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8 새벽기도회

본문: 히 6:9-20

제목: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라.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3. 본문읽기: 히 6:9-20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은 어제에 이어서 멜기세덱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그 사이에 주고 있는 권면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서신을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정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신앙의 주변적인 주제가 아니라 더 좋은 것이고 구원에 속한 것임을 확신하고 강조합니다.(9절) 특히 성도들이 사랑으로 이전부터 다른 성도들을 섬긴 것과 지금도 계속해서 섬기고 있는 것을 하나님은 다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10절) 히브리서 기자가 권면하고 있는 것은 모든 성도들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일부의 성도들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게으르지 않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의 기업을 받는 자들을 본받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가 권면하는 첫 번째 내용입니다.(9-12절)

 

두 번째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의 확실함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원래 맹세라는 것은 자신보다 더 큰 존재의 이름을 걸고 해야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없으므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14절) 그리고 아브라함은 마침내 오래 참아 그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않을 것을 맹세로서 보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기에 우리는 그로 인해 소망을 얻고 큰 안위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혼의 닻을 하나님의 약속 앞에 내리고, 이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에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앞서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약속과 그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한 예수가 대제사장으로서 휘장 안으로 먼저 들어가는 장면을 묘사함으로서 우리에게 큰 확신을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13-20절)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 12절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라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 중 다수는 이미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전부터 사랑으로 성도를 섬겼고 지금도 섬기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있음을 확신시켜 주십니다. 다만 그 중에 일부는 그 귀한 일들을 멈추고 헛된 말에 사로잡혀 있게 된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게을러졌고, 믿음도 흐려졌으며, 오래 참지 못하고 옛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 듯합니다.(12절) 이들을 향해서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가 되라’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받았던 약속을 끝까지 붙잡고 구원에 속한 것 즉 사랑과 선행을 꾸준히 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바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성도의 섬김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적 열정이 식어지면 인간적인 노력으로 행해왔던 우리의 선행이라는 것이 밑천이 드러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만을 위한 우리의 이기적 본심이 우리로 게으르게 만들어갔고, 약속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니 선을 행할 동력도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참아왔던 우리의 욕망도 결국 그 힘이 다해지면서 사람들은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과 우리의 능력으로 선을 행할 수도 구원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살아가게 하시는 복음의 신비를 경험해야 합니다. 복음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풍요로움과 소망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구원에 속한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종교적인 형식과 산물이 아닌 신앙의 본질을 붙잡고 그 안에서 삶의 소망을 확인해 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19절.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약속은 ‘영혼의 닻’과 같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닻은 배가 흘러가지 않고 그 자리에 고정되기 위해서 바다 위에 내리는 무거운 추와 같은 것입니다. 배가 정박하기 위해서 닻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약속은 영혼의 닻을 내려서 이제는 우리의 영혼이 흔들리지 않고 안전하고 견고한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큰 풍랑과 시험이 닥쳐와도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항구에 닻을 내리고 있다면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맹세와 약속이 있기 그에 따른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피난처를 찾는 순간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평안을 얻고 큰 위로를 얻게 됩니다. (18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우리 주변에 우리를 정죄하고 우리를 판단하여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헤어지게 하려는 시험이나 환난이 있으시다면 하나님의 항구로 오셔서 정박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십자가의 복음을 믿으시고 그 아래 우리의 죄를 고백하시고 영혼의 닻을 내리셔서 안식을 누리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우리의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사 46:1) 그 은혜를 덧입으시는 하루와 주말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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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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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7 새벽기도회

본문: 히 5:11-6:8

제목: 초보의 자리에서 완전함으로 나아가라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453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
  3. 본문읽기: 히 5:11-6:8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은 히브리서 기자가 멜기세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려고 하다가 잠시 중단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쓰여졌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아론 계통의 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분이라는 것을 앞서 말했기 때문에 그 근거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다루려고 했다가 잠시 멈춘 것 같습니다. 멜기세덱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히 7장1절부터 시작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멜기세덱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하니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좀 어렵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기자의 입장에서 이 정도의 신앙생활을 했으면 충분히 알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영적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잔소리(?)를 합니다. 그것이 5:11-14까지의 내용입니다. 이제 영적으로 단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인데 그것은 지각을 사용하여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14절)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믿음에 있어서 초보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기초적인 지식을 다시 논하려고 하지 말고 더 심도 있는 주제로 나아가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6:1-2) 이미 하늘의 은사도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어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면 이제 앞으로 나아가면 될 것인데 다시 거쳐 온 과정을 돌이켜 다른 길로 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3-6) 비유하건데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지만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이 가까워 마지막은 불사름이 될 것이니(7-8절) 주의하고 조심하라고 경고 하는 것으로 본문은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두 가지 권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 5: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히브리서 기자는 이 서신을 읽고 있는 성도들이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운지가 오래되어 성장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여전히 신앙의 기초에 대해서조차 확신을 갖지 못하고 주변의 말에 쉽게 흔들리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할 때가 되었는데 초보의 수준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먹기 쉽고 소화하기 쉬운 음식만 먹게 된다. 먹을 때는 편하고 좋지만 쉽게 소화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좀 더 성장하면 다소 딱딱한 음식이라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고 더 다양한 양분을 오랫동안 몸 안에서 활용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신앙에 대한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소 딱딱한 주제이기도 하고 당장 필요한 주제는 아니더라도 미리 익히고 생각해 두면 그것을 기초양분으로 하여 신앙도 건강하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근육을 성장시키려면 기존의 근육이 편하게 생각하는 정도의 무게를 드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기존의 근육이 부담스러워 하는 무게를 들어야 합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공부하고 생각하고 씨름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문제들을 의식적으로 다루고 배울 때 우리의 신앙도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에 게으르지 않길 바랍니다. 신앙의 열정 뿐 아니라 신앙의 내용과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성경을 공부할 기회가 있을 때, 다소 딱딱해 보이는 주제고 어려운 본문처럼 보이더라도 배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시길 바라고 평상시에도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으시면 베뢰아 사람들처럼 정말로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상고해 보시면서 온전한 데로 나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2) 6:1-2. 그러므로 우리가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로 하여금 초보의 문제에서 뱅뱅돌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제 자리를 맴 돌거나 이미 다 확인하고 온 것을 다실 돌아가서 의심하고 부정하는 일과 같은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부정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약속을 믿고 여기까지 온 것인데 다시 옛날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이미 인정하고 믿었던 것을 부정하고 부인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런 행동은 예수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행위이며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는 행위임을 강하게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확실한 도를 듣고 지금까지 온 것이 분명하다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단의 거짓말에 흔들려서도 안 됩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고 잠시의 틈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의 다음 주제로 나아가야 합니다. 더 온전한 주제로 더 완전한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하고 더 많은 지식을 쌓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제는 주어진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우리의 행하는 바를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확신한 바를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도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듯이 우리도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함을 배우는 그것이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오늘도 순종함으로 신앙의 완전함으로 나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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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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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6 새벽기도회

본문: 히 4:14-5:10

제목: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해져라.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90장 예수가 거느리시니
  3. 본문읽기: 히 4:14-5:10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은 내용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4:14-16은 큰 대제사장으로서 예수에 대한 내용으로 예수를 통해 우리가 신앙적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는 내용 입니다. 5:1-3은 구약에 있었던 대제사장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5:4-10 예수는 구약의 대제사장들과 비교해서 어떤 차이가 있고 그로 인해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4:14-16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는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있고 그 예수는 큰 대제사장이니 우리가 현재 믿고 있는 믿음의 도리를 굳게 잡으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대제사장(예수)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그 분의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가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5:1-3은 일반적인 대제사장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이는 큰 대제사장인 예수와 비교하기 위함입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사람 가운데서 택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 위해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도 연약함에 휩싸여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대제사장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그런 속제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연약한 인간이기에 연약한 인간을 중재할 수 있으나, 그는 또한 자산의 연약함에 매여있는 인간이라는 한계가 있다.)

 

5:4-10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은 아무나 취할 수 없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특별한 사람만 가능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 되신 것도 스스로 취함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론의 계통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고 말씀하셨고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라고 말씀하셨다. 아론 그 이전에 있는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예수님의 특별함에 대한 강조였습니다. 그 이후(7절부터)는 예수가 우리가 같은 육체로 있으셨을 때 하나님께 통곡과 간구로 소원을 올리기도 했고 그 응답을 받기도 했다는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고 온전하게 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는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함을 받으신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이 말씀해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16절.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기자가 성도이면서도 연약하여 믿음과 신앙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우리를 향해서 주고 있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긍휼이 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늘 모든 순간 우리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한 순간 바로 그 순간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있는 줄을 믿으시고 ‘은헤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14절에 말하고 있는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는 방법’인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래서 늘 넘어지고 실패하고 때로 성공을 하더라도 당당하고 멋진 모습이 아니라 부끄럽고 초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괜찮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큰 대제사장이 계시다는 것이고 그 분도 우리와 같은 연약함에 노출되어 있었고 우리와 같은 시험을 받아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처지에 있으셨기에 충분히 우리의 처지를 이해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와 같은 처지였지만 예수님은 죄를 짓지는 않았습니다. 넘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같은 처지에 있으셨으면서도 승리하고 이긴 방법을 주님은 알고 있으시기에 그래서 우리는 또한 그 주님을 의지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이 분명하고 선명하기에 낙심하고 절망하게 되기도 하지만 우리 주님도 우리와 같으셨다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오늘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5:8절.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구원을 받게 된 것, 안식을 얻게 된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완전한 안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온전하게 되는 길은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울 때’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순종은 내가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충만해 질 때 순종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지는 것인데 그렇게 길들여지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고난’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고난이라는 것이 세상이 주는 박해와 환난인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익숙한 사람의 방식과 원리에 대해서 불편해지게 되는 것도 고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오른손잡이로 살던 사람이 앞으로 모든 생활을 왼손으로 해야만 한다면 모든 것을 다시 다 새로 배워야 하는 불편함을 겪는 것처럼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이전에 우리가 익숙했던 모든 세상의 방식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원리와 방식을 따라 살아가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고난이지만 그 고난에 순종할 때 우리는 새로운 나라에 적합한, 온전한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고난을 통해 순종함을 배우고 온전해지는 성도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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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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