 1년간 통치하였다. 그는 아합의 집에 사위가 되었다.
  2) 그는 아합의 아들 요람(여호람)과 길르앗 라못에서 하사엘과 더불어 싸울 때, 요람이 부상을 입게 됨.
  3) 요람이 아람과의 전쟁에서 부상을 입자, 유다 왕 아하시야가 아합의 아들 요람보기를 위해 내려갔다.

[정리2. 내용을 다시 정리_사전 정보와 흐름, 의도등을 파악한 것을 토대로]

본장에서는 엘리사와 연관하여 두 가지 사건이 더 언급된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땅에 7년간의 기근이 있을 것을 알고 수넴 여인이 가족들을 데리고 블레셋 땅에 피해 있다가 오라고 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의 말대로 7년간을 피해 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원래 집과 땅을 돌려달라고 하기 위해 궁을 향하고 있었다. 전에 아합 왕을 생각한다면, 그는 땅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의 땅도 빼앗는 사람이었는데, 7년간이나 자리를 비운 사람의 땅을 돌려 받는 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그 여인이 찾아가기 전에 이스라엘의 왕은 엘리사의 사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것도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려준 이야기를 하고 있던 때였다. 그 타이밍에 수넴 여자는 왕을 찾아갔고, 마침 그 자리에 있던 게하시는 저 여인이 바로 그 여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결과 수넴 여인은 7년간의 빈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자기의 집과 땅을 차지했으며, 지난 7년간의 소출까지도 모두 얻게 되었다.


두 번째는 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때, 아람 왕 벤하닷의 뒤를 이어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한 사건이다. 엘리사는 벤하닷이 병에서는 낫겠지만, 반드시 죽을 것을 예언했고, 그 예언은 바로 자기 앞에 서있는 하사엘을 통해서 우리게 될 것이라는 알았다. 그리고 그가 자기 민족에게도 어떻게 큰 고통을 안겨줄 것인가를 알고 슬퍼하기도 했다. 결국 하사엘은 벤하닷을 죽이고 아람의 왕이 되었다.

유다는 여호사밧의 뒤를 이어 여호람이 왕이 된다. 그러나 그는 아합의 길, 이스라엘의 길을 가게 된다. 왜냐하면 그의 아내는 아합의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여호람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언약 때문이었다. 여호람의 뒤를 이어서는 아하시야가 왕이 되는데, 그는 북이스라엘의 요람(여호람) 왕을 좇아다니는 왕 정도였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수넴 여인은 다 버리고 떠난 것 같지만, 돌아와서는 풍성하게 되었다.

7년의 기근을 피해 블레셋으로 가라고 엘리사는 수넴 여자에게 말했다. 수넴 여인은 아들과 함께 7년간을 블레셋에 피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다. 다시 옛 자신의 집과 땅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인가하는 문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왕은 그렇게 쉽게 집과 땅을 돌려주지 않는 왕이기 때문이었다. 아합 왕은 살고 있던 나봇을 죽여서라도 그 땅을 빼앗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7년이나 자리를 비운 집과 땅을 돌려 달라고 해서 돌려 줄 이스라엘의 왕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수넴 여인은 왕을 찾아 갔고, 놀랍게도 그 순산 왕은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와 이야기를 나누고 엘리사의 기적에 대한 은혜로운 간증을 게하시를 통해서 듣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려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런 중에 수넴 여인은 왕을 찾았고, 왕에게 자신의 집과 땅을 호소했다. 그러자 옆에서 게하시는 바로 이 여인이 수넴 여자며 그와 함께 있는 그 아들이 그 때 살아난 아들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게하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은혜(?)를 받고 있었던 이스라엘의 왕은 좋은 마음이 들었다. 관리를 시켜서 그 여인의 집과 땅 문제를 해결해 주도록 해주었고, 특별히 7년간 그 땅에서 난 소출까지 모두 계산해서 돌려주라고 명령했다.

자신의 기반이 있고, 자신의 기득권이 있는 곳을 떠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도 두렵지만, 다시 돌아왔을 때 자신의 기반과 권리를 다시 회복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당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악하다면(악의가 있다면)... 돌아와 옛 자리를 회복하기란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떠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예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든지, 아니면 떠나지 말고 버티고 있어야 한다.(7년간의 기근을 참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수넴 여인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7년의 기근도 피하면서도 자신의 원래의 집과 땅도 잃지 않게 해 주셨던 것이다. 여기에는 기가막힌 타이밍과 섭리가 작용한다. 오히려 7년간의 소출도 챙겨 받을 수 있는 생각못한 풍성함도 누리게 된다.

7년간의 기근을 피하는 것이든, 하나님의 부르심이든 떠나도록 하신다면 떠나야 할 것이다. 그곳이 영원히 머물 땅이 아니어도 가야한다. 블레셋이어도 가야 한다. 다시 돌아올 길이라도 지금은 떠나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2. 남 유다에 북 이스라엘의 아합이 되살아났다.

아합은 죽었고, 북이스라엘도 아닌 남 유다지만, 그곳에서 아합의 혼령이 되 살아나고 말았다. 아합의 딸이 유다 왕의 아내가 되었으며, 아합의 딸이 유다 왕의 어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아합의 영향 아래 머물게 되었으며, 유다는 아합이 다스리던 때와 같은 악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얻게 된다.

한 사람, 여자 한 명에 불과한 것 같지만 결국은 그 여인 한 사람으로 왕도 왕과 함께 그 나라도 모두 죄악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죽은 악인이 되 살아나며, 죽어가던 죄인이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죄는 작은 것이라도, 단 하나라도 집 안에 들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괜찮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이 한 개인과 집안을 넘어 뜨릴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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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합의 운명은 여기까지군요. 자신의 죽음을 피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더욱 비참하고 부끄러운 죽음을 맞게 되네요...

 

[정리1. 내용의 정리]

1. 아람과의 전쟁을 준비하는 아합 왕.
  1) 유다 왕 여호사밧을 불러서 <길르앗 라못>을 아람으로부터 도로 찾자고 제안함
  2) 여호사밧이 흥쾌히 함께 할 것을 약속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고 제안 함.
  3)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 400여명이 모였고, 그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승리를 보장했다.
  4) 여호사밧은 이 외에 다른 선지자를 찾았고, 아합은 자신에 대해서 늘 부정적으로 이야기 했던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를 마지못해 데려 오도록 했다.
  5) 그 사이에 <시드기야>라는 선지자는 직접 철로된 뿔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왕에게 보이며 이것으로 아람 사람들을 찔러 멸하실 것이라는 쇼를 하기도 했다.
  6) <미가야>를 데리러 간 사신은 미가야에게 다른 선지자들처럼 왕에게 길한 것으로 보고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
  7) 미가야는 아합 왕 앞에 섰을 때, 미가야는 처음에 다른 선지자들처럼 아합 왕의 승리를 이야기 했다. 그러자 오히려 아합이 진실을 말하라고 재촉하고 미가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 중에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지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사실을 말한다.
  8) 미가야는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누가 아합을 꾀어 죽게 할꼬? 하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한 영이 거짓말을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게 해서 죽게하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합 왕에게 화를 명하셨다고 미가야는 대언한다.
  9) 이 말을 듣고 있던 시드기야는 <미가야>의 뺨을 치면, 어찌 하나님의 영이 나를 떠나 너에게로 갔다고 하느냐 했고, 미가야는 네가 골방에서 숨는 날 그것을 볼 것이라고 했다.
  10) 아합이 자신이 평안이 돌아올 때까지 미가야를 감옥에 가두어 고생을 좀 하게 하라고 하자, 미가야는 왕이 평안하게 돌아오지 못할 것을 말한다.

2. 아람과의 전쟁에서 죽게 된 아합.
  1) 아합은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왕의 옷을 벗고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갔다.
  2) 아람의 지휘관은 특수요원 30명에게 지시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아합 왕만 죽이라고.
  3) 처음에는 아람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이 아합인 줄 앍고 죽이려고 달려들었으나, 여로보암은 자신은 아합이 아니라고 하자 아람은 그를 좇기를 멈추었다.
  4) 그러다가 어떤 병사간 쏜 화살이 우연히 아합의 갑옷 틈새를 통과하여 몸에 박혔다.
  5) 전쟁이 맹렬한 상황이라, 아합은 후송되지 못하여 결국은 피흘려 죽게 된다.
  6) 왕의 주검은 사마리아에 장사하고,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 씻으매 개들이 그 피를 핥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은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다. 이렇게 아합은 죽음을 맞이 했다.

3. 유다 왕 여호사밧에 대한 간략한 내용
  1) 35세에 왕이 되어 25년 간 다스렸다.
  2) 아버지 아사와 같이 모든 길로 행하여 돌이키지 않았고 여호와 앞에 정직했다. 그러나 아직 산당은 폐하지 못했고,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는 드려졌다.
  3) 여호사밧 시대에는 이스라엘 왕과 더불어 화평했다.
  4) 아사 왕의 시대에는 남아 있던 남색하던 자들을 그 땅에서 모두 쫓아냈다.
  5) 그 때에 에돔에는 왕이 없고 섭정 왕이 있었다.(유다의 다스림을 받고 있었다.)

4. 이스라엘에서는 아합이 죽고 아하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1) 왕이 되어 2년간 다스림.
  2)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과거 조상들의 죄를 따라감.
  3) 바알을 섬겨 그에게 예배함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노하게 함이 아비와 똑같았다.

[정리2. 내용의 재정리]

아합의 구체적인 죄악 세 번째가 언급되는 장면이면서 결국은 아합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아합 시대는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우호적인 관계가 있었던 것 같다. 아합은 여호사밧과 함께 아람으로부터 길르앗라못을 빼앗기를 원했다. 여기에 여호사밧은 함께 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했고,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 활동하고 있던 선지자 4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한결같이 아합의 승리를 보장했다. 여호사밧은 다른 선지자(다른 견해를 말하는 선지자)를 찾았고, 아합에게는 눈에 가시같은 미가야 선지자가 왔다. 미가야 선지자는 400여명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아합을 죽게 하시려고 거짓 영을 통해 보낸 내용이고, 하나님은 아합이 죽게 될 것을 그대로 대언한다.


이로 인해 미가야는 시드기야라는 선지자에게 뺨을 맞고, 아합에게는 옥에 갇히는 형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누가 참 하나님의 대언자인지는 그 이후에 밝혀지게 된다.


아합은 아무래도 미가야의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왕의 옷을 벗고 일반 병사들의 옷을 입고는 전쟁에 출전한다. 그로 인해 아람의 지휘관들은 아합을 잡지 못해 혼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아합은 전혀 예기치 못한 활에 맞는다.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전쟁이 한창이라 그 자리를 피할 수 없이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과다출혈로 죽게 된다. 결국 아합은 너무 어처구지 없는 죽음을 맞게 된다. 아합의 시신은 사마리아 성으로 옮겨졌으나, 아합을 실은 병거는 사마리아의 한 못에서 씻게 되는데 그 씻을 때 닦인 피를 개들이 핥게 됨으로 아합의 최후가 비참하게 되고 만다. 그 씻은 못이 창년들이 목욕하는 것이라는 것을 언급한 것은 아합의 죽음이 더욱 비참한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으나 그는 여전히 악을 행했고, 바알을 섬겼다. 그는 2년 정도 밖에는 통치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


남유다에서는 여호사밧이 아버지 아사의 뒤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그래도 정직하게 잘 감당했다. 물론 산당까지는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정리3. 묵상 및 적용]

1. 그냥 <죽음>을 피하려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게된 아합

아합은 미가야 선지자를 싫어했지만, 미가야 선지자의 말은 아합의 마음 속에 오래 남았다. 혹시 죽을 지 모른다는 생각에 왕의 갑옷을 벗고, 병사의 갑옷을 입었다. 그것이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듯 했다. 아람의 지휘관들이 오히려 여호사밧을 쫓아갔으니까... 그리고 아합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아차리질 못했으니까...

그런데 이게 왠걸. 아람의 한 병사가 쏜 화살이 우연히 아합을 맞췄다. 처음에는 큰 부상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신속하게 조치하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쟁터 중앙에 있었고 그 자리를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출혈은 과다하게 되고 아마 과다출혈로 죽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너무 작은 상처를 신속히 조치하지 못해 왕이 죽게 된 것이다. 그의 피를 씻은 물은 개가 핥았고, 그 못은 또한 창기들이 목욕하는 부정한 못이었다.

아합은 마지막 순간에도 그 답게 죽고 만다. 왕의 권력만 있었지 왕다운 면모가 없었던 아합은 어찌 될 지 모르는 죽음을 두려워해 부끄럽게도 병사의 갑옷을 입었다. 그리고 정말 부끄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죽는가는 그 사람의 인생 마지막의 마침표가 되는 것이니 만큼 더욱 중요하다. 명예와 지위를 버리고 생명에 연연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 앞에서라도 지켜야 할 명예와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하겠는가?

죽더라도... 아름답게 죽어야 하겠다. 품위있게. 주님 그렇게 되게 해주세요.

2. 다른 견해를 듣고자 했던 여호사밧

아합에 비해 여호사밧이 돋보이는 것은 400명의 선지자의 소리 외에 다른 소리를 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아합은 미가야의 존재를 알았지만, 그를 부르지 않았다. 그는 늘 안좋은 소리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그런 사람들의 소리까지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나를 비판하는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가 나이가 많고, 권력이 있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사람들을 멀리하게 된다. 그러나 여호사밧을 본받아야 한다. 그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했고, 부담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다. 여호사밧의 강점이 거기에 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다른 소리가 있을 때, 그것은 분쟁처럼 보일 수 있고 시간 낭비처럼 여겨질 수 있다. 괜한 딴지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의식해야 한다. 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아니다. 반대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논리와 그 사람의 태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반대자가 없는 회의는 어쩌면 거짓 영이 지배하는 400명의 선지자와 같은 상황일 수 있는 것이다.

반대자의 소리를 듣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 사람을 품고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진짜 리더가 될 자격을 가진 것이다. 그런 리더가 세워지길 간절히 고대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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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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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이 악한 왕이 었지만, 얼마나 악했는지 오늘 본문에서 보여준다. 지난 장에서 아람 왕에 대해서 한 잘못은 자칫 교만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어느 정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하지마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은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이것은 치졸하며 악한 행위다. 아합을 통해, 이세벨을 통해 무고하게 흘린 피가 이스라에의 진노를 쌓고 있는 것이다.

[정리1. 내용 정리]

1. 나봇의 포도원 사건
  1) 이스르엘에 아합의 왕궁 가까이에 나봇의 포도원이 있었다.
  2) 아합은 그 포도원을 갖고자 해 다른 포도원이나 돈으로 구입하려 했으나 나봇은 자기 조상 대부터 내려오던 포도원을 팔기 원치 않았고, 하나님께서도 금하신다고 생각했다.
  3) 아합이 그 일로 왕궁으로 돌아와 눕고 식사도 아니하자, 이세벨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
  4) 이세벨은 이스라엘의 왕이 뭐 이런 일로 자리에 눕는가? 책망하고는 이세벨이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나봇에게  하나님과 왕을 모독한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라 함.
  5) 나봇은 거짓 증인자들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이세벨은 그 일을 아합에게 고한다.
  6) 그런 일이 마치고 아합은 그 포도원 밭으로 간다.

2. 나봇의 포도원에서 엘리야가 아합을 만나다.
  1) 하나님의 명령으로 엘리야가 아합을 나봇의 포도원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다.
  2) 엘리야의 심판 예언
   (1) 엘리야가 아합에게 책망함.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2)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네 피도 핥게 되리라.
   (3) 하나님이 재앙을 내려, 너를 쓸어 버리고, 네게 속한 자를 모두 멸할 것이다. 여로보암과 바아사의 집안처럼 멸절하게 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함.
   (4) 이세벨도 마찬가지다.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에서 이세벨을 먹게 될 것이다.
   (5) 아합과 같이 악한 자가 없었던 것은 그가 그의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좇아내신 아모리 사람과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고 가증히 행함.

3. 아합의 겸비함과 하나님의 누그러짐
  1) 엘리야의 이모든 말을 듣고는, 아합이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베에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풀이 죽어 다녔다.
  2) 하나님은 아합의 이 모습을 보시고는 아합의 겸비함이라고 보시고, 재앙을 아합의 때가 아닌 그 아들의 시대에 내리겠다고 하신다.

[정리2. 내용의 재구성]

아합의 개인적인 사건들 중에 가장 치졸한 사건이 언급된다. 개인적인 욕심으로 나봇의 포도밭을 얻기 위한 아합이 나봇의 반대로 얻을 수 없게 되자, 이세벨이 거짓 증인을 세워 나봇을 죽이게 함으로서 나봇의 포도밭을 아합이 차지하게 끔 한 사건이다.


한 나라의 왕이 작은 포도원 하나를 갖지 못해 식음을 전폐하며 자리에 누운 것과, 권력과 힘으로 그것을 부정하게 빼앗아 왕에게 돌린 이세벨의 모습이 등장한다. 또한 이세벨의 지시에 따를 수 밖에 없었던 장로와 귀족들. 그리고 억울하게 죽어간 나봇. 이 사건을 하나님을 통해 듣고 알게 된 엘리야.


권력을 중심으로 한 모략과 거짓, 그리고 살인까지. 아합이 작은 포도원을 갖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이 엄청난 죄악으로까지 확대되고 있고 이것을 별 문제 없이 누리고 있는 아합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이와 같은 죄악을 범한 아합과 이세벨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알리신다. 참혹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들은 아합이 겸비함을 보고 하나님의 진노가 잠시 누그러진다. 그리고 그 재앙이 아합의 때가 아닌 그 아들의 때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주신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아합 치졸해도 너무 치졸하다.

아합은 이스라엘의 왕이다. 그는 모든 것이 풍요로운 왕이다. 그런 그가 이스르엘 왕궁 근처에 있는 포도원이 가지고 싶었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땅의 주인인 나봇이 팔기를 거절했다. 나봇에게는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다. 자신의 선조로부터 내려온 땅이었고, 하나님이 금하시는 일이었기에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아합의 치졸함은 여기서 부터다. 자신이 가지고 싶은 포도원을 갖지 못하자 그는 마음에 병이 나 버렸다. 침실로 들어가서는 등지고 누워버렸다. 밥도 먹지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싶은 포도원을 가지지 못한 것과 왕의 제안이 거절되었다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상해 가지고... 이것이 아합의 수준이다. 왕의 면모를 찾아 볼 수 없다. 왕의 대범함도 풍요로움도 찾아 볼 수 없다. 초딩 아합을 보는 것 같다.

인격과 덕망을 갖추지 못한 채 왕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그 백성들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아합은 아버지의 덕으로 왕이 되었지만,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갖추지 못했다. 그에게 왕의 품위와 인격을 찾아 볼 수 없다. 왕의 자질이 없는데 왕이 된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들의 나오고 이제 삼자구도로 정리되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할 것인가? 제발 대통령을 실용적인 목적으로 세우지는 말아야 겠다. 정말 덕망있는 사람,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 우리가 그 인격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세워야 하겠다. 경제 대통령이란 말.. 사실 처음부터 그것은 잘 못된 것이었다. 좀 덜 먹고 좀 덜 쓰고 좀 빠듯하게 살아도 우리가 대한민국 백성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으면 좋겠다. 우리 대통령이 부끄럽지 않고 자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아빠는 돈은 많이 못 벌어와도, 정말 훌륭한 분이라고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라고... 어느 누구를 향해서도 떳떳하게 외치고 싶은 것처럼, 나는 그런 대통령을 원한다.

권력을 등에 업고 나봇의 포도원이나 탐내는 건, 그건 왕이 아니라 조폭이나 할짓이다.

2. 이세벨, 악해도 너무 악하다.

궁상을 떨고 있는 아합을 보고 기가막혀 했던 사람은 그의 아내 이세벨이다. 이세벨은 왕이 뭐 이런 일로 궁상을 떨고 있냐고 남편인 아합을 뭐라 했다. 그리고 이세벨은 간단하게 그 문제를 해결한다.

귀족과 장로들을 매수한다.(위협할 수도 있고) 그들은 거짓 증인을 세우고, 느닷없이 나봇을 고소해서는 법정에 세운다. 각본대로 거짓 증언의 이야기를 듣고는 나봇의 변명도 채 들어보기도 전에 형을 집행해 버린다. 나봇은 경황없이 죽음을 맞게 된다.

그리고 나봇의 포도원은 아합이 차지하게 된다. 이것이 권력형 비리가 아닌가? 권력형 폭력이고 권력형 살인이 아닌가? 권력을 통해 없는 죄도 만들고, 재판도 조작하고, 결국은 사람도 죽이고 그리고 나서 자신들이 가지고자 했던 것들을 가지는 권력형 죄악.

많은 선지서에 지적하고 권력자와 종교 지도자들의 죄가 바로 이것이 아닌가? 권력과 힘을 가지고 약자를 억압하며 그들의 작은 것마져 약탈해가는 자들의 죄에 대한 지적. 결국 그것이 이스라엘의 멸망이 이유가 아니었던가?

여전히 권력은 그 힘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방향으로 흐르려고 한다. 따라서 그것을 대항하는 자들에게는 모략과 술수로 무력화한다. 또한 약한 자의 것은 작은 것마져 빼앗아 가려고 한다. 이것이 절대 권력이 가지는 무서움이다. 이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끊임없는 부정과 부패 그리고 왜곡의 고리를 만든다. 따라서 권력은 견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견제하는 기관은 언제나 권력을 가진 자들로부터 독립되어 있어야한다. 그래서 삼권분립이 나온 것 같은데... 우리 나라에게 그 역할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시민사회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무한 권력은 무한의 악을 만들고 결국은 멸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3. 하나님, 아합에게까지 은혜를 베푸시다니... 정말...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을 듣고 아합은 풀이 죽었다. 잠깐이겠지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것 같다. 그리고 마음이 겸허해 진 것 같다. 잠깐이겠지만...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인정해 주신다. 그것을 겸비한 것이라고 인정해 주신다...

하나님이란 분... 참 놀랍다. 그 악한 아합에게서 잠시 보였던 <겸비>를 놓치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그 진노를 당대가 아니라 아들의 때로 옮기시겠다고...

하나님은 심각한 죄인을 보시면서도 그의 죄만 보시는 것이 아니다. 죄인이 간혹가다 할 수 있는 작은 <선의>를 눈여겨 보신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것에 가산점을 주시고 <긍휼>의 근거로 삼은신다. 만약, 이런 하나님으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했다면, 긍휼을 얻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정말 죄인이라고 우리는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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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에 대한 본격적인 잘못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7장부터 아합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만 아합의 본격적인 죄의 대목은 구체적으로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20장부터 본격적으로 나오는데 아마 대표적인 죄만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리1. 내용 정리...]

1. 아랍의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침략하려고 한다.
  1) 벤하닷이 32명의 왕과 함께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아합 왕의 은금과 아내와 자녀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하자, 아합은 내 것은 다 벤하닷의 것이라고 했다.
  2) 벤하닷이 다시 사신을 보내 내일 당장 내가 왕과 신하들의 집을 수색해서 마음에 드는대로 가져가겠노라고 말함.
  3) 아합은 이 문제를 장로와 백성들에게 알리자, 모두 반대함으로 벤하닷의 사자들에게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함.
  4) 벤하닷은 이스라엘을 향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자, 이스라엘의 왕은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응함. 이 말에 벤하닷이 전쟁을 준비함.

2.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1차 전쟁에서 승리함.
  1)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나타나 이 아람의 큰 무리를 이기게 하시겠다고 함.
    그래서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을 알게 하겠다고 하심.
  2) 아합은 누구를 통해서 그리 하겠는가의 질문에 선지자는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로 하겠다고 하시고는, 왕이 직접 싸움을 시작하라고 한다.
  3) 청년의 숫자는 230명이고, 그 외에 백성들의 수는 7000명 이었다.
  4) 이 청년들이 아람에게 나아가자, 아람은 이들을 우습게 알고 있다가 아람이 전쟁에서 패함. 아람은 이스라엘에게 쫓겼고 벤하닷은 말을 타고 간신히 도망침.

3. 이스라엘과 아람의 2차 전쟁
  1) 그 선지자가 아합 왕에게 나아가 아람이 내년에 다시 전쟁을 일으킬텐니 전쟁을 준비하라고 함.
  2) 아람의 신하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산의 신이지 평지의 신은 아니므로 평지에서 싸우면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시 전쟁할 것을 제안함. 왕은 그 제안대로 준비함.
  3) 해가 바뀌어 전쟁을 하려고 마주 대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자손과 아람의 병력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4) 선지자는 이 평지 전쟁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심으로 그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겠다고 한다.
  5) 또 다시 이스라엘이 아람을 격파하고 벤하닷은 다시 도망하여 신하들과 골방에 숨는다.

4. 아합 왕의 결정적인 잘못들
  1) 벤하닷이 아합 왕에게 생명을 구걸하자, 아합은 벤하닷을 자신의 형제처럼 대함
  2) 벤하닷은 자신의 부친이 빼앗은 모든 성읍을 돌려주고, 다메섹에 이스라엘 왕을 위한 거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받고는 벤하닷을 살려주었다.
  3) 한 선지자가 다른 친구로 하여금 자신을 치라고 한 것을 거절하자 사자에 의해 죽게 됨.
  4) 다른 친구가 침으로 상하게 된 그 선지자가 왕에게 변장하고 나아가서 상황을 말함.
     전쟁 중에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한 사람을 맡기며 그를 잃으면 그 생명으로 대신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은 한 달란트로 대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가 어찌 하다가 맡은 사람을 잃어 버렸다고 하자, 아합 왕은 네가 약속한 것이니 네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판결한다.
  5) 선지자는 변장한 것을 벗어 버리자, 왕은 그가 선지자 중 한사람인 것을 알게 된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네게 맡긴 벤하닷을 네가 임으로 놓아주었으니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들은 그의 백성들을 대신할 것이라고 말함.
  6)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른다. 

[정리2. 내용의 재정리]

아합 왕 시대에 아람 왕 벤하닷의 침공이 있게 된다. 당시 이스라엘에 비해 아람은 강력한 국가였다. 벤하닷은 사람을 보내 이스라엘을 떠 보는데, 이스라엘이 순순히 나오니까 당장 가서 눈에 보이는대로 가져가겠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약국이라고 하지만, 무례할 정도의 방식에 이스라엘의 백성과 장로들은 반발하고 결국은 전쟁을 할 것을 결정한다.


승산이 없는 전쟁일듯 했지만, 한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 주면서 승리할 것을 약속해 준다. 그리고 젊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왕이 직접 지휘하면서 나갈 것을 지시한다. 선지자의 방식대로 아람을 선제 공격하자 아람은 의뢰로 쉽게 무너지고 만다. 첫 전쟁에서의 승리를 얻게 된 것이다.

선지자는 흥분한 아합 왕에게 나타나서 내년에 다시 전쟁이 있을 것이고 그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 힘을 길러야 한다는 제안을 한다. 다음 해 이스라엘에게 진 아람은 군사를 정비하고 전략을 다시 세운다. 평지에서 전쟁하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번 전쟁에서도 승리할 것을 대언한다. 역시 상대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람을 격파하고, 아람의 왕 벤하닷은 신하들과 함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골방에 숨게 된다. 두 번째 완전한 승리가 눈 앞에 온 것이다.


그러나 아합은 여기서 잘못을 행한다. 목숨을 구걸하는 벤하닷을 살려주고, 그의 타협안에 결재를 한다. 뺏긴 성읍을 돌려주고, 다메섹에 아합을 위한 도로를 만들겠다는 제안에 넘어간 것이다. 그렇게 아람 왕을 살려줌으로 결국은 훗날 아람이 가시처럼 이스라엘을 괴롭히게 되고 만다.


이런 아합의 교만과 방만함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이다. 한 선지자는 자신을 전쟁 중에서 온 사람처럼 변장하고는 자신이 맡아야 할 사람을 제대로 맡지 못했다는 것으로 판단을 받으러 온 것처럼 아합 왕 앞에 섰다. 그의 이야기는 바로 아합 왕 자신의 이야기 임에도 불구하고 아합은 자기 자신의 죄를 자신이 정죄하고 만다.


하나님은 벤하닷의 목숨을 아합에게서 찾고, 아람 사람의 목숨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찾겠다고 하신다. 이로 인해 아합은 근심하며 사마리아로 돌아갔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아합의 대표적인 죄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으로 그가 교만해 진 것이다.

아합은 아람과의 어려운 싸움을 싸워야 했다. 그런데 그 싸움에서 하나님은 아합과 이스라엘의 승리를 예견하셨고, 또 이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지시해 주셨다. 그대로 따랐을 때, 이스라엘은 승리할 수 있었다.

아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산의 신으로만 보고, 평야에서의 전쟁은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할 때에도 하나님은 아람의 교만을 깨뜨리고 이기게 하신다. 하나님의 도우심이며 승리하게 하심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고, 아합의 참 모습은 이 때 나타난다. 그는 하나님의 완전한 승리의 상황(벤하닷을 죽여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상황)에서 거드름을 피운 것이다. 마음이 높아진 것이며, 마치 자신이 아람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는데도 말이다... 아합은 벤하닷을 형제라고 하고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를 살려서 내보낸다. 

승리와 영광이 자신의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있을까? 부모의 풍요로 말미암은 풍요가 마치 자신에게 능력이 있어서 온 풍요처럼 생각하는 자식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또 있을까? 어리석은 자는 절구에 머리를 넣고 빻아도 그 미련함이 벗겨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합이 딱 그 꼴이다.

우리는 잘 분별해야 한다. 내 실력인지 주변 누군가의 도움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인지. 하나님의 도움을 인식하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람이 모인다. 그러나 자기 혼자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곁에는 사람이 떠난다. 심지어 하나님도 떠나시는 법이다.

2. 자기가 자신을 정죄하는 사람, 아합.

아합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했지만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 선지자가 동원된다. 그는 하나의 쇼를 한다. 마치 전쟁중에 부상당한 병사처럼 자신을 변장하고는 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을 받으려고 아합 앞에 나타난다.

전쟁 중에 누가 나에게 사람을 맡겼는데, 그 사람을 잃게 되면 내 목숨으로 갚든지 아니면 은 한 달란트로 갚든지 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이 사람이 전쟁 중에 경황이 없어서 그만 그 사람을 잃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에 대한 판단을 묻는 것인데, 아합은 그것은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이 맡겨놓은 벤하닷을 풀어준 사건이라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한채, 맡긴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당연한 판단이다.

그런데 결국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행위를 판단한 것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은 아합의 판결대로 아합에게 판결하셨다. 벤하닷의 생명을 대신해 아합의 생명을, 아람 사람의 생명을 대신해 이스라엘의 생명을... 얼마나 가슴아픈 판결인가?

나는 종종 내 아들의 그릇된 행동을 판결하면서, 그 아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판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깜짝 깜짝 놀란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때는 나를 생각해서라도 아들의 형량을 감해주곤 한다. 나도 그런데... 누군가를 판단하고 정죄하려고 할 때, 혹 그것이 나를 향한 판단과 정죄가 되지 않는가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형량을 너무 과다하게 잡지는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혹시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것이 인내와 사랑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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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엘리야의 가장 유명한 이야기인 <갈멜산의 대결>입니다. 아마, 성경 전체에서도 가장 통쾌한 이야기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 이야기 속으로 가봅니다.

[정리1. 내용 정리]

1. 비가 오지 않은 지 삼년이 지난 후에
  1)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아합을 만나라고 하셨다. 이제 비를 내릴 내리시려 하셨다.
  2) 그 때 사마리아에는 기근이 너무 심해서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와 함께 물의 근원과 시내를 찾아 꼴을 얻어 가축들의 죽음을 막으려고 했다. 사마리아 전역을 다님.
  3) 그러는 중에 <오바댜>가 엘리야를 만났고, 엘리야는 아합를 만나겠다고 함.
  4) 오바댜는 확실히 만날 것인가를 확인하고, 아합을 불러 엘리야와 만나도록 한다.
  5) 오바댜는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 선지자들을 이세벨로부터 구한 적이 있었다.(50명씩 100명을 굴에 숨겨서 먹을 것을 주었다.)

2.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다.
  1) 아합은 엘리야를 향해서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말한다.
  2)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자는 내가 아니라, 아합과 당신의 아버지라고 답한다. 왜냐하면 아합과 아합의 아버지가 여호와의 명령을 버리고 바알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3) 엘리야는 아합에게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 산으로 모으게 하라고 요청하고 아합은 이에 응한다.

3. 갈멜산에서의 대결
  1) 엘리야는 갈멜산에 모인 백성들을 향해 어느 때까지 둘 사이를 머뭇거릴 것인가? 하고 책망한다.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라고 결단을 촉구한다.
  2) 송아지 둘을 가져오게 하고, 불을 붙이지 않은 채 서로 자신의 신의 이름을 부를 때 불로 응답하는 신이 그가 하나님임을 확인하자는 제안을 하고 백성들은 옳다고 화답한다.
  3) 먼저 바알의 제사장들이 그들의 신을 불렀다. 정오가 되도록 답이 없자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을 향해 약을 올린다.(묵상하는지 혹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길을 행하는지 혹은 잠이 들었을 수도 있으니 큰 소리로 부르라고 말한다.)
  4) 바알의 선지자는 큰 소리로 불러도 대답이 없자, 자신의 몸에 피를 흐르게 하면서까지 부르지만 저녁 때까지 응답이 없었다.
  5) 이제 엘리야가 나선다. 백성들을 가까이 부르고, 제단을 수축하게 하고 열두개의 돌을 취하였다. 그 돌로 제단을 쌓게 하고 제단 주변에 도랑을 파게 했다.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통 넷에 물을 채워 번제물과 나무에 붓기를 세 번이나 했다.
  6) 엘리야가 여호와께 내게 응답하소서 외친다.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 번제물을 태움.
  7) 백성들이 보고 엎드리어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을 하고,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명하여 바알의 제사장들을 모두 잡아 죽이도록 했다.

4. 갈멜산 이후
  1) 엘리야는 아합에게 올라가서 먹고 마시라고 권면한다. 이제 큰 비가 올 것을 알린다.
  2)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한다. 사환을 일곱 번을 보내 바다 쪽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확인한다.
  3) 바다에서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난다는 것을 사환에게 듣고는 아합에게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라고 알린다. 곧 큰 비가 내리게 된다.
  4)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해 그가 이스르엘로 가는 동안 아합 앞에서 달려갔다.

[정리2. 내용의 재구성]

본장에서는 여호와께서 비를 막으신 후 3년 만에 다시 사마리아 땅에 비를 내리시는 이야기다.


3년간의 가뭄은 너무 심한 것이어서 왕의 가축들마져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이 되고 만다. 이에 다급한 아합은 친히 오바댜를 데리고 나와서 물 근원과 시내 주변을 찾아 다닌다. 혹시나 가축들을 먹일 꼴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이 때, 3년간 숨어지내던 엘리야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 아합을 만나고자 먼저 오바댜에게 나타난다.(오바댜의 역할은 그 동안 아합이 엘리야를 얼마나 찾아 다녔는지와 아합의 통치 아래에서도 오바댜와 같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하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엘리야를 만나 아합은 다짜고짜 이스라엘의 가뭄이 엘리야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엘리야는 나 때문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집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고는 바알을 제사장을 불러 모으라고 제안한다. 아합은 이에 응하여 모든 백성들에게 공지하고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으로 불러 모은다. 많은 백성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궁금하여 함께 모인다.


엘리야의 제안에 따라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증하는 시합을 한다. 먼저 바알의 선지자들이 오전 오후 바알을 불렀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후 엘리야가 제단을 수축하고 제물을 얹고 물을 붓는다. 그리하고는 여호와 하나님을 부른다. 그러자 불이 내려 제물을 태우고 사람들은 두려워 여호와를 경외한다. 엘리야는 사람들로 하여금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장들을 모두 죽이도록 한다. 완전하게 여호와 하나님과 엘리야의 승리로 끝난다.


그 이후 엘리야는 아합에게 비가 올 것을 알리고 먼저 성으로 마차를 타고 가도록 한다. 정말 많은 비가 와서 엘리야가 마차를 타고 간 아합보다 앞서서 갈 정도였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엑스트라로 보이는 <오바댜>는 엑스트라가 아니다.

본장에서 중요한 인물은 엘리야와 아합이다. 갈멜산의 대결도 결국은 이 둘간의 대결로 보여진다. 그런데 등장하지 않아도 될듯한 <오바댜>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사람은 이름도 낯설고  본장이후로  등장하지 않는것 같다. 그런데 잠깐이기는 하지만, 오바댜는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고 엘리야를 아합과 만나도록 주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바댜의 등장은 당시 아합의 통치 속에서도 하나니믈 경외하는 신실한 백성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강조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아합의 신하로 있으면서도 이세벨이 선지자들을 죽일 때, 죽음을 무릅쓰고 선지자들을 50명씩 굴에 숨겨서 살려주었던 인물이다.

경건한 사람은 모두 순교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합의 편이되어 하나님을 등진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세속의 정부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은 살아있다. 사단의 가장 가까운 곳에 그 사단을 대적하여 굳건하게 서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이러니 같지만 사살이다.

아합과 이세벨의 악한 권력 속에서도 오바댜는 생존했고, 그로 말미암아 더 많은 주의 백성들이 생존할 수 있었다.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하만의 계략이지만) 때 유대인들은 다 전멸할 수 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이었을 때, 에스더는 왕의 부인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하나님은 오물 속에서도 꽃을 피우시는 분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한, 완전한 어둠은 없고 완전한 악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빛과 생명,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생존하여 때를 기다린다.

 

2. 성도의 싸움은 박빙의 싸움이 아니라 넉넉한 싸움이다.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의 싸움의 관전 포인트는 누가 이기고 졌느냐에만 있지는 않다. 그 과정이다. 바알의 선지자가 어떻게 졌고, 하나님의 선지자인 아합이 어떻게 이겼는지의 과정을 봐야 한다.

바알의 선지자는 450명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시간을 썼음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여 피를 흘렸는대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의 열심이나 노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야는 달랐다.

엘리야는 먼저 제단을 수축했다. 그리고 그 수축하는 과정에서 12개의 돌을 가지고 올 것을 말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메시지화 하는 것이다. 또한 제물과 나무 위에 물을 부으라고 한다. 넉넉히 부어 완전히 젖도록 했다. 인간적인 노력과 잔기술로는 불이 붙을 수 없도록 했다. 하나님의 불이 아니고서는 불이 타오를 수도 없게 한 것이다. 그리고 엘리야의 짧은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바로 응답하셨다. 이것이 세상의 싸움과 다른 싸움이다.

넉넉한 싸움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가 세상에 대해서 좀 더 관대할 수 있지 않을까?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조기 축구 하는 사람들을 상대할 때, 넉넉한 마음으로 하지 않을까? 상대팀이 사람이 많아도, 아니 점수를 몇 점 주어도, 작은 파울에도 관대해 지지 않을까? 왜? 실력이 다르니까? 수준이 다르니까?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대해서 좀 더 여유로울 수는 없는지...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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