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교회 한가족 예배(20156.1.3)

제목: 성도를 감싸주시는 하나님

본문: 시편 1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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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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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박국 1:1-9 소통되는 하나님의 권위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하박국은 하박국 선지자가 받은 경고의 계시를 말한다. 계시의 형식은 하박국의 질문과 하나님의 답변 형식으로 진행된다. 하박국은 그렇게 도와달라고 기도했는데 왜 들어주시지 않는지, 왜 악과 불의가 일어나고 있는데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는지 묻는다. 하나님의 답변이 이어지지만 하박국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은 아니다. 


절별 해설

1:2 <<언제까지 들어 주지 않으시렵니까?>> 하박국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첫 번째 내용이다. 그토록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음에도 오랫동안 묵묵부답이신 하나님에게 따지듯이 항변하고 있는 것이며, 선지자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답답함으로 가득하다.               


1:3,4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내버려 두십니까?>> 악한 자가 활개를 치고 불의와 폭력이 난무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이와 같은 악에 대해새 아무런 심판을 행하지 않는가에 대한 항변이다. 이런 이유로 하박국은 욥과 함께 성경에서 <신정론> 문제를 제기한 본문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1:5 <<내가 놀라운 일을 하겠다>> 하나님게서 하박국에게 말하는 놀라운 일이란, 유다를 구원하기 위한 놀라운 일을 말함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악인들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되는 놀라운 일을 말함이다.


1:6 <<내가 바벨로니아 사람을 시켜>> 당시 바벨로니아는 앗시리아의 니느웨를 멸망시키고, 갈그미스에서 애굽이 주도하는 연합군을 대파함으로 신바벨로니아 제국을 건설하는 강대국이다. 하나님은 장차 바벨로니아 제국을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1:9 <<그들은 모두 싸우러 온다>> 바벨로니아가 전쟁을 할 때, 전력을 다하여 싸운다는 것을 말한다. 바벨로니아는 잔인하며(7절) 날쌔고 사납다.(8절) 그 군대는 빠르게 행군하여서 적을 무찌르며 많은 포로를 잡아가는 전쟁에 강한 민족이다. 


기도

하나님, 하박국이 하나님을 향해 외쳤던 항변이 저의 항변이기도 합니다. 불의하며 악한 세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답답함이기도 합니다. 하박국 묵상을 통해 마음의 답을 얻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하박국은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께 무례한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러실 수 있는지에 대해서 따진다. 특히, 악과 불의 폭력이 횡행하는데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시는가 힐난하는 듯 하기도 하다. 선지자가 하나님을 향해서 이런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경건한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낯설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의 답답함에서 나오는 울분과 억울함의 항변을 막으시거나 책망하지 않으셨다. 선지자의 입을 막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읽도록 하셨다. 그런 측면에서 성경의 하나님은 권위있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들의 목소리를 소중히 여기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권위는 우리의 억울함에 대한 호소를 품어 안으시는 권위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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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훔 2:8-13 홀연히 임한 심판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본문은 계속해서 니느웨의 멸망에 대한 내용을 이어간다. 니느웨의 풍요로움이 모두 사라져 메마르고 금과 은은 모두 약탈당한다. 모든 세상을 사자처럼 호령하던 니느웨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다. 그들은 오히려 두려움에 떨게 되며, 종국은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일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계획하시고 실행하신 일이다.  


절별 해설

2:8 <<니느웨는 옛적부터 연못과 같았으나 이제는 물이 빠져 나가고 있다>> 니느웨가 물이 풍요로운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물이 빠져 나가 메마른 곳이 됨을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물만의 문제는 아니고 니느웨가 가지고 있는 많은 풍요함들이 한 순간 물이 빠져나가듯이 없어서 메마르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2:9 <<보물이 끝도 없이 많다>> 니느웨가 가지고 있던 물질적인 풍요가 얼마나 컸는지를 말하는 구절이다. 이와 같은 표현이 오히려 그 많던 것을 다 빼앗기고 약탈당한 니느웨의 운명을 더욱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2:10 <<마음이 녹아 내리고, 무릎이 후들거린다>> 파괴자들의 침략으로 인해 두려움에 휩쌓인 니느웨 백성들의 공포심을 표현한 말이다. 니느웨는 그 많던 은금을 빼앗기고, 폐허가 되고 만다. 너무 짧은 시간의 멸망으로 인해 백성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창백해 진다.  


2:11 <<사자들의 굴이 어디에 있느냐?>> 모든 동물들을 제압하고 호령하는 사자와 같던 니느웨의 거처가 어디로 사라졌는가 반문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자기의 새끼들을 위해서 많은 먹이를 잡아다 굴을 가득 채웠던 그 사자의 거처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12절) 조롱하는 것이다. 


2:13 <<니느웨야, 내가 너를 치겠다>> 역사적으로 니느웨를 멸망시킨 나라는 바벨론과 메데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의지가 담겨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바벨론과 메데를 통하여 니느웨를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렇게 진행되었다. 


기도

주여, 우리는 모든 만물과 만사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소서. 의인의 구원도 악인의 심판도 하나님의 손에 있는 줄 알고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니느웨의 멸망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던 무리들의 심판과도 유사하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역사의 마지막 날, 세상의 성 바벨론이 홀연히 멸망하게 되듯이 모든 나라를 호령하던 앗수르는 바벨론과 메데에 의해 멸망당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은 생각지 못한 순간에 온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상적인 일들을 하면서 아무 준비 없이 주님의 심판을 맞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향해서 깨어있으라고 요청하셨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주님이 더디 오리라 생각하여 자신이 마땅히 해야할 바를 잊고 살아가다 큰 봉변을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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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장 정리]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에...


  * 26장의 때와 같은 시대로 보이나, 성경의 각주에서도 보여주고 있듯이 <여호야김>은 시드기야를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27장은 계속해서 시드기야를 유다의 왕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3절, 12절, 20절)


2.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걸고, 시드기야 왕을 보기 위해서 온 사신들의 손에 그것을 주어 그들의 왕에게 전해주도록 한다.(에돔, 모압, 암몬, 두로, 시돈의 왕에게)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전한다. 


3. 하나님은 큰 능력으로 땅과 지상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자에게 그것을 주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섬기게 했다.(5-6절) 그래서 정한 기한까지 바벨론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 바벨론이 이지역을 점령하고 다스리게 될 것임을 예언하는 것인데, 그것을 마치 창세기 1-3장에서 아담에게 에덴을 주었다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난 것을 생각나게 하는 말씀을 하셨다. 이 땅도 원래 하나님께서 옳은 사람들에게 주셨는데, (그들이 죄악을 행함으로 그들에게서 빼앗아 자기 백성을 징벌하기 위한 또 다른 종 바벨론) 지금은 바벨론에게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정한 기한까지는 바벨론을 섬기게 될 것이다.


4. 만약, 바벨론을 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망하기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벌할 것이다. 그리니 선지자나 복술가들이 바벨론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을 믿지 말라. 그들이 정작 너희들을 멸망하게 할 것이다. 

 

  * 하나님께서 지금 역사를 주관하시되, 그 힘을 바벨론에게 일정 기간 주셨음을 말한다. 따라서 그 앞에 굴복하게 하신다. 그렇지 않다면 그 민족과 나라는 망하게 되는 것이다. 괜한 민족주의나 막연한 소망을 주는 정치인들과 선지자의 말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5.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 시드기야에게 이 말을 전하면서, 바벨론 왕을 섬기면 살것이라고 전한다. 그러면서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말 것을 당부한다. (14절) 


6. 하나님은 거짓 예언을 하는 선지자들 멸망시킬 것임을 말하신다. 왜냐하면 이들은 바벨론에 빼앗겼던 여호와의 성전의 기구가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그런식의 예언을 했다. 이런 예언을 믿는 것은 이 성을 황무지로 만드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들이 참 선지자라면, 빼앗긴 것이 돌아올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있는 것이 빼앗기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옳을 것이다.(바벨론의 2차 침략기에 빼앗긴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주전 598년 / 여고니야(여호야긴) 20절)


7.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돌보시는 날까지 그곳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2절)



[묵상 한 모금]


시드기야 왕 시대에 정치적 분위기는 바벨론을 대적하고 기회만 온다면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선지자들은 오래지 않아 바벨론에 빼앗겼던 성전 물건들을 도로 가지고 올 수 있을 것처럼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고, 정치적으로 반 바벨론적 여론이 컸다.(물론 물리적으로는 바벨론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지만) 종교적 희망주의, 정치적으로는 반바벨론 주의.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시대적 흐름과 다른 메시지를 전하신다. 유다에게 준 땅을 빼앗아 바벨론에게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바벨론을 섬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종교적으로 비관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빼앗겼던 성전 기물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남아 있는 것들이 보존되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예레미야는 말한다. 그 당시 예레미야는 종교적으로 회의주의자였을 것이고, 정서적으로는 반민족주의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자의 태도였다. 


물론 바벨론의 지배는 제한적이다. 정한 시기가 있다. 그 때까지 그렇게 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다르게 진행될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 종교적 낙관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반민족주의적 메시지를 전하면서, 본인이 혜택을 입었다면 그것은 권력에 아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인이 오히려 고난과 질타를 받았다면 그의 메시지는 주의깊게 들어볼 필요가 있다. 선지자적 메시지가 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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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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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누구의 죄가 더욱 크냐로 심판의 우선권을 두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먼저 고칠 것인가로 징계의 우선권을 두신다. 



[성경한장:예레미야 25장.]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4째 해>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유다의 모든 백성에 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다.(1)


  *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4년째는 주전 605년을 말한다. 요시야가 므깃도 전투에서 애굽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그 때가 609년이다. 그 이후로 4년이 지났으니 605년이다. 주전 605년에는 세계사 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쟁이 있었다. 그것은 애굽과 바벨론과의 전쟁인 '갈그미스 전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세계의 판도는 변화되기 시작했다.애굽의 영향력은 축소되고 바벨론의 영향력이 근동지역에서 극대화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유다는 그로 인한 위기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된 것이다. 


2. 내가 요시야 왕 13년부터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해서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않았다.

3.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않고 귀를 기울여 듣지 않았다. 

  -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그 땅에서 살 것이다. 우상을 버려 하나님의 노여움을 일으키지 말라 하였으나 듣지 않음.


  * 유다가 그렇게까지 된 데에는 요시야 13년부터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유다가 귀담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한 길에서 우상 숭배에서 돌아오도록 요청했으나 네가 듣지 않았다. 


4. 그래서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을 쳐서 진멸하여 놀림거리와 웃음거리가 되게 할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5.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다. 70년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길 것이다.


  * 그래서(완악하게 듣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보내 유다를 쳐서 진멸하고 놀림거리와 웃음거리를 만들어 버리시겠다고 하신다. 유다는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로 살게 될 것이다. 


6. 여호와의 말이다. 70년이 마치면,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리라.


  * 그러나 70년의 바벨론 포로기를 지나고 나면, 너희들은 돌아올 것이고 너희를 압제한 바벨론 제국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바벨론도 죄악이 크기 때문이다. 바벨론이 이전에는 유다를 치는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그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도 반드시 받게 됨을 잊지 않는다. 


7. 그래서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그들의 행위와 손이 행한대로 그들에게 갚으리라. 


  1) 내 손에서 진노의 술잔을 받아 가지고 너를 보내는 바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 


  2) 먼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고관들로 마시게 하였더니,(18절)

  3) 애굽의 왕 바로와 그의 신하들과 그의 고관들과 .... 블레셋, 아스글론, 가사, 에글론, 아스돗...

  4) 에돔과 모압과 암몬

  5) 두로, 시돈

  6) 드단, 데마, 부스, 아라비아, 시므리, 엘람, 메대 모든 왕, 북쪽 원근의 모든 왕, 세삭 왕

  7) 내가 너희 가운데 보내는 칼 앞에서 마시며, 취하여 토하고 엎드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라 하셨다.  

  8) 잔을 받기를 거절하거든... 반드시 마셔야 하리라. 


8. 보라 재앙이 나서 나라에서 나라에 미칠 것이며 큰 바람이 땅 끝에서 일어날 것이라. ...



[묵상 한모금]


본문의 이야기는 국제정세가 애굽에서 바벨론으로 기울고 있는 시점에 결국 유다도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하고 정복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힘의 결과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간섭이 있는 것임을 본문은 지적한다. 


유다의 죄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죄로 말미암아(악한 길을 가고, 우상을 숭배함) 이들을 벌하기 위해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바벨론이 옳고 느부갓네살이 탁월해서가 아니다. 시기의 문제다. 지금 하나님은 유다를 징계하시기를 원했고, 그 곁에 바벨론이라는 회초리(몽둥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벨론이 자랑할 것은 없다. 왜냐하면 바벨론이 유다보다 더 옳아서가 아니라, 지금 유다가 매를 통해서 변화되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 유다를 개선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다. 물론 유다를 개선하시고 나서는 바벨론을 징벌하실 것이다. 그는 더욱 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양자간의 죄의 경중만으로 심판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유다의 죄보다 바벨론의 죄가 더욱 컸지만, 하나님은 지금 바벨론이 아닌 유다를 심판하셨다. 이는 바벨론을 심판하지 않는다거나, 바벨론이 의롭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바벨론의 심판보다는 유다의 회복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유다는 이로 인해 오해하지 말아야 하며(하박국은 오해했다.), 바벨론은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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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5장] 나보다 선하고 괜찮은 사람이 혹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그 고난이 나에게 오지 않았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고난은 곧 나에게도 더 크게 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장면을 목격한 그 순간(깨닫게 된 순간: 나도 괜찮은 사람에게 왜 저런 일이 있는가?) 그 때가, 우리 자신에게 닥칠 더 큰 재앙을 두려워하며 겸손해야 할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것은 재앙의 신호탄이니까요.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유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하심과 70년간 바벨론의 왕을 섬길 것이다.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주신 말씀.

  2) 요시야 13년부터 지금까지 여호와의 말씀을 예레미야가 꾸준히 일렀으나 순종하지 않음.

   (1) 너희는 각자의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면 해를 당하지 않으리라.

   (2) 그러나 너희들은 여호와의 말을 순종하지 않음으로 스스로를 해한 결과가 되었다.

  3) 여호와께서 북방 종족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 이 땅과 주변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을 놀램과 비웃음 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할 것이라. 

  4) 모든 즐거운 소리가 끊어지고, 70년간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5) 그러나 70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과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벌하리라. 

  6) 하나님께서 그 땅을 향하여 예언하고, 예레미야가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2. 모든 나라에 내리는 진노의 술잔을 마시게 하라.

  1)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술잔을 받아가지고 보내는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

  2)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친 듯이 행동하리니... 이는 내가 그들 중에 칼을 보냈음이라.

  3) 진노의 술잔을 마시게 할 민족과 나라

   (1)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고관들로 마시게 하라. 

   (2) 애굽의 왕 바로와 그 신하들과 그의 고관들과 그의 백성들, 모든 섞여 사는 민족들

   (3) 우스 땅, 블레셋의 여러 도시의 백성들, 에돔, 모압, 암몬, 두로, 시도, 드단, 데마, 부스, 아라비아, 광야에서 섞여 사는 민족들의 모든 왕과, 시므리, 엘람, 메대, 북쪽 원근의 모든 왕과 지면에 있는 세상의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 세삭 왕은 그 후에 마시게 하라. 


  4) 너는 이 진노의 술잔을 이 민족과 나라들 앞에 마시게 하되, 혹 마시기를 거절하거든 반드시 마셔야 한다고 말하라.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성에서부터 재앙을 시작하셨은 즉 어찌 능히 형벌을 피할 수 있겠는가?

  5) 여호와께서 자기 민족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민족과 다투기로 작정하셨다. 악인을 칼에 내어 주신다. 

  6) 보라 재앙이 나서 나라에서 나라에 미칠 것이며, 큰 바람이 땅 끝에서 일어날 것이다. 죽임을 당하는 자가 많을 지라도 애곡하거나 시신을 거두어 주는 자가 없을 것이다. 

  7) 목자들은 도망할 수 없겠고, 양떼의 인도자들은 도주할 수 없으리라. 젊은 사자가 그 굴에서 나와 분노와 그의 극렬한 진노로 말미암아 땅이 황폐하게 될 것이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내 방식으로 풀어쓰기]


하나님께서 유다의 죄에 대한 지적과 심판에 대한 말씀이다. 오늘 본문에서 좀 다른 것은 예언의 때를 정확하게 언급한다는 것이다. 여호야김 넷째 해라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13년부터 그 때까지 부지런히 백성들의 죄를 하나님을 대신해서 언급했으나, 이 백성들은 순종하지 않아 결국 화를 자초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 다른 점은 그 심판의 시간이 70년이라는 것을 언급하신다. 바벨론 왕을 70년간 섬길 것이라는 제한을 두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여기에서 예레미야에게 유다 백성에 대한 심판 말고, 유다를 시작으로 해서 모든 주변 열방들에 대한 심판도 함께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 진노의 술잔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 이름으로 된 성읍도 심판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볼 때, 그 외의 나라에 대한 심판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심판하실 때 모든 백성과 싸우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젊은 사자가 굴에서 나와 모든 땅을 황폐화시키듯이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나라에 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러게 받는 교훈과 묵상]


1.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되 70년이라는 제한을 두셨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라도 심판하신다. 그런 측면에서 이스라엘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마치 심판 받지 않을 것처럼 자만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언약도 있고 성전도 있고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최종적으로까지는 심판하지 않으리라고 오해했던 것 같다. 예레미야는 그런 이스라엘의 기대를 박살내 버린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멘붕에 이를 때까지.


그러나 오늘 본문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영원히 멸하기를 원하시지는 않으신다. 70년이라는 제한을 두신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육체적 이스라엘 모두가 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려주시고 그 중에는 가라지도 함께 있었다는 것도 보여주신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니은 알곡과 가라지, 참 백성과 그렇지 않은 백성을 구별해 내신다. 그리고 알곡을 밟아 완전히 으깨지도록까지 하시지는 않는다. 깨닫고 알게하여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기계적으로 안심할 수 있게 하시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의 행동과 하나님의 감정에 따라 운명을 최종적으로 바꾸시지도 않는다. 안심할 수 없으면서도 영원한 돌봄의 관계가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긴장으로 존재한다. 


2. 유다의 심판은 모든 열방의 심판의 시작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이방의 악한 나라를 통해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실 때, 이스라엘은 억울하다고 말했을 것이고, 이방 나라들은 오히려 방자히 행동했을 것이다. 하나님을 무시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신 하나님의 이유가 있으시다. 이방의 악한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책망할만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더 악했다. 그러나 덜 악한 이스라엘을 책망하심으로서(이방인에 의해서) 하나님은 그 이방인들을 명백하게 심판하실 근거를 마련하시게 된다. 상대적으로 덜 죄를 지은 자기 백성도 심판하셨다면, 상대적으로 많은 죄를 지은 이방 민족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뒤 따르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시작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열방에 대한 심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에 불과했다. 


우리는 누군가 심판을 받을 때, 잘 봐야 한다. 그가 상대적으로 덜 악한 자인데도 불구하고 심판을 받고 있다면, 오히려 더 악한 우리는 두려워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심판이 나에게 먼저 오지 않고 작은 자에게 먼저 왔다는 것은 그것을 보고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지막 사인인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겸손할 수 있어야 하며, 주변의 작은 일 속에서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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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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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5장] 성경적 역사의식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낙관의 시대에 교만을 지적하고,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는 그 시대에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는자는 다음 시대를 예비할 수 있는 복이 있다.

 

[정리1. 본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자]

 

1. 예루살렘의 멸망: 히스기야 왕이 잡혀감
  1) 시드기야 9년 11째 달.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군대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옴
  2) 시드기야 11년까지 포위함. 모든 병사들이 밤중에 도망함.
  3)갈대아 군대가 도망치던 왕을 쫓아가 여리고 평지에서 잡음. 모든 군대는 그를 떠나 흩어짐.
  4) 시드기야를 사로잡아 바벨론 왕에게 데려가고,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 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베론으로 끌고 갔다.

 

2. 예루살렘의 멸망: 남은 자를 데려가고, 성벽을 허물고 성전의 기물을 가져감 
  1)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19년 째에 왕의 신복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름.
  2)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태움, 성벽을 험.
  3)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는 모두 사로잡아감. 느부사라단이 비천한 자들은 그 땅에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셨다.
  4) 갈대아 사람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놋으로 된 물건들을 바벨론으로 가져갔다.(두 놋 기둥과 받침, 놋 바다, 가마들과 부삽, 부집게, 숟가락, 모든 놋그릇, 불 옮기는 그릇, 주발 등 금이나 은으로 만든 모든 것을 가져감. 헤아릴 수 없는 양의 놋을 가져감)

 

3. 예루살렘의 멸망: 유다 백성들이 잡혀감
  1)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성중에서 여러 지도자들을 60여명을 잡아 가지고 바벨론 왕에게로 데려감
  2) 바벨론 왕은 하맛 땅 립나에서 이들을 다 쳐서 죽임당함.
  3)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4. 예루살렘의 멸망: 바벨론은 유다에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세움
  1) 바벨론이 남긴 사람만 유다 땅에 남아 있었다.
  2)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가 관할하게 하였다.
  3) 유다의 군대 지휘관과 그를 따르는 자가 바벨론이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삼았다는 것을 알고, 그달랴에게 찾아왔다.(이스마엘, 요하난, 스라야, 야아사니야...등 이들과 따르는 무리들)
  4) 그달리야가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면서 바벨론 왕을 섬기라고 요청함.
  5) 나중에 이스마엘이 부하 열 명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였다. 그리고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였다.
  6) 이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애굽으로 도망쳤는데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했기 때문.

 

5. 예루살렘의 회복(?): 여호야긴의 회복
  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지 37년 만에 옥에서 나왔다.
  2)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죄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다.
  3) 그가 쓸 것을 날마다 왕에게서 받아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했다.

 

[정리2. 정리된 내용을 내 말로 다시 풀어보자]

 

유대의 멸망을 다루게 되는 장이다. 시드기야 9년에 바벨론은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고, 3년간 예루살렘 성을 애워쌓으므로 결국 예루살렘 성에 있던 왕과 신하들은 견딜 수 없게 된다. 도망치려던 것이 발각되어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 왕에게 끌려간다.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눈까지 뽑고 바벨론으로 데리고 간다. 그와 함께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은 예루살렘을 완전히 훼파한다. 모든 귀인들의 집은 불태우고, 성벽은 헐었으며 성전에 있는 놋과 금과 은으로 된 것들은 모두 거두어 바벨론으로 가지고 갔다.


포로로 잡혔던 사람 중에는 60여명의 지도층 인사들이 있었는데 이들도 바벨론 왕에게 잡혀 왔으나, 왕은 이들을 모두 죽이도록 했다. 이것은 포로된 자의 운명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바벨론 왕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남겨 놓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 중에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세워놓았으나, 유다의 군벌들이 그달리야의 친바벨론적 태도에 불만을 가지고, 그 중 이스마엘에 자기 병사들과 함께 그달리야를 죽인다. 그리고 미스바에 있던 유다인들과 갈대아인까지 모두 죽인다. 그리고 갈대아 인들의 복수가 두려워서 애굽으로 도망치기에 이른다.


유다는 정치적 공백의 시간을 맞게 된다.

본 장의 마지막은 포로로 잡혀갔던 여호야긴 왕이 잡혀간지 31년 만에 옥에서 나와 왕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회복하였음을 기록하는데, 이는 앞으로 유다의 상황도 이와 같이 회복될 것을 염두해 두고 표현한 거라 보여 진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유다의 멸망이 완전한 멸망임을 보여준다.

 

시드기야 왕이 도망하다가 잡혀, 자신의 아들들의 죽음을 봐야 했고 자기 자신은 눈이 뽑히는 고통 속에서 애굽으로 끄려가는 인생이 되었다. 모든 지도층들은 거의 포로로 잡혀가거나 잡혀 죽게 된다. 성벽은 허물어지고,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든 성전의 물건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지게 된다.

 

바벨론의 왕이 남은 자들을 위해서 세워놓은 유다의 지도자인 그달리야조차 옛 유다 세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갈대아 인들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생활한다. 유다의 황폐함을 보여주며, 유대에 남아 있는 자들의 비천함과 비참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제 북이스라엘도 남유다도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말씀하셨던 성전도 훼파되었으며, 다윗의 언약도 파기된것처럼 이스라엘의 영원할 것 같은 왕조도 끊어지고 만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 분의 뜻을 포기하신 것 같기도 하고, 성취하시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유다의 멸망의 상황에서 보여지고 있는 현상이다. 이와 같은 일이 그 당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신앙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 우리는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유다는 완전히 망했다. 이 현상을 토대로 성전의 의미와 다윗 언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다른 해석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그 이후 선지자들에게 새로운 해석을 하게 한 것이다. 해석은 이렇듯 현장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2. 여호야긴의 회복에 대한 기사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완전한 멸망으로 마친것 같은 유대의 역사에 열왕기하 기자는 하나의 사건을 덧붙인다. 여호야긴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포로로 잡혀간지 37년 만에 옥에서 풀려 존귀한 자리를 회복하며 평생을 왕의 진미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완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열왕기하 기자는 여호야긴 왕의 회복 사건(작은 사건이지만)을 통해 유다에 다시 한 번 회복의 기회가 시작되고 있다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고 그것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이 열왕기하를 기록한 것이다. 그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았고, 그 희망이 작았지만 그 희망 속에서 미래를 그렸다. 그리고 절망의 늪에 있는 자들에게 지푸라기 하나 같은 것이지만, 그것이 생명의 동아줄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망을 가졌던 것이다. 절망의 시대에 절망을 보며 절망을 지적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어쩌면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설득력을 가지는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절망 속에서 절망적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소망을 비추는 것으로 마감하는 역사의식을 가진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역사 의식을 가진자가 되어야 한다. 어떤 역사의식인가? 낙관의 시대에 절망을 볼 수 있는 역사의식이다. 절망으로 가야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또한 절망의 시대에 소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절망 속에서 살아날 수 있고 견딜 수 있어서 희망의 때를 준비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역사의식의 사람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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