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에 대한 본격적인 잘못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7장부터 아합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만 아합의 본격적인 죄의 대목은 구체적으로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20장부터 본격적으로 나오는데 아마 대표적인 죄만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리1. 내용 정리...]

1. 아랍의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침략하려고 한다.
  1) 벤하닷이 32명의 왕과 함께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아합 왕의 은금과 아내와 자녀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하자, 아합은 내 것은 다 벤하닷의 것이라고 했다.
  2) 벤하닷이 다시 사신을 보내 내일 당장 내가 왕과 신하들의 집을 수색해서 마음에 드는대로 가져가겠노라고 말함.
  3) 아합은 이 문제를 장로와 백성들에게 알리자, 모두 반대함으로 벤하닷의 사자들에게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함.
  4) 벤하닷은 이스라엘을 향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자, 이스라엘의 왕은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응함. 이 말에 벤하닷이 전쟁을 준비함.

2.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1차 전쟁에서 승리함.
  1)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나타나 이 아람의 큰 무리를 이기게 하시겠다고 함.
    그래서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을 알게 하겠다고 하심.
  2) 아합은 누구를 통해서 그리 하겠는가의 질문에 선지자는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로 하겠다고 하시고는, 왕이 직접 싸움을 시작하라고 한다.
  3) 청년의 숫자는 230명이고, 그 외에 백성들의 수는 7000명 이었다.
  4) 이 청년들이 아람에게 나아가자, 아람은 이들을 우습게 알고 있다가 아람이 전쟁에서 패함. 아람은 이스라엘에게 쫓겼고 벤하닷은 말을 타고 간신히 도망침.

3. 이스라엘과 아람의 2차 전쟁
  1) 그 선지자가 아합 왕에게 나아가 아람이 내년에 다시 전쟁을 일으킬텐니 전쟁을 준비하라고 함.
  2) 아람의 신하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산의 신이지 평지의 신은 아니므로 평지에서 싸우면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시 전쟁할 것을 제안함. 왕은 그 제안대로 준비함.
  3) 해가 바뀌어 전쟁을 하려고 마주 대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자손과 아람의 병력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4) 선지자는 이 평지 전쟁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심으로 그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겠다고 한다.
  5) 또 다시 이스라엘이 아람을 격파하고 벤하닷은 다시 도망하여 신하들과 골방에 숨는다.

4. 아합 왕의 결정적인 잘못들
  1) 벤하닷이 아합 왕에게 생명을 구걸하자, 아합은 벤하닷을 자신의 형제처럼 대함
  2) 벤하닷은 자신의 부친이 빼앗은 모든 성읍을 돌려주고, 다메섹에 이스라엘 왕을 위한 거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받고는 벤하닷을 살려주었다.
  3) 한 선지자가 다른 친구로 하여금 자신을 치라고 한 것을 거절하자 사자에 의해 죽게 됨.
  4) 다른 친구가 침으로 상하게 된 그 선지자가 왕에게 변장하고 나아가서 상황을 말함.
     전쟁 중에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한 사람을 맡기며 그를 잃으면 그 생명으로 대신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은 한 달란트로 대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가 어찌 하다가 맡은 사람을 잃어 버렸다고 하자, 아합 왕은 네가 약속한 것이니 네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판결한다.
  5) 선지자는 변장한 것을 벗어 버리자, 왕은 그가 선지자 중 한사람인 것을 알게 된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네게 맡긴 벤하닷을 네가 임으로 놓아주었으니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들은 그의 백성들을 대신할 것이라고 말함.
  6)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른다. 

[정리2. 내용의 재정리]

아합 왕 시대에 아람 왕 벤하닷의 침공이 있게 된다. 당시 이스라엘에 비해 아람은 강력한 국가였다. 벤하닷은 사람을 보내 이스라엘을 떠 보는데, 이스라엘이 순순히 나오니까 당장 가서 눈에 보이는대로 가져가겠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약국이라고 하지만, 무례할 정도의 방식에 이스라엘의 백성과 장로들은 반발하고 결국은 전쟁을 할 것을 결정한다.


승산이 없는 전쟁일듯 했지만, 한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 주면서 승리할 것을 약속해 준다. 그리고 젊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왕이 직접 지휘하면서 나갈 것을 지시한다. 선지자의 방식대로 아람을 선제 공격하자 아람은 의뢰로 쉽게 무너지고 만다. 첫 전쟁에서의 승리를 얻게 된 것이다.

선지자는 흥분한 아합 왕에게 나타나서 내년에 다시 전쟁이 있을 것이고 그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 힘을 길러야 한다는 제안을 한다. 다음 해 이스라엘에게 진 아람은 군사를 정비하고 전략을 다시 세운다. 평지에서 전쟁하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번 전쟁에서도 승리할 것을 대언한다. 역시 상대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람을 격파하고, 아람의 왕 벤하닷은 신하들과 함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골방에 숨게 된다. 두 번째 완전한 승리가 눈 앞에 온 것이다.


그러나 아합은 여기서 잘못을 행한다. 목숨을 구걸하는 벤하닷을 살려주고, 그의 타협안에 결재를 한다. 뺏긴 성읍을 돌려주고, 다메섹에 아합을 위한 도로를 만들겠다는 제안에 넘어간 것이다. 그렇게 아람 왕을 살려줌으로 결국은 훗날 아람이 가시처럼 이스라엘을 괴롭히게 되고 만다.


이런 아합의 교만과 방만함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이다. 한 선지자는 자신을 전쟁 중에서 온 사람처럼 변장하고는 자신이 맡아야 할 사람을 제대로 맡지 못했다는 것으로 판단을 받으러 온 것처럼 아합 왕 앞에 섰다. 그의 이야기는 바로 아합 왕 자신의 이야기 임에도 불구하고 아합은 자기 자신의 죄를 자신이 정죄하고 만다.


하나님은 벤하닷의 목숨을 아합에게서 찾고, 아람 사람의 목숨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찾겠다고 하신다. 이로 인해 아합은 근심하며 사마리아로 돌아갔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아합의 대표적인 죄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으로 그가 교만해 진 것이다.

아합은 아람과의 어려운 싸움을 싸워야 했다. 그런데 그 싸움에서 하나님은 아합과 이스라엘의 승리를 예견하셨고, 또 이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지시해 주셨다. 그대로 따랐을 때, 이스라엘은 승리할 수 있었다.

아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산의 신으로만 보고, 평야에서의 전쟁은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할 때에도 하나님은 아람의 교만을 깨뜨리고 이기게 하신다. 하나님의 도우심이며 승리하게 하심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고, 아합의 참 모습은 이 때 나타난다. 그는 하나님의 완전한 승리의 상황(벤하닷을 죽여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상황)에서 거드름을 피운 것이다. 마음이 높아진 것이며, 마치 자신이 아람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는데도 말이다... 아합은 벤하닷을 형제라고 하고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를 살려서 내보낸다. 

승리와 영광이 자신의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있을까? 부모의 풍요로 말미암은 풍요가 마치 자신에게 능력이 있어서 온 풍요처럼 생각하는 자식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또 있을까? 어리석은 자는 절구에 머리를 넣고 빻아도 그 미련함이 벗겨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합이 딱 그 꼴이다.

우리는 잘 분별해야 한다. 내 실력인지 주변 누군가의 도움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인지. 하나님의 도움을 인식하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람이 모인다. 그러나 자기 혼자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곁에는 사람이 떠난다. 심지어 하나님도 떠나시는 법이다.

2. 자기가 자신을 정죄하는 사람, 아합.

아합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했지만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 선지자가 동원된다. 그는 하나의 쇼를 한다. 마치 전쟁중에 부상당한 병사처럼 자신을 변장하고는 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을 받으려고 아합 앞에 나타난다.

전쟁 중에 누가 나에게 사람을 맡겼는데, 그 사람을 잃게 되면 내 목숨으로 갚든지 아니면 은 한 달란트로 갚든지 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이 사람이 전쟁 중에 경황이 없어서 그만 그 사람을 잃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에 대한 판단을 묻는 것인데, 아합은 그것은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이 맡겨놓은 벤하닷을 풀어준 사건이라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한채, 맡긴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당연한 판단이다.

그런데 결국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행위를 판단한 것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은 아합의 판결대로 아합에게 판결하셨다. 벤하닷의 생명을 대신해 아합의 생명을, 아람 사람의 생명을 대신해 이스라엘의 생명을... 얼마나 가슴아픈 판결인가?

나는 종종 내 아들의 그릇된 행동을 판결하면서, 그 아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판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깜짝 깜짝 놀란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때는 나를 생각해서라도 아들의 형량을 감해주곤 한다. 나도 그런데... 누군가를 판단하고 정죄하려고 할 때, 혹 그것이 나를 향한 판단과 정죄가 되지 않는가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형량을 너무 과다하게 잡지는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혹시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것이 인내와 사랑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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